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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평

 

문정인 『중국의 내일을 묻다』, 삼성경제연구소 2010

중국의 내일은 우리에게 무엇인가

 

 

이희옥 李熙玉

성균관대 정외과 교수 leeok@skku.edu

 

 

9770미국의 금융위기는 서구화가 곧 근대화라는 오랜 믿음을 깨고 복수의 근대가 존재할 수 있다고 알려주었다. 여기엔 중국의 부상이라는 현상이 자리잡고 있다. 중국은 G2체제가 현실화되면서 미국에 대립각을 세우며 ‘중국모델’을 실험중이고, 이러한 변화는 한중관계에도 영향을 주고 있다. 한국정부가 중국에 대해 처음으로 할 말을 하기 시작했다고 생각하는 사이에, 중국은 동아시아로 복귀하려는 미국에 한국이 길을 내주고 있다는 불편한 감정을 숨기지 않는다. 물론 한중관계가 미중관계나 동북아 국제질서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 숙명적 한계가 있고, 이 정도의 양국간 교류에 비추어보면 국가이익의 충돌은 오히려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지금 한중관계의 문제는 한국정부가 최상의 한미관계를 유지한다는 입장에 집착한 나머지 중국의 변화를 제대로 읽지 못한 데 더 근본적인 원인이 있다. 심지어 한미동맹이라는 ‘안보 보험’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저변에는 사회주의 ‘중국 위협론’이 숨겨져 있다. 그리고 이러한 인식은 천안함사건과 연평도 포격을 거치면서 하나의 프레임으로 고정될 위기에 처했다. 명확하게 범주화하기는 어렵지만, 중국의 정책결정에 영향을 미치는 학자들 역시 한미동맹의 현실을 이해하면서도 한국정부의 중국에 대한 인식이 관계 발전의 발목을 잡고 있다는 점을 안타깝게 생각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문정인(文正仁) 교수의 『중국의 내일을 묻다』는 중국의 내일과 우리의 내일을 동시에 묻는 시의적절한 책이다. 특히 저자가 현재 활발히 활동중인 중국학자들과 나눈 ‘격정적’ 인터뷰를 엮었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크다. 이 책은 주제에 따라 중국 부상의 성격을 다룬 ‘대국의 길’(1부)과 ‘중국의 대외전략’(2부), 중국의 한반도정책과 북핵문제를 다룬 ‘중국과 한반도’(3부) 그리고 중국외교의 도전을 다룬 ‘거대중국의 미래구상과 안팎의 도전’(4부)으로 나뉜다. 주목할 점은 인터뷰에 응한 학자들이 중국의 대외정책 결정과정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사실이다. 평화적 부상이라는 외교담론을 만들었던 정 삐젠(鄭必堅), 중국 국제정치학계의 한 학파를 이루고 있는 왕 지쓰(王緝思), 왕 이저우(王逸舟), 옌 쉬에퉁(閻學通) 그리고 새롭게 주목받는 중진과 소장학자들까지 망라되어 있다. 뿐만 아니라 한반도 지역전문가라고 할 수 있는 치 빠오량(戚保良), 위 메이화(于美華), 장 롄꾸이(張璉) 등의 거침없는 견해도 들을 수 있다.

무엇보다 저자는 우리가 평소 궁금한 점을 빠짐없이 묻고 있다. 일반적으로 중국학자들은 민감한 주제의 대화를 피한다. 더구나 동북공정, 북한 급변사태, 김정은 후계체제, 북한 내부정세의 의제가 포함되어 있는 경우에는 더욱 그러하다. 그러나 저자의 ‘페이스’에 말려 대부분의 학자들이 속내를 털어놓는다는 점에서 ‘진짜 중국’을 만날 수 있다. 사실 여부를 떠나 “김정은 후계구도는 소설이다”(288면)라는 어느 학자의 소신발언도 이런 배경에서 나왔다고 볼 수 있다. 이것은 국제적 마당발인 저자 특유의 동양적 ‘(關係)’와 국제정치학자의 맥을 짚는 감각이 조화를 이루었기 때문에 가능했을 것이다.

둘째, 세계와 한반도를 보는 중국 내부의 다양한 시각을 엿볼 수 있다. 우리는 흔히 중국에는 관방(官方)의 천편일률적인 목소리만 존재한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고 실제 국제학술회의에서는 이러한 현상을 쉽게 발견된다. 이와 달리 이 책에 등장하는 학자들은 크게는 현실주의와 자유주의의 시각을 갖추고 있으나, 사안별로는 다양한 견해를 자유롭게 피력한다. 심지어 일부 학자들은 입장 차이를 넘어 상대를 신랄하게 비판하는 경우도 있다. 이것은 최근 밑으로부터의 다양한 요구를 반영해야 하는 중국 외교정책의 결정과정 변화나 학계의 개방도를 이해하는 실마리를 제공한다.

셋째, 한중관계를 국제관계의 맥락에서 보게 해준다. 중국은 한반도의 전략적 중요성을 주목하고 있음에도 여전히 한반도문제를 미중관계나 동북아 국제질서의 틀로 접근하는 경향이 있다. 실제로 많은 학자들이 한국이 미중관계를 활용하여 중국을 견인할 수 있다는 발상은 가당치 않다고 솔직하게 토로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따라서 향후 한중관계의 관건을 미사일 방어체제, 한미동맹, 한미일 군사협력 등에서 찾는 것은 중국 입장에서는 자연스러운 일이다. 이것이 바로 한중간에 인식과 기대의 차이를 낳는 중요한 배경이다.

넷째, 학문적・정책적 함의이다. 중국의 대표적 학자들의 아이디어는 적절한 통로를 통해 정책결정과정에 반영되거나 학계 담론투쟁의 근거가 되기도 한다. 이른바 ‘평화부상론’ ‘책임대국론’ ‘군사력 수준’ 등에 대한 입장 차이도 그중 하나다. 이것은 중국 국제정치학계의 인식의 차이를 낳는 기반을 이해하는 데 유용하다. 또한 이러한 중국사회의 미세한 결을 정확히 포착하면, 우리가 설정한 ‘중국 역할’에 대해 스스로 실망하면서 ‘중국 프레임’에 갇히는 실책이나 한미동맹의 편승이익에 기대는 타성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이 책은 인터뷰 형식을 취하고 있기 때문에 ‘다르면서도 같은’ 중국학자들의 속성과 쟁점을 좀더 명확히 보여주기 위해 ‘다르다’는 것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측면이 있다. 또한 지면과 시간의 제약 때문이겠지만 샹하이 등 지방에서 활약하는 학자들의 견해와 큰 틀의 국가전략 차원에서 접근하는 ‘전략가적’ 학자들의 견해가 빠진 점은 아쉬운 대목이다.

하지만 이 책은 이른바 세계 석학들이 명성과 권위를 앞세워 중국 문제를 논하면서 빠지는 사변적 논의를 뛰어넘는다는 점에서 사소한 아쉬움을 채우고 남는다. 좋은 질문에는 이미 해답이 있다는 말처럼, 저자 특유의 내공과 치밀한 사전준비 덕분에 가능했을 것이다. 이 책을 통해 저자가 중국 내부의 속사정을 내밀하게 드러내주었다면, 이제 우리는 ‘지금 여기서’ 이러한 중국과 어떻게 마주할 것인지를 심각하게 묻지 않을 수 없다. ‘정치는 차갑고 경제는 뜨거운(政冷經熱)’ 어색한 동거가 대안일 수 없고, 한미동맹이 중요하지만 모든 것을 해결해주는 만능의 열쇠도 아니며, 한국의 중국 의존도를 낮추거나 한중협력을 통해 북한을 고립시키려는 전략도 비현실적이기는 마찬가지다. 이 모든 것을 뛰어넘는 새로운 상상력이 필요한 때다.

흔히 한국의 대외전략은 기회주의적 방식으로 위험을 분산하는 헷징(hedging)을 추구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것은 외교적 지렛대를 많이 가졌을 때에야 가능하다. 더구나 남북관계가 지금처럼 얼어붙은 상태에서 운신의 폭은 제약될 수밖에 없다. 『중국의 내일을 묻다』는 이런 현실을 바로보고 오랜 우방 그리고 새롭게 무장한 이웃과 공존하는 현실주의적 해법을 제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