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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평

 

우석훈 『한미FTA 폭주를 멈춰라』 녹색평론사 2006

한국경제의 전략적 목표와 FTA

 

 

김종걸 金鍾杰

한양대 국제학대학원 교수 kimjg@hanyang.ac.kr

 

 

한미 FTA

우석훈(禹晳熏)의 『한미FTA 폭주를 멈춰라』는 무척 쉬운 책이다. 그러나 결코 녹록하지는 않다. 수년간 국제통상협상에 정부대표단의 일원으로 참석하고, 경제학 이론과 사상, 그리고 현안에 대해 연구해온 경험과 고민의 흔적이 이 책의 곳곳에 잠복해 있다. 어려운 경제이론을 쉽게 설명할 수 있는 능력은 오늘날 경제학자들에게 가장 결핍된 소양이다. 더구나 그것을 강렬한 메씨지로 변화시켜 독자에게 전달하기 위해서는 지적 능력뿐만 아니라 뜨거운 가슴이 있어야 한다. 흔치 않은 자질이다. 넘치는 구호 속에는 이론과 사상이 부족한 경우가 많으며, 정식화된 이론의 미로 속에는 ‘인간’의 얼굴이 보이지 않기 십상이다. 때문에 강렬한 메씨지와 그것을 뒷받침하는 경제학 사상과 이론을 겸비한 이 책은 오랜만에 우리에게 신선한 충격을 안긴다.

저자가 전달하려는 논지는 분명하다. 한미FTA 체결 이후 현재보다 삶의 질이 나아질 국민은 소득 상위 2〜10%에 해당되는 사람들이라는 점이다. 그리고 공무원을 포함해 20% 정도는 큰 타격 없이 상황을 유지할 수 있다. 결국 나머지 80% 국민들은 괴로운 상황에 직면하며, 한국은 차라리 해체라는 말이 어울릴 정도로 우울한 미래상을 그리게 될 것이다.(249~51면)

왜 그러한가? 먼저 미국식 FTA의 성격 때문이다. EU와 NAFTA(북미자유무역협정) 지역의 가장 큰 차이점은 노동력 이동의 허용 정도에 있다. 만약 노동력 이동이 자유롭다면 경제통합과정은 ‘착취’ 혹은 ‘기생’이 아니라 ‘공생’ 관계가 될 수밖에 없다. 가령 EU 통합에 의해 동구국가들이 어려워진다면 노동력 이동이라는 수단을 통해 인구가 대거 서구사회로 밀려갈 것이기 때문이다. 경제통합에 의해 사회가 붕괴되거나 기본체계가 흔들리지 않도록 여러가지 배려의 장치가 마련된다. 그러나 미국이 추구하는 FTA에는 이러한 안전장치가 없다.

그렇다면 배수진을 치면서 우리가 이길 수 있는 가능성은 없는가? 이에 대해서 저자는 비관적이다. 미국시장으로의 수출 가능성이 크지 않은 반면 수입은 늘어가고(90~95면), 써비스시장은 엄청난 타격을 받게 된다(104~25면). 그리고 경제적 효과를 예측했던 정부의 발표도 자료조작 혐의가 농후하고(79~89면), 구체적인 협상전략에 대한 능력과 준비도 부족하며(제2장), 이같은 것을 효과적으로 견제할 국회의 역할도 미미하다(제3장).

이같은 내용 하나하나는 상당한 논쟁거리다. FTA의 경제적 효과와 관련하여 다양한 연구결과들이 있으며, 미국형 경제모델에 대해 우호적인 논자도 많다. 하나 분명한 것은 이 책이 한미FTA를 반대하는 진영의 전형적인 논리틀을 보여준다는 점이다. 한미FTA의 부정적 효과, 준비 및 능력 부족에 대한 비판이 책 전면에 녹아 있다. 이에 반해 긍정적 효과, 준비 및 능력 있음을 강조하는 논리도 있는데, 이 책과 마찬가지로 ‘쉽고도 녹록하지 않은’ 저서로 최병일의 『한미FTA 역전 시나리오』(랜덤하우스코리아 2006)가 있다. 더불어 읽어보면 인식의 균형을 잡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현재 한미FTA 협상이 진행중인 상황에서 그 영향을 쉽게 점칠 수는 없다. 한편에서는 미국식 경제모델의 실현이 우리 경제 발전의 첩경임을 강조하고, 다른편에서는 제2의 IMF위기의 단초로 인식한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아직 ‘협상중’이라는 사실이다. 무엇을 얻고 무엇을 내줄 것인지 아직 확실하지 않고, 불명확한 정보에 입각해서 섣불리 결론을 내려서는 안된다. 우리 협상단의 능력과 진정성을 의심하는 쪽도 있으나, 협상의 준비작업까지 포함하면 십수개월간 계속된 수백명이 넘는 전문가집단의 격무, 그리고 다양한 사회적 감시기능을 고려할 때 근거없이 폄하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

그렇다면 왜 이리 많은 사회적 갈등이 야기되는 것일까? 먼저 추진과정에서 투명성과 점진성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정책실행 과정에서 법적 정당성을 획득하기 위해서는 국민의 합의를 이끌어내는 투명한 절차가 중요하다. 그러나 실질적으로 미숙한 점이 많았음은 사실이다. 정부가 한미FTA 협상개시를 선언한 것은 지난 2월 3일, 공청회가 열린 것은 불과 하루 전인 2월 2일이었다. 그나마도 반대단체들의 거센 반발로 인해 파행으로 끝났다. 애초부터 내년 6월말 미국의 무역촉진권한(TPA) 법안 만기일이라는 미국의 시간표에 맞추어 협상이 급하게 추진된 것도 불신을 더욱 조장했다. 더구나 이러한 협상과정을 점검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 역시 마련되어 있지 않다. 무역협상과정을 제도적으로 감시하고 통제할 수 있는 국회의 역할은 존재하지 않으며, ‘통상절차법’ 또한 국회에 계류된 채 잠자고 있다. 즉 정부가 아무리 친절하게 정보를 공개한다 하더라도 그것은 정부의 ‘친절’에 그칠 뿐 국민의 대표들이 통제·검증할 방법은 없는 것이다. 오로지 모든 협상이 끝나고 난 후 국회의 비준과정에서 검증할 수밖에 없다. 이에 대해서 저자는 “노무현 씨스템의 닫힌 의사결정구조”라는 다소 자극적인 표현으로 설명하고 있다.

더 큰 문제는 한국경제의 장기적 발전방안을 위한 전략적 목표에 대해 동의가 부족하다는 점이다. 한미FTA는 단순한 미국과의 경제협정 차원을 넘어 한국이 처한 국내적·국제적 상황을 호전시키기 위한 ‘전략적 고려’ 속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전략적 목표를 명확히 제시하고 그것을 적극적으로 국민에게 설득하는 과정은 필수적이다. 그런 면에서 한미FTA의 평가는 일종의 ‘철학’의 문제(제4장)라고 설파한 저자의 논지에 전적으로 동감한다. 지금 우리는 어디에 있는가? 어디로 가야 하는가? 한미FTA는 그러한 모든 것 속에서 어떠한 의미를 가지는가? 등의 논의는 단순한 경제학적 논리를 벗어나 철학적·정치학적·사회학적 접근을 필요로 한다. 즉 국가 및 사회 전략을 짜나가는 과정인 것이다. 앞으로 이 책과 같은, 한미FTA와 관련한 ‘쉽지만 녹록하지 않은’ 좋은 책들이 많이 나오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