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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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판식 朴判植

1973년 경남 함양 출생. 2001년 『동서문학』으로 등단. 시집 『밤의 피치카토』가 있음. lifediver@hanmail.net

 

 

 

헛소리

 

 

북쪽 벼랑에서 증오하는 애인을 밀어버렸다, 애인은

물비둘기가 되어 날아가버렸다

되돌릴 수 없는 것을 되돌리기 위하여

내일이 있다, 영원히 헛물켜기

쌍둥이 자매는 얼마나 평등할까

늙은 사람이 못에 뛰어들어 자살하려 할 때

그 못에 살고 있는 물고기들

물끄러미 노인의 얼굴을 바라본다

 

불현듯 벼랑 끝에서 불두(佛頭)가 떨어진다

무지개는 육체, 재 속에서 대나무 새순이 나고

남근은 불사조

무서운 뿔로 산양이 벼랑에서 밀친다

맑은 하늘 저편에서 천둥소리 들려온다

곱사등이 귀부인이 백화점 보석매장을 유유히 둘러보자

대로에서 교통경찰이 맨몸으로 자동차를 막아선다

 

오른쪽 귀를 물어뜯긴 개, 왼쪽 다리를 절뚝인다

전세계가 보고 있어도 발가벗고 있을 텐가

울증이 조증을 교란시킨다

죽었다던 물비둘기 어디서 날아왔나

불에 달궈진 쇠접시가 물속에서 늘어났다 줄어들었다 한다

아귀가 잘 맞았나 주먹망치로

할아버지 관을 두들길 때

글쎄요, 고요한 뿔, 나팔 소리로 바다는 강에게

강은 냇물에게 냇물은 못에게

못은 나무에게 뭐라고 하는지 잘 들리지 않는 손짓을 했다

침묵은 소리를 낳았고 소리는 잘 부화되어

감사의 바구니를 한가득 침묵에게 건넸다

동물들의 식욕이 멸한다면 슬플 테지만 그것들은 모두

비나 불로 돌아가겠지

 

깔깔대는 선남선녀 동지들, 모자 박물관에 갈 때는

모자를 벗고 갑시다

초상화 속 나뽈레옹은 왜 군복만 입고 있나

암말을 타고 도약하는 나뽈레옹

비밀을 지키지 않은 다섯째 첩의 오른쪽 귀를 물어뜯어

다섯째 첩은 왼쪽 발을 약간 절었다

그녀 이름은 무화과 선녀

십세기에 걸쳐 절규하라, 나뽈레옹을 떨어뜨렸던 말의 폐 속 공기가

드디어 극동에 도착했다

(空)은 너무나 큰 공기,

나뽈레옹은 한마리 물비둘기를 탐하다, 놓치고

아홉마리 어치를 보았다

울어라, 잃어버린 맹세가 너를 되찾을 때까지

 

무화과 선녀는 하느님의 물건을 훔쳤다

죄를 갚기 위해 선녀는 사람으로 태어나 아이를 아홉이나 낳았다

생계를 짜내는 아홉 생쥐들

태어나자마자 깨끗한 두 귀로

고양이 울음소리를 귀담아 듣고 있다

어쩌자고 문어는 주점 수족관에서 알을 낳았나

막을 수 없음, 참나무 토막 숯불에서 흘러나온 기름띠가

귀머거리의 꿈속으로 흘러든다

눈송이, 운명이라 해도 이번 생에는 그대를 만날 수 없어

이세상에 내리자마자 눈송이는 굴뚝 속으로 들어간다

 

밤나무 숲에서 사미승이 뭔가를 줍기도 하고

막대기로 찌르기도 할 때

숲의 무게는 양성의 딸을 낳았다, 난숙하지 못한

어미의 새끼들이라 숲의 딸들은 고통에 속박되어 있었다

모든 경전은 암시만으로 되어 있어

사미승은 무덤을 문으로 잘못 읽었다

사미승과 딸들이 서로를 알아보기에 세상은 너무 어두웠다

보이는 것들은 충만한 의미를 담지 못해

사미승은 말을 더듬었다, 이빨로 꿈의 알을 깨고

태어나지도 못한 자신의 자매이자 형제인 쌍둥이를 꺼냈다

 

쥐들의 입술이 씰룩거리고 악이 없으니 선도 없는 채로

쥐들의 울음이 소리의 잡탕 속으로 사라진다

마님의 젖을 먹고 자란 하인의 자식

인상을 찌푸리고 아름다운 말 듣기를 갈구한다

자신의 얼굴을 마님의 분첩에 비추어 보며

작은 안목으로 자신의 몸매와 체격을 자랑한다

하인의 자식은 두레박으로 없음을 길어올린다

공이 사방으로 튀어

씨 뿌리는 자를 열매 거두는 자로 바꾼다

그대 몫만큼의 짐을 짊어졌으니 그대는 그대의 왕이다

느티나무 둥치를 뛰어넘기 위해 도약하는 열두명의 아이들

 

바다는 왜 부표를 흡수하지 못하는가

외로운 길, 주정꾼은 물인지 숲인지 모를 곳에서

흘러나온 밧줄을 잡아당겼다

노크 놀이밖에 할 줄 모르는 하인의 자식에게

마님은 박자와 음정을 가르쳤다

언젠가 말고삐를 잡고 장성한 하인의 자식이

휘파람을 불며 자랑스레 마님을 시내에 모시고 갔을 때

바람 부는 쪽에서

마른 우물 바닥으로

물이 똑똑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삼십팔년의 무언극이 녹말로 녹아내렸다

마님의 별명은 나무여우, 민담집의 인과처럼

하인의 자식은 마님의 장식품이 되어 살았다

정직하고 무뚝뚝하며 겁조차 없는 마님의 비수가 되었다

마님은 비수의 끝을 조금 잘라 자신의 명치끝에

숨겨두었다

 

무녀들은 고객에게 그것이 가능한지 불가능한지를 말해주지 않는다

현재는 언제나 미래에 있는 법

창세기 때 박수친 관객들은 모두 어디로 갔나, 하느님의 야심만만한 밴드와

배우들은?

눈 속의 장미는 이물질

무심결에 누설된 신의 신음이 원형극장을 배회한다

 

나는 너무 늦게 당신을 만났다, 축가의 답례여

 

 

 

완전히, 죽다

 

 

어느 나라 말로 해도 아름답다, 죽은 자에게 바치는 쌍욕

당신은 죽어서도 날카로운 쇳소리를 낼 줄 알았는데

 

조용하다

 

상갓집에서 아이는 오늘

텔레비전 만다라에서 배운

최신 춤을 선보이고 있다

박수친다, 고모, 작은아버지, 작은아버지 친구

 

‘약하고 발가벗은’이란 수사는

물만 뿌리면 잠시 동안 되살아나는 흰 국화가 아니라

죽은 자의 넋에 바치고 싶다

 

날개, 날개가 있어도 오늘은

날아갈 곳이 없어서 슬프다

설령 새로운 몸을 갖게 된다 해도

오늘 같지는 않으리라

 

죽으면 몸에서 떨어져나가는 그것

벨을 누르면 벨을 떠나 허공으로 사라지는 그것

아이의 발 구름 동작에 맞춰

박수소리가 사라져가는 그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