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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이상국 李相國
1946년 강원도 양양 출생. 1976년 『심상』으로 등단. 시집 『東海別曲』 『집은 아직 따뜻하다』 『어느 농사꾼의 별에서』 등이 있음. bawoo8586@hanmail.net
가을 온정리
70년도 넘었다.
내가 이 나라에 오기 훨씬 전에
동해북부선 타고 금강산 원족(遠足) 갔던 아버지가 있었다.
왜놈의 당꼬바지에 지팡이로 멋을 내고
온정리에서 사진을 찍은 젊은 아버지가 있었다.
죄송하게도 당신보다 더 오래된 나이로
2006년 가을 군사분계선을 넘었다.
주말에 어디 맛있는 집 찾아나서듯
이렇게 아무것도 아닌 걸,
나는 역사를 너무 엄숙하게 생각했다.
10월의 북고성에서는
테두리가 높다란 모자를 쓴 군인들이
사회주의 가을을 지키고 있었는데
저래도 어딘가에서 굶어 죽는 사람들이 있다니…… 해놓고
나는 주먹으로 내 입을 틀어막는다.
내가 상상했던 온정리가 훨씬 따뜻했을지라도
오길 잘했다. 그러나 분하다.
우리는 늘 이밥을 생각하며 살았지만
이 땅의 가을에는 피가 묻어 있다.
언젠가 내 아들도 이곳에 올 것이다.
누가 오든 온정리가 어디 가겠는가
저 붉은 단풍숲에서 아이들은 연애를 하고
무 밑이 다 들고 나면 또 눈이 내릴 뿐,
앓다 일어난 듯 핼쑥한 풍경을 배경으로
남녘에서 온 관광객들과 함께 나도
김치 하고 사진을 찍는다.
온정리 가을이 따라 웃는다.
밥상에 대하여
오래 받아먹던 밥상을 버렸다
어느날 다리 하나가 마비되더니
걸핏하면 넘어지는 그를 내다버리며
누군가 고쳐 쓰겠지 하면서도 자꾸 뒤가 켕긴다
아이들이 이마를 맞대고 숙제를 하고
좋은 날이나 언짢은 날이나 둘러앉아 밥을 먹었는데……
남들은 어떻게 살던지,
아버지가 나에게 그랬던 것처럼
때로는 밥상머리에서 내가 지르는 호통소리에
아이들은 눈물 때문에 숟가락을 들지 못했고
그럴 때마다 아내는 공연히 밥알을 줍거나
물을 뜨러 일어서고는 했지
나는 가장이라는 이름으로 그렇게
나의 가족들에게, 실은 나 자신을 향하여
어떤 때는 밥상을 두드리고 숟가락을 팽개치기도 했지
여기저기 상처난 몸으로 그도 힘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한끼 밥을 위하여 종일 걸었거나
혹은 밥술이나 먹는 것처럼 보이려고
배를 있는 대로 내밀고 다니다가
또 어떤 날은 속옷 바람에 식구들과 둘러앉아
별일도 아닌 일에 밥알이 튀어나오도록 웃던 일들을
그는 다 알고 있을 것이다
오래 받아먹던 밥상을 버렸다
그러나 그가 어디 가든 나에 대하여
아무 말도 하지 않으리라는 걸 나는 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