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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다시 동아시아를 말한다

 

국가주의 극복과 한반도에서의 국가개조 작업

동아시아 담론의 현실성과 보편성을 높이기 위해

 

 

백낙청 白樂晴

문학평론가, 서울대 명예교수. 최근 저서로 『어디가 중도며 어째서 변혁인가』 『통일시대 한국문학의 보람』 『백낙청 회화록』(전5권) 등이 있음.

paiknc@snu.ac.kr

 

 

이 글은 두 부분으로 되어 있다. 전반부는 ‘2050년의 동아시아: 국가주의를 넘어서’라는 주제로 서울에서 열린 제3회 동아시아 평화포럼(2010.11.5~7)의 첫날 기조발제 원고를 약간 첨삭하면서 새 내용을 각주로 추가한 것이다. 후반부를 이루는 ‘덧글’은 그후의 사태진전을 감안하여 2011년 초의 시점에서 새로이 마무리한 것이다.

포럼 이후 보름 남짓 지나 한반도에서는 연평도 포격사건이라는 한국전쟁 이후 최대의 남북간 무력충돌이 벌어졌다. 이로써 한반도의 분단이 동아시아 평화에 얼마나 위협적인 요소인지를 거듭 실감함과 동시에, 자칫 ‘국가주의 극복’ 논의가 한가롭게 들릴 수도 있다. 그러나 발제문에서 언급한 분단국가 특유의 악성 국가주의가 위기와 더불어 더욱 창궐하는 것이 눈앞의 현실이기도 하려니와, 이런 때일수록 국가 및 국가주의에 대한 장기적이고 전지구적인 성찰을 국지적 상황에 대한 점검과 결부시켜 진행하는 공부가 절실하다.

나의 발표가 한반도 문제를 중심에 둔 것도 한국측 기조발제자로서 자신의 국지적 상황에 충실하고자 한 선택이었다. 동시에 그것은 ‘한반도중심주의’와는 전혀 다른 의미로, 한반도에서의 국가개조 작업이 ‘국가주의를 넘어선 동아시아’의 건설에 핵심적이라는 인식에 근거하고 있다. 한반도가 세계 전체에서도 똑같은 비중을 차지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무리겠지만, 자본주의 근대에 대한 ‘적응과 극복의 이중과제’의 한 전범으로서 한반도의 작업이 지구적으로도 절실한 관심사가 될 수 있다는 인식은 유효하다고 믿는다. 이에 대해서는 ‘덧글’에서 다시 언급할 것이다.

 

 

1. 국가와 국가주의

 

국가주의를 넘어서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국가를 없애는 길이다. 그러나 이것은 논리적으로 명징할 뿐 실제로 국가의 폐기가 가까운 장래에 이루어지기는 힘들다고 봐야 옳다.1) 세계화와 더불어 국경의 장벽이 흔들리고 국민국가의 존재가 위태로워지는 면이 있으나, 이는 자본주의 세계체제의 새로운 국면에서 국가의 성격과 기능에 일정한 변화가 일어나는 현상으로 이해해야 마땅하다. 자본의 세계화가 결코 국가의 폐기 또는 소멸을 가져올 수 없음은 ‘국가간체제’(inter-state system)를 자본주의 세계경제의 필수적인 조건의 하나로 보는 월러스틴(I. Wallerstein)이나 자본주의체제를 ‘자본=네이션=국가’의 결합체로 보는 카라따니 코오진(柄谷行人) 등이 거듭 강조하는 사실이다. 국가와 국가주의를 동시에 넘어서는 문제는 자본주의 세계체제의 근본적 변혁이라는 장기적 과제의 일환으로서만 설득력을 갖는다.2)

카라따니가 칸트의 영구평화론에서 출발하여 구상한 ‘세계공화국’(가라타니 고진 지음, 조영일 옮김 『세계공화국으로』, 도서출판b 2007)도 대동소이한 이야기다. 저자 스스로 최근의 한 인터뷰에서, “칸트가 말하는 국가들의 연합諸國家連合은 본래 평화론이 아니라 시민혁명을 세계 동시적인 것으로 만들고자 구상된 것입니다. (…) 칸트의 ‘영구평화’라는 이념은 국가와 자본의 양기(揚棄)를 의미합니다”(「平和の實現こそが世界革命」, 『世界』 201010월호, 124면)라고 밝힌 바 있다. ‘국가와 자본의 양기’ 내지 지양이라는 장기적 과제가 여전히 문제가 되는 것이다.

그럴 경우 상당기간 존속할 국가들을 개조하는 작업은 어떤 의미를 지닐까? 개량과 혁명을 엄격히 구별하는 입장이라면 국가에 반대하거나 최소한 국가를 우회하는 방법을 고집할 테고, 국가개조론을 국가주의에 대한 개량주의적 투항의 한 형태로 간주할 것이다. 하지만 일체의 개량론이 혁명의 성공에 위협이 되는 혁명 전야의 급박한 상황이 아닌 한, 이런 교조적 이분법이 개혁은 물론 혁명에도 도움이 되지 못한다. 국가와 관련해서도 당장에 국가를 소멸시킬 묘방이 있는 것이 아니라면, 국가의 성격에 어떠한 변화를 일으키는 것이 국가주의 극복에 유리할지를 구체적으로 검토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그렇기 때문에 협동조합과 지역통화라는 대안을 추구하는 카라따니도(앞의 인터뷰 126면), 사회민주주의가 대안은 아니지만 사회민주주의자들이 그러한 대안의 실현에 유리한 입법을 해줄 것을 요망하고 있다.

 

 

2. 분단 한반도의 국가와 국가주의

 

국가 및 국가주의 문제와 관련해서 한반도는 특별히 관심을 끌기에 족한 사례다. 동족끼리 남북으로 갈라져 준전시상태로 대치하고 있는 한쌍의 분단국가는 평화국가에 대한 거부가 체질화된 안보국가가 아닐 수 없다. 이들의 국가주의는 민족주의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지 못하기 때문에 오히려 더욱 악성이며 억압적이다. 민족의 통일을 겨냥하는 원래의 민족주의를 약화시키고 분단국가의 국가주의와 결합된 새로운 민족주의를 조성하기 위해 온갖 상징조작과 선동을 마다않게 마련인 것이다.

다른 한편 바로 그러한 이유로 분단국가의 국가주의는 남다른 취약성을 지니기도 한다. 분단국가의 자기부정에 해당하는 통일을 목표로 내걺으로써만 스스로 선포한 영토에 대한 국가주권을 주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애초의 국토분단이 미・소대립의 결과였고 세계적 냉전체제가 한국전쟁 이후 분단이 일종의 ‘체제’로 굳어지는 데 크게 작용한만큼, 동서냉전이 종식된 오늘의 세계에서 분단체제의 자생력도 심각한 도전에 시달리지 않을 수 없다. 이른바 ‘흔들리는 분단체제’의 시기에 들어선 것이다.

그런데 국가주의에 관한 한, 통일국가의 수립도 온전한 해답이 되기 힘들다. 민족주의와 한결 자연스럽게 결합된 국가주의가 성립함으로써 분단국가 특유의 기형성을 제거하는 데 도움이 될 수는 있어도, 국가주의와 민족주의의 결합이라는 현대세계의 고질적 문제를 해결할 수 없음은 물론이다. 더구나 오늘의 지구적 현실에서 한반도가 단일형 국민국가로 통일된다는 것은 곧 자본주의 세계체제의 ‘국가간체제’에 지금의 한국보다 훨씬 강력해진 경쟁자가 출현함을 뜻할 터인데, 이는 일본이나 중국 그리고 다른 동아시아 나라에서 국가주의를 극복하려는 시민들의 노력에 심대한 타격을 줄 수밖에 없다.

행인지 불행인지 한반도에서 그런 통일이 이루어질 가능성은 극히 희박하다. 전쟁을 통한 통일국가의 수립은 더 말할 나위 없고, 북의 ‘급변사태’를 맞아 남한이 북한을 병합하는 통일이 이루어지기도 어렵게 되어 있다. 근래에 남한정부가 대북강경노선을 취하고 미국 또한 상당부분 이에 동조하면서 일각에서 그러한 씨나리오에 대한 기대가 높아진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북측 정권 자체의 지구력이 어느 정도인가라는 문제를 차치하고도, 중국의 대대적인 지원이 계속되고 한・미・일 등 자본주의 국가들에서조차 북의 붕괴나 극단적인 혼란이 자신들의 이익에 부합되지 않는다는 판단이 무시 못할 힘을 지니는 이상, 한반도 단일국가의 조속한 성립은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다.

이처럼 남북 모두가 각기—물론 그 정도와 구체적 내용을 달리하지만—악성 국가주의에 시달리면서도 분단국가를 통일국가로 대체하는 길이 봉쇄된 상황에서 국가주의 극복을 지향하는 시민들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당장에 앞길이 잘 안 보이기 때문에 평화국가, 녹색국가, 시민국가 같은 장기적 목표가 더 매력적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이런 장기적 목표의 추구 자체는 결코 나쁜 일이 아니다. 그러나 이들 목표를 분단현실에서 어떻게 추진하고 실현할지에 대한 구체적인 방안이 따르지 않는다면 분단체제가 탁월하게 산출하는 안보이념과 군사문화, 경쟁논리, 성장지상주의 등에 맞서서 힘을 발휘하기 어렵다. 그런데 이러한 곤경이야말로 분단국가라는 특수상황의 산물임과 동시에 자본주의 세계경제의 ‘국가간체제’ 속에 사는 모든 시민세력의 전형적 곤경이 아니겠는가.

 

 

3. 한반도에서의 국가개조 작업과 동아시아에서의 국가주의 극복

 

실제로 남북한 사이에는 항구적인 분단도 아니고 조속한 통일도 아닌 점진적 국가개조 방안에 대한 원칙적 합의가 이루어져 있다. 20006월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발표한 615공동선언 제2항의 남북연합 내지 ‘낮은 단계의 연방’에 대한 합의가 그것이다. 합의문 자체는 극히 모호하고 추상적이지만, 어쨌든 한반도의 통일은 점진적일뿐더러 중간단계를 거쳐서 한다는 원칙만은 분명하다. 그리고 ‘낮은 단계의 연방’이라는 북측의 표현이 포함됨으로써 논란의 소지를 남겼으나 실제로 연방은커녕 연합에 대해서도 소극적인 북측 당국의 태도—및 객관적인 처지—로 볼 때 합의문의 무게는 연합제 쪽에 가 있고, 그나마 실현될 경우 그것은 국가연합 중에서도 ‘낮은 단계의 연합’으로 시작될 공산이 크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가령 유럽연합만 해도 아직 온전한 국가연합에 미달하는 면이 많지만 남북이 연합하면서 유럽연합 수준의 자유로운 주민이동이나 화폐의 통합을 시행하리라고 기대하기는 어렵다. 북측이 단호히 반대함은 물론 남측에서도 다수 국민의 지지를 얻어내기 힘들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615공동선언 제2항은 2007104선언이 마련한 각종 교류・접촉・협의 작업이 점차 활성화되고 증대해가는 어느 시점에서 그 실현이 선포되는 매우 완만하고 독특한 과정을 밟게 되리라 본다.

완만한 것이 반드시 좋은 것은 아니다. 불리한 점 하나는, 너무 느리게 진행되다 보면 통합의 추진동력을 잃어버릴 수 있다는 것일 테다. 그러나 한반도의 경우 그럴 위험은 별로 없다. 이미 확립된 국민국가들이 모여 통일을 할지 말지 고민하며 진행하는 유럽연합과 달리, 한반도에서는 장구한 세월을 단일국가로 살아온 민족이 타의로 분단되어 궁극적 재통일의 원칙에 주민들이 이미 합의하고 있기 때문에, 비록 느슨한 국가연합이나마 성립하는 순간부터 재통합의 과정은 불퇴전의 대세를 형성하게 마련인 것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완만하고 단계적인 통일이기 때문에 특별한 권한이 없는 일반시민들이 개입할 공간이 확보된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러한 공간은 남북연합이 선포되는 순간 더욱 확장되고 활발해질 것이 분명하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국가연합을 경유하는 한반도의 점진적・단계적 통일과정은 국가가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는 데 편리한 방향으로 자체개조를 주도하기보다, 민중이 참여하여 새로운 국가기구의 건설 및 진화의 시간표를 결정하고 내용도 결정해가는 ‘시민국가적’ 지향성을 띠는 작업이 된다.

물론 민중이 어떤 참여를 하느냐가 관건이다. 통일과정에 민족주의적 동력이 적지 않게 투입될 것은 불가피하고 또 당연하다. 그러나 시민참여・민중참여가 실현되는 과정이라면 ‘1민족 1국가’의 이념보다 한반도 주민들의 생활상의 욕구가 우선시될 수밖에 없으며, 통일뿐 아니라 인권과 환경, 평화, 성차별 철폐와 경제적 격차 해소 등 다양한 ‘시민적’ 의제들이 민족주의적 의제와 경쟁하게 될 것이다. 더구나 이 과정은 2005년 뻬이징 6자회담에서 합의한 한반도 비핵화, 관련국들 간의 관계정상화, 한반도 및 동북아의 평화체제 건설 등 다양한 국제적 의제의 진전과 맞물려 있다. 그만큼 더 험난한 과정인 동시에, 성과가 나오기만 한다면 한반도에 국한되지 않는 지역적・세계적 의의를 지니게 마련이다.

그렇다고 한반도 분단체제의 극복이 곧바로 세계체제의 변혁으로 이어질지는 의문이다. 다만 미국을 포함한 전세계의 국가주의 세력들로부터 한반도 긴장이라는 더없이 달콤한 품목을 앗아갈 것은 확실하다. 나아가, 동아시아 이웃들과 긴장관계를 새로 조성할 확률이 낮은—아니, 어쩌면 시민중심적 국가개조의 한 모범을 제시할 수 있는—한반도 국가기구의 출현으로 인해 동아시아에서 국가주의를 넘어서는 작업이 더욱 탄력을 받게 될 것이다.

예컨대 일본이 북조선(또는 통일한국)의 위협을 빌미로 평화헌법을 폐기한다거나, 헌법 9조를 유지하면서도 미일동맹과 주변의 병영국가에 기대어 자신의 군사적 부담을 줄이는 ‘대체군국주의’(사까모또 요시까즈坂本義和) 노선을 걷기가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아니, 단순히 평화국가를 표방하는 것이 아니라 ‘탈아입구(에 이은 탈아입미脫亞入美)’를 끝내고 동아시아로의 진정한 귀환을 수행함으로써 동아시아지역의 평화체제와 지역연대 건설에 실질적으로 기여하는 평화국가가 되는 길도 그때 비로소 열릴지 모른다.

중국에 대한 영향도 적지 않을 것이다. 중국은 한반도의 안정을 일차적 정책목표로 삼아왔는데, 한반도 안정이 통일 베트남과는 질적으로 다른 시민참여적 국가기구의 탄생을 통해 확보되었을 때 자신의 대국주의를 고집하기가 더 어려워질 것이며, 그러한 국가개조 작업이 순조롭게 진행되고만 있어도 가령 양안관계(兩岸關係)나 티베트 문제에서 훨씬 유연하고 창의적인 해법을 찾을 의지가 커지지 않을까 한다.

국가주의의 발본적 청산이 어느 한 국가나 지역에서만 이루어질 수 없고 그런 의미로 ‘세계동시혁명’을 요한다는 명제는 충분히 수긍함직하다. 하지만 카라따니가 말하는 칸트적 평화로서의 세계동시혁명은 더 말할 나위 없고, 뜨로쯔끼주의자들이 꿈꾸는 ‘동시혁명’이라 해도 그런 규모의 변혁이 문자 그대로 한날 한시에 세계 도처에서 일어날 리는 없다. 일정한 시간대에 걸쳐 함께 일어나면 ‘동시적’ 변화로 이해해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장기간의 다양하고 처음에는 산발적인 준비과정이 필요할 게 분명하다. 그러한 준비에는 기존의 개별 국가들이 각기 주어진 현실에 맞춰 국가주의 극복에 최대한으로 유리한 국가개조를 진행하는 작업이 포함되어야 할 것이며, 또한 그 작업을 수반하며 촉진할 지역 차원의 평화지향적이고 시민참여적인 지역공동체 형성도 소홀히해서는 안될 것이다.

 

 

4. 마무리를 대신하여

 

이명박시대의 한국에서는 615공동선언이 거의 무시되는 사태가 잇따라 벌어져왔다. 세계의 영구평화는 더 말할 것 없고 남북연합이나 동아시아 평화체제조차 꿈같은 이야기로 들릴 법한 현실이다. 하지만 이명박정부도 615선언을 공식적으로 폐기하지는 못했고, 특히 금년(2010) 상반기에 ‘북한 어뢰에 의한 천안함 폭침’설을 들고 나와 남북교류를 전면적으로 단절하려던 정부의 시도는 국내정치에서나 국제무대에서나 난관에 부딪히고 말았다.

더구나 한반도 문제의 해결이 국가주의를 넘어선 동아시아를 건설하는 데 필수적일 수는 있어도 국가주의 극복의 동력이 한반도에서만 나오는 것은 아니다. 오늘날 세계 곳곳에서 사까모또씨가 늘상 강조하는 국경을 초월한 ‘연대’3)가 다양한 시민운동의 형태로 점점 큰 세력으로 성장하고 있으며, 한반도가 그러한 연대의 흐름을 계속해서 가로막는다면 범세계적인 압력이 이곳으로 모이는 날이 오게 마련이다.

한국 안에서도 세계적, 지역적 그리고 범한반도적 시민연대를 가로막는 정권 및 분단체제 기득권세력에 대한 민중의 압력은 이미 거역하기 힘든 수준에 달한 것으로 보인다. 정부 스스로 물길을 열어주든 않든, 남북의 화해와 재통합의 큰 흐름은 머지않아 재개될 것이 확실하다. 그것이 단순한 정권교체나 남북관계 복원에 그치지 않고 동아시아 및 세계 차원에서의 국가주의 극복에 이바지하는 국가개조 작업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한반도 민중의 자기교육과 국경을 넘은 시민연대가 착실히 진행되기를 염원한다.

 

 

덧글: 2011년의 초입에서

 

글머리에 말했듯이 동아시아평화포럼 서울회의 이후 남북관계의 최대 악재는 연평도 포격사건이었다. 회의 당시에도 “세계의 영구평화는 더 말할 것 없고 남북연합이나 동아시아 평화체제조차 꿈같은 이야기로 들릴 법한 현실”이었다면 연평도사건 이후로 더욱이나 그렇다. 실제로 정전체제의 관리마저 위태로워진 상황인 것이다. 그런데도 “정부 스스로 물길을 열어주든 않든, 남북의 화해와 재통합의 큰 흐름은 머지않아 재개될 것이 확실하다”고 했던 당시의 결론을 지금도 고수할 수 있을까? 아무튼 관련된 온갖 이론적・실천적 문제들에 대해 또 한번의 철저한 점검을 해볼 계제다.

 

위기의 근원은 분단체제, 그 고착기로의 복귀는 없다

2010년의 위기가 새삼스럽게 일깨워준 초보적인 사실은 분단이야말로 한반도 평화에 대한 근원적 위협이라는 점이다. 또한 한국전쟁은 휴전으로 끝났을 뿐 아직껏 평화협정이 없다는 점, 더욱이나 현존 정전체제는 일방적으로 그어진 북방한계선(NLL)이라는 치명적인 헛점을 안고 있다는 점4) 등을 상기하게 되었다. 사실 한반도의 분단은 아무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임에도 그동안 많은 사람들이, 특히 진보적 지식인을 자처하는 상당수의 인사들이, 마치 한국이 분단국이 아닌 듯이 사고하며 살아왔다.5) 이는 분단현실이 일종의 ‘체제’로 굳어진 결과의 일부인데, 어떤 의미로건 하나의 체제가 성립하면 그 속에 사는 사람이 역사적・사회적으로 조성된 그 체제의 특수한 현실을 마치 자연스러운 것처럼 생각하도록 길들여지기 쉬운 것이다.

그런데 남북의 대결이 격화된다고 해서 분단체제가 다시 안정된 상태로 되돌아가는 것은 결코 아니다. 오히려 분단체제 고착기(固着期)에는 볼 수 없던 충돌과 돌출행위가 잦아지는 말기국면이 더욱 실감될 뿐이다. 2차에 걸친 북의 핵실험이 그렇듯이 연평도 포격사건도 북으로서는 감내할 수 없는 기존상황(status quo)을 타파하려는 승부수에 해당하며, 그런 의미의 ‘도발’은 현상극복의 다른 길이 열리지 않는 한 지속되기 마련이다.

바로 그 ‘다른 길’을 제시한 것이 2000년의 615남북공동선언(및 그 실천강령에 해당하는 2007년의 104정상선언)이요 2005년 뻬이징 6자회담에서의 919공동성명과 2007년의 후속 합의들이다. 이 길이 2008년 이래 도로 막히게 된 데는 여러가지 원인이 있겠지만, 새로 들어선 남한의 이명박정부가 내심 북한의 붕괴를 기다리면서 대북강경노선을 채택한 것이 큰 요인이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 그런데 이 또한 단순히 남한 내부의 문제가 아니라, 분단체제가 안겨준 특권을 지켜내려는 세력들의 몸부림에 해당한다는 인식이 긴요하다. 어쨌든 북이 핵실험과 군사도발로 분단체제를 다시 안정시키지 못하듯이, 남한사회에서의 이런 역주행도 국내의 혼란과 한반도 및 동아시아의 불안정을 가중시킬 따름이지 분단체제가 고착되었던 ‘좋았던 옛 시절’을 되돌려올 수는 없다.

 

전환점으로서의 천안함사건과 ‘제3당사자’의 책임

아무튼 지금은 남북 당국자의 접촉도 드물고 민간교류는 대부분 우리 정부가 차단해버린 상태다. 이를 두고 남한의 민간사회가 남북문제 해결의 ‘제3당사자’로 자임해온 역할이 사라진 것이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그러나 ‘제3당사자’의 역할이 단순히 민간인도 교류, 협력 또는 정치협상에 참여한다는 뜻이 아니라—이런 영역에 국한한다면 민간사회가 쌍방 당국자와 대등한 당사자가 된다는 것은 과욕이요 과대망상이기 쉽다—분단체제를 더 나은 체제로 바꾸기 위한 온갖 국내개혁과 국제연대 사업에 대한 시민참여를 포함한다고 할 때, 남북간 민간교류의 일시적 단절이 치명적인 역할 상실이 될 수는 없다. 아니, 남북 당국 모두가 한반도문제에서 주도권을 상실하고 특히 남측 당국은 건설적 역할을 스스로 포기하며 문제해결의 훼방꾼 노릇이나 하는 상황이라면 헌법상 나라의 주인이요 현실적으로도 선거로 정권을 교체할 권한을 지닌 ‘제3당사자’의 중요성이 그 어느 때보다 커졌다고 할 수 있다.

2010년 남북관계의 악화 경위를 돌이켜보면 그 점이 더욱 분명해진다. 결정적인 계기는 3월의 천안함 침몰사건이었다. 그 전까지는 긴장은 있지만 전쟁이 걱정될 지경은 아니었고 도리어 남북정상회담 이야기가 나도는 분위기였다. 나 자신 2010년 초의 한반도 정세를 두고 “우여곡절 속에서나마 대화국면에 접어들었고 한반도는 포용정책이 다시 작동하는 시기를 맞이한 상황이다. 심지어 이명박 대통령 스스로 금년 내 남북정상회담의 실현을 공개적으로 예상하는 판국이다”6)라고 다분히 낙관적인 전망을 내놓았었다. 이는 집권층의 진정성 부족이나 무능을 충분히 감안하지 못한 경솔한 발언이었지만, 천안함사건이 아니었다면 ‘연내 정상회담’ 운운이 또하나의 돌출발언으로 끝났을지는 몰라도 공공연한 적대관계로의 전환은 없었기 쉽다. 아무튼 그러한 상대적 유화국면에서 북측이 천안함에 대한 어뢰공격을 감행했거나 반대로 남측이 처음부터 피격사건을 조작한 자작극을 벌인 것이라면, 그 어느 경우건 나 같은 사람은 자신의 안일한 현실인식에 대해 훨씬 비통한 자기반성을 해야 옳다. 하지만 1964년 베트남전쟁 확전의 계기가 된 통킹만 사건 같은 치밀한 자작극이 아니고, 모종의 사건사고를 수습하는 과정에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국방부의 조사가 진상과 다른 방향으로 치달은 것이라면,7) 이는 분단체제에 내재하는 위험성을 되새길 이유는 될지언정 천안함 침몰이 없었더라도 2010년의 남북관계가 필연적으로 파탄날 운명이었다고 단정할 일은 아니다.

아무튼 천안함 문제가 어떻게 풀리느냐에 따라 국내정치와 남북관계, 나아가 동아시아 전체의 정세가 크게 달라질 것이다. 여기서도 ‘제3당사자’의 역할이 기대되며 사실상 그 역할을 빼고는 진상규명을 기대하기 힘든 실정이다.

천안함사건의 진상이 무엇이냐에 따라 연평도사건에 대한 이해 및 대응자세도 완연히 달라진다. 이와 관련해서 나는 지난 연말의 창비주간논평8)에서 천안함사건이 ‘북한의 소행이다’(A)와 ‘아니다’(B)라는 두개의 가설을 놓고 어느 쪽이 맞느냐에 따라 북측 정권의 행태라든가 우리 군의 대응에 관해 각기 어떤 결론이 도출되는지를 검토한 바 있다. 물론 AB 중 어느 것이 진실에 부합하는지는 오로지 과학적으로 규명할 일이며 거기에 정치적 고려나 절충이 끼어들 여지가 없다. 하지만 아직껏 과학계가 합의한 결론이 없는 상태에서 두가지 가능성을 모두 검토해보는 것은 의미있는 작업이다. 요약하자면, 어느 가설이 맞느냐에 따라 북의 정권이 단순히 호전적인 데 그치지 않고 천안함 공격으로 연평도보다 훨씬 큰 전과를 올렸을 때는 잡아떼기에 급급했던 이해불능의 정권인지, 아니면 연평도에서 분명히 정전협정 위반을 저지른 위험한 정권이지만 그나름의 예측가능한 셈법을 지닌 집단인지가 달라지고, 한국 정부 및 군의 경우도 천안함 공격을 겪고도 연평도 포격을 무방비상태로 또 당한 어이없는 집단인지 아니면 초기대응이 부실하긴 했지만 북의 포격계획에 대한 8월의 감청(監聽) 보고9)를 묵살한 일 자체는 그럴 수도 있는 수준의 실수였는지, 전혀 다른 판단이 나오는 것이다.

 

천안함사건 이후의 미국, 중국, 그리고 한국사회

이런 식의 추론을 한반도문제 해결의 여타 주체들에 대해서도 적용해봄직하다. 예컨대 미국정부의 경우 처음에는 천안함 침몰과 북측의 관련을 부인했다가 어느 시점부터 가설 A의 강력한 지지자로 바뀌었는데, 이것이 어떤 확고한 정보를 가졌기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중국을 견제하며 한국 및 일본으로부터 구체적인 실리를 얻기 위해 한국정부의 조사결과를 눈 딱 감고 밀어주기로 한 것인지를 가려낼 근거가 된다. 중국의 경우도, 천안함 침몰이 북의 소행임을 알면서도 무조건 동맹국을 감싼 것이라면 국제사회의 비난을 받아 마땅하지만, 북의 소행이 아니라면 그 사실 또한 중국이 모를 수 없을 텐데 한국정부가 그런 중국에다 대고 ‘책임있는 대국’답게 행동하라고 훈계조로 나갔을 때 중국정부로서는 얼마나 가소로웠을 것인가. 당장은 ‘냉정과 자제’를 권유하며 점잖게 대하더라도 다른 기회에(가령 그해 12월의 중국인 불법어로 단속사건이 벌어졌을 때) 훨씬 강력하게 반격해도 놀라울 바 없으며, 연평도 포격 같은 북측의 명백한 도발행위에 대한 한・미의 규탄 내지 우려표시 요구조차 귓등으로 듣게 마련이었을 것이다.10) 이것이 당장의 한중관계 문제만도 아니다. 한반도의 비핵화가 진행되려면 어쨌든 중국의 적절한 대북압력을 포함한 ‘책임있는 강국’다운 역할이 필수적이다. 그런데 이는 919공동성명 당시에도 보았듯이 한국이 미국뿐 아니라 북한 및 중국과도 신뢰관계를 갖고 능동적인 기여를 할 때 중국이 더러 북측에 압력을 넣기도 하는 중재자 역할을 함으로써만 가능해진다. 한국이 미국을 등에 업고 중국더러 ‘북한을 강압해서 이리저리 하도록 만들어내라’고 다그친대서 중국이 순종하리라 믿는 것은 허망한 꿈일 뿐이다.

어쨌든 ‘천안함에 더해 연평도마저’라는 당국측의 가설은 남북한 양쪽에서 국가주의의 위세를 더없이 높여놓았다. 북은 애당초 선군정치(先軍政治)를 표방해왔으니 그렇다 치더라도, 천안함사건 이후 남측 국방당국이나 주류사회의 행태는 국가주의와 군사문화의 대대적인 강화를 낳고 있다. 우리도 선군정치를 했으면 하는 욕망의 분출이 아닌지 의심스러울 지경이다. 아무튼 분단체제야말로 국가주의, 그것도 악성 분단국가주의의 마를 줄 모르는 원천이며 분단체제의 해소나 적어도 완화 없이는 한국사회가 후진성과 야만성을 탈피할 수 없음을 실감케 한다.

 

분단체제 극복작업의 보편적 차원

따라서 분단체제의 극복은 국가주의 극복으로 가는 길에서도 하나의 선결과제다. 동시에 한반도에 한층 평화적이고 시민참여적인 복합국가가 건설된다 하더라도 그것은 어디까지나 국가개조 작업이지 국가가 시들어 없어지고 ‘인간에 대한 통치가 아닌 물건에 대한 관리’에 몰두하는 정부가 들어서는 상태는 아니다. 따라서 개조된 국가라도 국가, 즉 인민에 대한 합법적 폭력의 독점권을 갖는 통치기구가 존재하는 한 인민보다 국가를 우선시하는 국가주의가 근절될 수 없으리라는 것도 사실이다. 그렇기 때문에 한반도에서의 국가개조 작업이 결국은 국가간체제를 골간으로 하는 근대 세계체제에 순응하고 궁극적으로 투항하는 노선에 다름아니라는 비판도 가능하다. 하지만 그런 위험을 충분히 의식하면서 근대에 적응을 하되 근대의 극복을 위한 적응, 극복 노력과 결합된 적응이라는 ‘이중과제’를 수행하는 길은 없는 것인가?

오늘날 한반도의 긴박한 상황에서 이런 질문은 한가롭게 들릴 수도 있다. 그러나 한국에 사는 우리가 당장의 전쟁위협에 시달리고 분단체제 말기국면의 온갖 참상을 목도하고 있기 때문에 분단체제 극복을 선결과제로 삼을 수밖에 없다는 논리만으로는 ‘한반도중심주의’의 혐의를 온전히 벗기 어렵고 동아시아적, 나아가 지구적 연대에 호소하는 데도 한계가 있다. 우리 사정이 너무 바빠서 인류 차원의 발본적 문제는 일단 제쳐두고 한반도문제에 골몰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아니라, 근대 세계체제에 더 효과적으로 적응하면서 근대 자체의 극복에 결정적인 기여를 하는 우리의 당면과제야말로 모든 근대인에게 요구되는 ‘이중과제’의 한 전형임을 주장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우선 중국, 일본 같은 동아시아 이웃나라의 사례를 놓고 이중과제론의 적절성을 검증할 수 있어야 한다. 예컨대 ‘중국적 특성을 지닌 사회주의’ 노선은 비록 표현이 다르지만 현대 중국 나름의 ‘이중과제’ 노선일 수 있는데, 과연 그 근대적응이 적절하고 효과적인 것인지, 올바른 방향으로의 극복 노력과 제대로 결합된 것인지를 구체적 사안들을 놓고 점검해볼 일이다. 일본의 경우는 한때 파시즘을 통한 ‘근대의 초극’ 시도를 빼고는 극복보다 적응에 치중해온 셈인데, 일본사회의 ‘근대이후(=포스트모던)’에 대한 논의가 다시 빈번해진 현대에 와서도 여전히 ‘탈아론(脫亞論)’적 근대주의의 연장선상에서 서양 지식계의 시대구분법을 답습하고 있는 게 아닌지, 그러다보니 적응 자체에도 심각한 문제가 속출하고 있지 않은지, 역시 구체적으로 논의해볼 만한 것이다.

끝으로 이중과제론이 근대성의 본거지로 일컬어지는 유럽과 미국에도 해당되느냐는 질문을 생략할 수 없다. 물론 본고에서 다루기에는 너무나 거대한 문제지만, 예컨대 저들이 근대성의 본거지로 자리잡은 것 자체가 근대적응뿐 아니라 근대극복을 위해서도 누구 못지않게 풍부한 정신적・운동적 자산을 창출해왔기 때문이 아닌지를 살펴볼 일이다. 동시에 유럽보다 더욱 거침없이 근대화의 길을 달려왔고 드디어 근대 세계체제의 패권국이 된 미국의 경우, 근대극복의 노력이 상대적으로 빈한했기에 다음 단계 인류문명으로의 전환과정에서 그 축적된 물질적・정신적 자원에 걸맞은 역할을 해낼 수 있을지가 불투명한 상태는 아닌지에 대해서도 성찰이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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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동아시아평화포럼실행위원회가 내놓은 ‘취지문’이 국가 자체의 폐기를 겨냥하지 않고 “2050년 동아시아 공생사회가 가능하기 위하여 국가주의와 자본주의를 어떻게 극복할 수 있는가에 대한 문제제기로부터 지역현장(local)의 실험과 도전을 배우고 국가주의를 넘어설 수 있는 국가를 구상해보는 자리”(자료집 『2050년의 동아시아: 국가주의를 넘어서』, 동아시아포럼위원회 2010.11.5, 5면)를 제안한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국가의 소멸 이전이라도 국가주의가 완화된 국가를 구상하고 실현하는 작업이 중요하다는 입장은 본고의 논지와 일치하지만, 국가를 그대로 둔 채 “국가주의를 넘어설 수 있”다는 발상이라면 국가주의 문제에 대한 발본적인 성찰에는 못 미친다고 생각된다.

2) 물론 자본주의 세계체제의 변혁도 국가 폐기의 필요조건이지 충분조건은 아니다. 자본주의 이전에도 국가가 있었듯이 자본주의 이후에도 현존 국가와는 다른 형태의 국가 및 그에 따른 국가주의가 존재하지 말라는 법은 없다. 국가에 의한 통치가 아닌 민중의 자치가 보장되는 미래사회를 어떻게 건설할지가 최대의 시대적 과제 중 하나인데, 그 논의는 본고의 범위를 벗어난다.

3) 사까모또 요시까즈 「21세기 동아시아 공생사회의 조건」, 자료집 『2050년의 동아시아: 국가주의를 넘어서』(2010.11.5), 14~15면(원문은 38~39면).

4) 이 문제에 관한 고 리영희(李泳禧) 선생의 선구적 정리작업(「“북방한계선”은 합법적 군사분계선인가?—1999615일의 서해상 남북 해군 충돌 배경의 종합적 연구」, 『통일시론』 1999년 여름호)은 연평도사건 직후 그가 타계함으로써 새롭게 각광을 받았다.

5) 이를 나는 ‘후천성 분단인식결핍 증후군’이라고 꼬집기도 했다(졸저 『어디가 중도며 어째서 변혁인가』, 창비 2009, 19면 및 271~72면). ‘후천성 면역결핍 증후군’(AIDS: Acquired Immunity Deficiency Syndrome)에 빗대어 영어 약자를 만든다면 ADADS (Acquired Division-Awareness Deficiency Syndrome) 쯤이 될 법하다.

6) 졸고 「‘포용정책 2.0’을 향하여」, 『창작과비평』 2010년 봄호, 75면.

7) 이런 가능성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여러가지 논거는 강태호 엮음 『천안함을 묻는다』(창비 2010)에 풍부하게 제시되어 있다. 그중 326일의 사건발생으로부터 520일의 중간발표에 이르는 사이의 진상조사의 흐름을 세부적 시기별로 분석한 글로 정현곤 「천안함사건의 흐름과 반전」 참조.

8)2010년의 시련을 딛고 상식과 교양의 회복을」, 『창비주간논평』(weekly.changbi.com) 2010.12.30. 이 글의 영역본은 The Asia-Pacific Journal: Japan Focus2011110일자로 게시되었고(“Reflections on Korea in 2010: Trials and Prospects of Recovery of Common Sense in 2011,” http://japanfocus.org/-Paik-Nak_chung/3466), 일역본은 『세까이』 20113월호에 발표되었다.

9) 「北 도발 징후, 3개월 전부터 포착돼」, 『매일경제』 2010.12.2: “국가정보원을 비롯한 정보당국이 북한의 연평도 무력도발 3개월 전인 지난 8월부터 감청을 통해 서해 5도에 대한 북한의 도발 징후를 파악하고 있었던 것으로 1일 알려졌다. 원세훈 국가정보원장은 이날 국회 정보위 전체회의에 출석해 ‘지난 8월 감청을 통해 서해 5도에 대한 대규모 공격계획을 확인하지 않았느냐’는 일부 의원의 질문에 ‘그런 분석을 했다’고 답했다고 정보위 간사인 민주당 최재성 의원이 전했다.”

10) 도리어 중국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의 국제전문지 『환구시보(環球時報)』는 1223일의 사설을 통해 연평도사건 이후 남측의 거듭된 군사훈련을 비판하면서, “중국은 그동안 좋은 말로 한국을 타일러왔는데 한국이 멋대로 행동해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위협하면 중국은 상응하는 행동을 보여줘야 한다”고 주장했다(『뷰스앤뉴스』 2010.12.24, www.viewsnnews.com/article/view.jsp?seq=7047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