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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이용한 李龍漢
1969년 충북 제천 출생. 1995년 『실천문학』 신인상으로 등단. 시집 『정신은 아프다』 『안녕, 후두둑 씨』가 있음. binkond@hanmail.net
만달고비
언젠가 ‘낙타’로 시작해 ‘사막’으로 끝나는 시를 쓰고 싶었다
발목이 허락한다면,
한번쯤 고비를 만나 황홀한 황혼을 넘어갈 생각이었다
그러나 생각이 사막을 넘지는 못한다
칭기즈칸 보드까 한잔에
고비 담배 한대를 맛있게 피운다
사각형 사막 그림에 고딕으로 GOBI라고 쓴
담뱃갑을 열면,
바람이 모래를 켜는 소리가 들려온다
만달고비1는 고비의 만달라
비로소 사막이 열리고, 적막이 펼쳐지는 곳
밤이 깊어 마두금 소리도 들리지 않는데,
누군가 만달 만달 하면서
다 늦은 낙타의 고삐를 노란 달에 내다 건다
누군가 우물을 당기듯
서걱이는 귓가의 고비를 끌어올린다
호텔 만달라 204호 간이침대에 곱사연어처럼 누워서
드디어 사막이 시작되는군,이라고
나는 희박하게 중얼거린다
바람개비에 발동기를 연결해 겨우 백열등을 켜는 밤
한바탕 모래 一家가 지나간 아침-
결혼식 하객처럼 정성껏 나는 수염을 깎고
코를 바짝 땅에 붙인 채 오래오래 모래 냄새를 맡는다
사막의 한복판 초크토부2에 가면 점심을 먹어야지
식전부터 마음은 고비에 가 있는데,
이미 오래된 라마 문장처럼 늘어져버린 길
저만치 호텔 만달라를 싣고 흘러가버린 은하
만달고비는 고비의 만달라
길이 다한 낙타가 모래로 돌아가는 곳
초승달과 바람과 염소떼가 하염없이 나부끼는
모래의 국경을 나는 만달 만달 넘어가겠네.
호텔 만달라
믿을 수 없지만, 만달고비에 사는 낚시꾼이 고비를 설계했다는군 만달고비에서는 비밀리에 모래를 실어나르는 운전수들이 호텔 만달라에 투숙한다는 거야 만달라 204호 간이침대에 모래가 수북하대 인부들이 잠들면 모래들끼리 끌어안고 부딪치며 노래를 부를 정도지 이 모래의 기억은 고비에 고래가 살았던 오래된 시절로 거슬러올라가 아무래도 고래가 부드럽게 모래톱을 쓰다듬던 시절이 모래들은 그리운 게야 하지만 모든 모래의 미래가 사막이 되지는 않아 더더욱 만달고비에서는 낚시꾼의 허락이 없으면 고비의 모래 一家가 되기도 힘들어 그는 고비에 흩어진 모래알 같은 음악들을 3000투그릭씩에 팔아서 담배를 사오곤 하지 때때로 황야의 도서관에서 빌려온 공자와 카프카도 읽는다는군 그가 옮겨 적은 부조리한 도덕은 거기서 왔다는 거야 쓰러진 낙타로는 비누를 빚고, 낙타의 털로는 기타줄을 만들어 노래한다네 만달고비 만달고비 사막은 이미 시작되었네……로 시작하는 노래는 너무나 유명해서 낙타까지 따라 부를 정도야 그 낚시꾼이 어디에서 왔는지는 밝혀진 바가 없어 누군가는 그가 별똥별과 함께 떨어졌다고 하고, 누군가는 모래폭풍이 그를 데려왔다고 하지만, 정작 그는 아무런 말도 한 적이 없어 누군가는 그가 잡은 일생의 물고기가 모두 고비에 묻혀 있다고도 말하지 고비의 바람이 비릿한 건 그 때문이라고 분명한 건 그가 호텔 만달라의 지배인이라는 사실이고, 밤마다 가루약 같은 모래알 한움큼씩을 복용한다는 거야 그러나 괘념치는 말게 누구에게나 고비는 가득한 거니까 여전히 고비로 가는 운전수들은 호텔 만달라의 단골손님이고, 204호 간이침대에는 점점 더 모래가 수북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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