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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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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대녕 尹大寧

1962년 충남 예산 출생. 1990년 『문학사상』으로 등단. 소설집 『은어낚시통신』 『제비를 기르다』 『대설주의보』, 장편소설 『옛날 영화를 보러갔다』 『달의 지평선』 『미란』 등이 있음.

 

 

 

구제역들

 

 

1

 

해가 바뀌고 나서 혹한이 계속되면서 모스끄바보다 서울의 기온이 더 낮다고 방송에서 떠들어대던 날이 있었다. 그러다 구정(舊正)이 가까워지면서 예년의 기온을 회복해 낮에는 전국적으로 영상의 날씨를 유지하고 있었다. 우리가 예당저수지 근처에 있는 추모공원을 찾아가던 날도 추위는 어지간히 풀린 상태였다. 구정 다음날인 24일이었다. 그날이 입춘(立春)이라는 것을 우리는 서해안고속도로를 타고 내려가는 승용차 안에서 교통방송을 듣다 알게 되었다. 서울 기점 남쪽으로 내려가고 있었으나 차는 연속적으로 가다서다를 반복했다. 교통방송에서는 청취자를 대상으로 퀴즈를 내고 있었다.

……이 채소는 신채라고도 합니다. 12세기 중국 주나라에서는 향신료로 사용했고 조선시대에는 입춘에 이것으로 김치를 담가 임금님께 진상하였다고 합니다. 자 1번 부추, 2번 배추, 3번 갓, 4번 고추. 이 중에 정답을 아시는 분은 오십원의 유료 문자를 이용해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당첨된 두분께는 귀성길에 꼭 필요한 주유권을 보내드리겠습니다. 한가지 힌트를 드리면 이 채소는 여수에서 나는 것이 유명합니다. 자 다들 아시겠죠?

너는 아냐?

운전대를 잡고 있던 나는 조수석에 앉아 있는 병수를 돌아보며 물었다. 서울에서 출발할 때부터 마치 싸우기라도 한 듯 서로 입을 다물고 있는 시간이 더 길었던 것이다. 그래서 이냥저냥 말문을 트기 위해 던져본 말이었다.

뭘?

신채 말이야.

낡은 형광등이 켜질 때처럼 잠시 긴가민가한 표정으로 있다가 병수가 퉁명스럽게 내뱉었다.

그걸 지금 잡지사 기자인 나한테 묻고 있는 거야?

차 안이 지나치게 적요한 것 같아서 물어본 거다.

난 방송에서 시청자나 청취자를 상대로 내는 퀴즈를 듣고 있으면 대체로 모르모트나 원숭이가 된 기분이 들더라구. 신채(辛菜)는 매운 채소니까 갓, 여수 돌산도에서 나는 게 바닷바람을 쐬서 그런지 더 맵고 줄기가 야무지더군. 향일암 밑에 가면 식당 앞에 가판대를 내놓고 동동주 한사발에 갓김치 한줄기를 주면서 천원을 받더라구. 얘기하다 보니 먹고 싶네. 음식이라는 게 원래 그런 거지만.

24절기라는 것도 중국에서 수입한 거지?

주나라 때 농사에 참고하라고 만들었답디다. 달력도 그때 생겼고.

너는 잡다한 것을 너무 많이 알아,라고 속으로 빈정대며 나는 차창을 내리고 담배를 피워물었다. 전화가 연결된 첫번째 청취자는 신채를 부추라고 했다. 지랄하고 자빠졌네,라고 웅얼거리며 병수가 덧붙였다.

우리 가는 길에 잠깐 태안으로 빠져 점심으로 낙지박속탕이나 먹고 갈까? 추모공원 관리소도 오늘은 문을 닫았을 게 뻔하고, 뭐 급할 것도 없잖아. 재작년에 신두리 해안사구를 취재하러 갔다가 먹어봤는데, 맑고 매콤한 게 울혈진 속이 확 풀리더라구.

두번째 전화가 연결된 청취자는 신채를 고추라고 했다. 자신을 이십대 후반이라고 밝힌 그녀는 갓길에 차를 세워놓고 방송 진행자와 통화를 하고 있었다. 고추도 매운 채소니까 정답에 근접한 셈이었다.

근데 형, 방금 방송에서 입춘이라고 했어?

갑자기 병수가 표정을 우그러뜨리며 스마트폰을 꺼내 뒤적거렸다.

이런, 제기랄. 오늘 약속 있는데 까맣게 잊고 있었네. 그러게 이 여자는 날짜를 잡아서 얘기해야지, 지가 무슨 조선 아녀자라고 입춘에 사람을 만나자고 그래. 달력을 봐도 숫자 밑에 겨우 개미새끼만한 글자로 박혀 있는 게 절기잖아.

무슨 약속인데 그래?

됐어, 별로 얘기하고 싶지 않아. 근데 어떡하지? 오후 2시에 소백산 비로봉에서 만나기로 했는데. 이제 세시간밖에 안 남았네. 그러니까 추모공원인가 뭔가는 다음주에 가자고 했잖아. 지금 도로 막히는 것 좀 보라구.

이미 병수에게 말했으되 다음주는 내가 도저히 시간이 나지 않았다. 주말에 회사 직원연수회에 들어가야만 했다.

소백산이면 경북 영주에 있는 건가? 부석사, 소수서원…… 전에 희방사에서 누군가를 만나 희방사역에서 헤어진 적이 있는데, 그때 생각이 나는군. 여름비가 종일 주룩주룩 내리던 날이었는데.

스마트폰에서 눈을 떼며 병수가 물어왔다.

그게 누군데?

됐어, 얘기하고 싶지 않아. 네가 먼저 털어놓으면 모를까.

혹시 희방사역 근처에 여관이나 모텔 있어?

왜, 거기서 하루 기다리게 하려고? 글쎄, 기억이 안 나는데. 나는 당최 그런 곳엔 취미가 박약해서.

박약? 그게 그런 데 쓰는 말이야? 그나저나 무슨 방법이 없을까. 근 일년 만에 해후하는 건데.

처녀, 유부녀, 이혼녀, 어느 소속이냐? 대학 등산반 동기는 아닐 테고.

왜, 유부녀나 이혼녀면 안돼?

나는 쿡쿡거리고 웃었다.

조합에 따라 함수관계가 달라지잖아. 그만하자, 부모 묏자리 보러 가는 길에 이런 얘기는 짐짓 삼가는 게 우월하겠지.

우월? 기가 찬 표정으로 나를 흘겨보고 나서 병수는 외면하듯 차창 밖으로 시선을 돌려버렸다.

 

 

2

 

누나에게 전화가 걸려온 것은 구정을 일주일 앞두고서였다. 연락을 한 이유는 교통도 복잡한데 구정에 굳이 내려올 필요가 없다는 것이었다. 안 그래도 보름 전 아버지가 심혈관 확장 수술을 받아서 다녀온 터였다. 오년 동안 벌써 네번째 받는 수술이었다. 그때마다 누나는 환자의 보호자이자 총무가 되어 나와 동생에게 일정하게 수술비를 갹출했고 이런저런 갈무리도 도맡아 처리했다. 부모와 지근거리에 산다는 게 누나에게는 일종의 업이었다. 나와 병수는 처지가 다르면서도 한결같이 부모에게는 무관심했다. 병수는 어렸을 때부터 막내로서 받을 수 있고 또 요구할 수 있는 것을 뻔뻔히 누리며 살아왔음에도 어느 누구에게든 부채감 따위는 눈곱만큼도 갖고 있지 않았다. 성격이 곧 기득권이라는 것을 나는 병수를 통해 알게 되었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부모, 특히 아버지와는 불혹을 넘긴 지금까지도 늘 적대관계를 유지한 채 살아왔다. 돌이켜보면 하필 가계가 어려울 때마다 부모와 나는 내 장래 문제를 놓고 심각하게 대립하곤 했다. 결과적으로 부모의 뜻을 어겼으면서도 나는 좀더 나은 선택을 할 수 없었던 이유를 곧잘 부모와 연관시켰다. 훗날 부모에 대한 이런저런 책임을 느끼고 싶지 않아 그랬는지도 모른다. 내 속내를 알았던 것일까? 그동안 살아오면서 내가 몇번인가 낭떠러지 끝에 위험천만하게 흔들리며 서 있을 때도 부모는 으레 방관하거나 고의적으로 등을 보였다. 부모가 자식에게 품게 마련인 본능적인 애정이나 관심은 그럴수록 동생인 병수에게 쏠렸다. 어쩌다 병수가 손가락 하나만 다치고 들어와도 당신들 몸이 절단난 것처럼 소란법석을 떨었고, 끼니때도 병수의 표정부터 살피곤 했다. 남다른 간구 없이 무엇이든 쉽게 가져본 사람은 눈에 보이는 것이 있으면 곧 자기 것인 양 받아들인다. 그 반대의 경우는 자신이 그토록 애써 얻은 것임에도 불구하고 상대가 선뜻 요구해오면 마지못한 듯 힘없이 내주곤 한다. 제대로 받아보거나 떳떳이 가져본 적이 없기 때문이리라. 그래서 나는 어쩌다 양말만 짝짝이로 신어도 절름발이가 된 듯한 극도의 소심함과 불우함에 시달리며 살아야 했다. 뿐만 아니라 상시적인 불안과 예민함 때문에 전쟁을 치르듯 하루하루를 힘겹게 버티며 살아오고 있었다. 나이가 들어 좀더 심각해진 것은 급기야 삶이 병역의무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아침 출근길에 멀리 회사 건물만 눈에 들어와도 아찔하니 숨이 막히고 상사나 동료 직원의 얼굴을 대하는 것조차 점점 꺼려졌다.

나와 다섯살 터울의 누나는 그 모든 가족사의 내력을 한발 뒤로 물러서서 지켜본 장본인이자 관찰자였다. 누나는 어쩌면 나보다도 더 부모의 관심 밖에서 살아왔다고 할 수 있다. 굳이 말하자면 빈집을 지키고 있는 비루먹은 강아지, 마루 밑에 버려진 외짝 신발, 장독 옆에 세워놓은 이끼 낀 절구공이, 어느날 헛간에 처박아두고 더이상 쓰지 않는 풍로 같은 존재였다. 그래서 누나는 어쩔 수 없이 동물적인 육감에 매달려 스스로 살아가는 법을 터득한 사람이었다. 그런 사람은 오히려 그 누구에게도 원망 따위의 사치스런 감정을 품지 않는다. 삶이란 참으로 불가해하고 모순된 것이, 단 한번도 부모의 눈에 안겨본 적이 없는 사람이 결국 가까이에서 집사처럼 그들의 시중을 들고 있으니 말이다. 그러한 사정을 번연히 알기에 나나 동생이나 누나의 말은 거역하기가 힘들었다.

구정에 내려오지 않는 대신 병수와 예당저수지 근처에 있는 추모공원에 다녀오라고 누나는 말했다. 부모가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니, 일이 닥치고 나서 허둥거리지 말고 이제부터 준비를 해야 한다는 말이었다.

분양 사무소에는 내가 이미 전화를 걸어 이것저것 알아봤으니 너희는 터만 둘러보고 와. 나중에 화장을 해서 봉안을 하든 매장을 하든 그래도 거기가 고향과 가장 가까운 곳이더라.

굳이 가볼 필요가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으나 나는 누나에게 그러겠노라고 말했다. 숙명적으로 관계가 소원한 두 남동생을 엮어놓으려는 심사인지도 몰랐다. 누나는 보나마나 병수에게도 전화를 걸어 거절하기 힘든 투로 똑같이 말했을 것이다.

이 여자 이거, 진짜 소백산 꼭대기로 올라가고 있나 보네. 형, 여기서 소백산까지 얼마나 걸리지?

차는 이제 겨우 평택 부근을 지나고 있었다.

이런 날 소백산까지 얼마나 걸릴지는 삼척동자도 모를걸.

그러자 병수가 덜컥 짜증을 냈다.

거기서 삼척동자가 왜 나와! 간단하게 내비게이션 눌러보면 될 걸 가지고.

지금 네 손에 들고 있는 스마트폰은 어디다 쓰는 물건인데? 트위터에 올려보든지. 아니, 그러지 말고 그 여자한테 이실직고하는 게 어때? 괜히 나이든 여자 무리시키지 말고.

얘 아직 삼십대 중반의 순정한 쏠로야. 그러니까 이런 날 소백산 꼭대기로 혼자 눈보라를 뚫고 올라가고 있지.

혹시 산악인이냐?

형과 말을 섞고 있는 내가 오류지. 강남에서 꽤 잘나가는 입시학원 선생이야. 연봉도 물론 형보다 더 많고.

근데 왜 하필 소백산이냐?

고향이 풍기 어디라는데 입춘 때마다 비로봉에 올라가 산신한테 무릎꿇고 기도를 올린다나 어쩐다나.

그래서 만난 게 바로 너냐?

또 벌컥 화를 낼 줄 알았는데 병수는 의외로 차분하게 되받았다.

소백산 중턱에 아버지 산소가 있다고 했던가? 안되겠네, 사실대로 말하고 구정연휴 끝나면 서울에서 보자고 해야지.

글쎄, 그럼 그 순정한 여자가 다시 너를 만나려고 할까? 네가 비로봉에 나타나지 않으면 곧바로 포기하거나 체념하지 않겠어? 순정하다는 것은 곧 단순하다는 거고 경우에 따라서는 과격하다는 거야.

………

내 생각엔 말이다, 아무리 늦더라도 오늘 중엔 풍기로 가야 할 것 같은데.

그럼 데려다줄 거야?

아니, 난 내일 오후에 처갓집에 가봐야 해. 언제, 어디서, 어떻게, 왜 만났는지나 밝혀봐라. 그 여자 말이다.

들은 척도 않고 짐짓 딴청을 부리다 병수가 초조한 느낌이 들었는지 제풀에 슬슬 입을 열기 시작했다.

재작년 이맘때였지 아마? 신경정신과 치료를 받으러 병원에 갔다가 복도에서 자판기 커피를 뽑아먹다 말문이 트였어. 나중에 알고 보니 낙태하고 나서 후유증이 컸던 모양이야. 전에 사귀던 남자하고는 이미 헤어진 다음이었고. 아버지와 닮은 남자였다는데.

……너는 왜 신경정신과에 간 거냐? 취재하러?

내가 병원에 취재갈 일이 뭐가 있어. 어느날 울렁증이 시작되더니 수시로 계단에서 굴러떨어지는 환각으로 변하더라구. 의사는 공황장애라고 하더군. 이유는 나도 모르겠고.

네가 공황장애?라고 되물으려다 나는 잠자코 있었다. 이유를 모르겠다는 말은 아마도 거짓말일 터였다.

이후의 관계 진행에 대해 나는 물었다.

신두리 해안사구를 취재할 때 동행했지. 자작나무 펜션에서 함께 이틀을 묵었고. 근데 그때 나한테서 뭘 봤는지 지속적으로 만나고 싶은 생각은 별로 없다고 하더군. 이후로 드문드문 만나다 몇개월 뒤에 헤어졌는데, 어느날 미용실에서 잡지를 뒤적이다 내가 쓴 기사를 봤다며 전화를 걸어왔더군.

무슨 기사였는데?

맛집 기행 씨리즈였는데, 뭐 별거 아니었어. 강남에 속초어시장이라는 식당이 있거든. 곰치국, 생대구탕, 문어숙회, 가자미조림, 골뱅이 등속을 파는 집인데 생물(生物)만 써서 늘 사람이 들끓지.

그 여자도 그 집에 가본 적이 있었겠지.

그건 그런데, 내 기사를 읽다가 무심코 눈물이 쏟아지더라네. 그게 어느 대목인지는 모르겠지만 말이야. 물어봐도 곰처럼 얘기를 안하더라구. 그저 창망(滄茫)한 느낌이 몰려와 참을 수가 없었어요, 물고기가 들끓는 깊푸른 바다에 빠진 것처럼 말예요, 이런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리를 늘어놓더라구.

그래서?

저녁에 속초어시장에서 만나 가자미 물회와 삶은 골뱅이에 소주 마시고 노래방 가고 호텔에 가고 그리고 다음날 아침에 해장하고 헤어졌지 뭐. 헤어지면서 그 여자가 내년 입춘에 소백산 꼭대기에서 만나자고 하더군. 그런 식으로 일년에 두어번만 만나며 살자는 거야. 근데 그게 하필이면 오늘이라네. 갈비뼈가 두어개 빠져나간 사람처럼 눈에 힘은 없지만 꽤 괜찮은 여잔데. 만날 때마다 묘하게 마음을 뒤흔들기도 하고.

………

도로가 조금씩 뚫리고 있었다. 나는 병수의 심기를 건드릴 요량으로 문득 이렇게 말했다.

아까 낙지박속탕 먹고 싶다고 했지, 여전하냐?

병수에게는 얘기하지 않았지만 나도 오래전에 신두리 해안사구에 가본 적이 있었다. 결혼 전에 사귀던 어떤 여자와 함께였다. 나는 막연히 그녀와의 결혼을 염두에 두고 있었으나 그녀가 갑자기 돌아서는 바람에 미처 손을 내밀지도 못한 채 포기하고 말았다. 곧 알게 되었지만 그녀는 병수와 만나고 있었다. 그전에 병수와 두어번 술자리를 함께한 적이 있었는데, 나도 모르는 사이에 서로 눈빛이 오갔던 모양이었다.

내가 결혼하고 나서 아이를 낳던 해 두 사람 사이에서도 결혼 얘기가 잠깐 들려왔지만 무슨 일이 있었는지 흐지부지되면서 곧 헤어진 것 같았다. 그런 와중에도 병수는 내게 그 여자에 대한 그 어떤 사소한 언급조차 하지 않았다.

예당저수지로 가려면 당진IC에서 왼쪽으로, 태안으로 빠지려면 오른쪽으로 길을 틀어야 했다. 태안에서 예당저수지까지는 한시간 이상이 걸릴 거였다. 방향키는 이제 병수가 쥐고 있는 셈이었다. 늦게라도 소백산으로 가려면 예정대로 추모공원부터 들른 다음 어찌어찌 차편을 알아봐야 할 터였다.

스마트폰을 계속 들여다보던 병수가 신경질적인 투로 입을 열었다.

낙지박속탕 먹으러 갑시다! 사실대로 얘기하고 어쩔 거냐고 문자를 보냈더니 도무지 답장이 없네. 그놈의 소백산이 뭐라고.

낙지박속탕으로 유명한 태안 원북면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오후 1시가 지나 있었다. 나는 십년 전쯤 신두리 해안사구에 함께 와서 하루를 묵었던 여자의 얼굴을 잠깐 떠올리고 있었다. 병수는 말을 아낀 채 땀을 뻘뻘 흘리며 낙지박속탕을 아귀처럼 먹어치우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나는 가슴 저 밑바닥에 고여 있던 부아가 치밀어올라 돌연 이런 말을 내뱉고 말았다. 밖에서는 무슨 일인지 개가 사납게 짖어대고 있었다.

연숙이 요즘 어떻게 지내는지 알고 있냐?

뒤미처 병수의 몸이 움찔하더니 입으로 가져가던 숟가락이 그대로 허공에서 멈췄다. 녀석의 관자놀이를 타고 턱으로 흘러내린 땀이 테이블 위로 떨어졌다. 이윽고 병수가 눈을 홉뜨고 나를 쳐다보았다. 녀석의 눈은 엷게 충혈돼 있었다.

물수건으로 땀부터 좀 닦아라.

병수는 순순히 내가 시키는 대로 했다. 그러고 나서 방어적이면서도 도전적인 투로 대꾸해왔다.

그걸, 왜, 지금 여기서 묻고 있는 건데? 더군다나 그게 언제적 일인데.

그럴 만한 이유가 있어서 그런다. 너는 알 리 없지만 일종의 연상작용 때문이지.

미간을 잔뜩 찡그린 채 병수는 얼굴을 감추기 위해 앞접시에 시선을 떨어뜨렸다.

마침내 소명의 순간이 찾아왔는데, 그냥 모른 척하고 지나칠 거냐?

소명은 무슨…… 제멋대로 왔다가 또 제멋대로 가는 게 사람이잖아. 굳이 요약하자면 형이나 나나 결국 같은 처지였단 뜻이지.

나는 지금까지 그 여자를 탓하거나 애써 원망해본 적이 없다. 사람 마음이란 게 오리무중인데다 또한 예측불허여서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했으니까. 그런데 너는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거냐. 신두리에 함께 다녀간 여자들은 그럼 모조리 너를 배신했다는 거냐?

그게 무슨 뜻이유?

지금 네가 먹고 있는 맵고 뜨거운 낙지박속탕에 면상을 처박고 싶지 않으면 일단 자세부터 똑바로 해 인마. 다시 묻겠다, 연숙이는 요즘 어떻게 지내는지 알고 있냐? 요는 내 앞에서 천연덕스럽게 소백산 타령을 할 엄두가 나느냐 그런 말이다.

그제야 알아듣겠다는 듯 병수가 고개를 주억거리며 슬쩍 웃기까지 했다.

연락이 통 없어놔서 알 길이 막연하네요. 나랑 헤어질 때 잠시 형 때문에 괴롭다는 말은 합디다. 하지만 형이나 나나 그런 뻔한 이임사 따위의 말을 귀담아들어야 하는 거요? 재작년인가 어디서 들었는데, 일산인가 분당인가에서 까페를 개업했다고 합디다. 연락처 알아봐줘?

욕지거리가 튀어나오려는 걸 나는 간신히 참아내고 있었다. 때맞춰 테이블에 놓여 있던 병수의 스마트폰이 요란하게 벨소리를 냈다. 녀석은 그 틈을 타 기민한 동작으로 스마트폰을 집어들고 밖으로 나갔다. 공무원을 하던 여자가 까페는 왜 차린 걸까. 폐쇄공포증이 있어 지하나 조금만 어두운 곳에 들어가도 질색을 하던 사람인데.

식당 밖으로 나오자 햇빛 속에서 희끗희끗 진눈깨비가 흩날리고 있었다. 병수는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았고 마당에 묶어놓은 개가 나를 보더니 질겁한 듯 더욱 미친 듯이 짖어대고 있었다. 이런 때야말로 총이 필요한 건데,라고 무의미하게 중얼거리며 나는 화장실에 들어갔다 나왔고 그사이 병수는 태연히 운전석에 앉아 시동을 걸고 있었다. 조수석에 올라타며 나는 병수에게 쏘아붙였다.

왜, 이 차 끌고 소백산으로 가려고?

그만합시다. 나도 지금 마음이 싱숭생숭하니까. 해질 때까지는 비로봉에서 기다릴 테니 지금이라도 서둘러 오랍니다. 난 왜 이런 쑥맥 같은 여자들만 만나지?

말하는 꼬락서니하고는. 아직도 모르겠냐? 네놈이 다 그렇게 만들어놓은 거잖아.

그건 또 무슨 소리유?

네가 쓴 기사라는 걸 읽어보면 미처 육하원칙도 갖춰져 있지 않은데다, 무슨 결핍 여성들을 상대로 덫을 놓듯 갈겨쓰는 구애의 편지 쪼가리 같더라. 남의 시나 툭툭 베껴넣으면서. 그게 말 그대로 잡지(雜誌)길래 망정이지 제대로 된 지면이면 인쇄소로 가기나 하겠냐? 넌 딱 잡지 타입이야. 백발이 돼서도 부디 그 세계를 떠나지 말기 바란다.

입에 거품을 물다시피하고 속에 담아두었던 말을 토해냈으나 녀석은 느리게 날아오는 공을 피하듯 여유있게 비켜갔다. 조금이라도 불리하거나 말문이 막히게 되면 예외없이 딴청을 부리는 것이다.

아, 내가 베껴쓴 시 하나 기억난다! 아직 꽃술을 열어보지 못한 꽃들이 성교를 하느라 바쁜 들판에 누워, 아직 단 한번도 새끼를 낳아보지 않은 새들이 지나가는 것을 보며*

이렇듯 너스레를 떨며 녀석은 킬킬거리고 웃었다.

자, 오라이합니다. 일단 추모공원에 가보기는 해야겠지? 오늘 이 쏘나타, 구제역 방역 샤워를 몇번이나 하는지 모르겠네.

 

 

3

 

추모공원 관리사무소는 예상대로 문이 닫혀 있었다. 구정연휴가 끝나고 월요일에 문을 열 거라는 안내문이 현관 입구에 붙어 있었다. 우리는 사무소를 돌아나와 다랑논처럼 무덤들이 층층이 들어차 있는 공동묘지를 둘러보았다. 그새 응달이 진 곳을 피해 더듬더듬 길을 찾아 위로 올라가자 예당저수지가 큰 거울처럼 눈에 먼저 들어왔다. 오후 3시경인데도 저수지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매서웠다.

화장을 해서 봉안을 하는 쪽이 나을까, 매장이 나을까.

무슨 뜻이냐는 듯 흘끗 돌아보고 나서 병수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글쎄, 비용이야 뭐 납골묘에 봉안하는 게 덜 들겠지. 우선은 형식적이라도 당사자 의사부터 타진하는 게 순서 아닐까? 결정은 결국 누나가 하겠지만. 형 생각은 어떤데? 부모 돌아가시고 나면 여기 찾아오기는 할 거야?

병수가 제멋대로 떠드는 사이 나는 예당저수지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열살 무렵 부모와 함께 예당저수지로 소풍을 왔던 기억이 떠올랐던 것이다. 늦가을이었고 오늘처럼 날씨가 추웠었지? 그래서 집에서 싸온 음식을 먹지도 못한 채 식당에 들어가 다섯 식구가 어죽(魚粥)을 시켜먹었지. 아버지는 홍성과 가까운 광시 출신이었고 어머니는 온천으로 유명한 덕산 사람이었다. 그러므로 여기도 부모에게는 고향과 다름없는 곳이었다. 그날 아버지는 점심을 먹은 후 식당에 식구들을 맡겨놓은 채 병수를 데리고 저수지로 낚시를 하러 갔다. 그리고 저녁참에나 덜덜 떨며 빈 바구니를 들고 돌아왔다.

추모공원에서 나가 나는 잠깐이라도 예당저수지 관광단지에 들러보고 싶었다. 나와 두살 터울이므로 병수도 옛날에 소풍왔던 날을 기억하고 있을 터였다. 예당저수지로 가는 길은 도로를 제외하고는 어디를 둘러봐도 온통 사과밭이었다. 도로와 인접한 과수원에서는 가을에 수확한 사과를 내다 팔고 있었다. 소풍을 왔던 날, 식당에서 기다리기가 지루해 남은 식구들은 산책을 나갔고 과수원에서 사과 따는 일을 도우며 시간을 보냈다. 식당으로 돌아갈 때 주인은 큼지막한 사과를 한보따리나 싸주었다. 왠지 확인하고 싶은 생각이 들어 나는 병수에게 물었다.

너 여덟살 때 여기로 가족이 소풍왔던 기억 나냐?

놀랍게도 병수는 그날을 전혀 기억하지 못했다. 예당저수지 관광단지에 도착했지만 병수는 물바람이 차다며 담배나 한대 피우고 어서 돌아가자고 나를 재촉했다. 진득한 자판기 커피를 뽑아 마시며 저수지 앞에서 머문 시간은 고작 십분 정도였다.

저수지를 돌아나오는 길에 나는 삼십년 전 가족이 함께 사과를 땄던 삼거리 과수원 앞에 이르러 차를 세우라고 병수에게 다급히 말했다. 뭔가 자꾸 내 발목을 잡아당기고 있었다. 병수가 히뜩 나를 돌아보더니 퉁명스럽게 말했다.

사과는 사서 뭐 하게. 마트에서 파는 물건이 흔히 싸고 질도 좋더라.

나는 사과를 사려는 것이 아니었다. 다만 그곳에 잠시 내려 머물고 싶을 따름이었다. 가판대 앞에는 몇몇 사람들이 몰려 서 있었다. 귀성길에 고향에서 나는 사과를 사가려는 사람들이었다. 나는 과수원 주인으로 보이는 오십대 남자에게 얼른 눈길이 갔다. 어쩐지 낯이 익은 느낌이 들었던 것이다. 나는 기웃기웃 사람들 틈새를 비집고 들어가 그에게 말을 건넸다.

여기 과수원 주인 되십니까?

그건 왜유?

한참 나를 눈여겨보다 그가 느린 말투로 반문했다.

제 고향이 이 근천데, 왠지 얼굴이 눈에 익은 것 같아서요.

농담인지 진담인지 모를 투로 그는 무표정하게 대꾸했다.

지두 고향이 여기니께 암만해도 감자나 고구마처럼 서로 닮았겠쥬 뭐.

아까부터 나와 병수를 수배자처럼 노려보고 있던 말끔한 차림의 노신사가 그때 옆에서 끼어들었다.

자네들 혹시 광시 면장댁 손자들 아닌가?

나는 깜짝 놀라 노신사를 돌아보았다. 병수도 그때만큼은 놀란 기색이 역력했다.

그걸 어떻게 아셨죠?

우리 가족이 고향을 떠난 것은 내가 열두살 때였다. 이윽고 노신사의 얼굴에 야릇한 미소가 번졌다.

내 선친께서 면서기셨네. 내 비록 자네 부친과는 일면식도 없으나 면장님 핏줄이라는 건 금방 알아봤네. 허허, 반갑구먼.

노신사는 서울 방배동에 살고 있었고 명절을 맞아 고향에 내려왔다 귀경하는 길이었다. 내친김에 사과를 한 박스 사려는데, 무슨 뜻인지 병수가 뒤에서 옷소매를 잡아끌었다.

형, 그만 갑시다.

나는 끌려가듯 허둥지둥 노신사에게 눈인사를 건네고 돌아섰다. 지금은 어떤지 몰라도 옛날엔 광시 부근이 대부분 집성촌이었으니 좀더 얘기를 나누다 보면 과수원 주인이든 노신사든 친척뻘이 될지도 몰랐다. 차에 올라타 시동을 걸며 병수가 중얼거렸다.

반갑긴 뭐가 반가워. 난 서울에서도 동향 사람을 만나면 본능적으로 피하게 되더라. 왠지 지겹고 끔찍한 느낌이 들거든. 형은 안 그래?

나는 대답 대신 병수에게 물었다.

이제부터 어떡할 거냐.

뭘?

소백산 쪽 동향을 묻는 거야.

나도 모르겠어. 아직도 비로봉에서 미련스럽게 버티고 있나 봐. 빌어먹을, 도대체 답이 안 나오는 여자라니까. 지금 차편을 알아봐서 달려간다 해도 풍기까지 해지기 전에 도착하겠어? 벌써 4시가 다 됐잖아. 이럴 바에야 광시 한우마을에 들러 등심이나 끊어먹고 갈까? 여기서 삼십분이면 가거든.

엊그제 뉴스를 보니 홍성도 구제역에 뚫렸다더라. 광시 옆이 바로 홍성이잖아.

코앞이니 일단 가보지 뭐. 그다음 일은 거기 가서 생각하고.

근래 와본 듯 병수는 익숙하게 광시 방향으로 차를 몰았다.

구제역에 대해 병수 너는 어떻게 생각하냐?

질문의 요점이 뭔데?

살처분 매몰지가 벌써 4200개 이상으로 늘어났다더라. 310만마리 이상의 가축이 이미 매몰됐고. 게다가 우물에서 피가 나오는 동네도 있다더라. 살처분 담당 공무원 중엔 정신이상을 호소하는 사람들도 있고. 이거 확실한 재앙 아니냐?

재앙이지.

………

난 말이야, 기독교도들이 하는 말을 믿어서가 아니라 지구가 머지않은 미래에 망할 거라고 생각해. 싸스, 에이아이, 신종플루, 광우병, 구제역 같은 건 징후에 불과하단 말이지. 뭔가 곧 빅뱅이 일어날 것 같은 예감이 들어. 백두산 분화구만 터져도 한반도는 온통 화산재로 뒤덮이겠지만. 나 사실은 얼마 전부터 제주도에 집 알아보고 있어. 그래도 거기가 한반도에서는 가장 안전하지 않겠어?

나는 그만 맥이 빠져 웃어버리고 말았다. 광시로 들어가는 길에 우리는 구제역 방역을 기다리는 차량에 밀려 한참을 서 있었고 이윽고 한우마을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5시가 가까워져 있었다. 병수는 이제 소백산은 포기한 눈치였다. 문을 열어놓은 식당을 겨우겨우 찾아 들어가 자리에 앉은 다음, 피가 뚝뚝 떨어지는 등심을 불판에 올려놓으며 병수가 주절거렸다.

마블링이 제법 예쁘게 나왔군. 이제 한우를 먹을 수 있는 날도 얼마 남지 않은 것 같은데 이참에 실컷 먹어두자구.

……그런 다음엔?

온양으로 빠져서 온천에 몸 담그고 밤늦게 올라가지 뭐. 어차피 길 막히는 건 각오해야 할 테고. 시간 되면 아산 공세리 성당에 들러 사진이나 몇장 찍어둘까 했는데, 오늘은 이미 늦었어.

나는 잠자코 있다 무의미하게 맞장구를 쳤다.

이럴 줄 알았으면 아까 태안에 갔을 때 대하(大蝦)까지 먹고 올 걸 그랬나? 요즘 한창 대하 철이잖아.

그러자 병수가 빈정거렸다.

거기 가서 대하 먹기 힘들어. 온통 흰다리새우지. 남미에서 수입한 가짜 대하 말이야. 진짜는 다 누구 입으로 들어가는지 모르겠어. 굳이 분류하자면 나도 뭐 흰다리새우과에 속하겠지만.

나는 그저 흐흐거리고 웃었다.

내친김에 소주도 한잔할까? 동물성 단백질과 소주는 어쩔 수 없이 불가분의 관계잖아.

먹어라. 운전은 내가 할 테니.

병수는 소주 두병을 혼자 다 마셨고 그러는 사이에 밖엔 어둠이 내려 있었다. 그리고 식당에서 나올 무렵 난데없이 누나한테서 전화가 걸려왔다. 통화를 하기도 전에 나는 언뜻 불길한 예감에 사로잡혔다. 나는 휴대폰을 천천히 귀로 가져가 대뜸 물었다.

왜?

누나는 잠시 침묵하다 너희 지금 어디니?라고 물어왔다. 예당저수지 근처라고 나는 슬쩍 돌려 말했다.

아직까지 거기 있는 거야?

저녁을 먹고 있다고 나는 말했다.

왜, 무슨 일 있어?

아까 낮에 엄마가 옆구리가 아프다고 해서 급히 응급실로 모시고 왔는데 늑막염이 다시 도진 것 같대. 빨리 수술을 해야 한다는데 명절이라 새파란 인턴들 몇명밖에 없어.

아버지는?

집에 혼자 계시지 뭐.

응급처치만 하면서 월요일까지 기다려야 할 것 같다고 누나는 말했다.

나는 하나마나한 소리를 덧붙였다.

우리도 가봐야 하나?

와서 뭐하게. 조심해서 올라가고 아버지 수술 날짜 잡히면 그때나 내려와. 그리고 추모공원은 어떻드니?

관리사무소는 문을 닫았고 공원묘지만 둘러봤는데 풍광이 꽤 괜찮데요. 주위가 사과밭인데다 아래로 예당저수지도 내려다보이고.

나는 삼십년 전 가족이 예당저수지로 소풍왔던 얘기를 하며, 그때 사과를 땄던 과수원에 잠깐 들렀다고 누나에게 말했다. 누나는 불이 꺼진 듯 한참을 침묵했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걸까? 그리고 더이상 아무 말 없이 조용히 전화를 끊었다.

 

 

4

 

온양으로 향하는 도로는 침수된 듯 자주 막혔다. 서해안고속도로에서 빠져나와 온양, 천안을 거쳐 서울로 올라가려는 차량들이 서로 뒤엉켜 있었던 것이다. 지루하게 가다서다를 반복하는 동안 병수가 형, 하면서 은밀한 목소리로 나를 불렀다. 병수가 말을 잇기 전에 내 입에서 먼저 이런 말이 툭 튀어나왔다.

오늘 소백산까지 가기는 다 틀린 것 같다. 더이상 무슨 연락 없냐? 비로봉에서는 이미 내려왔을 테고. 기억을 더듬어보니 희방사역 앞에 작은 여관이 하나 있었던 것 같기는 하다. 여관이라기보다는 여인숙에 가깝지만.

그게 아니라 형, 연숙이 전화번호 알아볼까?

……그건 왜?

이놈이 또 무슨 수작을 부리려는 걸까.

내 입으로 이런 말 하기는 좀 그렇지만, 형을 못 잊어하는 눈치더라구.

너와 헤어질 당시에 말이냐? 그렇다면 십년 전이 되겠구나. 까페를 차렸다는 얘기는 언제 어디서 주워들은 거냐?

한 이삼년 됐나? 이혼하고 나서 받은 위자료로 분당에 있는 서현역 근처 어딘가에 문을 열었다던데. 상호는 모르겠고.

누구랑 살았었는데?

사업을 하던 자라던데, 뭐 사업이란 게 따로 있나? 먹고사는 일이 다 사업이지.

그럼 그 잘난 스마트폰으로 한번 알아나 봐라. 오랜만에 목소리나 들어보게. 어차피 지금 할 일도 없잖아. 근데 고기를 너무 먹었나? 배가 더부룩한 게 자꾸 입으로 올라오려고 하네.

나는 속이 안 좋아 자주 차창을 내려 환기를 시켰다. 그때마다 병수는 기다렸다는 듯이 담배를 피워물었다.

상호만 알아내면 전화번호는 물론이고 위치 추적까지 가능하니까 조금만 기다려봐. 아, 전에 한번 들었는데 기억이 안 나네. 홀인원이나 하이마트는 아닌 것 같고.

하이마트라니? 그건 전자제품 할인매장 아니냐?

서울에서 춘천으로 가는 국도변에 있는 모텔 이름입니다. 왜 텔레비전 광고를 보면 남녀가 손잡고 하이마트로 가자며 노래 부르는 장면이 나오잖아. 정말 기막히지 않아? 인간이 어디까지 진화할지 나는 당최 모르겠어.

말세로고. 구제역처럼 작금은 어디든 성한 곳이 없구나.

병수 녀석은 킬킬거리며 문자, 전화, 트위터까지 동원해 연숙의 위치를 맹렬하게 추적하기 시작했다. 아닌게아니라 온천에 가서 몸부터 푹 담그고 싶었다. 손이고 얼굴이고 할 것 없이 온몸에서 소독약 냄새가 났다. 게다가 아랫배가 점점 더 아파왔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예당저수지로 갈라지는 삼거리 과수원에서 만났던 주인과 노신사의 얼굴이 눈앞에 자꾸 어른거렸다. 불과 몇시간이 지나지 않았는데도 마치 꿈에서 만난 사람들 같았다. 그때 병수 녀석이 왜 내 옷소매를 잡아끌며 서둘러 떠나자고 했는지 이제야 어렴풋이 알 것 같았다. 우리는 언제부터 자신과 닮은 족속을 만나게 되면 덥석 반가워하는 게 아니라 서로 끔찍한 느낌에 사로잡히게 된 걸까? 그리고 어느덧 발굽이 갈라지고 무릎이 썩어들어가기 시작하고 여기저기서 핏물이 배어나오고 전체가 하나로 병들어가는 지경에 이른 것일까? 이런저런 상념에 사로잡혀 속으로 진저리를 치고 있을 때 병수가 신음처럼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이 여자 이거, 어디가 잘못된 거 아냐?

나는 천천히 병수를 돌아보았다. 누가 또 오류 상태에 빠진 걸까.

풍기에서 지금 차 몰고 올라오고 있다네. 이따가 천안역 앞에서 만나자네.

……그게 잘못된 거냐?

나는 애써 목소리를 낮춰 말했다.

좀 섬뜩한 느낌이 들지 않아? 혹시 정신적으로 무슨 문제가 있는 거 아니냐구.

그걸 내가 알겠냐? 정작 그렇다면 아직까지 눈치를 못 챈 네가 오류지.

이거 왠지 피하고 싶어지네. 비로봉에 있다고 할 때는 대체로 감동적이었는데.

지랄하고 자빠졌네. 소백산으로 간다 어쩐다 할 때는 언제고. 너란 놈은 평소 잠자리에 들기 전에 자신에 대한 반성이나 성찰 혹은 질문 따위가 조금도 없는 거냐? 그러니 상대에 대한 관심이나 상상력이 생길 여지가 없지.

병수는 내 말투에 배인 분노는 아랑곳없이 비아냥거리듯 받아넘겼다.

이십대까지는 가끔 그런 형이상학적인 증상이 감지됐었지. 그런데 어느날 눈을 떠보니 감쪽같이 사라져버렸더군. 하지만 그게 모두 내 탓이라고 할 수는 없잖아. 안 그래?

진눈깨비가 쉼없이 차창에 부딪혀오는데도, 달은 하늘에 샛노랗게 떠 있었다. 훔쳐보듯 달을 올려다보며 나는 왠지 끔찍한 느낌에 시달리고 있었다.

나한테 너무 그러지 마슈. 형도 알고 보면 나와 별로 다를 게 없잖수. 그래도 형은 결혼해서 아이까지 뒀으니 일단 로또에 당첨된 거나 마찬가지 아니유. 그게 그렇게 만만한 게 아닙디다.

그건 또 무슨 소리야?

세속적인 집착과 속물적인 근성이 없으면 가정을 꾸리기 힘들더라 그런 말이외다.

그래서 네가 오히려 순수하다고 주장하는 거냐?

순수는 무슨. 아직 철이 덜 든 거겠지. 아니면 근원적인 허무감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거나. 오죽하면 공황장애 판정을 받았겠수. 나도 존재감 때문에 꽤나 괴로워하며 산다 그런 뜻이유.

녀석이 엄살을 부리고 있다는 것을 나는 잘 알고 있었다.

……그건 그렇고, 천안역으로 갈 거냐?

글쎄 모르겠네요, 일단 온양에 도착해서 종일 뒤집어쓴 구제역 방역제부터 씻어내면서 생각해볼랍니다. 가다가 세차장 보이면 이 차도 한번 씻어줘야 할걸. 근데 이 자식들은 왜 아직도 연락이 없어. 그깟 뒷골목에 있는 까페 하나를 못 찾아?

 

 

5

 

연숙이와 통화가 된 것은 온양온천에 도착해서였다. 놀라고 당황할 줄 알았는데, 그녀는 오히려 호들갑을 떨며 반가워하는 척했다.

내가 지금 나이가 몇인데 여고생처럼 놀라 자빠져. 혹시 그러길 바란 거야? 하여간 남자들이란……

그동안 겪을 만큼 겪고 살아왔음을 거듭 강조하며 그녀는 서울로 올라가는 길에 나더러 분당에 들르라고 속삭였다. 몇시가 되든 기다리겠다며 30년간 오크통에서 숙성시킨 발렌타인을 써비스로 제공하겠다는 말도 덧붙였다.

그럼 안주는?

문득 목이 멘 듯 한동안 숨을 사리고 있던 그녀가 이윽고 후후거리며 웃었다.

경수씨 그동안 많이 어른 됐구나. 세상물정을 모르고서는 그런 말 쉽게 안 나오는데.

발렌타인 30년산 맞지?

……질문은 그만하고 서둘러 오기나 해. 안줏값은 알아서 챙겨주는 걸로 알고 있을게.

병수와 동행해도 되겠냐고 물으려다 나는 차마 그 말까지는 하지 않았다. 나는 통화를 마치고 온천탕 매표구 앞에 서 있는 병수에게 다가갔다.

어쩔 거유?

모르겠다. 올라가면서 천천히 생각하지 뭐, 어차피 길도 막힐 텐데. 근데 너는 어쩔 거냐? 풍기 말이다.

이제 겨우 김천 부근을 지나고 있답니다. 만나든 안 만나든 일단 씻기부터 합시다. 약품 냄새 때문에 자꾸 구역질이 올라와 참을 수가 없잖아. 이러다 광시에서 먹은 한우 다 게워내겠네.

그럼 너 먼저 욕탕에 들어가 있어라. 나는 전화 한통 더 해야겠다.

혹시 나 여기다 버리고 혼자 뺑소니치는 거 아뉴?

병수가 욕탕으로 들어가는 것을 지켜보고 나서 나는 밖으로 나와 담배를 피워물었다. 그리고 누나에게 전화를 걸었다. 딱히 할 말이 있는 건 아니었다. 다만 누나와 막연히 통화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하지만 누나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오분 간격으로 세번을 더 걸어보았으나 그녀는 끝내 침묵했다.

나는 담배를 한대 더 피운 다음 짐짓 사위를 두리번거리다, 이윽고 살처분되는 심정으로 욕탕 입구로 들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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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수경의 시 「거짓말의 기록」에 나오는 싯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