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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평

 

소설 몽양 여운형

강준식 장편소설 『혈농어수』 상·중·하, 아름다운책 2006

 

 

이한호 李漢鎬

드라마작가 lhanho@chol.com

 

 

135-308

“그는 이 추억과 증언이 결정적인 승리의 기록일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이것들은 기껏해야 좌절과 실패로 점철된, 그리고 분열과 번복과 파기와 술수와 테러로 더렵혀진 기억들이었다.”(하권 686면)

강준식(姜竣植)의 장편소설 『혈농어수(血濃於水)』는 몽양(夢陽) 여운형(呂運亨)을 해방공간의 중심에 놓고 소설로 형상화한 해방전후사다. 작가는 그 해방공간을 추악한 정치현실로 재현해내고 있다. 미군과 소련군이 남북을 갈라놓은 냉엄한 국제정세 속에서도 좌우의 정치지도자들은 정권을 차지하기 위해 첨예한 대립양상을 보인다. 그야말로 분열과 술수와 테러가 난무했고, 이러한 혼돈 속에서 몽양 여운형의 좌우합작 노력은 좌절되고 만다.

역사에 “만약…”이라는 가정은 의미가 없다고 하지만, 해방공간만큼 “만약…”이 절실하고 아쉬운 시기도 다시 없다. 만약 일본이 패망하기 전에 독립운동이 결실을 맺었다면, 만약 좌우합작이 성사되었더라면, 만약 남북한이 단일정부를 이루었다면……

이런 수많은 만약에는, 수많은 가능성이 내포되어 있다. 이런 가정대로 해방정국이 흘러갔다면 천만 이산가족의 뼈저린 눈물도 없었을 것이고, 백만 동포의 허망한 죽음도 없었으리라. 이렇듯 해방공간은 우리에게 열려 있던 가능성의 시기였으나, 또한 우리의 손으로 그 가능성을 닫아 걸어버린 아쉬움의 시기였다. 그리고 그 중심에 몽양 여운형이 있었다.

이 작품은 엔터테인먼트의 요건을 두루 갖추고 있다. 비극적인 정치현실을 다루면서도 사실성과 재미, 감정의 디테일을 갖추고 있어 읽는이를 빠져들게 하고, 놀라게 하고, 또 설레게 한다.

실존인물을 등장시킨 소설에서 사실성을 부여하자면 무엇보다 치밀한 자료수집이 전제되어야 하는데, 작가는 여기에서 놀라운 성취를 이루었다. 그 시대의 골목 풍경이 눈앞에 그려지고, 고단한 민중의 삶이 손에 잡히는 듯하고, 여운형 이승만 송진우 박헌영 김일성 등 정치지도자들의 입장과 고뇌가 생생하게 묘사되어 있다. 작가는 당시 민중의 생활상을 세세하게 파악하고 있으며, 등장인물의 사상, 생김새, 어투는 물론이고, 작은 습관 하나까지도 놓치지 않고 포착해낸다. 작가가 얼마나 오랫동안 이 작품에 심혈을 기울였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원래 이 책은 지난 1993년 출간된 『적과 동지』(한길사)의 개정판이다. 자료수집에 7년, 집필에 4년이 걸려 개작했다는 작가의 말을 실감할 수 있다.

이야기를 흥미롭게 이끌어가는 추진력은 내재된 갈등들인데, 이 작품에서는 여운형을 축으로 여러 세력간의 치열한 대립이 주된 구도를 이룬다. 패망을 예감한 일본 정치인들의 음모, 박헌영이 규합한 극좌세력의 도전, 이승만이 이끄는 극우세력의 정치공세까지 숨 돌릴 틈 없는 갈등국면이 전개되면서 긴장감을 유지한다.

이 작품은 ‘몽양 여운형 일대기’라는 부제를 달고 있다. 딱딱하고 건조한 정치이야기거나 여운형을 미화한 위인전 같은 인상을 주지만, 책장을 펼치면 곧 그같은 선입견이 무색해지고, 디테일한 묘사로 실제적인 감각을 다루는 작품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구체적인 사건에 얽히는 인물들의 입장 차이와 심리가 감각적으로 그려져 있다. 문학을 문학으로 만드는 것은 작품의 주제나 문제의식 이전에 이같은 디테일한 묘사에 있다.

이 작품을 읽는 또 하나의 재미는 인간 여운형을 느끼는 데 있다. 여운형은 중국과 러시아, 일본을 종횡무진 누비던 큰 정치지도자이기 전에 한명의 인간이었다. 좌우익의 테러에 두려움을 느끼고, 이국의 정경 속에서 한 여성과 사랑에 빠지기도 한다. 당시 국제도시였던 상해에서 의열단 청년 여운형과 블라지보스또끄 출신 혼혈 처녀가 보여주는 짧고 격렬했던 사랑이야기는 마치 휘황한 불빛 아래 상해의 거리를 걷는 듯한 상상의 즐거움을 선사하기도 한다.

앞에서 말했듯이 이 작품은 해방공간을 비판적인 시각에서 그리고 있다. 중도파 여운형의 좌우합작을 반대하는 좌우익 정치지도자들은 권력을 다투고 자리싸움에 몰두하는 인물들로 묘사된다. 고려나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한 역사소설을 놓고도 실존인물의 후손들은 조상을 욕보였다고 항의하는 일이 다반사다. 이 책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불과 한두세대 전에 살았던 사람들이고, 따라서 더욱 민감할 수밖에 없다. 작가는 7년간이나 자료조사를 했다고 하고, 이 작품에 그려진 생소한 역사적 사건과 정치지도자들의 숨겨진 일화들은 그러한 노력의 결실로 보인다. 하지만 이승만이 경찰 수뇌들 앞에서 여운형의 제거를 암시하는 장면이라든지, 박헌영이 여운형에 대한 테러를 수차례 지시하는 장면들은 논란의 여지가 있다. 또한 박헌영을 비롯한 남로당세력은 하나같이 비도덕적이고 잔인하며 파괴적인 인물로 묘사되는데, 작가의 역사인식 때문이라고 인정하기에는 석연치 않은 점이 있다. 중립성과 객관성에 대한 의문이 제기될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작가는 이 책에서 하나의 의제를 제시하고 있다. 좌우합작을 통한 독립국가 건설에 실패한 이유는 극좌세력과 극우세력이 방법의 문제에 집착해서 상대를 파괴하려 들었기 때문이고, 이러한 파괴와 분열을 극복하려면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여운형의 ‘혈농어수’ 정신이 전제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해방공간에서 불붙은 대립과 분열은 21세기에 접어든 지금까지도 현재진행형이다. 여전히 남북은 분단되어 있고, 좌와 우는 진보와 보수로 이름을 바꿔 이념논쟁을 벌이고 있다. 해방공간에서 그랬듯이 현시대의 정치지도자들도 이해관계에 따라 방법의 문제에 집착해서 쟁투를 벌인다. 여운형의 혈농어수 정신이 절실해진다.

여운형은 죽어서 말한다. “왜들 우느냐? 무엇이 서러우냐? 어서 행진을 계속해 용감하게 나아가라. 나는 죽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