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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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현정 林炫廷

1977년 서울 출생. 2001년『현대시』로 등단. missleem@dreamwiz.com

 

 

 

검은 쿠션

 

 

버려진 유모차를 주워온다.

곰팡이 슨 씨트를 벗겨내어

끓는 물에 펄펄 삶는다.

 

아파트 놀이터에서 여자가 알은체를 한다.

“우리 거랑 같네. 그저께 버린 건데.”

여자의 아이는 그네를 타고 있다.

 

저 애는 알까.

제 그림자가 몰래 키우던 검은 포자들을

오래된 자리에 켜켜이 쌓여 있던 시간의 허물들을.

그 아늑한 검은 쿠션들을.

 

유모차에 탄 아이가 옹알이를 한다.

 

나는 환한 햇빛 속으로

다급하게 유모차를 떠민다.

 

 

 

가슴을 바꾸다

 

 

한복저고리를 늘리러 간 길

젖이 불어서 안 잠긴다는 말에

점원이 웃는다.

 

요즘 사람들 젖이란 말 안 써요.

 

뽀얀 젖비린내를 빠는

아기의 조그만 입술과

한 세상이 잠든

고요한 한낮과

아랫목 같은 더운 포옹이

그 말랑말랑한 말 속에 담겨 있는데

 

촌스럽다며

줄자로 재어준 가슴이라는 말

브래지어 안에 꽁꽁 숨은 그 말

한바탕 빨리고 나서 쪽 쭈그러든 젖통을

주워담은 적이 없는 그 말

 

그 말로 바꿔달란다.

 

저고리를 늘리러 갔다

젖 대신 가슴으로 바꿔 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