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기구독 회원 전용 콘텐츠
『창작과비평』을 정기구독하시면 모든 글의 전문을 읽으실 수 있습니다.
구독 중이신 회원은 로그인 후 이용 가능합니다.
대화
일본 원전사고에서 무엇을 배울 것인가
윤순진 尹順眞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 기후변화・환경정책. 에너지전환 전 대표. 저서로 『기후붕괴의 시대』(공저) 『불확실성에 대응하는 위험 거버넌스』(공저) 등이 있음.
장정욱 張貞旭
일본 마쓰야마대 교수, 원전정책・환경경제. 주요 논문으로 「동아시아 원전 확산의 추이와 과제」 「사용후 핵연료 재처리, 왜 문제인가」 등이 있음.
이필렬 李必烈
한국방송통신대 교수, 과학사・에너지정책. 저서로 『다시 태양의 시대로』 『에너지 대안을 찾아서』 『석유시대 언제까지 갈 것인가』 『과학, 우리시대의 교양』 등이 있음.
이필렬 (사회) 후꾸시마(福島) 원자력발전소 사고는 일어난 지 거의 두달이 되었는데도 아직 진행중입니다. 일본사회의 충격이 대단히 큰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세계 여러 나라의 원자력정책에도 상당한 영향을 주는 것 같습니다. 한국에서는 정책에 대한 검토 움직임은 없지만, 원자력발전에 대한 시민들의 우려는 조금씩 늘어가는 것이 보입니다. 오늘은 일본의 현상황을 살펴보고, 한국 원전의 안전성과 에너지정책, 세계의 반응 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으면 합니다.
제 소개를 드리면, 방송통신대에서 일하고 있고 에너지 문제에 대해서는 1994년경부터 거의 20년간 공부하고 발언해왔습니다. 처음에는 원자력에 대해 균형잡힌 시각을 전달하려는 생각에서 글을 좀 쓰다가 에너지전환에 대한 공부로 넘어왔고, 지금은 에너지를 아주 적게 쓰는 파씨브하우스(Passivhaus)를 짓는 일을 통해서 에너지전환을 실천해보자는 데까지 왔습니다.
윤순진 저는 서울대 환경대학원에 재직중이고 전공은 환경정책・에너지정책, 관심사는 기후변화입니다. 주로 기후변화의 정치경제학, 환경정의와 기후정의, 에너지대안, 원자력과 방사성폐기물 처리 등에 대해 이야기해왔습니다. 특히 에너지나 기후변화의 문제는 정의로운 생태적 전환의 관점에서 보아야 한다고 생각하고, 그래서 생태민주주의와 이런 문제들을 연결해서 다루고 있어요. 이필렬 선생님에 이어 시민단체 ‘에너지전환’의 대표를 맡기도 했고요.
장정욱 저는 일본 마쓰야마(松山)대학 경제학부에서 환경·에너지경제학, 지방재정학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대학원에서 원자력정책론 강의를 담당하고 있고, 주로 일본의 원자력손해배상제도 및 발전소주변지원사업제도 (전원삼법電源三法)를 경제학적으로 분석해왔습니다. 최근은 사용후 핵연료의 재처리와 고속로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현재 일본환경회의 이사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후꾸시마 원전, 위험은 끝나지 않았다
이필렬 후꾸시마 원전사고를 계기로 이 자리가 마련되었으니 그 현황부터 이야기해보죠. 3월 11일 지진이 일어나고, 후꾸시마 원전에 전력공급이 끊기면서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그후 전개된 상황에 대해 장교수님이 말씀해주시죠.
장정욱 4월 29일까지의 상황을 말씀드리면, 3월 11일 이후 사고수습에서 진전은 거의 없습니다. 주입하던 바닷물이 민물로 바뀐 것, 3월 24~25일경부터 중앙제어실 등에 부분적으로 전원이 들어온 것 외에 상황은 도리어 악화되었습니다. 원자로 및 수조의 냉각은 어느정도 되고 있습니다만 그 과정에서 새어나온 물, 즉 고농도의 오염수가 4월 27일까지 약 8만 7500톤이었는데 매일 약 500톤이 늘고 있습니다. 원자로가 언제 완전히 안정될지 모르고, 또 오염수의 처리도 문제입니다. 6월부터 원전 외부에 오염수의 처리시설을 설치한다고 합니다만, 언제 완성될지도 잘 모르는 상황이죠.
현재 가장 위험한 것은 1호기와 4호기입니다. 1호기의 경우, 원자로를 둘러싼 격납용기 속에 물을 채워서 원자로 속의 연료봉을 냉각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4호기는 수조가 문제입니다. 현재 수조 안에 약 1500다발 정도의 사용후 핵연료가 있는데 이 열이 엄청납니다. 4호기 자체의 폭발뿐 아니라, 3호기의 수소폭발이 있었을 때도 수조의 구조물이 꽤 파손되었습니다. 지금 보강을 하고 있습니다만, 열도 계속 나오고 있고 구조물이 워낙 약해져 있어서 여진이나 태풍 등에 파손된다면 큰 위험이 될 것입니다.
이필렬 오염수 8만 7500톤을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고 하는데요. 저는 사고 후 바닷물을 부어넣어서 식힌다고 했을 때 처음에 든 생각이, 원자로 안에서 붕괴열이 계속 생성되니 계속 물을 부어야 할 테고, 그러면 결국 냉각수는 바다로 흘러들어가겠구나 하는 것이었습니다. 분명 일본당국도 이런 예상을 할 수 있었을 텐데, 왜 나중에서야 예상하지 못했다고 하는지 의문입니다.
장정욱 그 시점에서는 곧 안정화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 거죠. 배관을 통해서 압력제어실 및 복수기 탱크 같은 씨스템으로 들어가리라고. 그런데 배관 및 격납용기가 손상되어 물이 자꾸 새어나가니까, 냉각이 잘 안되는 상태에서 계속 부어넣게 된 거죠. 증기로 변해서 빠져나가는 것도 있습니다만, 녹은 연료봉이 밑에 고여버린 상황이 된 것이죠. 현재는 증기로 발생할 수 있는 정도로만 물을 넣고 있습니다. 새어나오기 때문이죠.
이필렬 수소폭발 사고가 일어난 후 처음에는 담수를 위에서 들이부어서 냉각을 시도했지요. 그런데 그게 잘 안되고 핵연료 손상과 노심용융이 계속 진행될 위험이 커지니까 결국 바닷물을 부어넣겠다는 결정을 한 것인데, 이때는 이미 연료봉도 일부 녹아버렸지요. 토오꾜오전력(東京電力)이라든가 일본정부에서 사태를 상당히 가볍게 진단을 했다고 볼 수 있겠네요.
장정욱 사고 발생에 두가지 원인이 있는데 첫째, 쓰나미에 비상용 디젤발전기가 침수된 것입니다. 둘째, 비상용 디젤발전기가 정상적으로 가동됐다 하더라도, 바닷가의 해수(냉각수) 취수펌프의 모터가 침수된 점입니다. 원자로를 냉각시키는 장치가 전부 고장나버린 거죠. 일본정부가 늘 말해온 것은, 모든 전원이 한꺼번에 끊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즉 정상가동의 경우에는 내부전원이 있고, 비상시에는 외부의 다른 발전소에서 끌어오는 전력도 있다는 것이었죠. 그런데 이번에는 지진으로 송전선, 변전소가 다 넘어가버렸어요. 비상용 디젤발전기가 사용 불가능일 경우에는 배터리와 ‘자연순환’(격리시 냉각계, RCIC)을 이용하는데, 배터리는 8시간 정도의 용량밖에 없는 것으로 일본정부도 이 8시간 안에는 전원이 복구될 것이라고 기대했지요. 그런데 이번에는 열흘이나 걸렸어요.
윤순진 한국정부는 우리 원전은 이런 사태에 공급할 수 있는 전원이 더 많고 공급시간도 8시간이 아니라 72시간이라고 강조하는데요. 이 차이가 의미가 있나요?
장정욱 국내 원전의 경우, 증기발생기에 남아 있는 증기로 움직이는 펌프와 72시간 사용할 용량의 비상용 물탱크가 있습니다. 발전기가 멈추더라도 증기의 힘으로 72시간 동안 원자로에 물을 공급할 수 있다는 것으로 자연순환이라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양이 부족해 완전한 냉각이 불가능합니다. 또한 배관이 손상되지 않았다는 조건하의 이야기예요.
윤순진 8만 7500톤이라는 양이 얼마나 큰지 가늠하기 힘든데요. 한국 환경사고 역사상 최악의 사태였다는 2007년 삼성중공업 허베이 스피리트호 원유유출사건 때 흘러나온 기름이 1만 900톤이니, 그 여덟 배의 양이라는 거죠.
이필렬 게다가 그 오염의 정도가 심하다는 게 문제죠. 네군데 원전에서 방사능이 얼마나 나왔는지 체르노빌 사고와 견줘볼 수 있을까요?
장정욱 한국의 원자력안전기술원에 해당하는 일본의 원자력안전보안원은 37만 테라베크렐(TBq), 안전위원회는 63만 테라베크렐이라고 밝혔습니다. 37만이면 체르노빌의 방출량 520만 테라베크렐의 약 14분의 1이죠. 여기에는 바다에 흘러나간 양은 포함되지 않습니다. 지금도 매일 계속 나오고 있고요. 1, 2, 3, 4호기 합계 출력은 체르노빌의 약 3배입니다. 다른 호기의 수조를 포함하면 약 8배의 방사성 물질을 가지고 있는데, 만약 하나라도 폭발사고가 나면 어마어마한 피해가 예상됩니다.
이필렬 프랑스 쪽의 발표자료를 보니, 이번 방출량이 체르노빌의 10분의 1정도라고 했어요. 당시 일본사회의 반응은 외부의 발표가 너무 과장되지 않았냐는 것이었죠. 하지만 결국 일본정부가 사고등급을 4에서 5로, 사고 한달 후인 4월 12일에는 다시 체르노빌 사고와 같은 등급인 7로 올렸는데, 37만 테라베크렐이면 체르노빌 방사능 누출량의 10% 정도, 63만 테라베크렐이면 15% 가까이 됩니다. 바다로 흘러나간 것은 포함시키지 않는다는데, 그 양이 추정 불가능하다는 면도 있겠죠.
장정욱 토오꾜오전력의 추측에 의하면, 4700테라베크렐이라고 합니다. 문제는 이것이 일주일 정도의 계산으로, 누출의 발견 전에도 이미 새어나갔을 것으로 짐작되므로 실제량은 더 많았을 것입니다.
이필렬 최대 15%로 추정하지만 누락된 부분이나 4월 12일 이후 계속 누출되는 양까지 합치면 결국 체르노빌 수준이 될 수도 있겠지요.
장정욱 그걸 넘어설 수 있다는 거죠. 언제 수습이 될지 아무도 모르고요. 토오꾜오전력은 9개월 내에 안정화한다고 하는데, 당장 1호기 격납용기에 물을 채우는 일도 한달 정도 걸리죠. 곧 6월이 되어 태풍 같은 자연재해가 닥치면 작업이 더 늦어질 가능성도 있습니다. 다만 수관작업을 하고 있는 1호기의 경우, 5월 8일에 원자로건물의 이중문을 열어볼 계획입니다. 그러나 다른 원전은 원자로건물에 접근을 못하고 있는 상태죠.
윤순진 게다가 습도가 너무 높아서 로봇마저 철수시켰다더군요.
장정욱 2호기의 경우로, 로봇은 측정과 확인작업만 하지 보수작업을 하는 것은 아니에요.
이필렬 초기 붕괴열이 많이 줄어들어서 사고 초기에 비해서는 위험이 줄었지만 방사능 오염이 심해 작업자들을 투입해서 수습작업을 하는 것은 아직 불가능한 상태고, 아직도 임시방편으로 물을 뿌리면서 냉각시키고 있다, 이렇게 정리하면 될까요?
장정욱 안심할 수 없는 상태입니다. 현재는 증기로 빠져나올 양만큼 물을 공급할 수 있을 뿐입니다. 현재 핵분열 생성물의 붕괴열은 0.1퍼센트 정도로 줄어들었습니다. 핵분열 정지 1시간 후에 6퍼센트, 한달 후에 0.1퍼센트 정도로 붕괴열이 낮아져도, 2호기의 경우에 한시간에 물 3톤 정도를 증발시킬 정도의 높은 열량을 가지고 있습니다.
윤순진 1호기는 40년, 가장 가동연수가 짧은 4호기도 33년으로 전부 30년 이상 노후화된 원전입니다. 앞으로 있을 지진해일이나 태풍에 취약하다는 점도 걱정이에요.
장정욱 그렇습니다. 노후화된 4호기의 수조 구조물이 폭발로 약해져 보강공사가 진행중입니다.
윤순진 사용후 재처리에서 나온 플루토늄과 우라늄을 혼합한 연료를 쓰는 3호기의 플루토늄에 대해서는요?
장정욱 3호기의 경우, 원자로 내부의 온도가 상승했습니다만, 초기보다는 많이 낮아져 다소 안정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4월 27일에 토오꾜오전력이 부지내 토양에서 플루토늄의 붕괴에서 나오는 초우라늄 원소인 아메리슘, 퀴륨을 검출했다고 합니다. 이것들은 반감기가 아주 긴 장수명핵종(長壽命核種)입니다. 핵연료봉의 손상을 말해주고 있죠.
일본사회가 원전 비판을 꺼리는 이유
이필렬 체르노빌 사고 후 전유럽이 크게 동요했습니다. 이딸리아는 국민투표를 통해 완성된 원전 네곳을 폐쇄하는 등 각국의 원자력정책에 큰 변화가 생겼어요. 그런데 일본에서 그에 버금가는 사고가 일어났는데, 특히 여론의 초기 반응은 그다지 뜨겁지 않은 듯합니다.
장정욱 일단 쓰나미 피해가 막대하다보니 원전에 관한 이야기는 그 다음 순서였습니다. 요즘 일본 매스컴은 쓰나미 피해복구를 중점적으로 다루고, 원전에 대해서는 그다지 거론하지 않지요. 일본정부도 원자력을 비롯한 에너지정책의 변화를 논할 여유가 없습니다. 그리고 4월 중순부터는 사고수습의 내용보다는 원전사고의 피해보상 문제를 다루는 기사가 중심이 되고 있고요.
이필렬 사고 이후, 경제산업성 장관이 원자력정책을 바꾸진 않을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더군요.
장정욱 원자력 반대파는 있지만, 원자력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전반적인 동의가 있지요. 일방적인 홍보에 의한 영향일지는 모르지만.
이필렬 정책을 논할 여유가 없다고는 하지만, 과연 원자력정책에 대해 대대적으로 반성, 검토하지 못하는 다른 이유는 없을까요?
장정욱 비상전원의 확보와 내진설계의 보강에 대한 재검토 논의는 있었습니다. 또 4월말에 중의원들을 중심으로 재생가능에너지 정책에 대해 초당파적인 연구회를 가지겠다는 발표도 있었지만, 한편 중부전력(中部電力) 회사는 현재 정기검사로 정지하고 있는 하마오까(浜岡) 3호기를 7월중에 재가동하겠다고 발표하여 물의를 일으키고 있지요.
윤순진 쓰나미는 피해지역이 다소 한정적인 반면, 방사능 오염은 토오꾜오까지 미치는 광범위한 문제이므로 결코 보도의 중요성이 떨어진다고 볼 순 없어요. 혹시 일본의 국익을 위해 자제하는 분위기가 있는 건 아닐까요?
장정욱 일례를 들면, 어느 시사평론가가 방송에 나와서 원자력정책을 재검토해야 한다는 발언을 했습니다. 그는 원래 4월까지 출연하기로 약속돼 있었는데 그 방송 이후 하차를 요구받았다고 합니다. 일본 3대 광고주가 토요따자동차, 소오까갓까이(創價學會), 토오꾜오전력이죠. 토오꾜오전력은 1년 광고비가 약 200억엔, 즉 2400억원에 이르는 거대 스폰서입니다.
이필렬 광고주의 압력이 있었다고 추측할 수 있다는 이야기네요.
장정욱 민간방송국이므로 광고주에 대한 고려가 없을 순 없겠지요. 또한 공영방송인 NHK에서도 원전사고에 대한 내용이 꽤 줄어들었습니다.
이필렬 민간이든 공영이든 전체 언론에서 분석적이고 심층적인 보도를 찾아보기 힘든 것 같습니다.
장정욱 4월 중순까지는 사고에 대해 발표하는 곳이 토오꾜오전력, 원자력안전보안원, 안전위원회 등이었습니다. 그런데 정부가 혼선의 여지가 있다며 이것을 통합해버렸어요. 그랬더니 상호검증이 불가능한 상황이 되어 발표 내용을 꿰어맞출 여지가 생겼고, 발표 횟수도 줄어들었습니다.
윤순진 그렇다면 주류언론 외에 비판적인 태도의 학자, 단체가 발언할 통로는 없습니까? 한국의 인터넷매체나 일부 진보성향의 일간지에서는 아랍에미리트 원전 수출 등에 대해 비판적인 목소리를 내고 있는데요. 일본은 어떻습니까?
장정욱 일본에도 비슷한 인터넷신문이 있지만 그다지 인기가 없습니다. 일간지 중에는 『아사히신문(朝日新聞)』 『마이니찌신문(每日新聞)』 등이 약간 비판적인 경향을 보이긴 합니다. 사고 후 2주 동안은 공개적인 비판이 많이 나왔는데 요즘에는 토오꾜오전력 등 대책본부에서 전달하는 정보를 싣는 데 그치고 있습니다.
이필렬 원자력발전에 대해서 자신의 입장을 발언한 사회인사들이 혹시 있습니까? 얼마전 손정의(孫正義) 쏘프트뱅크 사장이 그동안 원자력발전을 찬성한 것을 반성한다고 했다는 보도가 있었는데, 그에 대한 반응은 어떻습니까?
장정욱 손정의씨의 주장은 신문에서 두번 정도 보도된 적은 있습니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오오사까부(大阪府) 지사의 주장입니다. 오오사까 근처의 후꾸이현(福井縣)에 일본에서 원전이 가장 많이 있는데, 그것의 폐지를 다른 현의 지사들과 논의하겠다면서 원자력 반대의사를 표시한 것이죠. 또 하나는, 예전 원자력안전위원회 위원장 등을 지낸 원로급 학자 15명 정도가 모여 발표한 성명입니다. 그런데 원자력 추진의 반대라기보다는 자기들이 신중하게 검토하지 못한 것을 반성한다는 내용이었죠.
반핵·반원전 주민운동의 가능성
이필렬 그런데 제가 보기에는 일본이 한국보다 앞서가는 면이 있습니다. 타까기 진자부로오(高木仁三郞) 박사처럼 내부인물이 밖으로 나와서 반원자력 운동을 벌이는 경우가 있고, 대학교수들의 활동도 있죠. 이번 후꾸시마 사고 때도 시민단체 원자력자료정보실의 기자회견에 후꾸시마 원전 1호기를 설계한 엔지니어가 나와서 자신이 이러저러하게 잘못했다고 설명하는 것을 봤어요. 그런 이들이 시민단체와 연계해서 활동하고 있으니 한국보다는 나은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어요. 한국에는 그런 경우가 한번도 없었지요.
윤순진 일본이 한국에 비해 낫다고 볼 수 있는 점이 또 하나 있어요. 반핵운동이 전국적인 흐름을 형성하지는 못했지만, 지자체 차원의 주민투표를 통해서 신규원전 건설을 막은 사례가 몇몇 있습니다.
장정욱 그 최초의 사례가 니이가따현(新潟縣)의 마끼정(卷町)인데요, 실은 이곳이 예로부터 금권선거로 유명한 지역입니다. 원전 건설을 막은 것은 주민들의 오랜 운동 덕분이지만, 이미 주변의 원전입지 지역에서 원전이 지역발전에 실질적인 도움이 안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죠.
윤순진 한국에서는 신규원전 건설을 막은 사례가 없습니다. 특히 정부가 같은 지역에 계속적으로 ‘당근’을 제시하면서 입지를 시도한다는 이유가 크죠. 우리와는 다른 일본 주민운동의 힘은 어디서 나오는지 궁금했어요.
장정욱 마끼정 외에는 원전유치 문제로 주민투표까지 간 일이 거의 없습니다. 주민 반발로 의원들이 의회에 안건을 상정하기 전에 거절을 하는 경우가 많지요. 일반 시민들은 건설부지로 예정된 곳에서 ‘자기 땅 안 팔기’로 대응하거나, 여러 사람이 땅을 1평씩 사는 ‘1평 사기 운동’도 벌이곤 하지요.
이필렬 일본은 지역 차원에서의 방어사례도 있고, 지역주민운동의 형편이 한국보다는 낫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후꾸시마 사고 이후에 홋까이도오(北海道) 같은 지역에서는 ‘저쪽 일이지 우리와는 상관없는 일이다’라고 한다고도 들었는데요, 즉 오래된 지역간 차별에서 비롯한 시각 차이도 있지 않은지요?
장정욱 현재는 원전사고의 직접적 피해가 후꾸시마현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그외 가까운 현에서는 방사성물질의 오염에 의한 간접피해에 관심이 쏠려 있죠. 정부 발표대로 영향은 거의 없다고 믿으면서요. 그리고 후꾸시마 원전에서 직선거리로 약 600킬로미터 이상 떨어진 오오사까, 쿄오또의 주민들은 원전사고에 대한 관심이 거의 없습니다.
윤순진 사고지역에서는 멀지만 그 주변에도 원전은 많지 않나요?
장정욱 제가 살고 있는 에히메현(愛媛縣)에는 원전이 3기 있는데, 오랫동안 지속적으로 원전반대운동을 해온 단체들이 있습니다. 평소에 원전에서 반대시위를 하면 20명 정도가 움직였는데, 이번에 시 중심가에서 열린 반대데모에 10배 정도 늘어난 300명이 모였다고 합니다.
이필렬 토오꾜오에서는 1만명도 모였다고 하던데요.
장정욱 현재는 그렇지만, 언제 상황이 급냉각될지 알 수 없지요.
윤순진 한국은 네 지역에 21기가 입지해 있습니다. 이에 비해 일본은 21개나 되는 지역에 54기가 분산되어 가동되고 있습니다. 즉 원전에 근접한 지역주민의 수가 많다는 건데요.
장정욱 그 대부분이 소외되고 낙후된 지역으로 인구도 많아야 1만명 정도입니다. 또한 주민의 3분의 1 이상이 원전 관련 직업에 종사하고 있는 형편이죠.
윤순진 하지만 일본 서부해안에 있는 많은 원전에서 사고가 난다면 태평양 연안의 도시에 방사능물질이 날아가는 게 당연할 텐데요, 그런 상황에 대한 우려는 없는 걸까요?
이필렬 한국의 경우, 고리 원전에서 20~30킬로미터 반경에 부산과 울산이 있어요. 후꾸시마 사고 이후 부산변호사회, 지방의회 등에서 고리 원전 1호기 폐쇄를 결의하는 등 원자력에 대한 반대 움직임을 보이고 있습니다. 일본에도 토오꾜오, 요꼬하마(橫濱), 나고야(名古屋) 근처에 하마오까라는 대규모 원전이 있는데, 이곳이 지진에 취약한 지대라고 하지요. 만약 하마오까에 사고가 난다면 이들 대도시에 큰 피해가 있을 텐데, 왜 지금 여론이 움직이지 않는지 의문입니다.
장정욱 원전에 근접한 대도시의 주민들이 관심이 없는 이유는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입니다만, 하마오까 원전에 대해서는 전국적인 관심이 몰려 있습니다. 첫째는, 대지진이 일어날 수 있는 진앙지 바로 위에 원전이 위치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일본 원전 중에서도 내진설계가 가장 강력하게 되어 있습니다. 둘째는, 주변에 나고야나 시즈오까(靜岡) 등 대도시가 많아 원전사고가 나면 약 3000만명의 생활에 영향을 끼칠 수 있고, 또 반경 20킬로미터 이내에 일본의 동맥이랄 수 있는 신깐센과 토메이고속도로가 지나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일본에는 1972년에야 내진설계 지침이 생겼고 그전까지는 단층이라는 개념이 없었기 때문에 지진 빈발지역이라는 사실을 모른 채 그 위에 원전을 지은 것이죠.*
윤순진 그렇다면 일본의 원전은 내진설계 정도가 각기 다른 것입니까? 한국에서도 이 부분이 명확하지 않습니다.
장정욱 다 다릅니다. 한국 원전의 경우, 250갈(Gal, 중력 가속도를 나타내는 단위. 1Gal=1cm/sec2)입니다. 아랍에미리트에 수출하는 것은 300갈입니다. 일본 하마오까 원전의 경우 내진설계는 800갈이나 최대 1000갈까지 견딘다고 합니다.
윤순진 일본은 유일한 핵무기 피폭 국가입니다. 게다가 대형 원전사고가 일어났는데도 반응이 뜨뜻미지근하니, 참 의아합니다.
핵무기와 원전에 대한 이중적 태도
이필렬 핵무기에 대해서는 2차대전 이후로 반대운동도 있었고 국민적인 인식이 있습니다. 하지만 핵무기와 원자력발전에 대한 태도는 달라요. 원자폭탄에는 반대하지만 원자력발전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거죠. 일본은 핵연료 싸이클을 완결했습니다. 핵연료를 재처리해서 플루토늄을 뽑아내고 이걸 우라늄과 혼합해서 목스(Mox)연료를 만들어 이미 후꾸시마 3호기 같은 원자로의 연료로 사용하고 있어요. 그리고 작년부터는 1995년에 나트륨 누출로 인한 사고로 정지되어 있던 고속증식로를 다시 돌려보기도 했지요. 2009년말 일본정부에서 국제에너지기구(IAEA)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이렇게 재처리를 통해서 분리한 플루토늄의 양이 4800킬로그램이랍니다. 사용후 핵연료 속에 들어 있는 풀루토늄은 훨씬 많지요. 14만 킬로그램이 넘습니다. 1000개도 훨씬 넘는 핵탄두를 만들 수 있는 플루토늄을 쌓아두고 있는 거죠.
장정욱 저도 일본국민의 거의 대부분은 핵무기에 반대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만, 어느 나라, 어느 체제에서나 국가가 밀어붙이면 국민들이 계속 거부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습니다. 일본 외무성의 1962년 자료에 의하면, 핵무기를 당장 만들지는 않지만 개발 기술과 시설은 보유하겠다는 근본적인 생각이 드러나 있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국가가 전쟁을 일으킬 때 국민이 어느 정도까지 견제할 수 있을지 저는 회의적입니다. 국민이 개인 차원에서 핵무기에 반대할 수는 있겠으나, 만약 북한이 핵무기를 보유하고 또 미국의 핵우산이 보장되지 않는 상황이 온다면 이야기가 달라지겠지요.
이필렬 한국은 모든 면에서 일본을 따라가고 있습니다. 재처리, 고속증식로 등에 대한 개발과 추진도 마찬가지죠. 한국의 재처리 찬성자들은 재처리가 비핵화선언과 미국과의 협정 위반이라는 인식 때문에 ‘재처리’가 아니라 ‘재사용’ 또는 ‘재활용’이라고 합니다만, 사용후 핵연료에서 파이로프로쎄싱(pyroprocessing) 방식을 통해 플루토늄을 뽑아내서 목스연료로 만들어 현존 원전에서도 사용하고 고속증식로가 개발되면 거기에서도 쓰겠다는 내용은 다를 바 없어요. 일본이 후꾸시마 사고를 계기로 원자력정책을 점검하고 점진적으로 줄여나가기로 한다면 고속증식로, 재처리도 포기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야 한국 및 동아시아 3국이 정치·사회·경제적으로 바람직한 방향으로 나아갈 계기가 될 텐데, 그러한 흐름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는 말이지요. 앞으로 일본이 원자력 전반에 대해 태도를 바꿀 가능성이 있는지, 어떻게 보십니까?
장정욱 작년에 몬주 고속증식로를 14년 반 만에 시험 가동했습니다만, 시험 3단계 중 첫 단계에서 기기낙하 사고가 생겨 정상적으로 가동하는 데 앞으로 3년은 더 걸릴 겁니다. 그리고 4800킬로그램의 플루토늄은 영국과 프랑스의 재처리공장에 있는 것으로, 외국에서 들여오는 경우에는 플루토늄 분말이 아니라 목스연료의 형태를 취하죠. 현재 일본의 재처리방식은 한국과 달리 습식(PUREX)입니다. 단, 부차적인 재처리방법으로 한국처럼 건식(pyroprocessing) 방법도 연구중이에요.
한편, 오래된 경수로의 수명 연장에 대해서는 국민, 정치권, 추진행정측에서 반대가 많이 늘어날 것으로 예상됩니다. 그러나 추진행정측의 속셈은 이래요. 일본정부가 2030년의 도입을 예정하여 새로운 표준형 원전모델 개발을 국책사업으로 추진중입니다. 현재의 노후 원전을 당장 폐기처분한다 해도 20년 정도가 걸리니, 폐기하겠다고 하고 나서 새로 개발한 원전모델을 지으려는 거지요. 즉 원전의 수는 줄겠지만 발전용량의 규모에는 큰 차이가 없거나 더 커질 수 있습니다. 한마디로 이번 원전사고를 계기로 일본의 원자력정책이 크게 변화할 가능성은 없다고 하겠습니다.
이필렬 원전을 점진적·장기적으로 포기할 가능성은 있습니까?
장정욱 그럴 가능성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노후화된 원전을 폐로하고 신규 건설도 줄일 수는 있겠지만, 원자력발전을 포기할 리는 없지요. 그러나 만약 원전사고가 연내에 수습되지 않은 상태에서 ‘원자력정책대강(原子力政策大綱)’이 논의되면 정책이 크게 바뀔 것으로 예상합니다. 원자력발전의 비중을 낮출 가능성도 있고요.
이필렬 고속증식로, 재처리에 대한 정책 전환의 가능성도 없다고 봐야 합니까?
장정욱 그것은 정책결정을 좌우하는 원자력 추진파의 최대의 꿈으로 가능성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핵무장과도 연결된 기술이고요. 일본의 ‘원자력 마피아’는 학계, 정치인, 행정관료, 산업계, 매스컴 이렇게 다섯 집단입니다. 토오꾜오전력, 전력회사 노동조합 등에서 지원을 받는 정치인도 많고, 원자력 관련 산업계 출신 경제산업성 장관도 있었습니다. 체르노빌 사고의 여파로 1990년대에는 일본의 대학에서 원자력 관련 학과명이 아예 사라졌다가, 얼마 후 다시 등장했습니다. 연구비 지원은 물론, 토오꾜오전력에 의한 기부강좌도 많은데, 토오꾜오대학 등에 들어간 강좌 지원금이 60억원에 이르렀답니다. 특히 토오꾜오대학 교수들이 원자력위원회, 원자력안전위원회, 원자력연구개발기구 등을 장악하고 있지요.
누가 책임지고 배상할 것인가
이필렬 일본의 상황에 대해 마지막으로 짚어볼 것은 배상문제입니다. 후꾸시마 사고로 발생한 피해와 관련해 배상해야 할 액수가 어마어마할 텐데요.
장정욱 일본정부는 토오꾜오전력이 배상책임을 져야 한다는 입장입니다. 아직 확정된 것은 아닙니다만, 배상금이 모자랄 경우에 대비해 별도의 지원기구를 만들어 정부 및 다른 전력회사가 자금을 대게 하겠다는 안을 내놓고 있습니다. 한편, 토오꾜오전력 사장은 사고 직후에는 전적으로 배상책임을 지겠다고 했습니다. 그러다가 2주쯤 지나서 경제단체연합회 회장이 ‘법률대로 해야 한다’라고 하자, 이틀 후 토오꾜오전력 사장도 ‘우리도 책임을 느끼고 있다. 단, 원자력손해배상법을 존중하고자 한다’라고 나왔습니다. 지금 법률, 그러니까 원자력손해배상법을 어기고 있는 것은 일본정부입니다. 이 법률에 따르면 칸또오(關東)대지진 규모를 넘어서는 천재지변에 의한 원자력사고가 났을 경우, 국가가 책임지게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윤순진 보도에 따르면, 칸 나오또(菅直人) 총리는 이번 사고가 천재지변에 속하지 않는다, 이 정도의 지진은 계속해서 예측되어 왔으므로 회사가 의무를 다하지 않은 것이라고 했는데요.
장정욱 당시 과학기술청 장관이던 나까소네(中曾根)가 1960년 국회의 답변에서 관동대지진 규모의 3배 이상의 지진에 의한 원자력손해가 발생하면 국가가 배상책임을 진다고 한 바 있지요. 이번 지진은 그 40배 규모였습니다. 그러니 이번 피해는 국가가 배상책임을 지는 것이 맞습니다.
이필렬 배상책임 문제는 다툼의 여지가 있겠는데요, 어쨌든 후꾸시마 사고로 인한 피해배상 규모는 어느 정도로 보십니까?
장정욱 4월 27일에 피해배상에 관한 제1차 지침이 만들어졌어요. 그런데 사고가 수습된 상태가 아니라 피해상황이 계속 늘어가니 배상금액은 정확하게 책정되지 못한 상태지요. 언론에서는 수조엔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일본 메릴린치증권이 발표한 4월 8일 시점의 추정에 의하면 최대 12조엔(약 144조원)에 이른다고 합니다. 최근 일본정부는 20조엔에 달할 것이라는 추정도 하고 있습니다.
이필렬 만일 후꾸시마 원전사고가 지진에 의해 촉발되지 않았더라면, 수십조원에 달하는 배상액을 토오꾜오전력이 책임지게 됩니까?
장정욱 가령 1조엔을 배상해야 한다면, 1200억엔까지는 정부와 맺은 보상계약에서 나오고 나머지 8800억엔을 토오꾜오전력에서 내야 합니다. 전력회사의 무한책임이기 때문입니다. 만약 배상하지 못하면 일본정부가 국회의 의결을 거쳐서 지원할 수 있고요. 이번 사고를 토오꾜오전력이 전적으로 책임져야 한다면 회사는 파산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래서 회사측에서 거부반응을 보이면서 배상책임액의 상한을 정해달라고 요구하는 거죠. 금융권에서도 토오꾜오전력에 막대한 자금을 대출해준 상황이니 전력회사의 입장을 지지하고 있습니다.
한국 원전에 대한 정부 발표의 신빙성
이필렬 토오꾜오전력의 보험가액이 1~4호기 합쳐서 1200억엔이라는 셈인데, 결국 그 나머지 금액은 정부, 즉 국민의 세금에서 나가게 되는 거군요.
후꾸시마 사고 당시 한국의 반응을 짚어보면, 한국정부는 국민들의 두가지 관심사에 대해 견해를 발표했습니다. 하나는 후꾸시마에서 발생한 방사능은 한반도 상공에서 부는 편서풍 때문에 한국으로 오지 않는다는 것, 또 하나는 지진이나 쓰나미의 위험이 거의 없는 한국의 원전은 안전하다는 것이었죠. 하지만 일반 시민은 다르게 생각했습니다. 불안한 분위기가 고조된 데는 정부가 크게 한몫했어요. 방사능은 오지 않는다는 기상청 발표와 달리, 3월 23일에 크세논이 검출되었고 며칠 후에는 요오드, 쎄슘까지 다 날아왔습니다. 정부는 처음에는 넘어오지 않는다, 괜찮다라고 말하다가 방사능물질이 발견되자 그 정도는 괜찮다, 심지어 1년 동안 내리는 비를 맞거나 마셔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도 설명했어요.
정부는 체르노빌 사고 때도 우리 원전은 가압경수로이며 소련에서 개발한 원자로와는 노형(爐型)이 다르다며 안전함을 강조했지요. 현재 한국 원전은 대부분 가압경수로이고 월성의 4기만이 중수로입니다. 앞으로도 신형 가압경수로를 개발하겠다는 계획이고요.
윤순진 현재 한국 원전의 현황은 21기가 가동중, 7기가 건설중, 4기가 건설 준비중, 2기가 계획중이에요. 제5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의 마지막 해인 2024년까지 총 34기가 가동됩니다. 고리 1호기가 폐쇄되면 33기일 테고, 월성 원전도 변수입니다. 원자력발전의 비중을 2024년까지 전체의 48.5퍼센트, 2030년까지는 59퍼센트로 높이겠다는 계획을 가지고 있어요.
이필렬 일본의 애초 계획에 비해서도 비중이 크지요. 원전은 보통 설비용량과 가동률에 따라 발전량이 달라지는데, 한국의 원전 가동률은 90퍼센트 이상으로 전세계에서 가장 높습니다. 정부나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에서는 높은 가동률이 기술력을 입증한다고 주장하지요.
윤순진 정말 기술력 때문인지, 아니면 가령 안전을 위해 멈추어야 하는 기간에도 가동하고 있는 것인지 밝혀야 할 문제라고 봐요.
이필렬 한국 원전의 안전성에 대해서는 두가지 시각이 있지요. 하나는 예의 기술력 예찬인데, 1978년에 원자력발전을 시작한 이래 한국의 기술력이 지속적으로 발전해왔고 이에 따라 고장이나 가동정지가 줄어들어서 높은 가동률에 도달할 수 있었다는 것이지요. 다른 하나는 사고사례입니다. 한일 양국을 비교해보면, 일본에서는 사망사고가 있었습니다. 2004년에 미하마(美浜) 원전에서 네명이 사망하고 1999년에는 토오까이(東海) 핵연료공장에서 두명이 사망하고 수백명이 피폭되는 일이 일어났지요. 반면 한국에서는 작은 사고나 고장이 많이 있었지만 인명사고는 없었거든요. 그렇다면 한국의 원전이 더 안전한 것 아니냐는 생각도 해볼 수 있을까요.
장정욱 그렇지 않다고 봅니다. 미하마 원전 3호기의 경우, 원전의 방사성이 없는 140도 정도의 열수(熱水) 배관이 파열되어 일어난 사고였습니다. 토오까이는 임계(臨界) 사고였는데, 기본적으로는 기계의 하자가 아니라 공장측의 효율성을 중시한 운영방침의 개악(改惡)으로 생긴 사고죠. 또 반대로 이야기해서, 한국에서 방사선 피폭으로 인한 재해를 인정한 경우가 있습니까?
윤순진 그런 사례는 없어요. 지난 1980년대에 영광에서 무뇌아 사건이 있었습니다만, 명시적인 인과관계를 발견하긴 힘들죠. 체르노빌, 후꾸시마처럼 대형사고가 없었기에 도리어 그 위험을 체감하고 설득하기 어려운 면이 있는 것 같아요.
이필렬 한국에 원전이 가동된 지 30년이 넘었고, 그사이 방사능 유출사고, 피폭사고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철저하게 조사・연구된 적은 없어요. 기본적으로 방사능이라는 눈에 보이지 않고 만질 수도 없는 물질을 다루는 원자력발전의 특성 때문이죠. 원전 내부에서 방사능 피해를 줄이려면 작업자가 자주 교체되는 방법밖에 없지만, 그래서는 작업이 원활하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적은 수가 긴 시간 작업하면 그 소수의 작업자들에게 피폭이 심해집니다. 그래서 결국 피폭 허용치를 일반인보다 높게 잡는 것이죠. 이번 후꾸시마 사고 수습에는 긴급히 한도를 100밀리시버트(mSv)에서 250밀리시버트까지 높였죠.
장정욱 사실 그보다 더 높게 올릴 수도 있었습니다. 인원은 한정돼 있고 수습작업 시간은 길어질 테니까요.
이필렬 작업자들이 심각하게 피폭된다면 결국 암이나 백혈병 같은 결과가 나타나겠지요.
장정욱 원칙적으로 원전 작업자는 피폭량이 5년간 100밀리시버트을 넘으면 다른 곳에서 일할 수 없는데, 이번 사고수습의 작업자에게는 피폭량이 250밀리시버트에 달해도 다른 곳에서 일할 수 있게끔 허가하겠다고 방침을 바꾸었습니다. 이번 사고수습의 작업자들은 휴대용 측정기가 모자라 선량(線量)을 모른 채 작업을 한 경우도 많았습니다. 그리고 제도상의 문제점도 있습니다. 이러한 작업자를 관리하는 곳은 후생노동성인 반면 이 선량기록을 보관하는 곳은 문부과학성으로, 통일되어 있지 않지요. 제대로 관리하기 힘든 체제입니다.
원전기술의 치명적 위험성
이필렬 원자력발전은 인간이 가장 다루기 어려운 기술이라고들 해요. 이번 후꾸시마 사고를 수습하기 위해 ‘50명의 특공대’가 나섰고 그들을 영웅화하는 분위기가 일기도 했습니다. 한국에도 크게 보도되었지요. 그런데 원자력발전의 성격에 대해 독일의 어떤 물리학자가 한 말을 빌리면, 인간의 기술이 문제를 일으켰을 때 인간이 목숨을 걸고 죽을 각오로 그것을 수습해야 한다면 그 기술은 나쁜 기술이라는 거죠. 이것이 오늘날 결국 대재앙을 불렀고요. 한국의 원자력 관계자들은 일본의 초기 대응 실패에 대해 지적하고, 그러면서 한국 원전이 안전하다고 강조합니다. 그런데 한국의 원전은 과연 안전지대일까요?
윤순진 양국 원전의 노형이 다르다는 것은 별 의미가 없습니다. 과학기술은 인간에 의해 운용되고, 위기상황에서 판단은 완벽할 수 없죠. 이번 사고가 일본의 기술이 열등해서 일어났을까요? 사고에 대처하면서 관계자들은 사업이윤의 차원에서 판단한 거죠. 즉 최악의 상황이 아니라 자기가 바라는 상황을 가정하고 자기가 입을 손해를 최소화하는 쪽으로 움직인 겁니다. 만약 한국에서 사고가 발생한다면, 얼마나 달리 대응할 수 있을까요? 인간의 판단이 개입하고 사소한 실수도 치명적인 결과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원자력은 위험한 기술입니다.
후꾸시마는 일본에서 원자로가 후꾸이에 이어 두번째로 빽빽하게 들어서 있는 곳이죠. 고리 역시 가동중인 것부터 계획중인 원전까지 합치면 12기입니다. 그런데 자연재해는 동일한 지역에 동시적으로 발생하죠. 후꾸시마 원전에 비상발전기가 13개 있었지만 그중 12개가 동시에 침수되어 무용지물이 되었잖아요. 고리처럼 한 지역에 원전이 밀집돼 있다면 그만큼 위험이 높은 거죠.
이필렬 정부, 원자력안전기술원, 한수원 등은 한국은 일본과 달리 지진 같은 자연재해의 문제가 크지 않고 내진설계가 충분히 돼 있다, 쓰나미에도 대비하고 있다, 특히 신설 원전은 물론 고리 1호기에도 수소제거장치가 설치돼 있다고 말합니다. 후꾸시마 원전에서는 1, 3, 4호기의 연료봉과 물이 반응해서 발생한 수소가 폭발함으로써 원자로건물을 모두 날려버렸지만 한국 원자로에는 그러한 수소를 제거하는 장치가 있기 때문에 수소가 발생해도 후꾸시마 같은 폭발사고는 일어나지 않는다는 거지요. 하지만 사고를 분석해보면, 장치가 불완전해서가 아니라 인간이 판단을 잘못 내려서 일어난 것이 대부분입니다.
체르노빌 사고는 원자로에 전력공급이 중단되었을 때 관성에 의해서 돌아가는 증기터빈으로 얼마 동안 전력공급이 가능한지 알아보기 위해 실험을 했지요. 그런데 이때 진행이 잘 안되니까 실험자가 원자로에 들어 있던 제어봉을 완전히 빼버립니다. 제어봉은 핵분열을 중단하는 역할을 하는데, 원자로에서 완전히 제거하면 핵분열 연쇄반응이 폭발적으로 일어날 수 있어요. 작업자가 판단 착오로 아주 위험한 행동을 한 것이지요. 스리마일섬에서도 작업자가 비상밸브를 실수로 잠가버렸고 경보를 무시해서 사고가 노심용융까지 갔습니다. 그전에 일어난 1975년의 브라운즈 페리 원전사고 때는 작업자들이 촛불을 켜서 공기누설을 확인하려다가 큰 화재로 번졌지요.
저는 한국의 원전이 자연재해 면에서 그리고 기술적 설비나 기술인력 면에서 일본 원전보다는 안전할 것이라고 봅니다. 그렇지만 지금까지의 대형사고를 촉발한 작업자의 실수가 한국에서는 발생하지 않는다고 볼 수 없고, 따라서 이런 실수로 큰 사고가 일어날 가능성은 한국에도 늘 있다고 생각합니다. 얼마전 고리 원전 4호기에서 정전사태가 발생한 일도 작업자의 실수로 일어난 것이지요. 이런 실수가 얼마든지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겁니다.
장정욱 한국의 고리 1호기의 수소제거장치는 격납용기에 구멍을 하나 만들었다는 겁니다. 당연히 방사성물질도 함께 유출됩니다.
이필렬 수소제거장치는 구멍을 열어서 수소를 대기중으로 뽑아내는 것이 아니라 팔라듐 같은 금속촉매를 이용해서 흡착함으로써 제거하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전기가 끊어져도 작동하기 때문에 피동형이라고 부르지요. 어쨌든 우리 국민 대다수는 한편으로는 원자력발전의 필요성을 인정하지만 사고 위험에 대해서도 상당히 인지하는 것 같습니다. 88퍼센트가 원자력발전의 필요성에 동의하고 원전 확대건설에 찬성하는 비율도 60퍼센트나 되지요. 일본보다도 지지율이 높은데, 반면 자기 지역에 원전을 건설하는 데는 찬성 의견이 25퍼센트밖에 안된다는 것이 원전의 위험성을 의식한다는 방증이겠죠.
윤순진 그러면서 원자력발전이 안전하다고 대답한 사람이 72퍼센트니, 모순이죠. 최근에는 입지에 관한 선택지로 ‘지역발전 규모를 보고 결정한다’는 내용이 추가되었습니다. 즉 안전과 경제적 이익을 교환할 수 있다는 논리예요. 2010년 7월의 조사에서 응답자의 약 40퍼센트가 그렇게 판단했다고 해요.
이필렬 투자가 많이 이루어지면 원전이 들어와도 괜찮다는 태도네요. 갤럽 인터내셔널에서는 후꾸시마 사고 이전과 이후에 원자력발전에 관한 설문을 진행했는데요, 한국의 경우 차이가 거의 없었습니다.
윤순진 사고 이전에는 65퍼센트 찬성으로 조사대상 47개국 중 4위, 사고 후에는 64퍼센트로 세계 2위였습니다. 사고 전에 2위와 3위를 차지했던 불가리아와 프랑스에서 찬성률이 떨어진 반면 우리나라에서는 거의 차이가 없었기 때문에 등수가 올라간 거지요. 중국에서도 찬성률이 83%에서 70%로 떨어졌지만 부동의 1위였어요.
원자력은 싸고, 깨끗하고, 무한한 에너지?
이필렬 사고 이후 후꾸시마 원전에서 방사능이 날아온다며 우산이며 마스크를 챙기는 정도의 반응은 보였지만, 원자력발전 자체에 대한 태도는 그대로라는 이야기입니다. 그 원인을 짚어볼 수 있을까요?
윤순진 일단 값이 싸고 기후변화에 유리하다, 깨끗하다는 생각이 지배적인 듯해요. 원자력문화재단이 주장하는 내용을 여과 없이 받아들이는 거죠. 아니, 원자력을 포기하면 비용을 더 많이 지불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렇게 믿고 싶은 게 아닐까 싶기도 해요. 원자력이 아니면 대안이 없다거나 필요악이라는 인식이 강합니다. 과학기술에 대한 낙관도 유별난 면이 있고요.
이필렬 정부와 한수원은 원자력에 대해 값이 싸고 고갈되지 않는 준(準) 국산 에너지, 이산화탄소를 배출하지 않는 친환경 에너지라고 지속적으로 홍보해왔습니다. 그럼에도 불안감을 완전히 해소하지는 못했지요. 그러니 국민들은 원자력발전에 찬성하면서도 자기 지역에 원전이 들어서는 데는 반대하는 거죠.
윤순진 정부는 원전이 경제적이란 걸 강조하기 위해 심하게는, 가장 비싼 가스를 사용할 때와 비교해서, 그것도 산업이 아니라 가정용으로 따져서 호당 1년에 2만 5000원을 더 부담해야 한다는 결과를 내놓기도 했죠. 그러니 시민들은 불안한 마음이야 있지만 원전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자기 지역에는 입지하지 않기를 바라는 거죠.
이필렬 과연 원자력이 실제로 값이 싸고 깨끗할까요? 정부 발표에 따르면, 석탄이나 가스 등과 비교할 때 원자력의 발전단가가 킬로와트시(時)당 40원 정도로 가장 낮습니다. 여기에 원전 폐쇄, 방사성 폐기물 처분, 보험 등 원자력발전에 드는 각종 비용이 들어가 있나요?
윤순진 정부에 따르면 발전원가에는 건설비를 포함한 고정비나 연료비, 운전 유지비가 들어갑니다. 원자력의 경우, 수명후 발전소 처리비와 사용후 핵연료 처분비, 방사성 폐기물 처분비를 고려해서 계산했는데도 원가가 가장 낮다고 해요. 문제는 각 비용을 어느 정도로 상정하느냐는 겁니다. 예컨대 해체비용이 1기당 3251억원으로 잡혀 있는데, 다른 나라들은 1조 5000억원이 넘어요.
게다가 그 어느 나라도 핵연료를 처분해본 적이 없는 상황에서 사용후 핵연료 처분비를 상정한다는 것 자체가 사실 이치에 닿지 않죠. 다른 전력원과 달리 위험하기 때문에 사실은 보험료가 상당히 높아야 하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책임 한도를 500억원 정도로 낮게 잡아서 보험료 부담이 상대적으로 낮아진 것도 고려하지 않습니다. 국가가 책임져야 할 사고시 배상비용은 아예 들어 있지도 않아요. 또 어느 에너지원보다도 연구개발비 비중이 높은데 이것도 전혀 고려되지 않고요. 지나치게 단순하게 계산된 거지요. 한마디로, 전체 주기 비용을 온전히 포함하지 않고, 눈에 보이지 않는 보조금이 모조리 빠져 있는, 내용 없는 경제성 평가입니다.
장정욱 일본의 경우, 원자로의 모델 교체에 4000억엔에서 5000억엔 정도의 비용이 듭니다. 그 3분의 1만 잡더라도 2조원 정도가 비용 계산에서 누락된 것입니다. 또한, 발전소주변지원사업법에 의한 연간 지출도 전기요금으로 부담되지요.
윤순진 한국에서는 전력산업기반기금이라는 항목으로 준조세를 내지요.
이필렬 일본의 발전단가는 어떻습니까?
장정욱 경제산업성에서 1994년에서 발표한 자료와 그에 기초한 전기사업연합회의 2004년 자료를 보면 원자력이 가장 쌉니다. 반면, 연구자들은 개발비용과 발전기금을 포함하여 계산하면 원자력이 가장 높게 나온다고 봅니다.
이필렬 독일 그린피스의 발전단가 연구에서는, 원자력의 외부비용을 석탄화력과 동등하다고 놓고 계산했는데, 원자력이 석탄화력에 비해 발전단가가 약간 높습니다. 풍력, 수력보다는 훨씬 높고요.
윤순진 원자력발전에는 홍보비용도 들어 있죠. 모든 소비자가 납부하는 전력산업기반기금으로 부담합니다. 1년에 100억원 정도라서 단가에 영향을 미칠 정도는 아니지만, 처음부터 여타 에너지원과 다른 지위를 점하는 셈이죠.
이필렬 스위스의 프로그노스 연구소의 1998년 연구에 따르면, 제대로 보험을 들 경우를 가정해서 계산하니 원자력의 단가가 킬로와트시당 1.8유로, 거의 3000원가량 나옵니다. 원자력 발전단가를 계산하기가 매우 어렵고, 고려 요소를 늘리면 단가가 매우 높아진다는 것을 말해주지요.
윤순진 이처럼 계산조차 불가능한데도 너무도 단순한 수치를 만들어내서 진실인 양 홍보하고 유포한다는 것은 기만행위인지도 몰라요.
이필렬 원자력은 고갈되지 않는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어떻게 볼 수 있을까요?
윤순진 한수원 홈페이지에 가보면 이런 문구가 있습니다. 앞으로 우라늄을 쓸 수 있는 기간이 60년인데 이것을 재처리하면 60배, 즉 3600년간 쓸 수 있다. 영원하다는 거죠.
이필렬 원자력발전은 영구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우라늄이라는 것도 땅속에 일정량 매장되어 있는데 말이죠. 우라늄 광물은 여러 종류로 나뉘는데, 우라늄 함유량 1퍼센트 이상의 광물은 이미 많이 캐내 썼고 지금과 같은 추세라면 20년쯤 후에는 0.1퍼센트 이하까지 채굴해야 합니다. 이렇게 한 40년 지나면 우라늄도 바닥이 납니다. 그런데 원자력이 영구적이라는 주장에 따르면, 재처리를 통해 사용후 핵연료에 남아 있는 우라늄과 플루토늄을 뽑아내서 고속증식로를 가동하면 여기서 연료가 증식되니까 거의 영구적으로 원자력발전을 할 수 있다는 거죠.
윤순진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폐기물의 양, 위험성, 경제성에 대해서는 제대로 이야기되지 않고 있어요.
이필렬 얼마 전 한국정부는 미국과의 파이로프로쎄싱 공동연구에 합의했습니다. 플루토늄을 비롯해 고속증식로에 들어갈 핵연료를 추출하겠다는 것이지요. 고속증식로는 2030년경까지 개발할 계획인데 과연 그때까지 파이로프로쎄싱과 고속증식로가 실현될 것인지는 두고보아야 합니다. 결국, 고갈되지 않는 원자력이란 재처리, 고속증식로를 전제한 것이고, 만일 그 전제가 무너진다면 30년쯤 후에는 핵연료를 구하기가 어려워져서 에너지 파산에 이를 수도 있다는 얘기예요.
그러면 이쯤에서 원자력이 이산화탄소를 배출하지 않기 때문에 깨끗한 에너지라는 주장은 어떻게 봐야 할지 이야기를 나누어보죠. 2005년경부터 유행한 ‘원자력 르네쌍스’라는 말이 바로 이 주장에 근거한 것이었지요.
윤순진 2004년 이래 건설되기 시작한 원전 35기 중 절반 이상이 중국에, 나머지는 한국, 러시아, 일본 등지에 지어졌어요. 유럽은 핀란드와 프랑스 단 두 나라에 1기씩 건설되었습니다. 동북아 중심의 붐이었지, 전세계가 원자력발전에 주목했다고 보기는 어려워요. 또한, 저탄소가 곧 친환경이라는 공식이나 저탄소라는 용어 자체에 대한 인식을 재검토할 필요가 있습니다.
1품 우라늄광이 거의 고갈된 상태이므로 그만큼 우라늄 농축 과정이 뒤따릅니다. 우라늄을 채광하고 나서 농축한 후 핵연료를 성형 가공하는데, 이 단계를 발전 이전의 선행주기라고 부릅니다. 또한 사용후 핵연료를 비롯해서 수명이 다한 원자로 폐로 등의 과정이 필요한데 이를 후행주기라고 합니다. 그런데 다수 국가들에서는 선행주기가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에 개별 국가 차원으로 보자면 이산화탄소 배출이 적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하지만 후행주기는 해당 국가에서 이루어지죠. 이렇듯 어느 정도의 기간에 어떤 방식으로 관리하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이산화탄소 배출 정도는 전혀 고려되지 않고 있어요. 또한 설사 원자력이 이산화탄소를 비교적 덜 배출한다고 해도, 다른 에너지원에서는 발생하지 않는 방사능이라는 물질을 문제시하지 않는 것 자체가 위험합니다.
장정욱 일본에서는 1974년 1차 석유위기 당시, 원자력에 비중을 두어야 한다, 일본의 에너지 안전보장을 위해서 필요하다는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1980년대에 들어서는 원자력의 경제성이 강조되었고 1989년부터 원자력발전소는 이산화탄소를 배출하지 않는다고들 했죠. 그러다 1992년에 시민단체의 비판이 있은 후로 ‘발전할 때는 이산화탄소를 배출하지 않는다’는 표현으로 바뀌었죠.
이필렬 한수원이 IAEA 자료를 바탕으로 발표한 내용을 보면, 원자력은 전기 1킬로와트시를 생산할 때 이산화탄소 10그램을 배출하고, 8그램을 배출하는 수력 다음으로 깨끗한 에너지로 되어 있습니다. 반면, 오스트레일리아에서 나온 자료에는 우라늄 채광부터 원전 폐쇄까지 전과정을 따졌을 때 경수로의 탄소 배출량이 60그램으로 나옵니다. 이것도 채광할 때 우라늄 비율이 높은 광의 경우에 그런 것이고, 비율이 낮은 광은 130그램까지 올라갑니다. 풍력이 21그램이니 원자력의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그 서너배에 이르는 셈이죠.
윤순진 원자력발전에서 냉각수로 사용된 후 배출되는 온배수(溫排水)에 대해서도 따져봐야 합니다. 온배수가 자연에 미치는 영향이 가시적이지는 않더라도, 장기간에 걸쳐 주변 해양생태계를 교란시키고 있죠. 원자력의 폐해 중에서 이 온배수 문제를 가장 심각하게 여기는 시각도 있어요.
장정욱 그래서 저는 원자력발전소는 전기를 만드는 기계라기보다는 바닷물을 데우는 기계라고 봅니다.(웃음) 전기를 생산하는 증기는 겨우 3분의 1이며, 나머지는 온배수로 1초에 7톤 정도 배출되면서 주위 바다의 온도를 4~5도 올리고 있어요.
윤순진 예컨대 1986년부터 원전이 가동된 전남 영광은 조수간만의 차가 심하고 수심이 낮은 서해안에 있는 까닭에 어획량과 양식업에 심각한 영향을 받았어요. 그런가 하면 부안의 위도는 2004년 중저준위방사성폐기물처분장과 중간저장시설 부지 신청을 했는데요. 영광 원전으로 인해 바닷물의 온도가 변화되어 어업에 상당한 피해를 입었지만 영광과 달리 피해보상을 전혀 받지 못해 지역경제가 심각한 상황에 처하니까, 위험시설이라도 경제적 지원을 해준다니 떠안겠다고 나선 거였지요.
에너지 패러다임 전환과 세계 원전정책의 추세
이필렬 결국 원자력은 그렇게 값싼 것도 아니고, 영구적이지도 않고, 깨끗하지도 않다고 할 수 있겠네요. 그럼에도 한국과 일본 정부는 원자력발전 확대정책을 고수합니다. 과연 전기라는 현대사회의 필수 에너지를 얻기 위해 원자력의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지, 다른 방향으로 전환하기는 불가능한지 따져볼 필요가 있습니다. 후꾸시마 사고 이후, 과거 노무현정부의 청와대 정책실장을 역임한 이정우(李廷雨) 경북대 교수는 사고가 있긴 했지만 원자력발전은 계속되어야 한다, 환경주의는 이상주의에 불과하다고 말한 바 있습니다. 이러한 발언은 우리사회에서 보수에서 진보까지 광범위하게 원자력을 찬성한다는 걸 보여주는 것이지요. 사실 개혁적이라는 참여정부도 원자력에 대해서는 현 정권과 다를 바 없었지요.
윤순진 원자력 문제는 하루아침에 해결될 수 없죠. 반대한다 하더라도, 당장 원전을 멈추자는 게 아니라 건설중인 원전 정도에서 멈추고 그 안에서 가능한 대안을 모색하자고 해야 할 거예요. 노무현정부가 원자력을 포기하지는 못했지만 국가에너지위원회, 지속가능한발전위원회를 통해 대화를 시도했다는 점은 현 이명박정부와 분명 다르다고 봐요. 당장의 경제적 파급에 대한 우려 때문에 시민과의 소통이 부족했고 원자력에 대한 높은 지지도가 상당한 부담을 주었을 것입니다. 저는 도리어 이정우 교수 같은 입장이나 원자력발전을 추진하는 쪽이 사실은 허황된 이상주의라고 봅니다. 우리가 시야를 넓혀서 현실을 직시하기만 해도, 원자력발전을 추진하는 데 앞서 검토해야 할 수많은 조건과 드러나지 않은 요소를 파악할 수 있을 거예요.
장정욱 이상주의 또는 실용주의 어느 입장을 취하든 정부가 원자력발전을 고수하겠다면 장점만 강조할 것이 아니라 단점도 제대로 설명해야 합니다. 또 국민은 국민대로 원자력이든 재생에너지든, 에너지 패러다임 자체를 풍요에서 절약으로 바꾸어야 하고요.
윤순진 한국은 1인당 총 에너지소비나 1인당 전력소비가 주요 선진국들보다 높지만 가정부문의 1인당 전력소비는 주요 선진국이나 OECD 평균에 비해서 낮습니다. 하지만 2000년에서 2008년 사이에 연평균 7.1퍼센트씩 빠르게 증가하고 있어요. 그런데 더 문제는 전기의 절반 이상을 산업이 소비하고 소비 증가율 또한 그쪽에서 빠르게 늘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현재의 산업구조를 유지하면서 전력 공급에 변화를 주는 것이 가능할지, 절약이나 에너지 효율 향상을 통해 ‘소비를 줄이면서 재생에너지를 확대한다’는 방침을 현실화할 수 있을지 의문이에요.
이필렬 중화학공업 비중이 높은 독일과 비교하면 좋겠어요. 그네들은 경제성장을 꾸준히 이어나가면서도 에너지 사용량이 1990년 이후 조금씩 줄고 있고, 전기소비 수준도 20년 전과 비슷하죠. 현재 독일의 1인당 전기 사용량이 한국보다 20~30퍼센트 적습니다. 에너지 소비가 늘어나야 경제규모가 커지는 것은 아니라는 방증이겠죠. 결국 에너지 소비를 줄이고, 장기적인 계획하에 에너지원을 재생가능에너지로 대체하면서 원자력발전을 포기하는 방향을 찾을 수 있다고 봅니다.
윤순진 현재 에너지 소비가 지금 수준을 유지하거나 넘어서는 가운데서는 그런 전환이 불가능합니다. 핵심은 산업, 가정, 수송 모든 분야에서 낭비되고 있는 에너지를 줄이는 거죠. 독일은 2050년까지 필요한 전력의 전부를 재생가능에너지로 공급하겠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는데, 그것의 전제는 에너지 소비에 대한 관점 변화예요. 에너지 소비 자체를 절반 이상 줄이는 걸 전제로 하고 있다는 겁니다. 아직은 경제성이 낮은 재생가능에너지를 확대하려면 정부 정책이 반드시 뒷받침되어야 합니다.
이필렬 앞으로 일본의 재생가능에너지 확대정책이 활발해지리라고 예상되지만, 결코 원자력을 포기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한국도 파이로프로쎄싱, 고속증식로에 대한 계획을 고수할 거고요. 일본이든 한국이든 플루토늄을 뽑아내서 축적하는 것은 잠재적인 또는 사실상의 원자탄 보유국가로 가는 것이고, 국제사회에서도 그렇게 인식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면 북한을 핵포기로 끌고가기도 어렵게 될 텐데, 이 점을 고려하면 원자력발전을 전력공급이나 경제성장의 관점만이 아니라 평화의 관점으로도 보아야 할 사안이 아닐까 합니다.
장정욱 일본의 2대 반핵단체 중 하나인 원폭피해자단체협의회는 원자력과 핵무기 모두에 반대합니다. 하지만 사회 전체적으로 반핵(反核)은 있어도 반원(反原)은 드뭅니다. 해결하기 힘든 간격이지요.
이필렬 시야를 좀 넓혀서 후꾸시마 사고 이후 세계의 움직임도 살펴봤으면 합니다. 일단 독일의 상당한 변화가 있었지요.
장정욱 한달 전 이스라엘이 원전건설 계획을 포기했어요. 아르헨띠나도 포기했습니다. 현재 일본과 베트남이 구두계약을 맺고 있는데, 베트남 쪽이 계약을 철회할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미국이 두군데를 취소했고요.
윤순진 그 나라 국민의 여론이 정책결정에 반영되느냐, 즉 민주주의 씨스템을 갖추었느냐 여부도 원자력발전 계획과 깊은 관련이 있습니다. 현재 원전을 열심히 건설하고 수입하는 국가들이 과연 민주적으로 운영되는 사회인지 따져볼 필요가 있어요.
장정욱 미국이 원전을 짓지 않는 이유 중 하나는 경제성과 그것을 보장하는 요금제도에 있습니다. 미국의 요금제 결정에는 시민단체도 참여해 필요없는 부분을 삭감합니다. 금융기관의 융자도 어렵기 때문에 원전사업을 추진하려 하지 않죠. 즉 요금제가 얼마나 투명하느냐에 따라 원전정책이 달라지는 겁니다. 모든 비용과 이익을 보장해주는 한국 및 일본의 제도와는 아주 다르지요. 한국과 일본의 전기요금제도는 건설중인 원전 및 사용전의 핵연료 구입비까지 요금에 포함시키는 ‘총괄원가제’가 있고, 이 비용에 일정한 이익을 보장하는 ‘공정보수율’을 곱하기 때문에, 건설비가 높은 원전을 건설하면 할수록 이익도 늘어나는 씨스템입니다.
이필렬 스웨덴이 1980년대에 원자력발전을 포기한 과정도 원자력발전이 민주주의의 시금석이라는 말을 입증합니다. 독일은 수많은 시민이 네트워크를 통해 서로 결합해서 반대의견을 개진한 결과, 보수당인 여당이 후꾸시마 사고 후 수명연장 결정을 철회하기도 했지요. 이에 비해 동아시아 3국의 시민사회는 아직 그만한 힘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습니다.
윤순진 핵위험은 국경을 넘나들잖아요. 그렇다면 원전 운영과정만이 아니라 원전 건설 자체에 국제적인 규제가 필요하겠다 싶어요.
장정욱 1970~80년대에 프랑스와 독일은 주로 국경지대에 원전을 지었는데, 그 건설과정에서 국가간 논의가 있었습니다. 또 근래 대만이 중국의 원전 입지에 대해 협의하고 싶다고 밝혔지요. 하지만 일본, 한국, 중국 사이에는 그런 노력이나 시도가 없어요.
윤순진 최근 중국이 원전 6기를 짓겠다고 발표한 백두산의 입지도 문제지요. 지금까지는 사고 이후 정보공조체제 정도를 수립하려고 했지만, 앞으로는 건설 이전단계부터 상호개입해야 할 겁니다. 여기서 중국의 계획을 막을 방법은 시민의 압력행사밖에 없다고 봐요.
이필렬 후꾸시마 사고에서 시작해서 한국의 원자력발전과 에너지정책, 세계 원전정책에 대한 영향까지 많은 이야기를 나누어보았습니다. 시간 제약으로 이제 마무리해야 할 것 같습니다. 후꾸시마 사고를 계기로 앞으로 한국과 일본의 시민들 그리고 정책 입안자들이 새로운 에너지와 사회씨스템, 좀더 평화로운 동아시아로 가는 길을 모색했으면 하는 바람을 품어봅니다. 물론 이 길이 쉽지 않겠지만 조금씩이라도 생각을 바꾸어가고 실천하는 노력을 해야겠지요. 긴 시간 수고 많으셨습니다.(2011년 4월 30일, 세교연구소)
--
* 4월 30일 본 좌담 이후 5월 6일 일본 수상은 하마오까 원전(현재 3기)의 가동정지를 중부전력에 요청했다. 일본 문부과학성 지진조사연구추진본부에 따르면 이 지역에서 앞으로 30년 이내에 진도 8 정도의 토오까이(東海)지진이 발생할 가능성이 87%이며, 현재 전력회사가 쓰나미 대책을 세우고 있지만 완공까지 최소 2년 이상 걸릴 것이 예상되므로 정지를 요청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일본 국민의 관심이 집중된 이곳만 정지시키는 조치가 다른 지역의 원전에 대한 비판이나 전반적인 원자력정책 및 에너지정책에 대한 논의를 회피하려는 것이라는 지적도 있다—장정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