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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최두석 崔斗錫
1955년 전남 담양 출생. 1980년『심상』으로 등단. 시집으로『대꽃』『성에꽃』『사람들 사이에 꽃이 필 때』『꽃에게 길을 묻는다』등이 있음. pinus@hs.ac.kr
산벚나무가 왕벚나무에게
하산하여 저자로 간 지 오래인
나의 친척이여
요즘 그대 집안의 번창이 놀랍더군
일찌감치 화투장에
삼월의 모델이 될 때부터 알아보았네만
요즘은 사꾸라라고 욕하는 사람도 없이
지역과 거리의 자랑인 양 심어
축제를 열기에 바쁘더군
그대의 꽃소식 신문과 방송이 앞다투어 전하니
가문의 영광이 따로 없네
지상에 사람들이 번성하는 한
기꺼이 그대 화사한 아름다움을 찬양하고
세상의 곳곳에 전파할 걸세
나야 뭐 늘 굼뜨지 않나
새 잎 내밀 때 조촐하게 꽃피고
버찌는 새들이 먹어 새똥 속에서 싹트는
예전의 습성대로 살고 있네
일찍이 목판으로 책을 찍거나
팔만대장경 만들 때
세상에 출입한 적 있지만
아무래도 내 살 곳은 호젓한 산속이네.
그 놋숟가락
그 놋숟가락 잊을 수 없네
귀한 손님이 오면 내놓던
짚수세미로 기왓가루 문질러 닦아
얼굴도 얼비치던 놋숟가락
사촌누님 시집가기 전 마지막 생일날
갓 벙근 꽃봉오리 같던
단짝 친구들 부르고
내가 좋아하던 금례 누님도 왔지
그때 나는 초등학교 졸업반
누님들과 함께 뒷산에 올라
굽이굽이 오솔길 안내하던 나에게
날다람쥐 같다는 칭찬도 했지
이어서 저녁 먹는 시간
나는 상에 숟가락 젓가락을 놓으며
금례 누님 자리의 숟가락을
몰래 얼른 입속에 넣고는 놓았네
그녀의 이마처럼 웃음소리 환하던
부잣집 맏며느리감이라던 금례 누님이
그 숟가락으로 스스럼없이 밥 먹는 것
나는 숨막히게 지켜보았네
지금은 기억의 곳간에 숨겨두고
가끔씩 꺼내보는 놋숟가락
짚수세미로 그리움과 죄의식 문질러 닦아
눈썹의 새치도 비추어보는 놋숟가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