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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평

 

서보혁 『코리아 인권』, 책세상 2011

진영논리에서 북한인권 구출하기

 

 

이성훈 李星勳

한국인권재단 상임이사 alee7080@gmail.com

 

 

12012통일, 평화 및 북한인권 문제에 대한 대표적 논객 서보혁(徐輔赫) 박사가 ‘코리아 인권’을 화두로 던졌다. 보수와 진보로 갈라진 한국의 인권운동 전체를 향해 북한인권이라는 오래된 그러나 현재진행형인 문제에 대해 진지한 말걸기, 즉 ‘정책대화’를 시도하고 있다. 이 책을 두고 아직 공개적인 논쟁이 전개되고 있지 않아 속단할 수는 없지만 북한인권 ‘딜레마’에 대한 새로운 돌파구는 아니더라도 북한인권 운동의 실천적 담론을 한차원 높이는 데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북한인권과 한반도 평화’라는 부제가 말하듯이 저자는 북한인권을 남한을 포함한 한반도, 그리고 평화와의 연관성에서 다룬다. 저자는 ‘한반도 인권’을 ‘남북한이 국제인권원리와 상호존중의 정신 아래 인권개선을 위해 협력해나가는 과정과 그 결과가 한반도 차원에서 나타나는 상태’라고 정의한다. 이를 통해 저자는 남북한이 상대의 인권문제를 도구화・대상화하지 않고 한반도 차원의 공동협력 과제로 인식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저자는 이미 『북한 인권: 이론・실제・정책』(한울아카데미 2007)에서 북한인권을 둘러싼 이론과 정책 일반을 정리한 바 있다. 이번에 펴낸 『코리아 인권』은 그 후속격으로 남한의 관점에서 북한인권의 주요 쟁점에 대한 정책적 대안과 로드맵을 제시하고 있다. 저자는 기존의 북한인권 담론과 실천을 다양한 시각에서 비판하고 남북한을 동시에 포괄하는 한반도 차원의 접근법을 보여주면서 그 방향으로 ‘맥락적 보편주의’ ‘거시적 역사구조주의’ 그리고 ‘남한과 북한을 동시에 다루는 포괄적 접근’을 세가지 원칙으로 세운다. 이에 따라 북한인권에 대한 일방적 비난과 압력이 아니라 ‘남북한 인권협력’을 위한 다양한 차원의 방안을 제시한다.

지금까지 한국사회에서 북한인권은 보수와 진보 또는 좌와 우를 구분하는 이념적 잣대였다. 참여정부 시절 북한인권은 보수진영에는 양날의 칼처럼 북한과 남한의 진보진영을 공격할 수 있는 전략적 소재였다. 한편 진보진영에는 아킬레스건 같이 섣부르게 건드리면 다칠 수 있는 정치적으로 민감한 이슈였다.

천안함과 연평도 사건으로 인해 안보문제가 불거지면서 인권이 다소 뒷전으로 밀리는 듯했지만 최근 중동과 북아프리카에서의 민주화 열풍을 계기로 북한의 민주화에 대한 관심이 다시 높아졌다. 그리고 국가인권위가 북한인권침해신고쎈터와 북한인권기록관을 설치하면서 과거와 달리 북한인권 문제를 적극적으로 다루기 시작했고 법사위에 계류중인 ‘북한인권법’ 제정을 요구하는 보수진영의 목소리가 커지면서 한국사회에서 다시 북한인권을 둘러싼 한바탕 논란이 예상되고 있다.

알다시피 북한인권은 90년대 식량난으로 인해 국내외의 관심을 끌었고 2003년 유엔인권위에서 북한인권 결의안이 채택되면서 국제사회에서 본격적인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2004년 미국, 2006년 일본에서 연이어 북한인권 관련 법이 제정되면서 북한에 대한 국제적 압력이 가속화되었다. 탈북자 수도 꾸준히 늘어나 이제 2만명을 넘어섰고 한국사회에서 탈북자 중심의 운동이 본격화되면서 북한인권 운동은 정권교체나 타도를 주 목적으로 하는 ‘북한민주화’ 운동과 전통적인 ‘인권’에 초점을 맞추는 운동으로 혼재 및 분화되고 있다. 한편 전통적인 통일운동과 평화운동, 그리고 대북지원운동 또한 인권과의 연계성에 대한 논의를 발전시켜왔다.

이러한 현실을 반영하듯 지난 몇년간 북한인권을 정책과 전략 차원에서 다루는 저서가 꾸준하게 발간되었다. 2008년 허만호 교수의 『북한의 개혁・개방과 인권』과 2009년 정태욱 교수의 『한반도 평화와 북한인권』은 각각 보수와 진보의 입장에서, 2010년 윤영관·김수암 박사가 엮은 『북한인권 개선, 어떻게 할 것인가』는 보수와 진보가 모여 중도적인 입장에서 북한인권을 다루었다. 이러한 성과를 바탕으로 지난해 12월 발표된 국가인권위의 『북한인권 개선을 위한 중장기 정책 및 로드맵 구축』은 지금까지 한국사회의 다양한 논의를 정리하고 정책적 행동계획안을 담고 있다.

이렇듯 다양한 시도가 이루어져왔지만 북한인권을 둘러싼 이념적 거리는 여전히 멀고 이론과 실천의 간극 또한 쉽게 좁혀지지 않고 있다. 특히 북한인권 개선을 위한 대안적 정책과 전략에 대한 이론적 논의는 여전히 취약하다. 이러한 상황에서 『코리아 인권』은 진보진영에는 북한인권에 대한 전향적 자세를, 보수진영에는 비판적 성찰을 촉구하고 있다. 평자가 보기에 이 책은 기존 보수와 진보의 진영논리의 포로가 된 북한인권 담론에 몇가지 새로운 시사점을 던지고 있다.

먼저 진보논객으로 알려진 저자는 북한에서의 심각한 인권침해가 북한의 독재체제에서 구조적으로 비롯하고 따라서 북한당국이 여기에 일차적 책임을 져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지적하고 있다. 그리고 북한민주화 또는 인권운동의 정당성과 필요성을 인정한다. 이러한 입장은 그동안 북한인권 문제를 외면하거나 공개적으로 다루기 부담스러워했던 일부 진보진영의 입장과 분명하게 차별화된다.

이어 저자는 지금까지 보수진영이 주장해온 운동의 논리와 방식에 대해 단호하게 문제제기한다. 이른바 ‘아스팔트 우파’ 또는 ‘묻지마 행동대’처럼 행동해온 북한민주화 또는 ‘반북한’ 운동이 북한인권의 실질적 개선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점, 그리고 의도하지 않은 결과나 역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점을 비판적으로 지적한다. 즉 중장기적 정책과 로드맵 없는 단기적・즉자적 행동주의는 지양하고 ‘현실적’ 방안을 찾아야 한다는 주문이자 충고이다.

한편 저자도 책의 맺음말에서 시인했듯이 현재 북한 내부에서 광범위하게 발생하고 있는 인권침해의 심각성과 시급성을 고려할 때 이 책의 주장은 다소 이상적이라는 비판을 피해가기 어렵다. 저자는 북한과 남한 당국 모두 인권문제를 협력과제로 다루고자 하는 전향적 자세를 취할 것이라 전제하고 있는데 북한당국이 인권을 남북협력의 의제로 수용할 가능성이 거의 없어 보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용산참사에서의 공권력 남용과 표현의 자유 위축 등 민주주의의 전반적 후퇴를 비판받는 MB정부가 인권에 대해 진정성과 의지를 얼마나 갖고 있는지도 의심스럽다.

이러한 정황에서 한국사회의 보수든 진보든 이 책에 담긴 ‘문제의식’에는 수긍해도 ‘현실인식’에 동의하기란 쉽지 않아 보인다. 안타깝고 답답한 현실이지만 『코리아 인권』은 ‘코리아’에서 북한이든 남한이든 인권에 관해서는 아직 ‘정책’은 멀고 ‘정치’는 가깝다는 것을 역설적으로 보여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