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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평

 

아포스톨로스 독시아디스 외 『로지코믹스』, 랜덤하우스 2011

지적 영웅들이 펼치는 그리스 비극

 

 

이강영李康榮

건국대 물리학부 연구교수 kylee14214@gmail.com

 

 

12575아리스토텔레스에 따르면 비극은 ‘고귀하고 완전한 행동의 모방’이다. 비극의 영웅들은 고귀한 행동을 하다가 운명에 의해 고난을 겪고 쓰러진다. 만화 로지코믹스(Logicomix, 전대호 옮김)의 저자들은 그리스인 후예답게 한편의 비극을 만들고자 한다. 그러면 이 책에서 보여주려는 고귀하고 완전한 행동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수학의 토대를 찾는 노력이다. 확실한 앎과 진정한 확실성을 위한 탐구. 인간의 행동 중에서 절대적인 진리를 추구하는 것만큼 고귀하고 완전한 행동이 또 있을까. 이 책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그리스 비극에서처럼 궁극적인 진리의 탐구라는 위대한 사명을 띤 영웅으로, 운명에 맞닥뜨려 고난을 겪으며 좌절하고 절망한다. 이러한 모든 과정은 그들이 수행하려고 했던 과업의 위대함과 숭고함을 보여준다.

영웅들의 이야기를 우리에게 들려주는 주인공은 20세기 영국의 자유주의 지성을 대표하는 철학자 버트런드 러쎌(Bertrand Russell)이다. 탁월한 수학자이자 논리학자인 그는 자기 자신을 포함하는 진술은 모순을 낳는다는 ‘러쎌의 역설’을 제시해서 집합론의 토대를 허물었고, 화이트헤드(A. Whitehead)와 함께 저술한 『수학원리』(Principia Mathematica)를 통해 수리논리학 연구의 기반을 닦은 분석철학의 창시자 중 한사람으로 꼽힌다. 그는 프레게(G. Frege), 무어(G. Moore), 화이트헤드 등 여러 인물들과 교류하면서 영향을 주고받았고, 비트겐슈타인(L. Wittgenstein)의 스승이었으며, 괴델(K. del) 같은 후학들에게 영감을 주었다.

러쎌은 또한 사회비평가이자 평화・반핵 운동가였고, 수많은 책을 써낸 손꼽히는 저술가였다. 그는 수상을 배출한 명문가의 귀족이며, 다양한 저서로 노벨문학상을 받았고, 세차례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했고, 두차례 실형을 선고받았고, 네번의 결혼과 아들의 자살을 겪었다. 이 다채롭고 긴 인생(러쎌은 98세까지 살았다) 중에서, 이 책은 수학과 논리학과 철학에 전념한 전반부의 생에 초점을 맞춘다. 하지만 이 책은 온전한 전기(傳記)는 아니며 그의 학문세계를 해설하는 입문서도 아니다. 수학적 표현으로 말하자면 이 책의 내용은 러쎌의 삶과 20세기 수리논리학 역사의 교집합이라고 하겠다.

펨브로크로지에서 보낸 어린 시절 기하학에 매료된 러쎌은 수학자가 되기로 마음먹지만, 유클리드 이후 확실한 지식을 대표하는 것으로 여겨졌던 수학도 그 논리적인 기초가 부실하다는 것을 깨닫고는 충격을 받는다. 실로 17세기에 뉴턴과 라이프니츠가 발명한 미적분학조차 엄밀한 기초 위에서 이해되는 것은 19세기를 지나, 인간이 무한이란 개념을 다루는 법을 배우고 나서다. 러쎌은 수학의 기초를 확립하기 위해서 논리학을 연구하며 지적 모험의 길을 떠나고, 그 길에서 많은 지적 거인들을 만난다. 논리학을 위한 새로운 언어를 제시한 프레게는 러쎌에게 수리논리학이라는 길을 열어주었다. 일찍이 러쎌에게 수학의 확고한 토대가 필요하다는 것을 가르친 화이트헤드는 스승이자 동료인 동시에 가장 가까운 친구였고, 자신이 사랑하는 여인의 남편이기도 했다. 독일의 위대한 수학자 힐베르트(D. Hilbert)는 수학을 공리적 체계 위에 세우려고 노력하며, 1900년 유명한 힐베르트의 문제들을 발표한다. 그리고 러쎌의 학생이었으며, 러쎌이 자신에게 평생 가장 큰 지적인 충격이었다고 한 비트겐슈타인은 러쎌조차도 압도하는 열정과 지성으로 논리학을 파고들었다.

러쎌이 만난 수학과 논리학의 이 영웅들은 대부분 광기에 젖어 있다. 괴팍한 프레게, 정신병원에 수감된 칸토어(G. Cantor), 신에게 자신을 제정신으로부터 지켜달라고 외치는 비트겐슈타인, 정신병에 걸린 아들을 외면하는 힐베르트, 망상으로 스스로 굶어죽은 괴델. 정신병력이 있는 혈통 때문에 확실한 지식인 기하학에 매료되고 논리를 사랑했던 러쎌이, 다시금 광기에 시달리는 사람들의 세상을 만난다는 점은 아이러니컬하다. 그들은 모두 합리성의 낙원을 꿈꾸었으며 그곳에 가닿기 위해 열정과 노력을 아끼지 않았지만, 이는 인간 이성의 한계를 넘는 거대한 일이어서 고독하고 나약한 개인이 감당하기에는 힘든 것인지 모른다. 그래서 러쎌은 자신의 연구를 되돌아보며 이렇게 애절하게 말한다. “『수학원리』는 내가 세상을 향해 내민 손이었는데…… 누가 그 손을 잡아줄까요?”

낙원을 향한 길은 이토록 너무나 불안했으며, 틈만 나면 진창에 발이 빠졌다. 그리고 결국에는 실패가 예정되어 있었다. 이것이야말로 비극에서의 영웅들의 운명이다. 괴델이 불완전성 정리를 발표한 것을 들은 뒤 망연자실하게 서 있는 힐베르트의 모습은 운명에 의해 파멸한 영웅의 모습 그 자체다.

이 책에서는 세개의 이야기가 겹쳐서 진행된다. 하나는 저자들이 책의 내용에 관해 토론하는 이야기, 두번째는 러쎌이 1939년 미국의 어느 대학교에서 강연하는 이야기, 그리고 러쎌의 강연을 통해서 전개되는, 논리학을 탐구한 러쎌의 삶이라는 세번째 이야기다. 이야기는 액자 속의 액자처럼 겹쳐 있다. 액자는 해설을 위한 유용한 장치면서, 주제를 각각 다른 방식으로 이야기하는 변주이기도 하다. 가장 안쪽 액자의 내용인 수학의 토대를 찾는 러쎌의 학문적 여정은 괴델의 불완전성 정리로 인해 궁극적으로 실패로 귀결된다. 즉 우리는 세계의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좀더 정확히 표현하자면 해결할 수 없는 문제가 반드시 존재한다). 그러면 두번째 액자인 러쎌의 강연에서 결론은 무엇인가? 러쎌은 강연의 말미에서 정말로 어려운 문제에 직면했을 때 공식의 적용은 불충분하지만, 또한 궁극적으로 우리가 기댈 곳은 합리성밖에 없다고 말한다. 그리고 자유주의자답게 최종 결정은 개인의 것으로 남긴다. 결국 러쎌은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해야 한다”는 비트겐슈타인의 입장을 받아들인 것으로 보인다.

가장 바깥쪽 액자는 책 안에서 이 책에 대해 이야기하므로, ‘자기 자신을 포함하는 진술은 필연적으로 모순을 가진다’는 러쎌의 역설을 연상시킨다. 그러므로 가장 바깥쪽 액자에서는 결론을 말하지 않고 다만 보여주기만 한다. 저자들은 아이스킬로스의 비극 『오레스테이아』의 마지막 장면을 함께 감상하는 것으로 결말을 대신한다. 복수를 위해 살인을 저지른 오레스테스의 모순적 상황, 비극은 이 모순을 어떻게 해결했는가? 그 결론은 그들이 그린 만화의 마지막 장면, 즉 러쎌의 강연의 결론과 어떻게 연결되는가? 논리학은 이 세상의 문제들에 대한 답을 주는가? 우리 인생에 대해서는 어떤가? 진리에 대해서는?

하지만 이 책에서 굳이 이런 질문에 대한 결론을 찾을 필요는 없다. 이 책은 논쟁적인 책이 아니라 저자의 말대로 ‘99.9퍼센트 이야기책’이므로 우리는 이 책을 통해서 세계대전으로 얼룩진 20세기 전반의 유럽사를 배경으로, 위대한 괴짜들과 수학의 기초, 그리고 무한과 논리학의 광기가 어우러진 환상적인 세계를 엿보는 것으로 충분하다.

마지막으로, 그런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 왜 하필 만화책인가? 이유는 아주 명쾌하다. 이 책의 앞부분에서 저자의 한 사람인 크리스토스(Christos Papadimitriou)가 이 질문을 하자 주 저자인 아포스톨로스(Apostolos Doxiadis)는 이렇게 대답한다. “영웅들 이야기에 만화만 한 게 없으니까…… (그들은) 열정적이고…… 고난을 겪는 진정한 슈퍼영웅들이지.” 즉 이 책은 그리스 비극이자, 슈퍼 히어로물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