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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10815

최민석 崔民錫

1977년 경북 포항 출생. 제13회 창비신인소설상 수상. searacer@naver.com

 

 

 

쿨한 여자

 

 

1

그녀를 다시 만난 건 순전히 외로웠기 때문이다. 돌려줄 것이 있거나, 할 말이 남아 있거나, 둘 사이에 청산할 빚이 있진 않았다. 물론 약속은 있었다. 헤어지더라도 2010년 남아공 월드컵은 같이 가자는 터무니없는 약속이었다. 당연한 말이지만, 그것 때문에 만났다고 하면 나조차 콧방귀를 뀔 것이다. 하지만, 외로운 것 이상으로 무언가가 있긴 했다. 나는 그 무엇이 무엇인지 잘 모르겠다. 우리의 이별에는 뭔가 정확히 매듭짓지 못한 것이 있어서, 그것을 완전히 묶어버리거나 아예 풀어버리거나 해야 하는 과정이 남아 있었다. 물론 그러지 못한 채 3년이 지났고, 그사이 나는 언어로 설명할 수 없는 그 감정의 실체를 서로 외로웠다고 표현하기로 했다. 언어란 이렇게 항상 카탈로그에 존재하는 옷과 같다. 실제로 입어보면 싸이즈가 맞지 않거나 색상이 약간 다르거나 해서 온전한 내 것이 될 수 없다.

어쨌든 우리는 외로웠던 것 같다. 정확히 말하자면, 내가 외로웠다. 왜냐면 그녀에게는 남자친구가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만나기 전에는 그녀에게 남자친구가 생겼다는 것을 확인할 길이 없었다. 누군가를 만나고 있을 거라는 심증은 있었지만, 그걸 확인할 뚜렷한 길은 없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그녀는 나와 헤어지고 난 후 단 하루도 쉬지 않고 여러명(열두명은 충분히 넘을 것이다)의 남자친구를 만나왔다. 대부분 멍청한 이들이었길 바란다. 하루도 쉬지 않았다는 것은, 남자친구가 교체되는 타이밍에 약간의 중복된 시기가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서글프긴 하지만, 나와 처음 연애를 시작할 때도 그랬다. 따라서 크게 낯설지는 않다.

말하자면, 나는 그녀의 남자친구가 군대 간 틈을 꿰차고 새로 등장한 골게터였다. 골키퍼는 나라를 지키느라 몹시 바빴으므로, 한가하게 여자친구 따위를 지킬 수만은 없었다. 그것은 주로 할 일이 없는 백수나 설거지를 취미로 삼는 남편들이 하는 일이라고 이 사회는 가르치고 있다(이것은 절대로 내가 한 말이 아니다). 은하계에서 가장 절박한 생물인 군인의 여자친구를 뺏은 나는 은하계에서 가장 비열한 생물이라는 생각을 5분 정도 하기는 했으나, 그뿐이었다. 나로서도 어쩔 수 없었다.

맹세코, 그녀는 남자친구가 있다는 말을 한 적이 없다. 나 역시 우주에서 가장 불쌍한 생물이던 시절, 나 하나쯤 없어도 절대 무너지지 않을 이 나라를 지키느라 가장 야비한 생물에게 여자친구를 뺏겼던 기억이 있다. 그러므로 내가 그녀의 복잡한 연애관계도를 조금이라도 눈치챘다면, 아마 그녀의 가여운 생물에게 상처를 주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당연히, 그녀를 쏠로라 생각했다.

내게 적극적으로 호감을 보이고, 만날 때마다 외롭다는 말을 호흡처럼 해대는 그녀를 누가 쏠로로 생각하지 않았을까. 아니다. 어쩌면 내 이기적인 무의식의 세계 속에서 나의 개인적 희망이 잠재적 추정을 사실로 단정했는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그녀에게 불쌍한 남자친구가 있다는 것을 안 것은 우리가 사귀기로 약속하고도 한참 후였다.

어느 날, 그녀는 전화기를 꺼놓았다. 나는 여러통의 전화와 메씨지를 보냈지만, 그녀는 대답이 없었다. 그러다 하루 뒤에 연락이 왔다.

남자친구가 휴가를 나와서 전화를 수백통씩 해대는 바람에 잠시라도 전화기를 켜놓을 수 없었어,라고 몹시 태연히 말해 나는 아연하고 말았다. 마치 오늘 날씨는 제법 나쁘지 않은데,라는 유의 메마른 말투였다. 그러고는 이내 짧게 “미안해”라는 말을 덧붙였다. 나는 격정적으로 불타오르는 분노를 대답 대신 침묵으로 표현했다. 나의 분노가 약 5초간 타오르자, 그녀는 “진.심.이.야.”라고 말했다. 꽤나 확신에 찬 목소리였다. 한음절씩 끊어서 말하는 그녀의 말에선 방탕의 종지부를 찍고 신을 영접한 이의 신앙고백 같은 느낌까지 감돌았다. 그러고선 급작스레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

 

“지금까지 너 같은 사람을 만나지 못했어. 확신하건대 앞으로도 너 같은 사람을 만나진 못할 거야. 내 평생의 사람이야. 혹시 만약에 우리가 헤어지더라도 말이야.”

 

음성이 들어온 곳은 달팽이관이었지만, 반응이 가장 먼저 나타난 곳은 동공이었다. 갑작스럽고 황당한 고백에 나의 동공은 확대되었다. 순간

 

“나랑 바람피워놓고서, 이제 와서 무슨 애정 타령이야. 니가 하면 사랑이고, 남이 하면 불륜이야. 사람을 이런 추잡한 치정에 끌어들여놓고, 이제 와서 사랑이라니. 말만 그럴싸하면 다야. 뭐? 평생의 사람? 이게 무슨 뚱딴지 같은 소리야, 정말. 그러고서는 나보고 쿨하지 않냐고? 도대체 뭐가 쿨한 건데.”

 

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나도 모르게 넘기던 침이 목에 걸려 어— 어—, 하는 갈라진 소리만 냈다. 그러자 그녀는 “너도 같은 생각이길 바래. 진.심.으.로.”라고 다시 힘주어 말하고선, “푹 자. 자고 나면 정리될 테니”라며 전화를 뚝 끊어버렸다.

아, 여기서 그녀가 나와 동갑이라고 착각하지 말길 바란다. 그녀는 나에게 반말을 했으나, 나이는 일곱살 아래였다. 언제부터였는지 기억나진 않지만, 어느 날 보니 그녀는 내 이름을 부르며 반말을 하고 있었다. 정확하진 않지만, 내 기억으로는 우리가 살을 섞고 난 후였던 것 같다.

다시 고백 장면으로 돌아가자면, 나는 전후맥락이 생략된 급작스러운 발표문을 들은 사람처럼 그 고백에서 진심을 눈치채지 못했다. 붉으락푸르락한 채로 전화를 걸까 말까 생각하다가, 전화를 거는 것이 과연 의연과 솔직함의 어디쯤에 해당하는 행동일까 고민했다. 고백의 진실성 따위에 대해선 신경쓰지 못했다. 당시의 나로선 그랬다. 하지만 6년의 시간이 흐른 후, 이 말이 완벽한 진심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2

우리는 헤어졌다. 하지만 엄밀히 말하자면, 이 말은 맞기도 하고 틀리기도 했다. 우리는 헤어졌지만, 헤어지지 않은 사람처럼 지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서로 안부를 묻거나, 가끔 만나서 영화를 보거나, 어쩌다가 술에 취해 서로를 찾거나 그러지는 않았다. 연락의 빈도를 기준으로 한다면, 우리는 헤어졌다는 말이 철저히 맞았다.

공식적으로 완벽히 헤어진 사이였다.

하지만 서로의 동향을 파악하고 있는 것을 기준으로 한다면, 우리는 만날 때보다 더 자주 서로를 찾았다. 그녀가 이별 후에 가장 먼저 한 일은 온라인상에 있던 나와의 모든 연결망을 끊어버린 것이었다. 온라인 네트워크의 일촌관계는 물론 주로 쓰던 메씬저 친구부터 거의 쓰지도 않는 메씬저까지. 지갑을 잃은 사람이 기억을 짜내어 모든 동선을 추적하며 하나씩 가능성을 소거해가듯, 그녀는 나와 닿았던 모든 연결망들을 차례로 잘라냈다. 내 쪽에서는 헤어져도 그런 것쯤은 추억으로 놔두어도 상관없지 않으냐는 생각이었지만, 그건 낙천적인 기대일 뿐이었다. 그녀는 단호했다.

그러니 의아할 수밖에 없었다. 모든 접근경로를 차단하더니 오히려 온라인상에서 나를 열심히 찾고 있었다는 것이. 우연의 일치라고 생각했지만, 내가 미니홈페이지에 게시물을 하나 올리면, 그녀는 마치 대화하듯이 그녀의 미니홈페이지에 답장을 남겼다. 알 수 없는 것이 여자의 마음이라고 하지만, 나로서는 도무지 그녀의 심리를 이해할 수 없었다. 자연적인 치료의 시간을 보낸 후, 서서히 내 생각이 났다고 이해해야 하나 싶었지만, 나로서는 정확히 알 길이 없었다.

어쨌든 그녀가 온라인상에서 나를 주시하고 있다는 것을 확실히 알게 된 것은 내가 한 외화의 영어대사를 내 홈페이지에 올렸을 때였다. 나는 문법이 틀린 영어대사를 쓰기 좋게 문법을 고쳐 올렸다. 그런데 그녀가 그것을 그대로 인용한 것이었다. 바보가 아닌 이상 알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온라인상에서 나를 쭉 관찰해왔다. 우리가 헤어진 지 1년이 지났을 때였다.

그녀가 이런 행동을 보이는 동안 나는 어땠느냐 하면,

… 역시 그녀를 관찰해왔다. 주도면밀하게.

물론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었다. 헤어지자마자 나는 지구상에서 가장 청량한 해방감을 느꼈다. 공기는 상쾌했고, 발걸음은 가벼웠고, 폐 속까지 가득 차는 자유로 나의 몸은 부풀었다.

그녀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유형의 사람을 만날 수 있다는 기대감에 부풀어 몸은 허공중에 부유하곤 했다. 표면적으로는 당장은 누구와도 만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가득했지만, 돌이켜 생각해보니 그녀에 대한 피로감 때문에 완전한 반대 유형을 찾았는지도 모르겠다. 그녀는 사랑해주기보다는 사랑받길 원했고, 이해하기보다는 이해받길 바랐고, 내 편이 되어주기보다는 자신의 편이 되어주길 원했다. 그렇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마는 그녀의 남자로 산다는 것은 상당히 많은 에너지를 요하는 일이었다. 게다가 나는 크게 얼굴을 따지지 않는 편인데, 공교롭게 그녀는 꽤나 예쁜 편이어서(모델을 하기도 했다. 물론 잠시였다) 자신의 미모에 대한 자부심이 상당히 강했다. 자신을 사랑한다는 것은 분명 긍정적인 기운을 가져다주는 것이지만, 그것이 과할 때는 옆에 있는 사람에겐 적지 않게 피곤한 일이었다. 나로서는 그저 분위기가 귀엽고 상큼해서 그녀와 함께 있으면 왠지 모를 기쁨 같은 것이 생기는 것이 좋았지만, 그녀는 자신의 외모에 반하지 않았다는 것에 대해 상처를 받았다. 나는 물론 그녀가 원하는 대로 외모에 대해 찬사를 늘어놓았지만, 아무리 수사를 갖다붙여도 진심이 수반되지 않은 수식어는 길거리에서 파는 싸구려 장미와 다를 바 없었다. 그녀는 전혀 기뻐하지 않았다. 그저 나의 노력을 가상하게 생각해주는 정도였다. 그녀를 달래고자, 눈은 유리구슬 같고, 다리는 우유 빛깔이고, 엉덩이는 탱글탱글한 비치볼 같아서, 좌우지간 세상에서 가장 예쁘다고 입버릇처럼 말했다. 그렇게 칭찬하려고 맘먹고 보니 칭찬할 구석이 자꾸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빠져들었다고 습관처럼 말하다보니, 어느 순간 그녀의 외모가 정말로 예뻐 보였다. 심리가 말을 따라간다 해야 하나. 점차 그 말은 내 의식을 지배하기 시작했고, 결론은 이별 후에 내려졌다. 종합하자면, 그녀와 헤어지고 난 후에 그녀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워 보였다. 어느 누구보다도.

 

3

퇴근에 관한 한, 명백히 두 부류가 존재했다. 정시 퇴근을 하는 부류와 밤늦게까지 야근을 하는 부류. 나는 가급적이면 정시 퇴근을 하려는 부류에 속했다. 회사 지하주차장을 벗어나자마자, 척 맨지오니의 「필 쏘 굿」(Feel So Good)을 플레이시킨다. 회사가 있는 여의도에서 홍대까지 ‘필 소 굿’ 한곡을 듣는 시간이면 도착할 정도였다. 먼저 트럼펫 소리가 나오고, 거기에 베이스 음과 기타 음이 얹어진다. 느린 듯 서서히 풀어놓는 연주가 1분 정도 지나면 차는 마포대교 위를 달리고 있다. 이때부터 기타와 씸벌즈, 퍼커션이 차례로 합류하며 퇴근의 풍경이 빚어진다. 데킬라 썬라이즈의 잔 밑동처럼 물들기 시작하는 여의도의 하늘과, 강변북로 위에서 미끄러지기 시작하는 자동차들. 차창을 활짝 내린 후 척 맨지오니가 뿜어내는 트럼펫의 소리와 바람의 소리를 혼합시켜, 나와 그의 합주로 하루를 내린다. 942초에 달하는 곡은 교통정체가 없는 한, 여의도에서 홍대까지 가는 데 빠짐없이 딱 맞아떨어졌다. 길이 막히면 오히려 한번 더 플레이버튼을 눌렀다. 집에 도착했을 때, 곡이 채 끝나지 않으면 차키를 ACC 상태에 놓고 곡을 따라가고 있는 나의 감정을 흐르게 했다. 거의 일년 동안 어김없이 퇴근을 할 때면 꾸준하게 「필 쏘 굿」을 들었다. 말 그대로, 기분이 좋았다.

이런 식으로 나는 좋아하는 것이 생기면 못 말릴 정도로 반복해서 그것만 한다.

약간 탄맛이 나는 에티오피아산 하라 커피를 300잔 이상 마셨고, 매번 지기만 하는 서울 연고의 야구팀 경기를 100번 이상 보았고, 비틀즈의 ‘러버쏘울’(Rubber Soul) 앨범을 처음부터 끝까지 300번 이상 들었고, 「영웅본색」 속편을 45번 봤다. 무라까미 하루끼의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20번 이상 읽었고, 혼자서 영화를 1095번 보았고, 해진 회색 청바지를 1080번 입었고, 기네스 맥주를 350병 마셨고, 하늘 사진을 1300장 정도 찍었고, 고향집 앞의 파도를 100시간 넘게 보았다.

 

그리고 그녀의 목에 셀 수 없이 많은 키스를 했다.

 

다른 것은 대부분 헤아릴 수 있을 정도지만, 이것을 헤아리는 것은 내 머리의 한계를 뛰어넘는다.

그녀는 내가 뒤에서 안으면 언제나 안식을 취하듯 고개를 길게 빼어 오른쪽으로 늘어뜨렸다. 머리카락이 가지런히 아래로 떨어졌고, 길고 하얀 왼쪽 목이 드러났다. 나는 늘 목과 쇄골의 중간 지점에 가벼운 키스를 했다. 이상하리만치 그때만은 항상 욕망이 개입되지 않은 순수한 소년과 소녀의 접촉이었다.

때론 입술 대신 뺨을 그 자리에 대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그녀는 살며시 눈을 감으며 미소를 지었다. 계산할 수 없을 만큼 많이 했으나, 매번 같은 미소를 지었다. 지겹다거나 의무감을 느낀 적은 단 한번도 없었다. 매번 근사했다. 정말로 괜찮은 순간이었다. 내가 좋아했던 것들 중에 가장 많이 해본 것 같다. 하지만, 그래서 가장 아쉽다.

목에 키스를 하는 대신, 새로 자리한 게 바로 그녀의 사진을 보는 일이었다. 정작 우리가 연애를 할 때는 그다지 많이 보지 않았으나, 헤어지고 난 후부터는 그녀의 사진을 보는 것이 어쩐지 나의 취미 비슷한 게 돼버렸다. 나는 출근하기 전 머리를 만지고, 컴퓨터를 켜서 오늘의 날씨를 확인한 후, 그녀의 사진을 보았다. 일을 하다가 피곤해지면 동료들은 짬을 내 커피믹스를 타 먹거나 간단한 스트레칭을 했지만, 나는 습관적으로 휴대전화 속의 사진을 보았다. 3년이나 돼 통화도 잘 안되지만, 사진 때문에 전화기를 못 바꾸고 있다. 술을 마시다가도 문득 대화에서 소외되면 또 사진을 봤다. 누군가를 기다리거나 예상치 못하게 실내에 혼자 있게 되면 어김없이 그녀 사진을 봤다.

퇴근을 하면 홍대 까페에서 친구나 어린 여자들을 만나서 역동적인 대화 속에 끼어 의미를 찾아보려 했으나 언제나 생산성이 없다는 것을 깨달을 뿐이었다. 결국 혼자서 한강변을 뛰다가 집에 오면 샤워를 하고, 베란다를 타고 들어온 찬바람이 내 몸을 충분히 쓰다듬을 수 있도록 멍청히 앉는다. 그리고 다시 그녀의 사진을 본다.

그녀의 사진은 아마 13,873,456번 정도 본 것 같다.

 

4

구름은 삼십분째 한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간혹 세시 방향으로 항로를 꺾긴 했지만, 나의 오랜 경험에 견주어볼 때 그것은 미세한 이탈일 뿐이다. 오늘은 북동풍의 영향인지, 꾸준히 한시 방향을 고집하고 있다.

아,

지금 나는 테라스에 앉아 구름을 관찰하고 있다. 일요일 오전 열한시쯤이 구름을 보기에 적합한 시간이다.

테라스 아래 공원에서는 초등학생쯤으로 보이는 사내 녀석과 여자아이가 두꺼비집을 짓고 있는데, 아무래도 사내 녀석의 관심은 여자아이의 손을 만지는 데 있는 듯하다. 집 만들기보다는 손을 주물럭거리는 데 집중하고 있다. 여자아이의 표정은 어찌 보면 싫지 않다는 것 같고, 어찌 보면 두꺼비집을 만들려면 이 정도는 감수해야 하지 않나 하는 초연함 같은 것이 묻어난다. 아무튼 남자아이는 상당히 집중하여 조몰락거린다.

언제부턴가 아이들의 노닥거리는 소리가 마치 ‘구름의 흐름을 감상하는 데 필요한 명상음악’ 같은 것으로 자리잡아버렸다. “오늘은 평일동안 몹시 지친 구름이 일요일을 맞이하여 세상에서 가장 의욕 없는 거북이처럼 뉘엿뉘엿 흘러가고 있습니다. 오늘의 퍼포먼스에 맞는 음악은 아무래도 리비도로 가득 찬 욕구불만 소년의 주물럭거리는 소리가 되겠습니다.” 구름은 느릿느릿 기어가고, 배경음악은 주물럭주물럭거린다. 느릿느릿, 주물주물. 꾸물꾸물, 또 역시 주물주물.

요약하자면,

그렇다. 나는 할 일이 없다.

 

그녀와 헤어지고 난 후 내가 한 일이라곤, 봄과 여름엔 매번 지기만 하는 야구를 보고 한뼘 더 염세적으로 변하고, 가을이 되면 높아진 하늘에서 더욱 높아진 구름을 보느라 목 아파하고, 겨울이 되면 ‘엄마와 아빠가 방에서 나오지 않아요’ 따위의 논리라곤 찾아볼 수 없는 곡들의 인디 밴드 공연을 본 게 전부였다. 흘러가는 구름을 보고, 쏟아지는 햇살에 간지럼 타고, 스며드는 아이들의 뜀박질 소리를 듣고, 창을 타고 넘어오는 새소리를 듣는 게 일상의 전부였다(간혹 시를 쓰긴 했지만, 나의 소외된 취향을 입증할 뿐이었다).

물론 나도 직장이 있었으니, 처음부터 이렇게 시간의 흐름에 멍청히 몸을 맡긴 채 지내진 않았다. 하지만 회사에선 내게 전혀 맞지 않는 부서로 이동시켜 역시 전혀 맞을 수 없는 일을 주었다. 이를테면 무슨무슨 기획 비슷한 건데, 여전히 그게 뭔지 모르겠다. 나는 두달을 고민한 후 역시 어느 일요일 흘러가는 구름과 비둘기를 20분간 보다가, 사각팬티 차림으로 책상 앞에 앉아 사직서를 썼다.

그후론, 상당히 한가해졌다. 의도한 것은 아니었지만, 특별히 할 게 없었으므로 나는 그만 회사에 “작가가 되겠습니다”라고 말해버렸다. 역시 간부진은 부서 이동 때문일 거란 고민 따윈 하지 않고 “어허, 예술 발전에 힘써주시게나”라며 사표를 수리해주었다. 순식간이었다. 소문이 회사와 주변에 삽시간에 퍼지자, 나는 어쩔 수 없이 한 말을 지키기 위해 꾸역꾸역 말도 안되는 글들을 쓰기 시작했다. 약간 고민을 하기도 했지만 주로 내키는 대로 써버렸다. ‘원숭이 인간의 사랑 이야기’나, ‘흑인 집에 사는 쥐와 백인 집에 사는 쥐의 취향 차이’나, ‘안드로메다 황제의 서자가 금성의 천민을 짝사랑하는 이야기’ 등의 글을 썼다. 전혀 팔리지 않았다. 관심을 보이는 출판사는 응당 없었고, 어머니조차 심드렁했다.

생활이라고는 그저 눈을 뜨면 그녀의 사진을 보다가, 골목을 노려보다가, 인스턴트 쌀밥을 데워먹고 까페로 나가 글을 쓰고, 한강변을 달리고 집에 돌아와 또다시 거리의 소리를 듣다가, 그녀의 사진을 보고, 홈페이지를 보다가 잠드는 것이었다.

그렇게 2년을 보내고 있다. 그사이 이렇다 할 여자친구는 없었다. 물론 몇몇의 여자아이들과 데이트 비슷한 걸 하기도 하고, 밤바람이 시원하면 키스를 하거나 얼떨결에 껴안기는 했지만, 뭔가 진중하게 발전한 적은 단 한번도 없었다.

나이가 어리건 많건, 얼굴이 예쁘건 예쁘지 않건, 날씬하건 통통하건, 누구를 만나든지 나와 상대 사이에는 그녀가 버티고 있었다. 좀더 가까워지려 하면 그녀가 마치 연애를 관장하는 여신이라도 되는 것처럼 상대를 밀쳐냈다. 엄밀히 말하자면, 상대를 밀쳐낸 것은 감정의 성벽에 그녀를 둘러쌓아놓은 나 자신이었다. 아무리 부인하려 해도, 그녀로부터 해방될 수 없었다. 역시 아무리 시간이 지나고, 아무리 연락을 안하고, 아무리 만나지 않더라도, 내 마음이 진정한 이별을 한 것은 아니었다.

게다가 우리에겐 얼토당토아니한 약속이 있었다. 남아공 월드컵에 같이 가자는.

 

나는 아무렇지 않다는 듯이 전화를 걸었고, 그녀 역시 아무렇지 않다는 듯이 전화를 받았다.

TV 화면 한구석에는 ‘남아공 월드컵 D-15일’이란 자막이 걸려 있었다. 남아공에 갈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연락을 한 건 아니었다. 불과 보름을 앞두고 경기 티켓은커녕 숙소나 비행편도 구해질 리 없었다. 다만 남아공 월드컵을 그냥 지나가게 할 수는 없었다. 이번을 그냥 보내면 또 멍청히 매일 그녀의 흔적들만 복기하며 허튼 상상의 늪에서 허우적거릴 게 뻔했다.

놀라웠던 것은 그녀의 반응이었다. 그녀는 전화를 받자마자 전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응, 그래. 만나야지. 언제 볼까?” 그러고선 잠시 다이어리 같은 걸 뒤적거리는 소리를 요란스레 내더니 “20일이 좋겠네. 아… 아니, 쏘리. 20일엔 회식이 있네. 22일이 좋겠어. 저녁 8시쯤. 어때?”라고 예사롭게 말했다.

나는 그녀의 빠른 판단과 쉬운 결정에 당황해, “어… 어… 무… 물론, 나도 그때가 좋지”라고 멋쩍게 말했다. 그녀의 말투는 뭐랄까, 마치 이제껏 줄곧 데이트를 해오다가, 오늘 즐거웠으니 다음엔 또 언제 볼까,라는 식이었다. 나는 그녀의 기이한 반응에 약간 굳어져, 그만 “어. 그럼 이쁘게 입고 오~기”라며 길게 끝말을 빼버렸다. 연애할 때의 버릇이었다. 그녀 역시 태연하게 “나도 이제 늙었어. 예쁜 건 잘 모르겠고, 짧은 거 입고 나갈게. 그럼 잘 자. 옛날처럼 밤마다 이상한 상상 하지 말고”라고 말하곤 전화를 뚝, 끊었다. 나는 순간, 이게 뭔가 싶었다. 우리는 분명 이별중이었고, 명백히 말하자면 이별하고도 3년의 시간이 지났다. 그동안 어떠한 연락도 없었다. 그런데 지금은 마치 하루 종일 같이 있다가 막 집에 들어가서 통화하는 사이 같다. 무척 살갑지는 않았지만, 연애의 청춘기와 권태기 중간쯤에 있는 연인들의 통화와 엇비슷하다. 예전에도 몇명의 여자와 헤어지고 연락이 닿긴 했지만, 이러지는 않았다. 그녀는 확실히 뭔가가 달랐다.

 

5

“왜 자꾸 자기라고 불러?”

그녀가 나를 바라보며 물었다. 생각에 빠진 듯이 고개를 숙이고 있던 나였지만, 실상은 정말 짧은 치마를 입고 온 그녀의 허벅지를 감탄하며 보고 있었다. 그녀는 흐늘흐늘한 커튼 조각 같은 소재의 하늘색 짧은 치마를 입고 왔다. 걸을 때마다 반동을 그대로 받아 펄럭거리는 치마였다. 그리고 목 어디선가 기분 좋을 만치 상큼한 오렌지 향이 피어났다.

우리는 합정동의 연탄공장을 개조한 까페의 쏘파에 나란히 앉았는데, 경박한 시선은 자꾸 허옇게 드러난 허벅지 쪽으로 향했다. 치마 끝단에서 무릎까지 허벅지가 약 20cm 정도는 드러난 것 같았다. 그녀의 허벅지는 그새 많이 야위고, 근육이 잡혀 있었다. 삶의 고단함이 근육으로 드러난 것 같아서 어쩐지 서글퍼졌다.

나는 승무원 생활이 힘든가보다, 하고 생각했다. 아, 그녀는 나와 사귈 때 잠시 마케팅회사에서 일했으나, 헤어지고 난 후엔 항공사 승무원이 되었다.

아무튼 지금 고개를 들면 그동안 넋 놓고 허벅지를 봤다는 것을 들킬지 몰라, 계속 고개를 숙인 채 자기라고 부르는 게 가장 편하다고 했다. 실제로 그랬다. 오랜만에 불러 어색한 감이 없지 않았으나, 다른 표현이 더 어색했다. 이름을 부르거나, 이름 끝에 ‘씨’자를 붙일 생각만 해도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반면에 그녀는 오빠라고 불렀다. 그녀는 의식적으로 그렇게 부르는 거라 했다. 예전에 나는 항상 애칭으로 불렸다. 이름이나 오빠로 불린 적은 없었다.

“혹시 만나는 사람 있어?” 내가 묻자 그녀는 “뭐, 어쩌다 보니”라며 씽긋 웃어 보였다. 그러곤 이내 덮어두었던 실수를 고백한 사람처럼 커피숍 한쪽 벽을 뚫어져라 봤다. 따라 보았지만 노출된 콘크리트 회벽 빼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녀의 감정이 어떤 것인지 대충은 알 것 같았다. 나는 되레 큰 소리로 “여러 사람을 만나봐야 해. 그래야 사람 보는 눈이 생긴다고”라고 아저씨 같은 말을 해댔다. “이 녀석 저 녀석 다 만나봐야 해. 그래야 시집가서 바람을 안 핀다고. 더 만나야 해”라고 하자, 그녀는 기다렸다는 듯이 내 손을 덥석 잡으며, 역시 이해할 줄 알았어, 그럴 줄 알고 하루도 쉬지 않고 만났어,라고 했다.

내 입장에선 그렇게까지 열심히 할 필요가 있나 싶었지만, 아무튼 그녀의 이야기는 상당했다. 그녀는 나와 헤어진 후 잠시 실의에 빠졌지만(최소 한달 이상이었길 바란다), 이내 기운을 차리고 이 남자 저 남자 무작정 만나댔다. 대부분 소개팅이나 클럽에서 만난 녀석들이었다. 특히 나이트클럽은 여성에 한해 밤 8시 이전에 무료입장을 허락하는데, 이런 걸 놓칠 그녀가 아니었다. 적극 활용해왔다. 당연히 꽤나 친한 웨이터도 생겨서 휴일엔 ‘오늘의 수질현황’ 등을 문자로 받기도 했다며, 잘 알지 못하는 회사 동료의 친구 이야기처럼 자기 이야기를 했다.

나와 만날 때는 아주 가끔이었지만 함께 교회도 가고, 꿈에 관해 이런저런 이야기도 나누고, 함께 한옥을 짓자는 이야기도 했다. 그치만 그건, 어디까지나 그녀가 스물다섯살 때의 이야기였다.

그녀는 오늘 ‘유흥의 여왕’이 되어 돌아왔다. 나를 잊게 해준 건 술과 클럽과 남자들이었다고 강단있게 말했다. 그러는 사이 나는 더욱 커피숍 벽면을 멍청히 보게 됐다. 초점은 흐려졌고, 그녀의 말 사이로 우리의 풋풋했던 시절이 지나가는 듯했다. 나는 젊었고, 그녀는 어렸다. 같이 지하철 타고 놀이공원 가고, 서점 귀퉁이에 서서 한참을 고민하다 겨우 책 한권 사오고, 매번 같은 청바지를 입고 다녔던 우리의 모습이 커피숍 벽면을 스크린 삼아 비치는 듯했다.

나는 우리의 늙어버린 대화가 기대와는 달리 슬프게 전개되는 것 같아서 나가자고 했다. 그녀는 어디로 갈까,라고 물었고, 나는 오늘은 비도 추적추적 내리니 술 한잔 어때,라고 했다. 그러자 그녀는 갑자기 수도생활을 하는 수녀처럼 변해 상당히 교조적인 눈빛으로 나를 응시했다. 술집 대신 한강에 가자고 했다.

우리는 이별했던 그날처럼 그녀의 차를 타고 양화대교 아래 한강시민공원 주차장으로 갔다.

 

때마침 떨어지는 빗방울 때문에 강물 위에 하나둘씩 작은 원들이 피어나고 있었다. 그 와중에도 우산을 쓰고 강아지를 산보시키는 사람들, 모자를 쓰고 뛰는 사람들, 비는 아랑곳 않는 연인들이 차 유리 너머로 지나갔다. 그녀는 운전석에, 나는 조수석에 앉아 있었다. 음악은 없었다. 그저 내리는 빗물소리와 강아지 짖는 소리, 러너들의 발 디디는 소리만이 들렸다. 그리고 이 상황에서 의식하고 싶진 않았지만, 자꾸 20cm 정도 드러난 그녀의 허벅지가 눈에 들어왔다.

그녀는 허벅지 위에 재킷 같은 것도 덮지 않았다. 뒷좌석에 보니 재킷 대여섯 벌이 걸려 있었다. 나는 멍청하게 연애 때의 습관처럼 허벅지에 손을 올려놓으면 안된다는 다짐을 속으로 반복하고 있었다.

그때, 그녀가 “차 정말 지저분하지?”라고 물었다. 잠시 정신을 차려 차 안을 둘러보니, 정말 그랬다. 여기저기 널브러진 서류와 옷가지, 구두 등이 과연 차 안에서 옷을 갈아입고 바로 클럽에 가고, 또 바로 출근하는 생활상을 증명하는 듯했다. 나는 “아이, 이 정도야, 뭐…, 옛날에도 그랬잖아”라고 굳이 필요 없는 말을 해버렸다. 그 말은 아직도 후회하고 있지만, 사실은 사실이었다. 옛날에도 그녀의 차 안은 경이로울 만치 지저분했다. 지금 생각해보니 미안하니까, 자유로웠다는 표현이 좋겠다.

그러곤 우리 둘 사이엔 강아지 짖는 소리, 빗소리, 다리 아래서 체조하는 할머니들의 이야기 소리가 흘렀다. 우리는 말없이 빗물을 머금은 강 표면과 젖어가는 자전거 도로 표면과 오가는 러너들의 신발을 번갈아가며 보았다. 그녀의 하얀 허벅지가 눈에 들어오기도 했고, 그러는 사이 그녀는 나의 왼쪽 뺨을 문득 보는 듯했다. 연애 때 그녀가 운전을 하며 한손으로 내 뺨을 자주 쓰다듬었던 것이 새삼스레 떠올랐다.

“그럼 우리 술 한잔만 할까. 한시간만?”

내가 말했다. 도대체, 어떤 맥락에서 ‘그럼’이라는 접속사가 나왔는지는 여전히 모르겠다. 적막이 어색해선지, 이대로 헤어지기 아쉬워선지…. 이런 생각을 혼자서 되뇌다가 그냥 밖으로 꺼냈는지도 모르겠다. 정말 멍청한 말이었다.

그런데 그녀는 “그러자, 그럼”이라고 잽싸게 말하곤 싸이드브레이크를 풀고, 바로 시동을 걸었다. 나는 고개를 돌려 운전을 하는 그녀를 보았다. 그녀가 나를 쓰윽 보고 말했다.

“나 쿨한 뇨자야.”

 

6

온라인 세상이란 참으로 편한 것이다.

그녀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나의 모든 근황을 알고 있었다. 내가 지난 3년간 어느 나라를 여행했는지, 어느 부서에서 일했는지, 또 최근에는 직장을 그만둔 것까지. 마치 나와 사귀고 있을 때처럼 모든 걸 꿰고 있었다. 나 역시 그녀의 모든 것을 알고 있었다. 진정 몰랐던 거라곤 남자친구가 끊이지 않았다는 것뿐이었다.

그녀는 남자친구에게 전화를 했다. 전화기를 드는 순간 몸의 모든 생기가 빠져나간 사람처럼 힘없는 목소리로 감기기운이 있어 일찍 잔다고 했다. 물론 거짓말이다. 이미 나와 술집 앞에 와 있었고, 나는 그 옆에서 숨을 죽이고 있었다. 게다가 술집 앞에 도착했을 땐 의욕에 찬 건설현장 감독처럼 굵은 목소리로 양손을 탁탁 치며 기합을 넣기도 했다. 자, 그럼 어디 한번 시작해볼까,라는 말을 하곤, 뭔가 생각났다는 듯이 애들 좀 재우겠다고 자상한 엄마처럼 말했다. 뭔 소린가 싶어 보니, 그녀는 전화를 걸며 자신의 검지를 입술에 갖다대고 윙크를 씽긋 했다. 어렴풋이 기억이 났다. 6년 전에 불우 생명체 군인을 속일 때 해본 것이었다.

그녀는 전화를 끊고선 이내 힘차게 일본식 선술집의 미닫이문을 열고 들어갔다. 나는 멍청히 뒷모습을 보았다. 아까 내가 술을 먹자고 했을 때 탕자를 심판하는 대제사장처럼 차디찬 냉소를 보냈던 이도 그녀였고, 지금 남편을 출장 보낸 결혼 20년차 부인처럼 들뜬 이도 그녀다. 눈을 크게 끔벅거리고 머리를 세차게 흔들어봐도 같은 사람이 맞다.

도대체 지난 3년간 무슨 일이 있었을까. 몇몇 의도치 않은 상상들이 걷잡을 수 없이 떠올랐지만, 끔찍할 뿐이었다. 관계의 공백기간에 어떤 시간이 그녀를 채색했는지는 모르겠다. 어찌 됐든 지금, 그녀는, 나와, 함께, 있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그녀는 뭘 꾸물대느냐며 어서 시원하게 말아보라고 했다. 어? 말라니? 아… 진짜, 왜 이래. 좀 섞어보라고. 아… 아… 난 낯선 회식자리에 발을 디딘 신입사원인 양 정성스레 섞었다.

맥주는 맥주잔의 2/3만 붓되, 부을 때 병목 안으로 공기가 유입되며 생기는 꿀떡꿀떡 소리가 나야 한다. 거품은 맥주 전체량의 1/4이 되어야 하고, 소주는 역시 소주잔의 3/5 정도가 알맞다. 그다음엔 소주를 맥주잔에 살며시 붓고, 집게로 얼음을 집어 잽싸게 위아래로 움직인다. 파도거품 같은 하얀 포말이 생길 때까지 부지런히 움직인다. 하얀 거품이 까페라떼 거품처럼 보인다 싶으면, 그제야 잔을 살포시 내려놓는다.

나는 그녀가 시키는 일은 뭐든지 열심히 한다. 나도 모르게 그렇게 된다.

그녀는 이야—, 독고중(내 이름이다) 좀 하는데,라고 친절교육을 성실히 받은 114 안내원의 톤으로 말했다. 그녀가 칭찬을 해주면 정말 기분이 좋다. 세상에서 가장 기분 좋은 일이다. 정말이다.

나는 성심껏 2/3를 붓고, 1/4을 거품내고, 또 3/5을 붓고, 위아래로 10회 흔들었다가, 마무리 돌리기 1회를 총 열번 했다. 그러는 동안 그녀는 부지런히 잔을 탁탁 털어내며, 연달아 감탄했다. 정말이지, 기분이 좋았다. 아무튼 그녀는 쓱쓱 비워냈고, 나도 따라서 싹싹 비워냈다. 내가 제조하긴 했지만, 정말 잘하는 것 같았다. 그녀가 칭찬까지 해주니, 취기 탓인지 우리가 이별을 했다는 사실마저 잊을 정도로 기분이 좋았다.

눈에 힘이 풀리기 시작하고, 기분이 좋아지는 걸 보니 서서히 취하는 것 같았다. 잘은 모르겠지만, 그녀의 눈동자가 내 가슴에 잠시 머물다가 팔뚝과 탁자 아래까지 흐느적거리며 훑는 걸 보니 그녀 역시 꽤나 취한 것 같았다. 먼저 말을 꺼낸 건 그녀였다.

“고군(그녀는 나를 이렇게 불렀다. 엄밀히 말하자면 독고군이지만…), 내 생각 많이 했어?”

그녀는 몸을 내 쪽으로 기울여 턱을 괴고, 내 눈을 똑바로 보며 물었다. 분명 취기에 흔들리는 눈동자였지만 응시하는 눈길에는 언어 이상의 메씨지가 담겨 있었다.

“어, 사진 많이 봤어.”

정말 그렇지 않은가. 13,873,456번이나 봤는데 말이다. 그녀는 “고군, 떽! 그런 거 말고”라고 말하곤 앉은 채로 쓰러질 듯하다가 다시 몸을 일으키며 큰 원을 그렸다(이후부턴 계속 이 원을 반복적으로 그렸다). 그러곤 턱을 괴었던 오른손 검지를 펴 나를 가리키며 말했다.

“너! 전에 그랬잖아. 나랑 헤어져도 잊지 못할 것 같다고. 나를 만나고부턴, 삶이 파괴돼도 괜찮다고.” 놀랍게도 그녀는 내가 6년 전에 말한 것을 조사 하나 빠뜨리지 않고 기억하고 있었다. 여전히 몸은 계속 한 방향으로 원을 그리고 있었다. 아무튼 내 쪽에서도 성실하게 답하지 않을 수 없어, “그랬지. 그땐 하루아침에 모든 걸 잃어도 된다고 생각했어. 단 일주일이라도 자기와 사랑할 수 있다면, 인생의 나머지 날들 모두를 저주받은 채 살아도 된다고 생각했지”라고 했다. 그러자 그녀는 마법이 풀린 공주처럼 금세 진지해져버렸다.

“오빠, 나도 그래. 그뒤로 다른 사람을 만났지만, 그건 의미가 없어. 내 일생에서 ‘사랑’이란 단어를 쓸 수 있는 사람은 단 한사람뿐이야. 솔직히 난 지금 남자친구에게도 미안해. 이렇게 확신 없이 만나는 거.”

나 역시 진지해지지 않으면, 한대 맞을 것 같았다. 그녀는 술에 취하면 폭력적인 기질을 보이곤 했는데, 예전엔 술김에 고환을 때려서 신촌 바닥에서 구른 적이 있다. 나는 제법 진지한 표정으로 “그때도 어쩌면 잘돼서 너랑 결혼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쉽지만은 않았어. 서로 많이 달랐잖아. 하지만 누구랑 결혼을 하더라도, 널 잊을 자신은 전혀 없어. 정말 살면서 사람 한명 때문에 삶을 포기해도 좋겠다고 느낀 건 처음이었거든. 마지막이기도 하고”라고 말하다보니, 정말 진지해져버렸다. 어찌된 영문인지 그녀는 촉촉해진 눈망울로 “나도 누구를 만나든지 오빠가 잊히지 않아. 나도 언젠가 결혼을 하겠지. 하지만 그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이미 내 마음속의 사랑은 오빠 하나로 끝나버렸는데”라고 말했다. 잠시 내가 감격에 겨워 고개를 숙인 사이, 그녀가 안약을 넣었는지 아닌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내 생애 가장 매혹적으로 젖은 눈망울이 내 앞에 있었다.

물론 후회했다. 그때, 3년 전에, 내가 먼저 헤어지자고 한 것을. 그 후회가 나 하나쯤은 세상에서 삼켜버리고도 남을 해일처럼 가슴 아프게 밀려왔다. 아마 헤어지고 넉달 정도가 지난 후였던 것 같다. 그때부터, 매일 후회해왔다. 하루도 빠짐없이.

지금 다시 시작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그녀에게는 남자친구가 있다(예전처럼). 또 누군가의 여자를 뺏고 싶지는 않았다. 그리고 우리는 이제 성장했다. 다시 만나더라도 예전처럼 지낼 수 있을지는 전혀 모르겠다. 정말 모르겠다. 게다가 3년이란 시간은 내가 알던 그녀를 다른 사람으로 만들어놓았다. 물론 그 이유는 나였다. 나와의 이별 후로 그녀는 달라졌다.

생각이 너무 복잡해져 나는 대답 대신 묵묵히 술을 섞었다. 그녀와 나는 서로 말없이 미소를 머금고 한잔씩 마셨다. 계속 말이 없었고, 각자 뭔가를 생각하는 듯한 표정을 지었고, 또 한잔을 마셨다. 노릇노릇하게 구워진 바삭한 시샤모 다섯마리를 먹었고, 파도거품이 일어난 알코올을 목으로 넘겼고, 서로의 눈을 봤다.

그녀는 목을 길게 빼고 고개를 오른쪽 어깨에 늘어뜨린 채로 알 수 없는 미소를 지었다. 내가 가장 그리워했던, 내가 가장 많이 보냈던 시간들이 떠올랐다. 내 삶의 심장 같았던, 그 상실에 몸부림쳤던 순간이 지금 나를 마주하고 있다. 그 순간 나는 여전히 하얗고 매끄러운 그녀의 목에 입맞춤 대신 눈맞춤을 했다. 왠지 눈물이 날 것 같았다. 그녀는 내가 둘만의 그 자리에 입술을 대었을 때처럼, 눈을 엷게 감으며 안개꽃과 같은 미소를 보여주었다. 그러더니 서서히 감은 눈에 힘이 들어가며 조금씩 떨리기 시작했고, 미소를 띤 입은 점차 닫혀 결국은 앙다물어졌다. 입술은 바람에 휩쓸리는 잎사귀처럼 여리게 떨렸다. 어느새 감긴 눈에 상당한 힘이 들어가는 것 같더니, 턱마져 악물렸다. 그러곤 감긴 눈 사이로 눈물이 떨어졌다.

그녀는 부끄러운 소녀처럼 코를 훌쩍거리고, 침을 삼키고, 나를 보며 웃었다. 폭우와 바람을 견뎌내고 겨우 살아남은 마지막 한송이의 꽃 같은 미소였다.

“나 보고 싶었어?” 그녀의 물음에 나는 “호흡을 할 때마다 그리웠어”라고 말했다. 다음날 생각해보니 몹시 부끄러운 대답이었지만, 다시 물어봐도 나는 그렇게 답할 것이다.

우리는 혼합한 술을 대여섯 잔 각자의 목으로 넘겼다. 어묵찌개를 먹고, 또 대여섯 잔을 마셨다. 그녀는 지나온 이야기를 했고, 우린 잠시였지만 손을 맞잡았다가 그걸 발견하곤 멋쩍게 웃었다. 그녀는 손을 자신의 무릎 위에, 나는 테이블 위에 되돌려놓았다.

머리는 추를 매달아놓은 것처럼 무거워졌고, 추의 수는 계속 늘어갔다. 입도 뭔가 분주히 움직이기는 했으나, 정확한 발음이 오가는지는 확신할 수 없었다.

그사이 나의 갈등과 고민은 끝없는 심연 속에서 허우적거리고 있었다. 그녀를 오늘 밤 어떻게 바래다줄 것인가, 한번 더 만나도 될까, 한번 더 만나면 계속 만나야 하는 게 아닌가, 남자친구와는 어느 정도로 깊은 사이일까, 다시 사랑한다면 해피엔딩이 될까, 외에 3879가지 생각이 뇌 속에서 알코올과 어지럽게 뒤섞였다. 무거워진 뇌만큼이나 무겁고 혼란스러운 밤이었다.

결국 우리는 대리운전 기사를 불렀다.

하지만 친절한 듯하지만, 맥이 빠진 목소리의 기사는 후미진 우리의 술집을 찾지 못했다.

나는 당연하다는 듯이 내 방으로 갔고, 그녀 역시 당연하다는 듯이 따라왔다. 나는 특별히 그녀와 자고 싶다는 생각을 한 것도 아니었고, 그녀 역시 나에게 안기고 싶다는 생각을 한 것은 아닌 것 같았다. 하지만, 왠지 그러지 않고서는 이 밤의 알 수 없는 기운이 평생 우리의 몸에 문신처럼 남아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것 같았다.

우리의 행동에 대해 후회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엄밀히 말하자면 그것은 우리가 함께 보낸 밤과 아침에 대한 후회가 아니라, 재회했다는 사실 자체에 대한 후회다.

어쩌면 우리는 재회를 한 순간부터 마치 컨베이어 벨트에 오른 부속품처럼 예정된 순서대로 움직이고 있었던 것 같다.

 

7

창 너머로 땅따먹기를 하는 아이들의 소리와 바람이 넘어왔고, 그녀의 긴 머리카락이 내 목덜미를 간질이고 있었다. 햇살은 우리를 채근했다. 창이 넓어 여과없이 스며든 햇살이 이미 우리 몸뿐 아니라 방 구석구석까지 따갑게 만들었다. 더이상 잘 순 없었다. 그렇지만 그녀는 여전히 자고 있다.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내 방에 와서 지금 내 옆에서 알몸 비슷한 상태로 자고 있는 건지 모르겠다.

방바닥에는 그녀의 핸드백, 휴대전화, 티셔츠, 스타킹이 규칙 없이 흩어져 있고, 구겨진 나의 바지와 양말은 어젯밤의 동선을 증명하듯 벗겨져 있다. 바지가 좀더 문 쪽에 있고, 양말은 침대에서 가까운 쪽에 있다. 아마 들어와서 바지를 벗고, 침대에 누워 양말을 벗어던진 모양이다.

오른쪽 관자놀이를 팔꿈치로 짓눌린 것처럼 묵직한 기분이 사라지지 않는다. 입에는 칼칼한 기운이 가시질 않고, 햇살은 따갑다. 나는 언제나처럼 물을 마시기 위해 먼저 일어났다. 트렁크 팬티 차림으로 냉장고에서 페트병에 담긴 물을 꺼내 투명한 컵에 따라 책상 위에 놓고 한잔 쭈욱 들이켰다. 시원하긴 했지만, 간밤에 게워낸 위장이 개운치 않아 한잔을 더 들이켜 속을 시원하게 씻어내렸다. 입안이 영 개운치 않아, 칫솔에 치약을 듬뿍 발라 양치질을 했다. 잇몸을 육중하게 감싸주는 칫솔의 느낌이 괜찮았다.

양치질을 하고 나서 안락의자에 앉아 양팔은 허벅지에 얹고 목을 떨어뜨린 채 안락의자에 앉아 생각을 한다. 어제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아무렇게나 던져진 옷을 보니, 아마 힘겹게 옷을 벗어던지고 가누기 힘든 몸으로 몇시간 동안 죽은 채 잠든 것 같다.

아직 잠들어 있는 그녀. 그녀가 과연 꿈속에서라도 여기가 자기 방인지 내 방인지 알고 있을까. 햇살이 부스러지는 얼굴은 모든 사춘기 소년들이 꿈꾸는 첫사랑의 이미지를 하고 있고, 긴 머리칼은 하얀 침대 커버와 이불 사이에 흐드러져 있다. 움츠린 옆모습으로 매끄러운 어깨가 보였다. 3년 만이다. 그녀가 이렇게 내 방에서 자고 있는 것이.

햇살 때문에 눈을 뜨긴 했지만, 도저히 머리가 아파 더이상 깨어 있을 수 없었다. 그녀 역시 햇살 때문에 눈살을 조금씩 찌푸리기는 했지만, 계속 잘 생각인가보다. 이제는 아예 하얀 면이불을 머리 위까지 끄집어 쓰고 자고 있다.

나는 그녀를 따라 누워, 잠을 청했다. 눈을 감고서, 그녀의 평온한 숨소리와 호흡에 맞춰 움직이는 어깨와 미세한 머리카락의 움직임이 마치 바람결처럼 포근하다,는 생각을 제멋대로 해버렸다. 나도 잠에 빠졌다.

잠에서 깬 것은 자는 중에 느껴졌던 그녀의 팔의 감촉 때문이었던 것 같다. 그녀는 조금씩 움직이는 듯했으나, 여전히 자려고 하고 있었고, 그러던 중 자다가 깨다가를 반복했다. 오랜만이긴 했지만, 그리 낯설지는 않았다. 연애할 때도 그녀는 아침 일찍 나갈 일이 없으면 곧잘 이렇게 의식적으로 늦잠을 자곤 했다. 더욱이 오늘은 둘 다 숙취 때문에 고생하고 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연애할 때면, 나는 종종 거의 다 깬 아침잠을 즐기는 그녀의 어깨와 귀, 목덜미에 키스를 하며 깨우곤 했다. 오늘도 그랬다.

약속이나 한 듯이 어제 말없이 집에 왔던 것처럼, 나는 당연히 또 그래야 한다는 듯 그녀의 귀에 마른 입술을 살포시 겹쳐놓았다. 그녀의 솜털이 보송보송한 귀에 나의 마른 입술이 부드럽게 오가자, 그녀는 숨소리가 섞인 탄성을 나지막하게 질렀다.

나는 잃어버렸던 시간들을 모두 보상받으려는 듯이 입술을 그녀의 몸 구석구석으로 옮겨갔다. 잠에서 깬 그녀는 여전히 눈을 감은 채로 호흡에만 감정을 실었다. 그녀의 감정은, 표현하려 했던 것이 아니라 억누르려 했던 것이 더이상 억눌러질 곳이 없어 이윽고 새어나오는 것 같았다. 나는 왠지 그녀의 호흡이 어딘지 모르게 우리와 닮은 것 같아 서글픈 기분이 들었다. 그것은 가슴속에 간직한 언어를 오랫동안 억누르고 있는 이의 표정과 다르지 않았다.

나 역시 조심스럽고 두려웠지만, 입맞춤을 이내 거둘 수는 없었다. 이대로 공기의 흐름에 우리를 맡기다간 우울한 상태로 관계가 시작될 것 같아, 입술을 천천히, 아주 천천히, 눈먼 자가 신체를 기억해내기 위해 더듬듯이 소박한 입맞춤을 이어갔다.

이마와 볼과 목과 어깨와 허리와 다리에 차례로, 그녀의 세세한 곳 하나까지도 기억해내겠다는 심정으로 입을 맞추었다. 그것이 어쩌면 나로서는 오랜 떨어짐을 견뎌내고, 가까스로 만나 아침햇살을 함께하고 있는 옛 연인에게 해줄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이별이었다. 예전에 나눴던 몸의 대화들을 떠올려본다면, 이 정도가 서로에게 공평하게 마무리될 수 있는 길 같았다.

그러나 그때, 그녀는 나를 와락 안았다. 나는 순간 놀랐지만, 이내 가슴속에서는 견디기 힘든 불길이 치솟았다.

우리는 누가 먼저라 할 것 없이, 서로의 입술을 깊이 갈구했다. 그녀의 얼굴과 나의 얼굴이 방향을 바꿔가며 여러차례 움직였고, 그녀는 산책 시간을 맞아 햇살에 감격한 수감자처럼 눈을 감고 목을 젖혔다. 그러고선 잃어버렸던 것들을 되찾기라도 하듯이 내 어깨와 등을 힘껏 끌어안았다. 나는 오랜 시간 동안 그녀의 위에 안겨 있었다. 그녀의 작은 손바닥이 내 등 위에서 떨고 있었다.

브래지어를 벗겨내니 예전처럼 이내 손으로 젖가슴을 가렸다. 내가 부끄러워할 만큼 빠른 속도는 아니었고, 그녀가 부끄러워할 만큼 느린 속도도 아니었다. 3년 전 그대로다. 나는 그때처럼 한손씩 입 맞추고 손을 차례대로 가슴에서 떼어냈다. 그리고 그 위에 내 가슴을 얹었다. 우리는 둘 사이에 다른 무엇도 들어올 수 없다는 듯이 서로의 모든 것을 완전히 포개었다. 개미 한마리라도 있었다면 질식사할 것 같았다.

나의 감정은 여전히 욕정에 휩싸이거나 그녀의 신체 자체를 바라는 것은 아니었다. 그것은 온전히 그녀와 내가 서로를 가슴속에 품고 3년을 견뎌내왔다는 것을 무언으로 확인하는 절차 같은 것이었다.

그러나 몸은 감정과 상관없이 반응했다. 입술을 다시 맞추는데 터질 것처럼 부풀어진 나의 성기가 그녀의 은밀한 부위에 자석처럼 달라붙었다. 그녀 역시 몹시 따뜻한 상태가 되어버려, 우리는 팬티는 입고 있었지만 나의 일부가 그녀의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또렷이 느낄 수 있었다. 누가 의도한 것도 아니었지만 꿀벌이 꽃잎에 앉듯이 매끄럽게 미끄러져 들어갔다.

이것이 우리가 함께 쓰는 책의 마지막 장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행여 우리의 관계를 2장에서 새로 쓸 수 있다면 첫 문장을 이런 식으로 시작하고 싶지는 않았다. 이런 문장은 우리가 이때껏 기다려왔던 모든 시간과 감정의 무게를 다 휘발시킬 것 같았다. 이렇게 시작한다면 우리 사이에는 육체를 배제한 어떠한 단어도 들어올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녀 역시 같은 심정이었던 것 같다. 그녀의 엉덩이를 잡고 있었던 내 손끝이 그녀의 그곳에 닿자, 그녀는 순간 내 손을 잡았다. 애절한 절제 같은 것이 느껴졌다.

우리는 서로의 몸을 포갠 채로 좀더 키스를 하다, 서로를 깊이 포옹했다. 나와 그녀는 오랫동안 그렇게 둘을 하나로 회복하는 시간을 보냈다. 나의 감정이 정리되는 동안 오랜 시간이 흘렀다. 그녀의 감정이 정리되는 시간 역시 오래 흘렀다. 그동안 우린 마치 하나처럼 서로의 몸에 의지했다. 나는 왠지 말 못할 부끄러운 병을 치료받은 느낌이 들었고, 그래서인지 모르겠지만 부끄럽게도 그녀 위에서 눈물을 떨어뜨렸다. 그녀 또한 어떠한 감정을 흘려보내고 어떠한 감정을 받아들였는지 알 수 없었지만, 감은 눈 아래로 눈물 한줄기가 타고 내려왔다. 우리는 잊어버린 얼굴을 확인이라도 하듯이 서로 바라보며, 젖은 눈으로 웃었다. 알몸인 상태로 서로를 부둥켜안은 우리는 치유받은 사람들처럼 눈물과 웃음을 교환했다. 공기중에 우리의 눈물이 증발하는 느낌이 들었다.

여전히 창 너머로 아이들이 뛰어노는 소리가 넘실거렸고, 방 안에는 햇살이 가득했고, 조심성있는 바람이 둘을 보드랍게 쓰다듬어주었다.

 

그녀는 한참을 눈을 깜박거리며 천장을 바라보았다. 그러고선 누운 채로 고개를 돌려 방 안을 둘러보았다. 그러더니 뭔가를 발견한 듯이 몸을 비스듬히 하고 누워 한쪽팔로 팔베개를 하고선 말했다.

“어, 저 TV 뭐야. 어젯밤에는 못 봤네. 이야, 엄청 크잖아.”

그녀는 그렇게 일상으로 되돌아왔다. 나는 “어, 40인치인데, 전에 아버지랑 같이 살 때 쓰던 거 가져왔어”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이번엔 일어나서 방 안을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여전히 그녀는 선명한 오렌지색에 작고 큰 별이 여러개 새겨진 팬티만 입고 있었다. 치골이 드러날 정도로 작고, 특히 엉덩이 부분이 아슬아슬하게 가려지는 팬티였다. 그녀는 방이 좋다며 얼마냐고 물었고, 나는 별거 아니라고, 아직 월세에 산다고 답했다. 그녀는 월세가 얼마냐고 물었고, 난 보증금 천만원에 월세 육십, 관리비는 육만원이라 답했다. 어째서 이별한 연인이 3년 만에 재회하고서 이런 대화를 나눠야 하는가,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녀는 개의치 않았다. 이어서 “요즘 좋나보네. 저건 뭐야, 테라스야? 저기서 고기도 구워먹고 춤도 추고 막 그러는 거야?”라고 질문했고, 난 그냥 커피 정도만 마신다고 대답했다.

질문에 재미를 붙인 아이처럼 이번에는 백수가 무슨 돈이 있어서 월세 육십 만원을 내느냐고 캐물었고, 나는 부끄럽지만 아버지가 내고 계신다고 말했다. 숨고 싶을 만큼 부끄러웠다. 그러자 그녀는 본격적으로 빈정대기 시작했다. 차도 아버지가 사줬느냐고 비꼬았는데, 나는 그만 놀라고 말았다. 정확히 맞혔기 때문이었다. 나는 굳이 대답은 안했지만, 그녀의 예리함과 나의 비참한 현실에 더욱 부끄러워졌다. 어서 분위기를 전환해야겠다 싶어 “아까 보니 반응이 상당히 풍부해졌던데, 3년 동안 대체 무슨 일을 하고 다닌 거야?”라고 빈정대자, 그녀는 전혀 표정의 변화 없이 윙크만 하며 말했다. “나? 나는 당연히 오빠 때문에 무지 쿨해졌지. 말했잖아, 이제 쿨한 뇨자라고.” 여전히 나의 서툰 화제전환과 대화의 기술을 탓했다. 그간 무슨 일이 있었는지 나로서는 알 수 없었지만, 좀전의 질문이 내게 도움이 될 리 없다는 것은 명백히 알 수 있었다.

그러고선 그녀는 회사에 가야 한다며 일어났다. 나는 그녀가 샤워를 하는 동안 예전처럼 벌거벗은 채로 TV를 봤다. 3년 전 그녀가 샤워를 할 때 봤던 여행 프로그램이 아직도 하고 있었다. 우리가 헤어져 있는 동안 이 프로그램은 아마 지구 열바퀴는 돌았을 텐데도, 여전히 새로운 세계를 향해 꾸준히 돌고 있었다. 그녀 역시 내가 샤워를 하고 나오면 이 프로그램을 보고 있곤 했다.

내가 샤워를 하고 나오자 그녀는 잽싸게 화장을 마친 뒤 내 책상에 앉아 부지런히 머리카락을 말리고 있었다. 그녀의 발 아래에 수건이 떨어져 있었다. 하얀 수건에 무엇인지 모를 누런 얼룩이 여기저기 묻어 있었다. 내가 수건을 보자, 그녀는 나를 보며 “아, 미안, 이걸로 화장 좀 닦아냈어. 얼굴에 파우더가 너무 많이 묻어서”라고 말하곤, “괜찮지?” 하며 웃었다. 나는 “물론, 영광이지”라고 답했다.

그녀가 미안하다고 말하긴 했지만, 마치 내가 그녀의 집을 방문한 손님 같은 분위기였다. 그녀가 잘하는 것 중 하나였다. 그러고 보니 내 방에는 그녀의 흔적들이 곳곳에 흩어져 있다. 침대 옆에는 가죽을 쏙 빼놓고 도망간 뱀의 껍질처럼 축 늘어진 채 벗겨진 그녀의 미니스커트가, 벽장 앞에는 그녀의 셔츠가, 침대와 책상 사이에는 그녀의 브래지어가 있었고, 내 책상은 어느새 그녀의 화장대가 돼 있었다. 아, 나는 그새 그녀의 차까지 가서 화장품 파우치를 가져오는 심부름을 했다. 책상 위에는 예전에 본 듯한 파우더, 마스카라, 립스틱, 눈썹 펜슬 등이 있고, 그 옆에는 뭔지 모를 하얗고 똘똘 말린 면 소재의 제품이 있었다. 얼핏 보니 긴 머리의 여자들이 머리를 묶을 때 쓰는 고무로 된 머리끈 같았다.

“이건 뭐야.” 내가 물었다.

“응, 팬티.” 그녀가 태연하게 답했다.

“아니, 그럼 지금 노팬티로 출근하겠다는 거야?”라고 내가 갈라지는 목소리로 묻자, 그녀는 역시 당연하다는 듯이 “젖은 팬티를 다시 입을 순 없어”라고 말했다. 그러고선, “왜, 기념품으로 줄까?”라고 놀리듯이 물었다. 나는 이내 “무슨 소리야”라고 역정을 냈지만, 속으로 갈등을 하긴 했다.

그녀는 화장을 끝낸 후, 엉덩이까지 내려오는 하늘하늘한 소재의 긴 셔츠를 입고, 그새 입고 있던 내 반바지를 내렸다. 셔츠 아래로는 그저 맨다리였고, 그 위에 스타킹을 신을까 말까 잠시 고민하는 듯하더니, 이내 치마만 입어버렸다. 치마가 흐트러져 있고 스타킹을 신지 않았다는 것만 제외하면 외박한 티는 별로 나지 않았다. 둔감한 사람이라면 넘어갈 정도였다.

이렇게 가도 괜찮으냐고 묻자, 그녀는 나를 보며 생긋 웃더니, 익숙하다고 했다. “말했잖아. 나 오빠랑 헤어지고 ‘쿨한 뇨자’ 됐다고”라고 하고선 발가락으로 얼룩진 하얀 수건을 능숙하게 집어올려 나에게 건네주었다.

그녀는 얼룩진 하얀 수건을 멍하니 받아들고 서 있는 내 엉덩이를 토닥거리더니, “잘 있어, 백수. 돈 벌러 갈게”라고 말한 뒤 가방을 챙겼다. 이대로 가면 아쉬운 게 많겠지만, 가장 미안한 것은 밥을 차려주지 못한 것이었다. 그러지 못해 미안한 마음을 말하자, 그녀는 “그치, 밥이 빠졌어. 밥만 먹으면 딱인데. 하얀 쌀밥에 따뜻한 국”이라고 말하고선 이내 우는 아이를 달래는 엄마처럼 “아직 좀 멀었네. 독고군, 다른 여자한테는 그러면 안돼요”라며 또 엉덩이를 토닥거렸다. 나는 항변했지만, 그녀는 아랑곳 않았다.

원룸 문을 열고 나선 그녀는 또각거리는 구두소리를 크게 내며 일층 주차장으로 내려갔다. 지금이 우리에게 허락된 마지막 장면인지 길게 펼쳐질 새로운 시작의 장면인지는 모르겠다. 나는 무슨 말인가 하고 싶었지만, 어떤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더구나 그녀가 차문을 열고 오른쪽 다리를 먼저 집어넣자 미니스커트가 허벅지를 타고 말려들어가는 것이 보였다. 그런데도 그녀는 천천히 시차를 두고 왼쪽 다리를 차 안에 넣으려 했다. 운전석의 뒤쪽이 가라앉게 높이를 조절한 모양인지 치마는 간밤의 20cm보다 훨씬 더 말려올라갔고, 그녀가 왼쪽 다리를 집어넣을 때는 마치 취조실에서 다리를 꼬던 「원초적 본능」의 샤론 스톤 같았다. 치마 속이 보일 것 같아, 나도 모르게 그만 깁스를 한 것처럼 경직된 목으로 딴 곳을 응시했다. 오히려 그녀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왜 그래? 목 아파?”라고 물었고, 난 “아… 아… 아냐”라고 얼버무렸다. 그녀는 시동을 걸더니 차창을 내려 나를 쓰윽 보았다.

“우리 다시 만날 수 있을까?”

내가 물었다.

“글쎄, 다음엔 둘이 말고 예전 친구들도 같이 모아서 볼까?”

그녀가 말했다.

“왜? 둘은 안돼?”

“알면서.”

그녀는 전혀 알지 못할 말과 웃음을 지어 보였다.

그녀는 “갈게”라고 정말 짧고 쿨한 말을 건넨 뒤, 액셀을 밟았다. 나는 빈 주차장에 서서 그녀가 떠나간 골목을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 몇대의 차가 지나갔고, 세탁물 배달 자전거가 몇번 지나갔고, 놀던 아이들이 흩어지고 나서야 나는 그 자리를 떠났다.

 

*

 

그뒤로 우리는 서로 연락을 하지 않았다. 나는 여느 때처럼 일어나면 새소리를 듣고, 인스턴트 쌀밥을 먹고, 기다리는 사람도 없는 까페에 가서 글을 썼다. 지금은 ‘부산 사투리를 쓰는 외계인의 콤플렉스’란 소설을 쓰고 있는데, 책으로 나올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계속해서 한강공원을 달리고 있으며, 집에 돌아오면 그녀의 사진을 본다. 예전보다 사진을 보는 횟수는 줄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녀의 향기가 내 방에 남아 있는 것 같다. 그녀의 촉감, 그녀의 웃음, 그리고 그녀가 떨어뜨렸던 눈물의 온도. 두달이 지났지만 아직도 모든 것이 살아 있다.

나는 홈페이지 소개란에 “이제 잘할 수 있을까?”란 글을 올렸고, 그녀는 “두집 살림 중”이란 글을 올렸다. 그녀의 홈페이지 사진을 또 습관처럼 보다가, 빨래를 갠다.

 

양말을 갰고, 반바지를 갰고, 하얀 수건을 갠다. 하얀 수건엔 아직도 얼룩이 있다.

조금 지나면 빠질 줄 알았는데, 이 얼룩은 빠지질 않는다.

언제 빠질는지 모르겠다.

내 눈이 이상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얼룩이 점점 더 진해지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더 진해지는 것이 얼룩인지 무엇인지 알기 위해선 아마 시간의 열쇠가 필요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