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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단과 현장
세계체제분석 논란 37년*
근대세계체제 2011년판 제1권 서문
이매뉴얼 월러스틴 Immanuel Wallerstein
뉴욕주립 빙엄튼대 페르낭 브로델 쎈터 명예소장, 예일대 수석연구학자. 국내 소개된 저서로 『근대세계체제』(1~3권) 『역사적 자본주의/자본주의 문명』 『사회과학으로부터의 탈피』 『유토피스틱스』 『우리가 아는 세계의 종언』 등이 있음.
『근대세계체제』는 1974년에 출판되었다. 실제로 집필한 것은 1971~72년이었다. 나는 책을 내줄 출판사를 찾는 데 다소 어려움을 겪었다. 책은 16세기에 관한 것이었고, 게다가 사실상 미지의 주제, 즉 의도적으로 붙임표로 연결한 세계경제(world-economy)를 논했다. 분량도 분량이려니와 각주의 수도 엄청났다. 책이 나왔을 때, 결코 우호적이지 않은 한 서평자는 각주가 지면을 아래위로 기어다닌다고 불평했다. 결국 아카데미 출판사(Academic Press)와 당시 학술담당 고문편집인 찰스 틸리(Charles Tilly)는 새로 기획한 사회과학총서에 이 책을 일단 집어넣어 보기로 결정했다.
출간 뒤의 반응은 모두를, 특히 출판사와 나 자신을 놀라게 했다. 이 책은 『뉴욕타임즈 썬데이 북리뷰』(New York Times Sunday Book Review) 1면과 『뉴욕 리뷰 오브 북스』(New York Review of Books)에서 호평을 받았다. 1975년에는 미국사회학회(American Sociological Association)가 최고의 학술저작에 수여하는 상을 받았다. 당시에 그 상은 쏘로킨(Sorokin)상으로 불렸다. 너무도 뜻밖의 수상이라 나는 수상자가 발표되는 학회에 참석조차 하지 못했다. 책은 여러 언어로 속속 번역되었으며, 학술서적치고는 판매실적이 썩 좋았다. 어떤 면으로 봐도 그것은 성공작이었다.
하지만 그 저작이 대단히 논쟁적이었다는 것 또한 곧바로 드러났다. 굉장한 찬사가 쏟아졌지만, 또한 격렬한 비판을 받기도 했으며, 그런 비판들은 여러 상이한 진영에서 나왔다. 처음 출판되고 37년이 지난 이 시점에서 나는 그러한 비판들을 다시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비판의 근거는 무엇이었는가? 비판은 오늘날 얼마나 유효한가? 그 타당성에 대해 지금 나 자신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 비판이 첫권에 이어서 나온 두권의 책에는 어떠한 영향을 끼쳤는가?
먼저 비판의 배후에 있는 한가지 특별한 전후 사정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나는 직업상 사회학자였다. 많은 이들이 이 책을 경제사에 관한 저술로 보았다. 1970년대 초만 해도 사회학자가 16세기에 관해서나 경제사가들이 다루는 문제에 관심을 갖고 글을 쓴다는 게 자연스러운 일로 여겨지지 않았다. 다른 한편 역사가들은 다른 학문분야의 침입자를 경계했고, 그 침입자가 나처럼 이른바 2차 자료에 거의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다면 더 말할 것도 없었다. 더구나 그 책은 지구의 공간적 관계를 중점적으로 다뤘고 이는 지리학자의 영역에 해당한다고 여겨졌다. 끝으로, 처음에 그 책을 열렬히 환영한 이들 가운데에는 예기치 않은 부류가 있었으니, 몇몇 고고학자가 바로 그들이었다. 요컨대, 나는 그 당시 학문연구를 정의하는 범주에 공공연히 도전하는 것으로 비쳤고, 지식의 구조 안에 모셔진 통상적인 박스에 잘 들어맞지 않는 것으로 보였다.
책을 쓸 당시 저자의 자기인식이 어떠했나부터 풀어가보자. 서문에서 나는 저술의 동기를 설명했다. 당시 나는 어떤 잘못된 생각을 따라가고 있었다. 그것은 16세기에 ‘새로운’ 것이었던 국가가 어떻게 ‘발전’하게 되었는가를 탐구하면 20세기의 ‘새로운 국가들’이 밟아나갈 궤도를 더 잘 이해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었다. 그것은 모든 국가가 이른바 ‘발전’이라는 무언가에 이르는 비슷한 길을 제각각 따라간다고 가정했기에 잘못된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런 생각이 뜻밖의 깨달음을 얻는 계기가 되었으니, 덕분에 나는 16세기 유럽에 관한 자료를 읽게 되었고 그때까지 예상하지 못한 현실로 관심을 돌리게 되었던 것이다.
당시 나는 머릿속에서 주로 베버학파의 사회학자들—막스 베버(Max Weber) 자체가 아니라 1945년 이후 미국(그리고 어느 정도는 세계) 사회학에서 이용된 그의 범주들—과 논쟁하고 있었다. 프로테스탄트 윤리에 관한 베버의 책은 특정한 가치들이 1945년 이후에 흔히 근대화 또는 (경제)발전이라고 불리게 된 것의 필수 선행조건이라는 뜻으로 널리 받아들여졌다. 그 시절의 연구방법은 으레 나라별로 그러한 가치의 존재 또는 생성을 조사하는 것이었다. 그 결과로 진보의 행진을 가리키는 연대기적 서열순위표 같은 것이 나왔다. 어느 나라가 일등이었나? 그 다음은 어디였나? 이제 누가 그 다음에 올 것인가? 그리고 여기서 파생한 질문으로, 다음 주자가 되기 위해 한 나라는 무엇을 해야 했는가?
몇가지 방식으로 나는 이같은 서사에 도전하고자 했다. 무엇보다 먼저, 그러한 과정이 나라별로 연구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세계체제(world-system)라고 부르는 더 넓은 범주 안에서만 연구될 수 있음을 주장했다. 〔여기서의 세계(world)는 지구의(global)라는 말과 동의어가 아니다. 페르낭 브로델(Fernand Braudel)이 곧잘 썼듯이, 그것은 어떤 세계(a world)이지 전세계(the world)가 아니다.〕
둘째로, 나는 문제의 가치들이 당시 일어나고 있던 경제적 변화에 선행했다기보다는 그것을 뒤따르지 않았을까 생각했다. 어떤 국가들이 생산성과 부의 축적에서 앞서게 된 이유를 이해할 수 있으려면 오로지 다양한 국가들을 상호간의 관계 속에 놓고 봐야 한다고 생각했다.
셋째로, 나는 1945년 이후의 베버학파가 제시한 주된 대립항, 즉 전통 대 근대성이라는 관념을 거부하고 있었다. 차라리 싸미르 아민(Samir Amin)이나 안드레 군더 프랑크(Andre Gunder Frank) 같은 이른바 종속론자들(dependistas)이 발전시켜가던 논의, 즉 ‘전통적인’ 것이 ‘근대적인’ 것만큼이나 근래의 현상이며, 그 둘이 나란히 출현했고, 그 결과로 우리가 프랑크의 유명한 표현인 ‘저발전의 발전’(development of underdevelopment)1)에 대해 논할 수 있다는 주장에 공감했다.
나는 1945년 이후의 베버학파 측에서 공격하고 나오리라 예상했다. 그들은 내 주장을 수긍하려 들지는 않았지만 대체로 정중하게 받아들이는 편이었다. 다만 내가 맑스주의의 주장(그들 생각으로는 진지한 학자라면 이미 포기했거나 포기했어야 마땅한)을 되살리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그들은 내가 16세기 역사 연구에 실제로 뛰어들었다는 사실에 놀란 것 같았는데, 베버 테제의 축약된 (그리고 때론 왜곡된) 개요에 의존하여 20세기의 자료를 논의하는 이들이 태반이었으니 실은 그럴 만했다. 게다가 책을 낸 지 얼마 뒤 테렌스 홉킨스(Terence Hopkins)와 함께 쓴 논문에서 지적했듯이, 근대화론의 전문가들이 수행한 이른바 비교분석은 어느 하나의 비서구국가에 관한 동시대의 데이터를 미국(또는 어떤 서유럽국가들)에 대한 추정된—즉 경험적으로 검토되지 않은—데이터와 비교하는 작업으로 이루어진 것이 대부분이었다.2)
어쨌든 가장 큰 비판은 다른 곳에서 제기되었다. 크게 세가지로 나누어볼 수 있는데, 먼저 내가 주요한 비판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있었다. 이들은 자신의 분석방법과 일치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하나의 분석방법으로서의 세계체제분석(world-systems analysis, 말 그대로 옮기면 ‘세계체제들에 대한 분석’—옮긴이)을 거부하는 부류다. 자신의 방법론이 명백히 우월하다는 것이다. 다음으로는 내가 세부적 비판이라고 여기는 것이 있었다. 이들은 적어도 어느정도까지는 세계체제분석의 정당성을 인정하지만, 내가 어떤 중요한 실증적 데이터를 전달하거나 해석하는 데 오류를 범했다거나 어떤 중대한 데이터를 누락했다는 이유로 내가 기술한 역사의 세세한 부분을 문제삼는다. 마지막으로 세번째 부류의 비판은 1990년대에 와서야 제기된 것들로, 붙임표와 복수형을 없애는 방식으로—다시 말해 지난 5000년에 걸쳐 언제나 단 하나의 ‘세계체제’(world system)가 존재해왔고 지금도 그러하다고 주장함으로써—세계체제분석을 수정하려는 시도다. 이 세가지 비판과 그 곁가지 비판들을 차례로 살펴보도록 하자.
주요한 비판들
1945년 이후의 베버학파가 나를 과도한 맑스주의자로 여겼다면, ‘정통’ 맑스주의자들은 내가 전혀 맑스주의적이지 않다고, 오히려 정반대로 ‘신(新)스미스주의적’(neo-Smithian)이라고 보았다.3) 여기서 정통 맑스주의자란 정당에 의해 정의된 맑스주의—즉 독일 사회민주당이나 소련 공산당이 정의한 대로의 맑스주의, 그리고 물론 대부분의 트로쯔끼주의 정당들이 규정한 대로의 맑스주의—를 따른다고 여겨지는 사람이다.
이 그룹들은 정치적 전략에서, 또한 20세기에 여러 나라에서 일어난 정치적 사건에 대한 해석에서 서로 달라도 너무 달랐지만, 그럼에도 몇몇 기본 전제를 공유했다. 첫번째 전제는 자본주의에서 계급투쟁이 지니는 성격이다. 그들은 계급투쟁을 근본적으로 신흥 도시 프롤레타리아계급과 자본가적 생산자(주로 산업기업가) 사이의 투쟁으로 정의했다. 두번째 전제는 경제적 토대가 정치적·문화적 상부구조에 대해 우위에 있다는 것이다. 세번째 전제는 인과관계의 설명에서 내부적 요인(즉 한 나라 안에서 발생한 원인)이 외부적 요인(즉 한 나라 밖에서 발생한 원인)보다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네번째 전제는 이른바 다양한 생산양식이 일정한 순서에 따라 진행된다는 관점으로 해석한 진보의 필연성이다.
정통 맑스주의자들은 세계체제분석이 이런저런 방식으로 이 전제 전부를 무시했다고 비난했다. 이러한 비난은 사실 어느정도는 타당했다. 『근대세계체제』 제1권을 놓고, 이 비판자들은 내가 생산부문에서 벌어지는 사태의 관점에서 사태를 설명했어야 함에도, 그들 말로 ‘유통주의적’(circulationist) 논증이라고 하는 것에 경도되었다고 주장했다. 말하자면 핵심부-주변부 관계를 논의할 때, 나는 자본주의적 발전을 설명하는 요인으로서 영국 내부의 계급투쟁을 무시하고, 아메리카 대륙과 북서유럽 사이의 무역의 성격과 흐름 같은, 외부적인 것으로 간주되는 요인을 중시했다는 것이다.
물론, 즉시 떠오르는 질문은 무엇에 대해 내부적인가 또는 외부적인가 하는 것이다. 정통 맑스주의자들에게 내부적이라는 것은 언제나 한 나라의 정치적 경계에 대해 내부적인 것으로 정의되었다. ‘경제’란 한 국가의 구조물이었다. 계급 또한 국가 차원의 문제였다. 자본주의적인가 아닌가의 꼬리표를 붙일 수 있는 것은 국가였다. 이에 관한 논쟁은 대단히 중요했다. 나는 자본주의를 바라보는 대안적 관점을 모색하고 있었다. 내가 보기에, 자본주의는 한 세계체제, 내가 ‘세계경제’라고 부르는 특정한 형태의 세계체제〔저자에 따르면 세계체제는 세계제국(world-empire)과 세계경제(world-economy)로 나누어진다—옮긴이〕의 특징이었다. 계급은 이 세계체제의 계급이었다. 국가 구조 또한 이 세계체제 안에서 존재했다.
이 진영에 속한 정통맑스주의자들은 좀처럼 타협의 여지가 없었다. 하지만 해가 갈수록 그들의 수는 점점 줄어들었다. 이는 내 저술의 영향 때문이기보다는 근대세계체제의 상황 변화와 더 관련이 있다. 1960년대까지 자신의 견해를 고집했던 정치적 운동들은 1968년의 세계혁명을 만들어낸 세력으로부터 심대한 도전을 받았다. 사회현실의 분석에서 젠더, 인종, 민족(ethnicity), 쎅슈얼리티 문제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강력한 운동으로 그들은 수세에 몰렸다. 또한 1980년대 신자유주의로부터 나온 정치적 반격과 세계화(globalization)라는 개념이 광범위하게 수용되면서 수세에 몰리게 되었다. 그 결과, 오늘날 1960년대 정통 맑스주의의 전통적 분석을 신봉하는 사람들은 거의 없다.
또 하나의 비판은 정통 맑스주의적 분석방법의 마지막 지적 입장이라고 할 수 있는 사상, 즉 1970년대에 매우 활기를 띤, ‘생산양식들의 절합(節合, articulation)’4)이라는 사상의 옹호자들로부터 나왔다. 나의 관점에서 보건대, 이 그룹이 실상 하고 있던 일은 사회현실이 어느 한 나라의 경계 안에서만 분석될 수 없다는 주장을 인정하는 것이었다. 그들은 비록 세계체제라는 용어를 쓰지는 않았지만, 그 세계체제 안에서 뭔가 중대한 사태가 진행되고 있음을 알아차렸다. 그들은 근본적으로 한 나라는 자본주의적이고 다른 나라는 여전히 봉건적일 수 있지만, 그럼에도 그런 나라들은 나름의 중요한 방식으로 어떻게든 서로 연관되어 있었다는 식으로 생각을 바꿨다. 그들은 그 두 생산양식이 서로 ‘절합되어’ 있으며, 따라서 어느 하나가 다른 하나에 의해 일정한 방식으로 영향을 받는다고 말했다.
내 생각에, 이렇게 어중간한 입장은 그리 설득력이 있지도 않았고 사회현실을 파악하는 우리의 능력에 중요한 무언가를 보태주지도 못했다. 어쨌든 이 학파는 한 10년쯤 얼마간 번창하다가 쇠퇴했다. 오늘날에도 이같은 이론 틀을 계속 이용하는 사람이 있는지 의문이다.
세계체제분석에 대해 매우, 아니 거의 처음부터 끝까지 적대적인 또 하나의 학파는 전통적인 법칙지향적(nomothetic) 경제학자와 사회학자로 이루어진 집단이었다. 그들이 내 작업에 그나마 관심을 두더라도 그것은 기껏해야 저널리즘이고, 최악의 경우엔 이데올로기적 주장에 지나지 않았다. 대체로 세계체제분석에 대한 그들의 반응은 비웃으며 거부하는 것이었다. 그들은 연구과제에 대한 익명의 심사위원으로 요청받은 경우가 아니면 세계체제분석을 거론할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그들의 고의적인 무관심은 두려움을 감추고 있었다. 이 그룹은 비록 전혀 다른 이유 때문이기는 하나 정통 맑스주의자와 마찬가지로 세계체제분석을 여러모로 위험하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위험에 처한 것이 무엇인지를 잘 알았다. 최근에 스티븐 메널(Stephen Mennell)은 내 책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정확하게 말했다.
요컨대 그것은 사회간의 그리고 경제간의 상호의존관계에서 초기의 작은 불평등이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확대되어 오늘날 ‘북’과 ‘남’으로 에둘러 부르는 세계의 어마어마한 차이들을 낳게 된 과정을 보여줌으로써, 시대를 초월하는 듯 보이는 데이비드 리카도(David Ricardo)의 ‘비교우위 법칙’을 역사학적으로 논박하려는 원대한 시도다.5)
사실 리카도의 법칙은 주류 거시경제학의 중심적이고 중대한 전제가 되어온 터이니, 나의 논의에 대해 이 진영에서 그토록 부정적인 반응을 보인 것은 전혀 놀라운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세계체제분석이 지식의 구조들 안에서 힘을 얻음에 따라, 법칙지향적 진영에 속한 일부 학자들은 우리가 제기한 이단적 전제들을 경험적으로 논박하기 위한 분석을 내놓기 시작했다. 이 비판자들은 세계체제분석이 현대세계에서 어떤 나라가 다른 나라보다 왜 더 ‘선진적’인지 설명하지 못하며, 몇몇의 이른바 저개발국가가 어찌하여 국가의 지위를 다른 국가들보다 더 많이 높이고 있는지 설명하지도 못했다는 것을 증명하는 데 특히 열중했다. 이 진영의 반대는 정통 맑스주의자의 그것만큼이나 끈질기며, 아마도 더 오래갈 것이다.
세번째 주요한 비판은 신(新)힌쩨주의자(neo-Hintzian)라고 부를 수 있는 그룹으로부터 나왔다. 오토 힌쩨(Otto Hintze)는 자신의 저술을 통해 현실의 정치영역이 경제영역으로부터 자율적임을 입증했다고 평가받는 독일의 정치사가였다. 이들은 크게 두가지의 비판적 분석을 제기했는데,6) 둘 다 힌쩨를 특정하게 인용한다. 그들은 입을 모아 내가 사실상 경제적 차원을 우선시하면서 분석의 정치적 차원과 경제적 차원을 구별하지 않고 하나의 영역으로 처리하는 오류를 범했다고 지적했다.
물론, 실제로 나는 정치적 변수와 경제적 변수가 모두 단 하나의 장(場)에 속해 있다고 주장했다. 나는 정치의 영역이 자율적이며, 그것을 지배하는 규칙은 경제의 영역을 지배하는 규칙과 어쨌든 다르고 심지어 상반되기까지 하다는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내 책에서 나는 근대세계체제 내에서 정치제도가 다른 제도와 함께 단지 하나의 제도적 구조로 존재하는, 그런 전체론적 분석을 강조했다. 제2,3권, 특히 제2권에서 나는 이 두 영역을 그렇게 분리하는 것의 오류를 똑똑히 설명하려고 노력했음에도, 그런 식의 비판은 수그러들지 않았다. 이는 지금도 세계체제분석이 ‘경제중심적’(economistic)이라고—이는 흔히 지나치게 ‘맑스주의적’이라는 말과 다름없는데—생각하는 사람들이 여전히 많음을 말해준다.
어쨌든, 신베버학파가 막스 베버에게 충실치 않으며 정통 맑스주의자들이 카를 맑스에게 충실치 않고 신스미스학파가 애덤 스미스에게 충실치 않은 것과 마찬가지로, 신힌쩨학파는 더이상 오토 힌쩨에게 충실하지 않았다. 정작 오토 힌쩨는 「자본주의 시대의 경제와 정치」(1929)라는 논문에서 다음과 같이 자신의 견해를 요약하면서 결론을 맺는다.
대체로, 전쟁(1차대전—옮긴이)과 그후 10년을 보건대, 자본주의적 경제발전이 국가 및 정치와 완전히 동떨어진 채 자율적으로 이루어졌다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다. 그 기간의 경험은 오히려 국가의 소관과 자본주의의 소관이 풀 수 없을 만큼 서로 긴밀히 결부되어 있으며, 동일한 역사적 발전과정의 두 측면 또는 양상일 뿐임을 보여준다.7)
내가 강조하고자 했던 바가 바로 이와 같음은 두말할 것도 없다.
끝으로, 1970년대에 번성하기 시작한 ‘문화주의’ 진영에서 나온 비판이 있다. 문화주의 진영의 대두를 분석할 때 두가지 염두에 둘 것이 있다. 첫째는 근대성에 대한 전통적인 자유주의적 이론 분석은 근대사회를 세개의 영역, 즉 경제・정치・사회문화로 갈라놓고 본다. 그런 태도는 근대세계를 다루는 세가지 사회과학 분과학문의 창설에 반영되어 있으니, 시장에 관한 학문인 경제학, 국가에 관한 학문인 정치학, (때론 시민사회로 불리는) 그밖의 모든 것에 관한 학문인 사회학이 바로 그것이다.
이같은 자유주의의 이데올로기적 편향은 이 세 영역 중 무엇이 인과관계에서 우선하는가에 관한 논쟁으로 귀결하기 마련이었다. 정통 맑스주의자들과 법칙지향적인 주류 경제학자들은 공히 경제영역을 앞세웠다. 신힌쩨학파는 암묵적으로 정치영역을 우선시했다. 그리고 당연히 문화영역에 인과적 우위를 부여하려는 쪽도 있었을 터다.
두번째 염두에 둘 것은 1968년 세계혁명이 이론적 논쟁들에 끼친 영향이다. 많은 이들에게, 1968년에 일어난 것은 경제중심주의 진영의 최종적인 붕괴(그리고 그 결과로서 지적인 퇴거)였다. 일찍이 대니얼 벨(Daniel Bell)은 1945년 이후 세계에서 맑스주의 및 맑스주의 운동이 지니는 유효성을 강력히 비판하면서 ‘이데올로기의 종언’을 언급했다.8) 1968년 이후 새로운 그룹이 예전과 다른 관점에서 맑스주의의 종언을 거론했다. 이 그룹은 개념의 ‘해체’(deconstruction)를 요구했고, ‘거대 서사’(grands récits) 또는 ‘지배 서사’(master narratives)의 종말(그리고 무용성)을 논했다.9) 기본적으로 그들이 말하는 바는 경제중심주의 진영—특히 정통 맑스주의자들—이 진화하는 사회현실에서 담론의 중요성을 간과했다는 것이었다.
그 당시 정통 맑스주의자들에 대한 비판은 이것 말고도 또 하나 있었다. 꽤 정확했던 이 비판은 그들이 계급투쟁 및 ‘프롤레타리아계급’이 역사적 주체가 되는 ‘혁명’을 앞세운 나머지 젠더, 인종, 민족, 쎅슈얼리티에 관련된 현상들의 우위를 무시했다는 것이다.
나는 이 진영에 가담하지 않는다고 비난을 받았다.10) 이 그룹이 지배 서사들을 정죄했을 때, 세계체제분석을 정통 맑스주의나 베버학파의 근대화 이론과 한통속인 것으로 취급하는 경향이 있었다. 세계체제분석이 정통 맑스주의 및 근대화 이론의 지배 서사에 대해 사실상 똑같은 비판을 제기하고 있는데도 말이다. 물론, 세계체제분석은 또다른 지배 서사를 대안으로 내세우면서 비판했다는 점에서 달랐다. 우리는 목욕물을 버리면서 아기까지 내다버리려고 하지는 않았다.
문화주의 진영에서 나온 이같은 비판의 운명은 ‘문화연구’(cultural studies) 운동 전반의 운명과 결부되어 있다. 이 진영은 응집성이라는 면에서 치명적인 흠이 있었다. 이 진영의 반은 주로 문화의 상대적 중요성—실제로는 그에 대한 배타적인 지적 관심—을 강조하는 데 열의를 쏟았다. 하지만 나머지 반은 ‘잊혀진 사람들’—종전의 지배 서사에서 무시되어온 사람들—에 관심을 쏟았다. 이 후자의 절반도 1968년 이전 시기에 이용된 지배 서사들과 다를 뿐이지 그들 역시 실은 지배 서사에 마음을 두고 있었음을 깨닫기 시작하면서, 그 둘 사이의 연대는 깨지고 말았다. 이 그룹은 새로운 삼위일체의 관심사—젠더-인종-계급, 또는 계급-젠더-인종, 또는 인종-젠더-계급—를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일단 이러한 신종 삼위일체가 대학가에서 널리 유행하게 되자, 주로 ‘잊혀진 사람들’에 관심을 두었던 이들의 일부는 세계체제분석에 대한 비난을 접고 타협할 길을 모색하기 시작하거나, 아니면 원래 그들이 우선시했던 문제들을 더욱 천착할 목적으로 세계체제분석을 적절히 변형시키려고 했다.11)
내 책이 출판된 1974년 이래로 가능한 주요한 비판들은 모두 다 제기되었다. 비록 여전히 똑같은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이 있지만, 1990년대에 들어서자 많은 비판자들이 무대에서 사라졌다. 하지만 이 주요한 비판들은 이제 잘 알려져 있고, 현대세계의 사회과학계에서 하나의 경쟁적 패러다임으로 인식되는 세계체제분석에 관한 토론의 무대 뒤로 들어가버렸다. 지금 더 많은 관심을 끄는 것은 세부적 비판들이다.
세부적 비판들
세부적 비판은 세가지 다른 쟁점을 중심으로 제기되었다. 근대세계체제의 공간적 경계와 시간적 경계, 그리고 고려되어야 할 제도적 변수가 바로 그 쟁점들이다. 『근대세계체제』 제1권은 공간적·시간적 경계를 확정하고자 했고 이 문제에 관해서는 매우 확실하게 선을 그었다. 반면 이와 관련된 제도적 변수들의 범위에 대해서는 그렇게 분명하지 못했던 것 같다.
먼저 공간적 경계부터 보기로 하자. 제1권의 주장은 자본주의 세계체제의 안과 밖으로 간주되는 것의 실제 경계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핵심부(core), 주변부(periphery), 반 주변부(semi-periphery)를 논할 수 있는 것은 이 경계 안쪽에서다. 한편 제6장에서는 내가 외부 영역이라고 이름붙인 경계 바깥에 관해 논의했고, 특히 세계경제의 주변부와 외부 영역의 차이를 어떻게 규정할지 상세히 설명하려 했다.
기본적인 논지는 대량상품(bulk goods) 교역과 사치품(preciosities) 교역을 구별할 수 있는데, 후자가 아닌 전자가 부등가교환에 기초를 두고 있다는 것이었다. 뒤에 가서 나는 이러한 구별에 대해 더 세밀히 논의하고자 했다.12) 이 구별에 기대어 나는 특정한 경계들을 예로 들었다. 이를테면 폴란드와 헝가리는 16세기 근대세계체제의 일부였다. 러시아와 오스만제국은 아니었다. 브라질은 그 안에 있었지만, 인도 아(亞)대륙은 바깥에 있었다.
이같은 경험적인 주장들에 대한 반론은 다음과 같은 두가지 방식으로 제기되었다. 하나는 대량상품과 사치품 사이의 구별이 내가 제시한 것보다 훨씬 모호하며, 따라서 이러한 구별은 체제의 경계선을 확정하는 데 이용될 수 없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이와 딴판이었다. 경계 밖에 있다고 하는 지역 가운데 어떤 곳에선 실은 자본주의 세계경제의 일부 지역과 대량상품 교역을 했으며, 따라서 나의 구별법에 근거한다면 그런 지역을 경계 ‘안’에 있는 것으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앞서 주요한 비판이라고 부르는 것들에 관한 한 나는 가차없이 반론을 폈다. 여전히 나는 세계체제분석에 대한 이런 반대의 정당성을 인정할 생각이 없다. 한편, 공간적 경계에 대한 비판에 관해서는, 처음부터 나는 경험적인 논의를 주의 깊게 경청하고, 그것이 유력하게 보일 경우 얼마든지 수정할 용의가 있다고 말했다. 한스-하인리히 놀테(Hans-Heinrich Nolte)는 16세기 러시아가 폴란드와 마찬가지로 근대세계체제의 일부였다는 주장을 길게 펼쳤다.13) 프레더릭 레인(Frederick Lane)은 세밀하게 논거를 제시한 것 같지는 않지만 오스만제국에 대해 똑같은 주장을 했다.14) 훨씬 나중에 파루크 타바크(Faruk Tabak)는 동지중해 지역 전체(기본적으로 오스만제국 전역)를 16세기 근대세계체제의 필수적인 일부로 봐야 하는 근거를 간결하면서도 설득력있게 기술했다.15)
대량상품과 사치품의 구별에 관해서는, 그런 구별의 유효성을 부정하는 다양한 시도가 있었다.16) 처음부터 나는 그러한 구별이 실제로 곤란한 것임을 알고 있었다. 나는 반론의 공세를 받으면서 한층 신중해졌다. 지금도 나의 기본적인 논점은 유효하다고 생각한다. 어쨌든 내가 나중에 말했듯이,17) 비록 자본주의 세계체제로의 ‘편입’ 여부를 판별하는 상황판이 좀더 복잡하다는 것을 인정해야 했음에도, 그 체제와 모종의 교역관계에 있되 체제의 작동 외부에 있는 지역이 존재한다는 발상은 여전히 매우 중요하다. 그것은 근대세계체제가 범위 면에서 처음부터 전세계를 포괄하지 않았으며, 더 나중(19세기 중엽)에 가서야 그렇게 되었음을 이해하는 데 기초가 된다. 내가 보기에, 공간적 경계에 관해서는 이론적이든 경험적이든 논쟁의 여지가 여전히 매우 많다.
시간적 경계의 문제는 훨씬 까다롭다. 나중에 나온 세부적 비판 가운데 많은 것들은 근대세계체제의 기점을 13세기로 밀어올리기를 원한다.18) 재닛 아부-루고드(Janet Abu-Lughod)는 좀 색다른 작업에 매달렸다.19) 그녀는 13세기 유럽이 유라시아대륙의 수많은 지역들과 맺고 있던 교역관계를 살펴보고 이를 통해 16세기 유럽의 ‘상승’에 대한 기존 설명을 다소 새로운 시각으로 조명하고자 했다.
시간적 경계에 관한 이 논쟁의 대부분은 유럽 봉건제의 성격에 관한 논쟁으로 이어졌다. 나는 통상 봉건제라고 할 때의 (중세 유럽의) ‘제1차’ 봉건제와, 내가 보기엔 부적절한 명칭이지만 강제 환금작물 노동을 지칭하는 ‘제2차’ 봉건제를 본질적으로 다른 것이라고 구별했다. 나 스스로 근대세계체제 제1권에서 가장 취약한 부분이 제1장 ‘중세적 서곡’임을 시인했거니와, 중국과 자본주의를 다룬 책에 방금 말한 장의 수정본에 해당하는 글을 실은 바 있다.20)
여기서 근본적인 문제는 내가 보기에, 흔히 그 전성기로 간주되는 1000~1500년 기간의 유럽 봉건제의 성격에 대해 어떠한 거시역사적 이론 틀도 만족스러운 설명을 내놓지 못했다는 것이다. 어떤 분석자들은 봉건제를 일종의 원(原)자본주의(protocapitalist) 체제로 보며, 그래서 그 기간이 포함되도록 근대세계체제의 시점을 더 앞으로 밀어올린다. 한편 다른 분석가들은 봉건제를 자본주의의 정반대로 보며, 그래서 근대세계의 기점으로 널리 받아들여지는 1800년 무렵으로 자본주의의 시작을 늦추어 잡는다.21)
중세 유럽의 봉건제에 대한 내 생각을 말하자면, 그것은 로마가톨릭 교회에 의해 매우 성기게 결합된, 하나의 분해된 세계제국으로 정의하는 것이 최선이 아닐까 싶다. 물론 이 책에서 언급했듯이, 그것을 자본주의 세계경제로 변형하려고 노력했지만 결국 실패한 세력들이 그 내부에 있었다. 내가 실패라고 생각한 것을, 어떤 다른 사람들은 첫걸음으로 보는 것이다.
핵심은 자본주의 세계경제를 창출하는 것이 실은 지난한 과정이었음을 이해하는 것이다. 나중에 발표한 논문에서 나는 이를 가능하게 만든 이례적 조건들을 설명하고자 했다.22) 그리고 『근대세계체제』 제2권에서는 이렇게 미약하게 시작된 체제가 17세기에 어떻게 공고해졌는지 해명하려고 노력했다. 나는 17세기를 일종의 ‘봉건제’의 귀환을 초래한 ‘위기’로 보지 않고, 그 대신 자본주의 세계경제의 구조가 강화된 시기로 보았다. 그렇게 강화되어 내포적으로, 그리고 외연적으로 그 체제는 더욱 팽창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그러므로 이 세부적 비판들 앞에서 내가 얼마간 물러서기는 했지만, 결국 근대세계체제 초기 단계의 공간적·시간적 경계에 관한 나의 논의는 본질적으로 맞다고 여전히 확신한다.
오히려 제1권에서 논의가 미흡했던 부분은 자본주의 세계경제의 제도적 매개변수였다. 나는 경제의 장에서 일어나고 있던 것이 본질상 자본주의적이었다는 논지를 확증하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거의 모든 노력을 다했다. 전체 생산조직에서 공업부문이 차지하는 비중은 작았지만, 그럼에도 나는 시선의 초점을 무엇보다도 농업에 맞추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노동력에 대한 보상방식이라는 면에서 임금노동이 아직 상대적으로 작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다는 것도 사실이지만, 나는 자본주의가 임금노동 이상의 것을 포함하는 것임을 보이고자 노력했다. 고전적 의미의 부르주아계급은 상대적으로 작은 집단으로 보였지만, 그럼에도 나는 귀족계급 자체가 부르주아계급으로 변모하고 있었다고 역설했다. 이는 한결같이 하나의 생산양식으로서의 자본주의에 대한 분석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꾸려는 시도의 일부였다. 1974년 이래로 나는 이 모든 주제들에 관해 폭넓게 글을 써왔으며, 『세계체제분석 입문』이라는 책에서 내 견해를 집약적으로 정리했다.23)
1974년 이후 여러해 동안 나는 경제 이외의 모든 영역들, 이를테면 정치, 문화, 군사, 환경 등을 무시했다고 비판받았다. 이런 비판자들은 이구동성으로 나의 기본 틀이 너무 ‘경제중심적’이라고 주장했다. 정치와 문화에 관련한 비판들에 대해서는 내 소견을 이미 내놓았다. 정치영역에 관해서는 제2권에서, 그리고 문화영역에 관해서는 『지구정치와 지구문화』24)에 이어 제4권〔The Modern World-System IV: Centrist Liberalism Triumphant, 1789-1914 (Univ. of California Press, 2011)〕에서 내가 이해하고 있는 바를 좀더 명료하게 밝히고자 노력했다.
마이클 맨(Michael Mann)과 윌리엄 맥닐(William McNeill) 두 사람은 내가 군사영역을 소홀히 다루었으며, 특히 군사기술의 중요성을 간과했다고 꼬집었다.25) 나는 이런 비판이 전적으로 옳다고는 보지 않는다. 나는 제1권과 이어 나온 책 곳곳에서 군사기술과 그것의 역할에 대해 언급했다. 하지만 대체로 나는 “전쟁은 다른 수단으로 이루어지는 정치의 연장”이라는 명언으로 표현된 클라우제비츠(Clausewitz)의 생각에 동의한다. 이러한 생각이 옳다면, 우리는 군사영역에 과도한 분석상의 자율성을 부여하는 것에 신중해야 한다.26)
끝으로, 나는 환경문제를 무시했다고 비판받았다.27) 우선 내가 이 문제를 다룰 생각이 없었음을 말해두고 싶다. 하지만 제이슨 무어(Jason Moore)가 이런 허울 좋은 변명으로부터 나를 구해주었다. 그는 제1권을 면밀히 검토한 끝에, 내가 자본주의 세계경제에 관한 이론 구성에서 생태학적 요인 및 그 결과를 아울러 고려하고 그것들을 내 분석의 중심에 두었다고 평가했다.28) 실은 내가 상당한 정도로 그렇게 했다는 것을 깨닫고서 나 스스로도 놀라웠다.
내가 제1권에서 여러 제도적 변수들을 빠뜨렸다는 비판에 대한 최선의 응답은 누구든 한꺼번에 모든 일을 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나의 저술 전체를 파악한 분별있는 독자라면, 진정으로 총체론적 분석만이 현실 세계가 작동하는 방식에 관해 뭔가 중요한 것을 말해줄 수 있다는 나의 인식론적 전제를 내가 충실히 따르고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
세계체제에 관한 수정주의적 견해
1990년대부터, 근대세계에서 중국의 역할이 심각한 정도로 무시되었고 그리하여 매우 왜곡된 세계관이 출현했음을 다양한 방식으로 주장하는 일군의 유력한 학자들이 등장했다. 어떤 이들은 15세기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중국권(Sinic) 세계가 존속했음을 강조하는 방식으로,29) 또 다른 이들은 중국과 서유럽을 경제 면에서 비교해보니 꽤나 뜻밖의 결과가 나왔음을 일깨우는 방식으로 그렇게 했다.30)
한편 안드레 군더 프랑크는 한술 더 떴다. 그는 세계체제분석의 초창기 참여자였다. 이미 그 자신이 세계체제의 기원이 16세기에 있음을 논한 책들을 낸 바 있었다.31) 하지만 1990년에 와서 그의 분석은 중대한 변화를 보였다. 단독 집필하거나 배리 질스(Barry Gills)와 공저한 논문들에서,32) 그는 세계체제(유일한 세계체제)의 기원이 대략 50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는 가설을 내놓았다. 그는 세계체제분석의 많은 기본 도구들, 가령 체제 전반에 걸쳐 동시적으로 진행된 장기 파동을 이용함으로써 세계체제를 분석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가 주장하고자 한 바는 이 단일한 세계체제가 5000년 동안 존속해왔다는 것만이 아니었다. 그는 또한 중국이 언제나(또는 거의 언제나) 이 단일한 세계체제의 중심축이었음을 주장하고자 했다. 그는 유럽의 ‘상승’을 19세기 및 20세기 일부에 국한된 현상으로 보았고, 그것도 이 중국중심 체제에서의 일시적 단절로 보았다. 그는 근대세계체제가 16세기에든 그 이전에든 유럽에서 기원했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유럽중심주의의 오류를 범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같은 질책은 나와 페르낭 브로델뿐 아니라 맑스와 베버까지 포괄했다.
그의 주저인 『리오리엔트: 아시아 시대의 세계경제(Re-Orient: Global Economy in the Asian Age, Berkeley: Univ. of California Press, 1998. 국역본 『리오리엔트』, 이희재 옮김, 이산 2003)는 널리 읽히고 논의되었다. 세계체제분석 진영에 있던 그의 동료 가운데 세 사람—싸미르 아민, 조반니 아리기(Giovanni Arrighi), 그리고 나—이 『리뷰』(Review) 특집호에 이 저작에 대한 장문의 서평을 실었다.33) 나는 세가지 문제를 중심으로 비판을 제기했다. 첫째, 프랑크의 논의는 신고전주의 경제학의 기조와 기본적으로 다르지 않다. 세계체제분석을 견지한 여느 저술들과 달리, 그것이야말로 ‘유통주의적’이라는 딱지를 붙이기에 알맞은 것이었다.
둘째, 16세기에서 18세기까지 주로 귀금속의 흐름에 근거한 서유럽과 중국의 관계에 대한 프랑크의 경험적 분석은 그 자신이 제공한 바로 그 데이터를 통해 부정확한 것으로 입증될 수 있다. 게다가 나는 내가 근본적으로 정확하다고 판단한 과거 프랑크의 경험적 분석이 이 나중의 저서에 담긴 논의들을 무력화한다는 것을 일깨우려고 했다.34)
마지막이면서 가장 중요한 것으로, 그의 분석방법은 역사의 전체상에서 자본주의를 제거해버렸다. 나는 16세기가 자본주의 세계경제의 창출에 획을 그었다고 주장했었다. 그런데 프랑크나 다른 누구라도 자본주의가 50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고 주장할 방법은 없었다. 자본주의는 공허한 말이 되어버렸다. 프랑크는 실제로 이를 인정했는데, 자본주의를 더이상 유용한 지적 개념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그의 발언이 바로 그런 뜻이었다.
중국중심의 세계역사관에서 나타나는 문제를 끝으로 하나 덧붙이자면, 프랑크가 그의 분석 전반에서 인도에 대해 모호한 역할을 부여한다는 점이다. 인도는 어떤 때는 아시아중심적 세계에 포함되는 것으로 보이기도 하고, 어떤 때는 중국중심적 세계에서 제외되는 것으로 보이기도 한다. 최근에 나온 아미야 바그치(Amiya Bagchi)의 책은 근대 인도의 역사에 대한 그 자신의 분석을 자본주의 세계경제의 출현이라는 맥락 속에 놓고 봄으로써 이러한 모호성을 드러낸다.35)
세계체제분석에 대한 이런 근본적인 수정론이 중요한 지적 역할을 계속 해나갈 수 있을지 여부는 아직 불투명하다. 그것은 향후 수십년 동안 근대세계체제의 경험적 현실 자체가 어떻게 변화하느냐 여하에 달린 문제일 것이다.
맺음말
『근대세계체제』 제1권의 집필은 줄곧 여러 면에서 내 지적 활동의 핵심이 되어온 거대한 지적 모험의 출발이었다. 이 모험은 이제 제4권에까지 이르렀다. 그 책의 서문에 쓸 말이겠지만, 앞으로 적어도 두권이, 어쩌면 제7권까지 나올 수도 있을 것이다. 내가 이 후속작업들을 다 마무리할 수 있을지는 알 수 없다. 그나마 위안이 되는 것은 그동안 내가 제5권과 제6권에 들어갈 자료를 다룬 많은 논문들을 꾸준히 써왔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1873~1968년 시기와 1945~20xx년 시기에 대한 나의 시각은 인쇄물로 접할 수 있다. 하지만 논문을 쓰는 것과 서사를 체계적으로 구축하는 것은 같은 일이 아니다. 나는 체계적인 서사를 구축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
어떤 경우든 나는 세계체제분석이 19세기 사회과학의 편협한 패러다임을 극복하는 데 필수요소라고 확신한다. 어떻게 그렇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간의 지적 여정을 자세히 적은 한 논문에서 말했듯이, 그것은 하나의 이론도, 패러다임도 아니다. 그 둘 모두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있긴 하지만, 그것은 “패러다임에 관한 논쟁의 요청”이다.36) 이 책 제1권은 여전히 그러한 요청에 대해 독창적이고 핵심적인 지렛대 구실을 하고 있다.
번역 | 성백용・한남대 역사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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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1974년에 간행된 『근대세계체제』의 2011년판 제1권 서문을 옮긴 것으로, 저자는 각각 새로운 서문을 붙인 세권의 개정판 외에 신간 제4권(부제 “Centrist Liberalism Triumphant, 1789-1914”)도 함께 출간했다. ⓒ Immanuel Wallerstein 2011/한국어판 ⓒ 창비 2011.
1) Andre Gunder Frank, “The Development of Underdevelopment,” Monthly Review, XVIII, 4, Sept. 1966, 17~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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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Robert Brenner, “The Origins of Capitalist Development: A Critique of Neo-Smithian Marxism,” New Left Review, No. 104, July-Aug. 1977, 25~93면. Maurice Zeitlin, The Civil Wars in Chile, Or, The Bourgeois Revolutions That Never Were (Princeton, New Jersey: Princeton Univ. Press, 1988).
4) Harold Wolpe, Articulation of Modes of Production (London: Routledge & Kegan Paul, 1980). 또한 Barry Hindess & Paul Q. Hirst, Pre-Capitalist Modes of Production (London: Routledge & Kegan Paul, 1977) 참조.
5) Stephen Mennell “Sociology,” in W. H. McNeil et al., eds., Berkshire Encyclopedia of World History (Great Barrington, Massachusetts: Berkshire Publishing Group, 2005), IV, 1746면.
6) Theda Skocpol, “Wallerstein’s World Capitalist System: A Theoretical and Historical Critique,” American Journal of Sociology, LXXXII, 5, Mar. 1977, 1075~90면. (Theda Skocpol, Social Revolutions in the Modern World 〔New York: Cambridge Univ. Press, 1994, 55~71면〕에 재수록.) Aristide R. Zolberg, “Origins of the Modern World System: A Missing Link,” World Politics, XXXIII, 2, Jan. 1981, 253~81면. (Aristide Zolberg, How Many Exceptionalisms: Explorations in Comparative Macroanalysis 〔Philadelphia: Temple Univ. Press, 2009, 132~57면〕에 재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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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Daniel Bell, The End of Ideology, 2nd edition (Cambridge, Massachusetts: Harvard Univ. Press, 2000; 1960년 초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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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Stanley Aronowitz, “Metatheoretical Critique of Immanuel Wallerstein’s The Modern World-System,” Theory & Society, X, 4, July 1981, 503~20면.
11) Ramon Grosfoguel, special ed., special issue of Review: Utopian Thinking, XXV, 3, 2002. Walter D. Mignolo, Local Histories/Global Design: Coloniality, Subaltern Knowledge, and Border Thinking (Princeton, New Jersey: Princeton Univ. Press, 2000); The Darker Side of the Renaissance: Literacy, Terrioriality, & Colonization, 2nd edition (Ann Arbor: The Univ. of Michigan Press, 2006). 또한 Étienne Balibar and Immanuel Wallerstein, Race, Nation, Class: Ambiguous Identities (London: Verso, 1991) 참조.
12) Immanuel Wallerstein, The Modern World-System, II: Mercantilism and the Consolidation of the European World-Economy, 1600-1750 (New York: Academic Press, 1980); The Modern World-System, III: The Second Era of Great Expansion of the Capitalist World-Economy, 1730s-1840s (San Diego: Academic Press, 1989).
13) Hans-Heinrich Nolte, “The Position of Eastern Europe in the International System in Early Modern Times,” Review, VI, 1, Summer 1982, 25~84면.
14) Frederick G. Lane, “Chapter 8, Economic Growth in Wallerstein’s Social Systems, A Review Article,” Profits from Power: Readings in Protection Rent and Violence-Controlling Enterprises (Albany: State Univ. of New York Press, 1979), 91~107면.
15) Faruk Tabak, The Waning of the Mediterranean, 1550-1870: A Geohistorical Approach (Baltimore: Johns Hopkins Univ. Press, 2008).
16) Jane Schneider, “Was There a Pre-Capitalist World-System?,” Peasant Studies, VI, 1977, 20~29면. (Christopher Chase-Dunn and Thomas Hall, eds., Core/Periphery Relations in Precapitalist Worlds 〔Boulder, Colorado: Westview Press, 1991, 45~66면〕에 재수록.) Thomas D. Hall, “Incorporation in the World-System: Toward a Critique,” American Sociological Review, LI, 3, June 1986, 390~402면; Social Change in the Southwest, 1350-1880 (Lawrence: Univ. of Kansas Press, 1989). Christopher Chase-Dunn, Global Formation: Structures of the World-Economy, 2nd revised edition (Lanham, Maryland: Rowman and Littlefield, 1998).
17) Terence Hopkins, Immanuel Wallerstein, Resat Kasaba, William G. Martin and Peter D. Phillips, special eds., special issue of Review: Incorporation into the World-Economy: How the World-System Expands, X, Nos. 5/6 (supplement), Summer/Fall 1987.
18) Fernand Braudel, Out of Italy: 1450-1650 (Paris: Flammarion, 1991); The Perspective of the World, Vol. III of Capitalism & Civilization, 15th to 18th Century (Berkeley: Univ. of California Press, 1992). Giovanni Arrighi, The Long Twentieth Century: Money, Power, and the Origins of Our Times, 2nd revised edition (New York: Verso, 2010; 1994년 초판) 〔국역본 조반니 아리기 『장기 20세기: 화폐, 권력, 그리고 우리 시대의 기원(백승욱 옮김, 그린비 2008)—옮긴이〕. Eric Mielants, The Origin of Capitalism and the “Rise of West” (Philadelphia: Temple Univ. Press, 2008). 또한 Oliver Cox, Foundation of Capitalism (New York: Oxford Univ. Press, 1989) 참조.
19) Janet Abu-Lughod, Before European Hegemony: The World System A.D. 1250-1350 (New York: Oxford Univ. Press, 1989). 국역본 재닛 아부-루고드 『유럽 패권 이전: 13세기 세계체제』, 박흥식·이은정 옮김, 까치 2006.
20) Immanuel Wallerstein, “The West, Capitalism, and the Modern World-System,” in T. Brook and G. Blue, eds., China and Historical Capitalism: Genealogies of Sinological Knowledge (New York: Cambridge Univ. Press, 2002, 10~56면).
21) Perry Anderson, Lineages of the Absolutist State (New York: Verso, 1974) 〔국역본 페리 앤더슨 『절대주의 국가의 역사』(김현일 외 옮김, 소나무 1993)〕. Alex Dupuy and Paul Fitzgerald, “Review Essays: A Contribution to the Critique of World-Systems Perspective,” Critical Sociology, VII, No. 113, 1977, 113~124면. Steve J. Stern, “Feudalism, Capitalism, and the World-System in the Perspective of Latin America and the Caribbean,” American Historical Review, XCIII, 4, Oct. 1988, 829~72면. Immanuel Wallerstein, “AHR Forum: Comments on Steve’s Critical Tests,” American Historical Review, XCIII, 4, Oct. 1988, 873~85면. Steve J. Stern, “Reply: ‘Ever More Solitary,’” American Historical Review, XCIII, 4, Oct. 1988b, 886~97면.
22) Immanuel Wallerstein, “The West, Capitalism, and the Modern World-System.”
23) Immanuel Wallerstein, World-Systems Analysis: An Introduction (Durham, North Carolina: Duke Univ. Press, 2006).
24) Immanuel Wallerstein, Geopolitics and Geoculture (Cambridge: Cambridge Univ. Press, 1991).
25) Michael Mann, States, War and Capitalism (New York: B. Blackwell, 1988). William H. McNeill, The Pursuit of Power: Technology, Armed Force, and Society Since A.D. 1000 (Chicago, The Univ. of Chicago Press, 1982).
26) 또한 Giovanni Arrighi, “Capitalism and the Modern World-System: Rethinking the Non-Debates of the 1970s,” Review, XXI, 1, 1998, 113~29면 참조.
27) Sing Chew, “For Nature: Deep Greening World-Systems Analysis for the 21st Century,” Journal of World-Systems Research, III, 3, 1997, 381~402면. (http://jwsr.ucr.edu/archive/vol3/v3n32.php.)
28) Jason W. Moore, “The ‘Modern World-System’ as Environment History? Ecology and the Rise of Capitalism,” Theory & Society, XXXII, 3, June 2003, 307~77면.
29) Takeshi Hamashita, “The Tribute Trade System and Modern Asia,” Memoirs of the Toyo Bunko, No. 46, 1988, 7~25면. Giovanni Arrighi, Takeshi Hamashita, and Mark Selden, The Resurgence of East Asia: 500, 150 and 50 Year Perspectives (London: Routledge, 2003). Giovanni Arrighi, Adam Smith in Beijing (New York: Verso, 2007). 국역본 조반니 아리기 『베이징의 애덤 스미스: 21세기의 계보』, 강진아 옮김, 길 2009.
30) Kenneth Pomeranz, The Great Divergence: China, Europe, and the Making of the Modern World Economy (Princeton, New Jersey: Princeton Univ. Press, 2000).
31) Andre Gunder Frank, Capitalism and Underdevelopment in Latin America (New York: Monthly Review Press, 1967); Mexican Agriculture, 1521-1630: Transformation of the Mode of Production (New York: Cambridge Univ. Press, 2008, 1979년 초판); World Accumulation, 1492-1789 (New York: Monthly Review Press, 2009; 1978년 초판).
32) Andre Gunder Frank, “A Theoretical Introduction to Five Thousand Years of World System History,” Review, XIII, 2, Spring 1990, 155~250면. Andre Gunder Frank, and Barry Gills, eds., The World System: 500 Years or 5,000? (Lanham, Maryland: Routledge, 1996).
33) Review, “ReOrientalism?,” XXII, 3, 1999.
34) Andre Gunder Frank, “Multilateral Merchandise Trade Imbalances and Uneven Economic Development,” Journal of European Economic History, V, 2, Fall 1976, 407~38면.
35) Amiya Kumar Bagchi, Perilous Passage: Mankind and the Global Accendancy of Capital (Lanham, Maryland: Rowman & Littlefield, 2005).
36) Immanuel Wallerstein, “The Itinerary of World-System Analysis, or, How to Resist Becoming a Theory,” in J. Beger and M. Zelditch Jr., eds., New Direction in Contemporary Sociological Theory (Lanham, Rowman & Littlefield, 2002), 358~76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