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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평
 

울리히 벡 『세계화 시대의 권력과 대항권력』, 길 2011 

세계시민국가를 향하여

 

 

김성호 金成鎬

서울여대 영문과 교수 shkim@swu.ac.kr

 

 

16459세계화는 온 세계에 절망과 희망을 불균등하게 분배하고 있는 엄중한 현실이지만, ‘세계화’ 혹은 ‘세계화 시대’라는 화두는 이제 사람들의 관심을 사로잡기에는 퍽이나 진부하게 들린다. 따라붙는 말이 웬만큼 참신하지 않다면 말이다. 독일 사회학자 울리히 벡(Ulrich Beck)은 세계화 시대의 ‘권력과 대항권력’에 대해 이야기하겠다고 한다. 참신함과는 거리가 있는 주제가 아닐까. 민주주의와 시민운동의 국제적 연대, 비정부기구와 유엔의 역할 강화 등등. 그러나 이 책에서 실제로 펼치는 주장은 그보다 훨씬 야심차고, 분석의 틀은 포괄적이면서도 탄탄하다. 독자가 거기서 발견하는 지구적 현실과 미래의 전망은 『위험사회』(새물결 1997; 2006), 『지구화의 길』(거름 2000) 등 벡의 이전 저서에서 보았던 것과 연속적이지만 또한 대단히 새롭다.

2002년의 원서를 우리말로 옮긴 『세계화 시대의 권력과 대항권력』(Macht und Gegenmacht im globalen Zeitalter, 홍찬숙 옮김)은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대한 현황조사도, 대안세계화에 관한 통상적 이야기의 변주도 아니다. 무엇보다 그것은 세계시민주의를 다루는데(옮긴이에 따르면 이 책은 벡이 2000년대에 펴낸 ‘세계시민주의 사회학 3부작’ 중 첫번째다. 다른 두권은 아직 우리말로 번역되지 않았다), 1990년대 이후 열띠게 펼쳐진 세계시민주의 논쟁의 맥락에서 벡은 자기만의 자리를 확보하고 있다. 이 고유한 면모가 드러나는 대목이야말로 이 책의 가장 흥미로우면서도 문제적인 지점일 텐데, 그 고유성은 ‘세계시민국가’와 ‘개인화’라는 두가지 개념으로 압축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세계화에 대한 대응으로서의 세계시민주의에 관한 논쟁은 지금까지 대략 네가지 입장 간에 전개되었다. 배타적 민족주의를 포함한 공동체주의(반세계화), 민족국가 및 국가간체제의 해체와 단일한 세계통치체제를 전망하는 세계국가론, 국가간의 정치·문화적 경계를 개인 정체성 차원에서 ‘초월’—실제로는 무시—하려는 탈근대적·탈정체성주의적 ‘현존 세계시민주의’, 이상의 세가지를 공히 비판하면서 국지적 현실과 지구적 현실의 동시적 사고, 그리고 국가와 세계 차원의 이중적 유대관계를 지향하는 ‘뿌리박은 세계시민주의’가 그것이다. 계보를 따지자면 벡은 마지막 입장에 속하는데, 여기에는 이 책에 언급된 코헨(M. Cohen)을 비롯해 홀(S. Hall), 캘훈(C. Calhoun), 브레넌(T. Brennan), 취아(P. Cheah), (다소 문제적이지만) 헬드(D. Held), 아피아(K. A. Appiah) 등 여러 논자가 포함된다. 벡에 따르면 “이중의 고향”에 대한 “이중의 충성심”(79면)을 지닌 세계시민은 일국적 정체성을 배반하지 않으면서 세계적 책임의식을 지닌다. 그의 ‘세계시민주권’은 타자의 다름을 부정하거나 그 다름을 이유로 타자를 차별하지 않는다. 타자는 “다르며 또한 동등하다고 긍정”되며 이로써 “인종주의와 (…) 보편주의 두 입장이 똑같이 거부”된다(433면). 요컨대 “‘세계시민적’이란 평등과 차이 양자를 동시에 인정하고, 전지구적으로 책임지는 것을 의미한다”(164면). 전지구적 ‘책임’은 무엇보다 ‘전지구적 위험사회’의 성찰에, 그리고 인권을 핵심으로 하는 전지구적 규범의식에 기초한 ‘초국적 공론장’의 형성으로 발현된다.

이렇게 보면 벡의 세계시민주의는 공동체주의를 발전적으로 지양한 하나의 ‘이념’으로 나타난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의 ‘인식틀’이기도 하다. 벡은 자신이 세계시민적 이상주의나 낭만주의가 아니라 세계시민적 현실주의를 제안하고 있음을 강조한다. 지구적 상호의존성과 위기 등을 일국적 관점에서 파악하면 현실을 오인하게 되며 올바른 인식은 초국적 준거틀을 요구한다는 것이다(189~95면). 나아가 세계시민주의는 하나의 ‘전략’이기도 하다. 벡은 과하다 싶을 정도로 많은 항목에 ‘전략’이라는 이름을 붙인다. 그에 따르면 오늘날의 ‘세계정치적 메타게임’의 주요 주체는 자본, 국가, 지구적 시민사회로서 이 주체들은 각기 다양한 전략을 구사한다. 세계시민주의가 하나의 전략이라는 말은 이를 통해 주체의 행위역량이 고양됨을 뜻한다.

여기서 주목되는바 벡의 사유가 특징적으로 나타나는 ‘전략’은 그가 ‘국가세계시민화 전략’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국가는 신자유주의적 초국화의 압력에 굴복할 수도 있고 그에 저항해 민족주의를 강화할 수도 있다. 그러나 벡은 국가가 이런 양자택일을 넘어 “세계시민적 방향으로 자체 전환”(269면)할 가능성을 탐색한다. 그렇게 탄생한 ‘세계시민국가’는 “여타 국가와 비정부기구들, 세계기구들, 초국적 콘체른을 포함하는 초국적 연결망”(339면) 속에 능동적으로 편입되어 그 연결망의 공조를 통해 자신의 행위역량을 증대한다. 그러나 국가의 세계시민화는 개별국가 차원에서 효과를 볼 수 없으며 우선은 유럽연합 같은 지역동맹의 형태로만 구현될 수 있다. 이런 국가연합이 세계 여러 지역에서 지역 특성에 맞게 형성되고 서로 연결되면 “세계시민적 국가연방주의”(170면)가 가능해진다. 이런 방식으로 벡은 일국주의에 사로잡힌 국민-국민국가-국가간체제가 세계시민-세계시민국가-세계연방으로 전환될 것을 전망한다.

결국 벡에게 국가는 어떤 초국적 체제 속에 해소될 조직도, 국가간체제와 초국적 체제 사이에 있는 “과도기적 공간”(브레넌)도 아니며, 세계화에 맞서는 ‘진지(陣地)’ 같은 것은 더더구나 아니다. 그의 시각에서는 국가권력의 성격이 어떻게 바뀌든, 국가가 자본, 시민사회와 더불어 세계정치적 ‘메타게임’에 참여하는 ‘행위자’라는 점은 그 ‘메타게임’의 존재 자체와 마찬가지로 변치 않을 사실이다. “인권은 (…) 항상 국가와의 (아마도 또 개별국가의 지배영역 내 콘체른과의) 거대한 연합을 통해서만 관철될 수 있고 보장될 수 있다”(379면)는 그의 선언은 그래서 나온다. 그의 주장대로 ‘현실주의적’이라고 해야 할까? “통일된 세계국가라는 비현실적 유혹”(167면)이 우리의 선택지가 아니라는 것, 따지고 보면 ‘세계시민적 국가연방주의’가 ‘세계국가’보다 현실적일 뿐 아니라 규범적이라는 것에 많은 사람들이 동의할 것이다. 시민권력—부르주아가 아닌 씨뚜아양(citoyen)의 권력—으로서 세계적 연방에 포함된 세계시민국가를 여전히 ‘국가’로 규정할지 말지는 부차적인 문제다.

진짜 문제는 벡이 ‘전략’을 당위와 혼동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국가는 어떻게 세계시민국가로 “자체 전환”되는가? 벡의 대답은 지구적 위기에 대한 인식과 ‘세계시민화’로 인한 행위역량 증가의 전망이 국가를 변화시킨다는 것일 게다. 그러나 이는 국가가 이성적 행위자라는 전제를 깔고 있다. 물론 동의하기 어려운 전제다. 세계시민국가는 어떻게 콘체른(자본)을 세계시민적 목적(가령 인권향상)에 봉사하도록 견인할 것인가? 가능한 대답은 ‘문제의 (세계)공론화를 통해서’다. 그러나 자본은 공론에 따라 움직이는 존재도, 공론이 자신의 이익에 반하는 쪽으로 형성되도록 방치하는 존재도 아니다. 세계시민국가와 자본의 ‘연합’은 둘의 반목과 심지어는 생사를 건 투쟁보다 더 현실적인 가능성인가?

또 하나의 의문은 이른바 ‘세계시민체제’하의 개인의 위상에 관한 것이다. 벡은 “세계시민주의는 개인화를 전제, 강화, 긍정한다”(434면)고 말한다. 개인은 하나의 균질적 문화집단에 긴박된 존재가 아니다. “개인들에게는 이질적인 것들 사이에 다리를 놓고 그것들을 번역하는 것이 생존의 기술이다”(같은 곳). 개인의 다변적 삶에 대한 이런 긍정은 세계시민적 책임성에 대한 강조와 더불어, 하위집단들의 넘을 수 없는 경계에 사유가 고착된 다문화주의와 벡을 구별하는 중요한 요소다. 그의 말대로 세계시민주의에서 개인의 사회적 규정은 상대화되고 해체된다. 그런데 개인의 차원에서 이질적인 것들을 ‘번역’하는 주체는 누구며, ‘번역’의 결과는 집단기억의 형태로 존재하는 사회적·국가적·세계적 정체성과 어떤 관계에 있는가? 벡은 개인의 주도성과 사회적 결정성을 단순대립의 관계에 놓고 있지는 않은가? 조금 다른 맥락에서, 벡은 개개인의 삶에 수용될 뿐 아니라 거기서 산출되기도 하는 무수한 이질적 요구들을 다룰 만한 공론장으로서 “세계(시민)의회”(468면)처럼 명백히 기능이 제한된 대리제도 외에 어떤 형식을 구상하고 있는가?

세계시민국가는 매력적인 이상이다. 벡은 수많은 ‘전략’들을 제시함으로써 그 이상이 현실적 문제고 또 현실화될 수 있는 목표임을 주장하려는 듯하다. 분명 그것은 현실적 문제다. 그러나 현실화는 난망해 보인다. 그 이유는 어쩌면 벡의 구상이 충분히 현실주의적이지 않아서가 아니라 오히려 너무 현실주의적이어서, 즉 그가 전망하는 현실의 재편이 충분히 발본적이지 않아서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