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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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평

 

이딸리아는 어디에 있는 나라인가

창비의 외래어표기법과 정부의 외래어표기법

 

 

염종선 廉鍾善

창비 인문사회출판부장 yum@changbi.com

 

 

4412창비 트위터나 페이스북에는 외래어표기법에 대한 질문이나 항의성 글들이 종종 올라온다. 창비는 왜 ‘이탈리아’ ‘톨스토이’ 같은 단어를 ‘이딸리아’ ‘똘스또이’라고 쓰느냐, 그럼 ‘오렌지’가 아니라 ‘어륀지’라고 써야 한다는 말이냐, 외래어표기법은 사회적 약속인데 맘에 안 들더라도 정해진 규범을 준수해야 하지 않느냐 등의 글이다. 창비는 (몇년 전 발간을 시작한 교과서나 교과연계 도서를 제외하고는) 수십년 동안 ‘독특한’ 외래어표기법을 사용해왔고, 비판과 지지의 엇갈린 반응을 얻곤 했다.

정부가 고시한 외래어표기법에서는 인정하지 않는 경음(된소리)을 사용하는 것이 원음(原音)을 중시하는 창비 외래어표기법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이다. 그 대표적인 예가 ‘빠리’인데, 눈 밝은 독자라면 창비에서 나온 홍세화(洪世和)의 저서 이름이 ‘나는 파리의 택시운전사’가 아니라 ‘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라는 것을 알고 있을 것이다. 이 책의 저자가 주창하는 관용의 정신도 ‘톨레랑스’가 아니라 ‘똘레랑스’라고 표기되어 있다.

1986년에 제정되어 현재 통용중인 정부 고시 외래어표기법에는 “파열음 표기에는 된소리를 쓰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는 조항이 있다. 따라서 [p] [t] [k]라는 음가는 어느 언어이든 개의치 않고 ㅍ, ㅌ, ㅋ로 적어준다. 우리에게 가장 영향력있는 언어인 영어의 표기에서는 별 문제가 없다. 영어에서 [p] [t] [k]는 거의 대부분의 경우에 우리말 격음(거센소리) [ㅍ] [ㅌ] [ㅋ]로 발음되기 때문이다. 펜(pen), 팁(tip), 킹(king)으로 적어주면 된다. 영어와 같은 게르만어 계통인 독일어도 그렇다. 그런데 프랑스어, 이딸리아어, 에스빠냐어 등 로망스어 계열과 러시아어 등 슬라브어 계열의 언어에서 [p] [t] [k]는 격음이 아니라 경음 [ㅃ] [ㄸ] [ㄲ]에 가깝게 소리난다. 여기서부터 문제가 발생한다. 정부의 표기법에 따른 톨레랑스(tolérance), 이탈리아(Italia), 투르게네프(Turgenev)가 아니라 똘레랑스, 이딸리아, 뚜르게네프가 원음에 가까운 표기이기 때문이다.

우리말 자음에 ㅍ, ㅌ, ㅋ만 있고 ㅃ, ㄸ, ㄲ가 없다면 모르되, 엄연히 존재하는 이들 경음을 인정하지 않고 표기에서 원천 배제하는 것은, 마치 걸리적거린다고 다섯 손가락 중에서 네 손가락만 쓰는 것과도 같다.

더구나 그것은 다분히 영어중심적인 발상이다. 영미인들은 프랑스나 러시아 등 외국에서 들어온 단어에 나오는 [p] [t] [k]를 (우리 식으로 표현하자면) [ㅍ] [ㅌ] [ㅋ]로 읽어주면 그만이다. 영어에는 [ㅃ] [ㄸ] [ㄲ]에 해당하는 발음이 없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점도 있다. 그런데 우리가 프랑스나 러시아 등에서 들어온 말을 굳이 영어식 발음으로 읽을 이유가 없지 않은가. 과거에는 대개의 문헌이나 정보, 각종 용어와 고유명사가 영미권을 통해 들어왔지만, 지금은 하루에도 수천, 수만명씩 전세계 곳곳으로 여행과 비즈니스, 학술회의를 하러 다니는 세상이 아닌가. 굳이 영어라는 깔때기를 고집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사실 원음을 존중해야 한다는 의식이 발전하기는 했다. 과거에는 전부 영어식 또는 우리말 한자어 발음대로 읽어주던 것들도 이제는 현지어 발음을 따르는 경우가 늘었다. 옛날에는 ‘베니스’(Venice)란 영어식 표현 일색이었다가 요즘에는 ‘베네찌아’(Venezia)란 현지어가 힘을 얻고 있다. ‘플랜더스’(Flanders)와 ‘플랑드르’(Flandre), ‘비엔나’(Vienna)와 ‘빈’(Wien)도 마찬가지 경우이고, 지금은 ‘무라까미 하루끼’(村上春樹)를 ‘촌상춘수’라고 읽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유럽어의 경우, 발음 표기만은 아직 영미식을 버리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경음을 배제했기 때문이다.

결정적인 계기가 한번 있기는 했다. 2004년 정부의 외래어표기법에 타이(태국)어 표기가 추가로 제정되면서 마침내 부분적으로 파열음의 경음 표기가 허용되었다. 타이어에서는 우리말처럼 평음(예사소리)-격음-경음의 3항 대립구도가 있어, 그간 허용하지 않던 경음 표기를 하지 않으면 안되게 된 것이다. 밧(baht)-푸껫(Phuket)-빡남(Paknam)의 예처럼 평음(ㅂ)과 격음(ㅍ) 외에 드디어 경음(ㅃ)이 시민권을 얻은 것이다. 그런데 추측건대 그보다 10년쯤 전에 타이어 표기법을 만들었다면 각각은 밧, 푸켓, 팍남 혹은 바트, 푸케트, 파크남 정도로 정해졌을 것이다. 외래어표기법의 ‘파열음에 된소리를 쓰지 않는다’는 조항이 워낙 완강했기 때문이다.

여하튼 늦게나마 표기가 현실화되어 경음이 도입된 것은 환영할 만한 일이었다. 모르긴 해도 1990년대 중반부터 불기 시작한 타이 푸껫 섬으로의 한국인 신혼여행 붐이 한몫을 했을 것이다. 직접 현지인의 발음을 들어보니, 그곳의 지명을 그곳의 발음대로가 아니라 영어식으로 읽고 쓰는 기존의 표기정책이 이상하게 여겨졌을 테고. 그래서 결국 새로운 표기법이 만들어졌을 것이다. 하지만 결정적으로 아쉬운 점은 이를 계기로 프랑스어, 이딸리아어, 에스빠냐어, 러시아어 등에서도 경음을 도입했다면 외래어표기법 전반이 개선됐을 텐데 이런 기회를 놓쳤다는 것이다.

원음에 가깝게 표기하는 것이 왜 그리 중요한가. 외래어란 외국에서 들어와 굳어져버린 우리말이므로 우리 식대로, 우리 어법에 맞게 쓰면 되지, ㄲ이냐 ㅋ이냐가 뭐 그리 중요하단 말인가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물론 창비도 우리말로 굳어져버린 외래어의 경우 관례를 존중한다. 그러나 아직 관용화가 안되어 원음에 가깝게 쓰지 않으면 식별이 어려운 ‘외래어’나 외래어가 아닌 ‘외국어’를 표기할 경우에 창비식 표기법은 더욱 긴요해진다.

이런 비유도 들 수 있다. 원주율을 의미하는 파이(π)의 값은 3.141592653589793238…이다. 그런데 우리 일상에서는 이 계속되는 무리수를 전부 적어줄 수 없기 때문에 π=3.14라고 근삿값으로 정의한다. 외래어표기도 이런 점이 있다. 일상에서 쓰기 쉽게 근삿값을 정의하되, 그것은 원래의 값을 기준으로, 원래의 값을 부단히 의식한 가운데 나온 것이어야 하는 것이다. 한글은 외국어 원음에 아주 가까이 표기할 수 있는 능력이 있으며, 지금은 사라져버린 자모까지 복원한다면 원음 모사 가능성은 몇배로 확장될 수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외국어를 100퍼센트 똑같이 모사할 수 있는 것은 아니며, 또 그게 가능하다고 해도 하나하나의 단어를 매우 정밀하게 표현하기 위해 없어진 자모를 부활시키거나 엄청나게 복잡한 규정을 만들어가면서까지 할 일은 아니다. 그런 점에서 ‘오렌지’가 아니라 ‘어륀지’라고 하는 것은 과잉이다. 그런데 우리말이 지닌 가능성을 십분 살려 외국어를 원음에 가깝게 드러내면서 우리말 규범에도 맞게 표기해주는 일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그것이 이를테면 표기에서 3.14의 지점을 찾는 일이다.

외래어를 적을 때 경음을 사용하지 않는다는 현재의 정부 표기법 조항은 π=3이라고 하면 되지 뭐하러 소수점 아래 두 자리까지 적느냐고 하는 것과 비슷하다. 편의를 빙자해 ‘자연수 이외는 사용하지 않는다’라는 행정적 규제를 만드는 일이다. 현지인이 ‘이딸리아’라고 발음하는데 그것을 ‘이탈리아’로 적어야 한다고 고집하는 것은 ‘바람 풍’은 틀리고 ‘바담 풍’이 맞다고 우기는 것과 다르지 않다. ‘이딸리아’는 뒤늦게 나타난 어떤 새로운 나라가 아니라, 그곳에 사는 사람들이 늘 그렇게 부르며 살아왔던, 바로 그 나라인 것이다.

외래어에서 경음 표기를 하려면 일일이 국적을 알아야 하는데 그게 어렵다는 의견도 있다. 그러나 정부의 표기법에서도 동일한 Paul이라도 영국인 Paul은 폴(폴 매카트니)로, 독일인 Paul은 파울(파울 첼란)로 국적에 따라 달리 적어주도록 되어 있다. 그곳 사람들이 그렇게 부르기 때문이다. 더구나 지금은 ‘정부・언론 외래어심의 공동위원회’가 두달마다 열려 새로운 인명・지명 등의 외래어표기를 논의해서 정하고 있다. 그렇다. 바로 그런 것이 정부가 해야 할 일이다. 원칙을 정하고 경음의 용례를 축적해주는 것은 이런 전문위원회의 활동에 포함시키면 될 일이다. 그러면 일개 출판사의 편집자들이 참고할 바 없는 외로운 작업을 하느라 교정지 앞에서 머리를 쥐어뜯을 일도 없을 것이다.

창비의 표기법을 두고, 이미 정해진 사회적 약속, 더 구체적으로는 정부의 표기규범을 준수하지 않는 것은 문제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법과 규정은 시대에 따라 변하는 것이다. 창비식 표기법 또한 관용화의 진전에 따라 부분적으로 수정되곤 한다. 시대와 맞지 않는 호적법이 폐기되고 간통죄가 흔들리는 것처럼, ‘자장면’에 의해 추방당했던 ‘짜장면’이 귀환한 것처럼, 외래어표기법도 시대에 따라 변할 수 있는 것이다. 남북한 간의 표기 규범과 형태의 통일이라는 과제도 우리 앞에 있다. 그것은 우리가 딛고 있는 토대가 돌이킬 수 없도록 딱딱하게 굳어진 것이 아니라 변화의 유동성 속에 열려 있음을 말해준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법을 어기는 것이 아니라 더 합당한 법을 만드는 데 이바지하는 것이다.

염종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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