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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최정례 崔正禮
1955년 경기도 화성 출생. 1990년『현대시학』으로 등단. 시집『내 귓속의 장대나무숲』『햇빛 속에 호랑이』『붉은 밭』『레바논 감정』등이 있음. ch2222@dreamwiz.com
당신 발바닥 쓰시마섬 같애
이불 밖으로 삐죽이 빠져나온 당신 한쪽 발
엎어져 자고 있는 발바닥이 바다 위에 섬 같애
숨도 쉬지 않고 조용히 조용히 자고 있는 쓰시마섬
왜구의 노략질이 심해지자 태종은 대마도 정벌을 명하였대
토요또미 히데요시도 쓰시마에 기지를 구축하였고
왜 그 생각이 나나 모르겠네
젊어 징용가서 다시는 못 돌아온 고모부
절벽 위에 고사목처럼 살다 이제는 죽은 지 오래된 고모
바다 한가운데 엎어진 배처럼 조용히 떠서 자고 있었네
새벽에 혼자 깨어 들여다보니
참 멀리도 떨어져나간 당신 발바닥이네
나라 잃은 설움을 안고 왜(倭)의 물은 한모금도 안 마신다며
생으로 굶어 죽은 최익현의 발자국도 그 섬에 떠돈다는데
그러고 보니 혼자 방황하는 당신 발바닥이네
당신의 몸 가장 궁벽한 곳, 가장 쓸쓸한 곳
회사는 넘어가고 친구들의 부고장은 하나둘 날아오고
술도 담배도 끊었지만 잠이 안 온다고 뒤척이더니
그 나라에서도 쫓겨나 갈 곳 없는 자들이 모여 살던 곳이 쓰시마래
작은 섬 앞바다에 역관 백여명을 돌풍에 휩쓸려 보내고도
대마도는 우리 땅이라고 조선사람들은 믿었다는데
당신 발바닥은 영 딴 나라 같네
동떨어져서 낯설기만 하고
당신의 쓰시마, 쓰시마섬
배칠수의 배철수가
자다 깨어보니 TV는 켜 있었고
누가 흘러간 옛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리모컨은 손끝에서 흘러내려 엎어지고
열린 창문으로 비가 들이치고 있었다
아주 멀리 내 몸이 떠내려온 것 같았다
꿈속의 내가 나를 마주보고 있듯이
배철수와 배칠수가 뭐라고 뭐라고
서로를 웃기려고 하면서 웃지는 않고 있었다
드라마의 중간 어디쯤
그 여자의 남자가 다시는 나타나지 않겠다고
소리치고 돌아섰는데
그다음 어디쯤에서 잠이 들었는지
빗소리 때문인지도 모른다
흘러간 노래가 잠을 깨운 것 같기도 했다
천장의 형광등이 그 노래를 건성으로 듣고 있었다
평생을 일년같이 아무것도 못하고
너만 생각할 것만 같아
일년을 하루같이 아무것도 못하고
너만 생각하고 있잖아
새벽 1시에서 시계는 서 있다가
한없이 느리게 기어가고 있었다
세월이 흘러가면 어디로 가는지
나는 아직 모르잖아요
그대 내 곁에 있어요 떠나가지 말아요
아득한 곳에서 깨어나
남의 나라 남의 집 남의 방에서
후렴으로 반복되고 있었다
느리고 느리게 맴돌고 있었다
방마다 불은 환하게 켜져 있었고
이상한 나라에서 쓰러져 잠이 든 채
배칠수의 배철수가 사회를 보는
흘러간 옛노래를 듣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