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기구독 회원 전용 콘텐츠
『창작과비평』을 정기구독하시면 모든 글의 전문을 읽으실 수 있습니다.
구독 중이신 회원은 로그인 후 이용 가능합니다.
촌평
송경동 산문집 『꿈꾸는 자 잡혀간다』, 실천문학사 2011
꿈꾸는 자의 가능성
김소연 金素延
시인 catjuice0@gmail.com
언젠가 시민들 앞에 서서 문학이 어쩌구저쩌구 아는 체를 해야 하는 강의를 맡았을 때, 한 여성이 내게 측은한 표정으로 질문을 했다. 문학을 한다는 게 이 시대에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느냐고. 노력한 바에 비하면 턱없이 가난하게 살아야 하지 않느냐고. 아무리 유명해진다 해도 대중적인 지지를 얻지는 못하잖느냐고. 그렇기 때문에 잘못된 세상을 바로잡을 힘도 없지 않느냐고. 문학에 대한 그 사람의 생각은 그 어디도 틀린 데가 없었다. 그렇지만 물음에 담긴 ‘가난’과 ‘지지’, ‘힘’이라는 말은 그렇게 쓸 수 없을 것 같았다.
가난, 지지, 힘. 여기에는 이제 ‘진정한’이라는 말이 앞에 붙어야 한다. 그리고 ‘가능성’이라는 말이 뒤에 또 붙어야 한다. 진정한 가난의 가능성. 진정한 지지의 가능성. 진정한 힘의 가능성. 언어와 씨름하며 문학하는 자답게 나는, 이 말들을 붙잡고 까탈스런 설명을 한 다음에 그 증거로 송경동(宋竟東)의 시집 『사소한 물음에 답함』과 산문집 『꿈꾸는 자 잡혀간다』를 읽어보시라고 권했다. 그 여성이 두권의 책을 사서 읽었을 때 마음이 어땠을까. 문학이 더 측은하게 여겨졌을까. 모르고 싶은 진실의 한쪽 면이 아프게 와닿아서 못내 불편해 고개를 저었을까.
『꿈꾸는 자 잡혀간다』는 5부로 짜여 있다. 1부와 2부에는 자신이 살아온 이야기를 소소하게 담았다. 첫장을 열면 교련복 바지를 입은 앳된 얼굴의 고등학생 사진이 실려 있다. 고교시절 시화전에 참여한 문예반 시절부터, 해방후 철도노조를 세우고 빨치산 활동에 가담했던 장인어른의 과거사, 싸우나를 놀이공원쯤으로 여기는 아들과 함께 목욕을 다녀오는 이야기 등 가족의 내력이 실려 있다. 그러면서 그는 지금의 자기 모습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청년은 자신이 꿈꾸던 시인도 되었다. 널리 촉망받지는 못하지만 가끔은 지면도 얻었다. 종종 선생님이라는 말도 들었다. 연장 가방이나 작업복 가방이 아닌 조그마한 책가방을 메고 다닌다. 모든 게 그나마 안정을 이룬 듯하다. 장년이 된 청년은 지금도 그때의 일을 적어보곤 한다. 잘 있니? 그 잡부 숙소는 가끔 들러보니? 그때의 사람들은 모두 안녕하고? 결핵은 다 나았나요? 언제나 우리는 다시 만날 수 있을까요?”(25면)
청년시절에 비하면 무척이나 아늑해진 자신의 일상에서 그는 끊임없이 험난했지만 꿈 하나만큼은 간절했던 과거를 돌아보고 그때의 인연들에게 안부를 묻는다. 돌이켜보고 되새긴다. 잊지 않으려고 기록하고 애쓴다. “이건 아닌데, 이런 건 아니었는데” 하면서. 이 산문집 앞부분의 절반 이상은 ‘이건 아닌데, 이런 건 아니었는데’에 대한 뼈아픈 기록일 것이다. 누군가가 이 책을 읽고서 함께 ‘이건 아닌데’라는 생각에 동참하고 ‘이런 건 아니었는데’라는 생각 때문에 잠을 청할 시간에 뒤척이게 된다면 그 사람은 송경동의 편이자 가난의 편이다. 가난의 편에 서서 가난하지 않은 삶의 가난을 괴로워하는 사람이다. 가난하지 않은 삶이 도리어 불편한 사람이다. 안녕하지 못할 뿐 아니라, 밥그릇을 빼앗겨 내몰리고 죽음에까지 이르는 사람들의 소식이 귓전에 들려오는 세상에서 나만 안녕하다는 사실에 안도하는 괴물은 아직 되지 않은 사람이다. 그래야 사람이니까. 송경동이 자신의 ‘꿈꾸는 청춘’을 소회하고 이웃의 ‘가난한 마음들’을 기록한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가난함을 다시 들춰서, 윤택해진 우리가 어째서 여전히 가난하고, 가난한 사람보다 더 가난한지를 생각해보게 한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빚진 채 이 윤택함을 누리고 있는지, 그 미안함을 들춰보게 한다. 가난함은 홀로 가난하지 않으며 윤택함도 홀로 윤택할 리 없다는, 우리의 연결들을 보게 한다. 나는 그걸 ‘가난의 가능성’이라고 생각한다.
이 책의 4부와 5부는 투쟁현장에 대한 기록이자, 그 현장에서 씌어진 시에 대한 뒷이야기다. 대추리(평택 미군기지 이전부지), 기흥(수원 삼성반도체 공장 소재지), 기륭(비정규직 투쟁이 6년간 지속된 중소기업), 용산(2009년 1월 철거민 참사), 그리고 한진(김진숙의 크레인 고공농성이 벌어진 중공업체). 실천하고 연대한 힘으로 씌어진 그의 시와 산문은 훗날 2000년대가 어떻게 시작됐고 흘러갔는지를 제대로 알고 싶어할 사람들에게 더욱 소중할 자료가 됐다. 역사책 이상의 역사책이다. 이 당대를 위선과 은닉 없이 고스란히 기록한, 어쩌면 유일한 문학서적이 될지도 모르겠다. 우리 시대에 얼마나 이상하고 불가해한 폭력이 지배했는지, 어째서 사람이 꾸는 꿈은 더욱 강렬해졌는지, 꿈과 꿈이 똘똘 뭉쳐 어떤 힘을 만들었고 어떤 지지를 얻어 불길처럼 번졌는지. 우리가 사람이어서 얼마나 다행이었는지.
그는 지금 감옥에 있다. 죄명은 특수공무집행방해치상, 교통방해, 공동주거침입, 집시법 위반 등이다. 그의 구속은, 자신의 양심을 깃발처럼 내걸고 상처받은 자의 편에 서서 함께 울고 아파한 사람보다, 법을 속여 가난한 자의 마지막 밥그릇과 마지막 방 한칸마저 빼앗아버리는 권력의 편에 법이 서 있음을 다시 한번 우리에게 각인해주었다. 그는 자신의 안위만을 돌보던 우리 모두를 흔들어 깨운 사람이다. “이건 아닌데, 이런 건 아니었는데”를 일깨워준 사람이다. 그는 비록 감옥에 갇혔지만, 이 ‘흔들어 깨움’의 불편은, 그가 발휘하는 힘이고 그가 얻고 있는 지지다.
감옥 벽에도 균열이 있어서, 그 균열에 대고 바깥을 향해 연신 진실된 이야기를 속삭여주던 한 여인이 있었고, 그 속삭임이 온 나라에 퍼져 마침내 억압된 나라가 해방을 맞는다는 미얀마의 옛이야기가 있다. 미얀마 사람들은 그 얘기를 무릎에 앉은 어린 자식에게 들려주며 희망이 어떤 식으로 우리에게 찾아오는지 마음 깊이 깨닫게 해준다는 말을 어딘가에서 들었다. 내겐 송경동의 이 산문집이 그 옛이야기인 것만 같다.
“아, 이런 좋은 꿈들을 꾸다보니 갇혀 있다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는다. 정리해고와 비정규직화는 어쩔 수 없다는 이 시대의 감옥에서, 모든 억압과 좌절의 감옥에서 더 많은 사람들이 나비처럼 훨훨 날아 나오는 꿈을 꿔본다.”(9면)
감옥이 어디인지, 이제는 문학만이 제대로 말할 수 있다. 어쩔 수 없다는 좌절의 몽롱함이 아니라, 꿈꾸는 자의 악착같은 힘으로. 이게 문학만이 지닌 힘이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