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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평
야마모토 요시타카 『후쿠시마, 일본 핵발전의 진실』, 동아시아 2011
후꾸시마 이후, 강 건너 불구경만 하려는가
전진호 全鎭浩
광운대 국제협력학부 교수 jeon@kw.ac.kr
후꾸시마 원전사고 이후 일본의 원자력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일본은 최초의 원자력예산이 성립한 1954년 이후 원자력을 주요 에너지원으로 삼아 원자력 진흥정책을 펼쳐왔다. 또한 사용후 핵연료를 재처리・재사용하는 ‘핵연료 싸이클’을 추진하여 핵무장에 필요한 플루토늄도 보유하게 되었다. 이로써 일본은 미국, 프랑스에 이은 세계 3위의 원자력대국으로 성장했다.
후꾸시마 사고 이후 일본에서는 탈원전운동이 활발히 전개되는 한편 원자력발전의 위험을 지적하는 출판물이 쏟아지고 있다. 최근 나온 관련서 중에서 간결하면서도 핵심을 찌르는 대표적인 책이 야마모또 요시따까(山本義隆)의 『후쿠시마, 일본 핵발전의 진실』이다. 저자 야마모또는 일본의 행동하는 지성으로 평가받는 재야 물리학자로, 2003년 『자력과 중력의 발전』(한국어판 제목 ‘과학의 탄생’)이라는 세계적인 물리학 저서를 출간한 바 있다. 후꾸시마 사고 이후 반원전의 입장에서 저술된 이 책은 일본이 원자력발전을 추진하는 숨은 목적, 원자력발전이 안고 있는 핵심적 문제 등을 정확히 짚어내고 있다.
먼저 이 책은 일본의 원자력발전이 자원 및 에너지원의 확보라는 경제적・산업적 관점이 아니라 핵무장이라는 국제정치적 관점에서 시작됐음을 강조한다. 즉 자원빈국 일본이 에너지의 안정적 공급을 위해서만 원자력발전을 도입한 것이 아니라, 산업적으로는 원자력기술을 확보하고 더 나아가 핵무장이라는 미래의 선택지도 가능하게 하겠다는 정부 여당의 유력정치가와 관료엘리뜨가 원자력발전을 주도적으로 이끌어왔다는 것이다.
또한 원자력발전과 핵연료 싸이클의 실현에 의해 일본은 잠재적 핵무장화를 이뤄가고 있으며, 플루토늄의 보유는 동아시아 지역에서 핵확산의 원인이 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일본의 정・관・재계는 핵무기의 생산과 직결되는 재처리나 우라늄 농축 같은 민감기술(sensitive technology)의 보유를 국제적 지위의 상징으로 여겼고, 원자력 이용개발은 에너지대책을 넘어 안보정책의 일환으로 인식한다는 것이다. 일본은 현재 플루토늄 10톤 정도를 보유하고 있는데, 이는 핵무기 1000발 이상을 만들 수 있으며 세계 5위의 규모다. 자민당 정부는 “전수방위(專守防衛, 무력공격을 받았을 때만 방위력을 행사함)를 지킨다면 핵무기를 가져서 안될 이유가 없다”고 정당화하며 잠재적 핵무기 보유국 상태를 유지했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한편, 이 책에서 원자력발전은 ‘죽음의 재’로 불리는 핵분열물질을 다량 배출하며, 특히 인위적으로 처리될 수 없는 방사성폐기물의 유독성을 고려할 때 태생적 한계를 지닌 미완성 기술이라 평가된다. 또한 수만년 이상에 걸친 방사성폐기물 처분장의 안전성 확보는 사실상 불가능하며, 발전 및 정기점검 과정에서 바다 및 대기로 방사능을 유출할 수밖에 없는 불완전한 기술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이 책은 “원자력발전은 지구환경을 오염시키고, 위험하고 취급이 까다로운 폐기물을 끊임없이 만들어내며, 수익자의 세대에서 수십세대 후의 인류에게 큰 부채를 떠넘긴다”고 비판한다.
후꾸시마 원전사고에 대해서도 사태의 본질은 쯔나미 규모에 대한 예측 실패나 비상용 전원배치의 실수, 폐로(廢盧)에 따른 경제적 손실을 걱정해 사태를 악화시킨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일본의 원자력정책을 결정하고 이익을 나누어 가지는 정당과 유력정치가, 엘리뜨관료와 전력회사, 과학자 등으로 구성된 ‘원자력촌(原子力村, 원자력 마피아)’의 무책임성과 독선에 있다고 지적한다. 또한 일본의 원자력개발은 이처럼 정・관・재계가 일체가 되어 ‘원전 파시즘’을 형성함으로써 국민적 합의도 없이 폭주하고 있으며, 이들이 유일하게 비판정신을 드러내는 것은 ‘반원전’에 대응할 때뿐이라고 신랄하게 공박한다.
이 책이 제기하는 문제는 분명하다. 일본의 원자력발전이 경제적・산업적 측면에서뿐 아니라 핵무장이라는 안보적 관점이 더해져 추진되어왔으며, 원자력발전 자체가 다양한 문제를 안고 있는, 미숙하고 자연친화적이지 않은 에너지라는 것이다. 또한 이러한 문제의 배후에 ‘원자력촌’에 의한 ‘원전 파시즘’이 존재한다고 주장한다. 후꾸시마 사태의 본질 역시 기술적・과학적 대응의 미비에 있는 것이 아니라, 국민적 합의 없이 무비판적으로 추진되어온 미숙한 기술인 원자력발전 자체에 있다는 것이다.
후꾸시마 원전사고는 일본뿐 아니라 우리에게도 귀중한 교훈이다. 그런데 사고 이후 한국정부의 대응을 돌아보면, ‘포스트 후꾸시마’가 아닌 ‘후꾸시마 이전’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듯하다. 후꾸시마 사고 이후 한국정부는 가동중인 원전의 안전성검사를 실시하고 사고 예방조치를 취했다. 하지만 여전히 원전 확대 및 수출을 주요 정책과제로 내세우고 있으며, 더 나아가 작년 12월 신규원전 후보지로 영덕과 삼척을 선정했다. 140만kW급 원전 4기를 새로 건설하겠다는 것이다. 원전사고 최고등급을 기록한 후꾸시마 사고가 일어난 지 1년도 되지 않아 우리 정부는 안전보다 성장 위주의 원자력정책으로 회귀한 듯하다. 후꾸시마 사고가 우리에게는 타산지석이 되지 못하고 있다.
원전 도입 직전인 1959년 일본 과학기술청이 실제 사고 발생시 막대한 피해가 예상된다는 보고서를 작성하고도 50년 이상 이를 은폐해온 사실이 최근 드러나 일본국민의 분노를 사고 있다. 후꾸시마 원전사고에 더해 보고서 은폐사건은 일본의 원전정책에 대한 상당한 저항을 불러올 것이다. 일본과 거의 유사한 원자력 정책과 이익집단을 형성하고 있는 우리에게 일본의 사례는 반면교사가 되어야 한다. 이번 사태가 ‘강 건너 불구경’이 되고 만다면 제2의 후꾸시마 사고가 한반도에서 일어나지 말라는 보장은 없다. 야마모또 요시따까가 이 책을 통해 우리에게 보내는 메시지도 이러한 경고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