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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평

 

조연현 『은둔』, 오래된미래 2007

절집, 그 피안의 내막

 

 

최완수 崔完秀

간송미술관 한국민족미술연구소 연구실장

 

 

은둔석가모니 부처님은 고뇌의 원인을 욕심과 불평등으로 보았다. 그래서 인간고에서 벗어나는 방법으로 금욕과 평등을 가르치며, 이의 실천을 위해 출가수행을 권했다. 그 뜻을 받들어 1250인의 제자가 출가하자 석가는 이들을 이끌고 45년 동안 해탈하는 방법을 끊임없이 얘기해나간다.

이로써 불교는 출가승단이 교단의 주축을 이루며 수많은 경전을 가진 종교로 출발하게 된다. 표현이 과장되리만큼 풍부한 열대문화의 특성상 불타의 가르침인 불경은 지루할 정도로 자상했고 이런 전통은 후학들의 손으로 이루어지는 논(論), 소(疏) 등 주석서에도 그대로 이어져 8만 4천 법문으로 일컬어질 만큼 방대한 경전체계를 갖춘다. 그 결과 불교는 불교력으로 15세기에 이르는 서기 7세기경에 문자로 기록된 자체 논리의 늪에 빠져 소멸의 위기에 직면한다. 불교의 발생지인 인도에서 불교가 소멸한 것은 그 때문이다.

그러나 사계절의 기후변화로 서리 한번에 만산초목이 일시에 조락하는 현상을 매년 경험하는 중국문화권에서는 불립문자(不立文字,문자를 세우지 않는다)라는 간단한 서리 한방으로 8만 4천 법문을 일조에 시들어 떨어지게 했다. 그리고 직지인심(直指人心,사람의 마음을 곧바로 가리킨다)이라는 초논리(超論理)의 방법으로 논리의 늪을 벗어난다. 이것이 선종(禪宗)의 출현이니 불교의 종교개혁이었다.

우리는 삼국시대 불교가 들어온 이래 통일신라시대에 이르기까지 불교의 구교인 교종(敎宗)이념을 주도이념으로 해서 근 5백년을 살아왔고, 고려 5백년간은 신교인 선종(禪宗)이념을 주도이념으로 삼아 살아왔는데 후기 250년간은 선종을 우리화한 조계선종(曹溪禪宗)이 중심축이었다. 이후 조선왕조 5백년간은 주자성리학과 조선성리학이 각기 전·후기의 주도이념이 되면서, 확고했던 전대의 가치기준을 철저히 파괴하기 위해 사찰의 몰수와 승려 신분의 천민화를 제도화해나간다. 조선 후기에는 승려의 도성 출입까지 금지했다. 이런 제도적 박해 속에서 불교의 명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극한적인 자기희생을 전제로 하는 금욕과 평등의 실천으로 사회적 존경심을 유발하는 도리밖에 없었다.

그 위에 조선왕조가 일제에 의해 멸망당하자 불교 권위회복이라는 미명 아래 교단이 일본불교의 비호를 받으며 왜색화돼가는 비운을 맞기도 한다. 그 결과 불과 35년의 일본 식민통치 기간에 전국 사찰을 장가들고 고기 먹는 왜색승이 거의 차지해나가 정법을 지키는 청정 비구와 비구니들은 발붙일 곳이 없게 된다.

이런 불행하고 복잡한 전통을 가진 한국불교 교단이 그 역경을 딛고 명맥을 유지해나갈 수 있었던 것은 몇몇 고승들이 확고한 깨달음을 얻고 나서 처절한 자기희생 위에 금욕과 평등을 실천하며 소리없이 사회적 신뢰를 키워갔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런 고승들은 자신들의 특립독행(特立獨行,우뚝 서서 혼자 나아감)을 당연한 일로 여기며 조금도 자랑스럽게 생각하지 않고 살아갔기 때문에 함께 사는 동거승조차 그 일탈(逸脫,상식에서 벗어남)의 도행(道行)을 모르고 지나는 경우가 허다했다. 하물며 이세절속(離世絶俗,세상을 떠나 속세와 관계를 끊음)으로 인연이 끊긴 세속사람이야 그 운김인들 짐작할 수 있었겠는가.

그런데 한겨레신문 조연현 기자가 심산계곡을 헤집고 다니며 구름 속을 뒤져서 연하(煙霞)에 가려진 그들의 대각행(大覺行)을 진솔하게 신문에 연재함으로써 세상에 그들의 존재를 알리기 시작했다. 눈에 띄는 대로 읽어보니 그리 낯설지 않다. 학교 교육을 받은 세대들이 우리 전통문화를 다룰 때 풍겨나는 낯선 냄새나 풋내가 거의 나지 않았다.

피안(彼岸)의 소식을 짐작하고 쓰는 글이다. 연재되는 인물들은 거의 내가 인연을 맺었던 분들이니 그 표현 하나하나가 어떤 의미를 갖는 것인지 명료하게 가슴에 와닿았고 어떤 대목에서는 실소를 금치 못하기도 했다. 그러나 근래 고승들의 행적을 세속에 전하는 글로는 보던 중 제일이라는 생각을 볼 때마다 되새기게 했다.

그래서 중앙일보 정재숙 기자를 통해 한번 만나보기를 청했다. 만나보니 상상했던 대로다. 내가 평생 듣고 본 대로 절집 얘기를 나누며 유쾌한 시간을 보내고 헤어졌는데 어느날 『은둔』이라는 책이 배달되어 왔다. 신문에 연재했던 고승들의 얘기를 33편만 추려서 책으로 엮었다고 한다.

그분들 삶의 목적이 치열한 구도행각(求道行脚,정도를 얻어 실천하려는 움직임)이었음을 모를 리 없는 저자가 어떻게 『은둔』이라고 책이름을 붙였을까 의아해하면서도 눈을 떼지 못하고 밤새워 읽었다. 아마‘은둔’은 세속과 상반된 가치기준을 가지고 산다는 의미를 강조하기 위해서 골라낸 단어일 듯하다. 내용 중에 간혹 개고한 것이 눈에 거슬리는데 아마 이것은 출판사 교정진이 저지른 실수일 것이다. 그리고 승가의 족보를 꿰고 있는 나의 눈에는 계보의 오류가 가끔 눈에 띄고 동명이인의 혼란도 있는 듯하다. 차후에 바로잡아지리라 믿는다.

근현대 불교계 사정을 짐작하고 고승들의 탁월한 행적을 엿보는 데 이보다 더 좋은 책은 없을 듯하다. 절집 사정이 궁금한 이들에게 필독서로 권하고 싶다. 절은 출가인들만 사는 성역(聖域)이라 세속인들에게는 문이 굳게 잠겨 있어 그 안살림이 궁금했던 이들이 많았을 터인데 이 책을 읽노라면 그 궁금증이 다소나마 풀릴 것이다. 댓돌에 신발만 놓여 있고 바람과 해그림자만 넘나들어 항상 적막하기만 하던 절집 안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었는지 그 내막을 이 책은 상당히 누설해놓고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