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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강정 姜正
1971년 부산 출생. 1992년 『현대시세계』로 등단. 시집으로 『처형극장』 『들려주려니 말이라 했지만,』 등이 있음. nietz4@naver.com
등에 가시
김소연에게
햇살이 빗나간 남자의 등엔 가시가 스물네개
닫힌 눈꺼풀 위로 내려앉는 눈의 속도는
덜 여문 거짓말 한덩이가 어는 시간과 통했다
폭설에 파묻힌 하루가 저승까지 흘러
남자는 출생 이전의 자신과 만나 또다른 아이들을 낳는다
가시 끝에 맺힌 한방울의 시간 속에서
여자는 멍울 돋은 가슴을 주물럭대며
몸 안에 덩어리진 아이의 울음을 쪼개
남자의 가시를 뽑는다
한땀 한땀 피톨을 들어낼 때마다
해의 장막을 뜯으며 쏟아지는 눈의 빛깔이 요란하다
이끼를 털어내는 하늘의 점막들로 세상은 더더욱 밝다
햇살이 다시 비껴 남자가 푸른 울음 토하니
세상을 수식하는 낱말들이 낮별처럼 흐리다
여자는 남자의 가시로 허공에 뜬 별들의 잔영을 깁는다
햇살 속에 밤을 섞어
천개의 하루를 한꺼번에 무너뜨리며
남자의 구멍난 척추를 녹아내리게 한다
몸 안에서 녹은 아이 울음이 허공을 速記하고
가시 꽂힌 별들은 여자의 마른 동공을 찔러
이제, 피가 세상을 보리다
흰 피의 세상을 보리다
血便을 보며
좋은 소식이든 아니든
몸속의 기별들은 늘 내 몸과 멀어
누구의 목청을 찢어 날리는 울음이기에
이토록 머리끝이 까맣게 솟구치는가
똥을 누면 흘러내리는 검은 혈관
창밖으로 잠에 빠진 고양이 잔등이 부푼다
땅으로 스밀 것들이 오래전부터 허공에 떠
인간의 집을 뭉개고
밥알을 흙으로 바꾼다
뼈마디 사이엔 진화가 끝나기도 전에 멸종된 생물들의 잔해가
밤의 가장 깊숙한 곳으로 통로를 낸다
낯선 기척이 든 內臟 한가운데
몇천년 공기를 관통한 생피가 철철 넘친다
몸 안에 비탈진 탄식들은 모두 허물어진 山의 落塵을 닮았다
풀풀 날리며 하나같이
이 생 다음에 열릴 페이지를 미리 떠들고
찢긴 마음을 답신인 양 띄워 올린 하늘엔
음계를 망각한 새들이 미친 듯 대지의 음역을 바꾼다
소리가 나아갈 때마다
더 깊이 찢어지며 용틀임하는 풍경들
누가 새들이 운다고 말했는가
푸르스름한 공기의 결마다
지구 밖의 기별이 지문처럼 묻어 있거늘
인간의 곡조로 번역되는 순간
새들의 소리는 하늘에서 사라진다
생의 언덕 하나가 또 무너졌다는 소식을 알리기 위해
새들은 온몸으로 지구의 윤곽을 더듬을 뿐,
그 어떤 짐승의 낯짝도 인간이 숨긴 진심과 다르지 않다
항문을 열고 퍽퍽 쏟아져
오다 만 미래처럼 질척이며 머리끝까지 솟구친 소리들
귀 밖으로 떠돌아 구름 속 낯선 층계로 버티다
묵은똥과 함께 저세상 생명이 되는
몸 안의 분명한 외계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