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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김사인 金思寅
1955년 충북 보은 출생. 1982년 동인지『시와 경제』에 시를 발표하며 작품활동 시작. 시집으로『밤에 쓰는 편지』『가만히 좋아하는』등이 있음. silentin@dongduk.ac.kr
木浦
배는 뜰 수 없다 하고
여관 따뜻한 아랫목에 엎드려
꿈결인 듯 통통배 소리나 듣는다
그 곁으로 끼룩거리며 몰려다닐 갈매기들을 떠올린다
희고 둥근 배와 붉은 두 발들
그 희고 둥글고 붉은 것들을 뒤에 남기고
햇빛 잘게 부서지는 난바다 쪽
내 졸음의 통통배는 보이지 않는 길을 따라 멀어져가리라
옛 애인은 그런데 이 겨울을 잘 건너고 있을까
묵은 서랍이나 뒤적거리고 있을지도 모르지 헐렁한 도꾸리는 입고
희고 둥근 배로 엎드려 테레비를 보다가
붉은 입술 속을 드러내고 흰 목을 젖히며 깔깔 웃고 있을지도,
갈매기의 활강처럼 달고 매끄러운 생각들
아내가 알면 혼쭐이 나겠지
참으려 애쓰다가 끝내 수저를 내려놓고
방문을 탁 닫고 들어갈 게 뻔하지만
옛날 애인은 잘 있는가
늙어가며 문득 생각키는 것이, 아내여 꼭 나쁘달 일인가
밖에는 바람 많아 배가 못 뜬다는데
유달산 밑 상보만한 창문은 햇빛으로 고요하고
나는 이렇게 환한 자부럼 사이로 물길을 낸다
시린 하늘과 겨울 바다 저쪽
우이도 후박나무숲까지는 가야 하리라
이제는 허리가 굵어져 한결 든든할 잠의 복판을
저 통통배를 타고 꼭 한번은 가닿아야 하리라
코와 귀가 발갛게 얼어서라도
박영근1
너무 무서워서 자꾸만 자꾸만 술을 마시는 것
그렇게 술에 쩔어 손도 발도 얼굴도 나날이 늙은 거미같이 까맣게 타고 말라서 모두 잠든 어느 시간 짚검불처럼 바람에 불려 세상 바깥으로 가고 싶은 것
그 적의 어느 으슥한 밤 쪽으로
선운사 동백 몇송이도 눈 가리고 떨어졌으리
받아주세요 두 손으로 고이
어디 죄짓지 않은 마른 땅 있으면 잠시 쉬어가게 해주세요
젊은 스님의 애잔한 뒤통수와 어린 연둣빛 잎들과 살구꽃 지는 봄밤 같은 것을
어떻게든 견뎌보려는 것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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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 박영근은 전북 부안 사람으로, 다섯권의 시집을 남기고 2006년 5월 11일(48세) 세상을 떠났다. 그의 눈물과 노래는 특히 아름다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