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초점
‘겨를’의 시학
문태준 시집 『먼 곳』
장은석 張殷碩
문학평론가. 주요 평론으로 「‘서정’을 주제로 한 소나타」 「관계의 모험을 감행하는 시적 에로스」 등이 있음. jeanes@nate.com
문태준(文泰俊)의 시는 오래된 것들을 지니고 있다. 시인은 오래되어 이미 우리가 잃어버렸다고 여기거나 영영 잃어버릴 것 같은 것들을 생생하게 우리 앞에 꺼낸다. 그렇다고 그가 과거의 특정한 정서나 풍경을 복원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곤란할 것 같다. 그의 시에는 이전 시인들이 이 땅에 터전을 두고 있는 사람들의 의식 저편으로 기묘한 공명을 불러일으키던 호흡과 숨결 같은 것들이 녹아 있다. 그래서 그의 시를 읽으면 현대시사의 여러 시인들과 동행하는 기분이 든다.
「바위」를 읽으며 우리는 유치환(柳致環)부터 이어지는 어떤 자세를 떠올릴 수 있다. “풀리지 않는 생각” 앞에서 “묵중하게만 앉아 있”는 태도 같은 것. 이런 자세는 “나는 염소가 되어/한마리 염소를 사귀리라”(「염소」) 같은 부분과 겹치면서 비로소 태도를 넘어 하나의 호흡이 되기 시작한다. 병원을 배경으로 한 시들도 마찬가지다. 「사과밭에서」나 「사무친 말」을 읽으면 윤동주(尹東柱)의 ‘젊은이의 병을 모르는 늙은 의사와 시련과 지나친 피로’를 금방 떠올릴 수 있다. 더불어 “나는 바람에 떨리는 너의 잎사귀를 읽는다”(「정야(靜夜)」) 같은 부분에 이르면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괴로워하던’ 사람으로부터 이어지는 숨결을 느낄 수 있다.
고요한 밤에 홀로 잎사귀를 바라보는 자의 초상은 누군가에게 위안을 줄 수 있다. 예컨대 한마리 새의 비행을 천천히 지켜보는 것. 가난한 마음의 자취를 관찰하거나 어머니의 강건한 노래에 귀를 기울이는 것. 그 모든 것 사이로 느리게 움직이는 시선은 누군가에게 은총이 된다. 반대로 은총을 믿지 않는 자는 이런 것들과 더이상 공감하지 못한다. 이들에게는 “늦게 돌아오는 새를 기다릴”(「오랫동안 깊이 생각함」) 겨를이 없다. 이들은 회복을 꿈꾸기보다 다른 방식의 치유를 원한다. 말과 언어를 더 흔들고 뒤집는 것을 통해 망가진 세계를 끌어안고 고양시킨다. 몸과 마음이 가난한 타인에게 손을 내미는 것을 내면의 성찰을 완성한 후로 미루지 않는다.
‘겨를’은 주로 ‘없다’라는 말과 짝을 이룬다. 원래 짧은 순간을 나타내는 이 말은 ‘없다’와 만나면서 오히려 ‘여유’라는 의미를 함께 지니게 된다. 말의 관계 속에서 어떤 간격을 지닌, 긴 시간의 전혀 다른 어감이 새롭게 덧붙는다. 이 아름다운 우리말은 시간을 대하는 우리의 관점이 얼마나 가변적인지를 잘 보여준다. 동시에 문태준의 시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많은 사람들이 그의 시 속에 담긴 속도에 관해 이야기한다. 아예 고정되어 있거나 천천히 느릿느릿 움직이는 자취를 통해 우리가 잃어버린 세계를 소환할 수 있다고 여긴다. 그러나 그 고요함의 한편에는 늘 다급한 마음이 있다는 사실도 함께 기억해야 한다. “나의 독촉에 일일은 가벼운 목례를 할 뿐”이지만 “나에게는 순간순간이 급한 화물”이다.(「일일」) “우리는 하나같이 균등하게/모래에 매여 있”고 “모래들은 쓸려 한데 쌓”이며 “그리고 쌓임은 겨를도 없이 옮아간다”(「모래언덕」) 시인은 매순간 겨를이 없다는 사실을 절감하면서 끊임없이 근심에 시달린다.
“이곳에서의 일생(一生)은 강을 따라갔다 돌아오는 일.”(「강을 따라갔다 돌아오는 일」) 촉박함에 담긴 근심이야말로 시인이 강을 따라갔다 돌아오게 만드는 동력이다. 강을 따라갔다가 돌아오는 짧은 시간은 어떻게 일생이라는 구체적 공간이 되는가. 시인은 ‘가다’와 ‘오다’의 여러 변형을 반복하면서 시간에 대한 간격을 재편한다. 예컨대 우리는 “가볍고 상쾌한 유모차가 앞서 가더니 절룩이고 초라한 거지가 뒤따라왔다”라는 부분에서 오고 가는 ‘동안’ 무엇이 달라졌는지 살펴야 한다. ‘가다’와 ‘오다’ 사이의 간격, 그 반복의 과정 속에 새로운 관계가 형성되기 때문이다. 그의 시에서 대상과 사물의 관계는 주체에 의해 결정되지 않는다. 다만 가고 오는 행위와 시선의 움직임이 있을 뿐.
시인은 과거의 잃어버린 풍경을 찾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잃어버릴 것만 같은 시간을 찾아 계속 방황한다. 오래된 것들은 방황의 겨를에 마련된 구체적 공간 속에서 새 옷을 입는다. “꽃들”이라는 “간단하고 순한 간판”과 같은 말들이 만나고 헤어지면서 “야생의 언덕”(「꽃들」)이 펼쳐지는 것처럼, “이별의 말을 한움큼, 한움큼 호흡”할 때 비로소 “먼 곳이 생겨난다”(「먼 곳」). 그래서 그의 숨결을 따라갔다가 돌아오면 한참 먼 곳을 다녀온 기분이 든다. 근심 가득한 겨를에 영원이 내려앉을 때까지, 그의 “손길이 나의 얼굴을 다 씻겨주는 시간을”(「눈 내리는 밤」) 기다리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