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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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대 金周大

1965년 경북 상주 출생. 1989년『민중시』와 1991년『창작과비평』에 시를 발표하며 작품활동 시작. 시집으로『도화동 사십계단』『꽃이 너를 지운다』등이 있음. kimhoa97@hanmail.net

 

 

블로그 여행 중 ‘주정선의 주막’에서 보다1

 

 

북한산 입구. 뭉텅 잘려나간 하반신을 시커먼 고무튜브로 감싼, 자벌레처럼 기어오던 사내가 행락객들의 다리를 붙잡았다. 몇사람이 바구니에 동전을 던지고 거머리를 떼어내듯 지나쳤다. 붙잡은 손을 뿌리치지 못한 여고생이 엉거주춤 서자, 사내는 배밀이로 밀고 온 납작 바퀴 음악통 밑에서 휴대폰을 꺼내, 무 무 문짜 하 한번,이라고 했다. 왜뚤삐뚤 눌러쓴 글씨의 구겨진 종이를 여고생에게 내밀었다. 나 혼 자 북 한 산 에 서 조 은 구 경 하 미 미 얀 하 오 지 배 만 이 써 려 니 답 답 하 지 ? 지 배 가 면 우 리 가 치 놀 로 가 오 사 랑 하 오. 사내는 서늘한 눈매의 여자 사진이 붙은 예쁜 열쇠고리를 마구 흔들어 보이며 연방 누른 이의 웃음을 웃었다. 여고생은 고개를 끄덕이며 열심히 문자를 찍어주고 있었고. 북한산 입구 봄날이었다.

 

 

 

아모레 화장품을 기억하십니까

 

 

창문으로 들어온 책가방만한 햇살을 만지며 혼자 논 적이 많았습니다. 배가 고팠던 형은 뭐라도 먹어야겠기에 아이들을 데리고 학교 운동장으로 가 땅따먹기 놀이를 하였고, 일당 벌이 외할머니는 부곡시장으로 고추 꼭지를 따러 가서 오지 않았습니다. 햇살을 과자인 듯 조몰락거리며 외할머니를 기다리던 나는 꿈속에서 가끔 고향의 어머니를 만났더랬습니다. 그런 날엔 햇살과 함께 일어나 고무신 두 량으로 칙칙폭폭 칙칙폭폭 고향 가는 기차놀이를 하였지요. 고개를 잔뜩 숙이고 기차를 밀던 내가 주인 여자의 아모레 화장품 냄새를 따라간 날이 있었습니다. 아득한 추억 속 아모레는 어머니의 냄새였으므로 어린 후각의 기억이 주인 여자를 졸졸 따라 기차를 몰았었지요. 여자는 부엌 앞에서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돌아가라고 했지만 기차는 돌아가지 않고 빽빽 기적을 울렸습니다. 부엌문을 닫고 저녁을 만들던 나의 주인 여자는 부엌으로 난 방문으로 사라져 나를 빼놓고 주인 남자와 저녁을 먹었습니다. 그래 햇살도 떠난 기차간에 어둠을 잔뜩 싣고 힘없이 돌아와야 했는데, 그후로 나는 아모레 화장품 냄새가 나는 여자만 지나가면 코를 킁킁거리며 몇걸음 따라 걷는 버릇이 생겼습니다. 결혼을 하고도 집에 들어가지 않은 날은 대부분 아모레 냄새가 나는 다른 여자를 따라간 날들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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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이 글은 ‘주정선의 주막’이라는 인터넷 블로그의 글(http://blog.daum.net/jkk8442/ 9534136)을 변용한 것임을 밝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