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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평

 

브라이언 그린 『멀티 유니버스』,김영사 2012

우주란 무엇인가

 

 

이강영 李康榮

건국대 물리학부 연구교수 kylee14214@gmail.com

 

 

5785과학의 역사는 인간이 세상의 중심으로부터 멀어져간 역사라고도 한다.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는 더이상 세상의 중심이 아니며, 태양도 우주의 중심이 아니라 우리 은하의 많은 별들 중 하나다. 우리 은하조차 모든 별들의 모임이 아니라 우주에 있는 수백억개의 은하들 중 하나일 뿐이라는 것이 밝혀졌고, 진화론은 인간이 다른 동물과 마찬가지로 오늘날의 모습으로 진화해온 존재라는 것을 알려주었다.

『멀티 유니버스』(The Hidden Reality, 박병철 옮김)는 최신의 우주론을 소개하는 책이다. 우주란 무엇인가? 이 질문에 대해 모든 사람들은 나름대로의 답을 떠올릴 텐데, 그 답의 범위는 생각보다 훨씬 넓다. 누군가는 태양계를 떠올리고, 다른 이는 우리 은하를 상상할 것이다. 끝없이 넓고 캄캄한 공간이나 거기에 흩뿌려진 무수한 별들을 상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사변적인 성향의 소유자라면, 그런 구체적인 모습보다는 우주란 이 세상 전체, 존재하는 모든 것이라고 정의할 수도 있다. 그래서 우주란 무한한 것이라고 여길지도 모른다.

현대 물리학은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이론이라는 개념 틀과 수많은 관측과 실험을 통해서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공간이 어떻게 운동하고 있는지 이해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우리는 더이상 우주를 막연히 세상 전부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제는 우리가 살고 있는 우주의 총 에너지가 얼마며 그 나이가 얼마라는 것까지 정확하게 알 수 있다. 우리 우주는 가없이 무한한 것이 아닌 구체적인 실체가 되었다.

그렇다면 우리가 살고 있는 우주 너머에는 무엇이 있을까. 아니, 무엇이 있기는 할까? 이는 논리적으로 자연스러우면서도 초월적인 질문이다. 이러한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 현대 물리학은 여러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다. 만약 우주가 무한하다고 한다면, 우리가 볼 수 있고 우리에게 영향을 미치는, 우리가 사는 세계 너머에 또다른 세계가 존재할 것이다. 우주가 인플레이션이라는 급속한 팽창을 거쳤다면, 그 안에는 우리 우주와 같은 무수히 많은 고립된 세계가 존재할 수 있다. 만약 세상이 더 높은 차원으로 이루어져 있다면 우리 우주는 그 안의 브레인(brane) 중 하나일지 모른다. 브레인이란 어떤 공간에 포함된 그보다 낮은 차원의 공간을 말한다. 예를 들어 상자 내부라는 3차원 공간을 떠올려보면 상자의 벽은 이 3차원 공간에 포함된 2차원 공간이므로, 이를 브레인이라 할 수 있다. 여기서는 다차원 공간에 포함된 3차원의 브레인을 우리 우주라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이런 과학소설처럼 들리는 이론들에서 우리가 공통적으로 만나는 대상이 있다. 바로 다중우주(multiple universe) 혹은 평행우주(parallel universe)라고 불리는, 우리 우주가 아닌 다른 우주의 존재다. 지구와 태양계와 우리 은하에 이어 우리 우주조차 수많은 우주 중 하나에 불과할 수 있다는 것이다.

유니버스라는 말에는 ‘모든 것’이라는 뜻이 담겨 있고, 그래서 유일한 존재라는 의미가 된다. 그런 까닭에 다른 우주의 존재를 생각하는 물리학자들은 멀티버스(multiverse), 혹은 메가버스(megaverse)라는 별도의 이름을 지어내 수많은 우주의 존재를 나타내고자 한다. 그런 의미에서 한국어판 제목인 ‘멀티 유니버스’는 사실 부정확한 말이다(책의 내용을 잘 표현하고 있기는 하다). 이 책의 원제를 그대로 옮기면 ‘숨겨진 실재’가 된다. 이 제목은 모든 다중우주가 ‘실재란 무엇인가’라는 철학적 문제와 맞닿아 있다는 점에서 의미심장하다. 이 우주에 속한 우리가 이 우주 바깥을 생각하는 것이 가능할까? 의미가 있는 일일까? 우리가 그것에 대해서 무언가를 알 수 있을까? 우리가 사는 세계 너머의 세계가 실제로 존재하는가라는 질문은 결국 진정한 실재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으로 통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저자는 두개의 장을 할애해서 과연 다중우주라는 개념이 검증 가능한지, 그리고 이것이 올바른 과학적 질문인지 논의한다. 즉 관측할 수 없는 우주에 근거한 논리가 과학적으로 타당한지 스스로 묻고 있는 것이다. 물론 저자에 따르면 이 다중우주가 훌륭한 이론이며 이를 외면하는 것은 비과학적인 편견이다.

우주론에서 나온 다중우주와는 전혀 다른 관점에서 제안된 평행우주도 있다. 미국의 이론물리학자 휴 에버렛 3세(Hugh Everett III)는 양자역학의 확률적 해석에서 ‘다른 평행우주’를 이끌어내는 독특한 관점을 제시한다. 이는 우리 우주의 실재 자체가 동시에 무한히 가능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이 평행우주야말로 실재 그 자체의 문제와 정면으로 대결하고 있으며, 어떤 의미에서는 실재라는 개념을 가장 폭넓게 사용한다고 볼 수 있다. 우주 너머의 다른 우주의 존재를 생각하는 것이 고전적 실재에 관한 물음이라면, 에버렛의 평행우주는 양자적 실재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을 던진다. 만약 독자가 상상한 평행우주가 우리 세계와 똑같은 모습이면서 다만 다른 사건이 일어나는 곳이라면, 그것이 바로 에버렛의 평행우주다.

이 책에는 그 밖에도 끈이론(string theory)에서 예견하는 ‘경관’(landscape)에 의한 무수한 다중우주, 시뮬레이션에 의해 ‘창조’된 다른 우주, 홀로그래피 원리에 의한 다중우주 같은 새로운 개념들이 소개된다. 끈이론을 연구하는 뛰어난 물리학자이며 세계적 베스트쎌러 『엘러건트 유니버스』와 『우주의 구조』의 저자 브라이언 그린(Brian Greene)은 이처럼 다양한 다중우주들을 하나하나 소개하고 그 이론적 배경을 꼼꼼하게 짚어준다. 최신의 우주론에 대해 이 책만큼 집약적으로, 친절하게 설명을 들을 수 있는 기회를 얻기란 쉽지 않을 듯하다.

어쩐지 21세기에 들어서 물리학자들이 던지는 질문들은 자꾸 더 근원적인 것이 되어가는 듯싶다. 물질의 근원과 우주를 이해하기 위해 물리학자들은 전체와 무()를 생각하고, 실재와 무한을 상상한다. 우주란 정말 무엇인가? 존재하는 모든 것인가, 우리가 알 수 있는 모든 것인가? 우주란,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이란 무엇인가 하는 물음은 아마도 인류가 이성을 가지게 된 이래 품었던 첫번째 질문일지 모른다. 그리고 어쩌면 마지막으로 대답을 듣게 될 질문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렇게 우주의 의미를 떠올리고 추구하고 이해하는 행위가 바로 인간을 특별한 존재로 만드는 것이라고 현대 물리학은 말해주고 있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