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기구독 회원 전용 콘텐츠
『창작과비평』을 정기구독하시면 모든 글의 전문을 읽으실 수 있습니다.
구독 중이신 회원은 로그인 후 이용 가능합니다.
대화
나는 언론인이다
2012년 언론파업 이야기
김승휘 金承輝
2008년 KBS 아나운서로 입사. ‘도전! 골든벨’ 진행.
송진원 宋眞元
2008년 연합뉴스 기자로 입사. 현재 사회부 소속.
이재훈 李在勳
2001년 MBC 기자로 입사. MBC 노동조합 민주방송실천위원회 간사.
김종엽 金鍾曄
한신대 사회학과 교수. 저서로 『웃음의 해석학』 『연대와 열광』 등이 있음.
김종엽 (사회) 이번 창비 가을호에서는 젊은 언론인 세분과 함께 2012년 언론파업을 되돌아보고 연말 대선을 앞두고 있는 현재 공정보도의 전망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보려 합니다. MBC노조 간사도 맡고 있는 이재훈 기자, 김승휘 KBS 아나운서, 연합뉴스 송진원 기자를 모셨습니다.
2012년 상반기에 주목할 사건 가운데 하나가 동시다발적 언론파업이죠. 국민일보, 부산일보, 연합뉴스, KBS, MBC, YTN이 파업을 했습니다. 파업기간은 MBC가 171일, 연합뉴스가 103일, KBS가 95일, YTN은 부분파업을 계속 하고 있기 때문에 날짜를 세기 어렵지만 어쨌든 장기파업을 진행하고 있는 상태죠. 87년 민주화 이후 언론사와 정치권력 간에 갈등이 있을 때 언론인들이 집회와 시위, 파업을 벌였지만 이만한 규모는 처음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 파업에 대해 현장에 있던 분들의 목소리를 듣고 기록으로 남길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 좌담에 젊은 언론인들을 모시려 한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87년 민주화운동과 더불어 형성된 언론노조운동이 현재 한국의 언론지형을 만드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는데, 그 이후 세대 가운데 올해 파업에 참여한 언론인들이 가장 대규모의 투쟁 경험을 한 것이죠. 그래서 이 세대의 생각을 들어볼 필요가 있다고 느꼈습니다. 또한 이명박정부 들어서 KBS, MBC를 중심으로 하는 공영방송이나 신문사 몇몇이 정부와 갈등하고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대중이 새로운 미디어를 활용해 정부에 저항하는 것 같아요. 촛불집회 때 인터넷카페 ‘아고라’라든가 그후 SNS(social networking service) 등이 그렇지요. 이번 언론파업의 특징 중 하나도 언론인들이 저항수단으로 그런 뉴미디어를 많이 활용했다는 것인데, 이와 관련해서도 이야기를 나누어봤으면 합니다.
마지막으로 대선을 염두에 두지 않을 수 없죠. 대규모 파업이 구체화된 제도적 성과를 거두었든 그렇지 못했든 투쟁과정에서 형성된 문화적 성과가 있을 텐데, 이것이 당장 대선에서의 공정보도와 어떻게 연결될 것인지에 대해서도 말씀을 들어봤으면 합니다. 우선 각자 언론파업에 대한 짤막한 소감과 함께 자기소개를 해주시죠.
송진원 저는 2008년 1월에 연합뉴스에 입사를 해서 올해 5년차가 된 사회부 기자입니다. 나름대로는 열심히 이번 파업에 참여하려고 노력했습니다. 물론 결과적으로는 크게, 또 개인적으로 만족할 만한 성과를 얻었다고는 할 수 없지만, 그래도 파업을 거치면서 ‘우리가 이 회사의 주인이다’라는 주체성을 되찾은 느낌이에요.
김승휘 저도 2008년 1월에 입사한 5년차 아나운서입니다. KBS 새노조 파업참가 아나운서 14명 중 제가 가장 젊은 축이고요. 언론사 파업을 보면, PD나 기자에 대한 보도통제라든가 제작통제에 대해 많이들 이야기하는데, 사실 그것 못지않게 아나운서들이 정권홍보의 일선에 서느냐, 아니면 국민에게 바른 정보를 제공하는 자리에 서느냐도 중요한 문제죠. KBS 같은 경우는 관제행사 사회의 대부분을 아나운서가 보니까, 이로 인해 국민에게 미칠 수 있는 영향이 적지 않다고 생각했어요. 파업을 하면서도 그 정당성을 알리는 데 아나운서가 큰 역할을 할 수 있구나 새삼 실감했죠.
이재훈 제가 노조에서 맡고 있는 직책이 민주방송실천위원회 간사입니다. 이름이 거창하긴 한데요, 우리 뉴스의 공정성에 대해 감시하고 견제하고 비판하고 알려나가는 일을 합니다. 작년 2월부터 이 일을 시작했는데, 좀더 잘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많아요. 그랬으면 과연 이 지경까지 왔을까, 저 혼자만의 힘으로 많이 바뀌었을 것 같지는 않지만, 여전히 큰 책임감을 느끼고 있어요. 파업을 하는 동안 마음이 정말 무거웠어요. 다시는 이런 파업이 없었으면 좋겠다, 앞으로 향후 사오십년간은 이런 파업이 일어나지 않아도 되는 탄탄한 언론환경을 만들어놓아야 하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파업할 수밖에 없던 절박한 이유
김종엽 파업이 일어나기 전 이명박정부와 언론의 갈등에 대해서는 이미 많이 알려졌었죠. 신태섭 KBS 이사와 정연주 사장의 해임이라든가, ‘PD수첩’ 탄압, 손석희씨 ‘100분토론’ 하차, 이런 것들이 대표적인 예죠. 그렇지만 언론인들이 파업을 결행한 데는 내부에서 느끼는 구체적이고 일상적인 갈등이 많았을 것 같아요. 사회적으로 알려진 몇몇 사건 외에 일상적으로 보도나 취재, 방송을 하면서 어떤 어려움이 있었나요?
이재훈 제가 제작했던 프로그램이 김재철 사장이 들어오면서 폐지됐어요. 기자들이 만든 심층보도 ‘뉴스후’입니다. 당시 제가 2007년 11월부터 2008년 1월까지 종교인의 납세에 대해 보도했어요. 목사들이 세금을 안 내는 문제라든가, 대형교회를 짓는 데 집착하면서 불거지는 문제를 다뤘죠. 당시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의 멘토라 불리는 곽선희 목사를 인터뷰했고 그게 방송에 나갔습니다. 사실상 소망교회 목사에 대한 비판적 내용인 거죠. 그런데 지금 같은 김재철 사장 체제의 분위기라면, 과연 취재가 가능할까 하는 의문이 들기 전에 저걸 취재해야겠다는 생각부터 못했을 것 같아요. 아이템 자체를 스스로 검열하는 자세가 팽배해 있는 거죠.
2008년에 정권은 바뀌었지만 엄기영 사장이 현직에 있었기 때문에 이명박정부의 폭압적인 언론지배가 영향을 미치는 데 2년 정도 시차가 있었어요. 엄기영 사장이 사실상 강제로 물러난 후 김재철 사장이 부임했고, 그 첫해에 보도부문에 대한 대규모 인사를 단행했습니다. 약간이라도 다른 의견을 내거나 말을 안 듣는 사람은 철저하게 비(非)취재부서나 선호하지 않는 부서로 발령을 해요. 그리고 그동안 업무능력이 떨어져서 선후배로부터 인정을 못 받던 사람을 간부로 등용해요. 그런 사람들은 김재철 사장의 입맛에 맞는 뉴스를 내기 위해 무척 노력하거든요. 그후로는 기자들이 자기검열을 일상화하는 태도를 습득해가는 과정이었다고 봐요. 예전 같으면 일선 기자들이 ‘이런 아이템은 꼭 나가야 됩니다’ 하는, 예를 들면 4대강사업 관련한 것이나 노동 관련 주요 이슈들은 꼭 보도해야 된다고 주장할 수 있었어요. 데스크와 의견충돌이 벌어지면, 전화기를 꽝꽝 내리치면서 부장한테도 대들며 싸울 수 있었단 말이죠. 적어도 아이템을 놓고 합리적으로 토론할 수 있는 분위기는 됐고, 그런 토론 후에 방송 여부를 결정했죠. 작년에는 보도국이 무너진 데 이어 핵심 PD들을 솎아내고, 아이템 검열을 통해 ‘PD수첩’ 등을 망가뜨리고, 김미화나 윤도현 같은 라디오 진행자까지 하차시키면서 방송이 완전히 껍데기만 남게 되었습니다.
김종엽 연합뉴스의 경우에는 ‘23년 동안 아무 일 없이 조용했다’ 이런 이야기를 많이 하잖아요. KBS, MBC에 비해 드러난 사건들이 그렇게 많지 않았던 편인데 왜 100일 넘게 파업이 지속된 건가요?
송진원 물론 통신사라는 데가 정부 쪽 쏘스를 많이 가져다 쓰는 기본적인 특성이 있기는 해요. 그런데 현 정부 들어서 좀더 노골적으로 됐다고 할까요? 예를 들면 4대강사업으로 기획기사를 내는데, 제목만 봐도 스스로 낯 뜨거운 내용들, 예컨대 한강이 다시 숨 쉰다, 경북 낙동강 친환경 수계 변신, 서부산 낙동강 친수공간 기대, 이런 것들만 모아서 기사를 내보내는 거죠. 이걸 보고 외부에서는 연합뉴스가 정부홍보지도 아닌데 아무리 통신사라 하더라도 너무 심한 게 아니냐는 비판을 많이 했고, 저희 안에서도 이건 아니라는 문제의식이 점점 강해졌죠.
김종엽 참여정부나 국민의정부 때와 확연히 달라진 문화 같은 것이 있나요?
송진원 저는 그 시절 기자생활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뭐라 말하긴 어려워요. 물론 지금 내부에서는 ‘예전에 노무현·김대중정부 때도 그랬는데, 왜 현 정부 들어서만 이렇게 유별나게 파업을 하면서 난리를 피우느냐?’라고 하는 분도 있어요. 하지만 또 한편에서는 ‘그래도 지금은 정도가 심하다, 더 노골화됐다’고 하더라고요. 보도전문 채널 뉴스Y 출범을 할 때도 사내에서 불만이 많았어요. 사장이 임기 내에 성과를 내기 위해 충분한 여론수렴 없이 독단적으로 결정했다는 거죠. 이 방송이 정말 제대로 준비됐고, 누가 보더라도 올바로 가고 있었다면 이런 상황까지 오지는 않았을 텐데, 인력이나 시스템이 엉망이었거든요. 예를 들면 충분한 방송인력을 뽑아놓지 않고 통신기자들 중 일부를 뉴스Y로 파견 보내거나, 통신기사뿐 아니라 방송기사까지 맡기는 상황이 벌어진 거죠. 개국 첫날 방송사고도 났었는데 다 준비작업이 부족했기 때문입니다. 그런 사안부터 해서 보도의 공정성이나 인사문제 같은 것들이 총체적으로 겹쳐서 이번 파업으로 이어지게 된 거죠. 내부에서 문제가 제기되니까 사장이 ‘언론이 권력과 완전히 따로 갈 수는 없다’는 말을 공개적으로 한 적도 있었어요. 사장도 우리 회사 출신으로 30년 넘게 기자생활을 했는데, 공정성을 생명으로 하는 언론사에서 어떻게 후배들에게 저렇게 이야기할 수 있나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이재훈 사실 저도 1998년에 연합통신에서 기자생활을 시작했는데, 그때 보니까 통신사의 역할이 아주 중요하더라고요. 제가 이렇게 쓰면 이렇게, 저렇게 쓰면 저렇게 따라오는 게 보여요. 과거에는 연합뉴스가 뉴스의 배후조정자라는 느낌이 들었는데, 지금은 뉴미디어가 많이 생기고 사람들이 인터넷으로 뉴스를 소비하다보니 특히 통신사의 역할이 더 중요해진 것 같아요. 뉴스 소비자와의 접점에서 가장 큰 역할을 하는 매체가 연합뉴스잖아요. 그래서 과거 관급기사(官給記事, 정부나 지자체에서 제공하는 기사 형식의 보도자료) 위주의 생각을 가진 사람이 이 뉴미디어 시대에 연합뉴스 사장으로 앉아 있는 건, 저는 상당히 문제가 있다고 봐요.
김종엽 그럼 KBS 이야기를 해볼까요? 정부의 탄압은 가장 먼저 있었지만, 그 저항의 동력을 발전시키는 데 시간이 좀 걸린 게 아닌가 싶은데, 어떤 과정이 있었습니까?
김승휘 아까 MBC가 2년 정도라고 말씀하셨는데, KBS는 더 오랜 시간에 걸쳐 시스템적으로 조직이 망가졌다는 것을 느낄 수 있어요. 작금의 편파보도나 정부 홍보, 또는 정부의 비리를 눈감아주는 것들이 파업의 불씨라고 보면 되고요, 그 원동력은 2008년부터 생겼다고 봐야죠. 2008년 8월 8일에 정연주 사장이 나갔죠. 그리고 경찰이 KBS에 난입했고 그것을 사원들이 몸으로 막았어요. 그리고 이병순 사장이 일단 취임했지만 연임은 실패하고 김인규 사장이 들어왔습니다.
저희 파업은 세가지 측면으로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첫째는 제작·보도 문제예요. 가장 크게 바뀐 건 KBS의 자랑이었던 탐사보도팀이 해체된 거죠. 또 데일리 시사프로도 없어졌고요. ‘생생정보통’이라는 7시 매거진의 ‘시선 600’이라는 코너에서 유일하게 시사문제를 다뤘는데, 쌍용차나 한진중공업 사태 같은 것들이 나왔다는 이유로 외주 제작부서에 넘겨버렸어요. 그나마 코너로 존재하던 것도 없어진 거죠. 이쯤되면 PD나 기자들의 상실감이 이루 말할 수 없었을 테고요.
그런 과정에서 둘째로 끼어드는 게 인사죠. MBC하고는 좀 다를 수 있는데, 저희는 사측 마음에 안 들면 지방 발령을 내면 되요. 그게 사규와도 어긋나지 않아요. 또 정연주 사장 시절에는 팀제 구조여서 간부의 수가 적었고 대체로 평등한 팀원의 위치였기 때문에 역동적으로 일할 수 있는 분위기였어요. KBS 대표 예능 프로그램인 ‘비타민’이나 ‘스펀지’ 등이 다 그때 만들어진 거고요. 그런데 정연주 사장 해임 이후 국・부제가 부활돼서 국장, 팀장, 차장, 실장…… 그렇게 많은 보직을 만들어서 충성하는 사람들을 하나씩 심기 시작한 것이죠.
셋째가 노동조합 문제예요. 저희가 단일노조였을 때는 KBS 노동조합이었고 언론노조 소속은 아니었어요. 강동구 위원장 때 어떤 일이 있었느냐면, 낙하산 사장 반대투표를 부쳤는데 부결이 됐어요. 그러면 보통 집행부가 책임을 지고 총사퇴하고 다시 대책을 논의하는 게 상식적이겠죠. 그런데 그것을 거부하고 위원장이 닷새 정도 단식을 하더니, 사장 취임식에서 김인규 사장과 함께 떡케이크를 자르는 장면이 사보(社報)에 등장해요. 그 모습을 본 조합원들이 충격을 받고 이제 이 노조로는 희망이 없구나 생각하게 된 것이죠. KBS는 조직 자체가 장악되어 있어서 MBC 김재철 사장처럼 흥미진진한 이야깃거리를 주지는 않아요.(웃음) 거꾸로 말하자면 사장 퇴출하는 걸로는 원상태로 돌아갈 수 없을 정도로 망가져 있는 상태인 거죠.
이재훈 파업기간 중에 KBS 새노조의 김현석 위원장이 저희 쪽에 불만이 많았어요. 김재철 사장 때문에 도대체 김인규 사장의 나쁜 점이 부각이 안된다고.(웃음)
낙하산 사장 퇴출이라는 전략적 목표는 타당했나
김종엽 그 점도 잠깐 짚을 필요가 있을 것 같아요. MBC 김재철 사장이 워낙 혐의점이 많기도 하고, 노조가 사장 퇴출을 위해 전략적으로 개인 비리를 많이 폭로해서, 문제가 아주 심각한 사람이란 게 확실히 알려졌죠. 그런데 그렇게 되니까 김인규 사장이나 배석규 YTN 사장 같은 케이스가 상대적으로 덜 부각되었지요. 또 KBS가 파업을 끝낼 때는 공정보도나 위원회 구성에 관한 노사간 합의가 이루어지기라도 했는데, MBC 경우에는 사장이 너무 흠결이 많다는 게 드러나 이 사람을 쫓아내지 않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식이 되어버렸죠.
이재훈 사실 김재철 사장을 몰아내지 않고서는 도저히 안되겠다고 판단했던 계기가 있습니다. 작년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 당시에 9시 뉴스데스크가 노골적으로 편파보도를 했어요. 그래서 작년 11월에 사장이 참석한 가운데 편파보도의 문제를 따지는 공정방송협의회를 열었어요. 그 자리에서 저희 노동조합이 이렇게 지적했죠. 나경원 후보에 대해 부정적인 내용은 총 157초가 나갔는데, 박원순 후보에 대해서는 469초가 나갔다, 이것은 기계적인 균형도 맞추지 못한 명백한 편파보도다. 여기에 대해서 김재철 사장이 특유의 화법으로, ‘아, 문제 있습니다. 동의합니다. 다음부터 이런 일이 있으면 연판장을 돌려서 절 쫓아내세요’라고 하더군요. 그게 다 속기록에 있습니다. 그런 편파보도를 계속 일삼기에 저희가 협의회를 다시 열자고 그러니까, 이번에는 응하지 않고 계속 도망 다녀요. 자꾸 외부 일정을 잡고, 무슨 핑계로든요. 그래서 이 사람과는 더이상 논의 자체가 불가능하겠다고 확신했고 결국은 김재철 사장을 퇴진시켜야 공정방송을 논의할 수 있는 기초를 만들 수 있겠다고 생각하게 됐어요.
김종엽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용가 J씨와의 관계나 법인카드 사용내역 등에 대중적인 관심이 쏠리고 그런 이슈가 공정보도에 대한 초점을 흐리면서, 김재철 사장을 쫓아내야 한다는 국민적 합의는 커졌지만, 초점이 파업의 대의에서 좀 벗어나지 않았느냐는 비판도 있어요.
이재훈 전술적인 측면에서 봐주시면 될 것 같아요. 저희는 김재철 사장을 쫓아내는 게 목표가 아닙니다. 사실 그것은 방송정상화의 첫번째 허들을 넘을 뿐이에요. 앞으로 남은 장애물이 네다섯개는 더 있을 것 같은데, 김재철 사장을 일단 자리에서 물러나게 하고, 새로운 사장이 온 다음에 어떻게 공정보도의 틀을 짤 것인지 협상해야죠. 이 과정에서 또 많은 논의와 투쟁이 있겠죠. 그리고 잘못된 인사와 제도를 돌려놔야 합니다. 그래서 결국에는 제대로 된 프로그램으로 시청자들에게 인정받아야 그때 비로소 공정보도가 실현되는 거죠.
삭발하고 구호만 외치는 투쟁은 이제 그만
김종엽 언론노조운동은 넓은 의미의 지식인 노동운동이라고 할 수 있고, 따라서 파업에서도 대의를 알리고 시민의 지지를 이끌어내는 게 굉장히 중요하죠. 그래서 여느 파업보다 시민의 지지를 얻으려고 애를 많이 쓴 것 같습니다. 특히 인상적이었던 게 3월에 있었던 KBS·MBC·YTN의 파업 콘서트 같은 것이에요. 이런 경험에 대해 이야기를 한번 해볼까요? 사실 대중이 이명박정권에서 고통을 받아온 지 오래되었고 2008년 이래로 죽 안 좋은 일들이 많이 있었기 때문에, 임기 마지막해에 와서 파업을 하는 것에 흔쾌히 지지를 못하는 사람도 많았죠. 그런데 제가 보기에 3월을 지나며 분위기가 바뀌기 시작하고 4·11총선 이후에도 파업이 지속되자 시민의 호응이 더욱 커진 것 같아요. 현장에서 어떻게 느끼셨는지 말씀해주시죠.
김승휘 지금 말씀하신 그런 의심을 많이 받았던 것 같아요. 그런데 총선에서 지면서 사실 홀가분해졌어요. 좀 더 큰 틀에서 생각하게 됐다고 할까요. 그후 5월 25일에 제가 언론노조 주최의 언론총파업 승리 ‘라라라’ 콘서트 사회를 보기도 했는데, 이런 것들이 대중에게 더 다가가고 우리의 의의를 알리는 수단이기도 했지만, 사실은 개인주의적 성향이 강한 젊은 세대가 파업현장에 나서게 되는 힘이었다고도 생각해요. 저희 세대가 파업하고 투쟁하는 데는 그런 것들이 필요하더라고요. 저희 조합만 해도 항상 ‘무슨 프로그램을 할까? 어떻게 재밌게 해볼까?’ 이게 가장 큰 고민거리예요. 집행부의 기획팀이 가장 골머리를 썩었죠.
김종엽 엄숙하게 앉아 있지는 않는다, 이거군요.
김승휘 예를 들면 개그프로인 ‘용감한 녀석들’을 패러디하거나 늘 부르는 ‘파업가’를 색다른 버전으로 불러보는 거예요. 물론 ‘임을 위한 행진곡’을 그렇게 불렀을 땐 지탄을 받기도 했었지만.(웃음) 이런 노력들이 대중에게 다가가는 힘도 물론 있겠지만, 스스로의 동력과 창의적인 발상을 자극했던 것 같아요. 장기파업에서는 참가자를 다독여가야 되는 면도 있고요.
김종엽 연합뉴스에서는 뮤직비디오를 만들어서 화제가 되기도 했었죠. 송진원 기자는 어떠신가요?
송진원 초반에는 저희도 물론 진정성에 대한 의심을 많이 받았어요. 기자생활 하면서 ‘연합 찌라시’라는 말을 많이 들었거든요. 그런 연합뉴스가 갑자기 파업을 한다니까, MBC·KBS 파업하는 데 묻어가는 게 아니냐는 힐난도 많이 있었어요. 세 방송사들이 모여서 콘서트를 하면 저희도 가서 구경을 하는데, 약간 외떨어진 것 같은 느낌도 받고, 그렇다고 많이 알려지거나 폭넓은 지지를 받는 것도 아닌 듯한, 그런 소외감이 있었어요. 초반에 내부에서는 방송사들하고 함께해야 되는 것 아닌가 하는 의견도 있었는데, 저희가 결국 선택한 길은 되도록 저희 스스로 파업을 이끌어가자는 것이었어요. 그러니 최대한 동력을 응집시킬 수 있는 것들이 필요했죠. 그래서 아까 말씀하신 영상물도 만들고 또 콘서트 같은 것을 자체적으로 기획하기도 했어요.
이재훈 MBC 역시 이명박정부 들어와서 뭐 하다가 정권 말기가 되니까 파업을 하느냐라는 질책을 많이 들었는데, 그렇게 말씀하시면 살짝 섭섭한 면도 있어요. 김재철 사장이 처음 부임한 2010년 3월에 저희가 39일간 파업을 했는데, 사실상 싸움에서 져서 파업을 접은 셈입니다만, 당시에는 김재철 사장을 받쳐주는 이명박정권의 서슬이 시퍼렇게 살아 있을 때였지요. 그때 파업을 끝내면서 조합원들이 했던 얘기가, 현장으로 돌아가서 투쟁하자는 것이었어요. 현장투쟁이 제대로 안됐기 때문에 MBC의 공정성이 계속 무너져온 거죠. 그래서 이번 파업을 하면서는 꼭 방송을 제자리로 돌려놔야 한다는 절실함이 컸어요. 앞서의 39일 파업이 패배긴 하지만 실은 이것이 모태가 돼서 현재 파업을 이끌었다고 봅니다.
파업 프로그램과 관련해서 말씀드리자면, 저희는 분위기가 심각하고 마음이 무거우면 투쟁을 오래 하지 못한다고 생각했어요. 처음에 파업 프로그램을 짜면서 삭발은 절대 하지 말자고 했죠. 위원장이 가발을 쓰는 분이라 일단 삭발 자체가 불가능한 사정이 있었지만.(일동 웃음) 어쨌거나 우리 스스로 즐기는 파업이 아니면 결코 저들을 이길 수 없다, 저들은 끈질기게 버틸 것이 분명하기 때문에 오래가기 위해서는 우리 스스로 즐겨야 외부에서도 부담없이 우리 집회에 참석하고 같이 어울리면서 우리의 메시지도 더 널리 전달될 것이라고 봤어요. 그 덕분에 많이 호응을 받은 거 같긴 해요.
김승휘 근데 정말 구호만 외쳐서는 아무런 생각이 나오지 않는다고 생각해요. 구호만 외치러 나가고 싶지도 않고요. 차라리 머리를 깎는 건 재밌을 것 같아서 해보자고 그랬어요. “우리 아나운서 14명이 머리를 다 깎으면 어떨까?” “와! 재밌겠다. 깎자”(웃음) 표현방식이 다양해졌다고 보는 게 맞을 것 같아요. 그런 게 욕구죠. 사실 제가 파업에 참가한 것도 정치권력과 싸운다는 의미보다는 제 일에서 표현의 욕구가 충족되지 않으니까 일하기 힘들어서 그랬던 것 같아요. 이거 하고 싶은데 못 하게 하고, 또 저 말 하고 싶은데 못 하고, 그러니까 막 분출하고 싶잖아요. 근데 파업현장, 그 투쟁의 장, 가장 자유로워야 하고 각자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그 자리에서조차 자기 이야기를 못 하고, 구호 외치라고 하면 외치고 피켓 들고 서 있으라고 하면 서 있는다고 해봐요. 회사에서 그런 대우를 받는 걸 거부했다면 투쟁현장에서도 거부해야 된다고 생각해요.
송진원 저희도 파업 중간중간에 중요 사안이 있었어요. 예를 들면 4·11총선 때 필수인력을 투입할지 말지를 두고 집단토론을 했어요. 아무나 나가서 발언하는 거죠, 정말 자유롭게. 물론 그 안에서도 속깊은 얘기를 할 수 없는 사람은 있었겠지만, 그래도 자유롭게 토론할 수 있는 시간을 많이 가졌던 게 아주 좋은 경험이었어요.
김종엽 그러면 이제 그걸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이 파업의 동력에 어느 정도 도움이 됐는지를 이야기해볼까요? 마침내 자신이 진정성을 인정받았다고 느낄 때의 자부심도 있었을 것 같아요.
송진원 아까 말씀드렸듯이 저희는 ‘연합 찌라시’라는 비판을 많이 받았고 이번 파업을 하면서도 얼마나 가겠느냐 하는 냉소적 시선이 많았어요.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연합뉴스도 이제 정신을 차리는구나. 그래 한번 믿어볼게. 잘해봐’ 이런 식의 응원 댓글이 많이 달리더라고요. 성금은 기대도 하지 않았는데 내주시는 시민들이 생기기 시작했고요. 막판에는 저희가 텐트농성도 했는데, 지나가는 어떤 분이 고생한다고 밥이라도 사먹으라며 돈을 주고 가요. 그동안 우리를 향했던 시선이 조금씩 변하는 게 정말 느껴졌어요. 이번 파업으로 사장을 내쫓지 못하고 공정보도 기틀을 확실하게 세우지 못하더라도, 시민들이 연합뉴스에 대해 갖고 있던 ‘찌라시’ 이미지를 바꾼 것만 해도 대단한 수확이라고 생각합니다.
김승휘 저는 답답하고 화가 나기도 했어요. 이렇게 매일 팝콘도 팔고 지하철에서 풍선도 나눠주고 1인 시위도 하고, 정말 열심히 100일 넘게 하는데도 생각보다 파업이 안 알려지는 거예요. MBC처럼 ‘무한도전’ 같은 인기 프로가 안 나오고 이래야 되는데, 저희는 결방이 거의 없었잖아요. 그러니까 너무 답답한 거죠. 근데 SNS를 들어가 보면, 온 국민이 지지하는 것 같아요. 그 괴리를 극복하는 시간이 저에게 필요했어요. 사실 ‘리셋 KBS 9시뉴스’가 민간인 사찰 특종을 했을 때, 지하철에서 저는 가슴이 두근두근하면서 호외 돌리듯이 파업특보를 나눠드렸어요. 근데 어떤 아주머니가 ‘내 자식이 공부해서 너같이 안된 게 너무 다행이다’ 하시더라고요.
이재훈 그런 아들을 두지 못한 반발심이 그런 멘트로 나오지 않았을까도.(웃음)
김승휘 ‘나꼼수’(나는 꼼수다) 행사에 3만명이 모였다 하면 떠들썩하잖아요. 그런데 국회의원 한명 뽑는 데도 유권자가 15만명이에요. 3만명이 모이면 세상을 다 모은 것 같지만, 사실 전혀 아니죠. 그만큼 아직도 조·중·동, KBS, MBC의 영향력이 너무 강하고,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제대로 방송을 해서 알릴 내용이 정말 많구나 실감했어요.
김종엽 아까 삭발 없는 투쟁을 이야기하셨는데, 과거 우리 사회 노동운동의 패턴이 있잖아요. 엄숙하게 모여서 선언문 읽고, 노래 부르는 것도 정해져 있고, 그럴 때 자세도 경직되고. 이제 그런 데서 많이 벗어난 것 같아요. 그러니까 대의는 대의고, 그걸 표현할 때는 창의적으로 재미있게 하자는 것이 시대정신처럼 됐죠. 어떤 의미에서 예능감, 이런 것들을 무척 강조하는 사회가 된 거죠. 어제 안철수 교수도 SBS 예능프로 ‘힐링캠프’에 나왔지만, 대선 주자들이 관훈토론회에 가기보다 이런 데 나가는 게 훨씬 영향력이 크다고 생각하는 시대가 된 것 같아요. 그런 것들이 우리 사회의 문화를 바꾸고, 파업 문화도 바꾸는 것 같아요. 투쟁방식에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난 것이죠. 촛불항쟁이 이런 변화를 대대적으로 보여준 거였고, 희망버스 운동도 마찬가지죠. 이런 점에 비추어보면 언론사에서도 선후배 간에 투쟁방식을 두고 이견도 좀 있었을 것 같은데, 어떤가요?
김승휘 그런 면에서는 방송국의 특성이 좀 있는 것 같아요. 선배가 후배의 신선한 아이디어를 부러워하는 편이죠. 이건 지금만 그런 게 아니라 예전 90년대 방송관계법 파업할 때도 비슷했대요. 대형 물놀이시설이 처음 생겼을 때 어떤 선배가 거기 가서 수영을 하면서 뭘 해보자고 했대요. 그러면, 파업 중인데 그런 수영장에서 어떻게 팬티만 입고 있느냐, 이런 반론이……(웃음) 그렇지만 방송을 하는 사람들의 특성상, 보수적인 시각을 가진 선배세대도 그것만 고집하는 게 아니라 본인이 새로운 감각을 못 쫓아가는 것에 대해 아쉬워하죠.
이재훈 사실 파업하는 기간에 일을 안 한다고는 하지만 되게 피곤해요. 집회하고 프로그램 짜고, 이런 게 훨씬 힘들어요. 집행부는 물론이고 조합원들도 그렇죠. 저희가 6월부터 가두서명을 받았는데, 십분만 고함쳐도 목이 쉬고, 땀이 줄줄 흘러요.
송진원 저희도 집행부에서 매일 프로그램 짜는 것을 너무 괴로워했어요. 정말 별것을 다했거든요. 팔씨름 대회도 하고, 사장실 앞에서 집회하면서 딱지치기도 하고. ‘가족 오락관’을 패러디해서 ‘연합 오락관’ 같은 것을 만들어보기도 하고요.
김종엽 그래도 노조 쪽에서 만든 파업 관련 보도를 보면, 여전히 관행이 작동하는 것 같지 않나요? 예를 들면 노조원들이 사장실 앞에서 재기발랄하게 노는 것을 보여주기보다는, 사장이 복도를 가로질러가면 노조원들이 막 쫓아가고, 경호원들이 그걸 물리치고, 그러면 ‘사장님 왜 그러세요?’ 하면서 소리 지르고, 이런 모습을 보여주는 게 일반적이지 않나요? 투쟁에 대한 전형적인 이미지들이 아직은 작동하는 것도 같아요.
송진원 외부에서 자칫 ‘너희가 파업한다더니 놀고 있구나’ 하는 식으로 저희 파업의 진정성에 대해 오해할까봐 그런 것 같아요.
올드미디어 파업자의 뉴미디어 활용 경험
김종엽 이번 파업을 보면, ‘제대로 뉴스데스크’ 라든가 ‘뉴스타파’ ‘리셋 KBS 9시뉴스’ ‘서늘한 간담회’ 같은 인터넷상의 자체제작 보도영상을 많이 활용했어요. 예전에는 파업을 하면, 파업하는 자신을 보도하는 게 힘들었잖아요. 한겨레나 경향신문 같은 몇몇 신문에서 써주는 것 외에는. 그런데 파업 콘서트 같은 경우에도, 그곳에 직접 간 사람보다는 인터넷에 올라온 비디오로 본 사람이 더 많을 것이고, 이게 공감을 넓히는 데 상당히 기여했어요. 파업 중에도 노조원들이 새로운 아이템을 발굴해서 특종도 하고 했잖아요. 이런 경험에 대해 말씀을 듣고 싶네요.
이재훈 ‘제대로 뉴스데스크’ 같은 경우에는 제가 처음에 아이디어를 냈는데, 금방 스스로 굴러가는 조직이 됐어요. ‘우리가 정말 이런 뉴스를 하고 싶었습니다’를 가장 효과적으로 시청자에게 전달하는 수단이 뭘까 고민하며 시작된 기획인데, 파업을 알리는 데 기여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서늘한 간담회’는 회사로부터 징계를 받아도 상관없는 집행부가 중심이 되어 제작했어요. 아무래도 팟캐스트(podcast, 인터넷상에서 구독 신청한 영상・음향 콘텐츠를 PC나 스마트폰에 내려받아 볼 수 있는 서비스)다 보니까 허리띠 풀어놓고 이야기하는 분위기고 발언 수위도 높았는데, 회가 넘어갈 때마다 호응도가 체감되더라고요. 제가 기자로 TV에 나가서 시청자를 만나는 것과 팟캐스트에서 솔직한 얘기를 하면서 피드백을 받는 것은 전혀 느낌이 달랐어요. 그 긴밀한 교감이 유용한 무기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우리가 일반적인 집회에서는 하지 못하는 것들을 여기서는 소통할 수 있고, 이런 것들이 입소문을 타면서 청취자가 상당히 불어난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이게 어느정도 넘어가면 ‘나꼼수’처럼 빵 터질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고요. 물론 저희가 그 단계까지 가려면 한참 멀었겠지만.(웃음)
아무튼 이런 뉴미디어를 통해 많은 사람들에게 우리 파업의 정당성을 알려나간 것은 기존의 매체에 종사하는 사람으로서 새로운 경험이었고 약간 충격도 있었어요. 앞으로 밥 벌어먹고 살기도 어려운데, 달라진 환경에 적응을 하려면 여러가지 많이 해봐야 되겠구나, 이런 생각도 들고요.(웃음) 그렇지만 아까 김 아나운서가 말했듯이, 뉴미디어에는 확장성의 한계도 분명히 있거든요. 따라서 아직도 통신, 방송, 신문에서 해야 하는 몫이 상당히 많은 것 같아요. 그런 것을 확인하면서 안도감도 들고, 우리가 새로운 시도를 자꾸 해야겠다는 필요성도 많이 느꼈습니다.
김승휘 유용한 무기라고 말씀하셨는데, 동시에 굉장히 무서운 무기인 것도 같아요. SNS나 팟캐스트 같은 것들에 갇히게 되면, 현실의 큰 그림을 볼 수 없게 되고 약간 도취도 되는 것 같아요. 그리고 그렇게 뉴미디어의 영향력이 크다고 한다면, 반대로 우리가 몸담고 있는 매체의 공정성을 기어이 되찾아야 되는 명분은 그만큼 약해지는 거라고도 볼 수 있어요. 기존의 매체는 도태될 것이니까. 저는 기존 매체의 영향력이 당분간은 아주 클 것이라고 봐요. 뉴미디어는 물론 활용 가능한 수단이기는 하지만, 그것이 혁신적인 변화와 근본적인 대안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해요. KBS 기자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특종을 많이 건졌지만 데스크에서 잘린 게 많대요. 2012년 당시 청와대 국정기획수석 박재완(현 기획재정부 장관) 논문 이중게재 건이나 민간인사찰 건이 대표적이죠. 이런 것들 때문에 KBS가 ‘김비서’의 줄임말이라는 조롱도 받았고요. ‘리셋 9시뉴스’는 그렇지 않다는 것을 항변하려는 심정의 발로인데, 사실 이걸 한다고 해서 오명이 금방 씻어지나요? 그렇지 않더라고요.
이재훈 이번 파업이 우리가 노력한 것에 비해서 많이 안 알려졌던 이유가 뭐냐면, 사실상 조·중·동이 안 썼기 때문이에요. MBC 파업 시작했을 때랑 끝낼 때 1단짜리로 구석에 실렸고, 배현진 아나운서 업무복귀가 이슈가 되었을 때 조금 나왔죠. 근데 ‘악플’(악성 댓글)보다 무서운 게 ‘무플’(댓글 없음)이잖아요. 그래서 저희가 뉴미디어를 통해서 파업을 알린다고는 했지만, 올드미디어가 긍정적이건 부정적이건 다뤄주지 않다보니까 사람들이 잘 모르는 거예요. 올드미디어 시대가 끝났다고 쉽게 이야기하지만, 아직 한국의 언론환경에서는 올드미디어가 차지하는 영향력이 상당히 크죠. 이를 간과하는 오류를 범하면 안 될 것 같아요.
김승휘 게다가 종합편성채널이 왜곡된 시각을 계속해서 재생산해내니까요. 얼마 전 조선TV에서는 MBC 파업현장의 분위기를 전한다면서 “이진숙 홍보국장과 함께 이야기를 나눠보겠습니다” 이러는 거예요. 왜곡된 정보에 양념을 뿌리는 격이죠. 이 상황에서 뉴미디어만 믿고 이걸로 대응하는 건 별로 의미가 없다고 생각해요.
송진원 그나마 MBC, KBS 정도 되니까 신문에서 기사 실어준 겁니다. 연합뉴스가 파업한다는 기사는 정말 언론보도에서 찾아보기 힘들었어요. 내용이 있더라도 제목은 ‘KBS, MBC(…)’ 이렇게 들어가고 본문 밑에 마지막 한줄로 걸쳐 있는 수준이었거든요.
김종엽 SNS 쪽의 열기와 그 바깥의 온도차가 너무 심하니까, 그 괴리감 때문에 뉴미디어에 대한 평가가 박해지는 측면도 있는 것 같아요. 뉴미디어의 위력은 허상일지 모르지만 이것이 없었다면 노조가 파업하면서 느끼는 외로움과 힘겨움은 심했을 거라 생각돼요. 그리고 팟캐스트의 역량이 상당히 커진 것도 인정해야 할 것 같습니다. 예를 들면 시사평론가 김종배씨가 진행하는 ‘이털남’(이슈 털어주는 남자)에서 민간인사찰을 폭로한 장진수 주무관을 계속 불러서 인터뷰한다든가, 유력 정치인들을 쉽게 섭외한다든가 하는 게 그렇죠. 또 KBS나 MBC에 제보해봐야 파업하고 있을뿐더러 그 전에도 여러가지 조직의 압력이 있으니까 잘 안될 거라고 생각하고 뉴미디어 쪽으로 몰리고요. 광고 구조로부터 자유로운 것도 강점이죠. 게다가 유력 인사들을 불러 기탄없이 이야기를 나누니, 이게 보도의 측면과 아울러 예능적인 느낌도 상당해서 전달력이 강합니다. 뉴미디어가 아직은 정치적으로 범위가 좁지만 저는 시간이 지나면 우파도 이걸 할 거라고 봐요. 재밌는 우파도 나올 거고. 길게 보면 미래의 미디어로서 영향력을 확대해가지 않겠느냐 하는 생각도 들거든요. 파업 당사자의 관점에서 보면 뉴미디어의 한계나 제약성이 보이겠지만, 미디어 종사자로서 이런 새로운 경향을 어떻게 보는지요?
이재훈 현재의 뉴미디어가 진영성을 띠고 있는 건 분명합니다. 우파 매체들도 생긴다고 하지만 사실은 층이 얇잖아요. 그리고 그쪽 지지층이 이런 미디어를 사용하는 데 익숙하지 못하고요. 그래서 상당기간 지체현상은 불가피할 것이라고 생각해요. 그 과정에서 저희 기존 매체들이 해야 할 몫이 상당히 많은 거 같아요. 지난번 콘서트에서 MBC 노조위원장이 나꼼수 팀의 응원 발언 후에 한 얘기가 ‘나꼼수 인기, 원래 저거 MBC 거였습니다. 파업 끝내고 MBC 정상화해서 저 인기를 찾아오겠습니다’였어요. 사실 이게 우리 파업의 목표예요. MB정부 들어와서 대안매체가 성장한 이유가 있지요. ‘PD수첩’ ‘뉴스데스크’ ‘시사매거진 2580’이 제 역할을 못하기 때문에 그쪽으로 간 거잖아요. 그런데 지금 뉴미디어 자체는 진영성이 강한 매체가 되어버렸고 확장성에 있어서는 벽에 부딪힌 상황이에요. 그렇기 때문에 언론이 정상화되어야 하는 이유가 지금으로서는 절실하다고 생각이 들어요. 어떤 진영의 장벽을 뛰어넘어서, 정말 제대로 된 언론의 목소리가, 또 여론이 형성되기 위해서는 기존 매체가 바로서야 된다는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김종엽 동의합니다만, 역으로 이제 뉴미디어를 기존 방송사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사례가 생길 것 같아요. 예를 들어 이상호 기자가 MBC C&I 인터넷방송 시사프로 ‘손바닥TV’를 진행하면서 상당히 인기를 모았는데, 이 프로그램이 폐지되자 나와서 팟캐스트로 ‘발뉴스’를 만들었잖아요. 만약 김재철 체제의 방송구조가 아니었다면 이게 MBC가 키우는 정상적인 프로그램이 될 수 있었겠죠. 즉 올드미디어가 정상화되면 역으로 자기들이 적극적으로 뉴미디어의 영역으로 들어가지 않을까, 뉴미디어와 올드미디어가 경쟁도 하지만 보완하고 서로 결합해서 씨너지를 만들 수도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드는데요.
김승휘 사실 그런 건 오래전부터 방송사들이 준비해오던 사업이에요. 기존의 지상파에서 벗어난 플랫폼을 많이 개발하는 거죠. 제가 드리는 말씀은 2012년의 상황에서 뉴미디어의 한계에 대해선데요, 콘텐츠의 주제나 방향 면에서 보면, 뉴미디어에 대해 좀 회의적인 입장이에요. 더 확장되지 못하는 거죠. 뉴미디어는 다양한 플랫폼 중에 하나일 뿐이고, 거기서 ‘개그콘서트’나 ‘뮤직뱅크’를 할 수도 있는 거예요. 그런데 지금은 제한된 아이템과 주제에만 뉴미디어가 활용되기 때문에 현재 시점에서는 앞날이 그렇게 희망적으로 보이진 않아요.
이재훈 기존 매체인 MBC에서도 뉴미디어를 발전시키고 새로운 플랫폼을 개척해야 되는 건 맞아요. ‘손바닥TV’가 신선한 시도였고 사실은 야심작이었는데, 그것마저도 정치적 입지를 다지기 위한 간부들의 도구로 사용되니까 더 성장을 못하는 거예요. 정말 제대로 된 회사가 되고 제대로 된 인사가 있어야 뉴미디어도 자랄 수 있는 환경이 됩니다.
김승휘 뉴미디어에 대한 지금 젊은 세대들의 관점도 저는 좀 변해야 된다고 생각해요. 예전에 DMB(digital multimedia broadcasting)가 나올 때도 ‘와, 걸어다니면서 TV를 보다니’ 하면서 놀랐잖아요? 그런데 DMB도 어떻게 보면 당시에는 뉴미디어였고 새로운 플랫폼이었죠. 그런데 이 그릇에는 이것만 담을 수 있다, 이런 고정관념은 없어졌으면 좋겠어요. 그게 없어지지 않는 이상, 그 전달방식이 더이상 성장하지 못한다는 걸 지적하고 싶어요.
언론파업의 영향력과 특수성
김종엽 그럼 뉴미디어와 관련한 이야기는 이쯤으로 정리하고, 이제 좀 다른 이야기를 해볼게요. 파업의 영향력이 떨어지는 이유 중 하나가, 파업을 하면 방송이 실제로 안돼야 하는데 잘 굴러가는 측면이 있었거든요. MBC 같은 경우는 임시직을 많이 뽑거나 외주를 끌어오거나 재방송을 하는 식이었고, KBS는 원래 조직구조 때문에 새노조의 영향력이 행사되는 데 제한이 있었을 거고요. 연합뉴스는 어땠나요? 뉴스 전달을 차단하는 힘이 어느 정도 있었나요?
송진원 안팎에서 보는 상황이 좀 다른 것 같아요. 내부에서 볼 때는 저희가 노트북을 접고 들어왔는데도 기사는 한동안 나갔거든요. 5월까지는 수습기자들이 임시로 투입됐어요. 베껴쓰는 기사긴 하지만 그런 게 보도가 다 됐기 때문에, 정규기자들은 우리가 그동안 잉여인력이었던가 하는 생각도 들었어요. 그런데 밖에서 볼 때는, 기존에 송고되던 기사량의 20% 정도밖에 기사가 안 나와서 굉장히 불편했다고 하더라고요. 오늘자 일간지가 낸 기사를 연합뉴스가 그 다음날 쓴다든지 하는 일도 많았고요.
이재훈 통신사 입장에서는 치명적이었을 텐데……
송진원 그래서 내부에서도 고민이 깊었어요. 통신사가 저희만 있는 것도 아니고 ‘뉴시스’ 같은 민영통신사 등이 자리잡아가고 있고, 최근에 ‘뉴스1’(2011년 5월 설립)이 들어왔잖아요. 사측이 파업을 접으라고 회유하면서 했던 얘기 중 하나가, 통신시장에서의 지배적인 위치를 위협받고 있다는 거죠. 신문사랑 정부에서도 전재료(통신사가 뉴스를 공급하며 받는 일종의 구독료)를 깎겠다고 했다며 압박을 했어요. 그뿐 아니라 연합뉴스가 언론환경에서 기본적으로 맡는 역할이 있는데 파업 때문에 하지 못하는 점도 걸렸고요. 그래도 우리가 이번에 이 산은 넘어야 공정보도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해서 쭉 가긴 했죠.
김종엽 그런데 역으로 말하면 기사량이 확 줄어야 효과가 있는 거잖아요. 그래서 사주나 운영진이 ‘야, 이거 큰일 나겠다. 통신시장 다 뺏기겠다’ 하는 위협을 받아야 되는 건데, 그럼에도 어느정도 버틸 수 있었다는 얘기죠. MBC의 경우에도 ‘무한도전’ 결방이 화제가 됐긴 했지만, 기본적으로 방송이 돌아가니까 파업의 영향력이 떨어졌던 거 같아요. 파업의 진짜 위력은 모든 걸 정지시킬 때 나오는 건데, 방송사의 투쟁은 좀 특수한 면이 있죠.
이재훈 파업 환경이 예전에 비해 많이 바뀌었죠. 특히 외주화가 많이 되다보니까.
김종엽 파업기금과 관련해서도 이야기를 해봤으면 해요. 파업기간에 언론사 주변 은행들에 대출이 많이 늘어나 좋아했다고 하더군요. 제가 2005년에 캐나다 밴쿠버에 있었는데, 그곳 교사노조가 파업을 했어요. 그런데 노조에서 모든 노조원에게 일인당 몇십달러씩 일당을 지급하더군요. 모든 노조원들에게 그 정도를 지급한다는 건 굉장히 돈이 많다는 건데, 알고 보니 그 노조가 10년 전에 파업을 하고 그후로 계속 파업기금을 모아왔다는 거예요. 어려운 때에 큰 싸움을 벌이려면 평소에 곳간을 채워놔야 한다는 거죠. 또 이번에 국민일보가 파업기금을 위해 한우를 팔기도 했는데, 저는 노조의 중요한 일상적 사업이 생활협동조합이라고 봐요. 생산자들과 연대를 하면서 사회적 연대로 나아가는 게 꼭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이재훈 MBC는 이명박정부 들어서만 다섯번 파업을 했으니 파업기금이 쌓일 수 있는 여유가 많지 않았어요.
송진원 저희는 23년 만에 파업을 하다보니 기금에는 큰 걱정이 없었어요. 물론 조합에서 월급식으로 준 건 없지만 대출을 해줬어요. 또 파업기간에 간식거리도 챙겨주고요. 그래서 집에 있는 것보다 차라리 회사 가서 투쟁하는 게 더 좋았죠. 밥을 먹을 수 있다, 최소한 두끼는 주니까.(웃음)
김승휘 KBS의 경우, 2008년 정연주 사장 해임사태 당시 만들었던 ‘사원행동’은 임의단체였고 2010년에 새노조 출범하면서 임금단체협상이 체결되었으니까 기금을 모을 시간이 별로 없었지요. 그래도 갓 입사한 친구들은 조합에서 책임져야 하니 경제적 보조를 위해 다른 데서 돈을 빌려왔다고 하더라고요. 이제 복귀하고 나서 전 조합원이 정률로 떼어서 그 돈을 같이 갚기로 했어요. 이런 모습은 희망적이라고 생각해요.
여야의 개원 합의, 지켜질 것인가
김종엽 그렇게 파업의 후유증을 처리해나가는 과정도 연대감을 강화하는 길이 되겠죠. 그럼 앞으로의 사태에 대해 전망을 해볼까요? 파업을 끝내 잠정중단하고 복귀한다고 보도가 나왔을 때, 한겨레 칼럼 「문화방송을 누가 더 사랑하는가?」에서는 ‘아기를 살리려는 엄마의 심정이다’라고도 했는데요, MBC의 경우 ‘여야의 개원 합의가 지켜질 것’을 믿고 복귀한 거잖아요. KBS에서는 대선공정방송위를 설치하기로 합의하고 파업을 잠정중단했고요. 연합뉴스 역시 노사제도개선특위를 만들어서 공정성을 감시한다고 했는데, 현재로서는 파업의 가시적인 성과라고 할 만한 것이 별로 없기도 하고 상황이 좀 유동적인 것 같아요. 새로 구성될 KBS와 방문진(방송문화진흥회) 이사회의 윤곽이 7월 말에 드러나는데, 이런 상황에서 MBC 경우에 고약하게도 복귀 전날인 17일 밤에 회사가 노조 중심인물들에 대해 치사한 인사발령을 냈고, 방문진 이사 선임과 관련해 새누리당 이한구 원내대표가 정당 몫의 이사 추천권을 포기하겠다는 이야기도 했고요. 앞으로 전개될 국면에 대해 어떻게 전망하시는지요.
이재훈 여야 개원 합의문에 보면, MBC 문제를 ‘법 상식과 순리에 따라’ 처리한다고 되어 있습니다. 그게 괜히 나온 문구는 아니에요. 어떤 사업장의 파업 문제에 대해 여야가 개원 합의문에 넣을 정도면, 어느정도 합의가 있지 않고서는 불가능합니다. 더구나 법과 상식이라는 말이 들어갔어요. 그 잣대로 볼 때 김재철 사장이 8월을 넘길 수는 없으리라는 강한 믿음이 있습니다. 저희 나름의 취재와 확신을 바탕으로 내린 판단이에요 그리고 당장은 가시적인 성과 없이 파업을 접은 것으로 보이지만, 김재철 사장이 나가고 난 다음에 새로 들어오는 사장과 협상하여 공정보도를 위한 여러 장치를 만들고 문제를 해결해갈 계획입니다.
김종엽 그때 여야간 합의라고 하는 게 여야가 추천하는 방문진 이사 숫자에 대한 기대잖아요.(7월 27일 방송통신위원회는 기존 이사 3명을 포함한 여권 추천 6명, 야권 추천 3명의 방문진 이사를 선임함—편집자) 그런데 이명박 대통령은 임기말까지 언론이 정상화가 안된 상태를 원할 테고, 박근혜 후보도 MBC가 제 모습 찾는 게 정치산술적으로 달갑지 않을 수 있지 않습니까? 그러면 사실상 이명박과 박근혜의 이해가 일치하는 측면이 있을 텐데, 상황을 좀 낙관적으로 보는 거 아닌가 싶습니다. 또 최근에 BBK 가짜편지 사건이나 민간인 사찰에 대한 수사결과에서 보듯이 현 정권의 후안무치함을 과소평가하는 것도 같고요.
이재훈 이제 대선을 앞둔 상황이기 때문에, 박근혜 후보도 김재철 사장의 거취 문제를 상식에 따라 처리하지 않으면 안되는 분위기가 널리 퍼져 있다고 생각해요. 김재철 사장은 MB가 꽂아넣은 것이고 문제 해결의 키를 쥔 것도 MB지만, 또다른 해결의 키를 쥔 사람이 분명 박근혜거든요. 만약 박근혜 후보가 김재철 사장을 MBC에서 내보내지 않는다고 한다면, 많은 유권자들이 어떻게 생각할 것인가? 분명 부정적인 평가가 내려질 것이다, 그렇게 저희는 봅니다.
김종엽 그 점에는 동의합니다만, 여권에서는 박근혜가 이명박 뒤에 숨고, 이명박이 박근혜 뒤에 적절히 숨는 게임을 하고 있는데, 현재로서는 언론문제에 관한 책임자가 박근혜 후보라는 것을 널리 전파하는 게 중요한 과제인 것 같아요. 한편 KBS와 연합뉴스의 경우에는 MBC와 달리 일정하게 회사와 타협을 하고 접은 거잖아요. 그래도 노조 간부들을 다 징계한다고 하면서 계속 갈등이 있는 것 같은데, 앞으로 어떻게 보시는지요?
송진원 징계에 관해서는 일단 상황을 지켜봐야 할 듯해요. 어쨌든 공정보도에 대한 구성원들의 인식틀이 만들어졌으니까, 앞으로 각자 할 일을 열심히 해보자는 분위기가 있어요. 최근에도 박근혜 후보 대선출마 관련한 기사가 큰 문제가 되었는데, 성명을 낸다든지 하는 식으로 노조 활동을 이어가고 있고요. 또 제도개선특위를 운영하면서 사측과 협상을 통해 하나하나 합의점을 만들어가고 있는데, 그 과정이 당분간 지속될 거예요. 그리고 연말까지 사장의 거취를 어떻게 하느냐, 이게 일단 중요한 과제고 관련한 움직임도 여전히 진행 중입니다.
김종엽 KBS는 상황이 어떤가요?
김승휘 조합원 개인의 생각임을 전제로 말씀드릴게요. 징계 부분에서는 재심이 있을 것이고, 또 상당부분 이루어졌어요. 이전 징계에 대해서는 재심으로 다 감경된 걸로 알고 있고요. 젊은 조합원들 중에는 징계를 내린 사람들을 우리가 인정하지 않는데 그들에게 다시 심판을 맡기는 건 굴욕적이라고 생각하는 입장도 있지만, 무죄를 받아내려고 법정으로 가다보면 당사자가 감내해야 하는 불편과 고통이 크잖아요. 여기에 대해서는 공감이 있었던 것 같아요. 그리고 합의 내용은 보도를 통해서 먼저 보셨을 텐데, 크게는 대선공정방송위를 설치하고 탐사보도팀을 부활시키며 데일리 시사프로를 복원하는 것이에요. 그런데 그 내용이 명문화되었다고는 하지만 구체적이지 않은 수사적 표현들로 되어 있죠. 이 부분은 계속 싸워나가야 할 것이고요. 어떤 의제도 다룰 수 있고 그걸 다룰 때 누구의 압력도 받지 않아야 하고, 누구든 출연시키는 데 거리낌없는 구조가 되어야지, 그저 탐사보도팀이 만들어진다고 한들 무슨 의미가 있겠어요.
또 MBC의 경우에는 김재철 사장이 나가는 걸 확신한다고 하셨는데, 그렇게만 돼도 노조로서는 가시적으로 큰 성과를 얻잖아요. 그런데 KBS의 김인규 체제는 자연소멸할 수 있어요. 11월에 임기가 끝나거든요. KBS는 이병순 액자를 걸어놓든 김인규 액자를 걸어놓든 별로 상관이 없어요. 핵심은 그 액자를 걸 수 있는 못을 빼는 것이죠. 그러니까 토호세력 같은 사람들이 있어요. 개혁을 거부한다는 의미에서 ‘부역간부’라고도 부르지요. KBS는 조직 규모가 크고 내부 문화도 관료적이기 때문에 MBC에 비해서 역동성이 떨어져요. 이 조직이 변할 수 있는 작업은 앞으로 더 촘촘하게 해나가야 하죠. 파업 이후에도 저희는 아주 느린 걸음으로 갈 수밖에 없을 것 같아요.
업무 복귀 이후 갈등 수습과 남은 과제들
김종엽 KBS가 조직구성이 복잡한 데 비해 MBC는 동질적인 측면이 강했는데, 이번 파업 와중에 임시직으로 뽑은 사람들이 100여명이 되고, 그게 조직 전체로 보면 큰 부담일 것 같아요. 지난 18일 ‘이털남’에 출연한 MBC 노조 정영하 위원장 말이 인상적이었어요. 평소 사원을 뽑을 때도 공정보도를 할 자질이 되느냐를 중요한 기준으로 보는데, 하물며 파업시기에 그 힘을 약화시키는 입사를 자원한 이들을 좋게 보기 어렵다는 거였죠. 노조의 인식이 이렇다면 새 사장이 와서 이 문제를 전향적으로 풀지 않는 한 심각한 조직갈등이 생길 것 같은데, 어떤가요?
이재훈 우리가 열심히 파업하고 있을 때 그 대의에 동의하지 않고 들어온 셈이라 좋게 볼 수 없는 면이 있긴 하지만, 이들도 개인적으로는 한사람의 노동자지요. 어느 가정의 가장이거나 미래가 창창한 젊은 언론인일 수 있는데, 단지 이 시기에 MBC에 들어왔다고 해서 꼭 나쁘게만 볼 수는 없지요. 그런데 첫번째 측면을 제쳐두고서라도 이 시용(試用)기자들이 능력을 보이면서 조직에서 살아남아야 될 텐데, 과연 얼마나 그럴 수 있을지 의문스럽고요, 조직 내부에서 계속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는 상황 같아요. 곧 있을 런던올림픽 중계팀이나 취재팀은 대부분 계약직 PD나 시용기자 위주로 짜질 것이라고 합니다. 파업에 참가했던 조합원은 대부분 배제될 것이라고 하네요. 경험과 노하우가 풍부한 조합원들을 제쳐두고 과연 제대로 된 시청자 서비스가 가능할지 의문입니다. 또 앞으로 ‘무한도전’ 같은 예능프로 등은 제작에 큰 문제가 없겠지만, ‘PD수첩’이나 ‘시사매거진 2580’ 같은 시사프로는 제작과정에서 조합원과 간부진 사이에 마찰이 일어날 가능성이 큽니다.
김종엽 자, 이제 법 개정 이야기를 해볼까요? 지금 국회 문방위(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 구성을 보면 여야 15대 15로 구성돼 있고, 여당에서도 남경필 의원처럼 다소 전향적인 관점을 가진 사람이 있죠. 남경필 의원이 발의한 법안을 보면 KBS든 MBC든 이사진을 여야 동수로 추천하게 하는 내용을 담고 있고, 민주통합당 배재정 의원도 이와 관련한 법률개정안을 발표한 바 있어요. 이런 방안들에 대해서는 대개 받을 만하다고 보는 건가요?
이재훈 간단히 말씀드리면 법 개정의 취지에 대해서는 저희도 동감을 하고요, 어떤 정권이 들어서더라도 거기에 영향을 받지 않는 사장이 와야 한다는 데 여야의 공감대가 점점 형성되는 거 같아요.
송진원 연합뉴스의 경우 사장후보추천위원회도 있고, 여야 동수는 아니지만 국회의장이 각 교섭단체와 협의해 추천한 인사, 언론조직에서 추천한 인사들이 모인 뉴스통신진흥이사회도 있어요. 그런데 지금 법 개정 추진한다는 얘기가 나오지만, 법 개정 자체보다는 그 법을 어떻게 운용하느냐가 문제라는 생각이 들어요. 아무리 제도를 잘 갖춰놨다고 해도 그걸 악용하는 세력이 분명히 있잖아요.
김종엽 그래도 법이 있으면, 예를 들어 2008년 신태섭 KBS 이사 해임 때 같은 부담을 짊어져야 되는 거잖아요. 일종의 안전장치죠.
송진원 물론 안전판은 될 수 있겠지만 그것만으로 만족할 수는 없을 것 같아요.
김승휘 앞으로도 정치권이 KBS라고 하는 도구를 장악하려 할 때, 오히려 그런 법 개정이 명분이 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그때 가서 법 개정한 대로 여야 동수로 했는데 무슨 얘기냐, 그럴 수도 있으니까요.
대선에서의 공정보도, 국민의 신뢰 회복할 기회
김종엽 공정보도를 위해 모두가 싸워왔는데, 이제 대단히 중요한 것이 대통령 선거예요. 권력을 쥔 쪽이 잘못한 게 없으면 정권교체에 그렇게 큰 부담을 느끼진 않겠죠. 근데 현재 한국사회의 집권세력, 특히 대통령은 다음에 야권이 집권하는 게 악몽에 가까울 거고, 검찰은 새로운 정권 아래서 심각한 위협에 처한다든가, 보수언론은 종편을 벌려놨는데 수습이 안된다든가, 이러면 정권 재창출이 사욕으로 가득 찬 프로젝트가 될 가능성이 크고, 그럴수록 공정보도의 중요성도 높아지는 것 같아요. 현재의 제한된 환경, KBS의 경우 새노조의 제한된 역량, 연합뉴스는 통신사라는 영역의 제약, MBC는 노조의 주요한 사람들 보직을 흩어놨다고 하던데,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일상적으로 공정보도를 위해 투쟁할지에 대해 말씀을 듣고 싶어요.
송진원 저희는 이 파업을 하면서 기자정신을 회복하자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그동안 매너리즘에 빠져서, 특히 통신기자는 하루하루 일에 치여 살아왔는데 이제 언론 본연의 자세로 돌아가야 한다고 깨달은 거 같아요. 그래서 지금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안도 나오고 대선도 앞두고 있어서, 공정성에 약간이라도 위배되는 기사가 나오면 노조 게시판 같은 데서 논의가 활발하게 되는 편이에요. 그전에는 편향된 기사가 있어도 속으로 삭히고 말았는데, 지금은 서로 토론하고 책임소재를 따지려고 하거든요. 그런 걸 보면 확 바뀌거나 당장 공정보도가 되는 건 아니지만, 조금씩 자리를 잡아가고 있고, 그것이 대선까지 쭉 이어질 것이라 기대하고 있어요.
김승휘 아나운서로서 개인적인 심경을 얘기해본다면, 사실 이 정권 들어서 괴로운 일이 너무 많았어요. G20정상회의 방송 3300분에, 천안함은 매번 성금 모금방송만 하고, 심지어 국군장병을 위한 발열조끼 모금방송도 했어요. 제가 진행하는 프로인 ‘도전 골든벨’도 방송이 나가다가 중간에 끊기고 UAE 원전 수주 긴급뉴스가 끼어들어요. ‘도전 골든벨’도 관제특집이 많았어요. 국세청 골든벨, G20 골든벨…… 사실 그런 것들에 대해 무비판적으로 방송을 할 수도 있거든요. 방송인이라면 누구나 자기가 많이 출연하면 좋잖아요. 그런데 점점 이런 게 위험할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을 갖게 됐어요. 또 한국사회에서 아나운서에 대한 특수한 시선이 있어요. 공정하고 성실하고 진실만 얘기할 것 같고. 이런 기대를 잊어버린 아나운서가 많았다고 생각해요. 4대강사업 여주보 통수식 생중계 때 열린 음악회에서 마이크 잡고 ‘정말 역사적인 날이에요. 너무나 축복받은 일이에요’ 하는 것들…… 기자나 PD뿐 아니라 아나운서도 당연히 거부할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럴 수 있는 용기와 힘이 젊은 사원들에게 생겼다는 것만으로도 아까 말씀드린 합의문 내용을 이행해가는 데 큰 동력이 될 것 같아요.
이재훈 MBC에서는 김재철 사장을 몰아내고 편파보도에 앞장섰던 주역을 교체하는 과정이 진행 중입니다. 조합원 개인에게도 매너리즘이 분명히 있었을 거예요. 김재철 체제하에서 굳어져온 패배주의, 내가 부당한 지시에 저항해봤자 얼마나 바꿀 수 있을까 하는 회의가 적잖게 내면화됐었고, 이게 결국 편파보도로 나타난 거죠. 그런데 많은 조합원들, 특히 젊은 조합원들에게는 밖에서 추위에 떨면서 집회한 경험, 뜨거운 여름날 거리에서 먼지 마시면서 서명을 받은 경험을 통해 내가 이런 고생까지 하면서 하고 싶었던 게 공정보도다,라는 걸 잊지 않을 것 같아요. 연배가 좀 있는 한 선배는 이런 얘기도 했어요. 내가 파업하기 전에는 자가용으로 다니고 추우면 히터 틀고 더우면 에어컨 틀고 했는데, 이제 월급이 끊기고 지하철과 버스를 타보니까 예전에 안 보였던 게 보이더라. 지하철에서 피곤에 지쳐 자고 있는 학생, 회사원…… 그런 사람들이 보이더라는 거죠. 그러니까 예전에 자기가 젊었을 때 봤던 사람들의 삶이 다시 보이면서 내가 방송국이라는 좋은 직장에 들어와 기득권세력이 돼서 그런 시각으로 취재하고 보도하지 않았나 반성하게 된 거죠. 이런 경험 하나하나가 자산이 돼서 김재철 사장이 떠나고, 그다음에 분명히 좋은 결과와 프로그램으로 나타날 것이라는 확신이 있습니다.
김종엽 자연스럽게 다 마무리를 해주셨네요. 우리 사회가 시간이 갈수록 좌우로 진영이 형성되고 있는데, 여기에 중도적 합의가 두터워지는 과정이 뒤따르지 않으면 서로를 이해하는 일조차 어려워지죠. 현 집권세력은 워낙 편협해서 공정하게 보도하려는 노력을 진영의 논리로 몰아세운 측면이 상당히 큽니다. 그래서 공정보도가 이른바 좌편향된 보도로 보였고, 그런 상황에서 그것을 ‘공정’으로 지켜내는 어려운 작업을 해왔다는 생각이 들어요. 아까도 다들 얘기하셨지만 언론이 진영논리에 갇히면 확장성이 약해집니다. 그런 의미에서 방송사와 통신사는 한 사회의 중심을 차지해야 되는데, 이게 가능하려면 대중의 신뢰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이번 파업의 진정성을 국민이 믿어주는 것, ‘그 사람들이 하는 이야기는 들을 만하다’는 게 확장성의 원천이 되리라 봅니다. 그리고 2012년 파업이 10년 뒤에는 한국언론사에 남을 위대한 투쟁으로 기록되지 않을까 싶어요. 사실 88년, 89년에 언론노조운동을 했던 사람들도 그게 중요한 역사로 기록될 거라고 생각해 그 현장에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지금 와서 보면 그게 한국 언론지형을 만들었거든요. 이번 파업이 또 새로운 언론지형을 만들 것이고, 여기에는 패배주의와 냉소주의를 떨쳐버린 언론이 그 토대가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바쁘신데 와주셔서 여러 경험 나누어주신 것에 감사드립니다.(2012.7.24. 인문까페 창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