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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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녀 金止女

1978년 경기도 양평 출생. 2007년『세계의문학』으로 등단. yamsi97@hanmail.net

 

 

 

거리의 이발사

 

 

이 거리의 혈통은 오래다

 

거리 모퉁이 오래된 등나무 그늘이

내 집이다 등을 쓰다듬으며 햇빛은

나를 잠재우고 또 깨우고

나무의자에 앉아 졸고 있는 아버지의 발등을 간질이고 있다

 

아침마다 머리를 단정히 빗어 넘기고

아버지는 사람들의 얼굴에 날개를 달아준다

아름다운 날개를 펄럭이며

간혹, 사람들은 붉은 강을 건너 돌아오지 않고

 

날마다 꽃은 피고

아이가 태어나고

 

오늘도 아버지는 내 탯줄을 자른 가위로

사람들의 표정을 오렸다 붙였다 한다

샹들리에처럼 등꽃이 반짝할 때마다

얼굴들 날아가고

 

그러나 이 거리의 혈통은 오래이고

옷깃을 스쳐선 안된다, 아버지는 말한다

 

 

 

롤러코스터 피크닉

 

 

우리 피크닉, 갈까?

수많은 바퀴를 굴리며

서로의 뒤통수를 따라가며

걷지 않기

창문 없이

동공을 열어놓기

뱃속에 한가득 공기를 집어넣고

떨어지기 위해 정상으로 천천히 오르고 있는 롤러코스터에 앉아서, 오직 앉아서

 

오늘은 높은 담장 위에 앉아

저 아래 걸어오고 있는 무거운 신발들에게 푹푹,

발자국 없이 놀다 가는 테크닉, 가르쳐줄 거야

메아리치도록

맨발을 흔들어

맨손을 높이 들어

 

박쥐처럼 거꾸로 매달려 있다면 신나는 피크닉,

발바닥이 공중에 뜰 때

동그랗게 모였다 흩어지는 비명은

레일을 따라 빠르게 미끄러진다

누구도 들을 수 없게

높은 음을 내며

높은 음을 들으며

우리는 얇은 날개를 오므렸다 펼쳤다, 어디론가 날아가는

풍선, 뱃속의 공기가 다 빠지도록

고래고래

소리지르는

 

허리에 벨트를 꽉 조여매고

우리는 끝없이 이어진 담장 위를 달린다

각자의 동굴을 향해

태양을 향해

바람의 속도 속으로

머리카락을 흘려보낸다

 

멈출 수 없다면 아찔한 피크닉,

가파른 벽을 움켜쥔 나사못의 힘으로

나무가 계단이 하늘이

돌고 돌고 돌아

흩어지게

가볍게 사라지게

롤러코스터에 앉아서, 오직 앉아서

우리 이렇게 잠깐 동안, 완전히 자유롭다는 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