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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단과 현장
지방정부의 지역언론 통제
광주·전남 지역을 중심으로
윤주성 尹胄晟
KBS광주총국 기자. 주요 논문으로 「지방정부의 지역언론 통제방식에 관한 연구」 등이 있음. yjs@kbs.co.kr
*이 글은 필자의 2010년도 전남대 석사학위 논문을 수정·보완·재구성한 것이다.
1. 지역언론의 비판기능 위축
지방자치제가 전격적으로 시행된 지 20여년이 흘러 이제는 정착단계에 들어섰다. 그런데 풀뿌리 민주주의를 실현하기 위해 지역언론이 제 역할을 하고 있는지를 놓고는 비판의 목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언론학계에서는 지역언론이 지방자치를 위한 필수적인 정보의 제공자이자 공론(公論)의 장으로서 제 역할을 제대로 못하고 있고, 오히려 지역의 민주적 발전을 저해하는 장애물로까지 여기는 분위기가 팽배해가는 상황이다. 이는 특히 지역언론이 지역정치권력에 대한 비판·감시 기능을 수행하지 못하고 오히려 홍보매체로 전락하고 있다는 평가에서 잘 드러난다.1)
지금까지 지역언론의 문제와 폐해를 다룬 연구들은 주로 그 원인을 경제적 요인에서 찾았다. 열악한 지역경제 여건으로 언론시장의 파행과 왜곡이 발생하고 이러한 환경 속에서 지역언론이 정상적인 기능을 수행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지방자치제 실시 이후 지역언론이 자체적인 취재활동보다 행정기관 보도자료에 의존하는 관행이 갈수록 심해지는 것은 경영악화와 이에 따른 취재인력 감소에서 비롯한다는 분석이다.2)
지역언론이 IMF 경제위기를 기점으로 급속히 쇠퇴한 현실이 시사하듯 경제적 요인이 핵심이라는 점은 분명하지만, 그것만으로 충분히 설명되진 않는다. 예를 들어 경제적 여건이 열악한 지역일수록 더 많은 언론사들이 존재하는 상황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또 정부의 지역신문 지원정책이 성과를 충분히 거두지 못하고 있는 것이 단순히 예산지원이 부족해서일까? 지역언론의 역할, 특히 지역 (정치)권력에 대한 비판·감시기능의 약화를 단순히 언론시장의 파행과 왜곡, 경영악화 등의 경제적 요인 또는 언론사 내부의 요인으로만 파악하는 것은 한계를 지닐 수밖에 없다.
이런 맥락에서 지방자치제 시행 이후 비대해진 지방정부의 권한과 영향력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지방자치제 시행 이전의 행정기관장이 중앙정부에서 임명한 관료였다면 시행 이후에는 그 위상과 신분이 격상되었다. 자치단체장은 임기가 법적으로 보장되는 선출직이며, 무엇보다 해당 지역주민을 대표한다는 ‘상징적 권위’까지 부여받았다. 여기에 중앙정부의 각종 권한이 지방정부로 이양되면서 그 수장인 자치단체장은 지역언론을 포함한 지역사회 전반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권력을 지니게 되었다.
전국 232개 기초자치단체의 주요 과장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지방관료제에 대한 외부행위자들의 영향력’ 측정 결과 지배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외부행위자는 자치단체장인 반면 지역언론의 영향력은 의회와 광역단체, 중앙정부, 심지어는 이익・고객 집단보다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3) 이는 자치단체장의 권한이 크게 강화된 반면 지역언론의 기능과 위상은 상대적으로 위축되었음을 시사한다.
2. 지방정부의 ‘권력 독주’
지방자치시대 자치단체장에게는 산하 공무원·지방 공기업에 대한 인사와 예산 편성, 조례 제정, 각종 인·허가, 위원회 위원 위촉, 도시계획 입안 등의 절대적 권한이 집중되어 있다. 권한이 막강한 반면 감시체계가 허술하고 행정상 오류로 주민에게 손해를 끼쳐도 책임을 제대로 지지 않아 일선 기자들 사이에서 자치단체장은 지역의 ‘소통령(小統領)’으로까지 비유된다. 특히 산하 공무원 등에 대한 인사권은 그야말로 무소불위이다. 지난 2004년 광주광역시의 한 사례는 자치단체장의 인사 전횡이 어느 정도인지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정○○ 당시 광주광역시 지방 서기관은 2004년 3월 31일 지방 부이사관 승진자로 확정·발표되고, 4월 1일부터는 대개 지방 부이사관을 임명하는 광주비엔날레 사무국장에 배치돼 넉달을 근무했다. 그런데 7월 광주비엔날레 이사장이 사무국장을 교체해달라고 요구하자 당시 박○○ 광주광역시장은 정 사무국장을 대기 발령한 뒤 과장급 지방 서기관 자리인 광주시립민속박물관장에 임명하면서 승진 조치를 철회해버렸다. 정 사무국장은 승진 임용 취소가 부당하다며 소청심사를 청구했다 기각되자, 2006년 3월 광주지방법원에 소송을 제기했다. 대법원까지 가는 6년여의 법정다툼 끝에 어렵게 승소했으나 광주광역시는 이런저런 명분을 대며 법적 다툼을 이어갔고, 그는 결국 2009년 12월 정년퇴임하고 말았다.
국가공무원의 경우 인사권이 각 부처 장관과 중앙인사위원회, 청와대 등으로 분산돼 있고, 부당한 인사처분에 대한 구제기구인 소청심사위원회가 별도의 독립기구로 설치・운영되고 있으나 지방공무원의 경우에는 모든 권한이 자치단체장에게 집중되어 있다. 자치단체장의 눈 밖에 난 지방공무원은 삼선(三選), 최대 12년까지 한직(閑職)을 전전하며 승진에서 누락되는 등 각종 불이익을 받을 수 있는 것이다.4)
사정이 이러하니 감사원에서까지 시장이나 군수, 구청장이 지역에서 거의 제왕적 권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5) 그 수가 수천명에 이르는 산하 공무원조직은 자치단체장이 대규모 인력을 동원할 수 있는 물리적 힘의 근원일 뿐 아니라 여러 분야에서 전문교육을 받은 인적 자원의 풀(pool)로 자치단체장의 의사결정과 치적의 정당성 등을 입증하는 논리 개발의 창구 역할을 한다.
그렇다면 지방정부와 자치단체장을 견제해야 할 지방의회의 현실은 어떠한가? 물론 지역마다 여건과 정도가 다르겠지만 곳곳에서 지방의회의 감시와 견제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는 비판이 잇따르고 있다. 이러한 비판의 배경에는 지방의원에 대한 정당공천제가 자리잡고 있다. 특정 정당이 자치단체장은 물론 의회권력까지 사실상 독점하고 있는 상황에서 제대로 감시와 견제가 이루어질 리 만무하다. 실제 2006년 5・31지방선거 결과 서울과 부산, 대구에서는 한나라당이 전체 의석의 79%를, 광주와 전남에서는 민주당이 전체의 69%로 의석 대다수를 차지했다.6)
2007년 광주광역시 여성청소년 정책관의 예산심의 거부 파문은 지방의회의 무기력한 위상을 단적으로 드러낸 사례였다. 개방형 직위로 국장급에 임명된 지역 신문기자 출신의 남○○ 당시 여성청소년 정책관은 2007년 11월 광주광역시 의회 류○○ 의원이 행정사무감사 과정에서 고압적 태도를 보였다며 지역의 한 일간지에 전면광고를 게재하고 예산심의를 거부하는 초유의 사태를 일으켰다.7) 해당 의원이 광주광역시에 공식 사과를 요구했으나 별다른 조치 없이 유야무야되고 말았다. 광주광역시 의회 차원에서 재발 방지와 사과를 요구할 만한 사안이었으나 지방의회 의원 대다수가 민주당 소속이어서 정치원로인 자치단체장과 대립각을 세우지 못했다는 후문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지방정부는 지역언론에 대해서도 상당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지방자치제 시행 이후 지방정부는 자치단체장이 추진하는 각종 행사와 사업, 그리고 주요 치적을 적극적으로 홍보하고 있다. 광주·전남의 경우 지역 연고기업인 금호그룹 주요 계열사인 금호산업과 금호타이어에 대해 2012년 7월 현재 기업개선 작업인 워크아웃(workout)이 추진되고 있고, 남양건설과 대주건설 등 주요 건설사들이 줄줄이 법정관리 등의 경영위기를 겪고 있는 와중에 지방정부가 지역 광고시장에서 차지하는 위상과 비중은 민간기업을 추월할 정도로 커지고 있다. 더욱이 민간기업은 경기의 영향을 받지만 지방정부는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예산 집행이 가능해 일부 지역언론사들은 지방정부를 마지막 남은 ‘수익원의 보루’로까지 인식하고 있다.
지난 2008년 광주광역시와 전라남도의 홍보예산(시보市報 예산 포함)은 15억 1400여만원과 31억 8000여만원에서 2009년에는 29억 5000여만원과 33억 6000여만원으로 증가했다.8) 규모가 작은 광주·전남 지역 일간신문사의 연간 매출액이 30억원을 넘지 않는다는 사실을 고려해보면 지방정부의 홍보예산 규모가 어느 정도 비중인지 짐작할 수 있다.
지방정부는 공식적인 예산 외에 음성적인 방식으로도 홍보비를 집행하고 있다. 일부 기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자발적으로 지방정부의 주요 사업이나 자치단체장의 치적을 홍보하는 기사를 작성한 것처럼 하면서 실제로는 광고처럼 비용을 받는 사례도 있다고 한다. 사실상 광고를 기사 형식으로 은폐하는 이런 음성적 예산은 지방정부의 공보부서 외에 타부서에서도 다양한 명목과 방식으로 집행되고 있어 정확한 규모를 파악하기조차 쉽지 않다.
3. 지방정부의 통제 양상
광주·전남 광역자치단체장이 날마다 새벽같이 일어나 지역 일간지와 중앙지, 그리고 지역방송사의 지방정부 관련 소식을 토씨 하나 빼지 않고 모니터하며 기사의 내용과 논조, 하물며 사진 앵글 등 시시콜콜한 부분까지 해당 언론사에 대응하도록 공보부서에 지시하는 것은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특히 자치단체장이 역점적으로 추진하는 사업을 부정적인 시각으로 보도했을 경우 그 대응은 지나치리만큼 민감하다. 보도 이후 곧바로 자치단체의 공보부서뿐 아니라 사업의 주무 과장이 해당 기자에게 전화를 걸어 사업 추진의 당위성과 언론의 협조 필요성을 적극 피력하고 기사 논조와 내용(설령 그 기사의 시각과 내용이 제3자적 입장에서는 객관적이라 하더라도)에 대해 문제를 제기한다. 또 기자의 비판적 논조가 이어진다면 데스크와 사주 등에게까지 전방위로 접근한다.
자치단체장이 자신의 치적을 부각시켜 유권자인 지역주민으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으려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이 정도를 벗어나면서 막강한 행정·재정적 권한을 배경으로 지역언론을 자신의 정치적 홍보매체로 예속화하려는 경향까지 나타나고 있다. 광주·전남 일간지와 중앙지, 방송사 기자 16명(광주광역시·전라남도청 출입기자 각 8명씩 임의선정)을 대상으로 지난 2010년 3월부터 5월초까지 심층면접한 결과 자치단체장은 기사 작성단계에서부터 적극적으로 관여하려는 것으로 나타났다. 권위주의 시절 중앙정부에서 보였던 언론통제가 이제는 지역 차원에서도 공공연히 이뤄지고 있고, 그 양상은 과거의 물리적·법적·제도적 통제가 아닌 교묘하고 비공식적인 형태를 띠고 있다.
비공식적 통제
자치단체장은 자신에 대한 부정적 기사 보도와 여론 형성을 사전에 차단하기 위해 취재단계에서부터 공무원조직을 동원해 대응에 나서곤 한다. 지역언론의 부정적 기사 작성이 예상되면 홍보업무를 맡은 공보관실과 총괄책임을 맡은 기획실장 등이 해당 언론사에 적극적으로 해명하여 기사의 삭제 또는 축소 등을 요청한다. 특기할 만한 점은 이 과정에서 단순히 출입기자뿐 아니라 해당 언론사의 데스크, 심지어 사장에게까지 협조요청 형태의 청탁이 이뤄지고 있다는 것이다.
기사가 나갈 때 굉장히 태클이 많이 들어오죠. 공보관, 기획실장 이런 사람들이 제가 기사를 쓰고 있을 때 자기들이 예상을 하는 거죠. 어디서 어떤 취재를 하고 있는데 이건 좀 쓰지 말아달라, 이건 이렇게 써달라, 또 연합뉴스·뉴시스에 이렇게 나왔는데 이런 부분은 이렇게 써달라, 혹은 쓰지 말아달라고 요청하죠. 그리고 전화를 할 때 기자에게만 하는 것이 아니고 단체장이 사장에게 직접 전화하는 경우도 있어요.(기자 3)
자치단체장은 또 산하 공무원집단의 인적 네트워크를 활용해서 취재기자의 기사 선택과 내용에 영향력을 미치려 하고 있다. 지역언론 기자와 친분이 있는 제3자를 찾아 청탁을 넣는 방식으로, 지연·혈연·학연 등이 강조되는 지역사회에서 쉽게 무시하기 어려운 압력이 아닐 수 없다.
자치단체장은 지역언론 기자가 지속적으로 비판적 성향을 보일 경우 그가 속한 언론사 인사권에도 적극 개입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자치단체장이 직접 해당 언론사 사장 혹은 사주에게 이런저런 명분을 대며 출입기자의 교체를 요구하는 방식이다. 이는 매우 이례적이며 논란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사안이다. 그런데 광주·전남 지역 일부 언론사에서는 이같은 요구를 수용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광주광역시청의 일부 기자들은 특정 언론사의 출입기자가 교체되면 “또 바뀌었구나”라는 자조적인 한탄까지 내뱉는다고 한다. 광주·전남 지역 일간신문사 대부분이 건설자본으로 운영돼 자치단체장과 우호적 관계를 맺어야 할 사정이 있는 데다 최대 광고주로 부상한 지방정부의 요구를 마냥 무시할 수 없는 현실 때문으로 분석된다.
지역신문사 같은 경우는 여러가지 중첩된 부분들이 많으니까 심지어는 출입기자를 바꾸는 경우도 있다고 들었거든요. 비엔날레 출입기자가 느닷없이 바뀌기도 하구요. 그러니까 대부분 출입기자를 보낼 때도 박○○ 시장하고 관계가 좋은 사람을 보내겠죠. 기자가 여러명이면 1진은 관계가 좋은 사람, 2진은 좀 피해다니면서 기사 쓸 사람으로요. (기자 8)
이런 상황에서 지역언론이 지방자치행정을 비판하는 일은 그리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행정의 옳고 그름, 주요 정책 방향의 적정성 등을 비판적 시각으로 기사화하는 것은 선출직이며 정치인인 자치단체장의 이해와 정면으로 배치될 수 있다. 지역언론 입장에서는 너무나 당연한 비판・감시 기능이지만 현실에서는 선출직 자치단체장에 대한 도전으로 비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자치단체장의 권한이 아무리 막강하다 해도 권위주의정권 시절이 아닌 이상 지역의 모든 언론사에 실질적인 지배력을 행사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지방정부와 이해관계가 상대적으로 중립적인 일부 지역언론과 이른바 대안언론 등은 행정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유지하고 있다. 자치단체장은 이런 상황에서 지역언론을 ‘영향력 행사가 가능한 언론’과 ‘영향력 행사가 어려운 언론’으로 나누어 대응 관리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영향력 행사가 가능한 언론’에는 일선 기자부터 간부, 사주에 이르기까지 주기적인 만남을 갖고, 협찬・광고 예산을 지원하는 등 이른바 돈독한 관계를 유지하려 한다. 또 언론사들 간의 갈등과 불만을 사전에 차단하기 위해 예산을 가급적 골고루 나눠주는 행태를 취한다.
워낙 이쪽에 언론사가 난립하다 보니까 광고주들이 무슨 광고를 하고 싶어도 일정 부분 액수는 차이가 나더라도 다 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있어요. 기관들도 그런 것 같아요. 뭐 좀 배분? 대형 행사와 관련해 어차피 광고를 해야 하는데 그 예산 범위 내에서 배분하는 그런 형태예요. (기자 7)
반면 ‘영향력 행사가 어려운 언론’에는 별다른 회유 노력을 기울이지 않을뿐더러 비판기사에 대해서도 무대응 전략을 편다. 영향력 행사가 어려운 언론의 비판기사에 공식 대응해 관심을 불러일으키기보다는 무시하는 것이 낫고 이들 언론사가 상대적으로 소수여서 지역의 주요 이슈로 확산되는 것을 차단할 수 있다는 판단으로 풀이된다. 지방정부는 나아가 영향력 행사가 어려운 언론에는 적극적으로 ‘채찍’까지 동원한다. 갖가지 회유에도 비판적 성향을 보이는 언론사에는 행정력을 동원해 모기업에 불이익을 주거나 재정상의 지원 철회라는 압박수단을 동원하기도 한다.
그때 모기업이 점검을 많이 당했죠. 위생 점검, 원산지 점검. 점포가 5개 구에 다 있기 때문에 구청들이 다 나서는데, 본점은 남구니까 남구가 나와야 하는데 시청에서 직접 점검한 경우도 있었어요. 실제 뒤져서 뭐 잡으려고 들면 안 잡힐 수 있겠어요? 지방정부에서는 정기점검이다 그렇게 얘기하지만 그 당시에는 누가 봐도 표적이다 이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죠. (기자 6)
지방정부의 무대응 전략은 영향력 행사가 어려운 언론이 취재 보도한 기사를 영향력 행사가 가능한 언론이 가급적 취급하지 않는 경향으로까지 이어진다. 객관적인 기사가치와 상식 수준의 판단으로는 타 언론사가 먼저 다뤘다 하더라도 충분히 후속보도가 가능한 사안인데도 영향력 행사가 가능한 언론의 지면에는 거의 반영되지 않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지역언론인 포섭과 향응
자치단체장은 지역언론의 기사 선택과 내용에 영향을 미치기 위해 지방 공기업과 산하기관의 인사권을 전략적으로 활용한다. 대부분의 광주·전남 지역 언론사가 심각한 경영난을 겪는 상황에서 안정적 일자리는 열악한 처우와 고용불안 등에 시달리는 기자들에게 매우 매력적인 제안이 아닐 수 없다. 자치단체장은 자신에게 지속적으로 우호적인 기사를 작성한 기자에게 ‘보상’의 명목으로 산하 공기업에 취업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2006년 당시 ‘박○○ 광주광역시장이 7개월가량 억울한 옥살이를 했고 그로 인한 시정 공백을 법원이 책임져야 한다’는 요지의 칼럼을 쓴 기자가 지방 공기업의 주요 자리로 옮겨간 것은 이러한 ‘보상’의 전형적 사례로 기자들 사이에서 회자된다. 일자리 제공 관행은 일선 기자뿐 아니라 언론사 간부들에게까지 확산되는 양상이며, 지역언론 간부의 잇단 공직·공기업 진출은 자치단체장의 힘이 얼마나 막강한지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1997년 IMF 이후 광주·전남 지역 기자들의 전직 현황을 조사한 연구 결과를 보면 50여명 이상이 지방정부나 산하 공기업, 대학 홍보실 등으로 자리를 옮긴 것으로 나타났다.9)
실제로 박○○ 시장의 힘이 어떻게 느껴지냐면 유력 지방신문의 편집국장을 지냈던 사람을 비서관으로 임명했잖아요. 이런 정도면 굉장히 상징적으로 언론에 영향력을 어느 정도 행사할 수 있는지 알 수 있죠. (기자 8)
이러한 취업기회 제공은 크게 두가지 효과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첫째, 우호적 관계의 기자들에게 일자리를 줘 관계를 더욱 돈독히 할 수 있고 다른 기자들에게 선례를 보여줌으로써 암묵적으로 동의와 협조를 이끌어낼 수 있다. 둘째, 자신에게 우호적인 기자들을 산하 주요 공기업 핵심 자리에 배치함으로써 자신의 의중대로 조직을 관리할 수 있고, 상황에 따라서는 자신의 정치적 기반을 강화하는 데 활용할 수 있다. 더욱이 지역언론 기자들을 곳곳에 포진해둠으로써 비판적 기사 작성을 최소화하는 등의 부수적인 효과까지 얻는다.
자치단체장은 일자리 제공 외에도 지역언론 기자, 간부 등과 우호적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갖가지 노력을 기울인다. 명절이나 휴가, 신문·방송의 날 등에 촌지를 제공하고 특히 광주광역시의 경우 출입기자 배우자의 생일에도 집으로 케이크를 배달해주는 등 세밀한 관리가 따른다. 일선 기자와 언론사 간부, 언론사주 등을 구분해 식사나 골프 모임 등을 가지며, 기자들이 지방정부의 주요 현안과 시책에 대해 긍정적 시각을 가질 수 있도록 실국별로 돌아가면서 거의 매일 간담회를 열어 기자들의 이해와 협조를 구한다. 이러한 간담회는 기자들을 설득하고 자발적인 동의를 이끌어내기 위한 지방정부의 조직적인 관리방법의 하나로 판단된다.
가장 흔한 것은 골프하는 거죠. 골프를 하고 끝나면 밥을 먹을 것이고, 명절을 앞두거나 그럴 때면 상품권이나 일정 정도의 떡값이 현재도 건네지는 것으로 알고 있어요. 국장은 국장대로 기자는 기자대로. 명절 때는 분명히 가고 있어요. (기자 3)
지방정부 주관의 골프 모임 등은 지역의 주요 현안을 자치단체의 시각으로 바라봐줄 것을 요청하는 음성적 채널이 될 수 있고, 무엇보다 지역의 여론을 왜곡할 수 있다는 점에서 비판받고 있다. 광주광역시가 2013년 하계 유니버시아드 대회 유치에 실패한 뒤 재도전에 나서기 위해 언론사 편집국장들과 골프 모임을 가진 것이 그 대표적 사례다. 당시 한 시민단체가 발표한 성명에는 지방정부와 지역언론의 음성적인 접촉과 그에 따른 우려의 시각이 그대로 투영되어 있다.
박○○ 시장은 U대회 도전 실패 이후 재도전 여부를 시민의 뜻에 따라 결정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박○○ 시장과 광주광역시는 재도전을 기정사실화하고 기고와 칼럼 등 간접적인 언론플레이를 통해 재도전이 시민의 의견인 양 여론몰이에 나서고 있다. (…)
보도・편집국장들이여, 광주광역시민들이 똑똑히 지켜보고 있다. 어떻게 언론인이 단체장의 골프 접대를 받을 수 있는지 묻고 싶다. 일부는 향응까지 받았다는 소문이다. 조금 불편하더라도 2~4년 정도 그 자리에 앉아 부릅뜬 눈으로 시정을 감시하고 견제해야 할 보도・편집 최고 책임자가 이런 하찮은 유혹에 빠져 자신의 본분을 망각하고 광주광역시장의 용비어천가를 불러대는 데 앞장선다면 광주 지역언론의 미래는 없다.10)
‘생존’에 목맨 지역언론의 순응주의
지방정부와 자치단체장의 교묘하고 음성적인 통제 시도에 지역언론은 어떻게 대응하고 있을까? 척박한 언론시장에서 살아남아야 한다는 ‘생존’의 법칙이 최우선 가치로 자리잡으면서 지역언론의 보도・편집에 구조적인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지방정부, 자치단체장과 불필요한 갈등과 마찰을 피하기 위해 비판적 논조를 회피하는 것뿐 아니라 아예 긍정적 기사 작성을 독려하는 쪽으로 편집방향을 선회하는 사례까지 나타난다.
수익 극대화를 위해 비판·감시 기능을 의도적으로 축소 또는 회피하는 것은 언론의 사명과 역할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사안이지만 정작 언론사 노동조합과 일선 기자들의 별다른 반발 없이 주도적인 분위기로 자리잡고 있다. 생존을 위해 수익을 추구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일선 기자들 사이에도 폭넓게 형성되어 있고, 언제든지 구조조정에 나설 수 있는 여건에서 경영진의 발언권이 어느 때보다 강화되어 있기 때문으로 판단된다.
자괴감을 느끼는 기자가 많아요. 쓰면 뭐하냐? 나가지도 않는데……. ○○○ 저서 표절 건의 경우 어떤 신문이 쓴 적 있어요? 술 먹는 자리에서 6명 정도 기자들을 만났는데 왜 조용하냐고 물어보니까 ‘몰라서 물어보는 것 아니죠?’라고 해요. 시장이 되기 전 사람도 1순위라고 못 쓰고 그러는데…… 비판기능이 약하다고 보지는 않아요. 데스크나 사주가 다 버리는거죠. 밑에서 못 쓰는 것이 아니라 데스크에 보고하면 항상 시각이 달라져요. 돈이 제일 무섭죠. (기자 4)
일부 지역언론사는 수익 극대화를 위해 지방정부와 적극적인 거래까지 시도하고 있다. 지방정부가 원하는 아이템과 시각으로 홍보성 기사를 보도해준 뒤 나중에 광고와 협찬을 받는 것이다. 이러한 거래 시도는 일부 방송사에서도 감지된다. 비판기능의 축소 명분으로 지역 현안을 가급적 대안 위주의 시각으로 살펴 지역발전에 공헌하겠다는 이른바 ‘지역발전 이데올로기’를 내세우지만 결과적으로는 비판적 시각과 기사 선택의 무력화로 이어지고 있다. 적정한 수준에서의 비판 기사는 허용되지만 일정한 선을 넘어서는 안된다는 암묵적 분위기가 형성되어 있는 것이다.
비판적인 기사는 개인적인 취재역량에서도 차이가 날 수 있겠지만 일단은 회사에서 뒷받침이 이뤄지지 않는 것 같아요. 가끔 주목받는 기사를 원하지만 그것들이 무조건 비판으로 흐르는 것은 거부되는 분위기가 느껴지죠. 지자체 같은 경우는 한없는 비판이 아니고 적당한 선에서 비판이 이뤄져요. 실질적으로 중요한 것은, 지자체가 영업의 대상이 되기도 하잖아요. (기자 14)
지역언론사가 항상 지방정부와 자치단체장에 대한 비판에 눈을 감거나 소극적인 것은 아니다. 자사 또는 모기업 이익에 도움이 된다고 판단되면 적극적으로 지역 현안에 대한 비판기사를 보도하기도 한다. 실제 광주·전남의 한 일간신문사는 2010년 3월 박○○ 전남지사의 최대 역점사업인 F1자동차 경주대회의 문제점을 잇따라 비중있게 보도했다. 이 대회는 개최의 적정성 여부에 대해 지속적으로 논란이 일고 있던 민감한 사안이었다. 이런 사정을 잘 알고 있는 지역신문사가 전라남도의 아킬레스건인 F1사업 전반에 대해 갑자기 비판의 칼날을 겨눈 것은 자사의 이해관계를 관철시키려는 의도로밖에 해석할 수 없다.
○○신문이 최근 F1 대회를 잇따라 보도했어요. 경주장 스탠드가 60여만원인데 시청권이 안좋다, F1 부채 등 재정운용 잘못에 대한 비판기사 등이에요. 모기업인 ○○이 영산강 정비사업 턴키 입찰에서 두번이나 떨어진 것이 이유가 아닌가 생각해요. 발주는 익산 지방국토관리청이 한다고 해도 전남도청이 도와야 할 수 있으니까요. 모든 신문사가 다 그래요. (기자 4)
이처럼 지역언론사 또는 모기업의 이해관계에 따라 기사의 방향 설정과 게재 여부가 결정되는 것은 일반적인 현상으로 관찰되고 있다. 때에 따라서는 비판적 기사 작성과 선택을 외면하다가, 반대로 지나치게 비판 일변도로 보도하기도 하는 것이다.
4. 다시 지방자치를 돌아보며
이 글은 우리 사회 전반의 민주화로 이른바 ‘언론통제’에 관한 연구가 드물어진 상황에서 지방정부가 지역언론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하려 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하겠다. 그러나 광주·전남 지역의 사례를 중심으로 씌어져 전국적인 상황으로 일반화하기 어렵고, 자치단체장의 성향에 따라 지역언론에 대한 통제 방식과 강도가 달라질 수 있다는 특수성을 반영하지 못했다는 한계가 있다.
또한 지방정부와 지역언론의 권력관계가 쌍방향적 특성이 있는데 전자의 후자에 대한 통제 양상의 분석에만 집중한 것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비록 피지배적 위치에 있지만 지역언론 또한 고유한 권력을 바탕으로 지방정부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부분도 있다. 굳이 언론의 ‘권력기관화’를 언급하지 않더라도, 상당수 지역언론사가 경영수지를 맞추기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난립하는 현실은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지방권력 구조가 특정 정당 중심으로 짜여 있고, 자치단체장이 막강한 권한을 휘두르고 있다는 점에서 다른 지역의 상황과 여건이 크게 다르지는 않을 것이다. 인터넷을 검색해보면, ‘존재의 이유 상실한 지방의회’ ‘지역사회를 죽이고 있는 기형적인 지방자치’ ‘호화·낭비 경쟁하는 지방청사들’ ‘제왕적 단체장’ 등 지방자치의 현실을 고발하는 신문기사 제목을 손쉽게 찾아볼 수 있다.11) 대구에서는 지방정부를 감시・견제해야 할 지역언론이 자치단체장을 감싸고 있다는 비판12)이 제기되고, 경남에서도 지방정부가 예산 편성과 행정권을 앞세워 지역언론과 이른바 ‘빅딜’을 추구하는 경향까지 나타나고 있다13)는 등의 지적도 잇따른다.
최근 광주·전남 지역에서는 박○○ 전 광주광역시장 재임 시절, 시장과 실국 업무추진비 신용카드로 광주의 한 백화점에서 7년간 26억원어치의 상품권을 구입한 사실이 확인돼 파문이 일고 있다. 백화점 측은 상품권 판매대금 일부를 받지 못했다며 광주광역시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고, 급기야 검찰 수사가 진행중이다.14) 더욱이 광주광역시가 다른 백화점에서도 상품권을 구입해 그 액수가 알려진 규모 이상이고, 또 상품권을 현금화했을 것이라는 보도까지 나오고 있다.
광주광역시가 업무추진비 신용카드로 구매한 백화점 상품권은 과연 누가, 어떻게 사용했을까? 의혹이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가운데 ‘백화점 상품권 구입 파문’은 상식과 법, 규정을 무시해버릴 수 있는 지방정부·자치단체장의 막강한 권한과 이를 제대로 감시·견제하기 어려운 우리 지방자치의 현실을 극명하게 드러내준다. 지방자치를 바로 세우기 위해 다양한 문제제기와 논의가 이뤄지고 있으나 자치단체장의 권한 집중을 완화하고, 지역언론의 안정적인 수익구조를 어떻게 마련해야 할지 우선 고민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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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남효윤 「언론의 보도자료 이용에 관한 연구: 지역신문의 재무상태·규모에 따른 차이를 중심으로」, 『한국언론학보』 49권 6호(2005) 233~57면.
2) 장호순 「한국신문의 취재원과 취재경로 분석」, 한국언론학회 2001년 가을 정기학술대회 발제문 189~93면.
3) 유재원 「지방 관료제에 대한 외부행위자들의 영향력 분석」, 『한국정책학회보』 11권 4호(2002) 23~45면.
4) 송창헌 「‘승진공방’ ○○○씨 “제왕적 권한 막아야”」, 뉴시스 2009.7.28.
5) 정성호 「<이제는 감시다 ②> 자치단체장은 ‘소(小)통령’」, 연합뉴스 2010.6.4.
6) 원성윤 「MBC PD수첩 박건식・이승준 PD 인터뷰: 지방의회, 일당독식하면 전혀 견제 못해」, PD저널 2010.1.12.
7) 김권 「‘시의원 예산 심사 거부’ 광주시 여성간부 신문 광고」, 동아일보 2007.11.27.
8) 행·의정감시연대 ‘전남 지자체 언론홍보비 집계 내역 발표’ 2010.5.14.
9) 한선·이오현 「지역신문기자의 작업문화와 정체성 형성에 대한 연구: 광주지역을 중심으로 한 질적 연구」, 『언론과사회』 18권 4호(2010) 2~36면.
10) 광주전남 민언련 성명서 「시장 골프접대 받은 보도·편집국장들은 부끄러움을 알라」, 2008.12.15.
11) 강준만 「지방자치선거가 무서워지는 이유」, 한겨레 2009.12.6.
12) 허미옥 「지역언론, 지역민주화의 걸림돌: 대구지역의 경우」, 『시민과 세계』 제9호(2006) 81~99면.
13) 한중기 「지방정부와 지역언론 간의 갈등에 관한 연구」, 경남대 대학원 석사학위 논문(2009).
14) 윤현석·김경인 「광주시 의문의 26억 상품권 3대 의혹」, 광주일보 2012.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