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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평
 

김진호 『시민 K, 교회를 나가다』, 현암사 2012

한국 개신교, 왜 이렇게 됐나

 

 

신윤동욱 申尹東旭

『한겨레21』 기자 syuk@hani.co.kr

 

 

2108“야, 한국 개신교가 이렇게 된 것도 다 일본 때문이래.” 김진호(金鎭虎)3시대그리스도연구소 연구실장의 『시민 K, 교회를 나가다』를 읽다가 옆에 앉은 회사 후배에게 건넨 말이다. 옆에 앉은 이들은 한국 교회가 ‘이렇게’ 된 것이 대략 미국 개신교 근본주의의 영향이라는 상식을 가진 이들이었으므로 당연히 질문이 돌아왔다. “어? 그래. 왜?” “책에 ‘1904년 러일전쟁 때, 일본군의 진군 루트였던 평안도 지역에서 군대 폭력을 피해 많은 이들이 교회로 들어오게 되는 것이 이 부흥운동의 전사(前史)였음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고 나오는군.” 평소 ‘다 일본 탓’ 놀이를 하던 이들과 농담처럼 주고받은 대화로, 책의 핵심 내용과는 좀 떨어진 것이지만 책의 질문과 크게 다르지 않은 이야기였다. 한국 교회는 왜 ‘이렇게’ 되었나? 저자는 ‘이렇게’를 네가지로 요약한다. 배타성, 성장지상주의, 극우반공, 친미성.

사실 깜짝 놀랄 분석은 아니다. 2000년대 서울광장에 친미반공 집회가 등장한 이후로 한국 개신교의 네가지 특성은 여러모로 드러나고 분석돼왔다. 이 책의 미덕은 그동안 간단하게 요약돼온 한국 개신교의 특성을 실증적 자료와 전사(全史)적 분석을 통해 밝혀낸 것이다. 앞서 얘기한 농담도 농담만은 아닌 것이, 서북지역 교회에서 잉태된 한국 개신교의 특성이 러일전쟁과 관련이 있다는 시원적 발견에 가닿기 때문이다. 이후 한국 개신교의 성장서사는, 1905년 평양을 중심으로 서북지역 개신교 대부흥운동이 있었다는 것, 이들이 ‘공산주의를 피해’ 남한으로 내려와 개신교 주류로 자리잡은 후 그 반공주의 특성이 21세기 시대상황과 맞물리면서 극우반공, 친미성으로 드러났다는 것으로 정리할 수 있다. 이렇게 한국 교회의 어제와 오늘을 시계에 따라 분석하는 『시민 K 교회를 나가다』는 우리가 잘 몰랐던 혹은 어렴풋이 알았던 한국 개신교의 성장을 한국사회의 발전과 관련지어 정치하게 분석한다. 서술형식은 다르지만, 한국에 살면서 개신교 ‘때문에’ 드는 몇가지 질문에 이 책은 충실하게 답한다.

순복음교회는 왜 저럴까? 순복음교회 이전의 대형교회인 영락교회를 먼저 살펴보자. 대표적 ‘월남자’인 한경직(韓景職) 목사가 이끄는 영락교회는 미 군정당국, 미국 교회사회와 연계가 단단했다. 1950년대 당시 반공집단의 근거지가 되기도 했던 영락교회는 국가조찬기도회, 군종(軍宗)제도 등을 주도하며 성장한다. 대형교회의 첫 유형이었던 영락교회 모델은 이후 좀더 강력한 한국적 모델로 대체된다. 1970년대 국가총동원체제 시기에 성장한 순복음교회는 박정희체제의 ‘교회판’이다. 카리스마적 지도자의 ‘영도’ 아래 성장한 두 체제는 모든 자원을 성장을 위해 동원했다는 점에서 유사하다. 순복음교회도 박정희체제처럼 이농민의 고통을 딛고 성장했으나 성공한 뒤에는 그들의 고통을 외면했다. 『시민 K, 교회를 나가다』는 순복음교회의 성장에 대해 더 깊숙히 들어가 새마을운동의 지도자와 유사했던 구역장 제도 등을 실증적으로 분석한다.

사실 이 책의 미덕은 성공한 역사를 분석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실패한 역사의 이면에 눈길을 주는 것에 있다. 조용기(趙鏞基) 목사 이전에 ‘기도원적 부흥운동’의 사례로 나운몽(羅雲夢, 1914~2009)의 용문산기도원 등이 언급된다. 극한의 열정과 치유의 은사로 1950~60년대 이농민의 아픔을 달랬던 나운몽의 용문산기도원 등은 ‘이단의 역사’로 지워져버렸다. 그러나 저자는 이들의 역사를 “전후 한국사회 대중의 고통과 갈망 사이에 깊이 파고 들었”다고 평가한다. 비슷한 맥락에서 등장한 순복음교회가 제도화되면서 오히려 활력을 잃어버린 반면에 이들은 제도의 장치가 순화하지 못하는 열정 때문에 사라진 것이다. 이렇게 『시민 K, 교회에 나가다』는 다시 쓰는 한국 개신교 교회사이기도 하다.

자, 그러면 서민의 종교였던 개신교가 왜 중산층의 것이 되었는가. 저자는 ‘미국식 번영신학’을 한국 대형교회가 수용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개인적 풍요를 신앙의 결과로 여기는 번영신학과의 결합을 통해 한국 대형교회는 치열한 경쟁에서 승자로 남은 중산층 교인들의 마음을 위무했다. 강남의 대형교회를 중심으로 풍요를 정당화하는 수단으로 작동한 번영신학은 한국 교회의 친미적 성격을 더욱 강화하는 결과를 낳았다. 지나치게 성공을 찬양하는 번영신학이 판치는 곳에 의심이 나타나기 마련이다. 이제 대형교회를 중심으로 과시와 소비보다는 절제와 검약이 우선하는 ‘웰빙 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더불어 ‘먼곳’의 고통에서 위안을 찾는 흐름도 등장한다. 방학이나 휴가를 이용해 ‘안전이 충분히 보장되지 않는’ 외국에 선교를 나가는 것으로 자신의 신앙을 확인하는 ‘단기 선교’ 등을 통해 ‘착한 (기독)청년’ 신화가 태어나는 것이다. 여기서 2004년 이라크에서 김선일(金鮮一)씨가 희생된 분당 샘물교회의 비극이 왜 일어났는지 이해하게 된다.

이 책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계기로 분석되는 통계가 있다. 2005년 인구쎈서스 따르면 국내 개신교 신자는 860여만명으로, 1995년보다 신자 수가 1.4% 감소했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 통계가 불러온 후폭풍이 개신교의 좌충우돌을 낳은 일차 원인이라고 분석한다. 더이상 불가능한 미션인 국내선교 대신에 해외선교가 절대선이 되고, 위축되는 교세를 만회하기 위해 직접적인 정치세력화가 시도된다. 더구나 그 지도자들은 교세 확장이 한계에 부딪힌 ‘민주화 이후’ 시기에 주목한다. 오랜 시기를 거쳐 타자에 대한 배타성을 특징으로 가지게 된 한국 주류 개신교가 새로운 타성의 타자로 ‘민주화세력’을 지목했다. 게다가 사회 곳곳에선 민주화의 영향으로 탈영웅화가 진행되었으나 교회에는 카리스마적 지도자가 건재하다. 이제 개신교는 사회와 유리된 ‘이상한 집단’이 되어버렸고, 신을 찾는 이들의 대안이 되지 못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이렇게 이 책은 근대화의 상징으로 ‘교회에’ 나갔던 한국의 시민이 ‘교회를’ 나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시민은 교회를 나갔으나 신을 찾는 열정은 사그라들지 않는다. 오히려 경쟁의 광풍이 몰아치는 신자유주의 시대, 마음의 의지처를 찾는 이들이 늘고 있다. 저자는 ‘촛불집회’를 이런 열정이 투영된 ‘시민종교’의 하나라고 분석한다. 그렇다면 대안은 무엇인가? 다시 교회가 이들의 안식처가 되기 위해서는 ‘작은 교회’로 거듭나야 한다고 제안한다. ‘작은 교회’는 크기가 작은 교회가 아니라 ‘사회적 영성’을 회복한 교회다. “사회적 영성은 그 영이 교회 안에 갇혀 있는 것이 아니라 세상 속 구석구석에서 두루 현존하고 있으며, 그 속에서 영이 된 신이 낯선 이들(타자)과 함께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함축하는 표현”이라고 저자는 책의 끝에 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