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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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평

 

이영숙 『식탁 위의 세계사』 창비 2012

김서윤 『토요일의 심리 클럽』 창비 2011

우리 시대 청소년 도서가 지녀야 할 덕목

 

 

장동석 張東碩

북칼럼니스트 9744944@hanmail.net

 

 

157_496소년은 그날을 여전히 생생하게 기억한다. 만화나 옛날이야기를 통해 간간이 들었던 『삼국지』를 아버지 서가에서 모두 빼내 읽었던 그날, 열두살 소년은 새로운 세상으로 빠져들었다. 동화의 세계에서 빠져나와 진정한 ‘텍스트’의 세계로 들어선 것이다. 서울 변두리 아버지의 단골 서점을 하루가 멀다 하고 드나들었고, 그곳에서 흔히 말하는 청소년 필독서를 하나둘 섭렵했다. 말이 청소년 필독서지, 하나같이 두툼한 ‘성인용’(?) 책들이었다. 그랬다. 딱히 청소년 도서라는 게 없었던 그 시절에는 어쩔 수 없이 어른들과 같은 책을 읽어야 했다.

시대는 달라졌다. 요즘 청소년들은 더이상 어른들의 책을 읽지 않아도 된다. 청소년의 정서와 감성, 지적 발달 수준에 맞는 청소년 도서가 어느덧 서점가의 기대주로 자라났기 때문이다. 장르도 다양해서 문학은 물론 역사와 교양 분야까지 없는 게 없다. 심지어, 진중한 텍스트에 주눅 들었던 성인들이 핵심을 잘 요약 정리한 청소년 도서를 찾기도 한다. 청소년 도서는 이제 분야는 물론 연령을 불문하고 사랑받는 장르가 되었다. 몇몇 출판사들이 주목할 만한 책들도 여럿 선보였다. 일일이 열거하는 것은 지면관계상 어려우니, 이제 본론으로 가보자.

『식탁 위의 세계사』(제2회 창비청소년도서상 수상작)를 처음 접한 것은 사실 책 출간 전이었다. 창비청소년도서상의 심사위원을 맡았던 한 분이 심사용 원고 몇편을 보여주며 나의 의견을 물었다. 『식탁 위의 세계사』는 한마디로, 흥미로웠다. 조곤조곤한 말투도 정겨웠고, 음식 재료 하나를 두고 시공간을 넘나드는 박식함도 매력적이었다. 후추·소금·차·옥수수 등에 얽힌 세계사의 한 자락은 드문드문 알고 있었지만, 감자·바나나·닭고기·포도에도 이렇게 많은 사연이 숨어 있었는지 예전에는 미처 몰랐다.

알다시피 우리가 교실에서 배운 역사는 언제나 중요한 사건, 예를 들면 전쟁이나 혁명 등을 중심으로만 기술되어 있다. 1392년 조선 건국, 1492년 아메리카 대륙 발견, 1592년 임진왜란만 기억할 뿐, 그것들을 연결하는 유기적인 역사 서술에는 소홀한 것이 우리의 교육이다. 그런 점에서 『식탁 위의 세계사』는 ‘연대(年)’라는 뼈대로만 기억되는 우리의 역사인식에 ‘속살’을 채워준다고 할 수 있다.

어느 누가 흉년을 이기는 구황작물인 감자를 “악마의 과일”이나 “돼지 사료”로 생각했을까. 하지만 중세 유럽에서는 “컴컴한 땅속에서 자라는 음침한” 식물로 홀대받았다. 누가 또 알았으랴. 그 음험한 감자로 인해 프로이센은 7년전쟁에서 승리했고, 영국과 아일랜드는 오랜 반목에 빠지게 되었다는 사실을.

물론 『식탁 위의 세계사』가 미덕만 넘치는 책은 아니다. 음식과 역사적 사실을 씨줄과 날줄 삼아 흥미로운 세계사를 펼쳐 보이지만, 아무래도 역사에 대한 거시적인 안목을 주기에는 역부족이다. 물론 고작 190면의 청소년 도서에서 이를 기대하는 것은 옳지 않은 처사다. 그래도 조금만 신경을 썼다면, 씨줄과 날줄 사이를 조금 더 촘촘하게 채웠을 수도 있었으리라 생각해본다. 그런데, 아뿔싸! 서문을 다시 찬찬히 보니 저자가 이 책의 역할을 명확히 규정한 대목이 있다. “친근한 열가지의 먹을거리를 연결고리로 삼았으니, 가벼운 마음으로 이야기를 음미해주세요. 편안히 듣다 보면 조금씩 역사에 관한 지식이 쌓이게 될 거예요. 그러다 보면 여러분 스스로도 세계사에 대해 좀더 찾아보고 싶은 마음이 생기지 않을까요?”

『토요일의 심리 클럽』은 한동안 책상 한켠에 방치되어 있었다. 요즘 흘러넘치는 심리학 관련서, 즉 자기계발이 교묘하게 가미된 책들에 대한 나름의 선입견 때문이었다. 『토요일의 심리 클럽』을 읽은 것은 순전히 『식탁 위의 세계사』 덕분이다. 창비청소년도서상의 첫번째 주인공이 궁금해졌기 때문이다.

단순한 립서비스가 아니라 『토요일의 심리 클럽』도 나름 물건이었다. 그렇게 생각한 이유는 간단하다. 현장, 즉 요즘 학교가 처한 현실을 가감없이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작품 속의 ‘심리 실험반’ 공고는 모집 대상의 하나로 “이렇다 할 꿈이 없는 1인”을 꼽았다. 어쩌면 이토록 우리 현실을 정확하게 짚었을까. 대한민국 교실에서 누군가 미래를 꿈꾸고 있다면 그건 거짓말이다. 새벽부터 다음날 새벽까지 학교와 학원을 오가는 우리네 청소년들에게 꿈이 다 무엇이더냐. 오직 꿈이 있다면 용도 폐기만 기다리고 있는 대학, 그것도 일류대학에 가는 것뿐이다.

흥미로운 점은, 다소 도식적이라고 느낄 수도 있지만 ‘토요일의 심리 클럽’ 멤버들이 성장한다는 사실이다. 앞서 언급한 ‘자기계발이 교묘하게 가미된’ 심리학 책들은 삶의 변화를 유도하는 것이 아니라 지나치게 강요한다. 하지만 『토요일의 심리 클럽』은, 말 그대로 대화와 소통이 어떻게 청소년들의 마음을 열게 하는지 자연스럽게 보여준다.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성장하는 게 청소년인데, 그게 무슨 놀랄 만한 일이냐고? 우리 시대의 청소년들은 사춘기를 겪지 못한다. 입시에 치여 사춘기는커녕 잠시의 여유도 누릴 수 없다. 대학을 간다고 성장하는 것은 아니다. 입시를 통과해도 대학의 낭만이라는 호사를 누려볼 길이 없다. 천정부지로 치솟는 등록금도 문제지만, 졸업하고도 갈 곳이 없다. 그 어느 때보다 감수성이 예민한 10대와 20대를, 성장통 없이 지날 수밖에 없는 것이다.

20대에서 30대, 40대로 이어지는 출판계의 ‘에이지(age) 타깃’ 도서들은, 실상 성장통을 제대로 겪지 못해 태어난, 기형적인 산물이라고 해야 할지도 모른다. 심란한 세대의 꿈과 고민을 오롯이 보여준 『토요일의 심리 클럽』은 어쩌면, 청소년이 아닌 ‘어른 아이’를 위한 성인용(?) 책인지도 모른다.

『삼국지』을 읽던 열두살 소년에게 책방은 마치 보물창고 같은 곳이었다. 그곳에서 나름 고민을 해결했고, 세상을 만났고, 꿈을 꾸었다. 그때도 청소년 도서가 있었다면 더 많은 꿈을 꾸었을까. 요즘 청소년들은 이 보물창고와도 같은 책방을 수시로 드나들 수 없다는 현실이, 다만 아쉬울 뿐이다.

장동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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