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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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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정은 黃貞殷

1976년 서울 출생. 2005년 경향신문 신춘문예로 등단. 소설집 『일곱시 삼십이분 코끼리열차』 『파씨의 입문』, 장편소설 『百의 그림자』가 있음. aamudo@empal.com

 

 

 

장편연재 2

소라나나나기

 

 

娜娜

 

나나입니다.

말해보겠습니다.

 

나나(娜娜)라고 씁니다.

앞글자도 뒷글자도 나(). 나(),라는 글자가 두번이나 반복되어서 娜娜. 앞으로도 뒤로도 아름답다는 뜻입니다. 이런 이름을 지어준 사람은 아홉 가운데 여덟의 확률로 애자입니다. 애자답다,라는 것은 소라의 의견이고 애자가 지나치다,라는 것이 나나로서 당사자인 나의 생각입니다. 애자의 함량이 지나치게 높은 이름인 것입니다. 어쨌거나 나는 나라고 말해도 나. 나나라고 말해도 나. 나나라는 이름은 나나라고 말하기에 좋습니다. 소연이라는 사람이 스스로를 소연이는, 소연이가,라고 말하거나, 연숙이라는 사람이 스스로를 연숙이가,라고 말하는 것보다는 매끄러운 어감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따금 나나라고 자칭합니다. 자의식이 굉장한 사람이나 자신을 자신의 이름으로 부르는 거야,라는 새침한 지적을 들은 적이 있지만 그 정도의 자의식을 불쾌하게 여기고 지적하는 자의식도 상당히 굉장하다,라는 것이 나나의 생각입니다. 나는 나나. 나나는 나. 좋아하는 것보다도 싫어하는 것보다도 좋아하지 않는 것이 잔뜩 있습니다. 좋아하는 것도 싫어하는 것도 결국은 비등한 에너지의 소요. 이것저것을 좋아하는 것이나 싫어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좋아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그런 것을 잔뜩 만들어두었습니다. 복숭아를 좋아하지 않고 사과를 좋아하지 않고 겨울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눈도 비도 좋아하지 않습니다. 고양이도 개도 좋아하지 않고 부엉이도 좋아하지 않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어른을 좋아하지 않았고 아이도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어른도 아이도 좋아하지 않는 것은 현재도 마찬가지인데, 임산부입니다. 임산부,라고 말하자니 어색하네. 임산부의 부는 부(). 나는 나나일 뿐 아직은 며느리도 아내도 아니라서 어색하게 여겨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자꾸 말하면 익숙해지나, 임산부. 임산부,라고 자꾸 적고 보면 어떨까 싶어서 임산부,라고 다시 적어보지만 여전히 어색하네. 어떻게 보일지는 몰라도 나는 지금 어색합니다. 어색하고 불안합니다. 경계하고 있습니다. 경계할 때는 나나라고 말합니다. 쓸쓸할 때도 나나라고 말합니다. 쓸쓸하고 불안할수록 나나가 늘어서 나나나나. 나나에게 나나라는 이름을 붙여준 애자는 본인의 이름 그대로 사랑으로 가득하고 사랑으로 넘쳐서 사랑뿐이던 사람이었습니다. 사랑뿐이던 애자는 그 사랑을 잃자 껍질만 남은 묘한 것이 되어버렸습니다.

 

소라와 나의 아버지인 금주씨가 살아 있을 적에, 나는 정말로 묘한 것을 본 적이 있습니다.

고아로 자란 애자가 어느 해인지 부모의 제사상을 마련하고 제사를 올린 적이 있었습니다. 여름이었다고 기억합니다. 그 무렵 애자는 어떤 사람이 꿈에 보인다고 자주 말하곤 했습니다. 모르는 사람으로, 머리맡에 가만히 앉아 있기도 하고 마가 좋냐 솔이 좋냐, 뜻 모를 말을 묻기도 하고 으그그그 신음하기도 한다는데, 그 사람이 실은 죽은 사람 같다는 것이었습니다. 아무래도 심상하지 않다며 어딘가의 점집으로 점을 보러 갔던 애자는 보통 때와 다름없는 얼굴로 돌아와서는 부모 가운데 오래전에 객사한 사람이 있대,라고 말했습니다. 제사상을 받지 못해 목이 말라 자꾸 찾아오는 거래.

제사상은 소규모로 애자와 금주씨가 사용하는 방에 마련되었습니다. 가장 넓은 벽에 지방문이 적힌 종이를 붙여두고 그 아래 놓인 상에 떡과 배와 곡주를 담은 그릇을 놓은 뒤 금주씨부터 절을 올렸습니다. 지방문은 금주씨의 글씨로 적혀 있었는데 먹을 담뿍 써서 글자 주변으로 종이가 우글우글하게 울어 있었습니다. 귀신처럼 고불고불한 저 글자들을 뭐라고 읽느냐고 묻자 금주씨는 현고학생부군신위, 현비유인모씨신위,라고 읽어주었습니다. 왼쪽은 나나의 할아버지, 오른쪽은 나나의 할머니,라고 덧붙인 뒤, 산 사람에겐 송구하지만 돌아가신 것이 어느 쪽인지 모르니까 둘 다 적었어,라고 금주씨는 태연하게 말했습니다. 그가 가르쳐주는 대로 소라와 내가 납죽납죽 절을 올리고 나자 애자의 차례가 되었습니다. 두번째 절을 마친 뒤에도 애자는 엎드린 채 가만히 있었습니다. 엉덩이 아래 하얀 발바닥을 드러낸 채로 한참이나 다만 엎드려 있었으므로 소라와 나는 안절부절못했지만 금주씨는 애자를 내버려두고 있었습니다.

보름이었다고 기억합니다.

절 올리기를 마친 뒤에는 죽은 사람이 편하게 먹을 수 있도록 상이 차려진 방을 비우고 거실로 나와 수박을 먹었습니다. 애자는 멀쩡한 모습으로 칼을 손에 쥐고 먹기 좋은 두께로 수박을 잘랐습니다. 애자의 칼질로 빨갛게 펼쳐진 수박은 씨 주변까지 달게 익은 것이었습니다. 소라와 둘이서 가장 맛 좋은 가운데 부분을 쟁탈하듯 먹느라고 상당한 수박을 먹은 나는 오줌을 누려고 식구들 곁을 떠나 욕실로 향했습니다. 가는 길에 보니 제사상이 놓인 방으로 들어가는 문이 조금 열려 있었습니다. 나는 별다른 생각 없이 그 틈으로 방 안을 엿보았고, 촛농과 조그만 불꽃 냄새, 종이 냄새가 은근하게 풍겨나오는 문틈으로 접시에 놓인 배를 만지는 손을 보았습니다. 어떤 손인지를 파악해볼 겨를도 없이 짧은 순간이었습니다. 누군가 있네, 하고 생각한 뒤로는 그 문 앞을 떠나 욕실에서 오줌을 누고 식구들이 모인 자리로 돌아가 수박을 마저 먹었습니다. 보고도 뭘 보았는지 몰라 문틈으로 본 것은 금세 잊었습니다. 비밀이고 뭐고 곧장 잊어버려서 나만 아는 일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그 손의 사람,이라고 짐작되는 사람의 꿈을 꾼 것은 바로 오늘 아침의 일입니다.

눈을 뜨고 보니 방 안이 몹시 어두웠고 머리맡엔 큰 창이 있었습니다. 현실의 내 방엔 창이 있어도 그 정도의 크기는 아니라서 아 이것은 꿈이로구나, 생각했습니다. 왼쪽에서 오른쪽 방향으로 오르는 계단이 창밖에 있었고 전에 본 적이 없는 할머니가 그 계단에 웅크리고 앉아 방 안을 들여다보고 있었습니다. 위쪽 어딘가에 푸르스름한 광원이 있어, 숱 적은 정수리와 동그스름한 어깨로 불빛을 받으며 잠자코 앉은 모습이었습니다. 할머니는 서글픈 기색으로 방을 들여다보고 있다가 그늘진 입을 우물우물 움직여 애자는 어디에 있니,라고 물었습니다. 애자는 요양원에 있어,라고 대답하자 조금 더 서글픈 기색이 되어서는 데리고 와,라고 말했습니다. 그 손의 사람이로구나, 하고 꿈속에서 생각했습니다. 오래전 나나가 곧바로 잊었던 그 손의 사람, 할머니로구나. 애자의 엄마로구나.

그렇지 않을까?

 

그런 꿈을 꾸었다고 소라에게 말한 뒤 그렇지 않을까,라고 묻고 싶지만 물을 수 없습니다. 최근에는 소라와 거의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소라도 나나와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소라와 나, 둘 중에 어느 쪽이 더 이야기하고 싶지 않은 쪽인지는 나도 모르겠습니다. 소라에게 심한 말을 해버린 것은 내 쪽이었습니다. 징그럽다고 말해버렸으니까. 소라는 충격을 받은 얼굴이었습니다. 충격을 받아서 하얗게 질리고 말았는데 충격을 받을 것이 없었다면 그 정도의 얼굴이 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제대로 건드렸으므로 제대로 충격을 받고 만 것이다, 그렇게 여기고 있습니다. 소라는 교활해. 소라는 연약해. 연약하고 교활해. 이윽고 엄마가 될 몸 같은 것, 실은 섬뜩하다고 여기고 있으면서 친절하게 대해주었으니까. 이것저것을 조금 더 생각해보려고 하지 않고 모두가 하는 대로, 텔레비전에서 본 대로, 마음도 무엇도 없는 친절을 베풀었으니까.

엉망진창.

소라는 이따금 애자를 보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언제부터였는지 모르게 눈치를 챘을 때는 이미 그렇게 되어 있었습니다. 애자가 같은 공간에 있다는 것을 뒤늦게 알아채고 앗 깜짝이야, 하고 놀라는 상황을 우습게 여기고 함께 웃으며 넘어간 것도 수차례, 이윽고 더는 웃을 수 없는 상황에 이르고 말았던 시점은 삼년 전이었습니다.

그해 가을에서 겨울로 넘어가는 환절기에 나는 지독한 감기에 걸려 나흘이나 회사를 결근한 적이 있었습니다. 열이 올랐다가 내리기를 반복하고 끔찍한 오한에 근육통을 앓느라고 머리며 머릿속이며 녹진녹진, 녹아내리는 듯한 나날을 보내던 참이었습니다. 애자마저 걱정이 되었는지 그날은 내 방에 머물고 있었습니다. 다른 날과 같이 저녁에 퇴근해서 돌아온 소라는 그 방으로 들어와 좀 어떠냐고 물으며 이부자리 곁에 앉았고 가방을 뒤져 바나나 푸딩을 꺼내놓았습니다. 근처 수제과자점에서 파는 것으로 플라스틱 컵에 담긴 노란 푸딩의 맛이 거의 솔직한 바나나 맛이라서 소라도 나도 자주 사먹곤 했던 푸딩이었습니다. 소라는 하루 종일 신고 다녀 먼지가 앉은 스타킹을 신은 다리를 뻗고 푸딩 컵을 하나씩 꺼내 자기 스커트 위에 올렸습니다. 푸딩 컵 포장을 뜯어 플라스틱 스푼과 함께 내 손에 쥐여주고 이건 애자 것, 하며 한개를 바닥에 내려놓은 뒤 자기 몫의 푸딩을 먹기 시작했습니다. 평소 음식을 먹는 모습 그대로, 노랗고 불투명한 푸딩 표면을 내려다보며 골똘하고 성실하게 먹고 있었습니다. 열에 시달려 가물가물해진 눈으로 그 모습을 보고 있다가 애자도 줘, 하고 말하자 소라는 바나나 푸딩을 한 숟가락 떠먹으며 방에 없던데,라고 말했습니다.

여기 있잖아.

그렇게 말하자 숟가락을 입에 문 채로 눈을 동그랗게 뜨고 방 안을 두리번거렸습니다. 애자가 내 발치 쪽에 앉아 있었는데도 말입니다. 애자가 앉은 방향을 보고도 보지 못하고 어리둥절한 얼굴을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애자는 내가 덮고 있는 이불자락 귀퉁이를 깔고 앉은 모습으로, 자신을 보지 못하는 소라를 잠자코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열 때문에 맺힌 눈물로 그렁그렁해진 내 눈에는 소라도 애자도 모두, 비등한 정도로 섬뜩하게 여겨진 순간이었습니다.

 

누군가가 자신을 보지 못하거나 보거나 애자에게는 사실 상관없는 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자신을 보지 못하거나 보거나.

그 사람에게 그게 무슨 상관이야.

금주씨가 죽은 시점에 애자는 이미 죽은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을 할 때가 있습니다.

애자는 오래전에 죽으려고 한 적이 있습니다.

 

소라가 열한살이고 내가 열살이었을 때, 그때까지 금주씨와 살던 집에서 짐을 꾸려 나온 직후였습니다. 이제까지 살아온 집을 떠나 이제부터 살 집에 당도한 뒤, 빌린 수레를 돌려주고 오라는 애자의 부탁을 받고 소라와 나는 둘이서 집을 나섰습니다. 넝마주이의 수레는 바닥에 합판을 대고 때운 흔적이 있는 낡은 것이었고 풀지 못한 노끈 매듭이 여기저기 남아 있었습니다. 수레의 손잡이는 닳고 닳은 고무줄로 친친 감겨 부드러웠습니다. 처음엔 둘이서 나란히 이 손잡이에 매달리듯 밀고 끌며 걷다가 나중엔 놀이 삼아 번갈아가며 수레를 탔습니다. 서른걸음마다 위치를 바꾸고 입장을 바꿉니다. 그런 규칙으로 이마며 관자놀이에 송골송골 땀이 맺힐 때까지 수레를 밀거나 수레에 타거나 하며 이동했습니다. 서른번의 걸음 뒤에 내가 탈 차례가 되면 냉큼 수레에 오른 뒤 엎드렸습니다. 거북이 등딱지에 얹힌 토끼가 되어서, 용궁으로 내려간다,라고 나는 생각했습니다. 이대로 실려가면 간을 먹히겠지.

하지만 거북이가 너무 빨라 도저히 뛰어내릴 수 없고나.

억울하고나.

이제 곧 먹히겠지, 간을, 먹히겠지, 하고 생각하자 슬프고 슬퍼서, 눈물이 핑 돈 채로 수레 바닥에 웅크리고 있다가, 순번을 바꾸어서 거북이가 되면 이번엔 간을 내놓아라,라는 입장이 되어서 씩씩하게 수레를 끌고 가는 것입니다. 토끼야, 토끼야, 간을 내놓아라, 네 간을 먹고 용왕님이 낫는다, 내놓아라 그 간, 간을 내놓아라. 그렇게 살던 집에 당도하고 보니 문이 열려 있었습니다. 가슴까지 올라오는 기묘한 바지를 입고 더러운 모자를 쓴 남자가 그 집에 들어가 있었습니다. 소라는 단박에 긴장한 얼굴이 되었습니다. 입은 조그맣게 다물어졌고 땀이 밴 목은 긴장으로 꼿꼿해졌습니다. 그릇과 도구를 살펴보던 남자는 소라와 나를 보고도 놀라지 않고 느긋하게 우리 집에서 우리 식구들의 밥그릇과 숟가락을 챙기고 있었습니다. 불안해진 나는 가자고 조르며 소라의 팔에 달라붙었지만 소라는 홀린 듯 안으로 들어갔다가 이윽고 창백해진 채로 그 집을 빠져나왔습니다. 그 집을 등지자마자 소라는 빠르게 걷기 시작했습니다. 빨리, 빨리,라고 나를 재촉하며 달리듯 걸었습니다. 나는 좀처럼 그 속도를 따라잡지 못했습니다. 소라의 등에 눈을 고정시키고 열심히 다리를 움직이는데도 뒤처집니다. 그렇게 자꾸 나는 뒤처지고 나나는 뒤처지고 나는 뒤처지고 나나도 뒤처지기를 반복해서 나나는 외롭습니다. 다리가 몹시 뻣뻣해서 발을 내밀 때마다 바로 다음 순간 넘어질 것 같은데 한번이라도 넘어지면 그 길에 고스란히 남겨질 것 같아 무섭습니다. 언니야,라고 불러도 소라는 돌아보지 않습니다. 큰일이야, 큰일이야,라고 말하는 듯한 조그만 등을 보이며 빠르게 걸어갈 뿐입니다.

언니야.

언니야.

언니야,라고 불러도 돌아봐주지 않는다면 언니는 언니가 아닌 거야,라고 나나는 생각합니다. 소라야,라고 불러줄 테다. 다시는 언니야,라고 불러주지 않을 테다.

집으로 돌아와 보니 애자는 우리가 수레를 돌려주러 나설 때 보았던 것과 다름없는 모습으로 누워 있었습니다. 현관에서 내던지듯 신발을 벗고 애자의 곁으로 돌아간 소라는 애자의 곁에 납죽 앉았습니다. 조금 전까지 엄청난 기세로 걷느라고 거칠어진 호흡을 감추려는 듯 입을 다물고 어깨로 숨을 쉬면서, 꼭 쥔 주먹을 넓적다리에 올린 채로 애자를 노려보고 있었습니다. 땀으로 젖은 머리카락이 목에 찰싹 들러붙은 모습이었습니다. 소라로부터 풍겨오는 미지근한 소금 냄새를 맡으며 애자를 내려다보고 있는 동안 나는 알게 되었습니다. 그냥 알게 되었습니다. 죽으려고 했구나.

소라와 나나를 내보내고 애자는 죽으려고 했구나.

 

이미 죽었구나.

수십번 수백번은 죽어버렸구나.

저렇게 누워서, 여러가닥으로 찢어져서.

그런 것을 그냥 알게 된 어린 시절이었던 것입니다.

 

그런 시절이라도 그 시절에 그 집에서 나기 오라버니를 만났으므로 그 시절에 관한 인상이 모조리 나쁜 것만은 아닙니다.

우리 아버지도 죽었어,라고 나기 오라버니는 말했습니다.

그 이야기를 들은 이후로 나는 마음이 편안해져 나기 오라버니를 더는 경계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런 이야기로 마음의 평안을 얻고 친밀해지는 꼬맹이라니, 어머 지금 생각하고 보면 나는 뭔가 징그럽고도 충실한 꼬맹이였네. 하여간 소라와 나기 오라버니가 석달 간격으로 열두살이 되었던 해의 일이라고 기억합니다. 우리 아버지도 죽었어,라고 나기 오라버니는 말했습니다.

겨울에 사과궤짝을 나르다가 쓰러졌대. 시장에서 어른들이 봤는데 그냥 넘어지는 것처럼 쓰러져서 죽었대. 넘어질 때 궤짝을 실은 지게 아래 깔려가지고 목이 부러졌을지도 몰라서 어른들이 건드리지도 못했대. 그냥 그렇게 죽었대. 장례식장에 시장 사람들이 많이 왔는데, 죽어서 안됐다고 말하는 사람이 드물었대. 우리 아버지는 시장에서도 유명했대. 평소엔 얌전한데 술을 마시면 사람이 달라져서. 물건을 부수고 사람도 부수려들고. 그래서 장례식장에선 죽어서 안됐다고 말하는 사람보다도 그 인생 참 안됐다,라고 말하는 사람이 많았다고 우리 어머니가 그랬어. 죽어서 다행이래. 그런데 제사 때마다 우냐. 죽어서 다행인데 왜 우냐.

친척들이 모인 조용하고 조촐한 제사를 끝낸 뒤, 어딘지 시달린 듯한 모습으로 떡이며 전을 가지고 이쪽으로 넘어온 나기 오라버니의 말이었습니다. 먹으라고 가져온 것을 자기 쪽에서 꾸역꾸역 먹으며 그렇게 말하고 있었습니다.

 

애자는 금주씨에게 제사상을 차려준 적이 없습니다.

소라와 내가 어린 시절을 보낸 그 희한한 구조의 집에서 살게 된 직후, 소라와 나는 금주씨가 목이 마르면 안되지,라는 의견으로 한동안 머리맡에 물그릇을 마련해두고 잠들었다가 아침에 그릇 속의 물이 줄어든 정도를 재고는 했습니다. 부쩍 줄어든 날은 금주씨가 다녀간 날. 적게 줄어든 날은 금주씨가 별로 목마르지 않은 날. 그 무렵 우리 자매의 소꿉놀이 주제는 금주씨의 제사였습니다.

현고학생부군신위.

금주씨에게 들은 그 말을 깊이 간직하고 있었던 나는 이렇게 적는 거야, 하며 습자지에 연필로 현고학생부군신위,라고 몇번이나 적어 보였던 것입니다. 잘난 척을 했지만 실은 현고학생부근신위,라거나 현고학생부근신이,라고 엉터리로 적어두고 제대로 적었다고 믿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현고학생부군신위, 부근, 신이, 어느 쪽이든, 한문으로 쓸 줄은 몰랐으므로 한글입니다. 그것만으로도 소라는 감탄해서 가장 단정한 글씨체로 적힌 것을 골라 신중하게 벽에 붙여주었습니다. 소꿉놀이의 시작입니다. 상주는 우리 자매. 나기 오라버니에게는 조문객 노릇을 맡기고 조문을 받는 것으로 제사를 진행합니다. 지방문 아래 촛불을 켜두고 캐러멜이나 빵 조각을 담은 접시를 놓아두고 아이고아이고, 곡을 하고 있으면 나기 오라버니가 문지방 근처에 서 있다가 조문을 하러 들어옵니다. 절을 두차례 넙죽 올린 뒤 소라와 나를 향해 얼마나 상심이 크신지,라고 의젓하게 말하는 것이 순서였습니다. 제사의 규모를 키우고 싶을 때는 조문객 노릇을 맡은 사람이 몇번이고 문지방으로 돌아가서 다른 사람인 척 다시 입장했습니다. 때때로 역할을 바꿔서 오라버니가 상주가 되고 소라와 나나가 조문객 노릇을 맡을 때도 있었는데 오라버니와는 비교가 되지 않았습니다. 얼마나 상심이 크신지,라고 가장 의젓하고 자연스럽게 말할 줄 알았던 사람은 셋 가운데 아무래도 오라버니였던 것입니다.

주고받을 이야기도 더는 없고 아이고, 소리를 내는 것에도 지칠 무렵에는 셋이 나란히 앉아서 초가 타는 것을 지켜보았습니다. 촛불은 초를 녹이며 점차로 가라앉습니다. 한낮에도 햇빛이 별로 들지 않아 서늘하고 어둑어둑한 방은 조그맣고 따뜻한 이 불빛으로 깜빡거리고 있었습니다. 불빛과 함께 세 사람을 담은 채로 통째로 세상과는 동떨어져 깜빡, 깜빡, 흔들리고 있었습니다.

벽 위에서 길쭉하게 너울거리는 촛불 그림자를 보고 있다가, 애자도 죽으면 이렇게 해줘야지,라고 소라는 말했습니다. 이렇게 제사를 지내주자.

잠자코 고개를 끄덕였으나 지내주지 않을 거야,라고 생각했다는 것은 비밀.

목이 마르다고 아무리 찾아와도, 물 한그릇 내주지 않을 거야,라고 생각했다는 것은 비밀, 비밀입니다.

 

다시는 언니라고 부르지 않을 테다.

그렇게 마음먹은 것도 무색하게 당황하고 두려울 때는 아무래도 언니야,라고 부르게 되는 순간이 있습니다. 소라는 소라야,라고 불러도 별로 불평하지 않습니다. 이따금 왜 그렇게 부르냐,라고 불평하는 척을 할 때는 있어도 진심으로 불평하지는 않습니다. 소라야, 하고 부르면 열에 여덟은 돌아봅니다. 그렇게 불러주는 것을 좋아하는 거라고 나나는 믿고 있습니다. 언니,라는 입장보다는 소라,라는 입장이 편하기 때문이냐,라고 따져보고 싶을 때도 있지만 그렇게 하면 소라가 울걸. 울지도 모르니까, 나나는 그런 것을 물을 수 없습니다. 소라는 교활해. 소라는 연약해. 연약하다니, 교활해.

애자는 그날 이후로 그다지 죽으려는 기색은 없습니다.

이미 죽었으므로 더는 죽으려 하지 않고 다만 살아가는 데 필요한 온갖 활동을 시시때때로 정지하며 스스로를 망가뜨리고 소라를 망가뜨리고 나나를 망가뜨리고. 나나는 그런 것을 더는 두고 보고 싶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꿈 같은 데 나타나서 데려오라고 해봤자 안되는 거야, 할머니.

다짐했으니까.

나나는 그런 것을 더는 두고 보지 않겠다고 생각했으니까.

애자가 요양원에 가겠다고 말했을 때 한마디도 말리지 않은 데엔 그런 연유가 있었던 것입니다.

 

*

 

계속해보겠습니다.

 

그처럼 뒤숭숭한 방문을 받고 깬 아침, 모세씨의 부모님을 방문하기로 약속한 날입니다. 모세씨의 부모님을 만나는 것도 모세씨의 집을 방문하는 것도 이번이 처음입니다. 어떤 분들이냐고 묻자 평범한 사람들이라고 모세씨는 대답했습니다. 평범한 사람들, 평범한 집안.

모세씨는 약속한 시간보다 일찍 도착해 아래층에서 기다리고 있습니다. 늦잠을 자고 이제 막 일어난 참이므로 창밖을 확인할 틈은 없었지만 소리로 알 수 있습니다. 붕, 붕, 붕, 붕, 엔진을 작동시켜놓고 내가 내려오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우유를 담은 컵을 쥔 채로 창가로 다가가서 내다봅니다. 모세씨의 자동차, 모세씨의 정수리를 확인하기 위해서입니다. 모세씨가 아래층에 있습니다. 핸들 위에 두 팔을 얹고 그 위에 비딱하게 머리를 얹은 채로 위쪽을 올려다보고 있습니다. 눈이 마주쳐도 빨리 내려오라거나 재촉하는 기색도 없이 바라보고 있습니다. 왜 저렇게 보는 걸까, 생각하면서 이쪽에서도 물끄러미 내려다봅니다. 모세씨와는 곧잘 이렇게 됩니다. 바라보면 바라보고 바라보니 바라보고 바라보다 바라보고. 이렇게 언제까지고, 이어지고 되풀이됩니다. 말 한마디 나누지 않고 서로를 노려보듯 바라보는 것입니다.

모세씨를 만나기 전에도 연애는 몇차례 해보았습니다.

실은 만난 당시에도 이미 만나는 사람이 있었어. 모세씨와는 다르게 몸집이 큰 사람으로 회사 동료였습니다. 늘 풀 죽고 주눅 든 모습을 보이는 다른 동료들과는 달리 매사 뻔뻔하게 긍정적이랄까, 잘 웃고 말을 잘하고 표정도 잘 변하고 사람을 다루는 것이 능숙한 사람이었습니다. 사내 연애는 암묵적으로 금지되어 있으므로 비밀로 하자는 그의 의견을 받아들여 비밀로 여섯달가량을 만났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 단체로 자리를 이동하거나 회식을 하러 갈 때 다른 동료와 짜고 나를 놀래는 버릇이 있었습니다. 피로한 일과 뒤에 허전해진 채로 동료들 틈에서 터벅터벅 걷고 있을 때, 뒤쪽에서 달려와 내 귀에 왁, 소리를 지르고 가버립니다. 왼쪽과 오른쪽, 양쪽 귀 주변의 세계가 일그러진 것은 아닐까 싶을 정도로 충격을 받고 벙벙하게 굳어선 나를 내버려두고 동료와 함께 즐거운 듯한 뒷모습을 보이며 앞서갑니다. 이런 일이 몇차례고 이어져 왁, 하고 왁, 하고 왁, 하고.

왁.

마지막으로 왁, 하고 당했을 때 나는 뒤돌아 반대편으로 걷기 시작했습니다. 더는 안되겠다,라는 생각으로 눈물이 핑 돌아 눈 속과 코가 매웠습니다. 나나씨, 어디 가, 하며 뒤늦게 따라와서 팔을 붙드는 그의 손을 매몰차게 뿌리치고 걸어갔습니다. 장난을 가지고 뭘 그래, 누가 들을까 속삭이는 얼굴을 한번 바라본 뒤 그대로 남겨두고 집으로 가는 방향으로 걸었습니다. 또각 또각 또각 또각 걸으며 분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비밀로 하자고 했으면서, 이렇게 하다니 분하다, 분하다고 생각하며 걸었는데 그 뒤를 따라온 회사 동료가 있었습니다. 그것이 모세씨.

슬슬 준비하지 않으면 정말 늦어버릴 시간입니다. 우유를 한컵 더 마실까 말까 고민하고 있는데 소라가 방문을 열고 나왔습니다. 최근의 패턴대로 나나를 발견하자마자 도로 문을 닫고 들어갈 거라고 생각했는데 웬일인지 문밖으로 나와서 잠이 덜 깬 척 부엌까지 들어옵니다. 자는 동안 땀을 흘렸는지 맨발이 바닥에 닿았다가 떨어질 때마다 끈적끈적한 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물을 한컵 가지고 창가로 가서 부스스한 모습으로 창밖을 내다봅니다. 그 자리에서라면 아래쪽에서 기다리고 있는 모세씨의 자동차와 모세씨의 모습이 보일 것입니다. 모세씨는 여태 이쪽을 올려다보고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내 방으로 돌아가서 달칵, 하고 문을 닫기 직전, 그 사람이 아기 아빠야,라고 말할까 생각도 해보았지만 지금은 냉전 중이고 모세씨가 너무 오래 기다렸으므로, 나중에.

 

모세씨는 딸기를 먹지 않습니다.

과일에서 가장 더러운 부분이 껍질이다,라고 배웠다고 합니다. 어렸을 때부터 그런 것을 가르쳐준 사람은 모세씨의 아버지로 사과든 복숭아든 과일은 반드시 껍질을 벗긴 것만 먹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사과든 복숭아든 뭐든 모세씨의 어머니가 과도로 껍질을 벗겨내줄 때까지 기다렸다가 받아먹는다고 합니다. 농약이 과육 깊숙이 스몄을 수도 있고 수확하는 과정에서 어떤 오물이 들러붙었을지 누가 알겠냐,라면서 껍질을 빨아서 알맹이를 먹어야 하는 포도와, 딱히 벗길 껍질조차 없는 딸기를 혐오한다는 것입니다. 그런 가풍에서 자라고 보니 더럽다고 혐오하는 정도까지는 아니더라도 하여간 딸기는 별로,라는 것이 딸기 편식에 관한 모세씨의 결론입니다. 단순하게 딸기를 먹지 않는다는 점을 비롯해서 몇가지가 희한하게 나기 오라버니와 겹친다는 점은, 깊이 생각하고 싶지 않으니까 생각하지 않을 테다.

모세씨는 소리를 거의 내지 않고 걷습니다. 보고 있으면 아주 희한합니다. 데이트를 마치고 헤어진 뒤로 이십분이나 뒤따라왔던 것을 눈치채지 못한 적도 있습니다. 특별한 가죽이나 고무로 밑창을 댄 구두일까 싶어서 언젠가 모세씨가 잠든 틈을 타 구두를 뒤집어보았지만 평범했습니다. 평범한 바닥이었고 신발이었습니다. 발이 들어가는 부분이 마찰 덕분에 약간 늘어난 채로 짙은 빛깔을 띠고 있습니다. 평범했던 것입니다. 평범한 것이란, 하고 생각하기 시작하면 끝없이 파고들어가는 달팽이집처럼 뱅글뱅글 생각하게 됩니다. 모르지, 평범하므로 그렇게 걸을 수 있는 것인지도 몰라,라고 생각할 때도 있습니다. 여하간 모세씨는 그토록 평범한 것을 신고도 전혀 발소리를 내지 않고 걸을 수 있는 사람인 것이고 그 점은 조금 무섭다, 말로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왠지 약간은 무섭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왁, 하는 소리로 나나를 놀래곤 했던 사람은 한동안 괴로워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다가 이윽고 괴로워하는 기색도 사라지고 예전과 다름없는 모습으로 돌아와서 다른 여자를 만나고 있습니다. 비밀로 하자,라는 합의 따위는 하지 않은 듯 친밀한 태도를 숨기지 않고 공공연한 연인으로 지내고 있습니다. 여전히 잘 웃고 잘 말하고 요모조모 능숙한 모습으로 생활합니다. 나나를 대할 때 괴로워한다기보다는 괘씸하게 여기는 듯했던 태도도 지금은 사라져서 무심한 회사 동료로 지내고 있습니다.

그 정도였던 것입니다.

사랑에 관해서라면 그 정도의 감정이 적당하다고 나는 생각하고 있습니다. 어떤 일이 있더라도 이윽고 괜찮아지는 정도. 헤어지더라도 배신을 당하더라도 어느 한쪽이 불시에 사라지더라도 이윽고, 괜찮아, 라고 할 수 있는 정도. 그 정도가 좋습니다. 아기가 생기더라도 아기에게든 모세씨에게든 사랑의 정도는 그 정도,라고 결심해두었습니다.

애자와 같은 형태의 전심전력, 그것을 나나는 경계하고 있습니다.

 

*

 

모세씨가 타고 다니는 자동차의 룸미러엔 드림캐처라는 것이 걸려 있습니다. 동그란 거미줄 같은 것입니다. 짐승의 뼈를 구부려 만든 동그란 테 속에 은색 실이 섬세한 그물 무늬로 얽혀 있고 그물 중간쯤에 팥알보다 작은 크기의 구슬이 맺혀 있습니다. 언젠가, 거미줄에 걸린 먹이 같아요,라고 말하자 모세씨는 이슬이라고 말했습니다. 드림캐처란 나쁜 꿈은 거르고 좋은 꿈을 통과시키는데 걸러진 나쁜 꿈은 밤새 그물에 사로잡혀 있다가 아침 햇살을 받고 이렇게 이슬이 되어 증발합니다,라고 말입니다. 모세씨의 자동차가 정차와 완만한 회전을 반복하며 전진하는 동안 둥근 그물 아래쪽으로 길게 늘어진 깃털이 하늘거립니다. 그물에 사로잡힌 구슬을 바라보는 틈에 아파트 단지로 진입합니다. 아파트와 아파트와 아파트 사이의 도로를 한 방향으로 달리게 되어 있어 차를 탄 채로 길을 잘못 들어섰다가는 좀처럼 빠져나가지 못하고 그 길을 따라 헤매게 되는 곳입니다. 모세씨는 이런 곳에 사는구나, 하고 생각합니다. 엘리베이터를 기다렸다가 텅텅 발소리를 내며 탑승하고 상승합니다.

어서 와요.

모세씨의 어머니가 문을 열어주며 말합니다. 단발에 여기저기 컬을 넣어 머리를 부풀린 모습이고 깜짝 놀랄 만큼 이목구비가 또렷한 인상입니다. 오랜 세월 동안 손에 힘을 주어 눈 화장을 한 흔적으로 유난하게 주름이 많은 눈가엔 거무스름한 빛깔의 아이섀도우를 발라놓았고 분홍색 루주를 바른 입술은 매끈매끈, 반짝이고 있습니다. 어서 와요,라고 말할 때 그녀의 검은 눈이 한순간 배 쪽을 흘겨보듯 내려다보는 것을 나나는 눈치챕니다. 어딘지 모르게 퇴역한 군 장성 같은 모습으로 이 더운 여름에 조끼까지 입고 있는 사람이 모세씨의 아버지입니다. 신발을 벗고 거실로 올라서자마자 반갑네, 고맙네,라고 말하며 악수를 청합니다. 그대로 손을 잡힌 채로 거실로 안내되어 바닥에 앉았다가 그렇게 바닥에 임산부를 앉혀서는 안된다는 어머니의 지적에 서둘러 소파로 안내됩니다. 모세씨와 나를 나란히 앉혀두고 모세씨의 부모님은 양쪽 끄트머리에 자리를 잡습니다. 소파는 공들여 무두질된 고급 가죽으로 엉덩이를 대고 앉자 피부 바깥의 피부처럼 부드럽게 가라앉습니다. 이렇게 앉아서 잠시 침묵입니다.

과일 먹을래요?

과일을 내오겠다는 모세씨의 어머니를 도우려고 소파에서 일어났다가 아니, 아니,라고 몇번이고 잘라내듯 말리는 소리에 약간은 기가 죽어 도로 앉습니다.

넓은 거실엔 이런저런 물건이 두서없이 놓여 빈 공간이 별로 없습니다. 큼직한 조개껍데기 모양의 수반(水盤), 공기청정기, 안마의자, 옷가지를 걸쳐둔 러닝머신 말고도 그릇과 사기인형을 진열해둔 진열장이 두개 있고 거실 테이블 아래엔 여러번 뒤적여 부푼 통신판매 카탈로그가 더미로 쌓여 있습니다. 그런 것들을 나나는 눈여겨 바라봅니다. 남의 집 냄새,라고 말할 수밖에 없는 독특한 냄새를 들이마십니다.

모세씨는 이 집에서 부모님과 이십오년을 살았다고 합니다. 어린 시절의 모세씨가 드나들던 집, 하고 생각하며 천장과 벽과 출입문을 바라봅니다. 사춘기 시절의 모세씨는 어땠을까. 뭔가 못마땅한 표정을 하고 못마땅한 기색으로 못마땅하다는 듯 에너지를 발산하며 거실을 가로질렀을까. 조금 더 자란 모세씨는 어땠을까.

어떤 표정으로 저 벽 앞을 오가고 어떤 것을 고민하며 저 문을 드나들었을까.

모세씨의 어머니가 껍질을 벗겨 내온 사과와 배는 껍질과 더불어 과육도 상당히 깎여 조그만 조각이 되어 있습니다. 보고 있자니 속상할 정도로 조그맣습니다. 하나하나, 손잡이 부분에 빨간 셀로판지를 감은 이쑤시개가 꽂혀 있습니다. 모세씨의 아버지가 정확하게 손잡이 부분을 집어 과일을 먹기 시작합니다. 입을 다물고 턱을 정확하게 움직여 꼭꼭 씹습니다. 모세씨의 어머니도, 잘 보니 모세씨도, 그렇게 씹고 있습니다. 나나도 그들처럼 고집스럽게 씹어봅니다. 아삭아삭, 묵묵하게 과일을 먹습니다. 사과를 담은 접시가 비자 모세씨의 아버지가 빈 접시를 모세씨의 어머니 쪽으로 밀어내며 어이, 하고 말합니다. 모세씨의 어머니가 빈 접시를 가지고 부엌으로 돌아갔다가 사과를 가지고 돌아옵니다. 배를 담은 접시가 비었을 때에도 모세씨의 아버지는 빈 접시를 모세씨의 어머니 쪽으로 밀며 어이, 하고 말합니다. 모세씨의 어머니가 빈 접시를 쥐고 부엌으로 갔다가 조그맣게 깎고 자른 배를 내옵니다.

침묵.

침묵 뒤에 드문드문 질문이 이어집니다. 모세씨의 어머니가 나나에게 사는 곳을 묻고 나이를 묻고 출산 예정일을 묻습니다. 나나는 그런 질문에 단답으로 대답합니다. 양친은 건강하시냐는 질문에 아버지는 돌아가셨고 애자가 있다고 대답합니다. 습관대로 애자가 있다,라고 말하려다가 어머니가 생존해 계시다,라고 말합니다. 하고 보니 어머니가 생존해 계신다는 말은 애자가 있다는 말보다 훨씬 생소하고 이상하게 들립니다. 애자는 애자라고 불러야 애자답고 지금은 아무래도 생존보다는 있다,에 가까운 상태인지도 모르니까.

모세씨는 본래도 말이 별로 없지만 이렇게 집에 있으니 더욱 말이 없습니다. 생기가 사라져서 인형 같은 모습입니다. 간간이 이어지던 대화가 끊기고 모세씨의 아버지도 모세씨의 어머니도 나나도 말이 없습니다. 이따금 과일을 집어 먹으며 잠자코 있습니다. 모세씨의 어머니가 리모컨을 집어 텔레비전을 켭니다. 웃음소리가 요란합니다. 주말 저녁의 버라이어티 쇼입니다. 넷이서 소파에 푹 파묻히듯 앉아 텔레비전을 바라봅니다. 문득 깨닫습니다. 이 고급 소파는 딱 들어맞을 정도로 텔레비전을 향한 방향으로 놓였구나. 세 사람에겐 이 각도와 이 순서와 이 전개가 익숙하구나.

일은 잘되니?

모세씨의 어머니가 텔레비전을 바라보며 문득 묻자 모세씨가 텔레비전을 향해 응, 하고 대답합니다. 사무실은 안 덥니?라고 그녀가 텔레비전을 향해 묻자 모세씨도 텔레비전을 향해서 상관없어,라고 묘한 내용으로 대답합니다. 내일도 출근하니?라고 묻는 말엔 월요일이니까,라고 대답합니다. 결혼식은 언제 할 거니?라고 텔레비전을 향해 묻는 말에 모세씨는 조만간,이라고 텔레비전을 향해 대답합니다. 결혼식까지는 아직 생각하고 있지 않은데요,라는 대답을 준비하고 있었던 나는 어라, 하며 깜짝 놀랍니다. 놀라서 모세씨를 바라보니 모세씨는 속을 짐작할 수 없는 모습으로 텔레비전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조금 뒤엔 담배를 피우고 오겠다며 소파에서 일어섭니다.

네 사람이 앉은 부드러운 소파에서 모세씨가 일어서자 쿠션이 미묘하게 한쪽 방향으로 기울어집니다. 모세씨의 아버지가 그 균형을 회복하려는 듯 이쪽으로 성큼 앉았다가 너무 다가앉았다 싶었는지 다시 성큼 제자리로 옮겨갑니다. 텔레비전에서 한바탕 웃음이 터집니다. 새삼 어색하고 긴장되고 한편으로는 지루해서 나나의 내면은 안절부절못했지만 조금만 움직여도 반응할 것 같은 옆 사람의 기척에 꼼짝도 못하고 앉아 있습니다.

바라보고 있습니다. 모세씨의 아버지도 모세씨의 어머니도 텔레비전을 보고 있으나 텔레비전을 보고 있지 않습니다. 눈에 보이는 한쌍의 눈 이외에도 열개 정도의 눈이 더 있는 듯하고 그 눈을 모두 동원해 바라보고 있는 곳은 열에 아홉은 이쪽입니다. 텔레비전을 보고 있지 않은 열개의 눈이 나의 손목을 나의 목을 나의 발을 나나의 발목을 나나의 발가락을 종아리를 나나의 배를 가슴을 귀를 나나의 손등을, 차례대로 훑어보고 뚫어지게 보고 있습니다.

너희는 주로 어떤 체위로 하니?

하다못해 그런 질문이라도 받는 쪽이 훨씬 덜 불편하겠다 싶을 무렵에 무슨 일을 하나요,라고 묻는 말을 듣습니다. 모세씨의 어머니가 텔레비전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모세씨와 같은 사무실에서 같은 일을 한다고 말하자 텔레비전을 향해 고개를 끄덕이지만 아무래도 몰랐던 기색입니다. 얼마나 만났나요,라고 묻는 말에 일년쯤 되었다고 말하자 더욱 몰랐던 기색으로 고개를 끄덕입니다. 조금 뒤에 모세씨의 어머니는 작게 한숨을 쉽니다. 저 아인 집에 들어와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아. 뭘 물어도 제대로 알려주지 않아. 혼잣말인 것처럼 말한 뒤 카탈로그 더미에 얹힌 볼펜을 집어서 메모지 한장을 내어주며 전화번호를 적으라고 말합니다. 적어서 돌려주자 꼼꼼히 살피듯 메모를 들여다본 뒤 두번 접어 정사각형이 된 메모지를 맨 위에 놓인 카탈로그 책장 틈에 끼웁니다. 모세씨의 아버지가 소파를 누르며 자세를 고쳐 앉습니다. 나나는 비딱한 방향으로 자세를 고쳐 앉습니다. 주말 저녁의 버라이어티는 끝나고 광고가 이어집니다.

광고와 더불어 침묵이 이어집니다.

화장실이 어디냐고 묻자 저쪽에도 있고 이쪽에도 있다며 어느 쪽이든 좋은 쪽을 쓰라는 안내를 받습니다. 거실에 딸린 화장실을 선택합니다. 스위치를 올리자 거울 위쪽에 달린 형광등이 평, 평, 소리를 내며 깜빡이다가 침침하게 켜집니다. 슬리퍼를 신고 들어서서 문을 닫습니다. 치약과 비누 거품이 튄 자국으로 얼룩진 거울 앞에 잠시 서 있다가 양변기에 앉습니다. 변기 부근의 바닥을 내려다보며 오줌을 누고 오줌을 다 누고도 다 눴다는 느낌이 들지 않아 한동안 더 앉아 있다가 일어섭니다. 물을 내리고 손을 닦으려고 세면대로 바짝 다가서다가 세면대 아래 둥글게 놓여 있던 놋그릇을 발로 차고 맙니다. 놋그릇이 타일 바닥을 묵직하게 긁으며 밀려갑니다. 이것은, 하고 그것을 내려다봅니다.

요강입니다. 이따금 텔레비전에서나 볼 기회가 있었을 뿐 실제로 본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처음인데도 보자마자 단번에 요강, 하고 알아채다니 신기하다고 생각하며 요강을 바라봅니다. 애교가 느껴질 정도로 둥그스름한 몸체는 쇠솔로 박박 문질러 닦은 자국으로 얽었고 감꼭지 모양의 손잡이가 달린 뚜껑으로 덮여 있습니다. 낡았으나 잘 닦인 요강입니다.

 

모세씨네 집엔 요강이 있어,라고 말하자 소라가 고개를 들고 나나를 바라봅니다.

누구?라고 묻는 말에 아기 아버지,라고 하자 미간을 조금 찡그리고 누구?라고 재차 묻습니다. 한손엔 스푼, 한손엔 나나가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사온 바나나 푸딩 컵을 쥐고 있습니다. 두번째 누구,라는 말은 못 들어서 물은 것은 아니므로 그 질문은 넘어가고 요강이 있어,라고 계속합니다.

모세씨네 요강.

요강?

요강이야, 하고 나나는 천천히 말합니다.

요강을 사용할 정도의 환자도 없고 변기도 멀쩡한데 요강이 있어.

왜?

돌아오는 길에 모세씨에게 물어봤거든. 그랬더니 아버지가 쓰는 것이래.

아프신가, 하고 소라가 말합니다.

요강을 써야 하는 병이라도 있는 거 아닌가.

나도 그렇게 물었어. 그랬더니 그냥 쓰시는 거래. 옛날부터 그냥 그것을 그렇게 쓰신대. 그것을 본인이 비우느냐고 물으니까 아니라고 모세씨는 대답했어. 아버지가 요강을 사용하고 어머니가 요강을 비운대. 아무렇지도 않게. 아무렇지도 않은 일이라고 여기니까 아무렇지도 않게 대답했겠지? 그러면서 이상하냐고 묻는 거야, 요강이 이상한 물건이냐고. 요강은 이상한 물건이 아니지. 요강이란 어느 집에도 있을 수 있는 물건이라고 나나는 생각해. 나나가 이상하게 생각하는 것은, 말하자면 포인트는, 아버지가 요강을 사용한 뒤 손수 비우지 않고 남의 손을 사용해서 비운다는 거였어. 몇걸음만 걸으면 멀쩡한 화장실이 두개나 있는 집인데 놋그릇에 똥이나 오줌을 눈 다음에 남에게 그 그릇을 치우라고 넘긴다는 건 이상하지 않아?

………

그런데 모세씨는 그 점을 생각해본 적이 별로 없는 것 같았어. 요강을 채우는 사람과 요강을 비우는 사람이 따로 있는데 모세씨는 그것을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아. 생각할수록 나나는 그게 더 이상한 거야. 실은 그게 제일 이상하고 궁금해. 모세씨는 왜 그럴까. 모세씨의 아버지는 왜 그렇게 할까. 모세씨의 어머니는 왜 그걸 할까. 세 사람 사이엔 도대체 어떤 흐름이 있는 걸까. 그것은 뭐라고 할 수 있을까. 집으로 돌아오는 동안에도 내내 생각했는데 아무래도 모르겠어. 모르겠다는 생각뿐이야. 소라는 어떻게 생각해?

……잘 모르겠네.

그래.

그 점이 핵심인지도 모르지.

그 점?

잘 모르겠다는 점, 하고 소라가 말합니다.

아무리 생각하고 들여다보아도 모르겠다, 싶은 것은 애초에 생기기를, 모르게 되어 있도록 생겼는지도 몰라. 불가사의한 구멍 같은 것. 미스터리 홀. 그게 그 집안의 경우엔 그 요강인 거지. 요강에 관해서는 아마 본인들도 모르겠다고 생각할지도 몰라. 모르겠다는 생각조차 하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하여간 핵심은 도저히 모르겠다는 거잖아. 그건 그냥 그 집만의 미스터리 홀. 그런 것이 그 집 욕실 바닥에 놓여 있었던 거지.

……그런 건 어느 집에나 있지.

그렇지.

이 집에도,라고 덧붙이며 소라는 푸딩을 떠먹습니다. 소라는 아무래도 애자를 염두에 두는 것 같은데 나나의 입장에서는 소라 자신도 그런 불가사의한 구멍일 수 있다는 것은 조금도 생각하지 않는 걸까,라고 생각하며 유심히 보니 자신의 이야기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전혀 모르지는 않은 듯한 기색이 보인다,라는 느낌이 드는 것은 나나의 착각일지도 모르겠네. 여하간 얄미워, 교활해,라고 생각하며 미스터리 홀과 요강에 관해 생각합니다. 푸딩 포장을 뜯고 노랗게 고인 매끄러운 표면에 스푼을 찔러넣습니다. 잠자코 푸딩을 먹으며 미스터리 홀, 하고 계속 생각해봅니다.

무더운 여름밤입니다. 약간 끈적이는 부엌 탁자에 소라의 앨범이 펼쳐져 있고 종이로 만든 조그만 꽃송이가 열개도 넘게 흩어져 있습니다. 잎이나 꽃자루도 없이 오로지 꽃송이뿐, 패랭이나 코스모스처럼 보입니다. 애자가 만들었다는 이야기를 듣습니다. 보고 왔느냐고 묻자 보고 왔다,라며 소라는 고개를 끄덕입니다. 요즘엔 종이로 꽃을 만든대. 이런 것을 잔뜩 만들고 있어. 그렇게 말하며 밀어주는 패랭이꽃을 받아 탁자 위에서 이리저리 돌려봅니다. 뭔가 만든다니 좋네. 애자가 뭔가를 만들고 있다니 그건 좋네.

모처럼 불어온 바람에 창가에 걸린 풍령이 흔들립니다. 소라가 달아두었는지 풍령의 추에도 애자의 꽃이 한송이 달렸습니다. 저렇게 달아두면 꽃의 무게로 덜 흔들리게 되는데,라고 생각하며 바라봅니다.

이름이 모세?

소라가 묻습니다.

모세씨,라고 대답하며 고개를 끄덕입니다.

어떤 사람이야?

모세씨는 어떤 사람인가, 하고 잠시 생각합니다.

……말이 별로 없는 사람.

언제 집으로 데리고 와,라는 말에 나나는 흔들립니다.

이 집으로 모세씨를 데리고 오다니. 나나는 그렇게까지 모세씨를 좋아하나, 하고 생각해봅니다.

좋아해.

좋아합니다. 금주씨를 향한 애자의 전심전력의 사랑, 정도의 사랑은 아니더라도 나름의 밀도와 정도로는 모세씨를 좋아합니다. 데이트를 하고 섹스를 하고 불시에 아기를 만들고 불시였지만 모세씨와의 아기니까 기르자,라고 각오할 만큼은 좋아합니다. 말도 없고 애교도 없고 요령도 없는 사람이지만 보고 있으면 사랑스럽습니다. 하지만 모세씨를 사랑스럽다고 생각하는 것과 모세씨를 우리 자매의 미스터리 홀로 불러들이는 것은 별개,라고 단호하게 생각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집으로 모세씨를 불러들여 소라에게 소개시킨다는 것은 나나의 세계에서 가장 연한 부분을 모세씨와 만나게 한다는 의미입니다. 나기 오라버니만이 접근하고 접촉할 수 있었던 그 세계를, 금주씨의 죽음과 이미 상당히 죽어버린 애자와 뒤틀림이 담긴 세계를 열어 보인다는 의미입니다. 나나의 내면에서 그 부분은 잠잠한 듯 보여도 끊임없이 떨고 진동하는 곳. 가장 민감한 비늘이 돋은 곳. 무엇보다도 나나는 소라를 애자를 나나 본인을, 실제라기보다는 나나 내면의 그들을 모세씨에게 열어 보이고 싶은 마음이 있기는 한 건지 좀처럼 확신할 수 없습니다. 언제까지나 이대로,라고 생각하는 마음과 부숴버리자, 그만 깨버리자고 생각하는 마음과 그밖의 마음이 뒤섞여 최근에 나나의 내면은 꽤 시끄럽습니다. 이렇게 수선스러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모세씨가 오면 지난번처럼 크로켓 만들자,라고 소라는 말합니다.

나나는 고개를 끄덕입니다.

전략적인 상담 전개와 먼저 건넨 바나나 푸딩의 맛으로 냉전은 이렇게 종식되고 맙니다.

시시하지만, 제대로 받아주었으므로 다행.

 

*

 

비위가 약해 입덧을 각오하고 있었는데 의외로 기미가 없습니다. 아침에 눈을 떠서 우유든 물이든 한컵 마실 때까지, 너울이 이는 듯한 메스꺼움이 있을 뿐 구토는 별로 없고 식욕은 오히려 늘었습니다. 먹는 입덧,이라고 소라는 말합니다. 그런 형태의 입덧도 있대. 착하네, 엄마 고생을 덜하게 하는 착한 아기네, 그렇게 말입니다.

매일 여름은 깊어가고 하루가 다르게 몸이 달라지고 있습니다. 아기가 들었나, 싶을 정도로 납작했던 배도 이즈막 눈에 띄게 부푼 듯하고 가슴의 변화도 확연해 예전 속옷을 입으면 갑갑합니다. 거울 앞에서 옷을 벗을 기회가 있을 때마다 배나 등에 손을 얹고 배의 굴곡을 관찰합니다. 이곳에 아기가 있다,라는 생각을 해도 막연한 생각뿐입니다. 초음파 검사를 통한 음영으로, 음파의 반영으로 만들어낸 그림자로 이제 갓 형성된 이목구비의 요철을 확인했을 뿐, 아기의 몸이란 아직은 그림자로만 존재하는 듯하고 실감은 부족합니다. 아기가 자라고 있다,라기보다는 심장이 자라고 있다,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밤에 바닥에 가만히 드러누워 있으면 박동이 느껴집니다.

자그자그자그자그, 하고, 내 것보다 빠른 박동으로 내 것과는 다른 흐름으로 순환하는 조그만 심장. 숨을 죽이고 이쪽의 기척을 줄여야 제대로 감각할 수 있을 정도로 가늘게 진동합니다. 자그자그자그자그, 하고 바쁘게 움직이는 두번째 심장.

아기에 관해서는 간신히 그 정도를 자각할 뿐인데 몸은 은근하고도 확실하게 달라지고 있습니다. 평소라면 먹고 싶다는 생각도 하지 않았을 음식을 먹고 싶다거나 평소 먹는 양의 두배를 어느 틈엔가 먹어버립니다. 이것을 먹고 싶은가 아닌가를 두고 망설이는 것이 아니고 이것은 먹어도 되는 음식인가 아닌가를 두고 망설입니다. 그런 방식으로 신체에서 모체로의 전환을 느낍니다. 부지불식, 나도 모르는 틈을 타고 착, 착, 진행되고 있는 듯해 신묘하고도 쓸쓸합니다.

어떻게 됐나요?

전화번호를 적어준 뒤로 모세씨의 어머니는 하루 간격으로 전화를 걸어와 탁한 목소리로 묻습니다. 회사에서 임신을 눈치채기 전에 약혼과 결혼을 결정해야 한다고 완강하게 조언합니다. 하지만, 하고 나나는 생각합니다.

여전히, 하지만.

 

아주머니를 만나고 오면 어떨까.

일단은 모세씨와 둘이서 애자를 만나보면 어떻겠느냐고 나기 오라버니는 말합니다. 삯의 좁다란 탁자 너머로 오라버니를 지켜봅니다. 돼지고기 조각에 격자로 칼집을 내고 간장을 바른 뒤 석쇠에 끼워서 불에 굽습니다. 타닥, 타닥, 기름이 튀는 것을 내려다보고 있다가 석쇠를 뒤집어 반대쪽 면을 익힙니다. 나나는 나기 오라버니의 요리보다도 요리할 때의 오라버니의 움직임을 좋아합니다. 오라버니가 삯의 주방에서 국수를 볶고 계란을 풀고 야채를 튀기고 지느러미를 떼어내고 고기를 저밀 때의 군더더기 없는 동작을 좋아합니다. 특히 도마를 청결하게 사용하는 방식이 좋습니다.

소라에게는 비밀이지만 임신했다는 것을 가장 먼저 알리게 된 사람은 오라버니였습니다. 자가 테스트와 병원 방문을 통해 임신했다는 것을 알고 난 직후 마음이 어지러워 삯에 들렀을 때의 일입니다. 오라버니가 건넨 술을 물리며 먹으면 안돼,라고 말한 것이 계기가 되었습니다. 소라한테는 말하지 말아달라고 부탁한 뒤 나중에 준비가 되었을 때 모세씨를 소개시키겠다고 말했습니다.

소라는 잘해줄걸, 하고 오라버니는 말했습니다.

어떤 사람이건 나나가 데려오는 사람이니까, 잘 대해줄 거야.

그렇지,라고 고개를 끄덕이며 그게 문제,라고 생각하며 그게 뭐냐,라고 나나는 말했습니다.

좋은 사람인지 좋지 않은 사람인지, 필터링을 제대로 해줘야지.

언닌데,라고 투덜거리자 오라버니는 도마 위로 기울어져 있던 머리를 들고 웃었습니다.

어렸을 때나 지금이나 나기 오라버니는 이마를 완전히 덮는 방식으로 머리를 자른 모습입니다. 오라버니네 어머니를 꼭 닮은 외까풀 눈이며 주근깨며 어린 시절의 얼굴이 그대로 있는데 웃으면 놀라울 정도로 노인의 얼굴이 되어버립니다. 눈 주변으로 모이는 주름 말고도 위쪽으로 송곳니 한 자리가 비어서 유별나게 그렇게 보이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수년 전 외국에 나갔다가 이를 부러뜨린 채로 돌아왔는데 여태도 내버려두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는 그만 임플란트라든지, 방법을 시도해보는 게 어떠냐고 권하고 늙어 보인다고 놀려도 또 노인 같은 얼굴로 웃고 맙니다. 짜증나.

출입문 근처에 앉아 있던 세 사람이 자리를 비우고 삯은 조용해집니다. 중간쯤 자리에서 콩볶음에 맥주를 마시며 대화를 나누는 여자 둘과 제일 안쪽 자리에 앉은 나나뿐입니다. 막간을 이용해 나기 오라버니는 냉동실을 열고 팩째로 얼린 우유를 꺼냅니다. 큐브 모양으로 언 우유를 잘게 부숴 유리그릇에 담고 미숫가루와 꿀을 얹어 내 쪽으로 밀어줍니다. 이것은 삯의 메뉴엔 없는 요리로 최근의 나나 전용입니다. 여자들이 호기심을 보이며 저것은 무슨 요리냐고 오라버니에게 묻습니다. 자기들도 먹을 수 있느냐고 먹게 해달라고 조릅니다. 나기 오라버니는 조금 난감한 기색으로 웃고 있다가 본래는 메뉴에 없지만, 하며 만들기 시작합니다. 여자들은 맛있다고 난리입니다. 별것 아닌 것 같은데 별나게 맛있네, 하며 빙수를 먹는 동안 오라버니에 관한 것을 묻습니다. 아저씨, 전부터 궁금했는데, 나이가 몇이에요, 결혼은 했나요, 여자친구는 있나요, 얘는 어때요, 나는 어때요. 완전하게 농담은 아닌 듯한 농담을 건네며 오라버니의 붙임성있는 단답에 까륵까륵 반응합니다. 나나는 그릇 바닥에 가라앉은 꿀을 스푼으로 긁어 먹습니다. 시시해,라고 생각합니다.

시시한 질문, 시시한 인생.

 

나나는 어린 시절에 나기 오라버니에게 뺨을 맞은 적이 있습니다.

이런 이야기는 하고 싶지 않네.

 

계속해보겠습니다.

그 시절에 나나는 작은 동물을 괴롭히며 놀았습니다.

강아지, 고양이, 햄스터, 드물게 기니피그. 꼬리를 밟아본다거나 발바닥을 찔러본다거나 가슴을 눌러본다거나. 괴롭혀서 즐겁다거나 괴롭다거나 도대체 뭘 느끼는 것도 없으면서 멍하게 괴롭혔습니다. 왼쪽과 오른쪽으로 나뉜 기묘한 집에서 살던 때로 나나의 나이, 열셋이었습니다.

당시는 중학교로 진학한 소라와 헤어지고 홀로 초등학교에 남게 된 시기로 점심을 먹을 때도 혼자, 하교할 때도 혼자, 소라와 나기 오라버니의 하교 시간은 나나보다도 훨씬 늦었기 때문에, 집에 돌아와서도 혼자, 자기만의 황폐에 잠긴 애자의 곁에서, 단지 혼자였습니다.

묘한 시간이었습니다. 소라와 나나는 둘이 아닌 하나처럼 밀착되어 있었는데 이제 혼자 남겨지자 하나도 아니게 되어버린 듯했습니다. 이때까지 밀착되어 있던 것이 떨어져나가 어정쩡하게 절반인 채로 나나는 혼자였습니다. 혼자서, 왼쪽과 오른쪽 공간의 적막 속을 떠돌며 놀았습니다.

나기 오라버니네 거실엔 그 무렵 육각형 수조가 놓여 있었고 수조 속엔 언제나 물이 그득했습니다. 플라스틱 물풀과 초가집과 뼈 모양의 불가사리가 그 물에 잠겨 있고 그 틈을 빨간 금붕어들이 돌아다니고 있었습니다. 알사탕처럼 볼록한 몸에 화려한 지느러미가 달린 물고기들이었습니다. 수조를 청소하는 데 사용하는 기다란 유리막대를 담그고 물을 휘저으면 툭, 툭, 막대에 닿고 혼비백산, 지느러미를 흔들며 달아납니다. 그 가운데 특별하게 나나의 주의를 끄는 금붕어가 있었습니다. 빨갛고 금빛인 다른 금붕어들 틈에서, 그것만, 먹을 뭉친 듯 검은 빛깔이었습니다.

검은색이라서 불길했습니다.

검은 주제에 금붕어,라는 생각을 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무심하게 그것을 표적 삼으며 시간을 보내곤 했습니다. 꼬리지느러미를 막대로 건드리면 살랑, 하고 방향을 바꿔 달아납니다. 달아나는 방향으로 쫓아서 다시 건드리면 다시 살랑, 달아납니다. 이렇게 몇번이고 집요하게 쫓고 건드리다가 하루는 구석으로 몰아붙인 뒤 막대 끝으로 꼬리지느러미를 꾹 찍어 눌렀습니다. 지느러미를 잡힌 금붕어는 수조 벽에 코를 비비며 벗어나려고 안간힘이었습니다. 그 짧은 몸부림에 막대에 눌렸던 지느러미가 찢어지고 작은 조각이 뜯겨져나왔습니다. 지느러미 조각이 물에 풀린 먹처럼 고요하게 떠올랐다가 가라앉았다가 떠오르기를 반복했습니다. 정신없이 그것을 지켜보았습니다.

문득 뒤를 보니 나기 오라버니가 서 있었습니다.

어디서 무엇을 하고 왔는지 먼지투성이에 머리카락엔 흙이 엉겨붙은 유령 같은 모습이었습니다. 눈언저리엔 희미하게 멍이 올랐고 입술 끝엔 검붉은 점처럼 피가 고인 채로 굳어 있었습니다. 오라버니는 물끄러미 나를 보고 있다가 수조 쪽으로 다가와서 물속을 들여다보았습니다. 검은 금붕어는 입을 뻐끔거리며 물풀 근처에 머물고 있었습니다. 이따금 가슴지느러미를 움직여 방향을 바꿔가며 경계하고 있습니다. 오라버니는 그것을 한참 들여다보고 있다가 등을 펴고 나나와 마주 선 뒤, 손바닥을 활짝 펴서 나나의 뺨을 때렸습니다. 한대만으로 그치지 않고 몇번이나 힘껏. 힘껏.

아파?

오라버니는 물었습니다.

나는 얼떨떨하게 정신이 나간 채로 오라버니를 바라보았습니다.

아프냐고 재차 묻는 말에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런데 나는 아프지 않아, 오라버니는 팔을 늘어뜨리고 서서 태연하게 말했습니다.

내가 너를 때렸으니까 너는 아파. 그런데 나는 조금도 아프지 않아. 전혀 아프지 않은 채로 너를 보고 있어. 그럼 이렇게 되는 건가? 나는 아프지 않으니까 너도 아프지 않은 건가?

대답을 기다리는 듯 바라보는데도 대꾸하지 못하고 얼얼한 뺨에 손을 대고 눈을 깜박이며 마주 보았습니다. 오라버니는 새까만 눈으로 나나를 보며 물었습니다.

하지만 너는 아프지, 그렇지?

압도된 채로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금붕어를 건드릴 때, 너는 아팠어?

고개를 저었습니다.

같은 거야, 라고 오라버니는 말했습니다.

너하고 저것하고, 같은 거야.

 

아파?

오라버니는 물었습니다.

고개를 끄덕이자 기억해둬,라고 오라버니는 말했습니다.

이걸 잊어버리면 남의 고통 같은 것은 생각하지 않는 괴물이 되는 거야.

 

*

 

일요일에 애자를 보러 가요.

그렇게 말하자 모세씨는 알겠다고 말하면서도 그것은 그만두면 안되느냐고 물었습니다. 무엇을, 하고 묻자 어머니를 애자라고 부르는 것,이라고 대답합니다. 어머니를 이름으로 부르는 것을 듣는 것이 불편하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냐고 대꾸하고 애자는 애자,라고 생각합니다. 애자는 애자라고 불러야 애자다우니까 애자라고 부를 수밖에 없지,라고 심술 반, 왠지 잘난 척 반을 섞어 생각합니다.

일요일이 되어서 간단한 메뉴로 만든 도시락을 모세씨의 차에 싣고 출발했습니다. 모세씨의 차는 은색 차체로 바퀴살도 반짝반짝 빛나는 신형입니다. 나기 오라버니가 여태 타고 다니는 낡은 차와는 딴판으로 진동도 소음도 별로 없습니다. 안락하게 실려 가는 길이었습니다. 몸은 그처럼 편안하고 날씨는 좋은데 마음은 어둡고 어딘가 강하게 구겨져 있었습니다. 주먹밥, 계란말이, 열무, 가지무침, 뒷좌석에 실린 도시락에서 희미하게 풍겨오는 냄새를 맡으며 말없이 뒤로 흐르는 풍경을 바라보았습니다.

방명록에 이름을 적고 커다란 원탁이 놓인 응접실에서 애자를 기다렸습니다.

모세씨는 의자에 침착하게 앉아 창밖을 내다보고 있습니다.

창밖은 완전한 무더위. 바람도 습기도 거의 없이 햇빛으로 건조하게 끓는 듯한 오후였습니다.

응접실을 향해 발을 끌며 다가오는 소리를 듣고 바라보니 십대 후반으로 보이는 여자아이였습니다. 살집이 오른 몸에 고개를 숙인 채로 걷고 있었는데 단발로 자른 머리카락으로 얼굴을 가린 모습으로 슬리퍼, 스케치북, 인형을 담은 투명한 상자를 소중한 듯 안고 있었습니다. 엄마,라고 말하며 응접실로 들어서서 문득 방향을 잃은 듯 멈춰섰습니다. 간호사가 그녀를 따라들어와서 그녀의 팔에 자신의 팔을 끼웠습니다. 엄마는 여기에 없어. 엄마는 집에 있어. 엄마에게 전화해볼까. 우리 같이 전화해볼까. 간호사는 그렇게 달래고 여자아이는 서툴고 경직된 몸짓으로 그녀를 밀어내고 있었습니다. 모세씨의 곁에서 그 조용하고도 완강한 실랑이를 지켜보고 있을 때 또다른 간호사가 나타나 애자의 보호자를 찾았습니다.

움직이고 싶지 않아.

애자가 그렇게 말을 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병실에서 만나보기로 했습니다. 보자기로 묶은 도시락을 쥐고 간호사의 뒤를 따라 위층으로 올라갔습니다. 휠체어로 이동할 수 있도록 계단 없는 완만한 비탈로 만든 복도를 지나서 간호 데스크와 플라스틱 블록을 끼운 채광창과 휠체어에 앉아 일광욕을 하고 있는 할머니들 곁을 지나 애자의 병실로 들어섰습니다.

꽃.

꽃이었습니다.

 

꽃?

그렇게 묻는 소라를 향해 고개를 끄덕이고, 계속합니다.

 

사방이 꽃이었습니다.

벽에서 천장까지, 점점이 붙여나간 종이꽃으로 꽃 천지.

납작하고 겹으로 부풀고 크고 작고 가늘고 둥글고 뾰족한 것. 그처럼 종이로 만들어진 수백송이의 꽃이 벽에 달라붙어 있었습니다. 압도적으로 흰 것이 많았고 붉고 푸르고 노란 것들도 어딘지 채도가 부족해 무척 창백한 광경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건 무슨 꽃일까. 어떤 꽃이라고 해야 할까. 시들지 않고 썩지도 않고 먼지에 덮인 채로 다만 먼지가 되어갈 뿐인 꽃. 그런 꽃과 꽃.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마음과 끔찍하다고 생각하는 마음이 뒤섞여 동요하고 말았습니다. 애자는 침대에 앉아서, 밖으로 터지고 번진 듯한 애자의 내면으로 발을 들인 사람들을 잠자코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나나는 침대 곁에 마련된 긴 의자에 앉아 도시락을 무릎에 올렸습니다. 도시락의 무게로 무릎을 누르며 애자를 마주보았습니다. 오랜만이었습니다. 그 이름 그대로 사랑으로 가득했으나 사랑을 잃은 사람. 애자의 실물, 하고 생각하며 바라보았습니다. 나나 내면의 애자보다도 연약하고 부드러워 보이는 실제의 애자에게 모세씨를 소개했습니다. 아기를 가졌어요, 이 사람이 아기 아버지,라고 말하자 모세씨가 꾸벅 인사하며 장모님, 하고 불렀습니다. 애자는 별다르게 놀라는 기색이 없었습니다. 가타부타 말은 않고 말간 눈으로 나나와 모세씨를 번갈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도시락을 펼쳤으나 아무도 먹으려들지 않았습니다. 거듭 권하자 가지무침 한점을 모세씨가 받아먹었을 뿐 그뒤로 더는 누구도 먹지 않았습니다. 도시락을 펼쳐두고 셋이서 물끄러미, 그저 앉아 있었습니다.

주차장으로 내려오는 길에 모세씨는 연못을 내려다보며 담배를 피웠습니다. 연꽃 봉오리가 연못 복판에서 개화를 대기하듯 봉긋하게 닫혀 있었습니다. 모세씨는 절반이나 남은 담배를 연못을 향해 던졌습니다. 겹겹으로 얽힌 뿌리가 들여다보이는 검은 물 위로 모세씨의 담배가 백묵처럼 반듯하게 떠 있는 광경을 나나는 바라보았습니다.

 

자정을 넘어 이제는 어제의 일정이 되어버린 일입니다.

마주 앉은 소라에게 이런 이야기를 들려준 뒤 밤 소나기가 내리는 소리를 듣습니다.

소라가 자리에서 일어나 거실 창을 닫고 돌아옵니다. 오늘은 거실에서 이불을 펴고 잘까,라고 묻습니다. 각자의 방에서 이불을 끌고 나와 거실에 펼칩니다. 낮에 도시락을 만드느라고 사용했던 식초와 기름 냄새가 희미하게 밴 거실에 잠자리를 준비합니다. 불을 끄고 나란히 눕고 나니 빗소리는 더욱 거세게 들려옵니다. 별다른 비 소식이 없었으므로 소나기라고 생각했는데 좀처럼 그치지 않고 만만치 않은 폭우로 쏟아지고 있습니다. 이 비는 어쩌면 요양원 부근을 훑고 이곳에 당도한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모세씨가 연못에 버린 담배는 이 비에 다 풀어졌을까. 지금쯤 연못 바닥으로 가라앉았을까. 어둠 속에서 눈을 뜬 채로 모세씨가 담배를 버린 순간을 생각합니다. 담배 끝에 달려 있던 빨간 불씨, 그 불씨가 수면에 닿아 조그만 소리를 내며 사라졌던 순간을 웬일인지 반복해서 생각합니다.

그래서,라고 소라는 말합니다.

그래서 모세씨는 뭐래.

그래서,라고 나나는 생각합니다.

뭐라고 했느냐면…… 비밀.

비밀로 하자고 했으니까. 적당하게 비밀로 하는 것이 좋겠다고 모세씨는 말했는데, 그런 이야기는 왠지 소라에게는 할 수 없으니까. 비밀. 조용하게 숨을 쉬며 생각합니다. 적당하게,라니 그것은 어느 정도일까. 모처럼 바깥이 서늘한데 창을 열어둘 수 없다고 작게 투덜거리자 그러게,라고 소라는 대꾸합니다. 한차례 잦아들었다가 다시 거세지는 빗소리를 듣습니다.

전화벨이 울리는 소리를 듣고 눈을 뜬 것은 그로부터 얼마 되지 않아서였습니다. 삼십분 정도 잠들었을 뿐인데 몸이 무겁게 가라앉아 꼼짝할 수가 없습니다. 간신히 상반신을 일으키고도 등이 무거워 한동안 그대로 있다가 한숨을 쉬고 난 뒤에야 전화기를 집습니다. 소라가 곁에서 부스럭거립니다.

여보세요.

여보세요.

 

있지.

애자는 거두절미, 행복하니,라고 묻습니다.

이쪽의 대답은 기다리지 않고, 아기를 가져서 행복하니,라고 다시 묻습니다.

행복하니. 행복하니. 행복하니.

행복하니.

저주처럼, 몇번이고 반복되는 질문을 듣습니다.

……왜 행복하냐고 물을까.

애자는 아이를 낳고, 행복했을까.

소라와 나나를 낳고, 행복했을까.

행복했으므로 행복할 것이라고 생각해서 행복하냐고 묻고 있는 걸까. 얼음물을 뒤집어쓴 것처럼 머리끝부터 서서히 차가워집니다. 전화기를 쥔 손이 싸늘해, 이대로 얼어붙는 것은 아닐까, 멍하게 생각합니다. 어느 틈엔가 일어나 앉아 있던 소라가 전화기를 가져가 자신의 귀에 대고 듣습니다. 나나는 소라의 귀를 통해 애자의 말을 듣습니다.

있지.

 

왜 너희는 행복하니.

왜 너희만 행복해지려고 하니.

 

*

 

계속해보겠습니다.

 

각오를 하고 뭔가 대단하게 정식으로 치러야 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뜻밖에도 소라와 모세씨의 첫 대면은 간단하게 이루어졌습니다. 나나를 데리러 왔던 모세씨가 집까지 올라와서, 소라가 문을 열어서, 그렇게 말입니다. 소라는 처음에 어리둥절하고 당황한 기색이었으나 모세씨를 안으로 들여서 차를 대접했습니다. 현관에서 배웅할 때는 잠깐 생각하는 듯하더니 조만간 만두를 만들 일이 있는데 그때 꼭 먹으러 와요,라고 초대까지 했습니다. 이렇게나 수월하게 풀렸는데도 뭔가 개운하지 않네,라고 생각하고 있던 차, 여름은 무르익고 있었습니다.

올해의 첫 태풍 소식과 더불어 부고를 받았습니다. 뜻밖의 사고를 당한 사람은 압둘이라는 별명을 가졌다는 사촌으로, 교통사고였다는 소식이었습니다.

만두를 만들자.

그렇게 약속해둔 날을 하루 앞두고 만두소로 사용할 고기를 사러 나온 자리에서 연락을 받았습니다. 이름도 얼굴도 제대로 모르는 친척의 전화를 받은 사람은 소라였습니다. 오라버니의 곁에서 고기를 고르다가 뒤를 돌아보니 소라가 전화기를 쥐고 얼떨떨한 얼굴을 하고 있었습니다. 죽었대,라고 하는 말을 듣고 죽었대?라고 묻고 말았습니다. 얼떨떨해진 채로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았습니다.

장례식장에 가봐야 하는 것 아니냐고 오라버니는 말했습니다.

아닌 게 아니라 소라는 전화를 걸어온 친척으로부터 이제는 너희도 어른이 되었으므로 이런 자리에 다녀야 도리라는 충고를 들은 모양이었으나 그 말 듣고 보니 웬 도리, 하고 도리어 사납게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네. 금주씨의 사망 보상금과 애자를 두고 흉한 모습을 보였던 사람들이 이제 와서.

가지 말자.

가서 뭐해,라고 졸랐으나 그래도,라는 소라의 의견에 오라버니까지 힘을 보태서 결국은 가자는 방향으로 결정되고 말았습니다. 엉겁결에 나기 오라버니까지, 장례식장으로 출발하게 되었습니다.

 

가서 뭐해.

그렇게 물었으나 실은, 가서 뭐라고 말을 해,라고 하는 쪽에 가까웠습니다.

뭐라고 말을 해.

할 말이 없으므로 말할 것이 없는 것이 아니고 할 말이 차고 넘쳐 말할 수 없는 경우입니다. 장례식장엔 친척들이 모였을 것입니다. 사촌보다도 죽음보다도 그의 죽음을 애도하는 심정보다도 그 장소에서 그들과 마주치게 될 일을 생각하느라고 마음이 소란스럽습니다. 잔뜩 말하고 싶어. 그들의 얼굴 앞에 서서 그들에게 묻고 대답을 듣고 잔뜩 말을 하고 싶어. 잔뜩. 잔뜩. 잔뜩. 소라와 나나가 얼마나 외로웠는지. 실은 얼마나 고요하게, 그들을 원망했는지. 그렇게 죽음은 멀고 마음은 넘쳐나는 채로 오라버니의 스쿠프에 못마땅한 기색으로 실려 가는 길이었습니다.

자기까지는 아무래도 좀 그렇다며 너희끼리 다녀와,라고 말하는 오라버니를 주차장에 두고, 소라와 둘이서 장례식장으로 올라갔습니다. 역시나 많은 사람들이 당도해 있었습니다. 다음에 만난다면 영정으로 뵙게 될지도 모르겠네,라고 생각했던 할머니도, 검은 옷을 입고 친척들 틈에 앉아 조문객을 노려보고 있었습니다. 희고 노란 국화에 파묻힌 듯한 모습으로 사촌의 영정이 마련되어 있었습니다. 소라와 번갈아가며 분향을 하고 두 손을 모으고 서서 젊은 사촌의 얼굴을 바라보았습니다.

기억에 있는 모습이라곤 단 하루, 함께 오리를 먹으러 갔을 때 뿐입니다.

그때에 나나는 다분히 공격적인 호기심에 따라나섰을 뿐 사촌에게는 조금의 관심도 없었습니다. 그토록 세월이 흐르도록 애자에 관한 것은 단 한마디도 묻지 않는 백부와 백모에게, 왜 애자에 관해서는 묻지 않느냐고 물을 작정, 그것 한가지만 품고 있었으니까.

자그자그자그자그.

사촌의 심장도, 어느 시기엔 그렇게 바쁘고 조그맸겠지.

그것을 백모도 가만히 감각한 날이 있었겠지.

활달하고 의기양양했던 백모는 검은 상복을 입은 사람들에게 둘러싸인 채로 바닥에 엎드려 있습니다. 기도를 올리는 사제에게 두 손을 잡힌 채로 다시는 열지 않을 것처럼 고통스럽게 눈과 입을 닫은 옆모습이 보입니다.

자식을 잃은 사람.

그 압도적인 고통이 나나에게는 없습니다.

 

숨을 들이쉬다가 딸꾹질을 하는 듯한 호흡이 되고 말았습니다.

비로소 자각했습니다.

나는 내 고통에 대해서만 생각하고 싶었을 뿐, 저기 분명한 고통에 관한 것은 생각해보려고 하지도 않았다는 것을. 그거야말로 나나가 가장 혐오하는 애자와 가장 가까운 마음이라는 것을.

그 옛날, 나기 오라버니가 나나의 뺨을 때려 가르쳐준 것을 완전하게, 잊고 있었다는 것을.

 

사람은 그렇게 괴물이 되는 거야.

잊지 마.

그렇게 뼈저리게 들은 당부를 이 순간,만은 아니고 순간, 순간, 자연스럽게, 잊고 있었다는 것을.

 

장례식장으로 올라서는 마루 밑엔 제짝을 단번에 구별하기 어려울 정도로 많은 신발들이 널려 있었습니다. 소라와 마루 끝에 서서, 그야말로 발 디딜 틈이 없도록 놓인 신발을 내려다본 끝에 각자의 것을 찾아냈습니다. 구두를 신고 주차장으로 돌아갔습니다. 오라버니는 바람을 쐬러 차 밖으로 나와 있었습니다. 바지 주머니에 손을 찌르고 반송(盤松)과 단풍이 자란 화단에 걸터앉아 있습니다. 나기야, 하고 소라가 손을 흔들자 어, 하듯 오후의 그늘 속에서, 턱을 들어올립니다. 햇빛 때문에 눈을 찡그리고 있네. 웃고 있지 않은데도 늙어 보이는 얼굴. 깜짝 놀랄 정도로.

나나는 저 사람의 어린 시절을 알고 있습니다.

나 말이야.

오라버니의 아이를 낳고 싶었어.

 

그런 소원을 지닌 시절이 있었다는 것은 비밀.

비밀이야.

 

계속하겠습니다.

 

*

 

어떻게 됐나요?

모세씨의 어머니는 여전히 하루 간격으로 전화를 걸어와 묻습니다.

1월엔 7일이 길일이라네요.

길일이요?

그렇게 묻자 아기에게,라고 대답합니다.

전화기를 귀에 댄 채로 고개를 들자 사무실 파티션 너머로 모세씨의 모습이 보입니다. 책상 위로 고개를 숙이고 무언가를 들여다보고 있습니다. 모세씨의 어머니가 계속합니다. 1월에 태어날 아기인데 산달에 가장 좋은 날짜가 7일이니 아기는 바로 그날에 태어나야 한다고 말입니다. 그러네요, 그날이 좋다니 그날이면 좋겠네요, 하지만 그게 마음대로 되나요, 마음대로 나오나요. 그렇게 말하자 모세씨의 어머니는 그날에 낳아야죠,라고 대꾸합니다.

그날이 좋다니까 그날 배를 열어야죠.

………

수술로, 날짜를 맞춰야죠.

……그렇게 하면 아프잖아요?

그렇게 묻자 전화기 저편에서 무슨 말이냐는 듯 코웃음을 치는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어차피 겪을 거잖아요?

 

최근, 모세씨와 교외로 나갔던 첫 데이트를 떠올리는 일이 잦습니다.

수목원이었지.

사무실에서는 각자의 일을 하고 퇴근하는 길에 저녁을 함께 먹고 모세씨가 집까지 바래다주면 집 앞에서 내일 봐요, 하며 헤어진 뒤에 정말로 다음날 사무실에서 다시 만나는 나날이 고요하게 이어지던 즈음이었습니다. 하루는 회사 부근에서 단둘이 점심을 먹다가 날씨가 너무 좋아서, 조금 멀리 가보고 싶네,라고 혼잣말을 했습니다. 모세씨는 어디를 가고 싶으냐고 물었습니다. 그냥 조금 멀리,라고 대답한 뒤에 잊어버렸는데 며칠 뒤에 모세씨는 어디를 가고 싶으냐고 다시 물어왔습니다. 처음엔 별로, 특별하게 가고 싶은 곳은 없다고 대답했다가 그뒤로도 집요하게 몇번이고 물어와서 깊이 생각하지 않고 수목원이라고 대답했더니 수목원, 하고 모세씨는 고개를 끄덕이며 깊이 새기는 눈치였습니다. 이윽고 돌아온 주말에, 큼직한 피크닉 바구니까지 마련해서 나나를 데리러 왔던 것입니다. 신중하게 자동차를 몰아가면서 모세씨는 지금부터 가려는 수목원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원시림이래요. 전쟁 때 생긴 상흔으로 연리지(連理枝)가 되어버린 나무가 있대요. 조수석에 앉아서 고개를 끄덕이며 그런 이야기를 들었지만 원시림에서 자기들끼리 잘 얽혀 자라는 나무에게까지 인간적인 의미를 걸어두다니, 인간이란 참 인간적이네요, 어쩌고 생각하며 심드렁하게 실려 가고 있었습니다.

수목원까지는 자동차로 두시간을 달려야 하는 거리였는데, 도착하고 보니 입장이 되지 않는 날이었습니다. 쇄도하는 방문객으로부터 원시림을 보호하는 시기였던 것입니다. 검정과 노란 줄무늬가 그려진 바리케이드가 숲으로 올라가는 비탈 입구를 묵직하게 가로막고 있었습니다. 모세씨는 바리케이드 앞에 선 채로 그 너머의 숲을 우두커니 바라보았습니다. 쌘드위치에 자몽에 탄산수에 금속 나이프와 포크와 도자기 접시까지 담긴 진짜 피크닉 바구니를 한손으로 들고, 어쩌지,라고 중얼거리며 둥근 귀를 붉힌 모습으로 당황하고 있었습니다. 바구니의 무게로 손잡이를 잡은 손마디가 하얗게 질려 있었습니다. 안쓰럽다고 생각했습니다.

수목원에 가고 싶다는 대답은 대강이었는데.

대강의 대답을 듣고 이렇게 노력하는 서툰 사람.

사랑스럽다고 생각했습니다.

 

사랑스럽지만 가족이 될 수는 없어.

그렇게 생각하기 시작한 순간이 언제부터였는지를 말해보겠습니다.

 

어차피 겪을 거잖아요.

듣기에 따라서는 묘하게 차가운 하대로 마무리된 저 날의 통화 뒤로, 내내 궁금하던 것을 모세씨에게 물어보았습니다. 퇴근하는 길에 들른 쌜러드 전문점에서, 좀 잘못된 장소였는지도 모르겠네, 고무나무를 우묵하게 깎아 만든 그릇에 담긴 야채를 포크로 덜어내 골똘히 들여다보며 먹다가, 요강이오, 하고 말하자 모세씨는 요강? 하고 묻듯 고개를 들었습니다.

요강이오.

네.

모세씨의 어머니가 그것에 관해 좋다거나 싫다거나 말한 적은 없었나요,라고 묻자 모세씨는 달걀노른자 부스러기가 달라붙은 입을 우물거리며 한동안 나나를 바라보았습니다.

없어요.

없어요?

네.

없어요,라고 말하는 모세씨에게 모세씨는 궁금한 적 없었나요,라고 물었습니다. 아버지는 왜 요강을 남의 손으로 비울까, 어머니는 왜 남의 요강을 비울까, 그런 걸 묻고 대답을 듣고 싶었던 적이……

남이라뇨, 하고 모세씨가 되물었습니다.

남이라고 할 수 있나.

남이 아니에요?

어떻게 남이죠?

남인데.

가족인데.

가족은 남이 아닌가요?

남이 아니죠.

단호하게 말하고 모세씨는 포크로 찍은 당근을 입에 넣고 오독오독 씹었습니다.

그러면 모세씨는요? 모세씨도 가족인데, 모세씨도 요강을 비워본 적 있나요.

……왜 그런 걸 자꾸 물어요?

궁금해서요.

모세씨는 한숨을 쉬면서, 등받이 쪽으로 푹 꺼지듯 기대앉더니 부부잖아요,라고 말했습니다. 두 사람은 부부잖아요, 부부 사이에 그 정도는 있을 수 있는 일 아닌가? 그런 말을 끝으로 이제 이 이야기는 끝,이라는 듯 탁자 쪽으로 몸을 당기고 왕성하고도 완강하게, 쌜러드를 먹고 있었습니다. 나나는 접시에 놓인 올리브를 포크로 굴리며 내려다보았습니다. 모세씨에게 부부는 그런가, 가족은 그런가, 남이 아닌 걸까. 나나도 모세씨의 가족이 되면 남이 아니게 되는 걸까. 모세씨네 이상한 텔레비전 시청. 그것은 시청이라고 해야 할지 대화라고 해야 할지. 나나도 언젠가는 텔레비전을 향해 말하게 되는 걸까. 나란히 앉아서도 텔레비전을 향해 묻고 텔레비전을 향해 대답하는, 어쨌든 남이 아닌 사람들. 보통의 가족이란 그런 걸까. 나나와 소라는 경험하지 못했으므로 그런 걸 모르는 것일 뿐인 걸까. 하지만.

여전히, 하지만.

애자의 일은 비밀로 하자고 했으면서.

그것은 어째서일까. 남도 아니고 가족이라서 배설물을 맡기는 것은 괜찮다고 하면서, 왜 애자는 비밀이 되어야 하는 걸까. 왜 나나는 애자를 비밀로 해야 하는 걸까. 빈손으로 나이프를 쥐었다가 차갑고 묵직한 금속의 느낌에 섬뜩해서, 도로 내려놓고 두 손을 무릎에 올렸습니다.

아까부터 토라진 듯한 얼굴을 하고 묵묵히 쌜러드를 먹고 있는 모세씨에게 모세씨, 하고 말했습니다.

모세씨는 나하고 틀림없이 결혼할 생각인가요?

네.

아이가 있으니까?

……그게 수순이기도 하고.

수순이요?

당연한 것 아닌가요?라고 되묻는 모세씨에게 그런데요,라고 말했습니다.

나는 모세씨하고는 결혼할 수 없어요.

 

*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그간의 여러가지 일로 미뤄지고 미뤄지고 미뤄졌던, 만두를 만드는 날이 되었습니다.

소라와 나나와 나기 오라버니가 만두를 만들기로 할 때 그 만두는 순만두, 오라버니의 어머니인 순자의 순()을 붙여 그렇게 부릅니다. 특별한 방법은 없고 고기 듬뿍, 두부 듬뿍, 김치를 듬뿍 사용해서 만드는데 듬뿍의 기준은 어디까지나 아주머니의 손어림입니다. 그밖엔 오라버니의 반죽으로 만두피를 만든다는 점 정도. 그뿐인데 그 점이 중요해서, 다른 사람의 배합이나 반죽으로는 순만두의 맛과 촉감을 낼 수 없습니다. 만두를 만들 일이 생기면 오라버니는 일찍부터 밀가루를 담은 그릇을 다리 사이에 끼고 앉아 반죽을 해둡니다. 표면이 보송보송해질 때까지 치대다가 랩으로 싸서 반죽 그릇 안에 몇시간이고 내버려둔 뒤에 랩을 벗겨내면, 반죽은 발효되어 약간 미지근하고 부드럽게 부풀어 있습니다. 그대로 쪄내도 맛있을 것처럼 보이는 덩어리에서 엄지 한 마디 굵기로 조금씩 반죽을 떼어가며 작업합니다. 밀가루를 뿌린 도마 위에서 방망이로 가급적 균질하게 밀어 너무 얇지도 두껍지도 않게 피를 만들어냅니다. 만두의 형태는 두가지로 정해두고 기름에 구워 먹을 납작한 것, 찌거나 국으로 끓여먹도록 둥글게 여민 것을 만듭니다. 그렇게 정해두었지만 실은 반드시 그렇게 하라고 정해진 것도 아니라서 이따금 나뭇잎 모양으로 만들거나 송편처럼 날렵하게 만들어보는 일도 있습니다.

애초 나기 오라버니의 집에서 만들기로 했으나 미뤄지고 미뤄지는 동안 묵은 김치의 양이 늘어 결국 순자 아주머니네로 결정되었습니다. 모세씨도 오라고 해야지,라는 소라의 말에 잠깐 생각을 해보고, 됐다,라고 대답합니다. 모세씨도 함께 가기로 했던 만두 빚는 자리에 소라와 둘이서 가게 되었습니다. 소라는 나나에게 싸웠느냐고 묻고 나나는 모세씨가 화가 났다고 대답합니다.

모세씨하고는 결혼할 수 없어요.

그렇게 말한 날부터 여태, 모세씨는 한마디 말도 없이 고요하게 화를 내고 있습니다.

그럼 우린 뭐가 되나요.

결혼하지도 않고, 가족이 되지도 않고, 뭐가 되나요.

그렇게 묻고는 벌써 열흘째 말을 걸어오지도 않고 곁에 다가오지도 않습니다. 가족이 될 수 없다는 것이 아니고 그런, 가족이 될 수 없다는 것이라고 말하려고 해도 들으려 하지 않습니다. 사무실에선 각자의 일을 하고 점심도 각자, 다만 퇴근할 무렵에, 하던 일을 정리하고 자리에 앉아서 가만히 이쪽을 바라봅니다. 먼저 다가와서 미안하다고 말을 걸고, 일전의 그 말은 없던 셈 치고, 같이 집으로 돌아가요,라고 해주기를 기다리는 것 같은 모습입니다. 안타까워, 파티션 너머로 그 눈을 마주 바라보지만 나나에게도 양보할 수 없는 것이 있으므로 다가가지 않습니다. 내다버린 것 같은 마음에 죄책감을 느끼면서도 다가갈 수 없습니다.

있잖아.

아주머니네로 가져갈 수박을 고르는 자리에서, 결혼하지 않을 거라고 소라에게 고백합니다.

뜻밖에도 퉁명하게 나온 말투에 마음도 덩달아 퉁명해지고 말았습니다. 소라는 알았어,라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자두를 내려다봅니다. 순순한 그 모습에 분통이 터져 눈물이 핑 돌고 맙니다. 소라는 이렇지, 이게 문제, 이게 뭐야,라고 생각합니다. 아기는 혼자 키울 거야,라고 퉁명하게 덧붙이자 왜 혼자야,라고 조그맣게 대꾸합니다.

내가 같이 키울 거야.

의지해봐, 신뢰가 가지 않는 가느다란 목소리로 덧붙이는 말을 듣고 퍽이나,라고 생각합니다.

진짜 퍽이나. 힘도 무엇도, 나나보다도 약한 사람이.

 

건물 외벽에 붙은 계단을 올라가며 우리 왔어요,라고 외칩니다. 플라스틱 대나무 발이 두겹으로 드리워진 문은 바깥쪽을 향해 열려 있습니다. 일찍부터 반죽을 마쳐두고 기다리고 있던 오라버니가 계단을 올라오는 기척을 듣고 현관에 나와 있습니다. 소라에게 수박이 담긴 망을 받아서 부엌으로 가져갑니다. 뭐 이런 걸 사오고 그러냐, 하면서도 아주머니는 수박을 반기는 기색입니다. 바로 도마를 내려 반으로 자른 뒤 랩을 씌워 냉장고에 넣어둡니다. 이렇게 움직이는 와중에도 나나야 배는 어떠냐,라고 물으며 오라버니에게 새 방석을 내주라고 말합니다. 만두를 만들 준비로 어수선한 거실에서 소라는 식혜를 한잔 받고, 나나는 보리차를 한잔 받습니다. 목이 말랐던 참이라 보리차를 단숨에 마시고 빈 컵을 부엌으로 가져가서 식혜를 달라고 조르자 임산부와 수유하는 사람은 먹는 것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왜요,라고 묻자 젖이 마른다,라고 대꾸하며 야, 주는 대로 먹어라,라고 맑은 목소리로 쏘아붙입니다. 톱밥에 묻어둔 사과 냄새. 과일가게를 그만둔 지도 수년은 되었는데 아주머니의 집과 아주머니에게서는 여전히, 궤짝에 담긴 과일 냄새가 납니다. 노점 생활로 얼었다 풀리기를 반복해 적갈색을 띠고 있는 얼굴을 들여다봅니다. 넉달 만이네. 언제나 봐온 것 같은데 돌이켜보면 항상 그 정도는 시간이 흐른 뒤라서 애틋하고 무섭습니다.

아주머니, 혹은 어머니.

어느 쪽이든 상황에 따라 자연스럽게 부르곤 하지만 애자와는 다르게 순자,라고 부를 수는 없습니다. 일단은 오라버니가, 순자,라고 부르지 않으니까.

순자와 애자.

때때로 생각할 때가 있습니다.

소라와 나나는 아주머니의 밥을 먹고 자랐으므로 우리 자매에게 집 밥, 하면 마땅하게 이 집의 밥과 반찬입니다. 아주머니의 손맛. 성장기에 압도적으로 그 맛에 물들었으므로 아무리 맛있는 것을 먹어도 이 집 이외의 맛은 소라에게도 나나에게도, 남의 집 맛입니다.

그런데도 때때로 생각할 때가 있습니다.

순자의 전심전력보다는 애자의 전심전력이 완전한 것은 아닐까.

남몰래 이렇게 생각하곤 하는 나나는 아무래도, 애자와 가장 닮은 천성을 지녔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전심전력, 그러므로 나나는 그것을 경계하고 있습니다.

 

만두를 만들다보면 자연스럽게 옷을 망치게 되므로 작업복이 필요합니다. 옷을 갈아입습니다. 오고 가며 얹어둔 잡동사니가 화장품보다도 많은 화장대가 있는 방에서, 아주머니가 내준 일바지를 입자 몸가짐이 저절로 아주머니를 닮아버립니다. 만두소가 담긴 스테인리스 대야를 향해 편하게 앉자마자 순자 아주머니와 같은 포즈라는 것을 자각하고 즐거워집니다. 그리웠다고 생각합니다. 최근의 나나에게 결정적으로 부족했던 것은 이것이었구나,라고 생각합니다.

속 먹으라고 만두, 겉 먹으라고 송편.

그렇게 말하며 아주머니가 만두소에 마지막 첨가물인 다진 파를 붓습니다. 파는 맨 마지막입니다. 처음부터 넣고 버무리면 파가 뭉개져 끈적끈적하고 비리다,라고 알려준 사람은 아주머니입니다. 가르침 받은 대로 최대한 적은 힘과 적은 손짓으로 휙, 버무립니다. 오라버니와 소라가 만들어내는 빈 만두피를 손바닥에 올려 속을 채우고 오므립니다. 속도가 달라 만두피가 쌓이면 오라버니가 혹은 소라가 만두소 쪽으로 붙어 만두를 만들다가 만두피가 부족해지면 다시 만두피 작업으로 돌아갑니다. 일단 오므린 만두는 밀가루에 한번 눌렀다가 쟁반에 늘어놓아야 달라붙지 않습니다. 이렇게 늘어놓은 만두는 소라와 나나와 오라버니의 것이 다 다른 모습. 아주머니가 쟁반째 그 만두를 쓸어다가 김이 오르는 솥에 쪄냅니다. 냉동실에 두고 먹을 만두라도 일단은 쪄내야 터지지 않는다는 것을 알려준 사람도 아주머니입니다. 만두를 쪄내는 김이 서린 공간에서 송골송골 맺힌 땀을 닦아가며 배운 대로 천천히 만듭니다. 틈틈이 복숭아를 먹고 수박을 먹어가며 한쪽에서는 만들고 한쪽에서는 쪄내고. 제사를 지낼 때 사용하는 큰 상을 가득 채우고도 거실 곳곳에서 각종의 쟁반에 놓인 채로 모두의 만두이자 각자의 만두, 투명하게 식어갑니다.

새로 버무린 만두소의 간을 보라며 가져다준 뜨거운 만두를 밀가루 묻은 손으로 덥석 집어먹습니다.

어떠냐고 묻는 말에 맛있다고 대답합니다.

맛있어.

정말로 맛있어.

그립고 즐겁고 애틋하고 두렵고 외롭고 미안하고 기쁜 마음이 뒤섞여 뒤죽박죽.

엉망진창입니다.

 

*

 

만두를 만드는 날의 마무리는 만둣국.

그렇게 정해져 있습니다.

김을 내며 끓고 있는 물에 만두를 넣기 직전, 계란이 떨어진 것을 알아냈습니다. 만둣국엔 마지막에 계란을 풀어야 국물이 쓸쓸하지 않다는 것이 아주머니의 방식이고 어느 틈엔가 소라도 나나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다녀오겠다며 나서는 오라버니를 말리고 바람도 쐬고 조금 걸어볼 겸 집을 나섰습니다. 해질 무렵이었습니다. 근처 슈퍼마켓에서 계란과 비스킷과 내친김에 우유도 사서 봉지에 담아들고 돌아오는 길에 모세씨를 보았습니다. 문이 닫힌 두유 대리점을 등지고 서서 아주머니네로 올라가는 계단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나는 앞섶에도 밀가루, 바지 자락에도 밀가루, 머리카락에도 밀가루 반죽이 묻은 모습인데 그런 모습이라서 피곤하고, 조금 부끄러웠습니다. 모세씨, 하고 부르자 침울하게 입을 다문 얼굴로 이쪽을 돌아보았습니다.

여긴 어떻게 왔어요?

……따라왔어요.

어디서요?라고 물으니 모세씨는 고개를 숙이며, 집 앞에서,라고 대답했습니다.

기다리고 있었는데, 나나씨가 나오기에.

바깥에 여태 있었어요?

네.

왜요,라고 묻지는 않고 입을 다물고 바라보았습니다.

나나씨, 내가 싫어요?

싫어졌나요,라고 모세씨는 물었습니다.

……아뇨.

그럼 결혼해요. 나하고 살아요.

싫어요.

가족이 되어야죠,라고 모세씨는 말했습니다.

모세씨.

………

좋아해요.

………

하지만 모세씨가 바라는 가족은 될 수 없어.

……나나씨는 이기적이네. 자기 생각만 하고 있어. 아이는 어떡하고요. 아이가 자라면서 받게 될 사회적 데미지는 어떡하고요.

데미지라니, 이상한 순간에 영어를 사용하네…… 귀여워,라고 생각한 순간 어깨를 잡혔습니다. 눈앞으로 바짝 다가온 모세씨의 얼굴은 며칠 사이에 가칫하게 말라 있었습니다. 모세씨의 엄지가 견갑골을 찌르듯 눌렀으나 압도적으로 집중하고 있는 모세씨의 눈을 들여다보느라고 아픔을 느낄 겨를이 없었습니다. 우린 어떡해요,라고 모세씨는 말했습니다.

나나씨는 아이를 아버지 없이 기를 작정입니까. 내가 있는데? 아버지가 있는데? 내 아이인데? 나도 아이에 관해서는 권리가 있는데? 나는 어떡하라고. 내가 어떡하라고. 그리고 우리는? 우리는 무슨 관계야? 무슨 관계가 되나요? 아이도 있는데? 결혼하지 않고? 번갈아가며 키우나? 나나씨는 그런 걸 원하나요? 그게 무슨 가족이야? 그게 말이 되나요? 말이 되나 그게? 말이 되냐고.

모세씨의 손에 양쪽 어깨를 비좁게 잡힌 채로 앞뒤로 흔들리고 있었습니다.

괴로웠습니다.

딴에는 다만 어깨를 필사적으로 잡은 것뿐인지도 몰랐으나 두개의 엄지가 목을 강하게 파고들어 숨이 막혔는데 모세씨는 그것을 모르고 계속 힘을 주고 있었습니다. 차츰차츰 더 강하게 힘을 주며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안되겠다. 정신을 잃을 수도 있겠다.

그렇게 생각하고 모세씨의 팔을 잡았습니다. 미끈미끈하게 땀이 밴 팔뚝을 손톱으로 움켜쥐자 미간을 찡그리면서도 모세씨는 손을 풀지 않았습니다. 모세씨는 여태도 무언가를 말하고 있었으나 나나는 목을 졸려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습니다. 고요하게, 목을 졸리고 있었습니다.

자그자그자그자그.

등뼈 끄트머리쯤을 세차게 두드리는 것이 있었습니다. 깜짝 놀라 팔을 휘두르고, 사람의 피부를 할퀴었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모세씨의 왼쪽 뺨에 핏방울이 맺히는 것을 아득한 눈으로 바라보았습니다.

모세씨, 하고 생각했습니다.

아프지 않아?

잊지 마.

남의 슬픔이나 고통에 감응하는 것은 그다지 자연스럽고 당연하게 일어나는 일은 아니니까, 오히려 그런 것쯤 없는 셈으로 여기며 지내는 것이 자연스럽다고 할 수 있는 정도니까, 기억해두지 않으면 안되는 거야. 이 정도로 아팠지. 그 정도로 아팠지. 그런 것은 잊기가 쉽기 때문에 잊어서는 안되는 거야.

잊으면 괴물이 되는 거야.

해질 무렵의 빛은 눈부시고, 감은 눈 속에서도 선명한 오렌지색이었습니다.

으아악, 하고 외치는 목소리를 들었습니다.

강한 충격으로 모세씨의 손이 떨어져나가고 다리에 힘이 풀려 바닥에 주저앉았습니다. 손아귀에서 풀려난 뒤로도 기도가 달라붙은 듯한 느낌에 숨을 쉬는 것이 곤란했습니다. 바닥에 엎드린 채로 기침을 하고 있는데 소라의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외치고 있었습니다. 너, 나나를, 나나를 이렇게, 가만두지 않아, 죽여버린다, 내가 한다, 나나야, 내가,라고 귀신처럼, 외치고 있었습니다. 그게 뭐야,라고 생각했습니다. 그게 무슨 말이야.

앞뒤가 하나도 안 맞잖아.

제대로 말해야지,라고 생각한 순간 울음이 터져나왔습니다.

분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언니야,라고 불러버렸던 것입니다.

 

계속해보겠습니다.

(다음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