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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양애경 梁愛卿
1956년 서울 출생. 1982년 중앙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시집『불이 있는 몇 개의 풍경』『바닥이 나를 받아주네』『내가 암늑대라면』등이 있음. neve5@nate.com
아씨들
출근길에 마주친다
오토바이 타고 차배달 가는 아씨들
속치마 같은 초미니 스커트에 등을 훤하게 내놓은 채
굽이 뾰족한 슬리퍼를 신고
보자기를 들고 오토바이에 앉은 모습
같은 여자가 보기에도 뜨겁고 아슬아슬해
아씨나 나나 출근중인데
단란주점, 티켓다방, 방석집, 안마방, 노래방,
아가씨, 도우미, 원조, 미시…
여교사, 여의사, 간호사, 여사무원, 경리, 아줌마, 여주인, 주부…
이 사람들은 어디서 길이 갈렸나
그런 일은 절대로 할 수 없는 여자와
그런 일에 종사하는 여자가 따로 있는 걸까
천성인 걸까
남자동료들과 함께한 술자리가 이슥해질 무렵
날개옷을 걸친 듯 사르르 들어오던 아씨들이
동석한 우리를 보고 움찔하며
상처 입은 표정을 하듯이
우리 또한
좀처럼 손에 들어오지 않는 저 복잡한 별 같은
남자들을 어린애 다루듯 하는 그녀들이 까슬까슬해
남자들은 저 아씨들에겐 관대해
아씨들을 귀여워해
우리와는 더치페이가 고작인데
뭉텅이 돈을 지불할 만큼
우리는 어디서 길이 갈렸나
저 열어놓은 꽃술에서 풍기는 향기와
하루하루 묵묵히 견디는 우리의 노동
아씨들은 존경을 원하고
아내들은 사랑을 원하고
일하는 여자들은 지지를 원하는데
남자들은
아씨들에겐 일부종사
아내들은 꽃이기를
여자동료는 비서처럼 늘 뒤에만 서 있기를 원하는 것 같아서
아무도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하는 혹성에
햇살이 골고루 지루하게 내리고
바람이 야호! 소리 지르며 빌딩 사이를 돌아 사라지고
하늘의 아득한 향기가
지하도 하수구 안으로 끌려들어가 악취가 되는 동안
여자들은
천천히 시든다
지옥 신문을 읽다
동그랗고 순한 눈들
똑같이 갸름한 네개의 하얀 얼굴
길고 곱슬곱슬한 머리칼
사랑스러운 그녀들이
언제
머리를 박살내어 질질 끌고 가서
공동묘지 한구석에 암매장해야 할 괴물들로 변했나
팀을 승리로 이끈 4번타자가
언제 사기꾼, 강도, 연쇄살인범이 되었나
호의를 표시하던 웃음들이
환멸과 증오로 일그러지고
돈이 징그러운 마물(魔物)로 변한 순간
굳세고 믿음직하던 손이
방어할 줄 모르는 목을 졸랐다
가방 하나에 엄마
가방 둘에 둘째딸
가방 셋에 셋째딸
가방 넷에 큰딸
남에게 지는 것,
초라하게 사는 것은 절대로 참을 수 없는 허영심
세상이 자신을 속였다는 증오
수치스러운 카메라 플래시가 펑펑 터지는 환상 속에서
강물에 몸을 던진 남자
흐린 물 속에서 건져올린,
남자의 부릅뜬 눈, 부르쥔 주먹, 앙다문 이
지옥 신문을 읽는다
지옥을 경험한 남자
지옥을 경험한 여자
지옥을 경험한 아이들과 함께
지옥 방 한칸에 세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