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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초점
발랄하게 상상하고 우울하게 인식하라
김애란 소설집 『비행운』
서영인 徐榮裀
문학평론가. 평론집 『충돌하는 차이들의 심층』 『타인을 읽는 슬픔』이 있음.
sinpodo12@hanmail.net
경제적 격차가 취향과 희망의 격차로 이어지는 사회를 우리는 살고 있고, 그 격차가 빚어내는 미묘한 갈등과 불안을 포착하는 김애란(金愛爛)의 감각은 여전히 탁월하다. 특히 그 세계 속에 자신도 포함되어 있음을 겸손하게 인정하고 자신을 성찰하는 인물들과 만날 때 그 감각은 가장 싱싱하게 빛난다. 예컨대 “나도 모르는 곳에서, 내가 아는, 혹은 모르는 누군가가 나 때문에 많이 아팠을 거”(「너의 여름은 어떠니」)라고 고백하는 장면에서, 어쭙잖은 소비의 취향을 고단한 친구 옆에서 멋쩍어하는 윤리(「큐티클」)와 함께. 그런 의미에서 김애란 소설은 아직 3인칭의 조망보다는 1인칭의 성찰에 더 자연스럽다. 그런데 김애란 특유의 따뜻한 공감과 명랑한 긍정이 그 익숙함 너머로 한걸음 발을 디딜 때, 세계는 돌연 비정하고 막막하여 감당하기 힘든 곳이 된다.
아마도 김애란의 세번째 소설집 비행운(문학과지성사 2012)을 말하기 위해서는 이 지점에서 시작해야 할 것 같다. 여전히 동세대의 삶을 짚어내는 예민하고 발랄한 감각에도 불구하고, 아직 충분히 말하지 않은 세계를 향해 한발 내딛는 그 새로운 시도에 대해서 말이다. 이를테면 그것은 조숙한 아이들이 바라보았던 세계를 어른의 시야로 확장시킨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1인칭에서 3인칭으로 훌쩍 건너가려는 시도이기도 하다. 세번째라면, 아이가 어른으로 성장하기에 꽤 적절한 타이밍이다. 아이는 세계를 상상하지만, 어른은 세계를 인식한다.
아이가 상상하는 세계란 이런 것이다. 아버지는 공사장 크레인에서 실족사하고 집은 철거에 임박해 있으며 도시는 계속되는 폭우로 물에 잠긴다(「물속 골리앗」). 죽은 어머니의 사체를 끌고 집을 탈출하지만 바깥은 더 위험하다. 문짝으로 만든 배로 물에 잠긴 도시를 항해하는 소년, 세계는 끔찍하다. 오염된 빗물의 바다 위로 삐죽이 솟아오른 골리앗 크레인. 위험하고 절망적인 세계는 이 인상적인 장면으로 이미지화된다. 크레인의 끄트머리에서 아버지의 환영을 보면서 소년은 아버지가 본 세계를 추체험한다. 비관적 디스토피아의 감각이 일용직 노동자로 철거가 예정된 아파트에 살다 죽어야 했던 아버지의 것이라면 그것을 물에 잠긴 도시와 크레인으로 응축하는 상상력은 소년의 것인 셈이다. 아버지도 어머니도 없는 세계의 끝에서 막막한 비관의 이미지를 설명하는 일, 그것이 소년의 앞에 놓인 성장의 과제이다.
응축된 이미지는 설명을 통해 확장된다. 예컨대 도급 택시기사 용대와 연변에서 온 이주노동자 명화의 비애 가득한 멜로(「그곳에 밤 여기에 노래」)는 어떻게 확장될 수 있는가. 서사 중간에 끼어든 용대의 사촌형 가족이 이 소외된 연인을 설명하는 것을 통해서다. 사업가로 성공한 사촌형과 검사가 된 오촌조카, 이들과 용대 사이의 거리가 용대의 러브스토리를 사회적 계급구조의 문제로 확장하는 셈이다. 전작과 다른 김애란의 면모가 드러나는 지점이지만, 아직 그 시도가 성공적인 것 같지는 않다. 용대에 초점화된 이야기와 오촌조카의 시점에 비친 용대의 이야기가 서로를 충분히 해명하지 못하고 있거니와, 애초에 용대의 반대편에 부유층인 사촌형 가족을 맞세우는 구도는 너무 익숙한 일반화이기도 하다. 세계가 넓어지기는 했지만 충분히 확장되지는 못한 것이다. 확실히 전작들의 명랑함에 비해 비행운은 훨씬 비관적이 되었고, 그 비관성은 설명을 통해 사회구조의 문제로 확장된다. 그러나 그 설명의 방식은 다양해 보여도 의외로 도식적이거나 모호하다.
이처럼 소설은 대비되는 세계를 맞세우는 구성을 반복한다. 전세계를 향하는 비행기가 뜨고 내려앉는 공항과 어학연수를 가기 위해 택배를 훔치는 아들이 대비되거나(「하루의 축」), 단란하고 오붓한 가정을 이루려는 소박한 꿈이 철거촌의 폐허와 대비되고(「벌레들」), 낭만적으로 기획된 해외여행이 죽어서도 폐지를 줍는 할머니의 환영과 대비된다(「호텔 니약 따」). 대비되는 세계를 맞세우는 것으로 그친다는 점에서 이 반복되는 구성은 도식적으로 느껴지고, 다소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는 절합(articulation)을 상징이나 반전의 묘수로 봉합하려 할 때 그 도식은 모호함으로 남는다. 아파트 창틀을 기어오르는 끔찍한 벌레의 상징으로 재개발 지구의 무너져가는 삶을 온전히 감당하기는 힘들고(「벌레들」), 스트레스성 탈모나 아들의 편지가 유머의 효과를 발휘하기에 공항은 너무 넓고 크고 복잡하다(「하루의 축」).
안정적으로 구축된 단편의 울타리 바깥에 아직 탐색되지 않은 세계가 남겨져 있다. 그 세계를 이해하기 위해 안정된 구성은 깨어졌다가 봉합되기를 반복해야 할지 모른다. 이 과정에서 김애란 문학은 더욱 확장될 수 있을 것이다. 우리 시대의 가장 뛰어난 작가 중 하나인 김애란에게 너무 일찍 만족해서는 안된다. 그러니 김애란 문학의 결여이기도 하고 가능성이기도 한, 비행운의 숱한 절합면들을 기꺼이 환영할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