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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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태 金準泰

1948년 전남 해남 출생. 1969년 월간『시인』으로 등단. 시집으로『참깨를 털면서』『나는 하느님을 보았다』『국밥과 희망』『불이냐 꽃이냐』『칼과 흙』『꽃이, 이제 지상과 하늘을』『지평선에 서서』등이 있음. kjt487@hanmail.net

 

 

 

60년 聖事

 

 

아가야

둥근 젖병을 두 손으로 움켜쥐고

아인슈타인을 쭉쭉 빨아대는 아가야

 

어때 맛이 괜찮니

배가 쿨렁쿨렁 소리 나게 부르니

올해 60회갑을 맞은 이 할아버지는

너를 등에 업고 먼 산에 올라가보련다

 

네 어미의 젖꼭지처럼

오래오래 아인슈타인을 빨고 싶다는

눈빛으로 나와 눈 맞춤을 하는 아가야

 

나비떼인 양 쏟아지는 달빛 속으로

하얗게 떠오르기 시작하는 머나먼 길-

아가야 나는 너를 등에 업고 걸어가면서

오늘은 아인슈타인 박사를 만나고야 만다

 

빛도 휘고 하늘도 휜다고 무릎을 친다

무궁 무궁한 하늘도 휜다는 아인슈타인의

우주, E=mc²1 을 엎기도 하고 뒤집기도 한다

 

그래, 60회갑을 맞은 나 또한 슬퍼하느니

600년보다 더 길고 긴 60년, 저것을 봐라

한반도 허리춤에 내리꽂힌 총칼을 보아라

 

백두에서 한라까지 이 땅은 블랙홀

서울과 평양 사이에 들꽃들도 블랙홀

금강산 앞바다에 치솟는 태양도 블랙홀

귀신들이 무더기로 우글거리는 블랙홀

생목숨마저 빨려 들어가버리는 블랙홀

 

미움과 증오뿐인 저 절벽의 절벽의 세월

머저리와 머저리들의 바보 같은 그 세월

남들이 만든 시계 속에서 청춘도 사랑도

한꺼번에 휩쓸려 가버린 아 코리아 60년!

 

아가야

둥근 젖병을 두 손으로 움켜쥐고

아인슈타인을 쭉쭉 빨아대는 아가야

눈망울이 너무 선하여 살별 같은 아가야

 

하지만 이제는 너로 하여 알게 됐단다

이제는 할아버지도 먼저 길게 휘어지면서

직선과 직선이 아닌 곡선으로 휘어지면서

네 어미처럼 너를 껴안듯이 보듬어 올린다

서울과 평양도 첫사랑 첫 얼굴로 바라보고

 

아가야 우리 아가야

올해 60회갑을 맞은 이 할아버지는

다시 너와 같은 아가로 태어나려 한다

빛도 휘고 청천하늘도 무지개로 휘고

새가 새로 날고 꽃이 꽃으로 피어날 때

 

아 풀 비린내도 없이 온몸 살결이 향기로운

통일코리아 텍스트 밤낮으로 꿈꾸는 아가야

그래서 나도 너처럼 똥을 바가지로 싸놓고도

방긋방긋 웃는 벌거숭이 아가가 되고 싶단다.

 

 

 

북한 사람들이 웃고 있었다

북녘땅 기행 22

 

중국 단동시에서 촬영한 ‘꽃제비’란 KBS다큐를 본 적이 있을 것입니다. 네에, 물론 저도 보았습니다. 너무 너무 배가 고파 부모형제를 뒤로하고 두만강 압록강을 건너 국경도시 중국 단동에 몰래 숨어든 북조선의 아이들. 쓰레기통을 뒤지며 닭 뼈다귀, 먹다 버린 생선꼬리, 밥찌꺼기를 그야말로 게 눈 감추듯이 집어먹던 우리들의 또다른 한쪽 북녘땅 아이들. -그 녀석들이 머리에서 영 잊혀지지 않던 그해 여름이었습니다. 8·15통일대축전 참가단에 끼어 북녘땅에 갔던 나는 솔직히 말해서-평양이 자랑한다는 고려호텔의 웨이터(북쪽에서는 접대봉사대원이라 함)를 보고 마음이 그리 좋을 리가 없었습니다. 그들 웨이터 중 몇몇은 허리가 정말‘개미허리’처럼 잘록했습니다. 얼굴에 기름이 좌르르 흐르고 어쩌면 비만증세를 더 많이 보이는 남쪽 서울의 웨이터들과는 참으로 대조적이었습니다. 고대 이집트 파라오처럼 거대한 동상과 기념비들이 곳곳에 서 있는 평양 시내를 벗어나, 나 또한 미국의 푸에블로호를 전시하고 있는 대동강 다리를 건너 고구려 시조 동명성왕의 능을 찾아가는 길이었습니다. 평양 동남쪽 22km지점-력포(力浦)구역 룡산리. 옛 지도로 들여다보면 진파리 혹은 무진리라고 새겨진 룡산리에 동명성왕은 모셔져 있다고 했습니다. 논보다는 밭이 더 많이 보이는 평양 근교 농촌. 아마도 집단농장일 듯한 밭고랑에서 북한 인민이라고 부르는 사람들이 밭일을 부지런히 하고 있었습니다. 남쪽의 방문단(참관단)을 실은 버스가 지나가자 그들은 손을 흔들었습니다. 온통 땀투성이인 그들의 얼굴은 그러나 웃음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아 그러나 그 웃음은 우리들의 잃어버린 시절-1950년 6월 그 이전의 웃음과 같은 것이었습니다. 아주 잔잔한, 고향집 장독대 접시꽃 꽃잎처럼 참 맑은 미소였습니다. 그래서 그랬을까요. 대부분‘개미허리’로 보이는 그들 농사꾼 인민들이 우리 방문단에 웃음을 보내고 있을 때 남쪽사람 나는 자신도 모르게 콧등이 아파와서 고개를 숙여버렸습니다. 그들이 그렇게 웃을 수 있었던 것은 밭에서 흙에서 일하고 있기 때문이었을까요. 아니 그 웃음은 수많은 밤과 낮을 울어보지 않은 사람들이 아니고서는 간직할 수 없는 그런 웃음이었는지 모릅니다. 먼 옛날 압록강 두만강을 건너고 백두산을 넘어온 우리의 옛사람들이 휘몰아치던 눈보라와 가난 속에서도 잃지 않았던 고요하고 고요한 웃음의 살결! 그리고 눈물처럼 얼굴 흥건하게 흘러내리는 적막한 미소! 그런 미소가 달빛이 쏟아져 들어오듯 앞가슴에 젖어왔을 때 내 온몸이 갑자기 비틀거리는 것을 어찌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해 여름, 우리들의 북녘땅에서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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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E=mc²’은 아인슈타인이 1905년 처음으로 밝힌 특수상대성이론으로 ‘에너지(E)와 질량(m)은 등가이고 변환 가능하다’는 것을 뜻한다. 그는 또한 1916년 ‘질량과 에너지가 시공간을 휘게 하고 빛을 포함한 자유입자들이 그렇게 휘어진 시공간 속에서 움직인다’는 일반상대성이론도 세상에 내놓는다. 그러자 과학자들은 상대성이론도 미시세계에서는 맞지 않는 부분이 있다고 지적한다. 아인슈타인은 그에 대한 대답으로 “신은 주사위 놀이를 하지 않는다”라는 유명한 경구를 남기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