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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평

 

오재식 『나에게 꽃으로 다가오는 현장』, 대한기독교서회 2012

삶의 현장에서 발견하는 배움

 

 

이기호 李起豪

한신대 교수 yikiho@me.com

 

 

10359책이 출간되고 두달도 지나지 않아 안타깝게 고인이 된 오재식(吳在植) 선생을 추모의 마음으로 기리며 서평을 쓰게 되었다. 이 책은 여러 사정으로 직접 글로 남기지 못했지만 한국현대사의 굵직한 축을 묵묵히 담당해온 선생의 삶을 구술로나마 남기는 것이 필요하다는 설득에서 출간된 것이다. 애초에 선생의 삶의 궤적을 구술하는 것으로 시작하여 주제별 대화로 이어나가기로 계획했지만 주제별 대화는 이뤄지지 못했다. 선생은 본인의 활동을 청년운동, 에큐메니컬 운동(ecumenical movement, 교회일치운동), 민주화운동, 아시아 지역운동, 평화통일운동으로 대별했다. 책은 비록 시간순으로 구성되었지만, 선생의 구술은 이 다섯가지 축을 염두에 두고 진행되었을 것이다.

구술을 마치고 ‘나에게 꽃으로 다가오는 현장’이라는 제목을 제안받을 때 선생이 흡족해했던 기억이 새롭다. 그만큼 ‘현장’에 대한 애정과 신념이 두터웠기 때문일 것이다. 특히 선생이 가장 최근까지 관심을 두었던 주제는 ‘시간과 공간’이다. 현역에서 물러났기에 그동안 동분서주했던 ‘현장’을 재조명해보게 된 까닭도 있지만, 무엇이 그의 80년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화두였을까를 스스로 묻는 과정에서 현장이 또 하나의 시・공간으로 다가왔기 때문일 것이다.

선생에게 현장은 피할 수 없는 실존의 공간이자 삶과 운동의 공간이었다. 현장은 본인이 찾아 달려가는 곳이 아니라 숙명적으로 마주하는 곳으로 이해되었다. 그래서 한번도 다가오는 현장을 거절한 적이 없었고, 현장을 개인의 역량만으로 바꾸려는 무리수를 두지도 않았다. 선생이 입버릇처럼 말하던 ‘개미떼의 논리’에 의하면, 현장이란 기본적으로 일상의 삶을 열심히 살아가는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만들어지는 곳이고, 이들의 힘이 궁극적으로 자신의 현장을 바꾸어내는 것이지 특정 개인의 탁월한 역량이 바꾸는 것은 아니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회고록에는 이른바 ‘TK생’(지명관 전 한림대 교수)에 관한 일화가 나온다. 그는 삼엄했던 유신체제와 군부독재 시절을 거치며 735월부터 883월까지 16년간 한번도 빠지지 않고 일본의 시사월간지 『세까이(世界)』에 「한국으로부터의 통신」을 연재할 수 있었던 것 역시 특정 개인보다는 한국과 일본에서 이를 도와준 수많은 개미들의 역할과 신뢰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강조한다.

선생이 또 하나 강조한 부분은 ‘현장’이 살아 움직이는 사람들의 얼굴이 보이는 공간이라는 점이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 얽히는 관계가 운동을 만들어나가는 것이지 누군가의 기획과 의도로 어떤 공간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은 착각이자 교만에 불과하다. 개미들의 현장인 공간이 스스로 필요한 시간을 끌어들이고 새로운 시간축과의 만남 속에서 관계가 형성되며 그렇게 해서 시간과 공간이 전환되고 새로 시작할 수 있다는 믿음이다. 그래서 선생은 현장 없는 활동가, 현장 없는 지식인이 공허하고 교만에 빠지기 쉽다고 지적한다.

회고록을 보면 선생을 세가지 측면에서 바라볼 수 있는데, 첫째는 지식인으로서 오재식이다. 그는 서울대와 예일대를 나왔지만 박사학위를 받지 않았고, 에큐메니컬 운동의 핵심이었지만 목사안수를 받지 않았다. 저간의 다른 사정도 있었겠지만, 박사나 목사가 쉽게 대학과 교회에 안착함으로써 현장과 거리를 두게 되는 상황을 문제시하고 스스로 자물쇠를 걸었던 것도 그 이유 중 하나다. 현장 없는 지식에 대한 비판은 직업에 대한 비판이 아니라 지식의 현장성에 관한 문제제기에서 비롯된 것이다.

둘째는 활동가로서 오재식이다. 여기서 핵심은 무슨 활동을 했는가가 아니라 활동의 원칙 혹은 활동가의 품성과 인품인데, 한마디로 약속 지키기와 겸손이다. 약속은 신뢰의 기본이고 운동은 관계 속에서 이루어지는바, 일상의 소소한 약속을 지키는 훈련이 되어 있지 않으면 신뢰가 무너지기 때문에 운동은 지속 가능하지 않다는 것이다. 예컨대 시간 약속을 잘 지키는 일, 말에 책임을 지는 일, 공사를 구분하는 일 등이다. 겸손과 관련해서, 선생은 자신의 사회적 역할과 위상을 일본 전통극 카부끼(歌舞伎)의 쿠로꼬(黒子)에 비유했다. 쿠로꼬란 특별한 장면을 연출하기 위해 관객이 눈치채지 못하도록 검은색 옷을 입고 배우와 소품 등이 무대 위에서 자연스럽게 움직이게 도와주는 역할을 말한다. 사회의 특출한 지도자도 쿠로꼬 같은 이의 도움이 없으면 제대로 기능하지 못하므로 현실에는 훨씬 많은 쿠로꼬가 존재해야 하며, 선생 자신이 바로 그런 쿠로꼬라고 늘 말했다. 실제로 그가 강조하고 싶었던 것은 역시 개미떼의 논리와 ‘팀워크’라는 연대의 힘이었고,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힘이 약속 잘 지키기와 겸손에서 나온다고 믿었다. 이것이 진보의 인품이 아닐까.

셋째로 ‘사상가 오재식’은 그가 꿈을 꾸는 이였기에 가능하지 않았나 한다. 일본의 나까지마 마사아끼(中躁正昭)목사가 선생에게 붙여준 시까께닌(仕掛人)이란 별명은 ‘일을 하도록 움직이게 하는 사람’이란 뜻이다. 결국 시까께닌이란 누군가에게 자신의 일감을 보이도록 하는 이, 혹은 꿈을 공유하도록 만드는 인데, 나는 이러한 역할을 하는 것이 운동가의 덕목이기에 앞서 사상가의 덕목이라고 생각한다. 선생은 잡담이라는 명목으로 사람들과 허심탄회한 대화를 즐겼다. 대화는 언제나 미래에 대한 비전을 뽑아내는 힘과 함께 상상해서 그려내는 힘을 통해, 과거와 현재를 뒤집어보는 역발상과 현재의 시공간의 방향성을 성찰하는 기회를 자연스럽게 가질 수 있도록 했다. 1955년의 ‘반둥선언’이 왜 지금 의미가 있는지, ‘88선언’(민족의 통일과 평화에 대한 한국기독교회 선언)이 나오게 된 원칙이 무엇인지 등 왜 국가의 틀 안에서 그 한계를 넘어서야 하는지 같은 문제제기는 그가 현장에서 고민해온 화두인 동시에 우리에게 과제로 남기고 간 비전이기도 하다.

현장이 꽃으로 다가올 수 있는 것은 현장이 아름답기 때문이 아니라 현장에서의 공감 때문일 것이다. 선생이 한신대에서 행한 강의 내용 가운데, 우리가 누군가를 돕기 위해 현장에 간다는 건 실은 우리가 그들로부터 배우는 과정이며, 그들과의 관계를 통해서 우리에게 새로운 아젠다가 만들어지는 동시에 자기 삶의 현장을 그곳에서 발견하고 일구어가는 것이라고 강조한 대목이 새삼 떠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