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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권혁웅 權赫雄
1967년 충주 출생. 1997년『문예중앙』으로 등단. 시집으로『황금나무 아래서』『마징가 계보학』『그 얼굴에 입술을 대다』등이 있음. hyoukwoong@hanmail.net
드라마
김(金)의 눈이 표면장력으로 둥글어질 때 내게는 그릇이 없었다 흰개미떼가 줄지어 옆집으로 이사갔다 더 파먹을 기둥이 남지 않았던 건가? 동쪽이 기우뚱했다 각(角) 항(亢) 저(勌) 방(房) 심(心) 미(尾) 기(箕)의 하늘1이 한순간에 쓸려내려갔다
나의 하루는 어머니가 켜놓은 치정극에서 시작된다 치받고(角) 조이고(亢) 근심하고(勌) 가두고(房) 동그래지고(心) 흘레붙고(尾) 결국에는 쓰레기가 되는(箕) 하늘들, 김(金)이 마침내 두 눈을 쏟았다 아 시끄러워요, 거 제발 좀! 나는 소리를 질렀다
조심조심 깨진 그릇을 비질하듯 이(李)의 손이 배를 쓰다듬었다 복수의 끝에서 이(李)는 가업을 물려받게 된다 나는 이(李)의 손길 아래서는 조용한 길짐승, 도로를 지나는 트럭이 난폭하게 플롯을 결딴낼 때까지 나의 이야기는 계속된다
이심전심이다 심심할 때면 꼭 전화벨이 울린다 그러면 정(鄭)은 왼쪽 45도, 전방 15도 각도로 얼굴을 들고 나를 쳐다본다 정(鄭)은 이대를 나왔다 마지막 패는 서향(西向)이다 규(奎) 루(婁) 위(胃) 묘(昴) 필(畢) 자(槀) 삼(參)의 하늘2이 붉게 충혈된다
주말연속극을 보고 나서야 어머니는 잠자리에 든다 엉기적거리며 걷고(奎) 성글고(婁) 멍청하고(胃) 좀스럽고(昴) 옥죄고(畢) 뾰족하고(槀) 엉망으로 뒤섞인(參) 하늘들, 정들면 거기가 무덤이다 자리를 펴고 나는 김과 이와 정을 묻었다 산파술이 그 언덕을 넘을 수는 없었다
순수의 시대
드라마 2
가정법에 기댄 오후는 둥글다 그녀가 돌아온다면 이 땅은 어땠을까? 사촌의 그린벨트가 해제되자 곽(郭)은 마침내 등을 말았다 원하는 것과는 다른 벼락이 쳤고 수목이 뽑혔고 늦가을 바람이 불었다 내감(內感)의 바람은 심히 물질적이어서, 그는 출렁이는 위산을 상속받았다
진(陳)이 양산을 받쳐 들고 또다른 곽(郭)의 부지에 내렸다 늦가을 바람에 닭살이 오소소 돋아났다 곽이 자기 몸에 새긴 점자라고 그녀는 생각했다 밤이 되면 털 뽑힌 날개로 그녀는 또다른 곽의 아래서 파닥일 테지만…… 튀김가루 같은 먼지가 머리 위로 내려앉았다
곽에서 곽으로, 그녀는 삼각형을 내분(內分)했다 그녀와 삼각형은 아무래도 상관없는 이류개념일 뿐이어서 그녀는 초고층으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를 탔다 버튼에도 점자가 새겨져 있다 더듬어서라도 올라가겠다는 뜻이다 고도(高度)에 어울리는 시집살이가 그녀를 기다리는 중이다
그린벨트는 익심형 연결어미를 닮았다 수목이 무성할수록 저택은 복수담을 닮아간다 영락한 곽은 정원사로 취직하고, 진의 허리벨트는 나날이 치수를 더해가고, 어린 곽이 태어나고…… 세 명의 곽 사이에서, 마침내 진이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리며 정원의 초목에 기댈 때,
가정법은 완성된다 스피노자는 신의 속성이 연장이라고 말했다 연장방영의 끝에서 그들은 홍익인간이 될 것이다 삼인칭들의 족보를 완성할 것이다 사생활의 역사는 이면지에 기록된다 언제든 구겨버릴 수 있는, 혹은 언제든 채널을 돌릴 수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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