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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평
노엄 촘스키 외 『사이언스 이즈 컬처』, 동아시아 2012
과학계 최고 선수들의 올스타전
장대익 張大翼
서울대 자유전공학부 교수 djang@snu.ac.kr
지난 10년 동안 꼭 해보고 싶은 것이 있었다. 몇몇 분야의 국내 최고 학자들을 아름다운 휴양지로 초청해 일주일을 함께 지내며 저녁때마다 각자의 지적 관심사와 지식을 나누는 일이었다. 그 대화를 녹음하고 책으로 묶어서 지식의 최선선이 어떤가를 독자들에게 알리고 싶었다. 적지 않은 자금이 들 테니 후원이 필요했다. 다양한 전공의 톱클래스 학자들 사이에 활발한 교류가 필요함을 여기저기 알렸다. 마침내 한 기업이 경비를 지원하겠다고 나섰다. 흥분된 마음으로 초대할 학자들의 목록을 만들어 초대전화를 걸기 시작했다. 하지만 결과는 예상 밖으로 다소 실망스러웠다. “도저히 일주일을 뺄 수가 없네요” “닷새는 어떤지요, 안되면 나흘은?” 결국 전화 걸기를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공통 기간을 잡는 게 너무 힘들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실은 더 큰 문제가 있었다. 자신의 분야에서 탁월한 성과를 내면서도 다른 분야의 전문가와 진심으로 대화하기를 원하는 학자를 찾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이렇게 나의 야심찬 기획은 물적 토대가 마련되었음에도 사그라졌다. 물론 내가 가진 지식인 네트워크가 충분히 넓고 깊지 못해서 생긴 실패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때 분명히 깨달은 것이 있다. 문제는 돈이 아니라 ‘선수’라는 사실이다.
이런 의미에서 『사이언스 이즈 컬처: 인문학과 과학의 새로운 르네상스』(Science is Culture, 이창희 옮김)는 보면 볼수록 약이 오르는 책이다. 우선 출전 선수들의 면면을 보자. 이렇게 다양한 과학 분야의 대표급 선수들이 대담의 한축을 굳건히 지키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예사롭지 않다. 예컨대 사회생물학자 윌슨(E. Wilson), 심리학자 핑커(S. Pinker), 진화생물학자 트리버스(R. Trivers), 합성생물학자 엔디(D. Endy), 이론물리학자 랜들(L. Randall), 수학자 망델브로(B. Mandelbrot), 신경과학자 가자니가(M. Gazzaniga), 네트워크 물리학자 바라바시(A. Barabási), 우주생물학자 타터(J. Tarter)까지, 스물두 꼭지의 대담을 이끌어가는 스물두명의 전공은 모두 과학이다. 게다가 이들은 웬만한 학자가 아니다. 각 분과에서 새로운 연구분야를 개척한 효시며, 그것도 모자라 국제적인 베스트셀러를 갖고 있는 초특급 저자이기도 하다. 이들이 쓴 다수의 저작은 국내에도 번역·출간되었고, 윌슨이나 핑커처럼 두터운 독자층을 거느리고 있는 이들도 여럿이다.
그렇다면 대담을 이끌어가는 또다른 한축에는 어떤 선수가 포진해 있을까? 이 라인업도 놀랍기는 마찬가지다. 인지철학자 데넷(D. Dennett), 언어학자 촘스키(N. Chomsky), 저널리스트 울프(T. Wolf), 과학사학자 갤리슨(P. Galison), 안무가 콜턴(R. Colton), 영화감독 공드리(M. Gondry), 게임 개발자 라이트(W. Wright) 등 해당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 만한 대가들이다.
하지만 이 많은 대가들(총 44인)을 포진시켰다는 것 자체가 이 책의 독특함이라고 말하기에는 부족하다. 이보다 더 많은 전문가가 한편씩 쓴 글을 엮어낸 책은 이미 여럿 나와 있다. 이 책의 가장 큰 미덕이라면 44명을 둘씩 짝지어 공통의 주제에 대해 대화하게 했다는 것이다. 가령, 저널리스트와 뇌과학자가 자유의지에 대해 논하고(울프와 가자니가), 반전운동가와 진화생물학자가 만나 전쟁과 기만에 대해 이야기하며(촘스키와 트리버스), 심리학자와 소설가가 만나 스토리와 공감에 대해 대화를 나눈다(핑커와 골드스타인). 이 22쌍은 서로의 팬이거나 적어도 상대의 작업을 존중해온 관계였기 때문에 ‘지적인 데이트’를 즐기기 전에 ‘간을 볼’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각 대화의 품질은 어떨까?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없다는 말이 출판물에도 대체로 들어맞는다는 것을 떠올린다면, 이들의 대화가 피상적인 데 그칠 공산이 크다고 짐작할 것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그런 꼭지도 없진 않다. 하지만 대담자들은 대체로 핵심 쟁점에 재빠르게 다다른 후 각자의 견해를 직설적으로 밝히는 방식을 취함으로써 논의의 피상성을 어느정도는 넘어선다. 예컨대 ‘토킹 헤즈(Talking Heads)’라는 밴드의 리드보컬 겸 작곡자인 번(D. Byrne)은 음악의 기원에 관해 이렇게 말한다. “핑커 같은 심리학자는 음악이 즐거움을 주기는 하지만 기본적으로 진화의 부산물일 뿐이라고 말하죠 (…) 하지만 저는 이제 그와는 반대되는 관점 쪽으로 기울어지고 있습니다.”(202면) 이에 대해 『뇌의 왈츠』라는 책의 저자로도 국내에 잘 알려진 행동신경학자 레비틴(D. Levitin)은 어떤 주저함도 없이 이어받는다. “저는 핑커의 주장이 틀렸다고 생각합니다 (…) 음악은 진화 과정에서 언어보다 더 오래되었거든요.”(203면) 과연 한국의 가수 중에서 음악의 기원과 진화에 대해 이 정도의 이야기를 과학자와 나눌 수 있는 지식인은 몇이나 될까? 그리고 한국의 지식인 중에서 이만큼 열린 자세로 여러 주제에 대한 최근 논의들을 논할 만한 역량을 갖춘 이들이 몇이나 될까?
비슷한 맥락에서 어떤 독자들은 지식인들의 거침없는 대담을 통해 속이 후련해짐을 느낄 수도 있다. 내가 제일 크게 웃었던 대목은 기자 출신의 저명한 저술가인 울프가 사회생물학자 윌슨, 진화학자 도킨스(R. Dawkins), 철학자 데넷을 비판하는 곳이다. “미안한 얘기지만 도킨스는 지금 진화에 관한 PR맨에 불과해요. 그는 어찌 보면 여기저기 다니면서 ‘그분이 오신다’고 외치던 세례 요한과 비슷합니다.”(325면) 울프의 이런 비아냥거림에 과학자인 가자니가가 얼마나 진땀 빼며 대응하는지 보는 것도 재미가 쏠쏠하다.
하지만 무엇보다 우리 지식사회가 주목해야 할 점은 모든 대담을 관통하고 있는 ‘과학에 대한 진정한 존중’이다. 사실 이 대담집은 고품격 과학잡지 『씨드』(www.seedmagazine.com)의 창립자인 블라이(A. Bly)가 기획한 작품이다. 이 잡지는 인간, 사회, 문화, 정치, 경제, 예술 등을 ‘과학적 사고’로 재조명함으로써 현대과학과 인문이 새롭게 엮어진 지식의 새 르네쌍스를 추구하고 있다. 그러나 ‘과학 지상주의’를 걱정할 필요는 없다. 과학계의 수퍼스타(윌슨, 핑커, 도킨스 등)에 대한 거침없는 비판이 이미 보여주었듯이, 『씨드』의 철학과 이 책의 기획은 과학이나 과학자를 신성시하는 것과 거리가 멀다. 그래서 과학을 잘 모르는 독자들도 불편함이나 부담 없이 재밌게 읽을 수 있다. 이 책의 제목처럼 이제 “과학은 문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