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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곡
손유미 孫柔美
동덕여대 문예창작과 3. 1991년생.
w0thsdbal0w@hanmail.net
달무리
씨놉시스
작은섬마을. 작은 횟집. 어느날 영은이 집으로 돌아온다. 영은은 자신의 할머니 신을 받은 무당이다. 영은의 엄마인 미숙은 그런 영은이 편하지 않다. 미숙은 한평생 무당의 운명을 대물림받지 않기 위해 애써왔다. 미숙은 무당이 된 영은을 외면하는 한편, 영은이 다시 돌아온 이유를 궁금해한다. 미숙의 남편인 춘길은 미숙과 닮은 영은을 예뻐하면서도 안쓰럽게 여긴다. 무당으로서의 굴레를 벗어난 미숙은 자신의 삶을 지키려 하고, 영은은 그 굴레에서 벗어나고자 한다. 춘길은 이 둘을 안타깝게 지켜본다. 자신의 운명에 거부감을 느끼는 둘과는 달리 춘길은 자신이 받은 운명을 직시하기 위해 미숙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바다로 떠난다. 춘길이 떠난 뒤 미숙의 친구 문희는 폭력을 행사하는 남편에게서 벗어날 궁리를 하던 도중, 영은을 만난다. 문희는 영은에게 남편의 저주를 부탁하지만 영은은 이를 거부한다. 이를 본 미숙은 영은에 대한 거부감을 조금은 없애게 된다. 그리고 그날 밤 영은과 미숙은 달빛 아래에서 서로의 속마음을 터놓고 두려움과 아픔을 나눈다. 미숙은 영은과 함께 지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러나 바다로 떠난 춘길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게 된 뒤 또다시 어쩔 수 없는 대물림의 운명을 느끼게 된다. 모든 것을 포기하고 떠나기로 결심한 미숙에게 영은은 자신의 짐을 넘겨준다. 영은 위로 깨끗한 달빛이 쏟아진다. 막.
*지면사정으로 작품의 일부만 싣습니다. 희곡 전문은 대산문화재단 홈페이지(www.daesan.or.kr)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편집자.
등장인물
영은, 신, 미숙, 춘길, 문희, 경찰
배경
현대의 시간. 작은 섬마을의 횟집.
무대
관객석을 바다로 한다. 관객석에서 보이는 무대의 정면은 횟집의 풍경이다. 가게 간판과 어항, 입구가 보인다. 그 앞에는 평상이 놓여 있다.
1.
암전된 무대. 달이 떠 있다. 구름에 가려 선명하진 않지만 달이다. 파도 소리 들린다. 무대 중앙 두개의 촛불이 켜진다. 신과 영은, 촛불을 들고 서 있다. 파도 소리 잦아든다.
신은 달무리 뜨는
영은 달무리 뜨는
신은 외줄기 길을 홀로 가노라.
영은 나 홀로 가노라.
신은 옛날에도 이런 밤엔 홀로 갔노라.
영은 홀로, 갔노라.
(사이)
신은 맘에 솟는 빈 달무리 둥둥 띄우며
신은 나 홀로 가노라.
영은 울며 가노라.
(사이)
신은 옛날에도 이런 밤엔 울며 갔노라.
영은 울며 갔노라.1)
(사이)
신은 달이 떴구나. 돌아갈 때이다.
영은 도망갈, 시간이네요.
두 사람은 마주보다, 반대 방향으로 퇴장한다. 파도 소리 커진다.
2.
미숙, 횟집에서 나온다. 곧 분주하게 일을 시작한다. 영은, 등장한다. 모자를 깊게 눌러쓰고 간단한 짐을 들고 있다. 방랑자의 느낌이다.
영은 (작은 목소리로) 아침, 되나요?
미숙 아가씨, 혼자예요?
영은 네.
미숙 (쾌활한 목소리로) 그럼요. 편히 앉아요.
영은, 평상에 앉는다.
미숙 (행주로 평상 위 식탁을 닦으면서) 뭣으로다 드릴까, 꽁치구이도 좋고, 하얀 매운탕도 있고, 깔끔한 정식도 괜찮고오.
영은 된장찌개, 주세요.
미숙 (행주질을 잠시 멈추고 영은을 본다) 아, 그래요, 기다려요.
미숙, 횟집 안으로 들어간다. 영은, 미숙이 들어가자 무대를 두리번거리며 구경을 하다, 곧 관객석에 등을 보이며 돌아앉는다.
(사이)
문희, 등장한다. 한손에는 타다 남은 짚 인형을 들고 있다.
문희 (요란하게) 미숙아!
미숙, 쟁반을 들고 등장한다.
미숙 댓바람부터. (식탁 위에 음식을 정갈히 놓는다) 맛있게 먹어요.
영은, 말없이 음식을 먹는다. 여전히 관객석에 등을 보이는 모양.
문희 미숙아, 미숙아!
미숙 그래. 왜.
문희 (짚 인형을 건네며) 이거 봐라.
미숙 (당황한다) 아침부터, 재수 없게! (짚 인형을 떨어뜨린다)
순간, 영은이 숟가락을 떨어뜨린다. 그 소리.
문희 저어기, 갯바위에서. 주웠어.
미숙 그래.
문희 이거 알지?
미숙 (딴청을 피운다) 몰라.
문희 봤지?
미숙 모른다구.
문희 갯바위 보이는 곳, 여기 말고 없다.
미숙 정신이 한개도 없네. 어디 다녀와?
문희 좋은 구경 니만 하기냐.
미숙 또 화투야?
문희 꼬옥, 니네 엄마 인형 같다.
(사이)
미숙 그래서. 오늘은 좀, 땄어?
문희 우리 아빠 바람났을 때. 니네 엄마가 하나 맹들어줬잖어.
미숙 재미는 좋아? 나도 할까?
문희 됐다. 갯바위나 잘 지켜라.
미숙 반찬 좀, 줘?
문희 좋은 구경 같이 하기다. 불구경 흔치 않다.
문희, 퇴장한다.
미숙 (짚 인형을 주우며) 이게 왜 또……
(사이)
영은 ……찌개…… 좀 짜네요.
미숙 네?
영은 (모자를 벗어 얼굴을 드러낸다. 몸을 돌려 미숙을 바라본다) 이러면 오래 못 살아.
미숙 (영은을 알아본다) 너……
영은 (쟁반 위에 음식을 다시 올린다.) 물 붓고 다시 끓여 내올게. 같이 먹어요.
미숙 ………
영은 아직 아침 전이죠?
영은, 쟁반을 들고 횟집 안으로 퇴장한다. 미숙, 그 자리에 우두커니 서 있다 뒤늦게 영은을 따라 퇴장한다.
3.
횟집 전경이 보인다. 무대 위 아무도 없다. 무대 밖에서 춘길, 다리 한쪽을 절며 등장한다. 한손에는 검은 봉지가 들려 있다. 횟집 안에서 미숙, 등장한다.
미숙 새벽부터 어디 다녀와요?
춘길 (봉지를 슬쩍 감추며) 바람 좀.
미숙 뭐예요?
춘길 그냥 좀.
미숙 뭔데 그렇게 감춰요?
춘길 그냥. 그냥.
미숙 이리 내요.
미숙과 춘길, 봉지를 사이에 두고 실랑이한다. 봉지 찢어지며 향, 양초, 성냥갑 떨어진다.
춘길 아이고. (떨어진 것들을 줍는다)
미숙 이거. 당신이 이런 걸 왜 사와요?
춘길 떨어진 물건을 써도 괜찮나?
미숙 (춘길에게서 물건을 빼앗는다) 줘요. 버려야 돼, 이런 거.
춘길 어구, 그러지 마요.
미숙 (목소리 커진다) 재수 없게, 내다버립시다.
춘길 쉿! 쉿! 애기 들을라.
미숙 여보!
그때 영은, 횟집 안에서 등장한다. 배낭을 멘 간편한 차림이다.
영은 내 거야, 엄마.
춘길 그래, 가니?
미숙 (둘 사이의 눈치를 살핀다.) 어디 가?
춘길 다 떨어뜨려서 어쩌니.
영은 괜찮아요. 정성이 없는 건 아니니까.
미숙 영은아!
영은 그냥 써도 돼.
춘길 (물건들을 마저 주우며) 그래, 그래. 어서 가봐라.
미숙 어디 가!
영은 ……갯바위. 산세가 여전하다고. 기운이 세다고, 좋아하시네.
(사이)
영은 다녀올게.
영은, 무대 밖으로 퇴장하려는데, 미숙, 영은의 배낭을 잡아챈다.
미숙 안돼. 가지 마. 못 간다. 내가 이 꼴 보기 싫어서 얼마나 애를 썼는데. 지긋지긋한 갯바위, 싫어, 안 보내!
영은 ……지금 가야 해. 더 늦으면 할머니, 화내셔. 지금도 화났어.
미숙 헛소리, 헛소리, 말 같지도 않은 소리. 나는 모른다. 이렇게 니 마음대로 할 거면 왜, 왜 온 거야. 왜, 다시 온 거냐.
영은 ………
미숙, 영은의 배낭을 가지고 횟집 안으로 들어간다.
(사이)
영은, 평상에 힘없이 앉는다.
(사이)
춘길, 영은과 조금 떨어져 앉는다.
춘길 미안하구나.
영은 ………
춘길 아, 이럴 게 아니라, 기다려라. 금방 가방 찾아올게.
춘길, 일어선다.
영은 괜찮아요.
춘길, 다시 앉는다.
영은 죄송해요.
춘길 네가 뭘. 네 엄마가 괜히 그러는 거야.
영은 ………
춘길 평소엔 네 자랑을 얼마나 했는데. 오늘 괜히 저러는 거야. 영어를 잘한다고. 명문대 다닌다고. 이쁘다고. 하루 종일 종알종알 니 얘기만 했지. 근데 오늘은 괜히 저러는구나.
영은 죄송해요.
춘길 뭐가 그렇게. 엄마가 오늘따라………
영은 아니, 엄마 말고. …갑자기 와서. 미안해요.
(사이)
춘길 미안할 거 없다.
영은 아직은. 근데 앞으론 있을 거예요. 난, 무당이니까.
(사이)
춘길 있지. 내 엄마는 그렇게 점을 좋아하셨다. 내가 넘어져 이빨이 부러졌을 때도. 형이 가출했을 때도. 초하룻날이면 부적을 태우고, 그 다음날 새 부적을 사오셨지. 노인네, 노망이 들어도 초하룻날이면 꼭 머리맡에 물을 떠놓더라.
(사이)
춘길 그런데 가족들 아무도 노인네를 말리지 않았어. 그 불같은 아버지도, 그건 내비두시더라. 다 아셨던 거야. 우리, 새벽배 타러 나가면, 노인네 치마폭에 부적을 꼭 넣고 종종종 걸어다니는 거. …그냥 그걸로 다 괜찮다는 걸… 알았던 거야, 우린.
(사이)
춘길 영은아. 다 괜찮더라.
영은 무당도, 괜찮아요?
춘길 ………
영은, 평상에서 일어나 횟집 안으로 들어간다. 춘길, 그런 영은의 모습을 바라본다.
4.
새벽녘이다. 횟집 안에서 미숙, 등장한다. 힘없이 가게 일을 시작한다. 춘길, 작은 짐 가방을 들고 횟집 안에서 등장한다.
춘길 나 다녀올게.
미숙, 춘길을 못 본 체한다.
춘길 아마 내일 오전 중에 올 거야. 아예 도매시장까지 다녀오려고 오늘은.
미숙 ………
춘길 애기랑, 잘 있어요.
춘길, 뒤돌아 나간다.
미숙 당신.
춘길 ………
미숙 당신까지 어떻게 그래. 안되는 거 알잖아, 그러면.
춘길 ………
미숙 애가 무슨 생각으로 돌아왔는지도 아직 모르는데. 당신까지 그러면.
춘길 ………
미숙 내가 얼마나 무서워했는지, 가장 잘 알잖아.
춘길 ……딸이 제 애미 찾아온 건데, 무슨 생각…… 괜찮잖아, 이젠.
미숙, 춘길을 외면한다. 춘길, 나가려는데 영은, 등장한다.
영은 저기.
미숙과 춘길, 영은을 돌아본다.
영은 날씨 안 좋네.
미숙 새벽녘에도 구름 한점 없는데, 날씨.
영은 ………
미숙 하늘까지 알지는 못하는구나.
춘길 들어가 조금 더 자렴.
(사이)
영은 ……눈에 보이는 것만 있는 게 아니니까. 안 보이는 구름이 더 무서운 거예요. 가지 마요. ……병신같이. 기어나가지 말고.
미숙 무, 무슨 말을.
영은 엄마도 똑같애. 두번 시집가는 거, 이왕이면 팔자 피게 가지. 병신이랑 하냐. 서방 따라 기집도 병신 돼간다고 할머니가 아주 못마땅해해.
미숙 너……
춘길 (사람 좋은 웃음소리) 허허허, 그렇구나. 그래, 애기 말이 맞지. 오늘은 관둬야겠구나.
미숙 헛소리, 헛소리.
영은 (멍하니 혼잣말로) 그래도 다리 하나 바닷속에 있으니, 재물 바친 꼴이지. 용케 살았어, 바다에서.
미숙 (빗자루를 찾아 집으며) 이년이, 못하는 소리가……
영은 죽어서는, 편안하대.
(사이)
미숙, 빗자루를 바닥에 떨어뜨린다. 그 소리.
춘길 (웃으며) 그래, 맞는 말이다. 애기가 하는 말은 다 맞는 말이다. 좋은 말이야.
영은 좋은 말. 좋은 말, 좋은 말…… 내 말이 좋아요?
춘길 ……그럼, 그럼.
영은 다리 하나가 바다 밑에서 껑충껑충 뛰어다니는데, 다리 한짝이 몸뚱이는 언제 오나, 어떻게 잡아먹나, 벼르고 있는데…… 그게 좋아?
(사이)
영은 (격앙된 목소리로) 자꾸만 바다로 기어들어가니, 죽으러 들어가는 거지. 다리가 불러서 그래, 그 다리 한짝이 노래를 불러, 종일. 어서 와라, 다시 와라, 돌아와라. 바다 근처는 얼씬도 말아야 할 팔자가 자꾸 얼쩡거리니, 팔자가 고꾸라지지!
미숙 영은아, 영은아.
영은 (목소리 점점 커진다.) 정신 차릴 때도 됐잖아! 저년 송장 치우는 꼴을 기어코 나한테 보여주려고, 기어나가는구나, 이 다리병신 놈아. (영은, 빗자루를 주워 들고 춘길을 위협하듯 말한다) 네가 남은 다리마저 먹어치워야 집에 붙어 있겠느냐. 이놈아!
영은, 몸을 휘청거리며 중심을 잡지 못한다.
춘길 애기야!
춘길, 영은을 부축하며 횟집 안으로 퇴장한다. 미숙, 평상에 주저앉는다.
(사이)
횟집 안에서 영은의 알 수 없는, 짐승 같은 소리 들린다. 미숙, 문득 정신을 차린 듯 횟집 안으로 퇴장한다.
(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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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박목월 「달무리」의 인용 및 변용.
희곡 | 심사평
올해 제 11회 대산대학문학상 희곡 부문에 응모한 작품은 모두 72편이다. 투고 수로만 보면 74편이 들어온 작년과 비슷하다. 내용은 문학의 영원한 테마 중의 하나인 가족 이야기와 남녀의 사랑이야기가 주를 이뤘다. 특기할 만한 점이 있다면 최근의 어두운 사회상이 반영된 탓인지 납치와 감금으로 이어지는 인질극이 심심찮게 눈에 띄었다는 정도다. 그러나 수준이 전반적으로 평이하고 그 많은 작품 중에서 이거다 하는 느낌이 오는 단 한편이 없어서 심사위원들은 고심할 수밖에 없었다.
예심을 거쳐 최종적으로 논의 대상에 오른 희곡은 「미완성 도미노」 「기억을 그리는 여자」 「버찌가 열리기까지」 「플라스틱 스튜디오」 「무화과꽃 피면」 「달무리」 등 모두 여섯편이었다. 그중에서 「플라스틱 스튜디오」는 발상은 좋지만 독백에 의존하는 설명적인 대사와 조금은 유치한 장면설정 때문에 전체적으로 서툰 작가의 솜씨가 드러난다는 이유로, 「무화과꽃 피면」은 작품이 품고 있는 주제를 결말부에 가서 무화과꽃을 통해 의도적으로 연결시키려는 작위적인 구성이 거슬린다는 이유로 먼저 제외되고 남은 네편으로 초점이 모아졌다.(네편에 대한 심사평은 대산문화재단 홈페이지 참조—편집자)
한편의 시극(詩劇)과도 같은 「달무리」는 대학생 작가가 썼다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인생을 통찰하는 어른스러운 시선이 빼어난 작품이다. 완성도에 있어서도 여느 희곡보다 한층 높은 수준과 깊이를 보여주었다. 다만 모범답안 같은 익숙한 희곡에 너무 젖어 있는 듯한 인상이 짙어 새로운 길을 열어가야 할 신인작가의 작품으로 적당한가 하는 우려도 제기되었다. 너무 당연한 말이겠지만 작가는, 특히 신인작가는 기성의 시각에서 벗어난 자기만의 개성적인 목소리를 통해 자신의 작품을 독자나 관객에게 각인해가야 하기 때문이다.
「버찌가 열리기까지」와 「달무리」 중에서 한동안 고민하다 좀더 습작기를 오래 거친 듯한 믿음을 던져준 「달무리」로 당선작을 결정했다. 젊은 나이답지 않은 예스러운 조숙함은 작가가 노력하기에 따라 얼마든지 자신만의 개성으로 승화해갈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품게 해주었기 때문이다. 앞으로 심사위원들의 기대가 헛되지 않았음을 증명하는 훌륭한 극작가로 성장해주시기를 부탁드린다. 또한 단막의 분량을 지나치게 초과한 응모작은 공정성과 공평성의 원칙을 지키기 위해 안타깝지만 당선권에서 제외했음을 알려드린다.
덧붙여 이 자리를 빌려 전체적인 소감과 함께 희곡을 쓰려는 분들에게 몇가지 당부와 조언을 드리고 싶다. 우선 소재의 획일성을 탈피해달라는 것. 이번에도 응모작의 대부분이 가족과 남녀의 연애 이야기에서 글감을 가져왔는데 그러한 소재가 나쁘다는 뜻이 아니라 자신이 하려는 이야기를 통해 남들과 다른 어떤 차별화된 인식을 이끌어내려는지가 중요하다는 것. 원론적인 말이겠지만 모든 창작은 ‘무엇을 쓸 것이냐’만큼 ‘어떻게 쓸 것이냐’가 중요하고, 궁극적으로는 ‘왜 쓰느냐’는 질문과 맞닥뜨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인물의 형상화가 관념적이고 추상적으로 흐른 작품들이 많았다는 것. 인물은 주제를 끌어내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그 자체가 목적이면서 주제라고 할 수 있다. 그러하기에 생생하게 살아 움직이는 구체적인 인물을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각고의 노력이 필요하고 한 인물에 쏟는 작가의 애정과 고민이 깊을수록 그 인물의 두께와 부피가 커질 수밖에 없다는 점을 명심해주셨으면 한다.
마지막으로 많은 작품들이 지나치게 산만한 설명적인 대사로만 이루어져 있다는 것. 설명적인 대사들은 극의 긴장감을 떨어뜨리고 애써 구축했던 캐릭터를 훼손하는 결과를 불러오기 마련이다. 시나 소설과 달리 희곡의 경우 무대를 상징하지 못하면 대사가 많아지고 그때부터 설명을 하기 시작한다는 점을 유념해주셨으면 좋겠다. 극단적인 예이겠지만 한편의 희곡은 대사 없이 그밖의 요소들만 가지고도 충분히 씌어질 수 있다는 점을 주의 깊게 살펴봐주시기를.
희곡 한편을 써냈다는 자체만으로도 응모한 대학생들은 극작가로서 훌륭한 재능을 갖추고 있다고 봐야 하리라. ‘열정이 곧 재능’이라는 말처럼 문제는 누가 더 끈질기게, 오랫동안 글을 붙잡고 있느냐에 달려 있는 듯하다. 쉬지 않고 부지런히 글을 쓰는 사람을 당할 자는 없다. 아쉽게 뽑히지 못한 분들도 여기서 실망하지 않고 정진한다면 조만간 어느새 작가가 되어 있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이 풍진 세상에서 희곡을 쓰고 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우리는 이미 한배를 타고 있다는 사실을 늘 기억해주셨으면 좋겠다.
최창근 최치언
당선소감
어떤 말로 이 글을 시작해야 할까 고민을 하다가 또, 앓아버렸습니다. 나는 참 혼자서도 잘 앓습니다. 봄을 앓고 여름을 앓고 권태를 앓고 낯설다가도 질려버리는 일상을 앓다보니 눈이 내리고, 지금은 분에 넘치는 기쁨을 앓고 있습니다. 결국 내 안의 신파를 앓다,와 같은 말이겠지만.
고마운 사람들이 많습니다. 우선 우리 가족, 많이 고맙습니다. 불평이 많은 딸이고, 무심한 딸이고, 잔소리 많은 누나지만 많이 사랑해서 그런 것임을 알아주었으면 합니다. 아무리 도망쳐도 결국 이곳이 나의 자양분이기에 미안하고 고맙습니다. 그리고 친구들. 장영원, 임지은, 박미진. 김보미. 나를 먹여 살리거나 같이 굶어 죽거나 할 이 친구들 덕분에 마냥 외롭진 않을 수 있었습니다. 일상의 버거움을 잘 극복하기를 바랍니다. 김현, 박지혜, 서유라, 손은주. 걱정해주고, 걱정하고, 반겨주는 친구들입니다. 마지막으로 끙끙 앓고 있는 우리 글쓰는 친구들. 좋아하고 질투하고 아끼고 시기하고 애처로운 이 친구들 덕분에 더 많이 배울 수 있었습니다. 모두 이곳에 옮길까 하다가 적지 않습니다. 이곳의 모든 행간이 너희에게 전하는 마음이라는 것을 알고 있으리라 믿습니다. 다만, 새벽에서 깨어나길 바라는 한 몸, 배우리에게 고마운 마음을 한 줄 적습니다. 학교 선생님들께도 고마운 마음을 적습니다. 김경주 선생님. 언제나 내 감정의 젊음을 위태롭게 만드는 선생님입니다. 지지 않도록, 젊어지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아기 돌보듯 자신을 아끼고 돌아오라고 하셨던 윤대녕 선생님, 나를 꿰뚫듯 바라보시던 김사인, 배삼식 선생님께도, 내 삶의 불편한 순간을 알아봐주셨던 하일지 선생님께도, 고마운 마음을 전합니다. 백가흠, 성기웅 선생님께도 고마운 마음을 적습니다. 마지막으로 심사위원님들께 고마운 마음을 적습니다. 그분들께서 염려하시는 점, 스스로 경계하겠습니다.
이 짧은 글을 쓰는 데도 자신이 없는 내가 무엇을 쓸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다만 꾹꾹 눌러서 농도 있는 글을 쓸 수 있었으면, 그 안에 진심을 담을 수 있었으면 하는 것이 내 바람입니다. 내 글의 비빌 언덕은 내 신파이기에. 어쩔 수 없이 경멸하고 또한 사랑합니다. 어쩔 수 없이 사랑한 지난 연인이, 그 연인이 사랑하는 사람이, 많이 건강하고 행복했으면 합니다.
손유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