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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천정완 千訂完
1981년 경북 문경 출생. 2011년 창비신인소설상으로 등단. wrongseason@gmail.com
육식주의자
너는 마치 이발소에 걸린 그림 같다. 너는 너를 읽는 사람에게 생각할 거리를 주지 못한다. 겉으로 보이는 모습, 그외에는 아무것도 없다. 내가 너를 처음 창조할 때 작게는 30대 중반의 회사원을, 크게는 그 또래 전체를 대변할 수 있는 인물을 만들고 싶었다. 하지만 너는 상사의 탄압에도, 동기들의 괄시에도 소극적인 태도였다. 너는 부모의 강요에 마지못해 나간 선 자리에서 상대가 언제 제일 행복하냐고 묻자, 우연히 간 마트에서 자주 먹는 라면이 특가 판매되고 있을 때라고 대답했다. 또 술에 취한 친구가 왜 사느냐고 질문하자, 너는 살고 있으니까 산다고 대답했다. 나는 네가 최소한 죽지 못해 산다는 대답은 할 줄 알았다. 너를 읽은 독자들은 네게 인간미가 없다고 평했다. 인간을 가장 인간답게 하는 면모, 나는 그게 무엇일까 생각한다. 어떻게 하면 너를 살아 있는 인물로 만들 수 있을까. 너는 단지 빈 여백을 뒤에 둔 커서로 깜빡일 뿐, 내가 아무리 고민해도 속을 보여주지 않는다. 나는 네게 결여된 것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 결여가 너를 평평한 인물에 머물게 한다는 결론을 나는 얻었다. 그래서 나는 한가지 사건을 생각했다.
너는 아침 기획회의에 또 지각한다. 팀원들은 이미 포기했다. 저런 인간 유형은 철기시대 때부터 있었으니까, 장대리는 너를 그렇게 정의했다. 회의 시작 전 너는 팀원들에게 지하철 사고 핑계를 댄다. 팀원들은 신경 쓰지 않고 잡담을 한다. 팀장은 너를 혼내지 않는다. 오히려 기획회의가 끝나고 점심식사를 제안한다. 팀장이 점심식사를 제안했을 때, 너는 그저 예,라고 대답한다. 팀장 같은 사람이 점심을 제안했는데, 예,라니. 장대리라면 아마 오전 내내 회사 주변 맛집을 전부 검색해놨을 것이다. 아무튼 너는 점심시간에 팀장과 함께 사무실을 나선다. 모든 팀원들이 속으로 질투했지만, 너만 그 사실을 모른다.
“초식동물을 상처 없이 잡는 방법은 그물밖에 없어.”
너에게 팀장이 말한다. 엘리베이터로 걸어가는 순간에도 너는 오늘 구내식당 메뉴인 돈까스에 대해 생각한다. 아, 한달에 두번만 나오는 건데, 너는 팀장이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는 관심도 없다. 단지 너는 팀장의 말끝에 아, 네,라고 대답할 타이밍에만 간신히 집중한다. 너의 관심사는 돈까스에 곁들여 나오는 양배추 쌜러드로 옮겨진다.
“하지만 초식동물은 경계심이 많아. 후각을 이용해 위험을 알아차려. 냄새로 상황을 판단한다는 건, 단 한순간도 경계심을 늦추지 않는다는 뜻이야.”
“아, 네” 하고 네가 대답한다.
“그래서 초식동물을 그물로 잡으려면 사람냄새를 없애야 한다는군. 타닌이 많은 방향성 침엽수를 꺾어서 2주간 말려 잘게 자른 후에 보드까에 걸러 몸에 바르면, 초식동물의 냄새를 가질 수 있다고 하더군. 제일 중요한 건 스스로가 초식동물이라고 생각하는 거래. 자신을 철저하게 감추는 거지. 아무리 체취가 없어도, 그러지 않으면 초식동물을 생포할 수 있는 사정거리로 들어갈 수 없대. 나는 말이야. 언젠가 그물로 사슴을 잡고 싶어. 사람의 냄새를 완전히 지우고.”
너는 아, 네 하고 고개를 끄덕인다. 식당으로 가는 동안에도 너는 아직 돈까스를 생각한다. 아, 오늘 수요일인가. 그러면 양송이 수프일 텐데. 꿀꺽. 네가 침을 삼킨다. 팀장은 너를 계속 관찰한다. 너는 여전히 구내식당 돈까스 생각에만 몰두하고 있으므로, 네가 더 눈치 없는 행동을 하기 전에 나는 너와 팀장을 얼른 정육식당으로 옮겨놓는다. 자리에 앉자마자 반찬이 깔린다. 팀장은 써빙을 하는 주인에게 자신은 늘 먹던 걸로, 네 몫으로는 육회를 주문한다. 너는 다행히 다른 것을 먹겠다고 말하지 않는다. 주인은 테이블에 접시 두개를 내려놓는다. 한 접시에는 육회가, 한 접시에는 몇 덩어리의 생고기가 담겨 있다. 너는 테이블에 놓인 휴대용 가스레인지의 불을 켜면서 주인에게 불판은 왜 안 주느냐고 묻는다.
“난 그냥 먹어.”
팀장이 불을 끄며 그에게 말한다.
“이 자리는 사적인 자리야. 나는 김철기씨가 상사의 사적인 이야기를 소문내는 촌스러운 사람이 아니라고 믿어.”
너는 영문도 모르고 그러겠다고 대답한다. 팀장은 육식주의자다. 팀장은 생고기만 먹는다. 술과 담배는 물론 심지어는 커피도 입에 대지 않는다. 팀장은 아무에게도 먹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다. 그는 가끔 팀원들이 무안할 정도로 간식 따위를 단호히 거절한다. 사람들은 그가 경계심이 많거나 지독한 편식가라고 생각한다. 팀장이 피가 뚝뚝 떨어지는 고기를 손으로 집어 입에 넣는다. 쩝쩝, 너는 팀장이 고기를 씹는 것을 가만히 본다. 너는 조금 놀랐지만, 참 독특한 취향이구나 생각하며 크게 신경을 쓰지 않는다. 팀장은 휴지를 뽑아 손에 묻은 피를 닦는다. 코피라도 쏟은 듯, 테이블에 피가 밴 휴지가 쌓인다. 너는 조금 망설이다가 육회를 먹기 시작한다.
“입사한 지 얼마나 됐지?”
“2년차입니다.”
네가 말한다. 팀장은 그렇군, 하더니 큼지막한 고기를 집어 입에 넣는다. 너는 밥은 왜 안 줄까 생각하며 주변을 살핀다. 앉아 있는 테이블 좌측으로 간이 발골실(發骨室)이 보인다. 정육점 주인이 칼을 들고 나타난다. 주인은 대접에 담긴 물을 마시고 나서, 세로로 토막난 채 봉에 매달린 돼지를 해체하기 시작한다. 그는 뼈에서 분리된 살덩이를 진열 냉장고 뒤쪽 도마로 툭툭 던진다. 너는 그 모습이 조금 불쾌하다.
“흉측하네요. 저걸 보면 애초에 살아 있던 게 맞나 싶습니다.”
“자신감이지. 요즘 저렇게 현장에서 작업하는 정육식당이 어디 있어? 고기는 뼈에서 분리되는 순간 상하기 시작해.”
“아, 예.”
너는 대답하며, 밥은 언제 주는지 생각한다. 팀장은 야구중계라도 보듯 주인이 발골하는 과정을 보면서 천천히 고기를 씹는다. 팀장은 침착하고 과묵하며 성실하고 참을성이 강한 사람이다. 거칠게 욕을 하거나 소리를 친 적이 없으며 팀원들은 그가 투덜거리는 것을 한번도 본 적이 없다. 그건 너도 알고 있다.
팀장은 물로 입을 헹구더니 손에 묻은 핏기를 쪽쪽 빤다.
“역시 이 집 고기는 신선해.”
팀장이 테이블에서 몸을 뒤로 쭉 빼더니 자세를 편하게 고쳐 앉는다. 시선이 주인의 칼을 따라 움직인다. 주인은 갈비 아래에 붙은 삼겹살을 도려내고 있다. 칼이 한번 지나가자 뼈와 뼈 사이가 벌어지고 다시 한번 칼이 지나가자 뼈에 붙은 살덩이가 바닥에 툭 떨어진다. 팀장은 유능한 사람이다. 회사는 자동차 유리를 납품하던 하청업체였는데, 팀장의 주도 아래 동남아시아에 수출을 시작해, 연매출 380억의 기업으로 성장했다. 미국에 있는 자동차 공장들이 동남아시아로 대거 이전할 것이라는 그의 예측 덕분이었다. 사장은 팀장을 임원으로 뽑아 올리려고 했지만, 팀장은 현장이 좋다는 이유로 몇번이나 고사했다. 사장은 다른 회사로 옮기지 않겠다는 팀장의 약속을 거듭 확인받고 그에게 임원에 준하는 연봉과 팀 인사권을 보장했다. 팀장은 신입사원 워크숍에서 제일 성적이 좋은 사원들을 자신의 팀으로 배정했다. 그들은 야망을 주제로 논문을 쓴다면 몇편이고 쓸 수 있는 축이었다.
“오늘 저녁 약속 있나?”
팀장이 묻는다. 너는 없다고 대답한다. 저녁에 서점에 들러 새로 나온 게임잡지를 사려고 했지만 그건 나중이라도 좋다고 너는 생각한다. 고무적인 일이었다.
“그럼 저녁도 함께하지.”
너의 눈이 번뜩인다. 팀장도 그것을 놓치지 않았다. 팀장은 네가 최소한 승진에 대한 욕망은 있겠구나 생각한다. 네가 자리에서 먼저 일어나 팀장의 신발을 챙긴다. 한번도 보이지 않은 너의 능동적인 충성이었다.
‘야, 사무실 분위기도 안 좋은데 짱 박혀서 커피나 한잔 마시자. 십분 뒤에 휴게실로 오도록.’ 장대리의 메시지였다. 너는 알겠다고 대답하고 시계를 본다. 퇴근시간까지는 두시간 반 정도 남았다. 사실 너는 장대리를 싫어한다. 장대리가, 너는 능력도 없으면서 운이 좋아 팀에 소속됐다고 공공연히 말하는 것을 너도 알고 있다. 하지만 과장이 15분에 한번씩 너를 불러 팀장과 점심에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물었으므로 너는 차라리 장대리가 낫겠다고 생각했다. 너는 휴게실 입구에 서서 스마트폰 게임에 빠져 있는 장대리를 잠시 지켜본다. 너는 장대리가 꼭 옷을 입혀놓은 돼지새끼 같다고 생각했다. 장대리의 셔츠는 한벌에 50만원이 넘는 명품이었다. 너는 장대리를 바라보며 아침에 읽었던 칼럼 내용인 사회 부조리에 대해서 생각한다. 저게 바로 부조리다. 장대리는 땀을 뻘뻘 흘리며 축축하게 젖은 겨드랑이를 만지고 냄새를 맡는다. 장대리가 깜짝 놀라 주변을 살피더니 너를 보고 말한다.
“언제 왔냐.”
“방금.”
장대리는 주머니에서 천원짜리를 한장 꺼내 테이블 위에 얹고는 시선을 다시 스마트폰으로 돌린다. 너는 지폐를 집어 커피를 뽑는다.
“잔돈은 너 가져.”
장대리가 말한다. 너는 잔돈을 주머니에 넣고 뽑은 커피를 내밀며 장대리 앞에 앉는다. 장대리는 너를 신경도 쓰지 않고 여전히 게임에 열중한다.
“커피 식어. 빨리 마셔.”
네가 말하자, 장대리는 스마트폰에 눈을 떼지 않고 커피를 홀짝거린다.
“아, 이거 고급커피 아니냐?”
장대리가 거칠게 커피잔을 내려놓는다. 시궁창 물이라도 마신 듯 장대리는 미간을 찌푸린다.
“나는 차이를 잘 모르겠던데.”
너는 자신없이 말한다.
“일반커피는 맛이 병신 같다니까. 야, 우리 백원은 아끼지 말자. 백원 아낀다고 절대 집 못 사요. 이거 너 마시고 나는 고급으로 다시 부탁해.”
너는 자신도 모르게 주먹을 쥔다. 백원이 아까워서 그 병신 같은 커피만 마신 자신이 조금 작아지는 것을 느낀다. 너는 다시 자판기 앞에 선다.
“다른 회사에는 스타벅스도 있던데 직원복지 차원에서, 아메리카노는 팔아야지. 복덕방 노인들도 아니고 자판기가 뭐냐.”
너는 동전을 넣으며 장대리가 혼잣말하는 것을 듣는다. 네가 삼백원짜리 고급커피를 장대리 앞에 내려놓고 앉는다.
“팀장이랑 무슨 이야기 했냐?”
“그냥 별말씀 없으셨어.”
“일 이야기는 안했어?
“그냥 밥만 먹었어.”
장대리가 너에게 묻는다. 너도 그 질문이 일종의 경계라는 것을 알고 있다. 네가 자존심이 상하는 것은 그게 느슨한 경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너는 최선을 다해 불쾌한 마음을 감춘다. 동료들에게서 넌 참 착해,라는 말을 자주 듣는 이유도 그 때문이었다.
“네가 참 착해서, 팀장님 상 주셨구나. 맛있는 거 먹었어?”
“고기 먹었어.”
좋았겠네? 하고 장대리는 여전히 스마트폰을 보며 웃는다.
“너무 실망하지는 마라. 팀장 냉정하잖아. 내가 볼 때는 그냥 호의를 베푼 거야. 네가 너무 착하니까. 설마 점심 한번이 기회라고 생각했던 건 아니지?”
게임이 끝났는지 스마트폰을 주머니에 넣고 너를 보고 실실 웃는다. 너는 하루에 몇 끼를 먹어야 저렇게 큰 얼굴을 가질 수 있을까 생각한다.
“아이, 맛없어. 사람들이 이걸 커피라고 마시고 앉아 있다니까.”
장대리는 잔을 내려놓고 자리에서 일어난다.
“철기야, 너무 착해도 피곤해. 그치? 인생은 정글이래. 정글은 약육강식이라잖아. 힘이 없으면 어디 숨어. 오케이?”
장대리는 너의 어깨를 툭 치고 사무실로 돌아간다. 너의 심장이 조금 빠르게 뛴다. 너의 얼굴이 붉어지려고 했지만 곧 평온을 되찾는다. 너는 또다시 마음을 숨긴다. 커피 석잔을 단번에 마시고 휴게실을 나오며 너는 장대리가 말했던 정글에 대해 생각한다. 약육강식. 네가 한번 말해본다. 약육강식. 힘이 없으면 숨어. 네가 혼잣말을 한다.
팀장과 너는 퇴근 후에 지하 주차장에서 만난다. 팀장은 자신의 벤틀리에 앉아 있다가 네가 보이자, 서둘러 조수석을 정리한다. 너는 팀장이 확실히 들떠 있는 것을 느낀다. 너는 팀장의 차 앞에서 신호를 기다린다. 너는 사진으로만 보던 팀장의 차를 가까이서 보자, 가슴이 뛴다. 차에 별로 관심이 없던 네가 봐도 너무나 매끈한 차였다. 풀숲에 웅크린 맹수처럼 보였다. 이런 게 바로 명차구나 하는 생각을 하며 너도 모르게 보닛을 한번 쓰다듬는다. 아파트 한채 값이라던 가격만큼이나 비현실적인 모습이다. 마침내 팀장은 너에게 타도 좋다는 신호를 보낸다. 네가 운전을 하겠다고 말하자, 팀장은, 이건 아무나 운전 못하는 차야, 하며 거절한다.
차는 사옥이 있는 여의도를 빠져나와 바로 올림픽대로에 오른다. 너는 긴장한다. 팀장은 말없이 속력을 올린다. 퇴근시간임에도 팀장의 벤틀리는 빠르게 서울을 벗어나 출발 40분 만에 경춘고속도로를 질주한다. 짐승처럼 포효하는 엔진 소리가 둘 사이 침묵의 간극을 메운다. 차는 동홍천 나들목을 빠져나와 외삼포리 쪽으로 좌회전한다.
“여긴 시원하네.”
운전에만 몰두하던 팀장이 운전석 차창을 연다. 팀장은 너를 보더니 네 쪽 창도 연다.
“바람 좀 쐬지. 여긴 공기의 밀도부터 달라.”
“여긴 좀 시원하네요.”
네가 말한다. 가로등이 거리를 점점 넓혀 나타난다. 차는 국도를 빠져나와 콘크리트 포장도로를 달린다.
“어디로 가는 겁니까?”
너의 눈빛이 조금 흔들린다. 차는 콘크리트 도로가 끝나고도 멈추지 않는다. 1킬로미터가량 비포장도로를 달리고 나서야, 네 눈앞에 커다란 천막이 나타난다. 너는 놀란다. 이 산속에 이렇게 큰 천막이 있을 줄 너는 상상도 못했으며 네가 어린 시절 동경했던 동춘써커스의 천막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크기니까. 차는 천막 아래 언덕에 있는 주차장에 선다. 너는 눈이 커진다. 주차장엔 강남에서도 보기 힘들었던 고급차들이 빽빽하게 들어차 있다.
“여기야. 내리지.”
팀장이 차에서 내리며 말한다. 네가 보고도 믿기 힘든 광경에 넋을 놓고 있는 사이, 팀장은 기지개를 켜며 심호흡을 한다.
“들어가지.”
둘은 주차장에서부터 난 길을 따라 언덕을 오른다. 천막이 가까워지고, 실제로 그 크기가 상상 이상이었다는 사실에 너는 또 한번 놀란다.
“나는 자네를 믿어. 성공하고 싶지? 이곳에서의 일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는다면 내가 약속하지.”
너는 불빛을 머금은 천막이 일렁이는 불길 같다는 생각을 하며 고개를 끄덕인다. 성공. 성공이라는 말에 너는 뜨거워진다. 뭔가 변하고 있다는 기류를 아주 잠깐이나마 감지한다. 팀장은 입구를 지키고 있던 남자들에게 너를 아끼는 후배라고 소개한다. 너도 그들에게 고개 숙여 인사한다. 너는 조금씩 의문을 가진다. 지금 벌어지는 이 상황이 어떻게 너의 성공과 연결될 것인지. 너는 팀장의 차를 떠올려본다. 네 속에서 조금씩 팀장에게 잘 보이고 싶은 욕심이 자라고 있다. 너는 그 순간 아무나 운전할 수 없는 차가 떠오른다. 남자들은 너와 팀장을 천막 옆에 딸린 간이 컨테이너로 안내했다. 너는 거기에 붙어 있는 명패를 보고 그것이 라커룸이라는 것을 안다. 라커룸에서 옷을 갈아입고 있던 몇몇은 네가 이름만 들어도 알 만한 사람들이었다. 팀장은 그중에 가장 가까운 남자와 악수한다. 너의 어깨가 조금 더 둥글게 움츠려든다.
“인사하지? 이쪽은 제이그룹 총괄 부사장님이셔.”
팀장이 소개하자 옷을 갈아입던 남자가 자신있게 손을 내민다. 너는 그 손을 잡고 악수한다. 너는 남자가 경제지에 단골로 등장하는 기업합병 전문가인 것을 깨닫고 다시 한번 깍듯이 인사한다.
“제가 아끼는 후뱁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려요.”
팀장이 남자에게 말한다.
“그럼요, 누구 소갠데.”
남자가 부드럽게 말한다. 너는 최대한 공손하게 웃는다. 너는 살아오면서 대우받는 기분을 처음 느껴 기분이 좋아진다. 팀장이 너를 세워두고 옷을 갈아입는다. 옷은 흡사 우주복과 비슷했다. 하얗고 부피가 큰, 네가 생전 처음 보는 옷이었다. 옷을 갈아입은 팀장은 야구방망이 하나를 골라 쥐고 스윙 연습을 한다. 너는 그 모습을 보며 여기가 배팅 연습장인가 추측해본다.
라커룸을 나오자 너와 팀장을 안내했던 남자가 기다리고 있다. 팀장은 남자에게 너를 안내하라고 부탁한다. 야구방망이를 쥔 팀장이 멀어지자 남자는 너에게 자신을 따라오라고 말한다. 네가 무슨 일인지 물어도 남자는 묵묵부답이다. 너와 남자는 다시 큰 천막 앞으로 돌아온다. 남자는 입구를 지키는 다른 남자에게 너를 손님이라고 소개한다. 몇 마디 이야기가 오간 후, 너에게 종이 한장을 내민다. 나는 여기서 벌어진 일을 절대 발설하지 않겠다,로 시작하는 협박에 가까운 내용이었다. 너는 끝까지 읽지 않고 그냥 서명한다. 남자들은 너에게 휴대폰을 맡기라 요구하며 요즘 SNS가 너무 발달해서 어쩔 수 없다는 설명을 한다. 네가 인터넷도 안되는 구형 휴대폰을 건네자 남자들이 피식 웃는다. 남자들 중 하나가 천막 문을 열어준다. 천막 안에서 다른 남자가 너를 인수한다. 남자가 랜턴 불빛으로 너를 안내한다. 불빛이 가는 곳마다 허공이었다. 우주처럼 깜깜하고 막막한 공간이었다. 너는 마치 맹인처럼 남자의 불빛을 지팡이 삼아 천천히 걷는다.
“내려가시죠.”
남자의 말을 듣고, 너는 네가 내려가는 계단 앞에 서 있는 것을 깨닫는다. 지하로 한 층 내려갔을 때, 귀를 찢는 비명소리에 너는 당황한다. 무언가가 절규하는 소리였는데, 분명 사람의 것은 아니었다. 지하 2층으로 내려가자 남자들의 환호성도 함께 들렸다. 지하 3층, 좁은 계단을 내려가며 너는 불안한 기색을 감추지 못한다. 마침내 큰 철문 앞에 섰을 때, 남자가 껌을 하나 내민다.
“혀 깨물 수 있으니까, 씹으세요.”
네가 껌을 씹자, 남자가 철문을 연다. 빛과 함께 괴성이 쏟아진다. 너의 시야에 들어온 것은 거대한 도축장이었다. 소들이 좁은 통로에 일렬로 줄지어 서 있고, 우주복과 비슷한 옷을 입은 남자들이 맨 앞에 있는 소를 야구방망이로 때리고 있었다. 너는 남자들이 입은 옷에 피가 튀는 것을 본다. 옷은 애초에 하얀색이었나 싶을 정도로 핏빛으로 변했다. 남자들은 온 힘을 다해 소 대가리를 후려친다. 소는 저항도 하지 못하고 소리만 지르면서 피를 펑펑 쏟아낸다. 소가 부르르 떨다가 그대로 고꾸라지면 남자들은 소의 숨통을 끊은 사람을 칭찬한다. 진행요원들이 쓰러진 소를 끌어내면 뒤에 있는 소가 대가리를 맞았다. 너는 다음 차례를 기다리는 소의 눈에서 두려움을 보고 묘한 쾌감을 느낀다. 너는 멀리서 거친 숨을 토해내며 야구방망이를 휘두르고 있는 팀장을 발견한다. 팀장은 웃으며 배팅머신에서 나오는 야구공을 받아치듯 경쾌하게 방망이를 휘둘렀다. 너는 소를 때릴 때 들리는 둔탁한 소리에 집중한다. 그렇게 두시간 동안 너는 터지고 으깨지고 피 튀기는 광경 앞에서 지옥에 와 있는 듯했지만 어느새 익숙해진다. 누군가 휘슬을 불었고, 남자들이 동작을 멈추고 한꺼번에 출구 쪽으로 걸어나온다. 너는 아쉬운 듯 여전히 스윙을 하고 있는 한 무리의 남자들을 유심히 지켜본다. 팀장도 그중 하나였다.
너는 라커룸 앞에서 팀장을 기다리는 동안에도 차례를 기다리던 소의 눈빛이 지워지지 않는다. 툭툭, 너의 심장이 빠르게 뛴다. 샤워를 마친 팀장이 개운한 얼굴로 네 앞에 나타난다.
“아, 오늘 결정타를 일곱방밖에 못 때렸어.”
팀장은 섀도우 스윙을 하며 네게 말한다. 그게 일곱마리의 소밖에 못 죽였다는 말이라는 것을 너는 뒤늦게야 알았다. 밥이나 먹지, 팀장이 네 어깨를 툭 치며 말한다. 묵직한 전율에 네 몸이 휘청인다. 차례를 기다리던 소의 눈빛 때문이었는지, 소를 후려칠 때 나는 둔탁한 소리 때문이었는지, 팀장과 걷는 동안 너는 전율의 근원을 알고 싶어 눈앞에 펼쳐졌던 광경을 집요하게 복기한다.
팀장이 너를 안내한 곳은 천막 뒤편에 지어진 고급 레스토랑이었다. 입구에서 매니저라고 불리는 남자가 너와 팀장을 기다리고 있었다. 팀장은 매니저에게 가볍게 인사한다. 매니저는 익숙하게 너와 팀장을 안으로 안내한다. 실내는 고급 산장의 거실과 비슷했다. 중간에는 원형의 바가 있고 바 주변으로 객실처럼 보이는 방문이 보였다. 바에 둘러앉아 있는 몇이 나른한 얼굴로 가벼운 음료를 마시고 있다. 너는 방문마다 육식동물의 문양이 새겨져 있는 것을 본다.
“우린 호랑이방이야.”
팀장이 너의 눈빛을 간파한 듯 말한다. 매니저는 팀장과 너를 호랑이방으로 안내한다. 방 안은 갈색벽지로 도배돼 있었다. 화분 몇개와 옷장, 그리고 중앙에 있는 4인용 식탁이 전부인 씸플한 방이었다. 매니저가 식탁의자를 빼며 너와 팀장에게 앉을 것을 권한다. 너는 자리에 앉아 매니저가 잔에 물을 채우는 것을 본다.
“놀랐지? 껌은 뱉어.”
너는 네가 아직도 껌을 씹고 있다는 것을 그제야 안다. 입속에 껌이 있는 것도 까맣게 잊었다니.
“여기는 뭐하는 곳인가요?”
“도축클럽이라는 데야.”
팀장은 간단히 말한다. 세세한 설명을 할 생각이 전혀 없는 듯, 팀장은 그냥 너를 지긋이 바라본다. 너는 본능적으로 팀장의 눈을 피한다.
“설명은 식사를 하고 하지. 진짜 고기 맛을 보여줄게.”
팀장이 손을 닦으며 말한다. 너는, 진짜 고기 맛에 대해 생각한다. 팀장이 벨을 누른다.
“들어가겠습니다.”
두 남자가 들고 들어온 것은 쟁반에 놓인 살덩이였다. 너는 아무것도 파악하지 못한다. 단지 저 고기를 어떻게 할 것인지 궁금해하고 있다.
“내가 죽인 소야.”
팀장이 말한다. ‘내가’와 ‘죽인’이라는 말에 너의 가슴이 뛰기 시작한다. 너는 머리를 맞고 피를 쏟으며 앞으로 고꾸라지는 소를 떠올린다. 들려오던 비명과 소를 치던 둔탁한 야구방망이 소리가 네 머릿속에 맴돈다. 너의 눈앞에 놓인 살덩이에서 피가 흘러내리고 있다. 너는 너도 모르게 침을 삼킨다. 팀장이 손으로 고기를 집어 뜯는다. 팀장의 입술로 피가 배어나온다. 너는 그 입을 바라보고 있다. 쩝쩝. 너는 소리에 집중한다. 팀장이 네게 고기를 권한다. 너는 아직 손을 대지 않고 팀장의 입만 바라보고 있다. 먹어봐 하면서 붉은 피가 흐르는 고기를 씹는 그의 입에서 너는 눈을 떼지 않는다. 너는 고기를 집어 입에 넣어본다. 진한 피 맛이 입안 전체에 퍼진다. 너는 머리를 후려치는 듯한 현기증을 느낀다. 너는 온 턱근육을 경직시켜 살을 씹는다. 탄탄한 생살에 꽈드득 꽈드득 어금니가 박히는 것을 느낀다. 씹을수록 살 속에 있는 육즙이 너의 혀에 닿는다. 살을 씹을수록 너의 심장이 빨리 뛴다. 네 앞에 있는 고기가 줄어드는 것이 보이기 시작한다. 어느 순간 너는 양손을 이용해 고기를 먹는다. 고기를 채 씹어 넘기기도 전에 다른 고기를 집고 있다. 고기를 가득 물고도 너는 접시에서 눈을 떼지 않는다. 너는 팀장이 너의 고기를 빼앗을까봐 두렵다. 팀장이 너를 말렸을 때, 네 얼굴은 피범벅이었고 입속에는 씹지도 못할 만큼 커다란 고깃덩어리가 있었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너는 말이 없다. 너는 미로를 그리는 것처럼 네 자신에게 몰두한다. 너는 변화하고 있다. 너는 조금씩 네 마음을 복잡한 곳에 숨긴다.
“왜 저를 그곳에 데려갔습니까?”
네가 침묵을 깨고 말한다. 팀장이 피식 웃는다.
“네가 착해서. 난 착한 사람 딱 질색이거든.”
“저도 도축클럽에 가입하고 싶습니다.”
“넌 아직 도둑고양이야. 고양이가 어떻게 소를 잡나? 쥐부터 천천히 잡아야지. 그다음에 진짜 사냥을 하자고.”
너는 결의에 찬 듯 고개를 끄덕인다. 너는 작은 불에 계속 기름 덩어리를 던지고 있다. 불이 커지듯 네 욕심도 커진다.
팀장과 너는 자주 저녁시간을 같이 보냈다. 시간이 지날수록 너와 팀장은 전보다 훨씬 강한 지배-결속관계가 생겼다. 그것은 직장의 서열이라기보다 동물의 서열과 가까웠다. 무리를 이뤄 사냥을 하는 짐승처럼 너는 팀장의 말이라면 무조건 복종했다. 팀장과 아침마다 조깅을 시작했고, 퇴근 후에는 근력운동을 했다. 팀장은 네가 신경이 날카로워지는 시점을 정확하게 알고, 그때마다 고기를 먹으러 도축클럽으로 함께 갔다. 너는 위(胃)를 늘려 먹을 수 있는 최대한의 양을 먹고, 그 덕에 일주일이 넘도록 물만 마시고 버틸 수 있게 됐다. 세번째로 야구방망이를 든 날 너는 처음으로 팀장보다 많은 고기를 먹었다. 너는 정말 빠른 속도로 변했다. 눈빛과 행동에서 과거의 너를 찾아볼 수 없게 됐다. 너는 이제 마음을 숨기지 않는다.
너는 아무도 모르게 혼자 도축클럽에 다녀왔다. 집으로 돌아오자 잠들어버렸다. 꿈도 꾸지 않는다. 회사에 출근해서는 일에만 몰두한다. 애초에 승진 같은 것을 염두에 두지도 않는 것 같던 네가 종일 일에 몰두했다. 야근을 자청했다. 밤까지 사무실에 남아 너는 동료 직원들의 컴퓨터를 뒤진다. 팀원들의 모든 기획안을 네 외장하드에 복사하고, 어떤 문서는 완전히 삭제하기도 한다. 그들은 아침에 출근해 당황했지만 너를 의심조차 하지 않는다. 너는 착하니까. 너는 그 점을 잘 알고 있다. 너는 과장을 눈빛으로 제압했다. 원래 겁이 많던 과장은 너에게 아무 말도 하지 못한다.
너는 장대리가 퇴근할 때까지 기다렸다. 그러고 나서 그가 따낸 계약서 파일을 불러내 계약금액에 0을 하나 더 붙여 거래처로 전송했다. 장대리가 출근해서 메일 아이디와 패스워드를 입력할 때마다 너는 커피를 뽑아다주며 도둑고양이처럼 훔쳐봤다.
사고가 터진 날 장대리는 자기 잘못이 아니라고 발악했다. 장대리는 하루 만에 회사에 막대한 피해를 입힌 장본인이라는 사실을 절대 받아들이지 않았다. 장대리는 사무실 한복판에서 아이처럼 울며 결백을 주장했지만, 혹시나 불똥이 튈까 두려웠던 다른 팀원들은 장대리의 호소를 TV 소리처럼 여기며 자기 일만 했다. 너는 모든 것을 계산했었다. 장대리가 난동을 피우기 시작하자 너는 그를 제압했다. 장대리는 6개월 감봉 처분을 받고 인사고과에 심각한 타격을 입었다.
너는 매일 퇴근 후에 정육점에 들러 생고기를 산다. 집으로 돌아와 고기를 냉장고에 넣고, TV를 본다. 그것마저 지루해지자 너는 초조해한다. 너는 허기를 기다린다. 고기를 맛있게 먹기 위해서. 허기가 찾아오자 샤워를 하고 냉장고에서 고기를 꺼낸다. 피가 듬뿍 밴 안심을 그 자리에 서서 다 먹는다. 양이 차지 않아 냉동실에 묵혔던 삼겹살까지 해동해 전부 먹는다. 포만감이 들자 너의 얼굴은 마침내 평온해진다. 손톱에 낀 피와 기름을 깨끗이 핥았고, 고기를 담아왔던 비닐에 고인 피까지 물에 헹궈 마신다. 느긋하게 거실로 돌아와 다시 TV 스위치를 눌러 리모컨으로 채널을 찾는다. 오래된 드라마를 보다가 잠깐 졸았고, 다시 깨어났을 때 마지막 뉴스가 나온다. 그렇고 그런 정치, 사회 이야기였다. 너는 네가 왜 저런 일에 신경을 쓰고 살았을까 생각한다. 뉴스가 끝나자 TV를 껐다. 너는 잠자리에 눕자 금방 잠이 든다. 너는 꿈속에서 거대한 초원에 서 있다. 그곳에서 너는 알몸이다. 그것은 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순간이었다. 너는 다짐한다. ‘나는 앞으로 살기 위해 새로운 변명을 만들어낼 것이고, 변명은 또다른 변명이 될 것이다. 나의 말은 본래의 말뜻과 멀어져 나는 결국 사람의 말을 잊겠지.’ 네가 초원으로 걸어들어간다.
네 첫번째 진짜 사냥은 팀장이었다. 너는 팀장의 자료를 모두 복사해 이사회에서 터뜨렸다. 회사는 내부고발자인 너를 정리하려고 했지만, 너는 팀장의 비리를 언론에 퍼뜨리겠다고 이사회를 협박했다. 팀장은 결국 퇴직하기로 마음먹었다. 너는 팀장이 방 정리하는 것을 감독하겠다고 했다.
“도대체 나한테 왜 이래? 이럴 필요까지는 없잖아?”
팀장은 네게 분노를 숨기지 않는다.
“원래대로 돌려놔.”
“이미 늦었어요.”
네가 말한다. 팀장은 쉽게 수긍하지 않는다.
“내가 네 욕망의 크기를 짐작하지 못했으니, 내 잘못인가?”
“당신 잘못은요. 내가 약자인지 모르고 살았을 때 내게 약자임을 일깨워준 거예요.”
팀장은 한참 동안 의자에 앉아 있다가 일어나 집기를 정리하고 서류를 챙긴다. 너는 팀장이 정리하던 서류 몇장을 그 자리에서 파쇄기에 넣어버린다. 팀장이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너를 본다. 네가 웃으며 팀장을 노려본다. 팀장이 본능적으로 너의 눈을 피한다.
“고기 맛은 당신이 보여줬잖아.”
나는 마침내 너에게 육식을 그만두라고 경고했다. 너는 애초에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이상하게 변하고 있다. 나는 네 마음이 기형적으로 변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네게서 고기를 빼앗았다. 하지만 너는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고기를 갈망한다. 일을 하는 시간 외에 대부분은 고기에 대해서만 생각한다. 버스를 기다리는 동안, 책을 읽는 동안, 심지어는 너의 주의를 돌리기 위해 극장에 앉혔을 때도 너는 고기 생각을 멈추지 않는다. 나는 좀더 개입하기로 결심한다. 일부러 너에게 고기가 전혀 들어 있지 않은 음식만 먹인다. 쌜러드, 아이스크림, 두부 같은 것들. 그러나 너는 그것을 모조리 게워낸다. 위장에서 그 음식들이 하나도 남지 않을 때까지 너는 토하고 또 토한다. 너는 지금도 책상에 앉아 넓은 초원을 만들어낸다. 한가롭게 풀을 뜯다가 맹수에게 포획되는 초식동물을 생각한다. 너는 갈라진 초식동물의 배에서 쏟아진 내장을 생각하며 입맛을 다신다. 너의 상상은 점점 더 구체화되고 너의 사냥법은 더욱 잔인해진다.
너는 팀장이 됐다. 동기들이 화환이며 과일바구니를 들고 찾아와 축하인사를 건넨다. 그 행렬에는 장대리도 섞여 있다. 장대리는 고가의 와인을 정성스럽게 포장해 안고 왔다.
“축하해. 오늘 같은 날 축포를 터트려야지. 오늘 술 사는 거야?”
너는 무표정하게 장대리를 살핀다. 동기들이 돌아가고 장대리가 네게 악수를 청한다. 너는 장대리의 손을 잡고 그의 발을 슬쩍 밟는다.
“언제까지 반말할래요? 장대리?”
“죄송합니다.”
“나가서, 숨을 데나 찾아봐.”
장대리는 굳어진 얼굴로 90도 인사를 하며 나간다. 네가 책상에 앉아 나를 본다. 이제 어쩔 건데? 어느덧 너는 상황을 지배한다. 너는 이제 자주 초원으로 돌아간다. 너는 스스로 초원을 만들어내는 법을 배웠다. 그 속에 몇시간이고 숨어 내 눈을 피할 수 있게 됐다. 네가 나를 처음부터 이용했다는 것도 뒤늦게 알았다. 너는 애초에 네게 고기를 던지게끔 만들었다. 너는 둥지에 있는 어린 새처럼 순진한 얼굴로 그것을 다 받아먹었다. 나는 끝까지 네가 맹금류였다는 것을 몰랐다.
“네가 나를 애초에 초식동물이었다고 생각한 게 잘못 아닐까?”
네가 말한다. 나는 대답하지 못한다. 너는 내 어깨를 두드리고 사무실을 나간다. 어느새 바깥은 초원이다. 너는 생각한다. 조금 천천히, 몸을 낮추고, 기다리자, 나를 지우고 내가 아닌 듯 하는 거야. 너는 초원 속에 네 모습을 감춘다. 나는 이제 너를 통제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