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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평론
루카치 장편소설론의 역사성과 현재성
김경식 金敬埴
독문학 연구자. 루카치의 『소설의 이론』을 번역했으며 최근에 쓴 글로 「「기술적 복제가 가능한 시대의 예술작품」을 읽기 위하여」가 있음. erden21@naver.com
1. 들어가는 말
어떤 사상이나 이론의 ‘현재성’을 가늠하는 외적 지표가 그것의 번역, 연구, 출판 등이 얼마나 활발하냐에 있다면, 지금 루카치(György Lukács, 1885~1971)의 사유는 ‘현재성’과는 거리가 꽤 멀어 보인다. 하지만 그의 이론이 우리의 문학적 사유에 워낙 뚜렷한 흔적을 남겼기 때문에 문학연구자나 평론가라면 그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는 경우가 종종 생기는데, 그럴 때 루카치는 그들의 다른 입장을 도드라지게 만들기 위한 어두운 배경화면으로 활용되거나 “루카치 유(類)의……” “루카치 식의……” 같은 표현을 통해 이미 이론적 ‘결산’이 끝난 인물로 취급당하기 일쑤다. 그런데 따지고 보면 그런 표현이 별 거리낌 없이 통용될 수 있을 정도로 그의 문학론을 둘러싼 논의들이 많았던 것도 사실이다. 그중 특히 논의가 집중되었던 대목은 그가 주로 1930년대에 조탁(彫琢)했던 리얼리즘론이었는데, 우리 문학계의 관심이 리얼리즘 문제에 쏠렸던 탓이 클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한가지 특이한 것은, 그의 리얼리즘론에 대한 이론적 관심이 그의 장편소설1) 이론에 대한 진지한 관심으로는 이어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가 개진했던 리얼리즘 관련 담론들 대부분이 장편소설에 관한 성찰에 근거한 것이니만큼 그의 장편소설론에 대한 본격적인 고찰도 마땅히 이루어졌을 법한데, 유감스럽게도 이 분야에서 눈여겨볼 만한 성과는 거의 없다시피 한다.2) 이것은 비단 우리에게만 국한된 현상이 아닌데, 한때 그가 ‘미학의 맑스’ 대우를 받았던 서구에서도 맑스주의적 관점에서 시도된 그의 장편소설론을 본격적으로 고찰한 글은 눈에 잘 띄지 않는다. 국내외의 이런 사정을 감안하면, 루카치의 장편소설론을 다루는 이 글은 그의 문학론에 대한 연구과정에서 있었던 빈 곳을 메우려는 ‘뒤늦은’ 노력으로 읽힐 수도 있겠다. 때마침 우리 문학계 한쪽에서 장편소설의 ‘종언’ 혹은 ‘부흥’을 둘러싼 성찰과 모색이 진지하게 전개되고 있는 마당이니 이왕이면 거기에도 일말의 기여를 할 수 있는 글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도 있다.
그런데 짧은 지면에서 루카치의 장편소설론을 제대로 다루기란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무엇보다 그의 장편소설론이 ‘하나’가 아닌 데서 연유하는 어려움이 가장 크다. 동구 사회주의블록의 붕괴와 더불어 루카치의 사유가 급속도로 망각되어간 상황 속에서도 여전히 새 독자를 만나고 있는, 그의 저작들 중 거의 유일한 작품인 『소설의 이론』(1916/20)에서 개진된 장편소설론(‘초기 장편소설론’)과, 그가 10여년에 걸친 “맑스주의 수업시대”3)를 끝내고 성숙한 맑스주의 시기에 접어든 이후 전개한 장편소설론—「장편소설」 및 이에 딸린 글들4) 그리고 「장편소설」을 둘러싼 논쟁에서 제기된 문제들에 대한 답변을 포함하고 있는 「서사냐 묘사냐?」(1936)와 『역사소설론』(1937)으로 대표되는 ‘중기 장편소설론’—사이에는 세계관이나 철학적·이론적 입장에서 근본적인 단절이 있다. 또, 스딸린체제의 일국사회주의 노선에 건 희망과 집단적 주체로서의 프롤레타리아계급의 혁명성에 대한 믿음이 아직 가슴속에 살아 있었던 30년대 중반의 루카치가 시도한 이 ‘중기 장편소설론’과 스딸린주의의 극복과 만신창이가 된 맑스주의의 재구축을 위해 마지막 열정을 쏟았던 60년대 후반의 루카치가 제시한 새로운 장편소설론의 단초들—특히 「쏠제니찐의 장편소설들」(1969)에서 그 싹이 제시된 ‘후기 장편소설론’—사이에도 간과할 수 없는 차이가 보인다. 그리고 이 모든 단절과 차이에도 불구하고 그 속에 관류하는 연속성 또한 엄연히 존재한다. 이러한 불연속성과 연속성을 두루 고찰하는 가운데 루카치 장편소설론의 전모를 파악하기에는 지면 사정이 허락하지 않기 때문에, 여기서는 리얼리즘론의 형성과정과 맞물린 ‘중기 장편소설론’을 중심으로 그의 맑스주의적 장편소설론의 윤곽과 기본적인 구성요소를 살펴보고 몇가지 생각을 덧붙이는 것으로 ‘만족’하고자 한다.
2. 장편소설론의 방법과 기본얼개
맑스주의 문학이론의 역사에서 장편소설론을 수립하기 위한 최초의 시도에 해당하는 「장편소설」에서 루카치는, 장편소설이 하나의 장르로서 식별 가능한 고유성을 지닌다면 그 고유성을 구성하는 원리는 무엇인지를 규명하려 한다. 루카치에 따르면 장편소설은 “부르주아사회의 가장 전형적인 문학장르”이거니와 “장편소설의 전형적인 특징들은 그것이 부르주아사회의 표현형식이 되고 난 이후에야 비로소 나타난다”(311면). 따라서 루카치에게 전형적인 장편소설은 곧 근대 장편소설이다. 그런데 여기서 ‘전형적’이라는 표현은 장편소설이 부르주아사회(근대 자본주의사회)에만 배타적으로 귀속되는 문학장르는 아니라고 해석할 여지도 열어둔다. 실제로 루카치는 서구의 고대와 중세는 물론이고 아시아에도 장편소설과 유사한 것이 존재했다는 사실을 부인하지 않는다. 그런데 루카치가 규명하려는 것은 특정 서사형식을 장편소설이게 하는 형식원리, 장편소설을 다른 문학형식들과 구분하는 고유의 특징이다. 이것은 고대 이래 세계 각지에 산재해 있는 수많은 ‘장편소설’들을 모두 다 조사하는 실증적·경험주의적 방식으로는 결코 파악될 수 없다는 것이 루카치의 생각이다. 그런 접근법으로는 기껏 몇가지 외형적 공통성을 추출할 수 있을 뿐이며, 그것들이 각기 다른 시공간 속에서 어떻게 조금씩 다르게 반복되는지를 확인하는 것 이상으로 나아갈 수 없다. 이와 관련해 루카치는 맑스가 자본주의의 메커니즘을 규명하기 위해 자본주의의 “가장 전형적인 고전적 형태”(484면)로서 영국 자본주의를 분석했음을 상기시킨다. 맑스가 영국 이외의 나라에는 자본주의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봤기 때문에 그랬던 것이 아니듯이, 고대나 중세 ‘장편소설’의 존재를 굳이 부인하지 않더라도 장편소설의 가장 전형적인 형태인 근대 장편소설에 대한 발생사적·구조적 분석을 통해 장편소설의 “전형적인 특징들”을 파악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연후에야 비로소 서구의 근대와는 다른 역사적 시공간에 존재했던 ‘장편소설’들의 역사적·미학적 성격 규정도 가능해진다는 것이 루카치의 생각이다.
장편소설의 형식원리에 대한 파악은 근대 장편소설 자체에 대한 발생사적·구조적 고찰뿐 아니라 다른 문학장르들과의 대비도 필요로 한다. 헤겔을 위시한 독일 고전미학의 통찰들이 이 대목에서도 크게 활용되는데, 특히 “근대 부르주아 서사시로서의 장편소설”이라는 헤겔의 명제는 『소설의 이론』에서와 마찬가지로 ‘중기 장편소설론’에서도 논의의 출발점이 된다. 그런데 ‘부르주아 서사시로서의 장편소설’이라는 규정은 필연적으로 서사시와 장편소설을 포괄하는 상위의 범주를 필요로 하는바 “대(大)서사문학”(die große Epik)이라는—이 역시 헤겔에서 가져온—범주가 그 역할을 한다. 그리하여 루카치는 ‘대서사문학’을 극(특히 비극), ‘소(小)서사문학’(특히 노벨레5)) 등과 대조하는 한편, ‘대서사문학’ 자체 내에서 서사시와 장편소설이 갖는 공통성과 차이를 역사적·미학적으로 규명함으로써 문학체계 내에서 장편소설 형식이 가지는 상대적 고유성을 규정하고자 한다.
루카치에 따르면 ‘대서사문학’ 형식과 극 형식은 공히 개인들을 매개로 “삶의 과정(Lebensprozeß)의 총체성”(6권 109면)을 형상화할 것을 요구한다. 그리하여 두 형식이 모두 “객관적 현실의 총체적인 상(像)”(6권 108면)을 제공함으로써 수용자에게 “삶의 총체성의 체험”(6권 110면)을 불러일으켜야 한다면, 노벨레는 “일회적·개별적인 갈등과 그것의 직접적인 해결”6)을 골간으로 하는—대개 비상한—개별사건을 간명하고 밀도 높게 형상화하는 서사형식으로서, 사회적 현실의 전체성을 형상화할 것을 요구하지 않는다.7) 이렇게 근본적으로 “총체성의 이념”(6권 108면)을 통해 노벨레와 갈라지는 ‘대서사문학’과 극 양자는, 바로 그 총체성의 구현방식 차이로 서로 구분된다. 일찍이 『소설의 이론』에서 ‘삶의 외연적 총체성의 형상화’ 대(對) ‘본질성의 내포적 총체성의 형상화’로 규정되었던8) 그 차이는, ‘중기 장편소설론’에 해당하는 『역사소설론』에서는 ‘객체들의 총체성의 형상화’ 대 ‘운동들의 총체성의 형상화’로 규정된다. 즉 ‘대서사문학’은 인간의 내·외적 활동의 사회역사적 기반이자 그 활동과 상호작용하는 객체로서 “대상들의 총체성”을 형상화할 것을 요구하는 형식이라면(6권 110~11면), 극은 하나의 중대한 갈등을 둘러싸고 서로 충돌·투쟁하는 전형적인 심리적·도덕적·의지적 운동과 방향 들을 완결된 하나의 체계로서 형상화하기를 요구하는 형식이라는 것이다(6권 111~13면).
루카치에게는 ‘대서사문학’과 다른 문학형식들 사이의 이러한 대비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도 서사시와 장편소설의 공통성과 차이를 규명하는 것이 중요한데, 개인들을 매개로 “사회적 총체성을 서사적으로 형상화”(360면)하는 ‘대서사문학’으로서 동류의 것이면서 대척적인 자리에 있는 서사시와의 관계 속에서 장편소설의 고유한 특징이 가장 선명하게 드러난다고 보기 때문이다.
루카치에게 장편소설의 전형이 근대 장편소설이듯 서사시의 전형은 호메로스의 서사시다. 따라서 서사시의 역사적·미학적 규정은 호메로스의 서사시에 대한 분석을 근거로 하여 이루어진다. 호메로스의 서사시에서 루카치는 “씨족공동체의 원시적 통일성이 형식을 규정하는 사회적 내용으로 아직 생생하게 작용하고 있는”(489면) 것을 본다. 호메로스 서사시의 형식을 규정하는 사회적 힘의 원천을 씨족공동체에서 찾는 루카치의 견해가 역사적 사실에 부합하는 것인지 여부와는 별도로, 여기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개인(‘영웅적’ 개인)이 자기가 속해 있는 사회(‘공동체’)와 직접적 통일성 속에 있는 역사적 상태가 서사시의 내용과 형식에 각인된 사회적 토대로 설정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 통일적 세계는 아직 사회적 분업이 상대적으로 부재하며 또 본래 인간이 만들어냈던 것들이 그 인간적 연원을 지우고 독자적으로 되어 도리어 인간 삶을 지배하는 추상적인 사회적 힘들로 현상하고 작동하는 소외와 사물화(Verdinglichung)가 발생하기 이전 상태에 있기 때문에 “개체적 총체성”(315면)이 보존되고 “인간의 자립성 및 자기 활동성”(314면)이 폭넓게 구현될 수 있었다. 루카치에 따르면 이러한—“인간의 소질과 능력 들의 조화”(4권 299면), “인격성의 조화로운 완성”(4권 300면)을 뜻하는 인간의 “개체적 총체성” 그리고 “인간의 자립성 및 자기 활동성”이라는 헤겔의 두가지 용어로 표현된—‘인간적 본질’을 구체적·감각적으로 현시(顯示)한 데 호메로스 서사시의 미적 원천이 있다.
맑스주의자 루카치의 관점에서 그후의 역사는, 호메로스의 서사시가 가장 전형적인 형태로 표현한 ‘시적인 세계상태’가 계급사회의 등장으로 빛이 바래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 과정의 맨 끝에 “최후의 계급사회”(360면)인 근대 자본주의가 위치하는데, ‘시의 시대’를 대체한 이 ‘산문의 시대’를 맞아 ‘예술의 종말’을 선포한 헤겔과는 달리, ‘산문의 시대’의 절정인 근대 자본주의사회 속에서 역설적이게도 ‘대서사문학’이—물론 새로운 형식으로—다시 한번 개화하게 된다는 것이 루카치의 독특한 주장이다.
루카치에게 자본주의가 생성하고 형성되는 과정은 인간이 자연력의 속박을 극복하는 과정이고 인간 상호간의 관계가 “순수 사회적 관계”(2권 361면)로 전화되는 과정이자 “사회적 삶에서 지방적이고 고루한 중세적 질곡을 타파”(4권 300면)하고 생산과 사회를 혁명적으로 변화시켜나간 과정으로서, 호메로스 시대의 원시성에 비하면 두말할 나위 없이 ‘진보’를 뜻하는 과정이다. 그러나 그 ‘진보’의 과정은 동시에 “인간 타락”(Degradation des Menschen, 315면)의 경향을 내포하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9) 전체로서의 인간 능력을 풍부하게 만들지만 동시에 인간을 일면적이고 편협하게 만들며 파편화시키는 자본주의적 분업과 자본주의사회 특유의 사물화에서 비롯되는 “인간 타락”의 경향은 루카치가 호메로스 서사시에서 생생하게 표현되고 있다고 본 인간의 “개체적 총체성” “자립성 및 자기 활동성”과는 정반대의 방향에 있는 것으로서, 사회의 자본주의화가 증대할수록 심화되고 강화되어간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게 된다 하더라도 “진정한 개체적 총체성과 생생한 자립성에 대한 관심과 욕구”(315면)가 완전히 사라지는 일은 없다는 헤겔의 주장에 의거하여 루카치는 그러한 욕구를 어떠한 상황에서도 결코 근절될 수 없는 인간의 근원적 욕구로 설정한다. 이것은 『소설의 이론』에서 “존재의 총체성”이 부재하는 시대에 예술형식을 낳는 궁극적 근거로 설정된, “위대성과 펼침과 전체성이라는 영혼의 내적 요구들”10) 또는 『역사와 계급의식』에서 사물화에 맞선 저항의 최후의 보루로 설정된 “노동자의 인간적·영혼적인 본질”(2권 356면)과 상통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당장 드는 의문은, 이러한 근원적 욕구의 설정은 맑스주의의 역사적·유물론적인 관점과 충돌하지 않는가 하는 점이다. 루카치는 인류의 탄생이 그러하듯이 이러한 욕구 또한 기나긴 역사적 과정 속에서 생성된 것이며, 일단 생성된 이후에는 인간이 인간으로서 존재하는 한 거의 영구적인 것으로 보일 정도로, 그래서 ‘인간의 본성’으로까지 여겨질 정도로 장기 지속하는 실체적인 것으로서 작동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듯하다. 우리가 ‘실체’를 ‘생성’과 배타적으로 대립하는 것이 아니라 “변화 속에 있는 지속”(13권 613면)으로, “과정 중에 있으며 과정 속에서 변하고, 스스로를 갱신하며 과정에 참여하지만 그 본질에 있어서 자신을 보전”(13권 681면)하는 것으로 이해하는 후기 루카치의 ‘실체’ 개념을 받아들인다면, 루카치의 그러한 생각이 꼭 비역사적인 관념론 혐의를 받아야 할 까닭은 없어 보인다. 루카치의 이론체계에서 인간의 그러한 근원적 욕구는 자본주의의 그때그때의 경제적·사회적 상황, 이데올로기적 상황에 따라 활성화되기도 했다가 때로는 거의 소멸한 듯 보일 정도로 약화되기도 하는 것이며, 또 계급과 집단에 따라서도 그 활력과 강도가 달라지는 것으로 설정된다. 이런 식으로 루카치의 사유 속에 단단히 자리잡고 있는 이 인간의 근원적 욕구는 장편소설을 포함한 예술형식 일반의 인간학적 토대이자 예술적 창조의 근본적인 동력으로 자리매겨진다.
그렇다면 이제 문제는 왜, 어떻게 이러한 인간의 근원적 욕구가 부르주아사회의 태동과 함께 근대 장편소설이라는 문학형식을 낳을 수 있었는가 하는 점이다. 먼저 루카치가 주목하는 것은 ‘대서사문학’ 형식이 성립 가능한 사회적 조건이 자본주의사회와 더불어 다시 마련되었다는 사실이다. 루카치에 따르면 “자본주의사회는 역사상 처음으로 인간들의 전체 삶을 포괄하는 전면적인 상호결합을 위한 경제적 기초를 창출한다”(324면). 즉 자본주의는 중세의 지방적·국지적 폐쇄성을 타파하면서 “적어도 그 경향상, 하나의 통일적인 경제과정에 종속되는”(2권 266면) 하나의 전체적 사회를 형성한다. 이로써 ‘개인들’을 매개로 ‘사회적 총체성’을 형상화하는 ‘대서사문학’ 형식이 발생·존립할 수 있는 사회적 조건이 마련된 것이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형성된 이러한 사회적 조건 자체는 예술 일반, 따라서 ‘대서사문학’이 개화하기에 불리한 조건이기도 하다. 앞서 말했다시피 자본주의적 진보의 모순성으로 인해 자본주의사회에서는 “인간의 자립성과 자기 활동성”이 개진될 여지가 중세에 비해 획기적으로 넓어지고 그에 대한 욕구가 크게 활성화된 시기에도 이미 “인간 타락”의 경향이 작동하며, 사회의 자본주의화가 증대될수록 그 경향은 강화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해체되어가는 중세의 품 안에서 태동하여 발생·형성 중에 있던 자본주의에서는 그러한 경향의 부정성이 전면화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중세의 질곡에서 인간을 해방시키는 데 복무한 부르주아 이데올로기도 아직 편협한 계급 이데올로기로 ‘순수화’, 협소화되지 않았다. 신생의 부르주아 이데올로기는 “인류의 보편적 해방의 파토스”(331면)를 포함하고 있는, 따라서 단순히 반(反)봉건적일 뿐 아니라 발생·형성 중인 자본주의와 자기 계급에 대한 비판과 자기비판, 심지어 공상적 사회주의에까지 이르는 반(反)자본주의적 내실도 포괄하고 있는 복합적이고 중층적인 것이었다. 근대 장편소설은 이러한 부르주아 이데올로기의 한 형태로, 그것도 본래적으로 반자본주의적·휴머니즘적인 지향성을 지닌 예술의11) 한 형식으로 태어났다. 그런데 그것이 뿌리를 둔 사회적 토대는 서사시의 그것과는 정반대의 메커니즘을 가진 것이어서, 근대 장편소설은 ‘대서사문학’으로서 서사시와 공유하는 공통성마저도 서사시와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구현할 수밖에 없다.11)
3. 장편소설 구성의 기본원리
사적인 것과 공적인 것, 개별적인 것과 보편적인 것이 통일되어 있는 원시적 공동체사회에 뿌리를 두고 있는 호메로스의 서사시에서는 주인공들이 “사회 전체를 직접적으로 대표함으로써 전형적”(323면)이 될 수 있었다. 이에 반해 근대 장편소설은 “최후의 계급사회”의 태동과 함께 발생한 문학형식이다. 「장편소설」의 루카치에 따르면 계급사회인 자본주의에서 개인들의 성격과 행동은 전체 사회가 아니라 그 사회 내에서 “투쟁하는 계급들 중 한 계급만을 대표할 수 있을 뿐”(323면)이다. 이런 사회의 총체성이란 더이상 동질적인 전체가 아니라 대립물들의 모순적·역동적인 통일로서의 총체성인데, 문제는 “이 원칙적 대립물들이 원칙적으로 분명하게 서로 마주해 있는 상황이 부르주아적 일상현실에서는 발생하지 않”(324~25면)을 뿐 아니라 사물화로 인해 사회적 힘들이 “추상적이고 비인격적으로” “현상”(324면)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소박문학’인 서사시와 달리 근대 장편소설은 작가들에게 일상적 경험과 현상의 피막을 뚫고 하강하여 그러한 경험과 현상보다 더 오래 지속하며 그것들을 발생시키거나 가능하게 만드는 심층의 사회적 연관관계들을 파악하는 인식 능력을 요구한다. 물론 여기서 요구되는 인식은 사회과학적 의미에서의 인식, 고도로 의식적인 이론적 인식을 뜻하지 않는다. 의식적으로든 직접적·직관적으로든 장편소설의 창작과정에서 이루어지는, 창작에서 구현된 인식이 문제일 뿐이다. 루카치는 예술적 인식의 이러한 성격을 분명히 하기 위해 “추상적·과학적인 사회적 분석의 의미에서”의 인식이 아니라 “형상화하는 예술가로서”의 앎, “창조적인 리얼리스트의 의미에서”(4권 321면)의 인식이라고 명토박고 있다. 「장편소설」에 나오는 “창조적 인식”(322면)이라는 표현도 그런 것이다.
그런데 ‘대서사문학’은 계급적 대립 같은 사회의 본질적 연관관계를 개인들을 매개로, 즉 “개인적 운명들에 의거해, 개개인의 행동과 고난을 통해”(323면) 가시화할 것을 요구하는 문학형식이다. 여기서 결정적으로 중요해지는 것이 ‘행위’(Handlung)다. 사회나 인간에 대한 통찰과 인식이 아무리 깊이있고 포괄적이라 하더라도 작중인물들이 펼치는 행위의 불가결한 계기가 되지 않는다면 추상적으로, ‘전(前)-문학적’ 요소로 남아 있게 된다는 것이 루카치의 생각이다. 인식은 “본래적인 문학적 원리를 위한, 즉 행위의 고안과 완성을 위한 전제조건일 뿐이다”(322면).
그런데 루카치의 이런 표현은 자칫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 마치 사회의 본질적 규정에 대한 인식이 먼저 이루어지고 난 뒤 이렇게 파악된 사회적 내용에 적합한 형식(여기에서는 ‘행위’)이 부여되는 순차적 과정을 말하는 것으로 읽힐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바로 위에서 말했다시피 루카치에게 문제는 언제나 작품에서 구현된 인식, 창작과정에서 작가가 이룩한 인식이지 작품 이전에 작가가 지니고 있는 사상이나 인식이 아니다. 그리고 이렇게 작품에서 구현된 인식의 내실은 언제나 형식과 통일되어 있다. 따라서 “행위의 고안과 완성을 위한 전제조건”으로서의 ‘인식’이라는 루카치의 말은 양자의 관계를 시간적 순서가 아니라 논리적 관계에 따라 설명한 것으로 보는 게 합당하다. 말이 나온 김에 덧붙이자면, 루카치 리얼리즘론의 ‘인식론적 편향’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대목으로 조명(嘲名)난 이른바 ‘창작의 2단계론’도 이렇게 읽을 수 있다.
「문제는 리얼리즘이다」(1938)에서 루카치는 리얼리스트에게 요구되는 “예술적이자 세계관적인 이중의 작업”을 “추상”과 “추상의 지양”이라는 말로 설명한 바 있다(4권 324면). 여기서 그는 “그러한 (사회적—인용자) 연관관계들을 사유를 통해 발견하고 예술적으로 형상화하기”를 “추상”이라 표현하고 있는데, 우리가 위에서 말한 ‘인식’과 ‘행위의 고안’이 이 “추상”에 속한다. ‘2단계론’은 이 “추상”과—“추상을 통해 획득된 제반 연관관계를 예술적으로 덮어씌우기”라고 표현된—“추상의 지양”의 관계에 대한 가장 흔한 해석 중 하나로서, 루카치가 창작과정을 인식의 단계와 여기에서 얻어진 인식 내실에 ‘형상의 옷’을 입히는 단계로 나눈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이런 주장을 하는 논자들 다수는 “추상”에서 “예술적으로 형상화하기” 부분은 의도적으로 생략하거나 무시한 채 논지를 전개하는데, 그렇게 하지 않으면 인식에 ‘형상의 옷’을 입힌다는 식으로 해석하기가 곤란해지기 때문이다. 어쨌든 논자들에 따라 조금씩 차이가 있긴 하지만 대개 이런 식으로 루카치를 해석하고 이로부터 루카치의 리얼리즘론은 ‘인식론주의’라느니 예술의 성취를 ‘과학적 인식’으로 환원한다느니 하는 비판을 하곤 했다. 그런데 이러한 비판은 루카치가 서로 “분리될 수 없는” “예술적이자 세계관적인 이중의 작업”이라 한 것을 굳이 ‘2단계’로 분리해서 읽는 자의적 독서의 산물일 뿐이다. 사회의 본질적 규정들의 창조적 인식, 전형적 인물과 전형적 상황의 창조, 그러한 상황에서 그러한 인물이 펼치는 전형적 행위로 이루어지는 줄거리 내지 플롯의 창조 등등을 포함하는 “추상”의 작업과, 그러한 줄거리 내지 플롯을 진척시키면서 인물과 상황과 행위 등등이 생동감과 환기력을 지닐 수 있도록 예술적으로 구체화하는 작업인 “추상의 지양”은 작가 개개인의 작업 방식과 개성에 따라 창작과정에서 순차적으로 이루어질 수도 있고 동시적으로 이루어질 수도 있을 것인데, 루카치는 “분리될 수 없는” 이 사태를 실제적·시간적 순서가 아니라 논리적인 순서에 따라 서술하고 있는 것이다.12)
이쯤에서 다시 본래의 주제인 ‘행위’의 문제로 돌아가도록 하자. 앞에서 우리는 한 사회의 본질적 규정, 본질적 연관관계에 대한 깊고 포괄적인 인식이 작중인물이 펼치는 행위에 내속되어 있을 때 진정한 문학적 형상화가 이루어진다는 것이 루카치의 생각이라고 했다. 「장편소설」에서 루카치는 바로 이 행위의 서사적 형상화를 ‘대서사문학’의, 따라서 서사시와 장편소설의 공통의 형식적 원리로 설정하고 있다. 알다시피 서사시에서 ‘행위’의 중요성을 가장 먼저 강조한 사람은 아리스토텔레스다. 일찍이 『시학』에서 그는 서사시를 ‘행위하는 인간의 미메시스’의 한 방식으로 규정한 바 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미메시스 개념을 반영 개념으로 받아들인 루카치는, 장편소설에서 행위가 중요한 것은 현실을 가능한 한 적합하게 문학적으로 반영해야 하는 필요성에서 나온 결과라고 한다(322면). 인간의 본질, 인간이 사회와 자연과 맺고 있는 실재적 관계는 그것에 대한 인간의 의식만이 아니라 그 의식의 토대를 이루고 있는 사회적 존재를 의식과의 변증법적인 관계 속에서 형상화할 때 포착될 수 있는데, 장편소설에서 그것이 가능한 길은 행위의 형상화밖에 없다는 것이 루카치의 생각이다. “왜냐하면 인간의 행위를 통해서만 그의 진정한 본질, 그의 의식의 진정한 형식과 진정한 내용이 그의 사회적 존재를 통해서 표현되기 때문이다”(322면).
인물이 펼치는 행위를 서사적으로 형상화한다는 것은 대상세계를 자립적인 것으로, 이미 완성된 ‘최종결과’로 대하고 이를 ‘관찰자’의 입장에서 ‘묘사’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활동의 대상으로, 인간활동과의 연관 속에서, 인간들과 인간운명들 상호간의 매개물로서 ‘서사’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인간적 연원을 지우고 ‘제2의 자연’으로 사물화된 대상세계는 인간들과의 관계 속에서 재맥락화됨으로써 더이상 사물화된 결과로서가 아니라 사물화되는 과정 속에서 제시되며 그런 식으로 인간활동과 연관됨으로써 ‘유의미하게’ 된다. 물론 장편소설적 서사에서 이렇게 달성되는 유의미성은 서사시에서의 그것과는 다르다. 주체와 대상세계가 균열과 단절 없이 조화롭게 통일되어 있는 서사시에서의 ‘긍정적 총체성’과는 달리, 자본주의의 ‘산문적 세계상태’가 “궁극적 원리”13)로 주어져 있는 장편소설에서 정작 분명하게 드러나는 것은 그러한 총체성을 가로막는 조건과 계기이며, 그것들에 의해 희생당하거나 그것들에 저항하는 인간의 운명이다. 그러한 저항이 최종적으로 실패할 수밖에 없는 것이라 할지라도 그 저항 속에서 인간적 힘과 인간적 존엄이 빛을 발하며, 또한 패배를 통해서는 자본주의사회에 의해 파괴되거나 부정당하는 ‘인간적 본질’이 고통스럽게 드러난다. 이런 식으로 근대 장편소설의 인물과 사물은 비로소 획득되어야 하는 ‘긍정적 총체성’에 대한 간극을 보여주는 부정적인 방식으로 ‘긍정적 총체성’을 환기시키며 그것을 지향하는 인간의 근원적 욕구를 일깨우고 강화하는 기능을 한다. 이것이 자본주의사회를 토대로 한 장편소설이 자본주의사회의 “인간 타락” 경향에 저항하며 ‘탈(脫)-사물화’하는 예술의 사명을 수행하는 기본적인 방식이라는 것이 루카치의 생각이다.
4. 마치는 말
루카치의 장편소설론에서 근대 장편소설은 이미 탄생의 순간부터 자신에게 불리한 조건을 예술적으로 극복함으로써만 개화할 수 있는 장르로 설정되어 있다. 장편소설의 장르적 잠재력이 최대치로 발현되는 것을 가능케 한 근대 자본주의사회 자체가 그 잠재력의 진정한 예술적 개화를 가로막는 작용을 한다. 이러한 사태를 루카치는 “자본주의의 예술적대성” 명제로 설명한 바 있는데, 이에 따르면 사회의 자본주의화가 증대할수록 예술에는 더욱더 불리한 조건이 조성된다.14) 그 과정에서 1848년은 결정적인 분기점을 이루는데,15) 루카치의 이론체계에서 유럽의 1848년은 그해 6월 빠리에서 일어난 노동자 봉기를 시발점으로 부르주아지와 프롤레타리아트 사이의 투쟁이 계급투쟁의 중심에 들어선 시점이자 자본주의가 자기구성을 끝내고 “‘기성’(旣成)의 체제”(4권 231면)로 굳어진 시기로 자리매겨진다. 이때부터 부르주아지의 보편주의는 ‘허위의식’으로서가 아니면 더이상 지탱될 수 없게 되었으며, 지배이데올로기로 정착한 부르주아 이데올로기는 체제 ‘변호론’으로 전락하기 시작, 바야흐로 ‘전반전인 타락기’로 접어든다. 루카치의 문학사적 구도에서 이 1848년은 향후 서구문학의 주도적 경향이 되는 이른바 모더니즘 경향이 본격적으로 등장한 시점으로서 의미를 지니는데, 「장편소설」에서는 이것이 “새로운 리얼리즘”(“자연주의”)16)의 시발점으로 표현되고 있다. 장편소설과 관련해 이 시기 이후 현저해진 현상들을 총괄하여 루카치는 “장편소설 형식의 해체”라고 규정하는데, 비록 이것이 ‘전일적’인 것이 아니라 ‘지배적’인 경향으로서의 성격을 말하는 것이긴 하지만, 현재의 입장에서 볼 때 “장편소설 형식의 해체”라는 표현 자체는 루카치의 ‘중기 장편소설론’에 내재된 역사적 한계와 그에 따른 인식의 문제성을 노정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해 여기서는 원칙적인 차원에서만 이야기하겠다.
앞서 우리는 루카치가 장편소설의 가장 전형적인 형태인 근대 장편소설에 대한 발생사적·구조적 분석을 통해 장편소설의 “전형적인 특징들”을 파악하려는 자신의 시도를 맑스에 의거해 정당화하는 것을 보았다. 그런데 “장편소설 형식의 해체”라는 말은 루카치가 실은 근대 장편소설이 아니라 그 일부, 곧 16세기 중반부터 19세기 중반까지의 장편소설에서 장편소설 구성의 기본원리를 규정하고 이를 척도로 삼아 1930년대 중반까지의 장편소설 전체를 평가하고 있음을 은연중에 드러낸다. 지금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자본주의의 메커니즘을 형성기 영국 자본주의에 대한 분석에서 획득된 인식만으로 규명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마도 없을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19세기 전반기까지의 장편소설에서 그 이후 150여년도 더 넘게 지속된 장편소설의 역사를 온전히 해석하고 평가할 수 있는 척도를 확정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합리적이지 않다. 우리는 루카치가 서 있었던 자리를 지나간 역사의 한 단계로 상대화할 수 있을 만큼 멀리 왔다. 1930년대 중반의 루카치에게는 마침내 제국주의로 최후의 단계에 도달한 자본주의와 이미 이를 극복해가는 도정에 있는 새로운 사회로서 사회주의가 분명한 형태로 주어져 있었다. 그것이 당시 루카치의 이론적 시야를 규정한 역사적 지평이었으며, 그 지평 안에서 루카치는 19세기 전반기까지의 장편소설에서 장편소설 일반에 적용되는 형식원리를 규정할 수 있었다. 비단 루카치의 이론만이 아니라 다른 모든 이론도 그런 식으로 주어진 역사적 지평 속에서 인식들을 산출한다. 따라서 올바른, 아니 좋은 이론은 자신이 산출해낸 인식의 역사성에 대한 인정과 역사를 향해 스스로를 개방할 수 있는 능력을 자체 내에 원리적으로 포함하고 있어야 한다. 이런 점에서 보면 루카치가 ‘중기 장편소설론’에서 구사한 역사적·미학적 방법과 ‘규정의 방법’17)은 그의 장편소설론이 좋은 이론일 수 있게 하는 핵심적 요소다.
우리는 「쏠제니찐의 장편소설들」에서 루카치 스스로 자신이 ‘중기 장편소설론’에서 개진한 이론적 인식들을 상대화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중기 장편소설론’에서 ‘대서사문학’의, 따라서 장편소설의 본질적 원리 가운데 하나이자 장편소설 구성의 중심으로 설정되었던 “객체들의 총체성” 대신 여기에서는 “반응들의 총체성”18)이 전면에 부각되며, “하나의 통일적인 서사적 줄거리”의 “결여”는 이제 단순히 문제로 치부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고도의 서사적 역동성, 내적인 극적 긴장”을 발생시킬 수도 있는 구성방식으로 인정된다(40면). “직접적으로는 아무 관계도 없는 듯이 보이는 개별 장면들로부터 극적 역동성을 띤 통일적인 서사적 연관들이 생겨날 수 있으며 그것들이 어떤 중요한 문제복합체에 대한 인간적 반응들의 총체성으로 서사적으로 조립될 수 있다”(41면)는 루카치의 발언은 ‘비유기적 총체성’, 아니 어쩌면 ‘몽따주적 총체성’이라고도 부를 수 있을 것을 “서사적 종합의 새로운 형식”(43면)으로 승인하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루카치는 “고전적인 서사문학의 척도”(43면) 자체를 역사적인 것으로 상대화하는데, 그렇게 상대화되고 역사화되는 척도에는 30년대에 자신이 제시한 척도도 포함될 것이다. 물론 이런 식으로 척도 자체가 역사적인 것으로 상대화된다고 해서 그 척도에서 유효했던 모든 것이 부정된다거나 무조건 상대화되는 것은 아니다. 그 척도에서 장편소설의 형식원리로 규정된 것 중 어떤 것은 여전히 원리적 차원에서 유효하며 어떤 것은 더이상 형식원리가 아니라 유효한 구성양식 중 하나로 그 위상의 조정이 이루어질 수 있다. 30년대 중반에 자신이 제시한 척도를 역사적인 것으로 상대화함에 따라 그 척도에 따라 구축되었던 기존의 이론적 체계와 「쏠제니찐의 장편소설들」이 제시하는 새로운 인식 사이에는 적잖은 마찰이 생기는데, 이를 두고 이론적 파탄으로 평가하는 입장도 있지만, 오히려 구체적 작품들에 대한 구체적 파악의 결과가 이론적 체계의 완강함을 허무는 것을 용인하는 루카치 사유의 유연성을 증명하는 것으로, 그의 사유가 자신의 역사적·미학적 방법, 규정의 방법에 충실함을 입증하는 것으로 보는 편이 더 합당하지 않을까? 이렇게 보면 30년대 중반에 맑스주의 장편소설론의 수립을 위해 자신이 내디뎠던 첫걸음을, 그 방법에 따라 가장 충실히 계승한 사람은 바로 루카치 자신이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60년대말 자본주의체제와 사회주의체제가 동시에 위기에 봉착함으로써 열린 새로운 역사적 지평 속에서 새로운 이론적 시야로 장편소설을 재조명하는 과감한 시도를 개시한 루카치에게는 그러한 시도를 하나의 장편소설론으로 발전시켜나갈 시간이 남아 있지 않았다. 「쏠제니찐의 장편소설들」을 발표하고 2년 뒤인 1971년, 그는 향년 86세로 세상을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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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 글에서 ‘장편소설’은 독일어 ‘Roman’을 옮긴 말이다. 사실 ‘장편소설’도 적확한 말은 아니지만 지금껏 쓰였던 ‘소설’보다는 ‘Roman’의 뜻에 더 부합한다. 하지만 『소설의 이론』이나 『역사소설론』처럼 우리에게 친숙해진 책제목은 그냥 그대로 적는다.
2) 루카치의 맑스주의적 장편소설론에 관한 본격 연구는 이진숙의 석사학위논문(「루카치의 소설이론에 대한 비판적 고찰」, 서울대 대학원 독문과 1994)이 유일하다.
3) Georg Lukács Werke, Bd.2, Frühschriften II. Geschichte und Klassenbewußtsein, Darmstadt und Neuwied: Luchterhand Verlag 1968, 11면. 앞으로 루카치 저작집(Georg Lukács Werke, Neuwied/Berlin 1962ff.)에서 인용할 경우에는 본문에 괄호를 이용하여 권수와 면수를 병기한다.
4) 「장편소설」(“Der Roman”)은 옛 소련에서 처음 간행되는 『문학 백과사전』 제9권 ‘장편소설’ 항목에 포함될 예정으로 1934년 말에 집필된 글이다(사전에 실릴 때의 제목은 ‘부르주아 서사시로서의 장편소설’로 정해져 있었다). 이 글과 토론을 위한 요약문인 「「장편소설」에 대한 보고」(“Referat über den ‘Roman’”)를 둘러싸고 1934년 말부터 1935년 초까지 세차례에 걸쳐 논쟁이 벌어졌으며, 그 직후 루카치는 논쟁에서 제기된 문제에 대해 입장을 밝히는 짧은 글 두편을 쓴 바 있다〔「토론의 결어(結語)」(“Schlußwort zur Diskussion”)와 「‘장편소설론의 몇가지 문제’에 대한 토론 결어를 위한 테제」(“Thesen zum Schlußwort zur Diskussion über ‘Einige Probleme der Theorie des Romans’”)〕. 루카치가 쓴 네편의 글과 논쟁 녹취록의 독일어본은 베그너(Michael Wegner) 등이 엮은 책(Disput über den Roman. Beiträge zur Romantheorie aus der Sowjetunion 1919~1941, Berlin und Weimar: Aufbau-Verlag 1988)에 실려 있는데, 앞으로 이 책에서 인용할 때는 본문에 면수를 병기한다.
5) ‘노벨레’는 ‘Novelle’를 독일어 발음 그대로 옮긴 것이다. ‘단편소설’ 혹은 ‘중편소설’로 옮기기도 하지만 이런 식의 번역은 마치 장르 구분의 본질적 기준이 분량에 있는 듯한 인상을 준다. ‘Roman’과 ‘Novelle’의 구분은 규모에 따른 양적 구분이 아니라 예술적 형식원리에 따른 질적 구분이다.
6) 「솔제니찐—『이반 제니소비치의 하루』」(G. 루카치 지음, 김경식 옮김), 『민족문학사연구』 2000년 제17호, 341면.
7) 같은 글 323면 참조.
8) 루카치 『소설의 이론』 김경식 옮김, 문예출판사 2007, 49면 참조.
9) 루카치의 이론체계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진보의 모순성” 명제의 한 표현이다. 이 명제에 관해서는 졸고 「루카치 읽기(I)—‘자본주의의 예술적대성’ 명제와 휴머니즘 사상을 중심으로」, 『브레히트와 현대연극』 2005년 제13집, 277면 참조.
10) 『소설의 이론』 29면.
11) 루카치의 이론체계에서 인간의 “개체적 총체성” “인간의 자립성 및 자기 활동성”에 대한 욕구가 ‘예술적 창조의 근본적 동력’으로 설정되어 있는 이상 예술은 본원적으로 반자본주의적·휴머니즘적 지향성을 가진 것이 된다. “진정한 예술가라면 누구나—자신이 알건 모르건—인간을 형상화하는 작가로서 풍부하고도 폭넓게 계발된 인간들을 제시하려는 자신의 충동에 따르기 때문에 그 결과 필연적으로 자본주의체제의 적대자일 수밖에 없다”(4권 309면)는 것이 루카치의 생각이다.
12) 1934년에 발표한 「독일 당대문학에서의 리얼리즘」에서부터 1940년대 후반까지 ‘위대한 리얼리즘’을 주창했던 루카치가 문학(특히 장편소설)의 ‘인식적 효과와 가치’를 중시한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현실의 실상(實相)’에 육박하는 깊이와 포괄성이 그가 문학의 리얼리즘적 성취를 판단하는 척도였는데, 이때에도 그의 리얼리즘론은 ‘인식’에 ‘형상의 옷’을 입힌다는 식의 발상과는 전혀 무관한 것이었으며 또 그 ‘인식적 효과’는 ‘과학적’ 인식으로 환원될 수 없는 독특한 ‘예술적’ 인식으로서 작용하는 것으로 설정되어 있었다. 예술적 인식의 ‘독특성’ 내지 ‘고유성’에 대한 루카치의 생각은 50년대 중반 이후 한층 적절한 개념들을 활용함으로써 더욱 분명하게 표현된다. “미적 영역의 핵심 범주”로서의 ‘특수성’과 그것의 문학적 구현형식으로 재설정된 ‘전형’ 개념, 그리고 예술적 반영의 특성을 나타내는 ‘인간중심적·인간연관적(anthropomorphisierend) 반영’ 개념 따위가 이와 연관된 것들인데, 이러한 개념들을 통해 전개되는 그의 후기 미학(『미적인 것의 고유성』과 『미학의 범주로서의 특수성에 대하여』)에서 리얼리즘은 예술의 핵심적인 원리, ‘구성적 질’ 가운데 하나로 상대화된다. 즉 위대한 예술작품은 리얼리즘적이지만 리얼리즘의 성취만으로 환원될 수 없는 구성적 질들도 지닌 것이 된다. 이제 예술은 “인간 유(人間 類, Menschengattung)의 자기의식”이 이루어지는 매체로 파악되며, 따라서 “예술의 진리” 문제는 ‘현실의 실상(實相)’에 대한 올바른 예술적 반영 차원에서 다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반영을 전제로 포함하고 있는 “인간 유의 자기의식의 진리” 차원에서 다루어진다. 루카치의 텍스트에서 시기에 따라, 정세에 따라, 이론적 문맥에 따라 다의적으로 사용되는 리얼리즘 개념과 그의 리얼리즘론에 대한 고찰은 이 글의 범위를 벗어나는 작업이다. 앞에서 말했다시피 국내의 루카치 연구 대부분이 이 주제를 둘러싸고 이루어졌는데, 그러니만큼 이 주제는 가장 완강한 통념들이 지배하고 있는 영역이기도 하다. 이러한 상황에서 그의 리얼리즘론을 조금이라도 새롭게 볼 수 있는 여지를 만들기 위해서는 별도의 본격적인 고찰이 필요하다.
13) 『소설의 이론』 49면.
14) “자본주의의 예술적대성” 명제에 관해서는 졸고 「루카치 읽기(I)—‘자본주의의 예술적대성’ 명제와 휴머니즘 사상을 중심으로」, 275~79면 참조.
15) 루카치의 이론체계에서 ‘1848년’이 갖는 의미에 관한 자세한 설명은 졸고 「‘리얼리즘의 승리론’을 통해서 본 루카치의 문학이론」, 『실천문학』 2002년 봄호 481~87면 참조.
16) 「장편소설」에서는 “새로운 리얼리즘”(344면)으로, 「「장편소설」에 대한 보고」에서는 “자연주의”(369면)로 적고 있다. 38년에 발표한 「문제는 리얼리즘이다」에서는 “자연주의와 인상주의에서 시작, 표현주의를 거쳐 초현실주의에 이르는 노선”을 “이른바 전위문학”(4권 314면)이라는 말로 총괄하며 60년대에 들어와서는 ‘전위주의’ 대신 ‘모더니즘’이라는 용어도 드물게 사용한다. ‘자연주의’와 ‘모더니즘’을 구분해서 말하기도 하지만 ‘모더니즘’의 근저에는 자연주의적인 기본입장이 관류하고 있다고 보며, 따라서 미학에서 근본적인 대립은 ‘자연주의와 리얼리즘의 대립’이라는 것이 루카치의 입장이다. 이에 반해 국내 학계나 평단의 많은 논자들은 ‘리얼리즘’을 루카치의 ‘자연주의’와 비슷한 것으로 이해하고 ‘모더니즘’을 그에 맞서는 것으로 설정하곤 한다.
17) ‘규정의 방법’에 대한 명시적 정식화는 『미적인 것의 고유성』(1963)에 와서 이루어지지만 역사적·미학적 방법 자체는 이미 ‘규정의 방법’(Methode der Bestimmungen)을 포함한다. 루카치의 용어체계에서 ‘규정’은 ‘정의(혹은 결정)’와 대비되는 말이다. 외연적·내포적으로 무한한 대상에 비하면 필연적으로 부분적일 수밖에 없는 사유의 산물을 최종적인 것인 양 고정시키는 것이 ‘정의의 방법’(Methode der Definitionen)이라면, 사고에 의한 파악은 항상 불완전하며, 따라서 언제나 잠정적이고 보완을 필요로 하는 것임을 자인하는 것이 ‘규정의 방법’이다(11권 30면). 이러한 ‘규정의 방법’은 어떠한 이론적 작업이든 항상 과정적인 것이며 역사의 지평에 열려 있는 것임을 함의하는데, 루카치의 장편소설론이 역사적·미학적 방법에 충실한 한 ‘규정의 방법’은 필수적이다.
18) “Solschenizyns Romane,” in Georg Lukács, Solschenizyn, Neuwied und Berlin: Luchterhand Verlag 1970, 34면. 아래에서는 인용한 면수를 본문에 병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