촌평
권헌익·정병호 『극장국가 북한』, 창비 2013
북한에서 한국사회를 만나다
강주원 姜柱源
고려대 아세아문제연구소 연구교수 kjw422@hanmail.net
2013년 2월 12일 북한이 3차 핵실험을 했다. 나는 아침에 일어나 TV를 켜고 습관적으로 뉴스 프로그램을 찾는다. 분명 한국 방송인데도 대부분의 채널에서 북한 관련 뉴스를 특집으로 다루고 있다. 대북 전문가들이 나와 북한정권의 의도와 미국·일본·중국의 대응을 열심히 분석한다.
‘미사일 발사’ ‘전쟁 위협’ 등 반복되는 북한발 뉴스는 사실 식상하지만, 간혹 북한에 대해 새로운 사실을 접할 때도 있다. 북한 외교부가 평양 주재 외교관에게 철수를 권고했다는 소식에 주변 사람들은 북한에 다른 나라 외교관도 있느냐는 반응을 보인다. 한 나라에 다른 나라 외교관이 있다는 사실은 너무나 상식적인데도 ‘세계에서 가장 폐쇄적인 국가 북한’이라는 이미지와 우리의 선입견 때문에 이러한 점을 미리 생각하지 못했던 것은 아닐까?
이 글이 2012년 영국에서 출간된 권헌익(權憲益)과 정병호(鄭炳浩) 두 인류학자의 공저 North Korea: Beyond Charismatic Politics의 한국어판인 『극장국가 북한: 카리스마 권력은 어떻게 세습되는가』에 대한 서평임에도 이처럼 다른 이야기로 글을 시작한 이유는 다음과 같다. 이 책을 정독하면서 내내 ‘내가 알고 있는 북한 혹은 한국사회가 바라보는 북한’은 어떤 모습인지를 고민하게 되었다. 그리고 필자가 공저자인 정병호 선생이 연구배경으로 설명하고 있는 “2000년초, 남한 인도주의 단체의 일원으로 평양 방문”(20면) 당시 찍은 영상을 밤새도록 정리하는 작업을 했던 석사 대학원생들 가운데 한 사람이지만 북한 전문가는 아니기 때문이다.
다만 필자는 탈북자가 아닌 북한사람들에 대한 현장연구를 바탕으로 박사논문을 제출한 까닭에, “지난 20년 동안 평양에서 만든 옷이 어떻게 중국을 경유해서 한국으로 들어오고, 이런 옷을 한국사람들이 어떻게 중국 제품으로 알고 입게 되는지, 나아가 한국사회에서 안 팔린 옷이 어떻게 다시 북한으로 수입되어 평양사람들이 자신들의 이웃 친구들이 만든 옷을 중국 제품으로 알고 입게 되는지”를 설명할 수 있다. 그리고 ‘개성공단은 북한의 유일한 달러 확보의 창구’라고 분석하는 한국의 대북 전문가들과는 달리, “최근 2~3년 사이에 단동의 북한 여공들의 규모(만여명 이상)와 월급(개성공단의 5만여명의 임금보다 최소 2~3배 높음)을 고려한다면, 북한사회에서 개성공단이 차지하는 위치의 변화를 짐작할 수 있다”는 의견을 말할 수 있을 정도다.1)
이런 필자가 이 책을 읽기 전에 선택한 방법은 먼저 다른 서평들을 살펴보는 것이었다. 북한의 3차 핵실험 이후 사흘 뒤에 나온 이 책에 대한 다양한 소개의 글을 인터넷에서 쉽게 찾을 수 있었다. 먼저 헤드라인에서 나는 이 책을 바라보는 한국사회의 시선을 읽을 수 있었다. “3차 핵실험, 미스터리 북한을 들여다보다” “3대 세습·핵실험, 체제 유지 몸부림치는 북한” “막장드라마, 북 정치판 파헤치다” “북한, 거대한 트루먼쇼” 등이다.
책이 출판되자마자 쏟아져나온 서평들이지만, 인류학을 공부하고 있는 나는 주관적인 의문을 가지게 되었다. 이 책의 공저자인 권헌익 선생은 영국 케임브리지대의 석좌교수이자 구소련과 베트남 농촌 연구를 인정받아 인류학 분야에서 권위있는 기어츠상을 받은 연구자이다. 또다른 공저자 정병호 선생은 10년이 넘게 북한에 대해 객관적인 시선을 유지함과 동시에 북한을 방문하는 기회를 활용해서 인류학 현장연구를 수행하고 있음을 필자는 알고 있다. 그렇다면 혹시 저자들의 의도와는 다르게 한국사회에 존재하는 북한에 대한 편향된 시선들이 이 책에 대한 이해를 제한하는 것이 아닐까?
위 서평들의 제목과 내용을 읽고서, 혹은 영어판과는 다른 한국판의 제목 ‘극장국가’에서 느껴지는 선입견을 가지고 이 책을 선택한 한국의 독자들이 있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이 책은 다음의 서론 일부를 통해 북한에 대한 입장을 명확히한다. “실제로 북한 정치체제에는 미스터리가 없다. 북한이란 국가는 수수께끼 같은 존재가 아니며 그랬던 적도 없다. (…) 북한 정치체제는 현존하는 다른 어떤 정치체제만큼이나 현대적인 것이며 또한 글로벌한 현대성과 접촉하면서 만들어진 산물이다. 이 점에서 북한은 현대 세계에서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또 하나의 나라’일 뿐이라는 브루스 커밍스의 주장은 옳다.”(10~11면) 그리고 이러한 주장을 증명하기 위해 저자들은 인류학 지식과 연구 성과, 북한 현지에서의 조사 경험, 일제강점기부터 현재까지의 역사적 흐름과 배경, 나아가 다양한 다른 나라들과의 비교분석을 시도한다.
예를 들어 북한의 선군정치가 “북한의 고유한 발명품이 전혀 아니며 폭력혁명론과 진보사상의 역사에서 익숙한 것”(131면)이라거나 “북한이라는 국가가 일종의 기념의 문화 위에 세워졌다는 것을 인식하는 것은 중요하다. 이는 유럽이나 다른 지역의 많은 현대적 국민국가에서도 마찬가지”(162면)라는 점 등을 언급하면서, 북한을 다른 나라와 비교할 때 근본적으로 일맥상통하는 지점은 어디인지, 또한 어떤 변화를 통해 다시금 멀어지게 되었는지를 지적한다. 나아가 “북한의 식량위기는 세계적인 지정학적 체제로서의 냉전이 종결된 데 따른 부수현상”(240면)임을 중국, 구소련, 동유럽뿐 아니라 베트남과 한국의 사례까지 인용해 밝히고 있다. 즉 ‘낯선 곳’인 북한사회에서 다양한 나라를 만날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러나 위에서 언급한 대부분의 서평은 주로 “북한의 새 지도부는 현대적인 정치적 권력과 권위의 본성을 거스르는 인위적인 예술 정치의 힘에는 실제로 분명한 한계가 있다는 적나라한 역사적 교훈과 진실에 대면해야만 한다”(279~80면)는 결론의 한 부분, 즉 극장국가로서 북한의 한계에만 주목한다. 서평자들은 이 책이 끊임없이 던지고 있는 “카리스마 권력은 어떻게 세습되는가”라는 질문은 외면한 채 ‘북한 3대 세습의 최종 실패’라는 관점에 이 책의 내용을 국한시키는 경향이 있다. 왜 이처럼 이 책이 전달하고자 하는 바가 한국사회에서 좁게만 인지되는 것일까? 공교롭게도 북한의 3차 핵실험 이후 바로 출간된 이 책의 운명이라고 쉽게 말해버리기엔 너무도 답답할 뿐이다.
한편, 개인적으로 이 책을 덮는 순간 한국 인류학계에서 교재로 애용되는 『낯선 곳에서 나를 만나다』(한국문화인류학회 엮음, 일조각 2006)라는 책이 떠올랐다. 1970년대 초반생인 필자지만 이 책에서 북한사회를 파악하는 몇가지 키워드, 즉 장제목으로 제시된 ‘대국상(大國喪)’ ‘총대’ ‘혁명렬사릉’ ‘지도자에게 바치는 선물’ ‘도덕경제’ 등이 낯설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그 이유를 정병호 선생의 기고문(프레시안 2012.12.14.)의 한 부분에서 찾을 수 있었다. “김정일(金正日)의 후계구도가 본격화한 1970년대 초부터 북한에서는 많은 책들이 금서로 사라지고, 널리 부르던 노래들이 금지곡이 되고, 복장과 두발에 이르기까지 생활 검열도 강화되었다. 어딘지 익숙하지 않은가? 자유민주주의 남한에서도 유신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은 모두 경험한 종신권력의 통제방식이다.” 나 역시 주관적인 글 읽기와 서평을 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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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졸고 「중·조 국경도시 단동에 대한 민족지적 연구: 북한사람, 북한화교, 조선족, 한국사람 사이의 관계를 통해서」, 서울대 대학원 박사학위논문(20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