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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평
제주에 쓰는 반성문
오멸 독립영화 「지슬」, 자파리필름 2013
김현정 金賢貞
창비 교과서사업본부 편집자 aquajjungi@changbi.com
뻔하고 퍽퍽한 일상에 지칠 때 사람들은 떠날 곳을 찾습니다. 그때 가장 먼저 떠올리는 곳이 제주가 아닐까 싶습니다. 2012년에만 약 960만 명의 뭍사람이 제주를 방문했다고 하니, 그리 틀린 생각은 아니겠지요? 저는 어릴 적 제주에서 3년간 살았는데, 그 3년은 제 삶에서 가장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 그랬기에 지금도 위로와 휴식이 필요할 때면 자연스레 그곳을 떠올립니다.
이렇듯 제주는 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관광지로 꼽힙니다. 하지만 이곳에 우리가 잘 모르는, 아니 안다고 해도 느끼기엔 너무 오래된 아픔이 있습니다. 바로 ‘제주 4·3’입니다. 「지슬」은 이 역사적 사건을 제재로 한 영화입니다. ‘제주 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에서는 “1947년 3월 1일 경찰의 발포사건을 기점으로 하여 1948년 4월 3일 발생한 봉기사태와 그로부터 1954년 9월 21일까지 제주도에서 발생한 무력충돌과 진압 과정에서 양민들이 희생당한 사건”이라고 규정됩니다. 6년 6개월이라는 긴 시간이었습니다. 공식적인 사망자만 1만 4천명이었습니다. 겨우 살아남은 사람들과 그 가족은 ‘빨갱이’로 낙인찍혀 침묵한 채 일생을 보내야 했습니다. 군인들끼리 싸우는 전쟁영화조차도 그 참혹함에 눈살이 찌푸려지는데, 하물며 양민이 희생당한 이 사건에서 그들은 그 시간을 어떻게 견뎌냈을까요. 이 영화는 그 사건이 왜 일어났는지, 사람들이 어떻게 살았고 죽었는지를 한발 물러나 충실하게 설명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때 제주의 자연과 사람들에 가까이 접근해 보여줄 따름입니다.
그런데 이곳, 조금 이상합니다. 마을 사람들은 토벌대를 피해 산속에 피신했으면서도 사태의 심각성을 잘 모릅니다. 상부의 명령을 따라야 하는 군인이 순박한 마을 처녀 순덕이에게 차마 총을 쏘지 못하고 저 여자가 정말 폭도냐고 묻습니다. 총이 발포되고 불이 나고 돼지가 약탈되는 상황에서도 이곳은 조용하고 아름답습니다. 원식이 삼촌은 마을로 돌아가면 죽게 되는데도 집에 두고 온 하나뿐인 가족이라는 돼지가 굶는 것이 걱정되어 결국 내려가고 맙니다. 만철이는 군인들이 언제 들이닥칠지 모르는 급박한 상황에서도, 좋아하는 순덕이에게 장가갈 생각을 하며 수줍어합니다. 다리가 불편해 마을에 남은 무동이의 노모는 군인에게 칼을 맞고 죽어 가면서도 불붙은 집에서 지슬(‘감자’의 제주도 방언)을 가슴에 품어 익힙니다. 이 사람들이 바로 그때의 제주였습니다. 이런 사람들이 그 땅에서 ‘지슬’을 먹으며 켜켜이 제주의 ‘역사’가 되고 ‘자연’이 되었습니다.
이 영화에는 회화적이고 연극적이며 상징적인 장면이 많습니다. 폭력의 시대를 배경으로 했음에도 서정적이고 따뜻합니다. 이렇게 ‘아름다운 흑백의 영상미’와 ‘은근히 웃기는 순박한 사람들의 이야기’는 많은 관객의 마음을 사로잡았습니다. 대기업 배급사가 홀대하는 독립영화인데도 개봉 6주 만에 13만 관객이 들었다 하고, 미국 선댄스영화제에서 한국영화사상 처음으로 최고상을 받은 뒤로 해외 유수의 영화제에서 초청이 쇄도했습니다. 평단의 반응도 호평 일색입니다. “영화의 시적인 이미지는 서사의 깊이와 함께 우리를 강렬하게 매혹시켰다”라는 선댄스영화제 심사평에 압축되어 있듯이 이 영화가 독특한 화법과 영상미로 어떤 보편적이고 예술적인 경지에 도달했다는 것이죠.
그런데 사실 저는 이 때문에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영화 끝부분에 4·3에 대한 짧은 설명이 나오긴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이 사건의 전모나 역사적 위상에 대해 제대로 알기 어렵습니다. 그 설명이 없다면 「지슬」을 ‘4·3’에 관한 영화가 아닌 ‘이념에 갇힌 시대가 만든 폭력에 희생당한 이들에게 바치는 애도’라는 다분히 추상적인 주제의 영화로 볼 수도 있습니다. 물론 사실 전달에만 치중했다면 이렇게 주목받지 못했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좀더 많은 사람들이 4·3의 민낯을 알기 바라는 마음이 커서일까요? 조금 더 투박하고 못생기게 나오더라도 ‘사실’을 더 보여주었다면 어땠을까 생각했습니다.
‘상징’ 차원에서도 아쉬운 점이 있습니다. 저는 감독이 작품을 통해 말하려는 내용이 너무 직접적인 이미지로 드러났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한 예를 들면, 제기가 나뒹구는 방 안으로 한 남자가 들어오는데, 다른 남자가 여자의 시체 옆에서 무심하게 칼을 갈고 있었고 들어간 남자는 그에게서 칼을 빌려 과일을 잘라 넘겨주는 장면이 있습니다. 나뒹구는 제기와 무심한 이들의 모습에서 이들이 사람을 죽이는 것에 아무 가책이 없으며, 지금껏 죽은 이가 안식할 수 있는 진정한 제사 한번 드려지지 않았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또 이 작품에서 주제가 드러나는 두 부분이 있는데, 하나는 무동이가 죽은 노모의 품에서 지슬을 가지고 동굴로 돌아와 마을 사람들에게 나누어주는 장면입니다. 다른 하나는 마지막에 동굴에서 나오지 못한 임산부가 죽고, 그 앞에서 아이가 우는 장면입니다. 감독은 이들의 죽음이 헛된 것만은 아니며, 이같은 죽음과 희생으로 후대가 살아가고 또 그렇게 역사가 만들어진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싶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저는 이 두 장면이 사실상 같은 장면이라고 보았고, 마지막 장면이 예상한 대로 끝이 나서 아쉬웠습니다. 지극히 옳은 이야기지만, 그렇기에 이 말이 공중에 연기로 흩어진 소지(燒紙)처럼 사라지지는 않을까 싶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여러 생각을 하다 오멸 감독의 인터뷰 글을 보게 되었습니다. “제주 4·3에 대해 어느정도 알고 있는 사람들은 그 ‘특수한 역사성’이 잘 안 드러났다는 이야기를 해요. 하지만 역사에 대해 밝히는 건, 역사학자들이 해주고, 정부나 교육기관에서 해줘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해요.”(네이버 영화매거진 2013.3.25) 그러나 과연 정부나 교육기관에선 어떤 노력을 하고 있을까요? 제주시 봉개동에 있는 4·3평화기념관의 초입에는 아무런 이름과 문장이 새겨지지 않은 ‘백비’가 서 있지 않고 누워 있습니다. 노무현정부 시절 4·3에 대한 국가의 공식 사과는 이루어졌지만 후속 연구나 평가 등은 제대로 진행되지 않았습니다. 항쟁, 사건, 사태, 봉기, 폭동 등 4·3에 붙는 많은 말 중 공식적인 명칭 역시 정해지지 않았습니다. 이에 대한 항의의 뜻으로 백비를 뉘어놓은 것이라 합니다. 박근혜(朴槿惠) 대통령은 후보 시절에 4·3을 국가추념일로 지정하겠다고 공약했습니다. 하지만 올해 제65회 제주 4·3사건 피해자 위령제에 참석하지 않아 사람들에게 실망을 안겼죠.
제도교육에서도 사정은 비슷합니다. 국어 교과서에는 거의 학년마다 역사적 사건이 드러나는 문학작품을 읽고 그 시대적 배경을 파악하게 하는 단원이 있습니다. 그런데 십여개 발행사에서 나온 수십권의 교과서에는 4·3을 중점적으로 다루었거나 시대적 배경으로 한 작품이 실려 있지 않습니다. 역사 교과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근현대사 과목이 따로 있던 때에는 그나마 4·3을 자세히 다루었지만, 교육과정 개편에 따라 한국사 과목으로 합쳐지면서 현대사를 다루는 분량이 축소되었습니다. 모 출판사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는 4·3을 ‘사태’로 표현했으며 여덟줄 정도로 서술하고 있습니다. 3종 정도 살펴본 중학교 역사 교과서에서도 4·3을 두세줄로 매우 간략하게 서술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문화예술 분야에서는 4·3을 처음 본격적으로 작품화했다고 평가받는 현기영(玄基榮)의 소설 「순이 삼촌」(1979) 말고도 4·3을 제재로 한 작품은 참 많습니다. 김석범(金石範)의 대하소설 『화산도』, 김동만(金東滿)의 다큐멘터리 「다랑쉬굴의 슬픈 노래」, 강요배(姜堯培)의 화집 『동백꽃 지다』 등등. 어쩌면 「지슬」은 이런 성과를 바탕으로, 4·3을 사실적으로 묘사하는 것을 넘어 새롭게 보여준 작품이라고 해도 무방할 듯합니다. 최근엔 「비념」(임흥순 연출)이라는 다큐멘터리도 나왔는데요. 해군기지 건설 때문에 파란을 겪는 강정마을을 배경으로 하여 그 사태의 시작을 4·3으로 보고, 역사 속에서 반복되는 국가폭력에 대해 생각해보게 하는 작품입니다.
오멸 감독은 제주 토박이 예술가라는 자리에서 봉인된 슬픈 역사에 아름다운 제사를 지냈습니다. 그럼으로써 반세기가 넘은 침묵의 과거에 사람들의 관심을 끌어들였습니다. 이제 다른 이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할 수 있는 방법으로 봉인된 역사에 제사를 지낼 차례입니다. 이 땅에서 나는 지슬을 먹고 이 땅을 밟으며 살아갔던 사람들이, 살아가는 사람들이 다시 울지 않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