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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단과 현장

 

 

‘핵심현장’에서 현대아시아사상의 탐구로

오끼나와, 한반도, 그리고 동아시아

 

 

백낙청 白樂晴

서울대 명예교수, 영문학. 계간 『창작과비평』 편집인. 최근 저서로 『2013년체제 만들기』 『문학이 무엇인지 다시 묻는 일』 『어디가 중도며 어째서 변혁인가』 『백낙청 회화록』(전5권) 등이 있음. paiknc@snu.ac.kr

 

*이 글은 본지 이번호 강영규의 참관기가 소개하는 제5회 동아시아 비판적 잡지 회의에서의 강연에 약간의 첨삭을 가한 것이다. 각주를 새로 달거나 내용을 추가한 경우는 〔 〕안에 넣었다.

 

 

1. 오끼나와에 와서

 

오끼나와(沖縄)에서 열리는 제5회 ‘동아시아 비판적 잡지 회의’에서 첫 쎄션의 발표를 맡게 된 것은 큰 기쁨이며 영광입니다. 더구나 아제서원(亞際書院, Inter-Asia School)에서 새로 시작한 ‘현대아시아사상’ 연례강연 첫 회를 겸하게 되어 영광이 곱절입니다. 금년은 또 계간 『케에시까지(けーし)』의 창간 20주년이 되는 해이기도 하지요. 진심으로 축하드리며 『케에시까지』가 상징하는 소통과 연대 및 저항의 정신이 동아시아 전역에, 나아가 전세계에 퍼져나가기를 기원합니다.

저는 이번에 오끼나와에 처음으로 왔습니다. 이 또한 기쁜 일이지만 이렇게 늦게 오게 된 데 대한 착잡한 느낌이 따릅니다. 중요한 배움과 연대의 기회를 놓치고 살아온 자신의 박복(薄福)함에 대한 아쉬움과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을 수 없습니다.

당연히 저는 오끼나와에 대해 매우 무지합니다. 한국과 오끼나와 민중 및 지식인의 연대운동에서도 이렇다 할 역할을 못했습니다. 그러한 제가 오끼나와에 관해 또는 한국-오끼나와 연대에 관해 길게 말하는 것은 주제넘은 일이겠습니다. 다만 오끼나와를 찾은 소감을 겸해 몇가지 말씀을 드린 뒤, 저에게 친숙한 현장인 한국과 한반도의 이야기로 넘어갈까 합니다.

한국과 오끼나와의 인연이야 오래됩니다만 두 지역의 민중연대는 미군기지반대운동을 중심으로 1990년대 후반부터 본격화했습니다. 반기지(反基地)연대를 특히 뜻깊게 생각하는 것은, 그것이 현장활동가들이 이룩한 연대일 뿐 아니라 실제로 상호적인 연대이기 때문입니다. 예컨대 1970~80년대 일본에서는 ‘일한연대운동(日韓連帶運動)’이 활발했고 한국의 민주화에 큰 도움을 주었습니다. 그러나 한국의 민주화운동 쪽에서 일본의 민주주의를 위해 협동하는 운동은 아니었습니다. 물론 현실적으로 그럴 형편도 못 되었지만, 일본의 대다수 활동가들이 (그때까지만 해도) 일본문제의 해결에 한국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인식이 적었던 걸로 압니다. 그에 비해 한국과 오끼나와의 민중 사이에는 처음부터 한결 수평적인 연대가 성립했던 것입니다.

다른 한편, 한국에서의 기지문제를 오끼나와에서와 같은 ‘구조적 차별’의 산물로 보기는 어렵습니다. 예컨대 미군기지를 평택으로 옮기는 문제가 평택지역에 대한 구조적 차별이라 볼 수는 없으며, 차별의 역사가 분명히 존재하는 제주도의 경우에도 ‘구조적 오끼나와 차별’과는 거리가 있습니다(게다가 강정마을 해군기지는 일단 한국해군의 기지로 계획된 것이지요). 물론 한국에는 한국 나름의 구조적 문제가 있습니다. 특히 한반도 전역을 망라하는 ‘분단체제’가 결정적인데, 이에 대해서는 뒤에 더 논하고자 합니다.

아무튼 반기지연대(反基地連帶)는 그것대로 견지하고 발전시키되, 이것이 폭넓고 효과적인 한-오끼나와 민중연대의 기반이 되려면 쌍방이 당면한 현실의 구조적 차이도 유의할 필요가 있겠습니다. 물론 오끼나와에서도 기지반대를 운동의 전부로 설정하고 있는 것은 아니지요. 미군기지는 어디까지나 저의 동료 백영서(白永瑞) 교수가 말하는 ‘핵심현장’의 핵심 쟁점일 따름입니다.1) 단순히 오끼나와에 미군기지가 너무 많아서 주민이 불편하고 미군에 의한 불미스러운 사고가 자주 발생하는 문제가 아니라, 미국이 자신의 패권국가적 위치를 유지하기 위해 동맹국 내부의 구조적 모순을 악용하며 조장하기도 하는 현실을 오끼나와만큼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경우도 드물 것입니다. 동시에 ‘구조적 오끼나와 차별’은 일본국가의 성격과 일본 민주주의의 현주소를 가늠케 하는 잣대이기도 합니다. ‘야마또’ 정권이—미군정 하 한국의 제주도 43사건에서처럼—토벌대를 보내서 오끼나와인을 학살하고 제압하지 않는 것은 누가 뭐라든 일본 전후민주주의(戰後民主主義)의 성과라 해야겠습니다. 그러나 “미군에 제공하는 토지에 관해서는 사유지든 공유지든 총리 한 사람의 판단만으로 수용할 수 있게 한”(『오끼나와, 구조적 차별과 저항의 현장』 58면, 원저 42면) 반민주적이고 비자주적인 입법행위만 하더라도 그 법이 오끼나와에서만 적용된다는 암묵적 전제 아래서만 가능했을 것인데, 일본사회가 민주주의와 지방자치의 그러한 후퇴를 남의 일로 여기는 습성이 번지다 보면 끝내는 ‘야마또’의 민주주의 자체가 근본적으로 흔들리게 마련이지요.

여기서 잠시 ‘구조적 오끼나와 차별’에 한반도 또한 일조하고 있음을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습니다. 물론 남한이든 북한이든 2차대전 중 오끼나와 민중의 희생이나 미군의 오끼나와 접수에 책임을 질 이유는 없습니다. 그러나 1950년 한국에서 벌어진 동족상잔의 전쟁이 일본이 ‘평화국가’로부터 ‘기지국가’로 이행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고, 일본은 ‘복귀’한 오끼나와를 ‘기지의 섬’으로 만듦으로써 스스로 ‘기지국가’의 진실을 호도해왔다고 할 수 있습니다.2) 이후 남북한의 대결상태와 이에 따른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은 미국의 동아시아 지배와 오끼나와 기지 유지에 더없이 편리한 빌미가 되었습니다. 가까운 예로, 일본 민주당의 하또야마 유끼오(鳩山由紀夫) 총리가 한때 후뗀마(普天間)기지의 국외 또는 현외 이설(移設)을 추진하다가 좌절하면서 결국 실각하는 과정에는—근본적인 원인이야 따로 있었겠지만—마침 그해(2010년) 3월 한국에서 초계함 천안함이 침몰하고 한국정부가 이를 북한의 소행으로 발표하면서 남북간은 물론 미・중 간에도 긴장이 최고조에 이른 상태가 하나의 요긴한 구실이 되었던 것입니다. 또한 정권의 보위를 최우선 가치로 삼아 잇따른 핵실험을 마다 않는 북조선정권과 이에 대한 남한정부의 강경일변도 대응이 오끼나와의 민중운동에—남한의 민중운동에도 그러하듯이—부정적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오끼나와는 한층 높은 차원에서 근대 세계체제에서의 국가주의 문제와 동아시아 지역연대의 성격 문제를 제기하는 핵심현장이기도 합니다. 이에 대해서는 한반도 현실을 논하면서 다시 언급하겠습니다.

 

 

2. 한반도 분단체제와 국가주의

 

핵심현장 오끼나와와 많은 문제를 공유하고 있는 또하나의 핵심현장이 한반도입니다. 저는 한반도의 현실을 온전히 파악하는 키워드가 ‘분단체제’라는 주장을 펼쳐왔습니다.3) 한반도는 19458월 일본의 식민지지배가 끝남과 동시에 남북으로 분단되었는데, 한국전쟁(1950~53)이 원래의 북위 38도선과 큰 차이 없는 분계선을 남긴 채 휴전상태가 협정체결 60주년을 코앞에 둔 오늘까지 지속되면서 분단현실이 일종의 ‘체제’로 굳어지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실패한 무력통일 시도를 거쳤다는 점이 지난날 동서독의 분단과 결정적으로 다르며, 통일전쟁이 있었지만 그 어느 쪽도 성공하지 못했다는 점이 베트남과의 차이입니다. 독일이나 베트남에서 볼 수 없었던 분단체제가 성립하고 지금껏 존속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일본에서 ‘구조적 오끼나와 차별’을 형성하는 데 중요하게 기여한 미국은 한반도 분단체제의 성립에 주동적 역할을 했습니다. 동시에 오끼나와 차별이 일본 내 기득권세력의 공조로 지탱되듯이 분단체제는 분단으로부터 이득을 보는 내부 기득권세력의 협력이 있어 가능했고, 수십년이 지난 오늘날 외세의 횡포로 환원할 수만은 없는 국내적 기반을 지녔습니다. 그런데 한반도 내 기득권세력이 남북으로 갈라져 상대방의 타도를 주장하며 대립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것은 매우 특이한 기득권구조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어디까지나 단일한 분단체제 내부의 양대 분파에 해당하며, 그들의 상호 적대관계는 분단체제를 유지하고 자신의 기득권을 수호하는 데 기여하는 이른바 ‘적대적 공생관계’입니다. 비슷한 현상은 미국과의 관계에서도 찾아볼 수 있지요. 한반도 분단의 존속에서 이득을 보는 미국 내 세력들은 남한의 친미주의자는 물론 북한의 강경주의자들로부터도 실질적인 혜택을 입는 경우가 허다한 것입니다.

한마디 덧붙인다면, 오끼나와 차별에 남북한이 일조해왔듯이 한반도 분단체제의 존속에 일본이 이바지해온 바도 적지 않습니다. 근년의 예를 들더라도 한반도의 긴장을 높이는 국제사회의 대북제재에 일본은 언제나 자기 일처럼 발 벗고 나섰고, 6자회담이 열릴 때면 ‘납치문제’ 같은 조・일 양국간 문제를 끌어들여 훼방꾼 노릇을 했습니다. 2005년의 919공동성명이 발표된 뒤에는 합의된 일본 몫의 대북 중유지원을 거부하기도 했습니다. 한국 속담에 ‘집에서 새는 바가지 들에서도 샌다’는 말이 있는데, 국내에서 구조적 오끼나와 차별을 자행하는 정부가 국제무대에 나와선들 옳은 역할을 하기 힘든 것이지요. 그러나 저의 이 말은 한국정부 역시 오끼나와 문제 해결에 건설적인 역할을 못한 ‘새는 바가지’였음을 전제로 드리는 것입니다.

이제 추상수준을 조금 높여 국가주의 문제를 논할까 합니다. 추상수준을 높인다고 하지만 오끼나와에서건 한반도에서건 국가주의는 현장에서 매일같이 부딪히는 구체성 가득한 현실문제입니다. 단지 그것이 ‘핵심현장’만이 아니라 근대 세계체제 전반에 걸쳐 작용하는 문제라는 인식에서 그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국가가 스스로 절대성을 주장하며 개인이나 내부의 여러 공동체를 억누르는 일은 동서고금의 역사에서 흔한 일입니다. 그러나 한편으로 인민주권을 표방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 ‘배타적 주권’ ‘고유의 영토’ 같은 개념을 앞세워 생활하는 주민들의 요구를 거부하며 난바다의 바위덩이에도 목숨 걸고 이웃나라와 다투는 현상은 월러스틴(I. Wallerstein)이 말하는 ‘국가간체제’(inter-state system)가 성립한 17세기 이후의 새로운 현상일 것입니다. 한국의 경우에도 독도를 둘러싼 일본과의 갈등이 있습니다. 그러나 국가주의의 정작 심각한 피해는 분단된 ‘결손국가’가 상대방 분단국의 위협을 빌미로 국민의 인권을 탄압하고 국경선도 아닌 휴전선—심지어 휴전선도 아닌 서해상의 북방한계선(NLL)—을 철통 같은 경계선으로 만들려는 행태에서 단적으로 드러납니다. 결과적으로 이것이 분단국가라는 자신의 약점을 호도하면서 분단체제를 강화하는 효과를 내기도 하는 점을 고려하면 기득권세력으로서는 마냥 어리석은 짓만도 아니지요.

그렇다고 한국 민중이 오로지 휴전선만 없애고 통일한국을 건설하여 국가간체제 속의 ‘정상국가’로서 ‘배타적 주권’을 행사하고 ‘고유의 영토’를 확보하겠다고 한다면, 이는 분단시대의 고난에서 배울 것을 제대로 못 배운 꼴이 될 것입니다. 물론 지금 같은 분단상태보다야 낫겠지요. 문제는 이런 통일국가가 국가주의가 야기하는 나라 안팎의 갈등을 온존하며 더러 격화하기도 할뿐더러, 그러한 통일을 목표로 삼았을 때 그것조차 달성하지 못하기 십상이라는 것입니다. 이런 종류의 통일한국 출현을 이웃나라 그 누구도 달가워할 리 없으며, 무엇보다 이 국가의 주권을 누가 행사할 것인가를 두고 한반도 내부에서—남북의 당국자들 간은 물론이고 각각의 내부세력 사이에서도—평화적인 타결이 불가능한 다툼이 벌어질 것이 분명합니다.

실은 남북한 간에 ‘철통 같은’ 군사분계선을 덜 살벌하고 한층 열린 경계선으로 바꿈과 동시에 남북의 재결합 역시 국가주권의 절대성을 제약하고 상대화하는 과정을 거치도록 하는 통일방안이 2000년 남북정상회담에서 이미 합의된 바 있습니다. “남과 북은 나라의 통일을 위한 남측의 연합제 안과 북측의 낮은 단계의 연방제 안이 서로 공통성이 있다고 인정하고 앞으로 이 방향에서 통일을 지향시켜 나가기로 하였다”라는 615공동선언 제2항의 합의가 그것입니다. 그런데 ‘낮은 단계의 연방제’라는 모호한 문구가 들어 있습니다만, 현실적으로 북측이 연방제는커녕 연합제의 도입조차 체제유지에 대한 위협으로 느끼는 실정에 비추어 우리의 일차적 목표는 연합제라도 낮은 단계의 연합제가 될 수밖에 없을 듯합니다. 이것조차 결코 쉬운 일이 아닌데, 그 논의는 이 자리에서 생략하고자 합니다.

국가주의의 완화와 극복은 동아시아 지역에서 특히 절실한 과제입니다. 중국이라는 왕년의 거대제국이 근대 세계체제의 규칙에 따라 하나의 국민국가로 행위하는 이 지역의 현실은 유럽연합(EU)이나 아세안(ASEAN)과 달리 주권국가 중심의 지역연합을 거의 불가능하게 만듭니다. 국가간의 협력을 당연히 수반하긴 해야 되지만 실질적인 지역통합은 생활상의 이익을 공유하는 주민들의 초국경적 교류와 협동에 더 크게 의존하는 새로운 모형이 요구됩니다. 같은 민족 사이지만 두개의 주권국가에 대한 상호인정을 전제로 새로운 유형의 복합국가를 건설해가는 남북연합이라든가, 오끼나와 요나구니정(與那國町)의 ‘자립・자치선언’(2005)과 ‘타이완 동부와 야에야마제도(八重山諸島) 관광경제권’ 합의(2009) 같은 것은,4) 비록 아직 현실의 벽에 막혀 있으나 동아시아 지역연대를 위해서도 의미심장한 전조(前兆)입니다.

국가주의를 극복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국가를 없애는, 적어도 배타적 주권국가들의 ‘국가간체제’를 없애는 길일 터입니다. 하지만 그것이 일거에 성취될 수 없는 과제라 할 때, 주민들의 생활상의 이익을 국가권력보다 중시하는 방향으로 국가를 개조하는 수많은 작업들을 수반하는 장기적 과정이 필요할 것입니다.5) 물론 오끼나와와 한반도에서의 작업을 쉽게 동일시하는 일은 삼가야겠지요. 두개의 분단국가가 대치하고 있는 한반도와 달리, 일본이라는 강력한 단일형 국민국가가 자신의 ‘기지국가’적 성격을 호도하며 유지하기 위해 오끼나와를 거의 식민지처럼 이용하는 구조에서는 새로운 복합국가의 창출보다 기존 통일국가의 연성화(軟性化) 내지 복합화가 요구될 것입니다. 어떤 의미로 이 과정은 지금도 진행 중이라 할 수 있습니다. ‘야마또’ 정권의 행태는 별로 바뀌지 않고 오히려 더욱 경화(硬化)되는 면마저 있지만, 오끼나와 민중은 미군기지를 섬 바깥으로 내보낼 힘이 없는 대신에 후뗀마 기지의 현내 이설에 대한 미국과 일본이라는 두 강대국의 합의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하고 있는 셈입니다. 이 거부권 행사에 일본정부가 승복하는 날이 온다면 일본국가 자체가 그만큼 민주화되고 일본사회가 인간화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아무튼 핵심현장일수록, 국가주의의 가장 심각한 폐해를 제거하는 작업이 해당 국가의 획기적인 개조와 직결되기 마련이고 국가주의를 넘어선 새로운 세계체제의 건설에도 지대한 이바지가 되리라 믿습니다.

 

 

3. 2013년 한국의 과제

 

한국의 2013년은 단순한 정부교체가 아니라 ‘2013년체제’라고도 부름직한 새로운 시대의 출범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 저를 포함한 많은 한국인의 염원이었습니다. ‘2013년체제’라는 용어는 제가 내놓은 것입니다만,6) 2012년 대통령선거에서 문재인(文在寅) 후보를 포함한 많은 정치인과 활동가들이 이 표현을 채용했습니다. 실은 승리한 박근혜(朴槿惠) 후보도, ‘2013년체제’라고는 안했지만 ‘정권교체를 뛰어넘는 시대교체’를 공언했지요. 그렇다고 그가 2013년체제 건설을 대행해주리라 기대하는 것은 순진한 생각일 것입니다. 야권의 선거패배는 2013년에 새로운 시대를 출범시키려는 노력에 심대한 타격을 주었고, 이 사실을 냉철히 인식하고 대면하는 데서 다음 작업이 시작되어야 합니다.

이때 박근혜정부가 남북관계를 얼마나 복원하고 발전시킬 수 있을지가 2013년 한국민중의 대응에 큰 영향을 미칠 것입니다. 이는 새 정부가 스스로 공약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도 관건적입니다. 분단체제의 성격상 남북대결이 완화되지 않고는 다른 분야에서의 개혁작업도 힘을 받기가 어렵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바로 이 대목에서 박근혜정부의 행보를 가늠하기가 매우 힘든 실정입니다. 615공동선언 등 남북간의 기존 합의들을 존중하겠다고 하고 대화와 신뢰구축을 강조하는 점은 분명히 지난 정부보다 진취적입니다. 반면에 5월의 한미 정상회담 결과나 최근에 남북 당국자회담이 전격적으로 합의되었다가 전격적으로 무산된 경위를 보면,7) 대통령이 표방하는 ‘한반도 신뢰프로세스’가 대화를 통해 신뢰를 만들어나가기보다 상대방이 먼저 신뢰를 보여주면 대화하겠다는 자세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만약 실제로 그런 것이라면, 이명박정부의 접근법과 별로 달라진 게 없는 셈이지요.

바로 이 대목에서 새 정부는 이명박정부가 끝내 헤어나지 못했던 치명적인 함정에 빠질 수 있습니다. 남북대결이 악화될수록 주민들 간의 적대감도 커지고 따라서 ‘저쪽’이 더 잘못했다고 생각하며 대결적 자세를 취하는 대통령에 대한 국민여론의 지지도가 일단 올라가기 일쑤인 것이 분단체제의 한 특징인데, 여기에 맛을 들여 대결국면을 지속하다 보면 수구적 기득권세력만 더욱 강력해지고 대통령은 남북관계는 물론 국내개혁에서도 아무런 성과를 낼 수 없게 됩니다. 새 정부가 처음부터 이 함정에 빠져들 거라고 속단할 일은 아닙니다만, 대통령이 그 유혹을 끝까지 뿌리칠 경륜과 지도력을 지녔는지도 낙관할 수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앞으로 어떤 혼란이 오든 그것이 이명박정부의 단순연장은 아닐 것입니다. ‘시대교체’를 약속한 대통령의 성의부족 또는 실력부족으로 촉발된 민중의 각성이 수반된 혼란일 터이며, 새 대통령이 ‘경제민주화’라든가 ‘한반도 신뢰프로세스’의 달성에 다소나마 성과를 낸다면 그만큼 더 넓어진 공간을 활용한 민중의 움직임이 될 것입니다. 지금은 현실을 냉정히 지켜보면서 각자가 할 일을 기본부터 다져나갈 때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로 지식인들은 근본적인 이론상의 문제에 대한 탐구에도 정진할 필요가 있습니다. 마침 오늘 강연이 ‘현대아시아사상’(Modern Asian Thought)이라는 큰 기획의 제1회 연례강연이니만큼 그러한 이론적 과제를 잠시 언급하는 것으로 마무리를 대신할까 합니다.

‘핵심현장’에서 출발하더라도 세계 전체의 일반적인 문제로 관심을 넓힐 수밖에 없는 사정은 앞서 국가주의와 관련해서 언뜻 비쳤습니다. 국가주의의 온전한 극복은 국가간체제가 존속하는 한 불가능하기에 여러 현장에서의 국가개조 사업을 수반한 장기적 과제로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었지요. 이는 역으로, 국가간체제를 포함한 근대 세계체제의 변혁을 외면한 개조작업만으로는 국가주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국가주의뿐 아니라 자본주의 근대의 전반적인 문제를 두고 그러한 양면성에 부응하는 대응을 주문한 것이 이른바 ‘근대적응과 근대극복의 이중과제’론입니다.8) 곧, 자본주의의 폐기에만 몰두하는 이런저런 원리주의적 반자본주의도 아니고 자본주의의 개량 또는 ‘다양화’ 외의 근본적 대안을 부정하는 변형된 근대주의도 아닌 참된 중도(中道)를 찾자는 것입니다.9)

어찌 보면 이것은 맑스가 이미 설파한 ‘변증법’과 별로 다를 바 없습니다. 그가 관념의 세계가 아닌 현장의 실천과 결부된 변증법을 요구했다는 점에서도 그렇습니다. 다만 상당수의 맑스주의자가 상정해온 것처럼 역사의 변증법적 발전법칙에 따라 자본주의 이후에 사회주의가 필연적으로 도래한다고 믿기보다, ‘자본주의 이후’가 또다른 억압적이고 차별적인 사회체제로 갈 가능성도 열어두는 역사관입니다. 동시에 ‘중도’라는 불교적 표현이 함축하듯이, 헤겔의 변증법은 물론이고 맑스의 유물론적 변증법에도 여전히 작동하는 서양의 형이상학적 사고를 넘어설 것을—이를 수용하고 적응하면서 극복해나갈 것을—요구합니다. ‘있음’과 ‘없음’ 어느 쪽에도 치우치지 않은 지혜의 경지에서 자본주의의 실상을 바로 알고 예의 이중과제를 완수할 위력을 얻자는 것입니다.

이렇게 말하면 현장의 문제가 몇몇 특별한 수행자의 아득한 깨달음의 문제가 되어 관념의 세계로 증발해버리는 인상을 줄 수 있습니다. ‘중도’를 말하고 아시아의 사상을 말하면서 서양의 철학과 근대과학을 외면한다면 실제로 그리 될 위험이 농후합니다. 하지만 참된 중도는 현실에 발 딛고 서되 목전의 현실에 매몰되지 않는 자세이며, 근대인으로서 근대의 현실을 현실로 인식하고 적응하되 그 극복을 동시에 시도하는 ‘이중과제’를 떠안는 자세입니다. 다만 이러한 극복을 위해서는 근대적 사고 자체의 한계를 돌파하고 새로운 생각의 경지를 개척하는 작업도 필수적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작업이 알음알이知解를 앞세우는 방식도 아니고 실천적 성과에 집착하는 방식도 아닌, 개인적 수행(修行)과 사회적 실천을 현장에서 지금 시작하여 동시적으로 진행하는 방식이라는 점을 강조하면서 제 이야기를 마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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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아라사끼 모리떼루 지음, 백영서이한결 옮김 『오끼나와, 구조적 차별과 저항의 현장』(창비 2013; 원저 新崎盛暉著新崎盛暉構造的沖繩差別』, 東京: 高文硏 2012), 부록 2: 아라사끼 모리떼루백영서 대담 「낮은 국경으로 만들어가는 동아시아 평화」, 285~87면. 〔백영서 교수는 같은 회의의 제4쎄션에서 「’핵심현장’에서 찾는 동아시아 공생의 길」이라는 발표를 따로 했고, ‘핵심현장’을 이번 회의에서 주제어의 하나로 만드는 데 스스로 크게 거들었다.〕

2) ‘기지국가’론에 대해서는 남기정(南基正) 「동아시아 냉전체제하 냉전국가의 탄생과 변형」, 『세계정치』(서울대 국제문제연구소) 제26집 2호(2005년 가을겨울), 51~71면 참조. 저자는 휴전협정체제를 ‘동아시아형 냉전체제’로 규정함으로써(같은 글 54면), 한반도 분단체제의 지역적 함의와 비중을 강조한다. 오끼나와 문제는 세교연구소 주최 제85차 세교포럼(2013. 6. 21)에서 같은 저자가 「일본 전후사와 오끼나와 문제—‘일본〓기지국가’론의 입장에서」라는 주제발표를 하면서 언급했다.

3) 분단체제론은 졸저 『분단체제 변혁의 공부길』(창작과비평사 1994)을 비롯한 여러 저서에 등장하지만 여기서는 한국어 이외의 저서만 몇개 소개한다. 晴著朝鮮半島平和分斷體制解體期にあたって』(靑柳純一訳, 東京: 岩波書店 2008); 『韓國 民主化2.0—「2013年體制」を構想する』(靑柳純一訳, 東京: 岩波書店 2012); 晴等著分斷體制民族文學』(白永瑞陳光興編, 臺北: 聯經出版, 2010); Paik Nak-chung, The Division System in Crisis: Essays on Contemporary Korea, tr. Kim Myung-hwan et al., University of California Press, 2011. 그밖의 영문자료로 Inter-Asia Cultural Studies: Movements, Vol. 11 No. 4 (December 2010, Special Issue: Paik Nak-chung); 및 Paik Nak-chung, “Toward Overcoming the Division System Through Civic Participation,” Critical Asian Studies, Vol. 45 No. 2 (June 2013, http://criticalasianstudies.org에서도 조회 가능) 참조.

4) 아라사끼 모리떼루, 앞의 책, 제3장 2절 ‘국경지역은 변경인가 평화창조의 장인가’ 참조. 〔약정토론자로 나선 아라사끼 교수는 이들 창의적인 구상이 현재 ‘붕괴상태’에 이른 상황을 보고했다. 그러나 길게 봐서 이런 조짐들의 출현 자체가 국가주의에 대한 의미심장한 타격이 된다는 점은 불변의 진실이며, 아라사끼 교수를 포함한 오끼나와의 많은 사람들이 그런 신념으로 계속 움직이고 있음을 목격하고 왔다.〕

5) 졸고 「국가주의 극복과 한반도에서의 국가개조 작업」, 『창작과비평』 2011년 봄호(일본어로는 「國家主義克服朝鮮半島における國家改造」, 『世界 no.816, 東京: 岩波書店 2011) 참조.

6) 2013년체제론에 관해서는 졸저 『2013년체제 만들기』(창비 2012) 및 『韓國 民主2.0』 참조.

7) 〔남북은 7월에 들어와 개성공단과 관련된 실무회담을 열어 공단 내의 장비 점검과 생산품(및 일부 설비) 반출을 위한 입주 기업인들과 실무자의 공단 출입에 합의했지만, 공단 정상화 여부는 7월말 현재 여전히 불투명하다. 아직은 박근혜정부가 이명박정부와의 차별성을 제대로 못 보여주고 있는 실정이다.〕

8) 이에 관해서는 2012년 10월 상하이에서 열린 ‘Asian Circle of Thought 2012 Shanghai’ 발표에서 간략히 언급한 바 있다. Paik Nak-chung, “TheThird Partyin Inter-Korean Relations and Its Potential Contribution to Modern Asian Thought” (http://en.changbi.com/articles/2102?article_category=articles-and-related-material), section 6: ‘Asia, Modernity, Thought’ 참조.

9) 불교적 ‘중도’와 현실적 운동노선으로서의 ‘변혁적 중도주의’를 어떻게 연결시킬지에 대해서는 졸고 「2013년체제와 변혁적 중도주의」, 『창작과비평』 2012년 여름호 참조. 〔이 대목은 시간제약으로 충분히 설명할 겨를이 없기도 했지만, 일부러 소략하게 넘어감으로써 후속논의를 도발하려는 의도가 없지 않았다. 마침 약정토론자의 한 사람인 쑨 거 교수가 질의해주었기에, 위의 졸고 내용을 다소 구체적으로 소개했고, 자기 사는 곳에서 ‘핵심현장’을 발견하고 ‘중도’를 찾는 일을 ‘수처작주(隨處作主)’라는 표현으로 부연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