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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평

 

류준필 『동아시아의 자국학과 자국문학사 인식』, 소명출판 2013

동아시아 자국(문)학의 다른 가능성을 찾아서

 

 

황정아 黃靜雅

한림대 한림과학원 HK교수 jhwang612@hanmail.net

 

 

촌평-동아시아의자국학과_fmt400면을 훌쩍 넘기도록 설렁설렁 지나칠 대목이 극히 드물 만큼 밀도 높은 이 책을 간단명료하게 요약하기란 쉬운 일도 또 그리 의미있는 일도 아닐 것이다. 그러니 이런 ‘밀도’가 어디에서 연유하며 어떤 성격인가 하는 데서 시작하는 편이 낫겠다. 무엇보다 그것은 이 책이 담고 있는 상세하고 다양한 자료들에서 만들어진다. 예컨대 3부로 구성된 이 책의 1부는 ‘학과제도 수립과 자국(문)학의 위상’이라는 제목으로 한・중・일 3국의 근대적 교육제도, 특히 대학제도의 정착과정을 살피면서, 이 과정이 동시에 자국(문)학에 대한 의식이 생성되어 특정한 방향으로 움직인 경로임을 보여준다. 그러다보니 제도와 기관의 세세한 변천사가 한눈에 파악되도록 학과편제에 관련된 구상을 적은 문건을 비롯하여 각 교육기관이 그때그때 내놓은 구체적인 학과체제와 커리큘럼 같은 다수의 자료가 꼼꼼하게 인용되어 있는 것이다.

인용한 자료도 자료지만, 2부 ‘자국(문)학 인식의 맥락’과 3부 ‘자국문학사의 인식과 서술 양상’을 보면 수록된 개별 글들이 다루는 대상 자체가 상당히 다양하다. 시기적으로는 대체로 ‘근대전환기’로 지칭되는 19세기말에서 20세기초에 한・중・일 3국에서 일어난 담론적 변화를 범위로 하면서도, 그같은 변화와 연관된 실타래를 뽑는 과정에서 앞선 시기의 청대(淸代) 문장가나 정약용(丁若鏞)과 김정희(金正喜) 등이 본격적으로 등장하기도 한다. 공간적으로도 ‘동아시아’를 표방한 만큼 독립신문에 이어 장 타이옌(章太炎)으로, 최남선(崔南善)과 안확(安廓), 미까미 산지(三上參次)와 타까쯔 쿠아사부로오(高津鍬三郞)에 이어 루쉰(魯), 다시 김태준(金台俊)으로 가볍게 이동한다. 사실 이런 시공간적 넘나듦은 밀도를 더해주기보다 자칫 성글거나 얄팍한 논의로 이어질 위험이 있다. 그러나 다루는 텍스트를 구체적으로 한정한 다음 그로부터 쉽게 벗어나지 않는 저자의 꼼꼼하고 두터운 글쓰기 스타일이 애초에 이런 위험으로부터 면역력을 확보한다.

제목이 일러주듯이 주제 면에서 이 책은 자국(문)학에 대한 인식의 생성을 중심으로 삼고 있지만, 저자는 서문에서 전통적인 문론(文論)이 근대적 변화에 어떻게 대응했는가 하는 점도 또 하나의 주요 관심사라고 밝힌다. 지금으로 쳐서 넓은 의미의 ‘문학’담론으로 문론을 해석할 수 있다면, 그리고 근대적 자국학의 성립에서 자국‘문학’사의 구성이 중대한 역할을 담당했음을 감안한다면, 전통적 문론과 근대적 자국(문)학이라는 두 주제가 어떤 층위에서든 맞닿을 수밖에 없으리라 짐작된다. 이 책이 그 층위를 집중적으로 탐구하고 있다고 보기는 힘들다. 하지만 자국문학사 서술의 진로에 결국 문() 혹은 문학에 대한 이해와 인식이 연루되어 있었음은 여러 대목에서 지적된다.

제목에서부터 두번 반복되는 ‘자국(自國)’이라는 표현은 얼마간 마음에 걸리기도 한다. 국학이나 국문학이라고 하면 일종의 전이사(shifter)처럼 발화지점에 따라 지시대상이 바뀌는 문제가 있겠으나, 한국학과 한국문학이라는 지칭이 이제 상당히 일반화되었을 뿐 아니라 여기서는 더욱이 ‘동아시아’라는 규정이 의미를 분명히 해주기 때문이다. 저자는 이 점을 두고 국학과 같은 표현이 “일반적 의미의 용어로 활용하기엔 역사적 맥락이 너무 뚜렷하다”라고 설명하는데, 자국학이라고 하면 국학에 비해서도 “국가 관념을 지나치게 앞세우는 인상”(319면 주1)을 더 주는 것이 사실이다. 어느 쪽이든 이 책이 다루는 주제에서 ‘국가’는 학제와 담론 뒤에 반쯤 숨겨져 있기는 해도 사실상 주요 키워드라고 할 만하다. 따라서 탈국가담론의 세례를 거친 이 시점에서 저자가 근대전환을 의식적으로 추동한 자국학과 자국문학사의 형성, 더 구체적으로는 그런 학제들의 형성에 국가라는 범주가 ‘필연적’ 규정요인이자 지평이었던 점을 어떤 입장으로 진술하고 있는지가 한가지 ‘관전 포인트’가 된다.

동아시아 한자문명권 최초의 자국문학사이면서 이후 자국문학 연구의 방향에 중대한 영향을 미친 미까미 산지와 타까쯔 쿠아사부로오의 『일본문학사』(1890)에 대해 저자는 그것이 자명한 것으로 설정된 ‘민족성’을 문학에서 확인하는 국수주의적 작업이었다고 비판하는데, 이런 평가만이었다면 예상 가능한 소급판단의 수준에 그쳤을 것이다. 하지만 저자는 당대의 유사한 다른 시도들과 꼼꼼히 비교하면서 『일본문학사』가 자국문학사 서술이 취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기보다 오히려 전통 한문학과 일본어문학이 상호작용하며 발전해온 과정을 배제하고 문학사를 폭넓은 문명적 혹은 문화적 가치와 연결할 “다양한 가능성을 억압・배제하면서 상승한 결과물”(315면)이었음을 밝히는 데 주안점을 둔다. 김태준의 『조선한문학사』(1931)나 『조선소설사』(1933)도 ‘문학’에 대한 깊이있는 이해보다 ‘국민’을 앞세우면서 유사한 한계를 드러낸 것으로 평가된다. 저자는 자국문학사 강의안이었던 루쉰의 『한문학사강요(綱要)(1938)를 비교와 대조의 대상으로 가지고 들어옴으로써 자국문학사의 다른 가능성에 대한 시각을 확보한다. 최남선과 안확의 자국학 이념이 평가를 받는 지점도 여기에 있다. 그들의 이념은 민족성이나 국민에서 출발하는 것과는 정확히 반대방향, 즉 ‘보편성의 독자적 구현’으로서의 자국(문)학을 구상한 시도였다는 것이다.

이러한 평가의 주된 잣대가 되는 문명과 문학, 보편성 자체는 국가나 민족성 못지않게 논쟁적인 개념들로서 그 자체로 반드시 ‘긍정적’이라는 보장이 더는 존재하지 않는다. 가령 이 시기 동아시아를 휩쓴 ‘식민성’ 또한 당대의 ‘보편성’이지 않았던가. 이런 사태를 감안하면 저자의 말대로 논의는 “아직 본론에 들어서지도 못한”(8면) 것일지 모르지만, 동아시아를 근거로 근대의 핵심개념들의 의미를 재조명하는 ‘본론’은 어느 한 사람의 작업일 수 없을 것이다. 본격적인 논의에 들어가기 위해서라도 연관관계 추적이나 단순 병치를 넘어 이 책이 수행하듯이 상호대면을 통해 서로의 성취와 가능성을 가늠하는, 실질적 의미의 동아시아 비교연구가 필수적이다. 그런 점에서 개념사를 매개로 이제 막 동아시아연구에 입문한 평자에게 이 책은 또 하나의 중요한 지침을 제공해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