촌평
이옥순 『인도는 힘이 세다』, 창비 2013
불편한 진실, 21세기의 인도 이해
김응기 金應基
(주)비티엔 대표 gate@gate4india.com
인도 여행은 과거로 떠나는 타임머신 여행과 같은 매력으로 한국인에게 환영받고 있다. 일찍이 유럽에서도 급격히 성장한 그들의 물질문명에서는 사라진 과거에의 향수를 찾아내는 수단으로 인도 여행을 즐겨왔었다. 그러나 이러한 형태의 인도 여행은 종종 인도의 현재조차 과거형으로 싸잡아 묶어두고 여행자 자신은 마치 미래에서 온 능력자인 양 상대적 우월감을 드러내는 잘못된 여행으로 변질되었다.
이는 우리에게도 고스란히 옮겨왔다. ‘잘못된 만남’의 인도관은 우리의 여행의식은 물론 이후 세계무대 진출을 생존전략으로 삼고 있는 기업의 대인도 전략에도 영향을 미쳤다. 인도의 과거형에만 매달리다가 시행착오를 겪는 우리 기업은 서구와 일본, 중국 같은 나라에는 거대한 시장으로 각광받는 인도를 마치 ‘신 포도’로 여기는 것과 같은 안타까운 실정에 처해 있다.
인도를 여행하는 한국인은 2000년도만 해도 연 2만여명에 불과했으나 이후 해마다 증가하여 최근에는 10만명을 넘었다. 여행객뿐 아니다. 가뭄에 콩 나듯 하던 비즈니스 출장자 역시 이제는 인도행 출국자의 30%에 달할 정도다. 그런데 이상한 현상이 나타났다. 인도 여행객이 증가하고 있음에도 여행 관련 인터넷 커뮤니티에는 인도 및 인도인에 대한 험담이 점점 늘어가고 비난의 수위도 높아진 것이다.
같은 맥락으로, 글로벌 진출이라는 당위성을 따라 인도로 향하는 비즈니스 출장자의 발걸음 역시 늘었지만 그와 함께 기업의 호기심은 외면으로 변했다. 인도에 대한 사전이해 부족이나 현지 여건으로 겪는 시행착오를 긍정적으로 해석하여 경험으로 축적해야 할 텐데, 오직 부정적인 면만 부각시키면서 오히려 관계단절의 빌미로 삼고 있는 경우가 늘었다. 그 까닭에 각종 연구보고서에서 거대시장 인도가 강조되면 될수록 그에 반하는 현장의 목소리도 크다. 이는 현지에서 부딪치는 인도가 우리가 재단한 모습과 다르기 때문에 나오는 당혹감과 반발이다.
이를 두고 이옥순(李玉順)은 전작 『우리 안의 오리엔탈리즘』(푸른역사 2002)에서 인도에 대한 한국인의 심리가 인도를 만들어진 허구적 이미지에 가두고 그 안에서 환호와 멸시를 동시에 찾는 이중적 구조를 가지고 있다며 그 실체를 분석한 바 있다.
현대화의 더딘 출발로 인하여 심지어 죽(竹)의 장막으로 불리던 중국보다 뒤처지면서 과거형 저개발국으로 머물던 인도는 2008년 달 탐사선은 물론 2013년 화성 탐사선 발사를 성공시켜 우리를 놀라게 했다. 뿐만 아니라 폭등하는 중산층의 시장수요로 인하여 13개 자동차 메이커가 가동되며 세계 자동차산업의 허브로 등장하는 등 여러 산업에서 21세기 슈퍼파워로 자처하고 나서는 이 ‘불편한 현실’로 인하여 과거형 인도만을 기억하던 한국은 당황하고 있다.
이런 우리에게, 손꼽히는 인도통이며 국내 인도사 박사 1호이기도 한 이옥순은 근작 『인도는 힘이 세다』를 통해 인도의 엄존하는 사실조차 외면하고 폄하하는 몰지각에 “인도는 싫어할 수는 있지만 무시할 수 없는 존재”라는 재인식을 촉구한다.
21세기 인도는 우리에게 생각보다 훨씬 가깝게 다가왔다. 외교적으로도 한국 대통령이 취임 첫해에 순방할 나라 중 하나로 고려하는 대상이라고 한다. 우리의 경제적 일상에도 깊숙이 들어왔다. 한국인이 매일 먹는 간장의 주원료인 탈지대두분은 대부분 인도에서 공급되고 있으며 섬유업계는 인도 원면과 원사에 의존한다. 커리와 라면 수프 원료에는 인도 강황과 후추가 100% 사용된다. 미용실에서 트리트먼트로 사용하는 헤나 역시 인도 원료가 일본에서 가공되어 수입된 것이다. 원자재 정도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하이엔드 산업에서도 이러한 현상이 목격된다. 차세대 금융과 스마트폰에 인도인이 만든 프로그램이 구동되고 있고 연간 4천만명이 이용하는 인천공항 물류시스템도 인도인의 두뇌를 빌려온 것이며, 제약원료의 80% 이상이 인도산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러한 사실은 물론 쌍용자동차와 대우상용차가 인도 기업에 의해 인수·경영되고 있다는 사실조차 종종 잊고 있다. 경제라는 잣대로 인도를 업신여기던 우리에겐 이러한 소수의 열거조차 뜻밖이지 않을 수 없다.
글로벌 무대로 나가서는 이보다 훨씬 더하다. 인도 밖 해외에서 활동하는 인도인을 NRI(non-resident Indian)라고 하는데 미국을 포함하여 전세계적으로 2500만명을 넘는 이들의 활동이 한국기업이 진출하려는 곳곳에 미치고 있다. 이것이 21세기 인도의 존재감이다.
『인도는 힘이 세다』는 이러한 인도가 지닌 힘의 스펙트럼을 잘 설명한다. 인도와 인도인에 대해서, 긴 역사의 전개 끝에 지금에 이른 인도의 참모습을 저자는 오랜 인도 연구를 통한 날선 해부술로 파헤친다. 그래서 오랜 역사적 실체 속에서 독특한 DNA를 품고 세계 속에서 끊임없이 진화하는 인도를 제대로 이해하여 비즈니스로든 여행으로든 제대로 만끽하라고 역설하는 것이다. 또한 저자는 인도가 미국이나 영국 등 서구세계는 물론, 우리나라나 중국과 비교해도 사뭇 다르다고 한다. 역사와 문화가 상이하고 사람들의 삶에 대한 관점이나 접근방식에서도 차이가 난다는 것이다. 그는 다름에 대한 오해를 갖고 있는 우리에게 그러한 차이를 해석할 수 있는 길을 이 책에서 제시하고 있다.
모든 면에서 엄연한 실체로 부상한 21세기의 인도이기 때문에 우리는 더는 무시할 수 없는 인도를 통찰하면서 동행해야 할 것이다. 이 점에서 인도문화 교양서로서 이번 책은 그 가치가 충분하다.
*이 서평은 지난 2013년 12월 필자가 인도 출장 중에 쓰게 되었는데, 그때 델리로 가는 비행기 옆자리에는 모 대기업의 인도 법인으로 부임하는 재무담당이사가 있었다. 인도가 초행길인 그는 아홉시간의 비행 동안 『인도는 힘이 세다』를 읽고 있었다. 그는 인도 이해의 길을 찾는 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