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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강성은 姜聖恩
1973년 경북 의성 출생. 2005년 문학동네신인상으로 등단. 시집 『구두를 신고 잠이 들었다』가 있음. mongsangs@hanmail.net
겨울방학
겨울산에 토끼 잡으러 갔다. 나와 동생과 사촌동생, 우리 셋은 한번도 잡아본 적 없는 토끼를 잡으러 나섰다. 흰눈이 무릎까지 오는 산이었다. 토끼는 보지도 못하고 길을 잃었다. 해가 지고 있는데 어떤 남자가 숲에서 나와 여기서 뭐 하냐고 물었다. 집으로 가고 싶은데 길을 잃었다고 말했다. 남자가 가리켜준 방향으로 캄캄한 산을 내려와 도로를 따라 몇시간 걸었다. 불빛이 보일 때까지. 밤늦게 집에 도착한 우리는 어른들에게 엉덩이를 맞으며 울었다. 다음날 사촌동생은 방학이 끝나 서울로 갔다. 며칠 뒤에 동생이 산에서 귀신을 봤다고 말했다. 나는 그 남자가 귀신이라고 말했다. 얼마 후 동네에서 그를 봤다. 산에서 봤을 때보다 많이 늙어 있었다. 할아버지가 되어 지게를 지고 있었다.
덤불
여름이 되자 그의 몸에서 잎이 자라기 시작했다. 잎들이 무성해지자 그는 곧 덤불이 되었다. 태양이 광기의 분수를 뿜어낼수록 덤불은 더 풍성해져갔다. 입 속에서 솟아나온 연한 줄기는 이내 단단해졌고 그러나 곧 그의 몸의 일부가 되어 하나도 아프지 않았다. 대신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덤불인간이 되는 것이 나의 운명이었나. 시간이 지나자 그는 처음부터 덤불 속에 살아왔던 것처럼 느껴졌다. 덤불의 눈으로 보니 누구나 덤불 속에 있는 것처럼 보였다. 원래 덤불 속에서 살아왔고 덤불 밖으로는 한 발짝도 나온 적이 없다고. 서리가 내리자 그는 조금씩 잿빛으로 물들어갔다. 오래 먹지 못했고 야위어갔다. 덤불은 자주 바람에 흔들렸고 겨울이 되자 검불이 되어 굴러다녔다.
침묵하고 있는 수많은 덤불들이 도시의 외곽을 둘러싸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