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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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경동 宋竟東

1967년 전남 보성 출생. 2001년『내일을 여는 작가』『실천문학』으로 등단. 시집으로『꿀잠』이 있음. umokin@hanmail.net

 

 

 

아픈 시절을 위한 위로의 노래

 

 

평택 미군기지 확장에 반대해 싸우던

대추리에서

평화는 아편이었다

 

법정최저임금보다 10원 많은 월급여 641,850원

정규직 상여금은 600%, 직접고용비정규직은 300%, 파견직은 0%

기륭전자 여성비정규직 천막 앞에서

평등은 공기였다

 

창문 없는 공장

근골격계 질환을 앓으며

양계장의 닭들처럼 기타를 낳다

목 잘린 채 빈 공장을 지킨 지 900일

계룡IC콜텍 공장에서

연대는 단비였다

 

비루한 망루를 쌓았다는 죄로

다섯명이 불타죽은

용산4가 남일당 뒷골목에서

살아 있는 사람들은

영원한 그리움의 실루엣이었다

 

난 이 아프고 갸륵한 세상을

빼앗기지 않은 몸으로

멍들지 않은 몸으로

잘리지 않은 몸으로

시커멓게 타들어가는 분노 없이

건널 자신이 없다

 

 

 

이 삶의 고가에서 잊혀질까 두렵다

 

 

무슨 쎄느강변에 드리워진 고가가 아니었다.

가리봉역에서 2공단 쪽 남부순환도로를 넘어 가리봉2동 닭장촌으로 가는 길은 이 고가뿐이었다. 철근쟁이 어깨마냥 한켠으로 10도쯤 기울어져 있던 계단. 6차선 순환도로 위에서 늘 출렁거리다 꽈배기처럼 비틀려진 다리. 나도 그 고가를 비틀거리며 수없이 넘었다.

 

나는 그 고가 너머 어느 닭장집 지하 끝방에 살았다. 보증금 50에 월세 8만원. 바퀴벌레와 쥐벼룩이 혼거하던 방. 슈퍼집 외상 장부에 씌어지던 라면과 부탄가스. 여덟개의 칸막이 닭장 위에 툭 트인 안방과 마루를 두고 있던 주인 여자는 가끔씩 젊은 내 방문 앞에 서서 가지 않았다. 월세를 내지 않으려면 너를 내놓으라는.

 

그 방에서 때론 네명이 부침개를 해먹고, 다섯명이 술잔을 돌리고, 여섯명이 자기도 했다. 나는 그 지하방에서 맑스와 레닌과 모택동과 호찌민과 중남미혁명사와 한국근현대사를 월경했다. 사회주의리얼리즘과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을 주유했다. 그러다 지치거나 고양되면 살갗이 벗겨지도록 두번이고 세번이고 수음을 하곤 했다. 멀리 있는 혁명보다 가까이에서 안아줄 사랑이 간절했다.

 

아침이면 다시 그런 나들이 공단으로 피와 땀을 매혈하기 위해 활기차게 넘던 그 고가. 그 길밖에 없었던. 젊은 날들을 다 보낸. 지금은 테크노 디지털밸리가 된 굴뚝 공단에 흉물처럼 남아 있는. 나처럼 남아 있는. 나는 그 불우하고 불온했던 삶의 고가에서 내가 잊힐까 두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