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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송수권 宋秀權
1940년 전남 고흥 출생. 1975년『문학사상』으로 등단. 시집으로『산문(山門)에 기대어』『아도(啞陶)』『꿈꾸는 섬』『수저통에 비치는 저녁 노을』등이 있음.
소반다듬이
왜 이리 좋으냐
소반다듬이, 우리 탯말
개다리 모자 하나를 덧씌우니
개다리소반상이라는 눈물나는 말
쥐눈콩을 널어놓고 썩은 콩 무른 콩을 골라내던
어머니 손
그 쥐눈콩 콩나물국이 되면 술이 깬 아침은
어, 참 시원타는 말
아리고 쓰린 가슴 속창까지 뒤집어
흔드는 말
시인이 된 지금도 쥐눈콩처럼 쥐눈을 뜨고
소반상 위에서 밤새워 쓴 시를 다듬이질하면
참새처럼 짹짹거리는 우리말
오리 망아지 토끼 하니까 되똥거리고 깡총거리며
잘도 뛰는 우리말
강아지 하고 부르니까 목에 방울을 차고 달랑거리는
우리말
잠, 잠, 잠 하고 부르니까 정말 잠이 오는군요, 우리말
밤새도록 소반상에 흩어진 쥐눈콩을 세며
가갸거겨 뒷다리와 하니 두니 서니 숫자를 익혔던
어린시절,
가나다라 강낭콩
손님 온다 까치콩
하나 둘 다섯콩
흥부네 집 제비콩
우리 집 쥐눈콩
소반다듬이 우리말 왜 이리 좋으냐
지리산에 눈 내린다 15
기상나팔 소리
어디선가 뻐꾹새가 울고 있었지
올해 처음 듣는 햇뻐꾸기 소리군요!
그 울음소리 아지트의 동굴 속까지 들려왔네
열마리씩 스무마리씩 떼를 지어 나와 울었네
이것 보세요! 누가 버리고 간 손목시계가 남았군요
큰바늘만 남아 5자를 가리키고 있었네
오후 5시? 새벽 5시? 참 어중간한 바늘이었네
이것 보세요! 여기에 나팔 한개도 남아 있군요!
뱀노인은 녹슨 나팔 주둥이를 입에 대고
바람을 넣었다네 웬 나팔?
여수 신월리 14연대 김은돌이라는 기상 나팔수가 있었지요
1950년 겨울 낙동강 인민해방전선이 밀리자
남부군 지리산유격대도 투입되었지요
대구 후방을 교란시키는 비슬산 전투에서
김은돌이 죽었거든요!
빨치산 중에 나팔을 가진 친구는 그밖에 없었어요
저녁거리 김밥을 콩심심두1처럼 나누어먹고
무기고트를 빠져나오는데 잔돌평2엔
저녁 햇살이 비끼고 있었네
무쇠솥 한개도 들통 나기 전에 고물상에 팔아 넘겨야겠어요
전사박물관에 실어가면
빨갱이들 쇠꽃 냄새밖에 더 나겠어요!
잔돌평 너덜겅을 타고 중산재를 내려오는데
김은돌의 나팔소리- 14연대 봉기군을 깨우는
그 기상나팔 소리가 따라와
오래도록 귀 먹먹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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