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기구독 회원 전용 콘텐츠
『창작과비평』을 정기구독하시면 모든 글의 전문을 읽으실 수 있습니다.
구독 중이신 회원은 로그인 후 이용 가능합니다.
작가조명
사랑이 아닌 다른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한강과의 대화
김연수 金衍洙
소설가. 장편소설 『7번 국도』 『꾿빠이, 이상』 『사랑이라니, 선영아』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밤은 노래한다』 등이 있음. writerKYS@gmail.com
한강 韓江
소설가, 시인. 1970년 광주에서 태어나 연세대 국문과를 졸업했다. 1993년 『문학과사회』에 시를 발표하고, 이듬해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붉은 닻」이 당선되어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장편소설 『검은 사슴』 『그대의 차가운 손』 『채식주의자』 『바람이 분다, 가라』 『희랍어 시간』, 소설집 『여수의 사랑』 『내 여자의 열매』 『노랑무늬영원』, 시집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 등이 있다. 동리문학상, 이상문학상, 오늘의 젊은예술가상, 한국소설문학상, 만해문학상을 수상했으며, 서울예대 미디어창작학부 교수로 재직 중이다.
우리가 세교연구소 사무실에서 『소년이 온다』(창비 2014)에 대해 얘기한 지 한시간쯤 지났을까? 창쪽에서 쿵 하는 소리가 났다. 연전에 발표된 그의 단편 「회복하는 인간」에 나오는 회복의 의미에 대해서 얘기하던 참이었다. 창을 마주하고 앉은 한강(韓江)씨가 짧게 탄식했다. 가리키는 대로 창을 돌아봤지만, 무슨 영문인지 알 수 없었다. 그러자 새 두마리가 날아와서 창에 부딪혔다고 그녀가 설명했다.
그러나 내가 돌아봤을 때, 유리창은 아무런 흔적도 없이 말끔했다.
유리창으로 날아와 부딪혔다는 그 새들은 오래도록 잊히지 않았다. 어떤 소설은 그 새들과 같다. 끔찍한 일이 벌어졌는데도 아무런 일도 없었다는 듯이 말끔한 세상에 가서 균열을 일으킬 목적으로 씌어진다. 그럴 때는 회복이 아니라, 상처를 만드는 게 우선이다. 일단 거기 상처가 있다는 걸 인정해야 치유가 가능할 텐데, 이 세상에는 상처를 드러내는 것 자체가 금지된 고통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런 고통은 먼저 상처로 드러나야만 한다.
1980년대 경상북도에서 사는 십대 청소년으로 내가 뉴스를 통해서 접하게 된, 미문화원 점거농성 등 광주항쟁 진상규명과 관련한 격렬한 시위들은 바로 그런 의미를 지녔다. 즉 표면적으로 매끄러워 보이는 이 세계에 균열을 만들어 거기 고통이 있음을 먼저 드러내기 위한 시도였다. 진상규명에서 규명이란, 진상이 드러날 때에만 가능한 것이었기 때문에 1980년대 대학생들은 진상을 드러내는 데 온힘을 다 바친 것이다.
1988년 봄 『창작과비평』 복간호에는 낯선 이름의 소설가가 쓴 「깃발」이란 단편소설이 실려 있었다. 내게 이 작품은 그때까지 내가 살던 매끄러운 세계에 균열을 일으킨 소설로 기억된다. 내게 그 매끄러운 세계는 불타는 한채의 건물을 담은 흑백 이미지로 상징된다. 1980년 5월 21일, 당시 초등학교 4학년이던 내가 MBC 9시 뉴스를 통해 보게 된 불타는 광주MBC 사옥이었다. 「깃발」을 읽고 나자 어둠속 흐릿한 이 불꽃은 심층적 깊이를 지닌 불꽃, 해석되어야 하는 불꽃, 아래쪽으로 깊이 타오르는 불꽃으로 바뀌었다.
균열의 목적은 거기에 있었던 것이다. 이 세계가 매끈한 표면으로만 이뤄져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 그러니까 거기에는 깊이가 있고, 따라서 해석되어야 한다는 것. 해석하기 위해서는 그것에 대해서 말해야 한다. 진상을 드러낸다는 것의 의미도 거기에 있었다. 고통에 대해 말하는 것. 거기 학살이 있었다고 말하는 것. 방화, 점거농성, 분신자살, 기습시위 등 그 어떤 행위이든 목적은 고통과 상처에 대해 말하는 것이었다. 홍희담의 「깃발」을 읽고 당시 고등학교 3학년이던 나는 어떤 소설은 바로 그런 목적 때문에 씌어진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 소설과 이후에 읽은 일련의 글들로 인해 나는 내 소년기가 두개의 세계로 구성됐다는 사실도 알게 됐다. 흑백TV 속 폭도가 방화한 건물이라는 매끈한 이미지와 실제로 뜨겁게 타오르던 불꽃의 현실. 표면적인 이미지에 비해 현실은 훨씬 중층적이었다. 이미지와 달리 거기에는 총성과 비명, 시취(屍臭)와 비 냄새, 얼얼한 뺨과 뜨거운 눈물이 느껴졌으니까. 고등학교 시절에 “진실은 행간에 있다”라는 황지우(黃芝雨)의 시구를 읽은 적이 있다. 그렇다면 십대 시절 내내 나는 행간이 없는 문장 속에서 살았던 셈이다. 그건 오직 보여주는 대로의 매끈한 이미지 속에서 사는 무지의 삶이었지만, 1980년대 전반에 걸친 그 숱한 노력으로 내게도 행간이 생기자마자 나는 분열될 수밖에 없었다.
1994년 『가면을 가리키며 걷기』라는 장편소설로 나는 등단했는데, 그 제목은 표면적이고 매끈한 이미지의 이면에 거칠고 현실적인 깊이가 숨어 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된 사람의 분열된 상황을 표현하려는 의도에서 지어졌다. 나는 우리가 기만적인 가면을 강요당한 세대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 소설이 출간되고 1년 뒤, 중앙일보의 남재일(南再一) 기자가 한강, 김경욱(金勁旭), 송경아(宋京娥), 나, 이렇게 네명을 인터뷰한 뒤 ‘70년대생 작가들 문단에 속속 등장’이라는 제목으로 인터뷰 기사를 쓴 적이 있다. 당시 20대 중반이던 우리가 과연 어떤 소설을 쓴다는 것인지 궁금했던 모양이다.
그 기사를 보면, 내게는 “진짜와 가짜, 현실과 환상, 기호와 실재가 구별되지 않는 모호한 상황 그것이 현실이 아닌가 하고 묻고 있는 것이다”라는 평가가 있다. 1980년 불타는 광주MBC 사옥과 1988년 홍희담의 「깃발」 사이의 분열상태가 나를 이런 세계로 이끌었다는 것은 이제 더 설명할 필요는 없겠다. 반면 한강씨의 작품을 두고 남재일씨는 “「저녁빛」은 소멸해가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이 아름다움에 대한 열망으로 덧칠된 빛깔이다”라며 “전체적으로 체험적 느낌의 부족을 풍부한 시적 이미지로 보완하는 독자적인 경향을 보인다”라고 덧붙였다.
*
이 평가에 대해서 지금 돌이켜본다면?
그때 남재일 기자가 앞으로 어떤 소설을 쓰고 싶으냐기에 대답할 말이 막연해서 ‘아름다움에 근접하는 소설’을 쓰고 싶다고 했는데, 아마 지금의 저라면 그렇게 막연하게 대답하지는 않았을 거예요.(웃음) 제 문체는 서른살을 기점으로 바뀌었다고 생각해요. 가장 큰 이유는 개인적인 것이었는데, 그때 몸이 아팠어요. 이후 누가 잘라내버린 것처럼 문장이 짧아졌어요. ‘소멸해가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이 이십대에 쓴 소설들에 들어 있다는 말은 아마 맞을 텐데, 그 무렵 저는 그 소멸을 실감하기보다는 바라보거나 지켜봤던 것 같아요. 하지만 2000년을 통과한 뒤로는 이전의 방식으로 ‘소멸을 바라보고 아름다움을 열망하는’ 일은 할 수 없게 됐고, 하고 싶지도 않게 됐어요. 다만 조금 다른 이야기인데, 『여수의 사랑』(1995) 개정판을 손보면서 표제작이나 「어둠의 사육제」 같은 소설 속에 폭력이 중요한 모티브로 들어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됐어요. 세번째 장편 『채식주의자』(2007)를 쓰면서 인간의 폭력과 결백의 가능성에 대해 처음으로 정면으로 다룬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첫 소설집에서 이미 제가 중요하고도 고통스럽게 다루던 주제였다는 걸 알게 됐어요.
한강씨의 1980년은 어땠나요?
제 경우에는 광주에 친척들이 있었기 때문에, 그 당시에 이미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알고 있었어요. 아이들이 어디 가서 얘기할까봐 어른들이 목소리를 죽여서 말하는데, 그럴 때마다 더 듣고 싶어서 귀를 기울이게 됐어요. 그런데 집을 나서면 전혀 다른 세계였어요. 그때나 지금이나 학교는 의외로 보호받기 어려운 공간이잖아요. “너, 어디서 전학왔니?”라고 물었던 선생님들이 제가 광주라고 대답하면 잠시 침묵했어요. 그러고 나서 “왜, 경기도 광주도 있잖아. 너는 어디서 왔어?”라고 물어봤어요. 그 말의 속뜻이 ‘네가 그 광주에서 온 게 아니길 바란다’라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아들을 수 있었어요. 이것은 사소한 예일 뿐이고, 당시 교사나 학생 들이 무심코 보여주던 광주에 대한 인식, 폭력에 가까운 반응을 목격하면서 인간에 대한 어떤 불신을 경험했던 기억이 나요. 광주에서 일어난 일은 그렇게 비밀이 됐고, 김연수씨가 경험한 것 같은 분열 대신 깊은 무력감과 절망감이 오랫동안 집안에 고여 있었어요. 뉴스를 볼 때마다 다들 우울해했기 때문에, 9시 뉴스를 보던 시간이 아직도 상처처럼 남아 있어요.
『소년이 온다』를 읽었더니 2011년에 발표한 「회복하는 인간」이 의미심장해졌어요.
그 소설은 ‘당신’과 ‘당신의 언니’의 이야기인데, 언니의 죽음을 겪은 당신이 발목에 화상을 입고 그것이 아물어가는 과정을 담았어요. 당시에 제가 실제로 뜸을 뜨고서 그런 화상을 입었던 게 발단이 됐어요.(웃음) 화상 입은 자리를 방치해서 옅은 회색으로 조직이 상해 있었는데, 한달 남짓 치료를 하니까 갑자기 회복되기 시작하면서 피가 흐르고 통증이 느껴졌어요. 회복이란 이런 건가, 생각하면서 그 단편을 쓰게 됐어요.
재미있게 말하자면, 회복을 ‘앓고’ 있어요.
이 소설에서 화상의 상처가 아물어가는 과정은 미래형으로만 나와요. 영원히 회복되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마지막 장면이 최후의 현재이고요. 회복이라는 것에는 결별과 배반이 숨어 있다고 생각해요. 회복되기 전의 고통에서 벗어나야 가능한 것이니까요. 그러니까 ‘당신’은 자신이 회복되는 게, 회복되지 않은 채로 죽었고 이제 다시 만날 수 없게 된 언니에 대한 결별이자 배반이라고 느껴요. 그런 의미에서, 영원히 회복되지 않게 해달라고 하는 마지막 기도는 죽은 언니와 함께하고자 하는, 자신의 과오와 고통과 슬픔에서 영원히 등을 돌리지 않고자 하는 기도이기도 해요. 그런데 그 기도가 역설적으로 회복을 향하는 기도가 돼요. 자신을 허물고 자신 밖으로 간절하게 빠져나가고자 하는 자의 기도라는 점에서요.
『희랍어 시간』(2011)은 어떤가요? 희랍어는 죽은 자들의 언어죠. 말하자면 흉터로서의 언어랄까요? 이 흉터로서의 언어를 배우면서 ‘그녀’는 회복하는 중이네요. 그런데 이 회복의 과정에는 신이 빠져 있습니다. 인간은 스스로 병들고, 스스로 나아요. 마치 희랍 비극처럼. 마지막 장면을 보면, 결국 한 인간에게 필요한 것은 한 사람의 인간뿐인데, 그 한 사람이 없어서 신을 만들었다는 생각마저 들더군요. 인간에게 다른 인간이란 어떤 존재인가요?
저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신을 믿어본 적이 없어요. 믿고 의지하려고 애써본 적도 있는데 잘 안되었어요. 이십대 후반에는 불교에 깊이 빠져 있다가 나왔고, 삼십대 후반에는 한동안 천체물리학 책을 읽었어요. 신적인 것, 신성에 대한 생각은 지금도 가지고 있지만, 말씀하신 것처럼 저의 세계에 우리를 구원해줄 신은 없어요. 인간은 스스로 병들고 스스로 회복하는 존재라고 믿어요. 「회복하는 인간」과 『희랍어 시간』을 쓴 시기가 겹치는데, 그 시기에 회복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었어요.
인간에게 다른 인간이 어떤 존재냐고 물으셨는데, 저에게 정말 어려운 질문이에요. 오랫동안 저에게는 인간을 이해하는 일, 인간으로 이뤄진 삶을 껴안는 일이 쉽지 않았어요. 글쓰기를 시작하면서부터 제 안에서 벌어지는 내적인 투쟁 같은 걸 늘 느꼈어요. 그러다 『채식주의자』를 쓰면서, 한번 끝까지 나아가보고 싶었어요. 저는 그 소설이 극도로 고립된 상태에서 인간의 폭력성을 밀어내기 위해 목숨을 거는 사람, 인간의 일원이길 거부하고자 하는 사람의 이야기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막상 그 소설을 완성하고 나니까 계속 그 자리에 머물 수는 없다는 걸 깨닫게 됐어요. ‘결국 우리는 이 세계에서, 결국 인간으로서 살아가야 하지 않나’ 하는 질문이 생겼어요. 그래서 다음 장편 『바람이 분다, 가라』(2010)를 쓰면서는 자연과학 책을 읽으면서, 오랜 의문이었던 인간의 폭력성과 함께 앞서 말한 신성에 대해 생각하게 됐어요. 그 소설의 마지막에 주인공이 불 속을 기어나오면서 깨끗한 공기 쪽으로 배를 밀고 가는 장면이 있는데, ‘살아내야 한다’는 대답을 그렇게 쓰고 싶었던 것 같아요. 『희랍어 시간』은 거기서 다시 더 나아가, ‘우리가 이 세계를 인간으로서 살아낼 수 있다면, 그건 무엇으로써 가능한가’ 하는 질문에서 시작했어요. 그 소설 속 두 사람이 손바닥에 글씨를 그려 대화하는 장면을 쓰면서, 인간은 인간을 껴안아야 한다고, 그것이 인간을 살게 한다고 느꼈어요. 그러니까 인간에게 다른 인간이란, 어렵지만 껴안아야 하는 것, 자신을 뚫고 나가 껴안아야 하는 것이라고, 『희랍어 시간』을 쓰면서 생각했어요.
1980년으로부터 많은 시간이 흘러 『소년이 온다』를 썼습니다. 왜 써야만 했을까요?
원래 계획은 광주 이야기를 전면적으로 쓰는 게 아니었어요. 『희랍어 시간』을 쓰고 나서 이제 인간의 깨끗하고 연한 지점을 응시하는 아주 밝은 소설을 쓰겠다고 생각했는데, 이상하게도 잘되지 않았어요. 제목도 지어놓고 앞부분을 50매 정도 썼는데 더 진척이 안되면서 내가 정말 인간을 믿는가, 인간을 껴안을 수 있는가 하는 의문에 맞닥뜨렸어요. 그때까지 쓰던 걸 그만두고 내가 왜 이 소설을 쓸 수 없는가를 생각하다가, 유년시절에 간접체험 했던 5월 광주에 이르게 됐어요. 그때 이미 나는 인간을 믿지 못하게 되었는데 어떻게 이제 와서 인간을 믿겠다고 하는 것일까, 자문하다보니 이 이야기를 뚫고 나아가지 않으면 어디로도 나아가지 못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하지만 광주 이야기만 쓰면 힘들 것 같아서, 다른 이야기를 중심에 놓고 배음(背音)으로서 광주를 경험한 사람을 등장시키려고 했어요. 그렇게 광주 이야기와 현재의 이야기가 겹을 이루는 형태로 제목을 짓고 장도 배열해봤어요. 그러고선 자료를 조사해야 하니까 2012년 12월에 광주에 내려갔는데, 거기서 생각이 바뀌었어요. 『소년이 온다』의 에필로그에는 심장에 손을 얹고 망월동 묘역을 걸어나오는 게 스무살의 겨울로 나오는데, 실제로는 그때였어요. 묘지를 등지고 한참 걸어나오는데, 나도 모르게 심장에 손을 얹고 있었어요. 이걸 안 쓰면 안되겠다는 생각을 그때 했어요. 광주 이야기만으로 장편을 쓰자고 결심하고, 그 겨울에 어디 여행가기로 했던 것, 다른 일을 하기로 했던 것들을 다 취소하고 자료를 읽기 시작했어요. 석달 동안 자료를 읽으면서 새롭게 장들을 구성하고 3월부터 쓰기 시작했어요. 일년 안에 끝내자는 마음으로.
한강씨에게는 드물게도 자료에서 시작한 소설입니다.
자료를 찾는 게 힘들지는 않았어요. 그동안 시간이 많이 흘러서 방대한 분량의 자료가 잘 정리돼 있었기 때문에, 오히려 문제는 그것들을 제가 다 읽어낼 수 있는가 하는 거였어요. 수백명의 증언이 빽빽하게 기록된 자료집이 있는데, 하루에 여덟에서 아홉시간 정도 그 책만 읽었는데 꼬박 한달이 걸렸어요. 처음에는 감이 안 잡혔기 때문에 그 책을 읽으면서 마음이 흔들리는 부분에 포스트잇을 붙였는데, 나중에 보니 포스트잇이 붙어 있지 않은 페이지가 거의 없었어요. 그런데 그 이야기들을 다 쓸 수는 없잖아요. 그래서 죽은 소년과 살아남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쓰자, 마지막에는 어머니가 말하게 하자고 큰 틀을 잡았어요.
살아남은 사람들의 이야기에서 3장 「일곱개의 뺨」은 그 시절에 편집자 생활을 하신 어느 선생님께 직접 들은 이야기에서 가져왔어요. 대사가 모두 검열되어서 입만 달싹이는 침묵으로 올렸던 연극도 실제로 있었던 일에서 조심스럽게 빌려왔어요. 4장 「쇠와 피」는 자료를 통해 80년 여름 상무대에 대해 알게 되어 썼어요. 그곳에선 강제노동을 시키지 않았을 뿐 매일 고문이 벌어졌고, 아주 적은 양의 식사를 주었고, 인간의 존엄을 시험대에 올리는 학대가 지속되었던 전형적인 수용소 공간이었어요. 생존자들의 PTSD(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가 대부분 그때 생겼어요. 5월 열흘간의 항쟁기간에 대해서는 그간 많은 조명이 있었는데, 그 여름의 상무대는 거의 다뤄지지 않아서 꼭 써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5장 「밤의 눈동자」는 마찬가지로 생존자의 이야기이긴 한데, 광주가 갑자기 생겨난 사건이 아니라는 생각으로, 1970년대의 인권탄압과 노동운동에 이어져 있다는 생각으로 썼어요. 이 장에서는 동일방직에서 노동운동에 잠시 몸담았다가 광주로 내려와 미싱사로 일하던 선주가 ‘당신’으로 등장하는데, 사실 정확하게 이런 이력을 가진 생존자는 없어요. 광주를 이해하기 위해서 비슷한 맥락의 사건들을 찾아 읽는 과정에서 이 장을 쓰게 된 것이니까, 이 소설에서 자료 읽기는 정말 중요했다고 말할 수 있어요.
소설은 비의 기미에서 시작합니다. “비가 올 것 같아.” 이건 정자체로. “정말 비가 쏟아지면 어떡하지.” 이건 이탤릭체로. 둘 다 중얼거림입니다. 소통의 말이 아니라는 거죠. 전달을 목적으로 하는 말이 아니라는 점에서 저는 그냥 감각을 말로 표현한 것이라고 봐요. 이게 살아 있는 사람의 세계라면 2장 「검은 숨」은 죽은 사람의 세계인데, 여기에서는 타인을 감각하지 못하는 공간을 사후세계로 보고 있어요. 자료에서 시작했다지만, 『소년이 온다』는 주로 개인적 감각에 대해서 쓰고 있죠. 곤경에 처한 적은 없었나요?
자료를 읽으면서 제가 느낀 가장 강한 감정은,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다는 무력감이었어요. 이 소설을 읽고 잔혹하다고 하는 사람도 있는데, 사실은 더 잔혹한 것도 자료 속에 많았지만 쓰지 못했어요. 어디까지 재현해야 할지 고민이 많이 됐어요. 임철우(林哲佑)의 『봄날』 같은 경우에는 분 단위로 그 현장을 잘 옮겨놓으셨잖아요. 너무 훌륭하게 잘해놓으셔서 제가 뭘 더 보탤 게 없었어요.
그래서 결국 저에게는 같이 겪자는 마음만 남았어요. 그리고 또 하나, 초를 밝히는 것. 이 소설 전체가 초를 밝히는 일이 됐으면 해서 1장에서 동호가 죽은 사람들을 위해 초를 밝히고, 에필로그에서 ‘나’가 동호랑 소년들을 위해 초를 밝혔어요. 그러니까 같이 고통을 느끼는 것, 초를 밝히는 것, 그 두가지만 하자고 생각했어요.
이 소설에는 누군가의 고통 때문에 고통받으며 그쪽으로 몸을 기울이는 사람들이 나와요. 동호가 정대에게, 정대가 정미에게, 은숙은 동호에게, 진수는 동호와 영재에게, 선주는 동호와 성희에게…… 그렇게 다들 자신이 아닌 다른 이의 고통에 몸을 기울이고 있어요. 타인의 고통을 감지해서 자신의 고통으로 삼을 수 있다는 건 인간의 고귀함을 증언하는 최후의 방어선 같은 거라고 생각해요. 타인의 고통 때문에 생기는 개인적 고통, 그 지극히 감각적인 고통에 대해서 쓰고 싶었어요.
하지만 2장 「검은 숨」을 쓸 때는 불가능한 일을 하고 있다고 느꼈어요. 실종자들은 시신으로도 돌아오지 못했으니까 아무도 우리를 향해 증언할 수 없잖아요. 어딘가에서 쌓이고 불태워지고 암매장되었을 그 사람들에 대해서 써야겠는데, 저 자신이 정대의 목소리가 되는 일을 날마다 시도하는 게 절망적으로 느껴졌어요. 아침에 작업실에 가서, 석줄 쓰고 한시간 울고, 해가 질 때까지 멍하게 앉아 있다 오고 그랬어요. 책이 나오고 벌써 한달이 지났는데 아직 관련된 꿈을 꾸는 걸 보면, 아마 제가 평생 가지고 가야 할 기억이 된 것도 같아요. 그렇지만 그런 저 자신의 고통과는 조금 다른 문제로, 문장 하나하나는 절제해서 침착하게 써나가려고 노력했어요. 그것밖에는 그 곤경을 헤쳐나갈 방법이 없었어요.
“이상하게도 나는 혼자였어. 그러니까 혼들은 만날 수 없는 거였어. 지척에 혼들이 아무리 많아도, 우린 서로를 볼 수도 느낄 수도 없었어. 저세상에서 만나자는 말 따윈 의미없는 거였어.”(46~47면) 이런 문장이 있네요. 앞에서 말한 내용과 겹치지만, 죽은 뒤에는 신도 없고 타인도 없고, 몸은 이제 버려졌고, 그저 혼자 남는 것이군요. 그렇다면 구원받을 가능성도 전혀 없겠죠. 하지만 다른 지점에서 구원은 시작되기도 합니다. 예컨대 “그렇다면 우리에게 남는 질문은 이것이다. 인간은 무엇인가. 인간이 무엇이지 않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95면) 이건 인간은 뭔가를, 그것도 다른 이를 위해서 뭔가를 할 수 있는 존재라는 걸 전제한 질문 같아요. 그리고 이건 공적인 행위가 아니라 사적인 행위죠. 그래서 저는 이 소설이 지금까지 광주항쟁을 다룬 소설과는 다른 맥락에서 씌어졌다고 봅니다. 말하자면 사회적이고 공적인 사건을 개인적이고 사적으로 회고한 소설이랄까요. 이게 묘하게 쁘리모 레비(Primo Levi)를 연상시킵니다. 신은 없어요. 대신에 인간은 뭔가를 할 수가 있는데, 그건 좌절로 귀결되기 십상이지요. 그래도 뭔가를 할 수 있는 한 인간은 살아갈 수 있는 것이죠. 글을 쓰는 한 쁘리모 레비는 살 수 있었고, 글을 쓰지 못하게 되자 바로 죽은 것처럼 말이죠.
제가 이십대에 첫 소설집을 내고 직장생활을 하던 시절에, 그때는 언젠가 이 소설을 쓸 것이라는 생각을 전혀 하지 못했지만, 이 사건은 언제나 악몽처럼 거기 있는 어떤 것이었어요. 그런데 어째서인지 그 무렵에 일기장을 바꿔 쓸 때마다 앞장에 적었던 문장 두개가 있었어요. ‘현재가 과거를 도울 수 있는가. 산 자가 죽은 자를 도울 수 있는가.’ 까맣게 잊고 지내다가 엊그제 세수하는데 갑자기 떠올랐어요. 어쩌면 그런 생각 끝에 『소년이 온다』를 쓴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도울 수 있나요?
네. 그런 것 같아요. 말씀하신 두개의 질문 중 ‘인간은 무엇인가’는 이 소설을 쓰기 전부터 품어왔던 질문이고, ‘인간이 무엇이지 않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는 자료를 다 읽고, 초(草)를 잡아 이 소설을 쓰기 시작하면서 생각한 질문이에요. 인간은 이토록 연약하고 위태롭고, 그래서 더 귀하고 존엄한 존재니까, 그것이 유리처럼 깨어져버리지 않도록, 돌이킬 수 없게 되어버리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생각을 했어요. 광주에서의 집단 발포가 이뤄진 것은, 전날 밤 신역(1968년 대인동에서 중흥동으로 이전한 광주역을 기존 역사와 구별하려 붙인 명칭—편집자)에서 총에 맞아 죽은 두구의 시신 때문에 수십만의 사람들이, 총에 맞은 참혹한 시신들을 보고 ‘이건 아니다’라는 보편적인 믿음으로 거기 모였을 때였어요. 결과는 비극적이었지만 ‘이건 아니다’라는 그 믿음에 어린 어떤 깨끗함을 붙잡고 싶었어요. 이 소설을 쓰는 동안 그것에 어떻게든 근접하고 싶었어요. 동호가 시신들의 피흘린 몸에 흰 천을 덮고 초를 밝히는 장면을 첫머리에 쓴 것도 같은 맥락에서였어요. 그렇게 현재가 과거를 돕고, 산 자가 죽은 자를 돕는 일이 가능하다고 믿고 싶었어요.
『소년이 온다』는 ‘너’라는 2인칭으로 시작합니다. 2인칭은 불러내는, 호명하는 인칭이죠. ‘너’라고 불러내서 나타나면 그를 바라보면서 이야기를 말하는 거죠. 『소년이 온다』도 “비가 올 것 같아”라고, 어둠속에서 먼저 음성이 들리고, 그 다음에 ‘너’라고 호명한 뒤에 “너는 소리 내어 중얼거린다”라고 문장을 이어가죠. ‘너’를 부르는 사람은 ‘나’겠죠. 그렇다면 1장 「어린 새」의 ‘너’인 동호를 부르는 사람은 2장 「검은 숨」의 ‘나’ 정대일 것 같아요. 하지만 끝까지 읽으면 에필로그의 ‘나’가 더 가까운 것 같습니다. 뒤로 가면 선주가 등장하는 부분에서도 ‘당신’이라는 2인칭을 사용하는데, 이 2인칭은 또 1장의 2인칭과는 달라요. 2인칭을 사용한 까닭은 무엇인가요?
3인칭과 달리 2인칭은 오직 한 사람, 내가 부르는 바로 그 사람이잖아요. 이 세상에 오직 한 사람뿐인 그 사람에게 ‘나’가 집중하고 있는 것인데요. 동호는 죽은 소년이지만, 부르면 거기 어둠으로부터 떠올라서 존재하게 돼요. 호명하고 또 호명하면 현재 속에 가까스로 떠오르는 ‘너’예요. 그렇게 처음부터 2인칭으로, ‘너’가 동호여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장들이 바뀌면서 저마다 동호를 ‘너’라고 불러냄으로써, 동호의 마지막 시간이 파편들처럼 불완전하게 맞춰지도록 하고 싶었어요.
그런데 5장 「밤의 눈동자」에서 ‘너’가 시시때때로 ‘당신’인 선주에게 찾아오는데, 그 부분을 쓸 때는 2인칭이 두명이 되니까 조금 고민이 되었어요. 그래서 ‘그녀’로 바꿔보기도 했는데, 결국 선주는 ‘당신’으로 불려야 하는 사람이라고 느꼈어요. 5장을 쓰는 일이 어려웠어요. 선주의 목소리에 제가 최대한 근접해야 하는데, 그 고통에 근접하는 일이 같은 여성으로서 두려워서 자꾸 피해가려고 하는 걸 느꼈어요. 그러다보니 이 장만 유난히 오래 걸렸어요. 세번째로 완전히 고쳐 쓰고서야 선주가 또렷해졌다고 느꼈어요. ‘당신’은 존경과 애틋함을 담아서 가만히 부르는 2인칭이잖아요. 저는 선주를 꼭 ‘당신’이라고 부르고 싶었어요. 그렇게 해서 선주가 독백하는 부분에서 동호를 ‘너’라고 부르는데, 이때 ‘당신’에게 찾아오는 ‘너’는 동호만이 아니라 수많은 사람들의 넋이 환하게 겹쳐져 번진 무엇이 돼요.
예전에 썼던, 말하자면 「회복하는 인간」의 2인칭과는 좀 달라요.
예, 달라요. 그때 ‘당신’이라고 했을 때는 지긋이 이 사람의 감정을 바라보고 싶었어요. 당신이라고 불러서 마음을 절제하되 그 사람의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격랑을 내가 지켜본다, 이런 느낌으로 「회복하는 인간」을 쓴 것인데요. 『소년이 온다』의 ‘너’는 모두가 ‘너’라고 부름으로써 오게 되는 어떤 소년에 대한 것이니까 의미가 달라요. 그리고 소설을 쓸 때, 저 역시 쓰는 동시에 읽어가게 되잖아요. 제가 ‘너’라고 2인칭으로 부를 때, 마치 화살이 과녁을 비껴가듯이, 읽는 사람인 저를 겨누다가 비껴 날아가는 것 같았어요. 그러니까 읽으면서 쓰는 ‘나’와 같은 방향에, 지금 ‘너’가 분명하게 존재하고 있다는 느낌이 저에게는 중요했어요.
예전 소설에서 읽은 2인칭 ‘당신’은 사실 1인칭 같은 느낌이 들었어요. 자신에게 거리를 두려고 호명하는 거죠. 그래서 그 2인칭은 무언가를 당기는 힘을 지녔다면, 『소년이 온다』의 2인칭은 밀어내는 힘을 가졌어요. 다가가려고 안간힘을 쓰지만, 자꾸 밀려나는 거죠. 그런 점에서 계속 숨어 있다가 에필로그에서 ‘나’로 등장하는 화자의 존재는 인상적이에요. 필연적이라는 생각도 들어요. 계속 절제하고 있다가 비로소 감정을 쏟아내는 듯한 느낌이에요.
이 에필로그는 처음의 계획에서는 빠져 있었고, 6장 「꽃 핀 쪽으로」에서 소설을 끝내려고 했어요. 그런데 1장에서 촛불 장면을 쓰면서 눈 덮인 무덤 앞의 촛불이 떠올랐어요. 30여년을 건너서 촛불 속으로 오는 사람을 생각하고, 소설의 마지막에 에필로그를 독립된 장으로 쓰기로 했어요.
‘나’가 숨어 있었다고 말씀하셨는데, 아까 말했다시피 제가 이 소설을 쓰기 전에 두번 다른 장편을 쓰려고 했어요. 처음에는 눈부시게 밝은 이미지의 소설을 쓰려고 했고, 그다음에는 광주를 배음으로 깔고 있는 소설을 쓰려고 했고…… 그때 어렴풋이 생각한 소설들의 느낌은 제 자의식이 많이 들어간 어떤 것이었어요. 하지만 『소년이 온다』를 쓰면서는 저 자신이 별로 중요하지 않았어요. 제 자의식을 지우고 최대한 그 목소리들이 되려고만 했어요.
실제로 일어났던 사건이어서 그런 건가요?
모르겠어요. 그냥 제가 별로 중요하지 않게 됐어요. 이 소설을 쓰는 동안에는 저 자신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고, 이 소설만 중요한 상태였어요. 일년 동안 저에 대한 생각을 별로 안했어요. 그러다보니까 저의 자의식이 없어졌어요. 그렇다고 이게 다큐 같은 소설은 아닌데요. 단지 제가 이 사람들의 목소리가 되는 게 제일 중요했어요.
지금 다른 소설 쓰세요?
지금 시작하려 하고 있어요.
그럼 이 소설만 그런 건가요, 아니면 전반적으로 변화가 생긴 건가요?
모르겠어요. 써봐야 알 것 같아요. 올 1월초에 이 소설을 일단 마무리하고 나서 힘들었어요. 그래서 1월 중순에 편집자를 만나서, 힘드니까 빨리 책을 내달라고 부탁을 했어요. 이 소설의 세계에서 어서 나오고 싶더라고요. 하지만 이런저런 사정으로 출간이 늦춰지고, 그사이에 제가 5장을 완전히 새로 고치면서 오히려 원고를 붙들고 있는 바람에 5월에 꼭 맞춰 출간이 됐어요. 그런데 책을 내고 나서야 제가 착각한 게 있었다는 걸 알았어요. 이 책만 내면, 제가 별로 안 중요하다고 생각하면서 살았던 1년이 끝나고 다시 나로 돌아갈 줄 알았던 건데, 내고 나니까 더 힘들고 악몽도 계속 꿔요. 다음 소설을 쓰고 싶긴 한데, 그게 어떻게 나올지, 원래 내가 쓰던 소설은 무엇인지, 예전의 내가 있다고 한다면 돌아갈 수 있는 것인지 잘 모르겠어요. 일단 써봐야 알 것 같아요.
소설 속으로 다가가려고 노력하다보니까 자신이 없어진 셈이네요.
예. 제가 없어졌어요.
소설창작의 신비체험을 하셨군요!
그런 건가요?
저는 6장 「꽃 핀 쪽으로」에서 그걸 느꼈어요. 거기에 이르면 한강씨는 없어지고 어머니가 자신의 몸과 경험으로 얘기하죠. 그래서 이게 어머니의 의지인지, 작가의 의도인지 구분하기가 매우 모호하지만, 아주 밝게 끝나요. 어떻게 보면 작가에게는 아무런 선택권이 없이 이야기 스스로 그렇게 끝나는 것 같기도 해요.
제가 이 소설을 쓰기로 결심할 때에는 인간의 본질과 폭력에 대한 오랜 의문을 뚫고 나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어요. 하지만 두려웠고, 과연 완성할 수 있을까 하는 실감도 나지 않았어요. 자료를 읽어갈수록, 오히려 제가 가진 신뢰도 버리게 될 만큼 그 야만의 시간이 참혹했다는 것을 알게 됐어요. 사진첩을 다시 보고 영상을 다시 보면서, 이걸 도저히 뚫고 나갈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렇게 석달째 희망 없이 자료 속에 묻혀 있다가, 문득 이 사람들은 희생자가 아니라 행위자였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됐어요. 그 사람들이 거기 모인 건 타인의 고통 때문이었어요. 자료 속에서 제가 고통을 느끼는 것도 마찬가지 이유였고요. 인간의 존엄에 대한 근본적인 믿음이 있기 때문에 그 사람들은 거기 모이고 또 죽었던 것이고, 제가 고통을 느끼는 것도 인간의 존엄에 대한 믿음 때문인 거였어요. 그래서 참혹을 다루되 거기까지 가자, 생각했어요. 인간의 존엄까지만 가자, 그러면 내가 할 것은 다 한 거다.
돌아보면 저 자신이 계속 인간의 참혹과 존엄 사이에서 흔들리면서 이 소설을 썼던 것 같아요. 날마다 한번 이상, 소설을 쓸 때뿐 아니라 길을 가다가, 지하철에서, 버스에서 저도 모르게 울었어요. 자신에 대한 연민 같은 건 들어 있지 않은, 자신의 문제가 전혀 관여되지 않은 울음이었어요. 그렇게 일년이 지나니까 숨도 가쁘고 몸이 안 좋아졌어요. 왜 그렇게 제가 울었던 것인지 이즈음 생각하게 되는데, 그걸 사랑이 아닌 다른 말로 설명하는 건 불가능할 것 같아요. 그러니까 6장 「꽃 핀 쪽으로」는 사랑의 장이었으면 했어요. 가장 처절하고 고통스러운, 사랑 때문에 고통스러운 장이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비록 그렇게 마음은 먹었지만, 이 소설이 참혹에서 존엄으로 나아가는 소설이어야 한다고 생각은 했지만, 제가 나약한 사람이라서 자주 좌절했어요. 그렇게 한발도 앞으로 갈 수 없다고 느낄 때마다 동호에게 매달렸어요. 동호는 이 소설 속 모든 사람들에게 고통스러운 기억이지만, 동시에 이를 악물고 생명으로 나아가도록 만드는 존재잖아요. 6장에서는 어린 동호가 어머니의 손목을 붙잡고 밝은 쪽으로, 꽃이 핀 쪽으로 끌고 가요. 에필로그에서도, 제 질문들이 막다른 벽에 부딪혔을 때 ‘이제 당신이 나를 이끌고 가기를, 빛이 비치는 쪽으로 데려가기를 바랍니다’라고 하면서 소년에게 매달렸어요.
*
그래서 마지막은 다음과 같다.
네가 여섯살, 일곱살 묵었을 적에, 한시도 가만히 안 있을 적에, 느이 형들이 다 학교 가버리먼 너는 심심해서 어쩔 줄을 몰랐제. 너하고 나하고 둘이서, 느이 아부지가 있는 가게까지 날마다 천변길로 걸어갔제. 나무 그늘이 햇빛을 가리는 것을 너는 싫어했제. 조그만 것이 힘도 시고 고집도 시어서, 힘껏 내 손목을 밝은 쪽으로 끌었제. 숱이 적고 가늘디가는 머리카락 속까장 땀이 나서 반짝반짝함스로. 아픈 것맨이로 쌕쌕 숨을 몰아쉼스로. 엄마, 저쪽으로 가아, 기왕이면 햇빛 있는 데로. 못 이기는 척 나는 한없이 네 손에 끌려 걸어갔제. 엄마아, 저기 밝은 데는 꽃도 많이 폈네. 왜 캄캄한 데로 가아, 저쪽으로 가, 꽃 핀 쪽으로.(192면)
지난 5월, 이 부분을 읽을 때까지만 해도 나는 당연히 『소년이 온다』를 광주항쟁에 대한 소설로 읽었다. 그래서 이 두 사람이 밝은 쪽으로, 거기 꽃 핀 쪽으로 가기까지 걸린 34년이라는 시간을 생각했다. 그러는 동안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데모를 하고, 고문을 당하고, 죽어갔는지 생각했다. 그러는 동안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희망을 가졌다가, 그 희망이 무참하게도 꺾이는 것을 지켜보면서 절망하고, 결국에 인간에게 존엄 따위는 없다고 좌절했는지 생각했다. 밥 딜런(Bob Dylan)의 노래 가사처럼 얼마나 많은 바다를 건너야 하얀 비둘기는 백사장에서 잠잘 수 있는지를 생각했다. 이 환한 결말을 쓰기까지 우리에게는 34년이라는 시간이 필요했던 것일까?
그때 뉴스에서는 세월호 실종자 수색과정이 보도되고 있었다. 당시만 해도 지방선거 전이었고, 세월호는 오랜 적폐의 결과 침몰한 것이니 이 기회에 국가를 개조하겠다며 대통령은 눈물을 흘렸다. 그로부터 석달이 흐른 지금, 새누리당 주호영(朱豪英) 정책위의장은 새누리당의 기본 입장은 세월호참사가 교통사고라는 것에서 출발한다고 말하고 있다. 그렇지만 많은 사람이 희생된 특수한 케이스니까 이미 다른 교통사고보다 상당한 특례를 주고 있다는 게 그들의 생각이다. 이건 누군가에게는 정확하게 심장을 겨누고 찌르는 비수일 수도 있는 말이지만, 그럴 수 있다고 치자.
그렇다면 왜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죽어야 했는지에 대해서 마땅히 조사해야 할 것이다. 정상적인 국가라면 철저하게 원인과 과정을 조사해서 책임 소재를 가리고 재발방지책을 만들 것이다. 그런데 이 나라에서는 지금 도무지 믿기 어려운 일이 벌어지고 있다. 정부와 새누리당은 왜 사고가 일어났는지, 그리고 왜 초기에 구조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는지에 대한 철저한 조사를 목적으로 유가족이 요구하는 수사권과 기소권을 거부했다. 그러는 동안, 엄마부대봉사단과 어버이연합은 세월호 유가족이 단식 중인 광화문 농성장을 찾아가 막말을 하고 난동을 피웠다. 교통사고라면 이런 폭력적인 일들이 왜 일어나는 것인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 대신에 정부와 새누리당과 극우단체가 세월호 유가족을 다루는, 이 거친 방식은 상당히 낯익다.
그게 교통사고든 학살이든 아직도 우리는 유가족이 진상을 규명해달라고 서울 한복판에서 단식농성을 벌여야 하는 국가에서 살고 있다. 『소년이 온다』의 6장 「꽃 핀 쪽으로」의 마지막 부분이 여전히 뜨겁게 읽히는 건 그 때문이다. 봄꽃처럼 짧은 인생을 살다가 이 세상을 떠난 아이들이 자신의 부모에게 “엄마아, 저기 밝은 데는 꽃도 많이 폈네. 왜 캄캄한 데로 가아, 저쪽으로 가, 꽃 핀 쪽으로.”라고 말하는 날도 언젠가는 찾아올 것이다. 하지만 얼마나 걸릴지, 그날이 올 때까지는, 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힘없이 꺾인 희망에 상처받고 죽음보다 깊은 절망에 허우적댈는지.
지난 5월, 책을 덮고 나서 느낀 따뜻하고도 환한 감정이 오래도록 잊히지 않아 이 인터뷰를 흔쾌히 맡았는데, 지금 다시 읽으니 ‘꽃 핀 쪽으로’ 우리를 이끄는 소년의 손은 이런 질문을 던지는 듯하다. 그로부터 34년 뒤의 세상, 거기에는 아래쪽으로 깊이 타오르는 불꽃이 없느냐고. 아무리 정부가 매끄러움을 가장하고 우리가 자신의 일이 아니라는 이유로 외면한다고 해도 거기 불꽃이 타오르는 한, 우리가 해석해야 하는 깊이를 지닌 불꽃이 타오르는 한, 1980년 5월 광주는 지금 여기의 문제다. 그리고 5월 광주가 지금 여기의 문제인 한, 소년은 돌아올 것이다.